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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천왕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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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607 회 작성일 24-02-13 09:0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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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장
신비마교(神秘魔敎)의 마황(魔皇)과
환술(幻術)의 창시자(創始者)...

화우성이 두 번째 방에서 나온 시간은 십 일 뒤였다.

세 번째 방,
화우성이 그곳에서 본 사람은 한 명의 흑의괴노(黑衣怪老)였다.전신에서 하늘마저 질식시킬 듯한
엄청난 마기를 뿜어대는 노인...
놀랍게도 그는 거대한 청동화로에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십만 가지의 독액을 섞어서
만든 전설상의 독인 만년부시식골산이었다.
만년부시식골산을 장강에 한 방울만 떨군다면 향후 백 년 간은 장강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지
독한 독이었다.
한 마디로 중원인의 젖줄인 장강이 죽음의 물이 되어, 중원인 모두가 기갈 속에 신음하며 죽어가
야 될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흑의괴노였다.

-천독마신(天毒魔神) 나공후(羅公侯)!

그는 독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독의 시조였다.
또한 대소림사의 전통을 능가하는 인세의 가장 뿌리깊은 신비마맥인 마교(魔敎)의 개파조사이기
도 했다.
또한 마인들이 전설상의 최고경지로 일컫는 천마초극지체를 불과 십팔 세에 이룩한 마인의 표상
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삼천 년 간 마도의 가장 위대한 전설로 남아 있었다.

-혈등(血燈)!
-천마경(天魔經)!

그가 남긴 것은 이 두 가지였다.
천마경마공의 서열 일 위부터 백팔 위까지의 전설적인 마공이 담겨 있는 마서였다.
현세에 마공제일좌로 뽑히는 천마대혈강(天魔代血剛)은, 천마천경 안에 담겨 있는 백팔 위 마공인
마안혈옥기(魔眼血玉氣)에 십분지 일에도 못 미치는 삼류무학이었다.
만일, 이 천마경이 세상에 나간다면 천하 마도인들은 요란법석을 떨며 마공서열순위를 바꿔야 할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혈등!
나공후는 이 혈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혈등...달리 구천마황등(九天魔皇燈)이라 불리는 이것은 본좌의 신물이다.
백만 마도인이 구천마황등에 경배하리니 그대는 이제부터 마도의 꿈이자 우상이 된 것이다.
또한 이 구천마황등은 태초에 제석천과 신의 전쟁을 벌이신 아수라천마(阿修羅天魔)께서 남기신
것으로, 그 안에는 마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
만일, 연자가 천독마공을 완벽하게 연성한다면 적어도 본좌보다 십 배는 강한 아수라마신이 되리
라!>


네 번째 방에서 화우성을 기다린 사람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고대의 관복(官服)을 입고 있었다.
(이분은 오래 전에 관직에 있었던 분이셨군.)
화우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철궤를 열었다.

<본제는 본시 천황씨의 태자를 모시던 황궁의 예법관(藝法官)이다. 예법관이 해야 될 일은 너무
나 많았다. 신전의 제사와 황제께서 드실 수라상의 감독, 그 외에도 황궁내인들을 교육시켜야 했
으며...황궁의 크고 작은 잡다한 일을 도맡아 처리해야만 했다.
허나, 그중 가장 막중하고 어려운 일은 황제폐하께 황실의 법도를 익히게 해드리는 일이었다.
다행히 태자께서는 천인지체답게 영특하시어 한 가지만 빼놓고는 염려할 게 없었다.
바로 그 한 가지 문제점이야말로 진정 큰 문제거리였으니... 태자께서는 어릴적 사냥을 하다가 잘
못 낙마를 하셔서 한 쪽 다리를어색하게 저시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만인의 지존으로서 절대적인 위엄을 갖추셔야 될 황제께서 한 쪽 다리를 끼우뚱거
리며 걷는 모습을!
그로인해, 일각에서는 황태자의 지위를 이황자이신 자룡황자(紫龍皇子)께 물려드려야 한다는 문제
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그로인해 나는 고민에 빠졌다. 그 모든 것은 바로 나의 책임이었기 때문이었다.
침식을 잃고 한 달, 드디어 나는 태자의 걷는 모습을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는 걸음걸이를 창안
했다.
그뒤, 나는 태자께 이 걸음걸이를 익히시게 한 후 만조백관들이 보는 앞에서 몸소 걸어보시게 했
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태자께서 나타나시어 일 보(一步)를 띠시자마자, 만조백관들은 너무나 큰 하늘같은 위엄에 모두
머리가 깨지도록 오체복지했던 것이다.
자신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럴 수가? 다리를 고치지도 않고 어떻게 만승지존의 위엄을 내실 수 있었다는 말인가?)

<그후 나는 이것을 더욱 연구발전시켜 마침내는 한 걸음에 천하를 굴복시키는 보법으로 발전시
켰으니, 이름하여 제왕천보(帝王天步)라 붙였다.>

어떻게 걸음 하나로 천하를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허나, 다음 순간 화우성은 터질 듯한 신음성을 흘리고 말았으니,
(이, 이럴 수가?)
관복을 입은 한 사람이 호숫가를 유유히 걷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마치, 경치를 한가롭게 감상하고 있는 모습의 그림...
그림속의 사람은 막 발걸음을 옮기기 위해 한 쪽 발을 살짝 지면 위에서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대하는 화우성은 마치 하늘이 다가오는 듯한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으니, 화우성은 둔탁한 둔기로
머리를 호되게 맞은 듯한 충격에 멍하니 그림을 바라보며 넋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내 스스로 저절로 무릎을 꿇고 싶은 충동을 느끼다니...마치 하늘이 그대로 내게 다
가오는 것 같지 않은가?"
사실 그 순간 그의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림 속의 인물에게서 풍기는 너무나 엄청난
절대적인 위엄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
바로 그가 화우성였기에...!
화우성은 네 번째 방에서 일주일을 머물며 제왕천보를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그 어떤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이 제활천보를 대하면 투지를 잃고 스스로 오체복지하지 않고는 배
길 수 없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내가 익혀온 어떤 무공보다도, 아니 그 모든 무공을 합친 것보다도 배나 위력
이 강한 무서운 무공이다!)


다섯 번째 방,
화우성은 어쩐지 들뜨고 호기심이 가득 어린 얼굴 표정으로 다섯 번째 방을 들어섰다.
"이제까지 내가 하나의 방을 거칠 때마다 점점 신기하고 강한 위력의 무공을 보아왔다... 과연 이
다섯 번째 방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
이제까지 예를 보아 온다면 이 다섯 번째 방에는 이제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위
력의 무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무공을 훨씬 능가하는 강한 무공!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두고 볼 일이겠으나 하여튼 이 순간 그의 마음은 온통 풍선처럼 들떠오르고 있었다.
"저럴 수가?"
지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이제까지 들뜬 기대와는 달리 공포로 인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가 그렇게 놀란다는 말인가?
진저리쳐질 정도로 사이한 기운을 풍기는 백의인이었다.
헌데, 보라!
꿈틀...꿈틀...
백의인의 얼굴이 지금 쉴새없이 꿈틀거리며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에게...이십대의 젊은이로...소동에서 아기로...심지어는 소녀에서 노파에 이르기까지...쉴새없이
변하고 있었다.
실로 끔찍스럽게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살아있다는 말인가?)
허나, 화우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죽었다. 이제까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죽은 시체일 뿐이다. 눈동자가 굳어 있다.)
백의인의 모습 중에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눈동자뿐이었다.
(헌데, 죽은 사람의 얼굴이 저토록 쉬지 않고 움직이다니...!)
이제까지 별 괴이한 것을 다 경험해 온 그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죽은 시체의 얼굴이 움직이다니...

<본제는 사환대제(邪幻大帝)다.
인황씨(人皇氏)의 황태자이신 분의 태사(太師)였다.
태자시절... 태자는 매우 영특한 분이셨으나 본신의 얼굴은 매우 추해 역겨웠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그분이 제왕이 되신 후에도 자신의 얼굴을 면사로 가리고 다니시면서 정사
를 돌보셨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것은 후일에 일이고, 나는 태사라는 직책 때문에 그분의 얼굴을 매일처럼 대해야 했는
데 내 자신조차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태자의 얼굴은 코가 입술까지 축 늘어졌을 뿐만 아니라 전신의 피부는 시커멓고, 얼굴은 논바닥
처럼 쩍쩍 갈라져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그 얘기는 그만하겠다.
태자께서는 태자라는 신분 때문에 하루에 한 번씩은 어전에 나가 만조백관들과 함께 천지회의에
참석하셔야 했는데, 태자께서는 자신의 얼굴 때문에 어전에 나가는 것을 죽기보다도 싫어했다.
더구나, 태자의 신분으로는 황제가 계신 어전에서는 면사조차 쓸 수가 없어서 더욱 나가기를 싫
어하셨다.
아니, 어전 회의에 나가시는 것을 싫어한 것은 태자전하 뿐만 아니라 다른 만조백관들도 마찬가
지였다. 태자의 얼굴은 그만큼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더 말하면 무엇하겠는가... 태자 자신도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보면 삼 일 전에 먹은 것까지
토해낼 정도였는데...>

묘한 일이었다.
천황씨의 황태자는 다리가 불편하였고, 인황씨의 태자는 얼굴이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추남이었
다는 것은...

<태자의 얼굴에 대한 열등감은 극심해 침식을 잃을 정도여서 황제이신 인황씨마저 걱정이 크셨
다.
그러더니, 어느날 나를 찾아와 태자의 얼굴을 고칠 수 없겠느냐고 근심스런 표정으로 상의하셨다.
허나, 하늘이 내리신 얼굴을 무슨 수로 고친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인황의 부탁이 하도 간절해 나는 고심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창안하고 그것을 환술(幻
術)이라 이름붙였다.>

환술... 그 창안자는 바로 사환대제였다.
삼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환술의 탄생비화가 밝혀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태자의 모습을 보고 나는 곧 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때 내 나이 팔십, 불현듯 청춘을 되찾고 싶
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젊고 영준한 모습의 청년으로 몰래 모습을 바꿔 가끔 돌아다녔는데, 글쎄...황궁의 나
인 계집 아이들이 나를 진짜 잘생긴 청년인 줄 알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덕분에 심심치
않게 재미 좀 보았다.
그런데, 정작 큰일은 그 때부터 벌어진 것이었으니...! 심심풀이 삼아 자주 얼굴을 바꾼 덕분에 정
작 나의 얼굴을 잊어 버린 것이다.
내 무슨 염치로 황제폐하와 태자저하께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나는 황궁에 서찰 한 장을 써놓고 몰래 도망쳐 나와야 했다. 그리고 나서 본좌는 여기로 들
어와 환술을 천환신경(天幻神經)에 적어 놓았노라!>

천환신경(千幻神經)에 담겨져 있는 내용은 화우성이 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떤 살인마학보다 한층
환상적인 것이었다.

대자연의 만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태어나고 ...자라고...소멸되는 만물의 법칙!
변화! 환사대제가 환술을 창시함에 있어서 응용한 것은 바로 그 변화였다.
흔히 기환술(奇幻術)을 기문둔갑으로 보는 것은 큰 잘못이다. 기환이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하는 것을 뜻한다.
이 동화의 이치를 깨달으면 한 방울의 물... 한 잎의 낙옆으로 자유자제로 동화할 수 있다. 환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하는 것이다.

천환신경에 담겨 있는 내용은 어찌보면 천지십학의 지편(地篇)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허나, 그 위력은 천지십학과 비교한다는 것은 우스울 지경이었으니...
태양 앞의 반딧불이라고나 할까?
천지십학의 지편의 내용은 주로 대자연의 물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숨기는 비술을 담고 있었
으나 천환신경의 환술은 완전히 대자연의 일부분으로 동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살인사들이 최고의 은둔비술로 꼽고 있는 비은삼영예와는 아예 그 차원을 달리하는 엄청
난 것이었다.
사환대제는 마침내 환술을 종래의 수비중점의 소극적인 것에 벗어나 하나의 살인마예로 창조해
냈으니...
이름하여 환상십예(幻想十藝)!
대자연...그 자체로 완벽하게 천지개벽을 일으키는 저주의 환상술법이 환상십예(幻像十藝)였다.
그것은 무학의 차원을 뛰어넘는 공포와 저주, 그자체였다.
화우성은 환상십예를 읽어내려가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소름끼치는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인간이 대자연의 일부분으로 완벽하게 동화되어...대자연의 정령들을 불러내어 이토록 끔
찍한 천지개벽을 일으킬 수 있다니...이것은 무학이 아니라 파괴의 저주일 뿐이다!"
그것이 화우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여섯 번째 방에서 화우성을 기다린 사람은 한 명의 청수한 용모에 중년인이었다.
그는 궁중악관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무릎 위에는 손바닥만한 금(琴)이 올려져 있었다.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금은 눈부신 오색찬란한 서기를 뿌리고 있었다.
"정말 귀엽고 예쁜 금(琴)이군. 세상에 이렇게 작고 예쁜 금이 있다니..."
화우성은 빙긋 웃으며 금을 집어들었다. 금은 매우 작아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러다 문득,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군? ...보통 금은 열두 줄인데...이것은 줄이 하나뿐이잖은가?"
금에는 줄이 하나밖에 없었다.
화우성은 손가락 끝으로 금줄을 툭! 튕겼다.
허나, 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더니...이것은 장난감이로군."
화우성은 실망서린 얼굴로 금 옆에 있던 한 장의 서찰을 집어 들었다.

<본제는 천음성제(天音聲帝)로 지황씨의 황궁대악관을 지냈다.
지황씨는 모든 면에 뛰어났으나 ...음률에 관해서는 오히려 나를 능가하실 정도로 뛰어나신 분이
셨다.
그 분은...적(笛)...대금(大金)...북(鼓)...슬(瑟) 등...현악기, 타악기를 가리시지 않고 악성(樂聖)의 경
지에 이르신 분이셨다.
황감한 말이나... 나는 그분을 지존으로 존경했으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예인으로서 그분을 적수로
생각했다.
그분은 음률을 좋아하시는지라, 틈틈이 나의 처소에 납시어서는 아악을 듣곤 하셨는데 본제를 비
롯한 문하생들은 그분의 높은 음감을 만족시켜드릴 수가 없었다.
때문에, 나의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모두 본제의 책임이었기 때문이
었다.
결국...나는 지황의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궁대학관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황궁을 나와...구름을 벗삼아 천하를 떠돈 지 십 년... 나는 대자연이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듣고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나는 깨달은 것이다. 음 중에서 가장 지고한 음은... 인간이 조작해 발생하는 음이 아니
라... 바로 대자연의 순수한 원음이었음을...
그후...나는 대자연에서 느낀 것으로 천지조화풍운음(天地造化風雲音)이란 하나의 음을 창출해 다
시 황궁으로 들어가 지황씨 앞에서 연주를 했다.
연주시각은 약 삼각여의 짧은 시간이었다. 허나, 나의 연주를 들으신 지황께서는 무려 칠주야 동
안이나, 그 자리에서 황홀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나는 드디어 음으로써 그분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 때의 기쁨이란...
허나,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 생겼다. 나의 연주를 들으신 지황께서는 정사는 뒤로하고 나의 처
소에서 살다시피하시며 음률에 심취하신 것이었다.
그로인해서 나는 또다시 황궁을 나와야 했다. 예인에게는 천하보다는 음률이 중요하나...지황께서
는 천하를 더 중히 위하셔야 할 제왕이셨기 때문이다.>

<천음조화경(天音造化經)>

<대저... 음률이란 높낮이가 있고 리듬감이 있는 소리를 말한다.
허나, 진정한 음률은 희노애락의 감정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 이치를 능히 깨달으면 감정이 있는
어떤 동물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이 경지를 만상제음의 경지라 일컬으며...흔히 말하는 악성(樂聖)의 경지다.
만상제음의 경지에 이르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을 마음먹은대로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
본제는 황궁을 나오기 전 벌써 만상제음(萬象制音)의 경지를 이루었고...지황씨 또한 그러했다.
내가 황궁을 나와 깨우친 것은 바로 음으로 천지조화를 일으키는 천지조화풍음의 경지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음으로써 천지조화를 일으킬 수 있다니...?

천지조화풍음...
그것은 간단히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었다. 허나, 그 세 가지 음 속에는 천하의 모든 음이 총망라
되어 담겨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은 천음성제가 남긴 작은 소금(小琴)인 금벽취금(金碧翠琴)에 의해 연주할 수 있었다.
이로써, 화우성은 음공의 대조종이 된 것이었다.


화우성은 일곱 번째 방으로 통하는 조그만 미로를 걷고 있었다.
(이십오 일이 흘렀다. 그동안 중원엔 별일이 없는지...)
그는 일곱 번째 방에 발걸음을 들여놓았다.
"앗!"
그는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눈부신 보광(寶光)이 그의 망막을 강
력하게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손을 치운 그의 두눈이 휘둥그래지며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굉장하군!"
천하에 존재하는 보물이란 보물은 모두 끌어 모아두었는가?
산호(珊瑚)...비취(翡翠)...묘안석(猫眼石)...금강석(金剛石:다이아몬드)...파라(坡羅)...마노(瑪瑙) 등등...
실로, 인세에 존재하는 온갖 보물들이 방안을 가득 메운 채 수십 무더기로 산처럼 가득히 쌓여
있지 않는가?
눈부신 보기는 보물더미 속에서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 중에 한 무더기만 가져도 천하제일의 갑부가 되겠군."
화우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무심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보물더미를 걸어가고 있는 화우성의 눈은 기이할 정도로 무
심했다.
그는 본래 재물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 보물더미를 보고 놀란 것은 인간이 새로운
경이를 느꼈을 때 느끼는 그런 놀라움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쩌면 화우성은 세상에서 가장 욕심이 없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 점이 바로 화우성이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인간인지도 몰랐다.
육순 가량 되었을까?
거대한 체격에 살집이 푸짐한 노인이었다.
허나, 노인의 손은 기이할 정도로 가늘고 섬세했다. 이런 손은 하룻밤 사이에 수만금을 주무를 수
있는 대상인들이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손이었다.
노인의 무릎 위에도 역시 하나의 철궤가 놓여져 있었다.
(...?)
동전(銅錢)과 밀지...
철궤가 열리자 나타난 것은 바로 그것들이었다.
동전은 매우 낡고 찌그러진 고대 동전으로 어린아이들에게 거져 준다 해도 받지 않을 형편없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기이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어찌보면 물의 흐름같기도 했고...또 어찌보
면 산세를 새겨 놓은 것 같은 기이한 문양이었다.
화우성의 눈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알 수 없는 일이군. 이곳에는 값을 메길 수 없을 정도로 값비싼 보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이 노인은 이 동전을 끔찍이 아껴 이 철궤 안에 보관해 놓았으니?"
그것은 누가 보아도 기이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나직이 고개를 흔들며 옆에 있는 낡은 고서로 눈길을 돌렸다.

<만보대천서(万寶大天書)>

책의 겉표지에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화우성은 가볍게 웃으며 책을 펼쳐 들었다.
"만보대천서라... 이름을 보아하니...부자가 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같군."
만보대천서는 상계(商界)에 전설적인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천상제군(天商帝君)의 모든 것이 담겨
져 있는 비서였다.

천상제군!

이천칠백여 년 전...
그는 한 닢의 동전으로 대륙천하를 백 개 사고도 남을 엄청난 부를 이룩하였으며, 상인들이 필수
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주판을 이용한 구장산학(九章算學)을 최초로 창안하고 집대성한 인물이었
다.
화우성이 만보대천서의 겉장을 넘겼을 때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라질... 이제 네놈은 싫든 좋든 고금천하를 통틀어 가장 돈이 많은 위대한 부자가 되었다.>

[훗! 고금천하에 가장 돈이 많은 위대한 부자라... 괜찮은 말이기는 하나 내게는 별로 흥미가 없는
말이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빙긋이 웃었다.

<돈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에 도덕군자입네 하는 놈들은 청렴한 안빈낙도를 최고 이상향처럼 목에 힘주어 말하고 있지
만은... 사실은 돈을 벌고 싶어도 별 수 없는 게으른 놈들의 자기변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똑같이 한세상 살다가 가는 일회용 인생인데... 누구는 고래등 같은 저택에서 최고급
의 가구에 둘러싸여 팔등신으로 늘씬하게 빠진 계집종이 끓여다 주는 차를 마시며 호화롭고 편안
한 생활을 즐기는데, 어떤 놈은 당장 끼니를 끓일 양식이 없어, 마누라의 등살에 못 이겨 바가지
를 들고 추운 겨울날 남의 집앞을 서성인다면...
아무리 성인군자라 할지라도 체통에 먹칠을 하고... 위신에 금이 가는 일이 아니겠느냐?
돈이 있으면 수많은 번거롭고 잡다한 일을 피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그만큼 자기 시간을 절
약할 수도 있고 육체적인 피로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못난 놈들은 돈이면 다냐고 외쳐대지만... 사실 돈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살 수는 없어
도... 백분의 구십구는 살 수가 있다.
크녠... 살같이 야들야들하고... 늘씬하게 빠진 어린 계집첩을 백 명 정도는 순식간에 데리고 있는
이점도 있다.
뿐인가?
그 계집들에게... 황금 백 냥만 안겨 주어 봐라! 당장에 콧소리를 내며 스스로 옷을 벗고 내게 달
려들어 내게 극락에 이를 수 있는 최선의 봉사(?)를 기꺼이 할 테니까...
사실, 내게는 백 명 가량의 첩이 있었다. 그로인해 골치를 썩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두 돈이
많았기 때문이다.>

천상제군은 처음부터 돈의 위력(?)에 대해 새삼 강조를 하고 있었다.

<본제는 돈이 많은 사람이기는 하나 돈에 미친 돈벌레는 지극히 증오하는 사람이다.
만일 네가 이곳까지 오면서 한 가지라도 손을 댔다면 그 즉시 이곳이 모두 무너져 너를 지옥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실로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만일 화우성이 호기심에서라도 이곳의 보물을 만졌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사란 새옹지마인지도 모른다. 눈앞의 조그만 이익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다가는 자
기 파멸에 이르고 마는...

<이곳에 있는 보물들은 쓸 만한 것이기는 해도... 본제가 갖고 있는 진정한 보물에 비한다면 하등
의 쓸모도 없는 쓰레기같은 것들에 불과하다.
본제의 진실한 재산은 다른 곳에 숨겨 논 것이다. 그곳은 동전(銅錢)에 새겨 놓았다.
크녠, 그 보잘것 없어 보이는 동전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보물인 것이다.>

화우성은 감탄했다.
(이 동전에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그러고 보니... 동전에 새겨져 있는 문양은 바로 한 곳을 가리
키는 지도였군!)
그는 동전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 동전의 이름은 제왕천보전(帝王天寶錢)이다.>

만보대천서의 뒷부분은 기문진법과 의술에 관한 것이 언급되 있었다.
천상제군은 비단 돈 버는 데만 귀재가 아니라, 기문진법과 토목기관지학, 그리고 의술에도 신화경
에 접어든 특이한 인물이었다.
그는 같은 시대의 인물인 천기자(天奇子)와 함께, 천하쌍기(天下雙奇)라고 불렸던 일물이기도 했
다. 천기자는 기문진학에 전설적인 문파인 귀곡문(鬼谷門)의 조사였다.
읽어 나가는 동안 화우성의 안색은 수십 번이나 뒤바뀌고 있었다.
(이럴 수가? 이분의 기문진학과 의술은 가히 신경에 도달해 있군. 이처럼 오묘하고 신묘한 내용
이 적혀있다니...)

화우성이 일곱 번째 방에서 머문 것은 오 일이었다.


미로(迷路)를 따라 여덟 번째 방으로 가고 있는 화우성은 미간을 좁힌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
다.
(벽군누님은 이 벽력궁 안에 모두 열 명의 십대천왕(十大天皇)의 안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십대천왕!

(나는 이제껏 이곳에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다. 헌데... 아직도 얻어야 할 무엇이
또 남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가 이제까지 이곳에서 얻은 것은 천하만학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술과 철학의 경제에 든... 온갖 무공과 학문...
심지어는 살인술과 기환술, 그리고 기문진학과 의술까지 완벽하게 익히지 않았던가? 정사마의 모
든 만학만공을 남김없이 익힌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그가 익혀야 할 것이 남아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세 가지씩이나...?
그러는 순간, 그는 벌써 여덟전째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화우성의 동공에 언뜻 이채가 스쳤다.
(한 자루에의 검에서 이토록 지독한 예기가? 가히 천상살의 경제에 이른 지독한 예기다.)
그는 뼛속까지 예리한 면도로 조각조각 후벼내는 듯한 지독한 예기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
것은 화우성이 그가 이제껏 느꼈던 어느 것보다도 무서운 예기였다.

츠으...츠으...!
방안은 온통 희뿌연 운무가 귀기스럽게 흘려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가공할
예기는 바로 운무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었다.
(저 운무 안에 무엇이 숨어 있기에 이토록 예기를 뿜어댄다는 말인가?)
화우성은 내공을 돋우어 예기에 대항하는 한편, 두 눈에 극대화시켜 운무 한가운데를 꿰뚫어 보
았다.
곤룡포를 걸친 위맹한 체구의 노인이었다.
노인의 전신에서는 만승지존의 제왕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산악같은 기우가 해일처럼 서
려 있었다. 그 기우는 하도 극강해 화우성은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위축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
다.
검(劍)!
노인의 무릎에는 한 자루 백색신검이 횡으로 길게 놓여져 있었는데, 운무는 바로 그곳에서 일고
있었다.

화우성의 눈에 돌연 엄청난 경악의 빛이 스쳤다.
(검무(劒霧)...검예가 극상중에 이르면 검끝에서 검광이 발출되고...그 경지를 넘어서면 검명이 인
다. 한데...검에서 검무가 피어오르다니..이것은 검도 최고의 경지인 천검무진의 경지가 아닌가?)

천검무진(天劒霧盡)!
검도사상 가장 위대한 천의무봉한 경지로 검으로 천지조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지를 일컬음이
다.
검에서 이는 안개는 우주의 혼돈을 일으키고... 그 운무 안에 갇힌 것은 시검자의 뜻에 따라 생사
가 결정된다는 전설적인 검의 최고경지!
천검무진은 검인이 상상해낸 꿈의 경지일 뿐 아직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이천 년 전
검황이라 불렸던 파천검황(破天劍皇)도 검성의 단계인 검명만을 일으켰을 뿐이다.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곳에서 검의 최고최후의 전설인 천검무진의 경지를
대하다니!)
화우성의 전신이 새차게 떨렸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무사는 승리했을 때보다도 위대한 강자를 보았을 때 더 큰 희열을 느낀다. 화
우성은 지금 그런 위대한 감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곤룡포의 노인의 발아래에는 이 때까지 그가 보아왔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철궤가 놓여
져 있었다.
화우성은 떨리는 손으로 철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 그대가 본제의 글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불사무적제일인이 되었다는 얘기, 연자를 환영
한다.>

서찰에서 느껴지는 것은 웅혼한 제왕의 기상이었다.

<본제는 검신(劒神)이다.
본래 인황씨(人皇氏)의 형이 본좌이다. 인황은 나와 둘째인 묵검황자(墨劒皇子)에 이어 셋째 동생
이었으나, 가히 제왕의 재목이라 할 수 있을만큼 출중한 재목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순수(純粹)한 용족(龍族)이었으되 나는 부친께서 인간의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았으
니 완전한 용족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로다.
나는 쌍둥이였는데 다행히 셋째가 출중한 재목이었으므로 우리 두 형제는 은근히 그 아이에게 황
위를 물려 줄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오천 년 동안 비밀의 장막에 가려져 있던 비사가 한 영웅에 의해 서서히 밝혀지고 있는 순간이었
다.
화우성은 언뜻 감탄의 빛을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쩐지 처음 대했을 때, 기우가 하늘과 같다고 생각했더니 이분은 바로 용족의 피를 이은 후
예셨군.)
서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방랑 오 년...
본제는 도가의 모든 경전과 이론을 깨우쳐 신선의 경지는 못 되었어도 제법 바람과 구름을 부를
수 있는 조화지경에 이르렀고...
둘째 묵검황자도 검에 관한한 본제와 엇비슷한 수준에 달통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본제는 뜻밖의 엄청난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둘째인 쌍둥이 동생이 돌
연, 비무 끝에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어찌 이보다 슬플 수 있
다는 말이오?>

감정이 매우 격앙된 듯 서찰에 이어져 있는 글씨는 그 부분에 이르러 매우 흐트러져 있었다.
검신은 둘째를 자신 이상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처음에 본제는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둘째는 검에 있어서 이미 천하제일인이란 명호를 듣고
있었다.
헌데, 그런 둘째를 대체 누가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본제는 만사를 뒤로 미루고 곧 진상규명에 나섰다. 단순한 복수라고 하기 보다는 황가의 위신이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꼭 일 년 만에 본제는 한 가지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지옥검제(地獄劒帝)...
그는 세상에 알려진 지 삼 년밖에는 안 되는 인물이었으나 그동안 검의 절정고수 일천 명을 차례
로 꺽은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둘째를 죽인 흉수였던 것이다.
본제는 지옥검제가 있다는 낭아평(狼牙坪)으로 달려갔다.
본제는 검에 있어서는 문외한이었으나, 도가선공만큼은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지옥검제와 겨루어 보고 사실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낭아평은 하늘과 땅이 만들어 낸 가장 지험한 대지! 본제는 무수한 난관을 헤친 다음에 가까스로
그곳에 당도할 수 있었다.
헌데 본제가 그곳에 당도했을 때 실로 뜻하지 않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수십만 평에 달하는 낭아평의 들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체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잔혹한 광경을 본 것이었다.
시신의 숫자는 적게 잡아도 십만...
낭아평은 온통 짙은 피냄새로 구역질을 일으켰고 까마귀떼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인(二人)이 무서운 살기를 뿌리며 대치하고 있었다.
최후의 이 인(二人)... 그들의 모습으로 보아서 한 사람은 본제가 찾고 있던 지옥검제가 분명했으
나, 다른 한 사람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검신,
그가 낭아평에서 목격한 상황은 대충 이러한 것이었다.
지옥검제와 예의 신비인은 낭아평의 한가운데서 무서운 살기를 뿌리며 대치하면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순간, 검신은 즉시 심상치 않은 무엇이 있음을 느끼고 몸을 숨긴채 그들의 말을 엿듣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 모든 이야기를 자세히 엿들을 수 없어 그들이 논쟁하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었으나
가끔 대화 속에,

---진정한 마종(魔宗)!

그런 말이 자주 들리는 것으로 보아 마의 종주권을 둘러싼 혈전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 땅에 최초의 마의 문을 연 사람은... 천독마신 나공후였는데, 또 달리 마
종을 주장하고 나선 인물이 있다는 것은?
그는 긴장감을 느껴 더욱 숨을 죽인 채 그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 이상의 것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곧 고함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치열한 혈
전을 벌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 순간, 검신는 가슴이 터지도록 놀라야만 했으니... 지옥검제와 신비인이 쓰는 무공이 인
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들이 아닌가?
일각도 안 되 주위의 일백여 산봉우리가 깍여 평지로 변했다. 그것은 인간의 대결이라고 보기보
다는 신들의 싸움같은 엄청난 광경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묵검황자의 무공은 그 들중 일인의 십초지적도 안 되어보였다.
검신은 비로소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놀라움에 비례하여 궁금증도 높았다. 두 사람이 펼치고 있는 무공은 이제까지 세상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엄청난 무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지옥검제와 또 다른 신비인의 진정한 정체와 무의 원류는 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곧 그 자리를 피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나서봤자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 두사람의 진정한 정체와 존재를 세상에 알려 그로인해 벌어질 혈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천운이 닿지 않았음인가? 그는 한순간의 실수로 그들의 눈에 발각되었고 곧 그들의 협공을
받고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싸움이 벌어졌다. 헌데, 다른 무공은 그런데로 평수를 이루었으나... 그 둘이 펼치는 합격검공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불과 십이 초 만에 그는 사지가 걸레쪽처럼 찢겨져 죽음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할 수 없이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기분심현도이체(移氣分心玄道移體)!

그가 알고 있는 도가선공의 최후의 비전기공으로, 자신의 영혼을 육신으로부터 분리시켜 완전한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신비기공이었다.
허나, 그 시간은 불과 일각... 그 때까지 그들이 자신의 주위에 머무르고 있다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극히 위험부담이 높은 무공이었다.
왜냐하면 영혼이 일각 이내 본신에 돌아가지 않으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헌데, 하늘이 도왔음인가?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한 후 두 사람은 곧 그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사
라져 버렸으니... 그는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법으로 다시 환생한 뒤,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 검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여타의 기공으로는 도저히 지옥검제와 신비인의 검공을 당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결정적으로 패한 이유도 바로 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도결(劍道訣)>

검신이 남긴 천하에서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검경이었다.

<본제는 지옥검제와 신비인에게 일격을 당해 참패를 당하고 돌아온후, 장장, 이십 년 동안이나,
검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검은 처음 무도에 든 무사가 맨처음 잡아보는 병기이자, 최후로 잡아보는 병기이다. 그놈은 가히
십도(十道)의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검이 만병지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검이 가지고 있는 천만 가
지 조화의 특성 때문이다.
도가 쪼개고... 창이 찌르고... 극이 후리고 벨 수 있는 특성을 검은 모두 지니고 있다.
본제는 평생 삼천여 가지의 검법을 창안했다.
호수가의 달그림자를 벨 수 있는 태극월예...
바다의 거대한 해일에서 무극일도해를...
사막의 불타는 태양을 보고 천지를 태울 수 있는 화검창천리를..
빛의 속도를 열 배나 능가하는 대초극일섬을...
허나, 나는 말년에 모든 검리가 단 하나로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극만리검!
천하의 모든 검리를 종합해 장검만을 추출해서 창안해낸 가장 완벽한 검법인 것이다.
가장 빠르며 강하고 무거운 검법...
단언컨데 천하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검법도 이 천극만리검을 능가하지 못하리라!>

천극만리검(千極萬里劒)!

일단 시전되면 천검무진의 검무가 일만 장을 뒤덮어 죽음의 공간으로 화한다.
막을 수도, 피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검법! 상대방은 검법을 보는 순간 위대한 감동을 느
끼며 황홀한 표정으로 죽어갈 뿐이다.
가히 검신이 고금천하제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해도 좋을 검법... 헌데 검신의 다음 말은 화우성로
하여금 온통 경악으로 몰아 넣었으니...

<허나, 본제가 이제 죽음에 이르러 생각해 크게 깨달아보니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것은 진정한 검
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을 쓰지 않고 어떻게 검법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화우성의 눈에는 언뜻 이채가 서렸다. 검을 쓰지 않고 펼치는 검법도 존재한다는 말인
가? 그런 것이 과연 존재하다니...

<이기심검(以氣心劒)은 곧 마음의 검이다.
이 이기심검이야말로 모든 무학의 총아이며 으뜸이니... 일반 검으로 펼치는 검법이 검무를 발출
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으나, 이 이기심검은 마음에 따라 무한대로 발출시키며 닿는 것은 무엇이든
지 무우 썰 듯이 잘라 버리는 무서운 위력의 검법인 것이다.>

(이런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화우성은 불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구결에 따라 운용을 해보았다.
순간, 무지개가 피어오르는가?
돌연 그의 손에서 검의 형태를 한 일곱 색의 검강이 일 장 가량 발출되는 것이 아닌가?
(엇...!)
그는 언뜻 놀라며 가볍게 손을 횡으로 쓸었다. 순간,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삼 장 두께의 철벽이
너무나도 간단히 베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내공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검강이 일 장씩이나 발출되다니...!)
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화우성은 놀라는 한편 계속해서 익숙해지도록 반복했다. 그러자, 일곱 가지 빛깔의 검강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종내는 공기처럼 투명한 무색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외관상으로는 그토록 무서운 검강이 발출된다고는 도저히 느끼거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허나, 화우성은 감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검강이 무색으로 변하면 변할수록 검강의 위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도 벽이 저절로 종잇장처럼 찢어지며 갈라서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더구나, 반복해서 익숙해질수록 검강의 길이는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마음 먹은대로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천 장이든, 만 장이든... 무한대에 가까운 거리라도 검강을
발출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천하에 이토록 기이한 무공이 있다니... 무색의 검강! 상대방은 자신이 왜 죽는지 이유도 모르면
서 죽어가니, 이것이야말로 전설적인 무학의 경지인 뜻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형살인
(意形殺人)이 아닌가?)

의형살인!
뜻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무의 전설적인 경지가 그에 의해 나타나는 위대한 순간이었다.

이기심검!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보아왔던 그 어떤 무공보다도 환상적이며 무서운 무공이었다. 적어도 두
단계는 높은...
화우성은 또하나의 엄청난 힘을 보탠 것이었다.


일남일녀(一男一女)!
아홉 번째 방에서 화우성을 기다린 것은 호화로운 금의를 걸친 한 쌍의 중년인이었다.
우선, 봉황이 수놓여진 호화로운 궁장차림에 몸매가 뇌살적인 아름다운 중년미부였다.
붓으로 정성들여 그린 듯한 아름다운 옥용에 삼십대 여인만이 지닐 수 있는 특유의 풍만한 몸매
를 지닌 여인... 그녀는 너무도 아름다워 아직 여인을 모르는 화우성마저 은은히 가슴이 진탕되며
음욕이 일 지경이었다.
허나, 화우성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피가 말라 죽었을 것이다.

<본녀는 비봉천후(秘鳳天后)...
본래는 안남국(安南國)의 제이공주였으나 볼모로 잡혀와 열두 살때 처녀를 잃고 말았다.>

비봉천후의 운명은 한 편의 소설처럼 기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본래는 일국의 공주였으나, 전쟁에 지는 바람에 볼모로 잡혀 백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에게 집단
윤간을 당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열두 살... 한참 인생을 그리고... 보라빛 환상에 젖어 있을 나이였다.
허나,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만은 않았다. 뛰어난 미색 때문에 나이 많은 부장(副將)의 눈
에 띄어 강제로 첩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헌데, 그 부장의 마누라는 강짜가 센 여인이어서 그녀를 데리고 간 부장은 할 수 없이 자신의 시
위무관에게 그녀를 선물로 주어 버리고 말았다. 부장의 마누라는 은퇴한 대장군의 딸로써 부장이
출세를 하는 데 그녀의 입김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녀를 안게 된 행운의 시위무관은 매우 다정다감한 사람인지라 그녀를 끔찍이 위해 전장
에까지 남복을 입혀 변장시켜 데리고 다닐 정도였다.
그녀로서는 난생 처음 사랑의 행복을 느꼈다.
허나, 그 달콤했던 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남장여인이라는 것을 눈치
챈 시위무관의 동료 하나가 그녀의 미색에 반해 그녀의 남편을 몰래 죽이고 그녀를 겁탈한 것이
었다.
그날 밤... 그녀는 그 사내를 죽인 뒤, 오백 리나 달려 민가로 알몸인 채 도망쳐 나왔다.
밤인지라 가시에 긁혀 살갗이 찢어지고... 발바닥은 물러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것은 그 때까
지 곱게 자란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혹독한 고통이었다
그녀는 맹서했다. 세상의 모든 사내를 저주하며 처참하게 죽이기로...
그 후, 그녀는 한 기루(妓樓)에 몸을 담게 되었는데, 뛰어난 미색 탓인지 그녀의 단골손님이 너무
많아 그녀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사내들은 모두 자신의 육체에 사죽을 못 쓰며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큰 무기라는 사실을...
그녀는 날이 갈수록 아름다와졌기에 나중에는 그녀를 보기 위해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내
들도 많았다.
그녀가 있던 아홍춘이란 기루에는 무림인사들이 자주 왕래하는 기루로 그녀는 무림인사들을 많이
접할 수가 있었다.
육체를 미끼로 그녀를 찾아오는 수많은 무림인사들에게 무공을 익혔다. 나중에는 무공의 방대함
만을 따진다면 그녀를 따를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는 한편, 그녀는 고관대작들에게도 은근히 손을 뻗혀 그녀의 치마폭에 가두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잃어버린 안남국을 재건하여 자신이 여왕으로 앉고, 백성들은 모두 여인으로 하
는 여인왕국을 건설할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일은 그녀의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었다. 마침 변방을 정벌한 공으로 안남국의 왕으로 봉해져 그
곳으로 떠나는 도극광(屠克光)이란 대장군을 육체로 삼아 그의 첩이 된 것이었다.
안남국에 도착한 그녀는 맨처음 도극광의 정실을 독살한 다음 정식 부인으로 들어앉았다.
도극광도 눈치를 챈 것 같았으나, 그녀의 미색에 홀린 터라 오히려 잘됐다는 듯 추궁하지 않았다.
일 단계 성공한 그녀는 곧 사람을 은밀히 보내 중원천하의 불우한 여인들을 안남국으로 끌어들이
기 시작했다.
그녀의 뜻은 여인들에게 뜻밖에도 엄청난 반응을 일으켜 중원뿐만 아닌 대륙천하 각지에서 수많
은 여인이 안남국으로 몰려들었다.
거기서 자신을 얻은 그녀는 드디어 정사도중 도극광을 처참하게 살해한 후, 정식으로 안남국 여
왕에 등극하며 국호도 여인제국(女人帝國)이라 개칭했다.
당시, 중원조종은 변방의 이민족의 침략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던지라 그녀의 일을 알면서도 은
연중 묵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정식 여왕으로서 대우를 해주었던 것이다.
여인제국후는 불꽃같은 의지의 여인이면서, 동시에 희대의 색녀이자 사갈같이 독한 양면성을 지
닌 여인이었다.

<본후는 사내를 극히 증오한다. 늑대보다도 흉악한 사내들...
이 글을 읽는 그대 역시 천기로 사내라는 것을 알았기에 처음에는 그대를 죽일 계획을 꾸몄었다.
하지만 그대는 만인의 여자에게 등불이 될 사람...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봉금차(飛鳳金叉)를 남긴
다.>

(.....)
화우성은 비봉금차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금비녀는 한 쌍의 봉황이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었는데, 봉황의 날개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
은 오색영롱한 빛을 띄우는 태극화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과연 봉황의 머리 부분에는 뾰
죽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었다.
화우성은 그 부분을 눌렀다.
끼끼끼끼끼...
순간, 봉황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비봉금차에서 가공할 기음이 터져나오
면서 한 줄기 영롱한 빛을 띠운 봉황이 무섭게 폭사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그 빠르기는 실로 섬
전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파파파--- 팟!
한 쌍의 봉황은 닥치는대로 비행하며 박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회선하여 화우성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예리한 톱날의 날개를 편 봉황은 바로 비봉금차에 새겨져 있던 봉황의 조각이 아닌가?
화우성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가공할 병기다.)
비봉금차!
실로 무서운 병기였다. 화우성은 그 순간 너무 놀라 밀지를 바라보았는데, 밀지에는 이렇게 쓰여
져 있었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다.
그것의 초식 이름은 봉황십자탈(鳳凰十字奪)...
본후의 비봉금차로 펼치는 초식중에서 가장 초보적인 것이니까.>

지금 눈에 본 광경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인데 그것이 가장 기초적인 초식이라니...

유마법술신공(愉摩法術神功)!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불허하는 기공이었다. 전신이 한줌의 물처럼 부드러워지며 유를 근본으로
하여 전신에 창칼이 박혀도 목숨을 잃기는커녕 상처조차 입지 않는다.
이것은 여인들의 특성인 유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 실로 믿겨지지 않는 괴이한 무공이었다.

천살빙(天煞氷)!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기운이 얼음이라 했던가?
이것이 바로 그러했다. 일단 펼쳐지면 주위 오 리 이내는 모두 꽁공 얼어붙은 죽음의 얼음지대로
화한다.
천하에 전해져 내려오는 빙강의 기원이자 으뜸!
비봉천후는 이 천살빙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나는 전설적인 빙공의 절대자인 북해빙궁의 빙태자(氷太子)에게 몸을 세 번 허락하고 이
천살빙을 얻었다.
그때, 나는 빙태자를 따라가 북해빙궁에 성수로 일컫는 천음한빙담에 장장 천 일 간이나 몸을 담
근 후, 이 천살강을 터득하였다.
빙태자는 빙공의 최고경지인 빙인(氷人)이었으나, 본후는 후에 그를 이 천살강으로 꽁꽁 얼려 죽
였다. 얼음덩어리로 부서져 죽던 그의 꼴이란...
그 후, 본후는 이 천살빙으로 적수를 만나보지 못했다.
본후는 이 천살빙을 극도로 연성하기 위해 십 세 미만의 여아, 천 명의 음혈을 복용해 고금을 통
틀어 가장 위대하고 강한 빙인지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일천 명의 여아의 한이 담겨 있는 저주의 빙공... 천살빙!
그것은 소름 끼치도록 잔혹한 방법에 의해서 탄생된 것이었다.

화우성은 허공을 응시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비봉금차에 천살빙... 이것의 위력은 이제까지 내가 익혔던 무공에 비한다면 확실히 한 단계 떨어
지는 것이다. 허나... 나름대로 그 효능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화우성은 이미 비봉천후가 남긴 무공을 여타의 무공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익힌 것이
다.
(헌데...이분은 대체 누구이기에 사내를 끔찍이도 증오하는 비봉천후와 한 방에서 같이 앉아 있는
것일까?)
그 순간, 그의 눈은 비봉천후와 나란히 앉아 있는 육순 가량의 노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노인의 형색은 기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노인은 제왕들이나 입을 수 있는 호화로운 곤룡포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 옷에 새겨진 문양은 용
이 아니라, 오색찬란한 온갖 꽃들이었다.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 옷을 화복(花服)이라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풍류공자들이 즐겨입는 것으로,
학문이 높은 선비들은 점잖지 못하다고 해 극히 꺼려하는 것이었다.
노인을 바라보고 있던 화우성은 피식 실소를 흘렸다. 옷에 비해 노인의 용모는 너무도 보잘것 없
었기 때문이었다.
흡사 솥밑바닥처럼 시커먼 검버섯이 피부 가득이 피어 있었고, 두꺼비처럼 짧고 굵은 보기 흉한
목에,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툭 튀어나온 눈두덩이...
뿐인가?
하마처럼 큰 머리통에 쭉 찢어진 메기 입...
실로, 변변하게 생긴 곳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위인이었다.
( ... 옷이 아깝군!)
그는 가볍게 혀를 차며 노인의 무릅 위에 놓여져 있는 서찰을 집어들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놈이다. 본좌를 만났기 때문이다.
본좌는 화황(花皇)이라 한다. 이제부터 인생의 낙중에 가장 큰 즐거움인 꽃을 따는 위대한 광세절
학을 네게 전수해 줄 것이다.>

(꽃을 따는 광세절학이라고?)
그 순간, 그의 얼굴은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니...
화황,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눈앞의 이 기괴하게 생긴 노인이야말로 고금천하에서 가장 여인을 많
이 취한 색의 대조종인 것이다. 그의 말대로... 꽃을 가장 많이 따 본...

<천하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처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는 일이다.
아해를 어른으로, 게다가 극락이 부럽지 않은 황홀한 운우지락이 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
솔직히 나는 이 곳에 본좌를 제외한 아홉명의 괴물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곳의 괴물들은 자칭 일세를 풍미한 무림제왕들이라고 큰소리 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는 쑥맥들이 아니냐?
그에 반해서 본좌는 천하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인들을 정복했으니, 본좌이야말로 진정한 황제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지...!>

화황은 처음부터 자신을 칭찬하느냐고 열을 올리고 있었다.

<본좌는 네게 흉칙한 병기를 들고 무식하게 싸움질이나 하는 것 따위는 전수하지 않겠다.
대신, 본좌는 너의 그것을 가공할 병기로 만들어 천하의 계집들이 너만 보면 오금을 저리게할 위
대한 성(性)의 미학을 전수해 줄 것이다.>

성의 미학!

화우성은 화황을 바라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 ! 대체 이런 얼굴로 어떻게 화황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는지 궁금하군.)

<네가 보다시피 본좌의 얼굴은 별로 내세울만한 것은 못된다.
허나, 그대가 본좌처럼 안생긴 얼굴이라고 해도 기가 죽을것은 없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계집들처럼 단순하고 어리석은 동물들은 다시 없지... 다루는 방법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 다음엔 아주 쉽지... 우히히... 꾹 눌러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럼 지금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성의 미학을 전수해 주겠다. 귀를 씻고 경청해 주기 바란다.

화황은 그는 드디어 자칭 위대한 성의 미학에 대해서 강론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 자신이 못생겼다고 해서 미리부터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계집들은 잘 생긴 사내를 선호하는 반면, 못생기고 어리숙해 보이는 사내에게도 지극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화황의 성의 미학, 첫마디 부터가 괴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둘째는 아름다운 꽃일수록 꺽기 쉬운 법이라는 것이다.
대개의 사내들은 아리따운 미녀들만 보면 주눅이 들어 우물쭈물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못난 짓이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스스로 꺽여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크며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그런 여인일
수록 스스로 꺽여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크며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그런 여인일수록 오히려 사내들이 접근하기를 꺼려해 외로운 것이다.
셋째는 이도 저도 다 자신이 없을 때는 여인의 동정심에라도 호소하라는 것이다.
계집들은 모두 모성애에 약한 동물들... 처음에는 애틋한 동정심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 그것은
쉽게 애정으로 바뀌는 법이다.
허나, 이 방법은 사내의 위신에 금이 가는 방법이기에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허나, 효과는 매
우 높은 편이다.
넷째는 사랑이 시작되었을 때 일이다.
여인은 강한 사내를 원하지만... 반면에 부드러움을 좋아한다. 무조건 계집의 몸속에 멧돼지처럼
돌격해 고장난 마차처럼 삐그덕거리다가 쉽게 일을 끝내는 것은 여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형이다.
명심해야 할 것이다.

화황은 그 외에도 무려 열 가지나 기초적인 언급을 했다.
그 뒤로는 수많은 방중비술이 자세한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져 있었다.
그 숫자는 무려 일만 가지... 가히 천하에 존재하는 온갖 방중비술이 들어 있었다.
그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을 몇 가지 추린다면...
하룻밤 사이에 무려 일천 명의 여인을 함께 상대하며 채음보양을 할 수 있는 방법인...극락채음보
양술...
불과 셋을 셀 동안에 여인을 황홀경으로 끌어올리는 운우선술...
밀교의 승려들이 해탈의 한 방법으로 쓰고있는 밀교환희술 등...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
이 있었다.
허나, 그 중에서 역시 가장 흥미로운 한 가지를 고르라면 바로 이것이었다.

천혼미광소(天魂美狂笑)!

한번의 미소로 여인으로 하여금 걷잡을 수 없는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마력의 미소! 어떤 여인이
든 천혼미광소를 대하는 순간부터 영원히 그 사람만을 사랑하게 된다.
화황은 확실히 색의 대조종이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것 중 단 한 가지만 익힌다면
천하의 어떤 여인이든지 그의 손을 벗어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본좌는 이미 비봉천후를 행치웠다. 그 계집은 이제 본좌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이 글을 적고 있는데도 자꾸 치근덕거리고 있다. 사랑을 해준 지 한 시진도 지니
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사내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비봉천후! 그녀마저 화황의 손에 꺽여졌다니... 이쯤하면 그의 방중비술
이 대충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화우성은 서찰을 내려 놓으면서 입가에 쓸쓸한 미소를 떠올렸다.
( ! 모두 흉칙한 것들 뿐이군. 이중에서 익힐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화황의 절기(?)를 단 한 가지도 익히지 않기로 결심했다.
허나, 어쩌랴! 그의 뇌리 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모든 것이 기억돼 있었음을... 그의
오성은 가히 하늘이라 할 만큼 뛰어난 것이라,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휘... 이... 잉...!
바람,
바람이 불려나...!
대륙천하를 온통 보라빛 청춘으로 물들일 꽃바람이...
휘... 이... 잉...!


화우성이 운명에 의해 십왕방에 들어선 지도 두 달이 흘렀다.

<십대천왕>

살인지존 등백!
천독마신!
철사전황!
일보천황!
사환대제!
천음성제!
천상제군!
검신!
비봉천후!
화황!

열 명의 하늘들...
이들은 각기 한 가지씩 절기를 절대적으로 연성했으며, 그 한 가지씩의 절기만으로도 각기 천하
무적의 무림제왕으로 군림하던 절대자들이었다.
헌데, 그들의 절기가 남김없이 한 사람에게 전수된 것이다. 삼천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이룩된 대
기연은 천하무림사상 최고최강의 절대영웅을 잉태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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