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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천왕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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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987 회 작성일 24-02-13 08: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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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벽력궁(霹靂宮)의 기연(奇緣)...


파치치치!
살황마독존의 쌍수에서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녹강이 화우성을 녹여 버릴 듯이 날아들었다.
"하핫! 네놈의 목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너는 죽는다!"
하지만 화우성은 너무도 태연히 대소를 터뜨렸다.
화우성이 하는 말을 들으며 살황마독존은 이유도 없이 섬뜩했다. 평범한 말투였으나 너는 죽는다
는 말이 그의 귀에 들리는 순간 그것은 너무도 기정사실처럼 느껴진 것이다.
바로 그때 화우성의 신형이 둥실 떠올랐다.
"천뢰마강(天雷魔剛)!"
콰자자작!
"크륵!"
엄청난 뇌강이 작렬하더니 녹광을 산산히 부수고, 살황마독존은 가슴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십
장 밖에 나동그라졌다.
"크륵! 이, 이럴 수가!"
살황마독존이 불신 어린 눈빛으로 화우성을 주시했다.
"네놈...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원수! 죽엇!"
이때 좌측에서 뾰족한 교갈이 터지며 한 소녀가 두 손을 쫙 펼쳤다.
파츠츠츠츳!
"헉! 이것은 파라만독강! 크아악!"
빠지직!
화우성에게 신경을 쏟고 있던 살황마독존은 피하고 어쩌고 할 여지도 없이 그대로 소녀가 펼친
일격에 격중되고 말았다.
츠츠츠!
소녀가 내친 벽록색의 섬광에 격중된 살황마독존은 삽시에 온몸이 한 줌 독수로 화했다.
일격에 살황마독존을 격살한 흑의소녀는 표독스런 눈길로 녹아드는 살황마독존의 시신을 주시했
다.
"네놈은 내가 나이가 어려 모르리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네놈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
머니를 능욕한 후 죽이는 것을 똑똑히 보았으니까!"
흑의소녀, 즉 독종염후 흑진아는 가공할 살광을 발하며 녹아드는 살황마독존의 시신을 발로 마구
짓이겼다.
"네놈은 독종삼로에게 쫓겨 중원으로 도망왔다! 나를 데리고 언젠가는 오라버니를 협박할 포로로
이용하기 위해 말이다."
그녀는 미친 듯이 분노했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한참 동안 분노하던 흑진아는 신형을 날려
화우성의 품에 파고들었다.
"흑! 우성!"
헌데, 화우성은 흑진아를 안고 그대로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흑진아는 대경하고 말았다.
"성! 어디 다치셨어요?"
화우성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
"난 또..."
흑진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눈을 흘겼다.
여자,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여자인 것인지도 모른다. 원수를 갚은 비장한 마당에서도 쓰러진 낭
군의 몸을 먼저 걱정하는...!
허나 화우성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있었다.
(내력을 팔성 이상 끌어올리면 엄청난 기운이 혈맥을 강타하고 있다! 그것은 날이 갈수록 더 강
해지고 있다!)
화우성은 신형을 일으키며 그늘진 시선으로 천공을 올려다 보았다.
(무엇인가? 나의 몸 속에 잠자고 있는 이 거대한 힘은... 그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내 몸은 폭발하
고 만다!)
이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그는 팔성 이상의 내공은 사용할 수 없단 말인가?
(일을 서둘러야겠군!)
스윽!
화우성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은 채 흑진아의 교구를 번쩍 들고는 신형을 날렸다. 천공(天空)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얼굴처럼 잔뜩 찌푸려 있었다.


핏빛 석양은 산하(山河)를 온통 피칠하듯 혈광(血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한 명의 흑의인이 석양을 등진 채 대평원의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사위는 야풍(夜風)에 시달리
는 오 척의 갈대숲이 비명을 토하고 석양은 파리한 흑의인의 미안을 핏빛으로 염색시키고 있다.
츠으!
무형중에 대평원을 짓누르는 엄청난 기도는 금방이라도 석양을 두 조각낼 듯 폭풍의 예기를 담고
있었다. 검은 흑룡(黑龍)이 가로지른 묵의가 일순 꿈틀했고 터져나오는 장중한 천룡후...
"이제 왔다! 중원은 피의 보복을 받으리라!"
파팟!
흑의청년의 눈가로 가공할 묵광이 폭출하자 일백 장 이내의 황금빛 갈대숲은 부서지듯 녹아내리
는 것이 아닌가? 이미 땅거죽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배신자 살황마독존! 놈은 나 천년대독종 흑룡의 손에 죽는다! 아울러 놈을 받아들인 혈각도 박살
낼 것이다!"
우우우웅!
암흑천룡이 노했는가? 대기마저도 전율에 몸을 떨고 천공은 무너질 듯 굉음을 토한다.

천년대독종(千年大毒宗) 흑룡(黑龍)!

바로 그였다.
독문의 신화이자, 천년독종가인 독왕세가의 당대 젊은 가주로써 동정호를 일수에 독호로 만들 수
있으며, 금강석일지라도 한줌 독수로 녹아내리게 한다는 독문사상 최강의 대독호!
천년대독종 흑룡의 성목(星目)은 깊이 침잠되어 있었다. 허나 그 깊숙한 내면에 깃들어 있는 분노
의 화염은 천지를 태워 버릴 듯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눈은 석양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노을이 만드는 하나의 영상을 쫓고 있었다. 그것은
토끼처럼 귀여운 눈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의 영상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이나 그지없이 매끄러웠고 하염없이 귀여운 소녀였다.
"진아! 나의 동생이여..."
씹어뱉을 듯한 허탈한 음성, 그 내면에 실린 처절한 고독감과 분노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오른
다.
"네가 어디 있는지 나는 꼭 찾고야 말리라! 네게 터럭 끝 하나 건드린 놈이 있다면..."
천년대독종 흑룡의 눈가로 잔혹한 살소가 흘렀다.
"흐흐흐!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죽이고 죽여 그 심장을 씹으리라! 그 삼족을 멸하고 그 십대 조
상의 뼈를 부술 것이다!"
지옥의 죽음의 사자까지도 진저리를 칠 만큼 엄청난 저주로 이 순간 천년대독종 흑룡은 타오르는
복수의 화신이었고, 절대의 심판자였다.
"하하! 이것 큰일났군! 나는 이미 진아를 수십 번도 더 건드렸는데..."
한데 바로 그때 한 소리 낭랑한 음성이 대평원을 가로질렀다.
"....!"
천년대독종 흑룡의 신형이 파르르 떨렸다.
(백 장 밖... 아무리 분노했다고는 하나 타인이 이토록 가까이 오도록 몰랐다니!)
스윽!
흑룡은 천천히 신형을 돌렸다. 그런 그의 시야로 석양의 노을을 가르며 날아내리는 일남일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물론 그들은 화우성과 흑진아였다.
"처음 뵙겠소이다. 형님!"
화우성은 장난스레 미소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흑룡의 시선은 화우성의 가슴에 박혀 떨어질 줄을 몰랐다.
파르르 떨리는 검미, 화우성의 가슴에는 흑진아의 교구가 다소곳이 안겨 있었다.
"너는!"
흑룡의 동공이 가벼운 파장을 일으키며 그의 신형이 앞으로 나아갔다.
흑진아도 조용히 화우성의 품을 빠져나왔다.
"....!"
일순, 두 사람의 눈길이 얽히고 그것은 곧 뜨거운 격정과 확신의 빛으로 백열되었다.
"진아! 너...너는 바로 진아구나!"
"오빠!"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리는 두 남녀의 신형이 일순 터져오르는 희열에 떨린다.
"진아!"
"오빠!"
흑룡과 흑진아는 서로를 힘껏 부등켜안았다.
"오빠... 흑!"
여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이슬방울이 굴렀다.
"너였느냐? 진정 나의 동생이었더냐?"
사나이의 목은 메어 있었다. 십 년 만에 해후한 오누이의 감격적인 상봉이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었느냐?"
잠시 후, 흑룡은 누이동생의 눈물을 닦아내리며 물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소녀는 살황마독존의 손에 이끌려 혈각에 바쳐졌어요."
"살황마독존! 그 찢어죽일 놈이!"
파츳!
인간의 안광으로 사람이 죽는다면 이 순간 살황마독존은 영혼마저도 바스러져 흩날렸으리라. 흑
진아는 그런 흑룡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놈은 이미 죽었어요!"
"놈이 죽었단 말이냐? 누가?"
"저 분이 소녀 대신 놈을 잡아 주었어요."
흑진아는 고개를 돌리며 화우성을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흑룡은 화우성의 전신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크다! 조용한 대해(大海)와도 같은 기도... 그 안엔 대폭풍이 이제되어 있다! 엄청난 거력(巨力)
이!)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 흑룡의 눈에 비친 화우성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중원에 저 만한 인물이 있었던가?)
놀람은 화우성의 마음에서도 일고 있었다.
(과연 천년대독종! 독왕세가의 지존으로서 손색이 없다! 능히 환우대천좌를 넘볼 수 있는 거인(巨
人)이다!)
문득, 흑룡은 정신을 추스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오라버니는 저 분은 소녀의.... 아이 참!"
흑진아는 말을 잊지 못하고 옥용을 붉히며 고개를 파묻었다.
"....?"
흑진아의 행동에 어리둥절하던 흑룡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화우성의 얼굴을 주시했다.
(범상치 않은 인물... 녀석! 용(龍)을, 그것도 천룡(天龍)을 물어왔군!)
그의 얼굴도 언뜻 따사로운 미소가 감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내 얼굴을 굳히며 화우성
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강한 자를 좋아하네! 자네가 나의 일초를 받아낸다면 나의 가족으로 인정하겠네!"
(후후! 나의 사문을 알려는 것이로군!)
화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안심하시고 진아를 맡기실 수 있을 것입니다!"
흑룡은 통쾌한 듯 대소를 터뜨리며 흑진아를 떼어냈다. 이어 화우성과 흑룡은 일 장의 거리를 두
고 마주섰다.
(으음! 틈이 없다니!)
흑룡은 내심 탄성을 삼키며 천천히 쌍수(雙手)를 뻗었다.
(중원에 나온 이후 최강의 적수로군!)
화우성도 경각심을 떠올리며 전신의 내공을 끌어 올렸다.
(팔성... 그 이상은 안 되니 어려운 승부로군!)
스윽!
화우성은 어두운 신색으로 신형을 허공 중에 떠올렸다.
"조심하게? 독령지존수(毒靈至尊手)!"
콰우우우!
순간 흑룡의 쌍장에서 엄청난 묵독강류가 해일처럼 폭출했다. 그것은 스치기만 해도 전신이 녹아
드는 가공할 독강이었다.
우웅!
화우성은 허공 중에서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고 쌍수는 찬란한 금광을 발하여 십 배가 커지고 있
었다.
"금령천강인(金靈天剛印)!"
쩌쩌쩡!
금광과 묵강이 한 가운데서 충돌하자 두 가지 기류는 서로 비껴나며 천공으로 밀려 올라갔다.
"으음!"
똑같이 일 보씩 물러서는 두 사람,
"하핫! 훌륭하네! 본좌의 구성공력으로 펼친 독령지존수강을 감당하다니!"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흑룡은 흡족한 듯 대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구성의 공격으로 화우성을 공격했으나 화우성은 불과 팔성의 공력으로 맞섰음을 흑룡은
몰랐다. 만일, 그가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떤 표정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가세! 오늘은... 자네와 만배를 들겠네!"
흑룡은 화우성을 재촉하며 연신 즐거워했다.
"하핫! 좋습니다! 술이라면 소제도 지지 않습니다!"
화우성도 호쾌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사내들은 모두 저럴까?)
흑진아는 정겨운 눈길로 두 사나이를 돌아보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십 년 만에 만난 오라버니
는 동생이 끌어 온 용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못 말릴 사람들이야."
흑진아는 고개를 저으며 신형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유난히 가벼웠다.
천년대독종 흑룡이라 불리우는 젊은 독중지존과 화우성의 만남! 그것은 이미 예견된 운명의 만남
이었다.


독왕세가(毒王世家)-!

그 위세는 실로 막강, 바로 그것이었다.
천년독종세가로 군림해온 독왕세가의 군림거보는 중원을 거침없이 잠식해 들고 있었다.
일만무적독종군단은 동천(東天)으로 진군하며 광서(廣西)를 완전 초토화시켜 장악했고, 귀주(貴州)
는 일천파라독령강시대에 의해 독혈로 잠식되었다.
그 뒤로 천년대독종 흑룡이 이끄는 일천군림독존시위대와 오만의 독종독인이 바야흐로 사천(四
川)으로의 진군을 서두르고 있었다.
과연 그 엄청난 대독천풍(大毒天風)을 뉘라서 막을손가?


<독종별부(毒宗別府)...>

귀주의 접경을 넘어 사천의 남쪽에 위치한 방두산(方斗山)에 세워진 독왕세가의 전초기지다. 독종
별부는 그 방두산의 기슭에 위치한 천험의 절곡(絶谷)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천년대독종 패흑룡의 거소인 독종별부에는 긴장감과 전투의욕에 휩싸여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오히려 훈훈한 감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한 여인에 기인한 때문이었다.
독종염후 흑진아로 인한 따스함이었다.

독종별부의 심처에 위치한 화원.
운치있는 정자가 가호의 가운데 그린 듯이 세워져 있고 지금 삼 인이 정좌해 있었다. 바로 화우
성과 흑룡, 흑진아 오누이였는데 지금 그들의 안색은 밝게 빛나보였다.
"고맙네! 배신자를 처치해 주고 거기에 진아마저 거두어 주었음은 내가 평생 갚아도 모자랄 대은
일세!"
흑룡은 화우성을 직시하며 감사의 말을 보냈다.
"하핫! 형님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오히려 진아를 소제에게 주시어 감사한 것은 오히
려 소제입니다."
화우성은 호탕한 대소를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가?"
흑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머금었다.
문득, 그는 옆에 다소곳이 앉아 과일을 깎고 있는 흑진아를 일별하고는 화우성을 돌아다보았다.
"내게 진아는 하나뿐인 혈육일세. 본좌는 결혼의 예물로 자네의 부탁을 하나 들어 주겠네!"
그의 말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닙니다! 소제는..."
화우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문을 열었으나 그의 말은 이내 흑룡에 의해 잘리우고 말았다.
"자네가 목적이 있어 왔음을 알고 있네!"
그의 말에는 확신이 배여 있었다.
"....!"
화우성은 내심 뜨끔했으나 그것을 겉으룡은 빙긋 미소를 떠올렸다.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세! 자네는 하나뿐인 본좌의 매제가 아닌가?"
그의 재촉에 화우성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음!"
흑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기다리자 화우성은 안색을 진지하게 굳히며 천천히 힘주어 말했다.
"혈왕마가와 암흑마련을 깨고 지옥대전(地獄大戰)을 종식시키는 데 동참해 주십시오!"
"지옥대전의 종식!"
화우성의 말을 들은 흑룡의 눈가로 경악의 기색이 스쳤다.
"그렇습니다!"
화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흑룡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혈왕마가와 신비혈가! 거기에 천불세가가 가세한 제이의 암흑마련과 혈각을 박살낸다면 지옥대
전은 영원히 종식될 것입니다!"
"무리야!"
문득, 흑룡은 시선을 올려 창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젓었다. 그런 그의 안색은 무겁게 그늘져 있었
다.
"본림의 세력이 막강한 것은 사실이네!"
절대의 힘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보다 더 강한 초절대의 벽이 가로막고 있을 때 우러나오는 공허
한 음성이었다. 지금 흑룡의 말투는 그러했다.
"신비혈가나 천불세가, 사왕세가 중의 하나라면 능히 상대할 수 있네! 허나, 본림의 힘은 혈왕마
가와는 상대가 되질 않네!"
"....!"
"천왕팔가라고 한데 묶어 부르나 사실 혈왕마가(血王魔家)와 제왕천가(帝王天家)는 나머지 육가
중 두 개 세력이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일세!"
"아닙니다! 형님!"
화우성은 완곡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어, 흑룡을 주시하는 그의 눈가로 한 줄기 미소가 흘렀다.
"이미 해왕세가와 도왕세가가 우리편입니다! 형님만 거들어 주신다면 충분한 승산이 있습니다!"
"막북과 사해의 힘까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리며 경악과 불신의 눈으로 화우성을 직시하는 흑룡의 시선으로 화우성의 영
상은 점점 크게 확산되고 있었다.
(거인(巨人)이로군! 이제서야 그것을 깨닫다니...)
천년대독종 흑룡!
천년독문의 신화 속에 탄생된 독문지존인 그의 마음은 한없이 착잡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또 하
나의 거대한 벽(壁)이 가로막고 있음을 느낀 탓일까?
"....!"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깔리기 시작했고 흑룡은 무엇인가 결심을 굳힌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
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일일 뿐이었다.
"좋네!"
흑룡은 묵직한 어조로 정적을 깨뜨렸다.
"본좌는 천하군림의 야망이 있었네! 비록 지옥마류가 당금의 천하를 휩쓸고 있으나 그것을 두려
워하지는 않네! 허나..."
파츳!
화우성을 직시하는 그의 동공 깊숙이 한줄기 번개같은 섬전이 스쳤 지나갔으나 그 빛은 야망과
함께 사그러들고 있었다.
"자네 때문이라도 군림의 야망을 버리겠네! 후후!"
흑룡의 입꼬리로 자조의 빛이 맺혔다.
"자네는 혈육일지라도 야망에 혼(魂)을 판 자는 용서치 않을 사람이지!"
"원 형님두!"
화우성은 빙그레 미소를 떠올렸다.
"훗! 애초에 혈각은 박살내려고 마음먹었던 것이고 혈왕마가와의 일전(一戰)에 선봉이 되어 줌
세!"
흑룡은 싱긋 웃음을 발하며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화우성은 흑룡의 우수(右手)를 굳게 잡으며 사의를 표했다.

(남자들의 세계는 알 수 없지만 멋있는 것 같아!)
흑진아는 화사한 미소를 머금으며 봉목을 반짝였다. 그녀의 눈가로 비친 두 영웅의 결합은 한 폭
의 그림같이 아름다왔다.
독문(毒門)의 신화(神話) 천년대독종 흑룡이 군림의 포기하고 척사의 길을 걷기로 한 이 날은 가
장 아름답게 빛날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화우성은 미친 듯이 치달려갔다.
"미친놈! 아무리 그래도 벽군 누님을 잊고 있다니!"
그렇다. 독왕세가의 일을 마무리지은 것은 좋았지만 우연히 날아가는 새(鳥)를 보면서 그는 불현
듯 한 여인을 떠올렸던 것이다.
-뇌붕신녀(雷鵬神女) 뇌벽군!

바로 그의 첫여인인 뇌붕신녀였다.

---신첩은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당신과 정사를 나누어야만 생명을 유지하옵니다.

뇌벽군은 벽력궁(霹靂宮)을 떠나는 화우성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빌어먹을! 그 일 년의 기한은 내일이다! 내일이란 말이다!"
쐐애액!
화우성은 미친 듯이 질풍비뢰(疾風飛雷)의 신법을 최고로 펼친 채 날아가고 있었다. 한 번 펼치면
일각(一刻)에 구백리를 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연후엔 반나절은 쉬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무림에 나와서도 화우성은 그 신법을 펼
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우성은 끊임없이 도약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천축의 천뢰대광야(天雷大廣野)에 도착한 것은 독종별부에서 떠난 뒤 정확히 하루만
의 일이었다.
"뇌붕(雷鵬)-!"
천뢰대광야의 초입에 이른 화우성은 벼락이 연신 명멸하는 허공에 대고 악을 쓰듯 외쳤다.
꾸워어어어!
그러자 수많은 벼락의 가닥을 토해내는 먹장구름 속에서 웅혼한 새울음 소리와 함께 거대한 신조
가 그를 향해 내리꽂혔다. 물론 그놈은 뇌붕(雷鵬)이었다.
"빨리! 빨리 벽력궁으로 가자!"
화우성은 뇌붕이 지면까지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기충소(御氣沖宵)의 신법으로 단번
에 오십여 장을 수직으로 치솟아 뇌붕의 등판으로 올라섰다.
꾸워어어!
주인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뇌붕은 화우성이 자신의 등에 내려서자마자 급반등하여 먹장구름 속
으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제발...!)
빛살같이 날아가는 뇌붕의 등에 올라탄 화우성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 중에서도 가장 빠르다는 뇌붕이건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놈의 날아가
는 속도도 화우성에게는 굼뱅이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벽력궁(霹靂宮)은 전과 다름없이 고적했다.
"성(星)...! 이제 반각 후면 벽군은 한 줌 재가 되어 생애를 마감할 수밖에 없어요. 첩신이 죽는 것
은 아쉽지 않지만...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여인은 긴 청발로 알몸을 감은 채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바로 그 때였다.
"죽긴 왜 죽어?"
다급한 사내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당신...!"
봉목을 크게 치뜨며 돌아본 여인은 분명 보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면서 마구 옷을 벗어던지고
있는 사내를...!
일 년여 사이에 몰라보도록 숙성해진 어린 정인은 이미 하체의 일부를 방망이처럼 세우고 있었
다.
"우성! 흐윽!"
반갑게 맞이해 가던 여인은 강인한 사내의 두 팔에 가슴이 조여지는 것을 느끼면서 신음을 토했
다.
"말은 나중에 하자구요. 변명도 나중에 하구요. 야단도 나중에 맞을게요."
이미 벌거숭이가 된 화우성은 그대로 뇌벽군의 풍만한 여체를 찍어누르며 그녀의 하체를 가리고
있는 청발을 서둘러 걷어치웠다.
여인도 미끈한 두 다리를 활짝 정인을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그녀의 깊디깊은 계곡도 이미 뜨거
운 이슬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한 번의 일별로 여체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화우성은 그대로 자신의 무쇠방망이
같이 팽창된 물건을 뇌벽군의 몸속 깊숙이 밀어넣었다.
"하아! 우성...!"
몸안으로 깊숙이 밀려드는 뜨거운 불기둥의 존재를 느끼며 여체는 뱀처럼 사내를 휘감았다.
터질 듯한 관능으로 부풀어 오른 그 여체를 누르고 사내는 거칠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마치 일
년의 공백을 단번에 메워주기라도 할 듯이...!


화우성은 자신의 눈앞에 활짝 열려 있는 철각(鐵閣)을 바라보았다. 문 안은 어두워 볼 수가 없었
으나 그는 그 속에 어떤 숙명같은 것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느껴진다. 나를 부르는 숙명같은 영혼의 목소리가 저 안에서 느껴진다. 내가 가야할 길이고
나만이 갈 수 있는 길이라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뚜벅 뚜벅...
화우성은 철각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안배된 운명을 취하기 위
해서...
이 순간, 삼천 년 무림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했던 한 위대한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
간이었다.
또한, 삼천 년 무림이 잉태시킨 가장 위대한 벽력의 신화, 그 비밀이 껍질 벗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십왕방(十王房)>

뇌붕신녀 뇌벽군의 말에 의하면 그곳으로 인간 중 가장 강한 열 명이 들어갔다고 했다.
십왕방 중 첫 번째는 온통 쇠로 만들어진 방(鐵房)이었다. 비릿한 강철내음이 코끝을 찔러오는 무
쇠방... 화우성이 맨 처음 들어간 곳은 그곳이었다.
그리고 그는 들어가자마자 피부가 예리한 면도에 찢겨지는 강렬한 살기에 전신을 움츠려야 했다
...
(지...지독하군. 이런 지독한 살기가 천지간에 존재하다니!)
그는 살기가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다.
눈처럼 흰 문삼을 걸친 청수한 용모의 노인이었다. 언뜻 보아서는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대학자
풍의 노인이었다.
자신의 쌈지돈을 털어 손자의 엿을 사주는 자상함이 엿보이는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노인이었다.
노인은 화우성과 삼 장쯤 떨어져 떨어진 포단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놀랍게
도 뼈를 에이는 듯한 살기는 바로 노인에게서 풍기고 있었다.
노인의 무릎 위에는 백송을 깎아 만든 서궤가 올려져 있었는데,
화우성은 이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두 눈 가득 놀라움을 떠올렸다.
(시체가 이토록 엄청난 살기를 뿌리다니!)
노인은 살아있는 사람같아 보였지만 눈동자가 굳어져 있었다. 하나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노인은 살아있는 사람과 똑같았다.
화우성도 노인의 눈을 보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허나 그 정도라면 화우성이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인이 입고 있는 문삼의 깃이 좁은 것을 보니 저것은 삼천 년 전 삼황오제 시절의 고대복장인
데 이 노인은 삼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하나도 부패되자 않은 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니...혹시
신선이란 말인가?)

일반적으로 무공이 극강한 고수 중 금강불괴를 이룬 사람은 죽더라도 비교적 시신을 원형대로 남
길 수 있다.
소림의 고승 달마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는 입적한 지 삼십 년 간이나 본신을 보존했다고 한다.
한데, 삼천 년이라니...?
화우성은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보고 놀라다니?"
그는 걸어가 백의노인이 안고 있는 서궤를 집으며 빙긋 웃었다.
"이것을 본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화우성의 마력적인 웃음은 살기로 충만하던 실내를 금새 환하게 바꿔 놓았다.
덜컹!
서궤(書櫃) 안엔 백의 장삼 한 벌과 흰 가죽장갑 그리고 한 권의 서책이 들려 있었다.
"마침 잘됐군. 옷이 없어서 불편했었는데..."
그가 입고 왔던 옷은 더 이상 입을 수 없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해 뇌벽군을 보자 옷을 벗었는데
마음만이 급해 걸리적거리는지라 아예 옷을 찢어발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궤 안에 들어 있던 옷을 입었다.
화우성은 노인의 시신에 대해 빙긋 웃었다.
"하여간 고맙소이다!"
화우성은 노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다.
화우성은 책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말이 책이지 천향목이란 썩지 않는 나무를 얇게 깎아서 여러
장 붙인 것이었다.
(이 천향목(天香木)은 기이한 향을 내 벌레가 침범하는 것을 방지해 책이 없던 삼황오제시절에
사용했다고 고서에 적혀 있었는데... 정말 이 노인이 삼천 년 전 인물이란 말인가?)
그 때였다.
툭!
돌연 책 속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내리지 않는가?
땅에 떨어진 것은 죽편을 이어붙여 두루마리 형식으로 만들은 것이었다. 그 두루마리에는 장문의
글이 적혀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인언(引言)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본좌 살인지존(殺人至尊)이 후인에게 남긴다.>

지금 이 글을 누군가 읽었다면 이 자리에서 목구멍으로 심장을 토하며 염왕 앞으로 달려갔으리
라!

-살인지존 등백(登伯)!

삼천 년 전 이 이름은 살인지존이라는 이름보다는 살왕(殺王)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름이
었다...
죽음의 대부!
살인미학의 창시자!
황홀한 죽음의 예술사!
죽음에 관한한 더할 수 없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죽음의 황제가 바로 그인 것이다.
실제로 그는 삼천 년 전 가장 지대한 문의 대학자이자... 비록 소국(小國)이기는 하나 황제의 지위
를 누렸던 특이한 인물이기도 했다.
황제가 살수라니...

<나라를 건국할 때에는 난세가 야기되는 법!
삼황(三皇) 중의 천황(天皇)이신 복희씨(伏羲氏)께서 천명(天命)을 받들고 중원에 복스런 나라를
건국하시고자 하실 때에 각지에서 수많은 군마효웅들이 암중으로 그분을 시해하고자 했다.
그중, 암흑천황(暗黑天皇)이 이끄는 암흑마국(暗黑魔國)과 지옥혈계(地獄血界)라는 혈왕의 무리들
이 가장 강했다.

-암흑천황의 암흑마국!
-지옥혈계!

하나 나는 그 사실을 미리 감지하고 본좌가 이끄는 살인성(殺人城)의 수하들과 함께 그들을 사전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혈전...일 년!
그동안 우리 손에 죽은 자가 십이만!
그중 본좌의 손에 죽은 자가 삼만!
그래서 본좌의 옷은 항상 피로 젖었고 세인들은 나를 살왕이라 불렀다.>

(그... 그럴 수가? 어찌 한 인간의 힘으로 단 일 년 만에 삼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는 말인
가?)
화우성은 글을 읽어 내려가며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다.

<허나 본좌는 천황씨께서 피를 싫어하시는 착한 분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형님을 대할
때면 항상 백의를 갈아입고 그분을 만났다.
그분은 내가 그분을 대신해 악마의 무리들을 격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어찌 아셨는지 그분께서는 어느날 나를 부르시어 인간에게 참혹한 고통을 주는 살인은 천
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크게 꾸짖으셨다.
뿐만 아니라, 내가 더 이상 살인을 한다면 차라리 그분 스스로가 악마의 무리들의 손에 목숨을
끊고 난세를 종식시키겠다고 말씀하셨다. 천황씨께선 능히 그러고도 남으실 어진 분이셨다.
본좌는 난생 처음으로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그분을 설득했다.>

---저도 살인이 좋아서 하는 것만은 아니옵니다. 악마의 무리들은 필히 제거해야 될 무리들이며,
그들이 멸망해야 천황의 치세가 환우천하에 골고루 미칠 수가 있다고...

허나, 그분께서는 끝내 고개를 흔드셨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인간에게 참혹한 고통을 주는 살인은
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착하기만 한 천황씨시여...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악마의 무리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살인을 한다는 사실을 그분
의 귀에 은밀히 흘려보낸 것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분에게 오랫동안 애원한 끝에 한 가지 타협점을 찾았다. 살인을 하되 상대방에게 고
통없이 살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도 내가 살인을 하는 이유에 정의로운 뜻이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그것까지 말리시지는
않았다.
대신 그런 완벽한 살인미예의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약속
을 하셨다.
또한 어떠한 이유의 살인이든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차후에는 무분별한 살인을 금하라
는 엄명을 하셨다.
그분과 약속한 이후 일 년...
드디어 나는 나의 살인술을 완벽한 살인미예로 끌어올려 승화시켰으니, 나는 이것에 살인미학이
라는 이름을 붙였다.>

(살인미예...살인미학?)

<연자여...
고통과 피를 흘리는 살인은 동물적인 무식한 것이나... 본좌의 살인미학은 진정 아름다움 그자체
인 예술인 것이다.
이제 연자는 고금최강의 살인예술사가 되어 천하의 온갖 추함과 악한 것들을 죽여주기 바란다.
살인지존 서.>

장문의 서찰에 내용은 거기서 끝났다.
화우성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살인이 고통없이 황홀한 것이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로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논리였다.
화우성은 묵묵히 서궤 안에서 꺼낸 책을 바라보았다.

<살인예술서(殺人藝術書)>

책의 겉표지에는 고대갑골문자로 그렇게 써 있었다. 허나, 그는 이미 천하만문에 통달해 있어 갑
골문자는 물론 이국의 그 어떤 고문도 해독할 수 있었다.
화우성은 책의 겉장을 넘겼다.

<제일장---천지십학(天地十學)!
살인미학은 술(術)이 아니라 학문이다!
예(藝)와 미(美)와 학(學)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어야 살인미학을 이해할 수 있다.>

<...무릇 인체를 소우주라 부른다.
인체는 일 년을 뜻하는 삼백육십사 개의 경락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혈맥을 주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치명적인 사혈(死穴)이기도 한다.
이곳은 어린아이가 살짝 누르기만 해도 죽일 수 있다. 허나, 극강의 고수라면 전신을 무쇠처럼 단
단하게 단련해 이 사혈을 없앨 수가 있다.
그러나 하늘도 대낮에 빛을 잃는 일식과 월식이 있듯이 인체도 시간에 따라 치명적인 사혈을 하
나씩 남기기 마련이다.
미시(未時)에는 용천혈...신시(宸時)에는 중극혈...유시(紐時)에는 백회혈... 이 때에는 머리 위에 빗
방울이 한 방울 떨어져도 즉사를 면치 못한다.
살인전문가들인 살인사들은 이것을 십이지간 오행사타혈(五行死打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예의 경지에 든 살인사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실제로 살인사들에게 있어
서 이것은 기초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에 불과하다.
허나, 무공이 더욱 고강한 초극강 고수는 이 혈맥의 흐름마저도 완벽하게 끓을 수 있는데,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인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다. 사혈이 완전히 없어진 금강불괴지체는 완벽한 불
사지체라고 할 수 있다.
허나 이것은 일반 강호인들이 보는 차원이고, 미의 경지에 든 살인미사들에게는 목숨을 내논 허
수아비와 다름이 없다.
금강불괴의 약점은 인체 중에 칠성을 뜻하는 일곱 개의 구멍인 칠공... 즉, 입구멍 콧구멍... 눈구
멍... 귓구멍... 구멍 등이다. 이것은 점액질로 뒤덮여 있어 단련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이곳을 단련할 경우 오감이 마비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은 대부분 공격을 당하는 뇌에 직접적으로 치명상을 주기 때문에 단 일격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그러기에 특수한 살인미예를 익힌 살인미사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표적이 되는 것이다.
허나, 이곳마저 완벽하게 단련하는 신에 가까운 고수들이 있으니 이들은 초극강고수들이라 부른
다. 그들은 오감을 일정시간 동안 마비시키는 대신에 육감 또는 칠감으로 상황에 대처해 나간다.
사실상 이들을 죽이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이런 인물들은 천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며... 만
약 나타난다면 일세를 풍미질타할 무림제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신체를 살수계의 살인미학자들은 보통금강부동지체(金剛不動之體)라고 부르는데
선천적으로 금강부동신체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고 다만 천강무골 이상의 신의 축복받은 신
체를 타고난 사람들이 하늘의 기연으로 엄청난 영약과 함께 피나는 각고의 수련끝이라야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연자여...
놀랍게도 본좌의 최대적수인 암흑천황과 지옥혈계의 지옥광제(地獄狂帝)가 바로 부동지체였으니
그들은 놀랍게도 수천 종류의 영약과 백 년의 폐관으로 금강부동지체를 이룬 것이었다. 본좌는
거대한 벽에 부딪힘과 동시에 깊은 절망에 휩싸였다.
살인의 제왕이라는 본좌가 죽일 수 없는 인물이 본좌와 한 하늘 아래서 숨을 쉬고 있다니... 대세
를 떠나 본좌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본좌는 절치부심하고 금강부도지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좌는 그 때마다 허망한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대체 금강부동지체와 같은 완벽한 신
체를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했다.
본좌는 절망 끝에 모든 인연을 끊고 불가에 귀의했다. 본좌는 침식을 잃었다. 수염이 바닥에 끌리
고 손톱은 한 자나 길었으며 때에 절은 얼굴은 본좌조차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실로 종교적인 구도심과 끈질긴 인이 없다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세월이었다.>

화우성은 그 순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쟁하는 거인의 모습을 보았다.

<기나긴 삼 년의 고통스런 세월이었지만 본좌는 웃을 수가 있었다.
금강부동지체를 죽일 수 있는 완벽한 살인미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럴 수가, 금강부동지체같은 완벽한 신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화우성은 무한한 감동과 함께 살인지존에 대한 경외지심마저 느꼈다.
살인미학의 무서움 때문이 아니라, 한 인간 승리자에 대한 감동이었다.
더욱이 그토록 통천가공할 살인마학이 살생을 금하고 있는 불문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야릇한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제기랄...>

무슨 이유에선지 살인지존은 다음 순간 욕설을 적어 놓았다. 화우성은 당혹해 하면서도 마저 읽
어내려갔다.

<정작 내가 그놈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완성하니까 그놈들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춰 버린 것
이다.
허나, 나의 자존심을 걸고 이룩한 살인미학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그 방법을 남긴다.
연자여... 이제 그대는 모든 천하인의 목숨을 관장하는 생사판관이 된 것이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마음대로 죽여라! 그것이 설혹 황제일지라도...>

자신이 이룩한 것을 써먹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끝의 내용은 짙은 피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땅은 하늘과는 달리 모든 것을 덮어주며 감춰준다.
살인전문가가 최고 단계인 살인미학사가 되려면 상대방이 자신을 느끼지 못해야 완벽한 살인미학
을 펼칠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호흡과 인체의 박동음을 없애는 것은 극히 기초적인 것이고, 자신의 존재를 완
전히 무로 돌려 상대방의 코앞에 있다고 해도 상대방이 전혀 느낄 수 없게 해야 한다.
칠감까지 연성한 초극강고수는 상대방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너는 네가 죽어야 될 상대에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다.
너는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네 자신 스스로도 느낄 수 없도록 잠재의식 속에 살의를 감추어
라!
오직 단 한순간의 자기 암시로 자신을 깨워 단 한순간의 일법으로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 그 순
간 시간의 영역을 무형화시키는 초미분대의 순간이어야 한다.
명심해라! 단 한 번에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죽는 것은 네 자신이라는 것을...>

그 밑으로 자세한 구결과 함께 수련 방법이 적혀 있었다.

인체의 맥박과 호흡을 끊을 수 있는 맥박제동술...
지하 일천 장 깊숙이 숨어들 수 있는 유수잠행술...
단 일순간에 허공에 몸을 숨길 수 있는 흐르는 별이 허공에 숨는다는 낙성잠허...
마음만 먹으면 물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천년입수술...
끓는 불속에 칠주야를 견디는 화화인형체득술 등등...
실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비학이 적혀 있었다.
화우성은 살인미학에 담긴 천지십학을 읽어가면서 엄청난 두려움과 함께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천지십학(天地十學)-!
그것은 예이고 술이고 학문이었다. 허나, 궁극적으로 하나로 합일시키면 미(美)였다.
열 개의 아름다움은 저주스러운 죽음의 공포였다. 단언컨대..., 이 죽음의 미학에서 벗어날 자, 아
무도 없으리라!>

"놀랍다. 인간이 살인을 하는 방법이 이토록 아름답고 예술적이며 심오한 학문적인 깊이와 체계
를 지니고 있다니..."
화우성은 마지막 살인미학의 책장을 덮으며 그렇게 탄식했다.
"이것은 내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예술이나 학문보다도 깊고 심오한 것이다."
화우성이 살인지존의 살인미학을 완벽하게 익힌 것은 불과 보름만이었다.
그동안 그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나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천지십학 중 인의 장(章)에는 무려
백 일 간을 굶고도 견딜 수 있는 비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우성은 그 것을 반나절 만에 완전히 익혔다. 살인지존은 그것을 익히는 데 무려 반 년이나 걸
렸는데 말이다.

<살인예술서(殺人藝術書>

화우성은 잠시 이 살인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문득 책을 찢기 시작했다.
부우욱!
"이 책은 너무도 무서운 내용을 담고 있다. 만일 악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천하는 피비다가 될 테
니 남겨둘 필요가 없다."


두 번째 방의 구조는 첫 번째 방과 같았으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인물은 달랐다.

일신에 껄끄러운 마의(麻衣)를 걸친 회의노인에게서 언뜻 느껴지는 것은 잿빛의 차가움이었다.
면도날같은 예리함과 억겁의 연륜을 이겨낸 강철거암과 같은 단단함...
진짜 강한 사람의 표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노인의 전신에서는 철갑과 같은
단단함과 함께 강철내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노인의 무릎 위에는 녹슬은 철궤가 한 짝 놓여져 있었다.

<본좌는 철사전황(鐵獅戰皇)으로 지황씨(地皇氏)의 호위무관으로 태생은 대막(大漠)이다.>

"놀랍군! 지황씨라면 달리 신농씨(神農氏)라 불리며 인간에게 불의 사용법을 처음 알린 신인이 아
닌가? 한데, 그의 호휘무관이라니?"

<본좌는 지황씨의 호휘무관이 되기 전에는 일개 낭인무사였다. 천성적으로 호승심이 강한 탓에
천하를 주유하며 강자를 찾아 비무하기를 좋아했었다.
주유천하 백이십 년... 본좌는 만 번을 싸워 만 번을 승리했다.
그러나 본좌는 고독했다. 상대자가 없는 절대자의 고독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
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때 본좌는 우연히 중원에 지황씨라는 초강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본좌는 기뻤다. 그래서 십만 리를 단숨에 달려 지황씨를 만나 비무를 청했다.
하나, 지황씨는 나의 비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럴수록 나는 그와 싸워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결국 나는 다짜고짜 그에게 공격을 했는데 결과는 너무나도 어이없는 나의 참패였다.
그분의 절대적인 뇌정열화공(雷霆烈火功)에 나의 사지가 엿가락처럼 녹아 버린 것이다.
헌데, 그분께서는 뇌공뿐만 아니라 의술과 장예에도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경에 도달
한 분이셨다. 그분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나를 하루만에 되살리셨다.
허나, 녹아 버린 나의 두 팔과 다리를 소생시킬 수 없었다. 그분은 고심 끝에 나의 사지를 지금과
같은 강철의수와 의족으로 바꿔 놓으셨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보다 배는 펄펄하고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 후, 나는 그분의 인품에 매료되어 그분의 호휘무관이 되기로 자청했다.
연자를 위해 본좌의 필생의 족적인 전투록을 여기 남긴다.>

-전투록(戰鬪錄)!

그것은 철궤 안에 담겨진 한 권의 책자였다. 철사전황이 만 번을 싸워 만 번을 이긴 비결이 담겨
진 책인 것이다.

<본좌는 고금을 통틀어 영세제일의 승부사라 자부한다.
비록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용족(龍族)인 그분께 패하기는 했으나, 그분
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절대전능의 신인... 인간중에 본좌를 꺾을 수 있는 인물은 후세에
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전투록은 비교적 간단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허나, 그 위력의 가공함이야말로 하늘을 떨게 만들
지경이었으니...

필승투(必勝鬪)!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

---최강의 승부사에게는 이등은 없다.
내가 죽이지 못하면 상대방이 나를 죽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가장 원시적인 야수의 생존철학과 흡사하다.
하지만 사나이라면 최강이어야만 한다.

일격투(一擊鬪)!
절정의 승부사는 단 한순간에 상대방을 쓰러뜨린다.
이것은 살인사들과 흡사하나...하찮은 살인사들의 잡기보다는 적어도 두 배는 차원이 높은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사들은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상대방을 쓰러뜨리지만, 승부사는 적과 아가 똑같은
조건하에서 승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부사는 대자연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
으로 이용해야 한다.
안개가 끼었을때...시각 기후 날씨...태양의 위치와 그림자의 방향...바람의 방향과 속도...
이것은 지극히 미세하나마 승부에 영향을 미치며 절정의 승부사에게 있어서 이것은 치명적인 약
점이 되기 때문이다.
허나, 절정의 승부사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극히 기초적인 것에 불과하다.
대자연을 이용하는 승부사들은 본좌의 시대에도 다섯 명이 넘었으니, 연자의 시대에는 더 많으리
라고 짐작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경지에 오르기가 쉽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백 년 이상의 혹독한 지옥
훈련을 거쳐야 쌓을 수가 있는데, 보통 이 경지를 천승사라 부른다.
천승사는 자신과 똑같은 내공과 무공수위를 지닌 일반 강호인을 단 일각 이내에 천 명을 죽일 수
있다.>

실로 경악할 일이 아닌가? 자신과 똑같은 무공수위의 인물들을 일각 안에 천 명을 죽일 수가 있
다니...

<천승사(千勝士)의 경지를 뛰어넘는 승부사 최고의 경지는 만승사(万勝士)라 부른다. 이것은 천승
사의 십 배! 일각 안에 만 명을 죽일 수 있는 경지다.
본좌는 한때 일갑자 이상의 고수 일만 명에게 협공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본좌는 일각 안에
구천구백 명을 죽이고 약간의 상처를 입었다.
허나, 지금의 본좌라면 완벽하게 해치울 자신이 있다.>

만승전투요결(万勝戰鬪要訣)!
만승사의 경지는 구도와 철학의 경지다.
백년면벽고승의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철저한 구도심과 살인미학사의 술과 예와 미와 학의
경지를 넘어선 철학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만승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셈이다. 그것은 고
독하고 외로운 길...자신을 이기는 극기의 길인 것이다.

십자폭풍살(十字暴風殺)!
이것은 전신의 잠력을 최대한 격발시켜 단 한순간에 십방으로 화살처럼 뻗어나가며 백 장 이내의
모든 것은 닿는 즉시 가루로 변하고 만다.

살인탄강(殺人彈剛)!
내가강기로 상대방의 강기를 되돌려 보낸다.
그 위력은 본래의 열 배로 상대방의 내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되돌아가는 위력도 강하다.

용음뇌벽권(龍音雷霹拳)!
허공, 일백 장을 격해 만근철암을 흔적도 없이 부숴 버린다. 더욱이 권경이 발출될 때는 용음이
발생하는데 이갑자 이하의 내공을 지닌 고수는 소리만으로도 내장이 파열돼 허공에 피를 뿌리며
죽어간다.
그 위력은 소림최강의 권법인 백보신권을 두 배 능가하는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그 밑으로도 일천 개의 비수를 일시에 허공에 발출해 칼의 비를 뿌린다는 천폭도우비(千爆刀雨
飛)...
허공에서 때리는 벼락을 이용해 사방 백 장을 폐허로 만든다는 철뇌강(鐵雷剛) 등등... 실로 상상
하기조차 두려운 패도지공들이 열 가지나 더 있었다.
철사전황이 남긴 전투록!
어찌보면 그것은 살인지존의 천지십학과도 흡사한 점이 많았다.
(무도의 시작과 끝은 하나...만류귀종...하나, 위력만을 따진다면 전투록은 적어도 천지십학을 두 단
계는 능가한다!)
화우성의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담담했다.
왜냐하면 철사전황이 남긴 전투록을 십성 연성했기 때문에... 몰랐을 때는 경이로운 것이나, 일단
알고 나면 그것은 극히 평범한 하나의 진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의 눈에 문득 이채가 피어올랐다.
(응! 이것은?)
철사전황이 남긴 전투록의 맨 뒷장의 책표지가 이상하게 두툼했던 것이다.
(무엇인가 숨겨져 있다!)
찌이이이익!
화우성은 책의 뒷표지를 찢었다. 그곳엔 양피지를 얇게 접어 만든 하나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허허... 그대는 욕심이 많은 인물이구나... 본좌의 마지막 재산까지 빼앗아가려 하다니...
허나, 할 수 없지... 이것이 운명이라면... 본좌의 마지막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궁의 비학
을 네게 남긴다.
이것은 염제께서 특별히 내게 전수해 주신 단 한 가지의 무학으로 본래 그 위력이 너무 가공하고
끔찍해 염제께서는 이것을 후인에게 전하지 말라 당부하셨으나... 너무나 아까워... 전투록의 뒷표
지에 숨겨 놓았던 것이다.
허나, 이제 이것이 그대에게 발각되었으니...이것은 하늘의 뜻..염제께서도 원망치 않으시리라!>

그것은 실로 기이한 운명이었다.
천지십학을 찢어 버렸던 화우성은 전투록마저 찢어 버리려고 책의 표지를 잡아다니다가 그것을
발견한 것이었으니...
서찰(書札)엔 천신이 하늘의 태양을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활이 없잖은가?"
그림...사람은 활을 쏘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으나, 정작 활은 들려져 있지 않았다.
"활과 화살도 없이 어떻게 태양을 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문득 그의 눈이 커졌다. 그는 본 것이다. 그림 밑에 적혀진 깨알같은 글씨를...

<우주에서 가장 강한 것은 사람의 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주에서 가장 약해 보이나, 기실 잠
재되 있는 그 힘은 우주 전체와 필적할 만한 것이다.
벽력궁(霹靂弓)은 바로 그 인체를 활로 삼고... 잠재된 본력을 화살로 삼는 천지제일패공이다.
그 위력은 본좌의 십자폭풍투강살의 열 배... 사방 일천 장이 새카맣게 불에 타 죽음의 대지로 변
하게 된다.

-화왕궁(火王弓)!

그것은 실로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패도궁법이었다.
불의 화살이 태양을 꿰뚫으니...하늘과 땅은 죽음의 어둠만이 존재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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