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23
페이지 정보
본문
제23장
대천마군단(大天魔軍團)의 결성
<마령지존청(魔靈至尊廳)...>
혈각의 수뇌부가 모두 운집해 있었다.
지옥이십사혈비, 아니 화우성에게 죽은 여섯을 제외하면 지옥십팔혈비는 여전히 혈색 휘장 앞에
두 줄로 늘어선 그들의 전면에는 거대한 원탁(圓卓)이 있고, 원탁 주위에는 수십 인의 좌정해 있
었다.
지옥십대혈작을 비롯한 지옥마천루(地獄魔天樓)의 루주인 혈천마라제(血天魔羅帝), 십대혈공(十大
血公), 사십팔지주(四十八地主)가 모두 참석했다.
장내에는 무거운 공기가 숨통을 조일 듯 번지고 있었다.
이때,
"부각주님이 듭시옵니다."
문 밖에서 웅후한 목소리가 들리자, 문이 열리며 화우성이 들어섰다.
순간, 지옥십대혈작들이 모두 기립했다.
"허허! 어서 오십시오!"
쌍뇌사혼자 북궁기가 흔쾌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허나, 화우성은 대꾸도 않고 두거운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지옥십대혈작 외에는 어느 누구도 화우성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란 간단하다. 지옥마천루가 화우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혈각의 창업공신인 이들은 혈
각 내에서도 독자적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이들의 결정은 지옥혈천종이라 해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크녠! 인정을 못하겠단 말이지?"
그들의 태도는 보고 이유를 단번에 짐작한 화우성이 괴소를 터뜨렸다.
그의 눈가에 새파란 살광이 번뜩이며 가공할 기도가 폭출시키며 가공스런 눈길로 쌍뇌사혼자를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원주! 부각주의 직위는 혈각 내에서 어떤 위치인가?"
쌍뇌사혼자가 화우성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불안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주상의 아래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십니다.]
화우성이 힐끗 원탁을 곁눈질했다.
"저 자리의 인물들은 혈각의 구성원이 아닌가?"
"예! 그, 그것이 에,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혈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미 화우성의 가공지학과 극강패도를 눈으로 지켜본 바 있는 쌍뇌사혼자는 어쩔 줄 몰라 더듬거
렸다.
화우성의 입가에 스산한 살소가 스쳤다고 그와 동시에 머리가 터지는 듯한 대갈을 터뜨렸다.
"혈각에서 하극상(下剋上)에 대해 내리는 형벌은?"
"능지처참! 삼족멸문! 그 후 머리통이 물컹물컹할 정도로 썩을 때까지 효수합니다!"
쌍뇌사혼자가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될 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천마대불종! 이곳은 서장이 아니야!"
원탁의 최상좌에 앉아 있던 구순 가량의 혈의노인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혈천마라제(血天魔羅帝)!
지옥마천루의 루주이며 이백 년 전에 천하를 발칵 되집었던 전대거마이다.
천왕팔가가 사라지고 점차 무림이 안정기에 들어서던 당시 그는 괴거에 단 일 년 간 무림에 출도
했다가 사라졌다.
천마혈궁(天魔血宮)...
천사성(天邪城)...
녹림심팔류(綠林十八流)...
구파연합인 천의혈맹(天衣血盟)...
무림은 각기 마(魔), 사(邪), 녹림(綠林), 정(正)으로 뭉쳤다.
헌데, 혈천마라제는 출도하자마자 단신으로 혈의혈맹을 격파하기 시작하여, 일 년 만에 십만 이상
을 살상해 결국 무림의 공적이 된 그는 집요한 천의혈맹의 추적이 귀찮아 사라져 버렸다. 쫓기다
가 죽을 위험에 놓이니까 은거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은거한 것이다.
그때, 혈천마라제 한 명으로 인해 정파의 기운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고, 그 덕분에 사마도가 성행
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생겼었다. 죽었다고 소문난 그가 혈각에 버젓이 살아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백 년 전의 공포대마두 혈천마라제가 지금 조용히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흐흐! 남이 잡은 고기를 비늘도 안 벗기고 통째로 먹으려 해?"
음산한 괴소를 터뜨리고 있는 그의 뒤에서 지옥마천루의 삼대혈공도 함께 일어섰다.
만마혈종(萬魔血宗)...
녹림마성(綠林魔聖)...
사사촌혼객(死死招魂客)...
파스스!
그들의 분노가 무형의 기운으로 서서히 폭출되자 대기마저 바스러졌다.
장내에는 살기가 팽배하기 시작했으나 화우성은 태연자약했다.
"크크! 네놈들을 죽여 기강을 바로 잡아야겠군!"
화우성의 전신에서도 가공할 마기가 폭출하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쌍방이 일으키는 가공할 기도를 못 이겨 바닥에 금이 가고 마령지존청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
다.
이때, 삼대혈공이 앞으로 나섰다.
"크흐흐! 루주께서는 나서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마혈종이 득의의 괴소를 터뜨리자 녹림마성이 뒤를 이었다.
"흐흐! 오랑캐 놈! 중원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곧 죄이다!"
이를 지켜보는 화우성의 태도는 전혀 흔들림이 없고 오히려 그의 동공 깊숙한 곳에 회심의 빛이
스쳐갔다.
(후후! 혈각의 힘은 막강하다! 허나 내부 분열이 심하군! 저 마천루의 노마물들은 권위를 내세워
다른 곳을 핍박하는 것이 분명하다. 정세로 볼때 지옥십대혈작과도 앙숙인 듯하군!)
이 순간 지옥십대혈작들의 눈은 모두 혈천마라제에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고소하
다는 느낌이 선명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특히 쌍뇌사혼자는 완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 혈천마라제... 네놈이 비록 이백 년 전의 거마라지만 결코 천마대불종의 적수는 될 수가 없
지!)
지옥십대혈작들은 친히 화우성의 무공을 맛봤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옥이십사혈비를 박살낸 화우
성의 가공신위를 친히 목격한 바 있다.
그러니, 혈천마라제 등이 불쌍하게도 아직 화우성의 가공함을 모르고 천방지축 까부는 꼴이 얼마
나 고소하겠는가?
이때, 만마혈종이 겁도 없이 지껄였다.
"크흐흐! 오랑캐 놈, 죽어랏!"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핏빛 혈강이 섬전처럼 날았고 녹림마성이라고 질 수 있는가?
"흐흐! 녹림의 별은 하늘을 가른다! 천류파성강(天流破星剛)!"
사사초혼객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한때 무림최고의 살수로 불리웠던 사사초혼객의 목검 아래 주어간 고혼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
다. 쾌검술의 초절정달인인 그는 소리도 빛도 없이 일검을 날렸다.
쐐애액!
전대초거마들의 합공이 화우성을 향해 빛살보다도 빠르게 날았다.
순간, 화우성의 금안에 새파란 청광이 반짝이더니, 이내 그의 신형이 섬전처럼 허공으로 떠올랐
다.
"죽는 것이 그렇게도 소원이란 말이지? 좋다! 서장의 무공이 중원보다도 뛰어남을 보여 주마!"
우우웅!
화우성의 양손이 금색으로 휘황하게 빛나더니, 순식간에 전신으로 금광이 퍼졌다.
혈천마라제의 안색이 급변했다.
"저, 저것은 천축의 전설적인 초극불공인 금강천불무(金光天佛舞)... 피, 피해랏!"
"크하핫! 이미 늦었다! 금광(金光)이 작렬하니 천불(天佛)이 춤을 춘다. 금광천불무!"
콰우우웅!
피하고 어쩌고 할 틈이 없이 금광은 삼대혈공의 공격을 부수며 그대로 쇄도했다.
"크아악!"
단말마가 들림과 동시에 삼대혈공은 십여 장 밖에 나뒹굴었다.
만마혈종과 녹림마성은 완전히 피떡이 되고, 사사추혼객은 우수가 뭉턱 잘려져 있었다. 그의 우수
는 불쌍하게도 몸에서 분리된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 검을 쥔 채 바닥에서 펄떡거리며 뛰어다녔
다.
순간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개개인의 무공이 삼갑자가 넘는 초강고수들인 삼대혈공들이
단 일 초에 박살나다니, 이 때만은 지옥십대혈작들도 다시 한번 경악에 물들었다.
(우우! 짐작이야 하고 있었지만 지옥마천루의 오백 노마물들 중에 십 위 안에 드는 삼대혈공을...
그것도 단 일 초에!)
허나, 그들의 눈빛은 이내 은근히 기쁜 빛으로 바뀌었다.
"우욱! 감히!"
혈천마라제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씩씨거리자, 그의 혈포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콰지직!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쩍 금이 갔다.
"죽이리라! 아수혈라마마천류(阿修血羅魔魔天流)!"
푸슈슈!
수천 줄기의 묵광이 폭출하고 마령지존청 전체가 들썩이자 화우성도 긴장된 빛을 띄웠다.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콰우웅!
고개를 끄덕이며 화우성이 내력을 끌어 올리자 묵기가 사방으로 촤악 퍼지더니 아수라상이 나타
나는 것이 아닌가?
아수마강(阿修魔剛)...
천불지존각에 소장되어 있던 마불공(魔佛功) 중 최극강의 아수라마공이 펼쳐진 것이었다.
쿠우우!
아수라상의 쌍안에 섬뜩한 혈광이 어렸다.
"모든 것을 부순다! 아수마강(阿修魔剛)!"
우우우웅!
"크으으!"
아수라상의 혈광이 파도처럼 혈천마라제를 덮쳐가자 그는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주르륵 밀려갔
다.
"마라혈폭강(魔羅血暴剛)!"
화우성이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마지막 공격을 마무리지었다. 화우성의 주위에 묵광과 혈기가
동시에 어리며 유성이 내리꽂히듯 폭출했다.
콰앙!
"쿠욱!"
"우우! 마신의 무공이다!"
좌중의 인물들이 여파조차 이기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몸을 피했다.
"우욱!"
혈천마라제는 핏물을 분수처럼 토하며 비틀거리는 것이 머리는 봉두난발에 신발은 걸레조각이 다
되었다.
화우성도 무사하지는 않은 듯 안색이 창백했다.
(으음... 중원에 나온 후 최대의 적수였다. 천년불정의 기연을 얻지 못했다면 내가 패했으리라... 내
공의 우세로 이긴 한 판이었다!)
그러면서도 화우성의 머리에는 안타까움이 스쳤다.
(범황삼패천의 무공이나, 해왕세가, 도왕세가의 절대무공을 펼쳤다면 상대도 안됐을 텐데 신분상
그럴 수도 없으니!)
지금 화우성의 내공은 거의 천 년에 육박했는데 그것은 천불지존각에서 얻은 천년불정이 계속 녹
아 내공이 증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내공만으로는 환우제일이다. 만일 그가 천년불정을 모조리 용해시킨다면 가히
천하무적일 것이다.
혈천마라제의 안색에는 불신감이 역력했다.
"내가 패하다니 내공으로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화우성이 넋이 빠진 그를 향해 다가왔다.
"하극상의 처벌은 각오했겠지?"
"졌다! 죽어라!"
혈천마라제가 지그시 눈을 감자 화우성은 비릿한 살기를 머금었다.
"크녠! 제법 사내답군! 그렇다면 고통없이 죽여 주마!"
화우성이 말을 하며 힐끗 휘장 쪽을 곁눈질했다.
벽과 바닥은 쩍쩍 금이 가고 원탁은 먼지로 화했는데도 지옥혈천종은 조용했다. 화우성이 뜻모를
미소를 지으며 혈천마라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섰다.
그가 막 혈천마라제의 사혈을 짚으려 할때 휘장 뒤에서 지옥혈천종이 호쾌한 대소를 터뜨리며 나
타났다.
"크하하핫! 태공은 손에 인정을 두시기 바랍니다!"
"주상을 뵈옵니다!"
좌중의 인물들이 모두 부복했으나 화우성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극상을 한 수하를 벌주는데 왜 그러는가?"
지옥혈천종이 싱긋이 웃으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그래도 창업공신이 아니십니까? 본좌를 봐서 용서해 주시지요?"
화우성은 짐짓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뒤로 물러섰다.
"좋다! 각주의 명이라면..."
그러자, 혈천마라제가 신형을 일으키며 지옥혈천종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각주의 구명지은에 감사드리오!"
"하핫! 감사는 태공께 하시구료!"
지옥혈천종이 말에 혈천마라제가 진정으로 굴복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이 어두워 죄를 지었소이다. 앞으로 지옥마천루는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오!"
순간, 천마대불종으로 변신한 사사리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아아... 이러지 말게... 다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의 꾸밈없고 단순소탈한 태도에 혈천마라제도 감격했고 그것을 본 지옥혈천종은 지극히 흡족한
미소를 띄었다.
"하핫! 이제야 혈각의 기강이 제대로 잡혔군요. 모두 태공의 덕입니다!"
"내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칭찬을 듣자 몹시 기분이 좋아진 듯 보이는 화우성을 주시하며 지옥혈천종이 눈을 찡긋했다.
"그래... 잘 보내셨습니까?"
"각주 덕에 잘 지냈소. 특히 계집들은..."
화우성이 입을 헤벌쭉 벌리고 음탕하게 웃자, 지옥혈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지옥사화라면 부처라도 녹일 정도다. 호색한인지 저 늙은이가 안 빠지면 이상하지!)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소리도 없이 장내는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새로이 거대한 원탁도
들여 놓았다.
"자자... 그만 앉읍시다!"
지옥혈천종이 권하자 모든 사람들이 착석하자 사사리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가?"
대답을 하는 지옥혈천종의 안색은 침중했다.
"드디어 우려하던 천왕팔가가 나타났습니다!"
"천왕팔가가.!"
"천 년 간 지옥대전을 일으킨 그들이..."
지옥혈천종이 화우성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좌중 전체가 술렁거리자 그 술렁임을 꿰뚫고 그의 말
이 이어졌다.
"남해의 해왕세가, 남만의 독왕세가, 서장의 사왕세가, 대초원의 도왕세가 모두가 준동하기 시작
했소!"
"네 곳이 동시에!"
팽팽한 긴장이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왕세가이오! 그들은 이미 청해까지 진입했소. 청해의 본벌 분성이 모두 하루만에 궤멸
했소. 특히 열 구의 강시는 천하무적이어서 청해최강고수인 청해삼마존이 단 삼 초 만에 죽었소!"
"우우!"
"청해삼마존이 단 삼 초 만에..."
좌중의 인물들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청해삼마존(靑海三魔尊)...
지옥마천루의 오백 마두 중의 삼 인으로, 혈각의 청해 책임자들로 십대고수에 끼지는 못하지만
합공이 일품이어서 혈천마라제조차 경시하지 못했다. 헌데, 그들이 단 삼 초 만에 죽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하오! 바로 본벌인 것이오!"
지옥혈천종이 비장하게 외치자 화우성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크녠! 그 쥐새끼들이 감히 도전을 해 와?"
분노를 이기지 못한 듯 화우성이 벌떡 일어섰다.
"안 그래도 각주에게 은혜만 입었는데 내 이번에 가서 이 자식들을 박살내 버려야겠군!"
"태공께서?"
"크녠! 천왕팔가 놈들, 언젠가는 한 번 겨뤄보고 싶었는데 잘됐군. 각주, 허락해 주시게나!"
"좋습니다! 태공께서 가신다면 무조건 안심입니다. 그럼 누구를 데려 가실지?"
지옥혈천종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말하자 혈천마라제가 호기롭게 일어섰다.
"각주, 오랫 동안 쉬었더니 몸이 녹이 스는 것 같아서..."
"호호... 소녀도 가겠어요!"
순간 환락밀염후가 교소를 터뜨리며 일어나자 지옥혈천종의 눈가에 이체가 떠올랐다.
"염후, 그대도?"
이때, 화우성의 기괴한 음성이 들렸다.
"크녠... 야참이 생겼군!"
"야참이라니요?"
환락밀염후는 그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혈천마라제가 빙글빙글 이죽거렸다.
"흘흘! 계집이 그것도 몰라? 하루 세 끼 먹는 것 외에 별식으로 먹는 것 말이다!"
"크하하핫!"
사방에서 폭소가 터졌다.
지옥혈천종도 몹시 즐겁고 마음이 놓이는 듯 웃었다.
"하핫! 태공께는 두 손 들었습니다!"
헌데, 환락밀염후는 모든 사람이 폭소 속에서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교태롭게 몸을
비비 꼬는 것이 아닌가?
"호호! 태공께서 소녀를 그리도 극진히 생각해 주시니 앞으로는 야참이 정찬이 되도록 노력하겠
어요!"
"엥!"
"으하핫! 태공께서 한방 먹으셨습니다!"
순간, 화우성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만만찮은데 좋아! 잡숴 주지!)
마침내 화우성은 먹기로(?) 결정을 굳세게 내려 버렸다. 이미 한 번 잡숴본 경험으로 그녀의 맛은
기가막혔던 것이다.
이때, 지옥혈천종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자, 그럼 태공께서 출전하시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크녠! 걱정마사게! 사왕세가 정도는 간단히 박살내고 올 테니 야참이나 많이 준비해 놓으라구!"
"하핫! 그 점은 염려를 아예 하지 마십시오!"
지옥혈천종이 대소를 터뜨리더니 이어 좌중을 쭉 훑어보았다.
"지옥마천루의 이백천마노군(二百天魔老君)과 신비원(神秘院)의 일천철기무적군단(一千鐵騎無敵軍
團), 환락밀궁의 일만혈염신녀대(一萬血艶天女隊), 오만의 혈혈마살천단(血血魔殺天團)을 합해 통
칭 대천마군단(大天魔軍團)이라 부르겠소! 이제 태공께서 바로 그 대천마군단의 단주로서 출진하
실 것이오!"
지옥혈천종의 엄청가공할 말이 천둥처럼 마령지존청을 뒤흔들고 있었다.
대천마군단(大天魔軍團)!
중원최강의 무적마군단(無敵魔軍團)은 이렇게 결성되었다.
화우성이 침중한 안색으로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진 칠흑같은 흑발에 뇌전
을 방불케 하는 검미성목(劍眉星目)을 한 것이 그는 지금 본래의 면목을 회복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는 본면목으로 돌아온 것일까?
(으음... 과연 잘하는 것인지...)
화우성의 봉안에는 고뇌와 갈등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제 출전(出戰)을 하려면 지옥사화를 데리고 가야 의심을 받지 않는다. 허나 그리하면 마음대로
활동할 수가 없을 테니...)
그렇다. 화우성은 오늘 출전하기로 이미 발표해 놓았다. 헌데, 천하의 호색가인 천마대불종이 지
옥사화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어찌 생각하겠는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일천 년에 걸친 지옥대전(地獄大戰)으로 인해 죽은 자가 그 얼마인가?
모든 것은 천왕팔가의 야망 때문 결국 사부님들도 혈왕마가의 야망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닌
가!)
일순, 파스스스!
사부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화우성의 눈에 새파란 살광이 스쳐갔다.
(또다시 지옥대전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더구나 지금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
는 상태로 야망은 야망으로 분쇄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중대한 결정을 내린 듯 화우성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옥사화에게 나의 실체를 보여 주어야 한다! 손자병법의 제 십삼편 용간편(用間篇:諜者 쓰는
법)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총 삼십 편으로 이루어진 고금 최강의 병서, 그 마지막이 용간편(用間篇)으로 전쟁 수행시에 적정
(敵情)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협자의 활용에 대해 논한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책자는 크게 다섯으로 분류된다.
향간(鄕間)!
적국의 관리를 회유해서 이용하는 고정첩자...
내간(內間)!
적국의 관리를 이용한 첩자...
반간(反間)!
적(敵)의 첩자를 역이용한 첩자...
사간(死間)!
결사(決死)를 각오한 첩자로, 주로 적에게 거짓 정보를 올리는데 이용되는 첩자...
생간(生間)!
직접 이쪽에서 적국에 보내어 정보를 가지고 오게 하는 첩자...
화우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에 골몰했다.
(지옥사화는 아마도 생간(生間)일 것이다. 나의 본심과 실체를 보여 주고 여인지로(女人之路)를
걸으며 나의 반간(反間)이 되게 해야한다. 만일 거부하고 야망지로를 걷는다면 베는 수밖에 없
다!)
마침내 화우성은 모든 절정을 확고히 했다.
똑똑!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청아한 옥음이 들렸다.
"부르셨습니까? 태공..."
"들라!"
화우성의 짧은 대답에 문이 스르르 열리며 네 여인이 들어섰고 그녀들은 이미 화우성에게 모든
것을 준 네 여인은 요 며칠 사이에 무척이나 수척해졌다.
그것은 화우성의 끊이지 않는 정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야망지로와 여인지로의 갈림
길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심적 갈등이 컸기 때문이다.
"어인 일?"
막 방으로 들어서던 지옥사화는 경악에 물들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부각주이자 태상봉공인 천마대불종은 간 곳이 없고, 본 적도 없는 절세미공자가 서 있는 것이 아
닌가?
일순, 놀라고 당혹했던 지옥사화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대는 누구냐?"
"감히 혈각에 침투하다니!"
휘리릭!
싸늘한 교갈이 비수처럼 사방으로 비산하고, 섬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화우성을 포위하자, 가공
할 경기가 일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한데, 화우성은 태연한 신색으로 장난스럽게 웃었다.
"후후! 지옥사화 과연 명불허전이군!"
스슷!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이한 음향이 연이어서 들리며, 화우성의 미안이 붉은 적안으로 바뀌고, 치
렁치렁한 흑발은 금발로, 붕안은 금안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또한, 전신의 뼈마디마디가 기음이 터지면서 키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구 척의 장신이 되었다.
"태, 태공!"
지옥사화가 넋이 빠져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우성은 그녀들의 놀란 토끼같은 표정을 보며 다시 본래의 면모로 돌아왔다. 그는 한 쪽 눈을
찡긋 감으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때? 그 흉측한 모습보다는 이게 훨씬 낫지?"
".....?"
너무도 놀란 지옥사화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이런 일이!"
소수선자 진미령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으나, 벽안미녀 사아라의 시선은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정말 멋있어!)
흑진아나 진미령도 사아라처럼 몽롱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때, 퍼뜩 정신이 든 진미령이 싸늘한 교갈을 터뜨렸다.
"당신은 누구시죠? 혈각에 변신을 한 채 침투하다니 정말 간이 부었군요!"
헌데, 화우성은 진미령을 주시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른 목적으로 들어왔다고? 후훗!"
그것을 본 진미령이 내심을 들킨 듯 흠칫했다.
파파팟!
화우성의 안색이 일순 딱딱하게 굳더니 지옥사화를 하나씩 뚫어지게 응시했자 그의 강렬한 안광
에 지옥사화는 한결같이 교구를 부르르 떨었다.
(아아! 천하가 가득 찬 듯한 느낌이다!)
(거인(巨人)! 태산이시다!)
지옥사화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보라! 화우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도는 대해 같은 넓음과 태산을 방불케 하는 웅장
함과 만인을 압도하는 제왕의 풍도이다.
또한 심유무심한 동공은 심혼을 모조리 빨아들일 듯 마력적이지 않은가? 가히 완벽한 천인지도
(天人之道)인 것이다.
이때, 화우성의 웅후한 음성이 그녀들의 혼미한 머리 속을 맑게 했다.
"그대들이 모종의 임무를 띄고 혈각에 잠입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우성의 말에 지옥사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어떻게?)
(지옥혈천종조차 모르는 일이거늘!)
경악에 물든 지옥사화는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
"첩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 그대들은 내간(內間)과 생간(生間)..... 목적을 위해서라면 여인지로라
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허나..."
화우성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방안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일순, 화우성이 급격히 신형을 돌리며
흑진아를 주시했다.
(헉!)
이미 화우성에게 내심을 들켜 기선을 제압당한 지옥사화는 가슴이 뜨끔했다.
화우성은 그녀들의 그런 심리를 놓치지 않았다.
"독종염후... 그대는 독왕세가의 간세!"
"헉! 어, 어떻게?"
"아라... 그대는 사왕세가의 끄나풀!"
"으흠!"
"미령과 요랑은 개인적인 목적을 침투했지!"
"흑!"
"그, 그걸 어떻게?"
지옥사화의 안색이 눈보다도 새하얗게 변했다.
그랬던가? 지옥혈천종이 최후의 비책으로 얻은 지옥사화 중 두 여인이 천왕팔가 중 두 세력의 간
세(間世)였던 것이다.
대천마군단(大天魔軍團)의 결성
<마령지존청(魔靈至尊廳)...>
혈각의 수뇌부가 모두 운집해 있었다.
지옥이십사혈비, 아니 화우성에게 죽은 여섯을 제외하면 지옥십팔혈비는 여전히 혈색 휘장 앞에
두 줄로 늘어선 그들의 전면에는 거대한 원탁(圓卓)이 있고, 원탁 주위에는 수십 인의 좌정해 있
었다.
지옥십대혈작을 비롯한 지옥마천루(地獄魔天樓)의 루주인 혈천마라제(血天魔羅帝), 십대혈공(十大
血公), 사십팔지주(四十八地主)가 모두 참석했다.
장내에는 무거운 공기가 숨통을 조일 듯 번지고 있었다.
이때,
"부각주님이 듭시옵니다."
문 밖에서 웅후한 목소리가 들리자, 문이 열리며 화우성이 들어섰다.
순간, 지옥십대혈작들이 모두 기립했다.
"허허! 어서 오십시오!"
쌍뇌사혼자 북궁기가 흔쾌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허나, 화우성은 대꾸도 않고 두거운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지옥십대혈작 외에는 어느 누구도 화우성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란 간단하다. 지옥마천루가 화우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혈각의 창업공신인 이들은 혈
각 내에서도 독자적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이들의 결정은 지옥혈천종이라 해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크녠! 인정을 못하겠단 말이지?"
그들의 태도는 보고 이유를 단번에 짐작한 화우성이 괴소를 터뜨렸다.
그의 눈가에 새파란 살광이 번뜩이며 가공할 기도가 폭출시키며 가공스런 눈길로 쌍뇌사혼자를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원주! 부각주의 직위는 혈각 내에서 어떤 위치인가?"
쌍뇌사혼자가 화우성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불안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주상의 아래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십니다.]
화우성이 힐끗 원탁을 곁눈질했다.
"저 자리의 인물들은 혈각의 구성원이 아닌가?"
"예! 그, 그것이 에, 이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그저 혈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미 화우성의 가공지학과 극강패도를 눈으로 지켜본 바 있는 쌍뇌사혼자는 어쩔 줄 몰라 더듬거
렸다.
화우성의 입가에 스산한 살소가 스쳤다고 그와 동시에 머리가 터지는 듯한 대갈을 터뜨렸다.
"혈각에서 하극상(下剋上)에 대해 내리는 형벌은?"
"능지처참! 삼족멸문! 그 후 머리통이 물컹물컹할 정도로 썩을 때까지 효수합니다!"
쌍뇌사혼자가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될 일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천마대불종! 이곳은 서장이 아니야!"
원탁의 최상좌에 앉아 있던 구순 가량의 혈의노인이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혈천마라제(血天魔羅帝)!
지옥마천루의 루주이며 이백 년 전에 천하를 발칵 되집었던 전대거마이다.
천왕팔가가 사라지고 점차 무림이 안정기에 들어서던 당시 그는 괴거에 단 일 년 간 무림에 출도
했다가 사라졌다.
천마혈궁(天魔血宮)...
천사성(天邪城)...
녹림심팔류(綠林十八流)...
구파연합인 천의혈맹(天衣血盟)...
무림은 각기 마(魔), 사(邪), 녹림(綠林), 정(正)으로 뭉쳤다.
헌데, 혈천마라제는 출도하자마자 단신으로 혈의혈맹을 격파하기 시작하여, 일 년 만에 십만 이상
을 살상해 결국 무림의 공적이 된 그는 집요한 천의혈맹의 추적이 귀찮아 사라져 버렸다. 쫓기다
가 죽을 위험에 놓이니까 은거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은거한 것이다.
그때, 혈천마라제 한 명으로 인해 정파의 기운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고, 그 덕분에 사마도가 성행
할 수 있는 절호의 계기가 생겼었다. 죽었다고 소문난 그가 혈각에 버젓이 살아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이백 년 전의 공포대마두 혈천마라제가 지금 조용히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흐흐! 남이 잡은 고기를 비늘도 안 벗기고 통째로 먹으려 해?"
음산한 괴소를 터뜨리고 있는 그의 뒤에서 지옥마천루의 삼대혈공도 함께 일어섰다.
만마혈종(萬魔血宗)...
녹림마성(綠林魔聖)...
사사촌혼객(死死招魂客)...
파스스!
그들의 분노가 무형의 기운으로 서서히 폭출되자 대기마저 바스러졌다.
장내에는 살기가 팽배하기 시작했으나 화우성은 태연자약했다.
"크크! 네놈들을 죽여 기강을 바로 잡아야겠군!"
화우성의 전신에서도 가공할 마기가 폭출하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쌍방이 일으키는 가공할 기도를 못 이겨 바닥에 금이 가고 마령지존청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
다.
이때, 삼대혈공이 앞으로 나섰다.
"크흐흐! 루주께서는 나서실 필요가 없습니다!"
만마혈종이 득의의 괴소를 터뜨리자 녹림마성이 뒤를 이었다.
"흐흐! 오랑캐 놈! 중원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곧 죄이다!"
이를 지켜보는 화우성의 태도는 전혀 흔들림이 없고 오히려 그의 동공 깊숙한 곳에 회심의 빛이
스쳐갔다.
(후후! 혈각의 힘은 막강하다! 허나 내부 분열이 심하군! 저 마천루의 노마물들은 권위를 내세워
다른 곳을 핍박하는 것이 분명하다. 정세로 볼때 지옥십대혈작과도 앙숙인 듯하군!)
이 순간 지옥십대혈작들의 눈은 모두 혈천마라제에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눈에는 고소하
다는 느낌이 선명하게 내비치고 있었다.
특히 쌍뇌사혼자는 완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흐! 혈천마라제... 네놈이 비록 이백 년 전의 거마라지만 결코 천마대불종의 적수는 될 수가 없
지!)
지옥십대혈작들은 친히 화우성의 무공을 맛봤었다. 게다가 그들은 지옥이십사혈비를 박살낸 화우
성의 가공신위를 친히 목격한 바 있다.
그러니, 혈천마라제 등이 불쌍하게도 아직 화우성의 가공함을 모르고 천방지축 까부는 꼴이 얼마
나 고소하겠는가?
이때, 만마혈종이 겁도 없이 지껄였다.
"크흐흐! 오랑캐 놈, 죽어랏!"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핏빛 혈강이 섬전처럼 날았고 녹림마성이라고 질 수 있는가?
"흐흐! 녹림의 별은 하늘을 가른다! 천류파성강(天流破星剛)!"
사사초혼객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한때 무림최고의 살수로 불리웠던 사사초혼객의 목검 아래 주어간 고혼의 수는 헤아릴 수가 없었
다. 쾌검술의 초절정달인인 그는 소리도 빛도 없이 일검을 날렸다.
쐐애액!
전대초거마들의 합공이 화우성을 향해 빛살보다도 빠르게 날았다.
순간, 화우성의 금안에 새파란 청광이 반짝이더니, 이내 그의 신형이 섬전처럼 허공으로 떠올랐
다.
"죽는 것이 그렇게도 소원이란 말이지? 좋다! 서장의 무공이 중원보다도 뛰어남을 보여 주마!"
우우웅!
화우성의 양손이 금색으로 휘황하게 빛나더니, 순식간에 전신으로 금광이 퍼졌다.
혈천마라제의 안색이 급변했다.
"저, 저것은 천축의 전설적인 초극불공인 금강천불무(金光天佛舞)... 피, 피해랏!"
"크하핫! 이미 늦었다! 금광(金光)이 작렬하니 천불(天佛)이 춤을 춘다. 금광천불무!"
콰우우웅!
피하고 어쩌고 할 틈이 없이 금광은 삼대혈공의 공격을 부수며 그대로 쇄도했다.
"크아악!"
단말마가 들림과 동시에 삼대혈공은 십여 장 밖에 나뒹굴었다.
만마혈종과 녹림마성은 완전히 피떡이 되고, 사사추혼객은 우수가 뭉턱 잘려져 있었다. 그의 우수
는 불쌍하게도 몸에서 분리된 서러움을 이기지 못해 검을 쥔 채 바닥에서 펄떡거리며 뛰어다녔
다.
순간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개개인의 무공이 삼갑자가 넘는 초강고수들인 삼대혈공들이
단 일 초에 박살나다니, 이 때만은 지옥십대혈작들도 다시 한번 경악에 물들었다.
(우우! 짐작이야 하고 있었지만 지옥마천루의 오백 노마물들 중에 십 위 안에 드는 삼대혈공을...
그것도 단 일 초에!)
허나, 그들의 눈빛은 이내 은근히 기쁜 빛으로 바뀌었다.
"우욱! 감히!"
혈천마라제가 분노를 이기지 못해 씩씨거리자, 그의 혈포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콰지직!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쩍 금이 갔다.
"죽이리라! 아수혈라마마천류(阿修血羅魔魔天流)!"
푸슈슈!
수천 줄기의 묵광이 폭출하고 마령지존청 전체가 들썩이자 화우성도 긴장된 빛을 띄웠다.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콰우웅!
고개를 끄덕이며 화우성이 내력을 끌어 올리자 묵기가 사방으로 촤악 퍼지더니 아수라상이 나타
나는 것이 아닌가?
아수마강(阿修魔剛)...
천불지존각에 소장되어 있던 마불공(魔佛功) 중 최극강의 아수라마공이 펼쳐진 것이었다.
쿠우우!
아수라상의 쌍안에 섬뜩한 혈광이 어렸다.
"모든 것을 부순다! 아수마강(阿修魔剛)!"
우우우웅!
"크으으!"
아수라상의 혈광이 파도처럼 혈천마라제를 덮쳐가자 그는 신음을 터뜨리며 뒤로 주르륵 밀려갔
다.
"마라혈폭강(魔羅血暴剛)!"
화우성이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마지막 공격을 마무리지었다. 화우성의 주위에 묵광과 혈기가
동시에 어리며 유성이 내리꽂히듯 폭출했다.
콰앙!
"쿠욱!"
"우우! 마신의 무공이다!"
좌중의 인물들이 여파조차 이기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몸을 피했다.
"우욱!"
혈천마라제는 핏물을 분수처럼 토하며 비틀거리는 것이 머리는 봉두난발에 신발은 걸레조각이 다
되었다.
화우성도 무사하지는 않은 듯 안색이 창백했다.
(으음... 중원에 나온 후 최대의 적수였다. 천년불정의 기연을 얻지 못했다면 내가 패했으리라... 내
공의 우세로 이긴 한 판이었다!)
그러면서도 화우성의 머리에는 안타까움이 스쳤다.
(범황삼패천의 무공이나, 해왕세가, 도왕세가의 절대무공을 펼쳤다면 상대도 안됐을 텐데 신분상
그럴 수도 없으니!)
지금 화우성의 내공은 거의 천 년에 육박했는데 그것은 천불지존각에서 얻은 천년불정이 계속 녹
아 내공이 증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내공만으로는 환우제일이다. 만일 그가 천년불정을 모조리 용해시킨다면 가히
천하무적일 것이다.
혈천마라제의 안색에는 불신감이 역력했다.
"내가 패하다니 내공으로는 적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화우성이 넋이 빠진 그를 향해 다가왔다.
"하극상의 처벌은 각오했겠지?"
"졌다! 죽어라!"
혈천마라제가 지그시 눈을 감자 화우성은 비릿한 살기를 머금었다.
"크녠! 제법 사내답군! 그렇다면 고통없이 죽여 주마!"
화우성이 말을 하며 힐끗 휘장 쪽을 곁눈질했다.
벽과 바닥은 쩍쩍 금이 가고 원탁은 먼지로 화했는데도 지옥혈천종은 조용했다. 화우성이 뜻모를
미소를 지으며 혈천마라제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섰다.
그가 막 혈천마라제의 사혈을 짚으려 할때 휘장 뒤에서 지옥혈천종이 호쾌한 대소를 터뜨리며 나
타났다.
"크하하핫! 태공은 손에 인정을 두시기 바랍니다!"
"주상을 뵈옵니다!"
좌중의 인물들이 모두 부복했으나 화우성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극상을 한 수하를 벌주는데 왜 그러는가?"
지옥혈천종이 싱긋이 웃으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그래도 창업공신이 아니십니까? 본좌를 봐서 용서해 주시지요?"
화우성은 짐짓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뒤로 물러섰다.
"좋다! 각주의 명이라면..."
그러자, 혈천마라제가 신형을 일으키며 지옥혈천종에게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각주의 구명지은에 감사드리오!"
"하핫! 감사는 태공께 하시구료!"
지옥혈천종이 말에 혈천마라제가 진정으로 굴복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눈이 어두워 죄를 지었소이다. 앞으로 지옥마천루는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오!"
순간, 천마대불종으로 변신한 사사리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아아... 이러지 말게... 다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의 꾸밈없고 단순소탈한 태도에 혈천마라제도 감격했고 그것을 본 지옥혈천종은 지극히 흡족한
미소를 띄었다.
"하핫! 이제야 혈각의 기강이 제대로 잡혔군요. 모두 태공의 덕입니다!"
"내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칭찬을 듣자 몹시 기분이 좋아진 듯 보이는 화우성을 주시하며 지옥혈천종이 눈을 찡긋했다.
"그래... 잘 보내셨습니까?"
"각주 덕에 잘 지냈소. 특히 계집들은..."
화우성이 입을 헤벌쭉 벌리고 음탕하게 웃자, 지옥혈천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지옥사화라면 부처라도 녹일 정도다. 호색한인지 저 늙은이가 안 빠지면 이상하지!)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소리도 없이 장내는 말끔히 정리가 되었다. 새로이 거대한 원탁도
들여 놓았다.
"자자... 그만 앉읍시다!"
지옥혈천종이 권하자 모든 사람들이 착석하자 사사리가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가?"
대답을 하는 지옥혈천종의 안색은 침중했다.
"드디어 우려하던 천왕팔가가 나타났습니다!"
"천왕팔가가.!"
"천 년 간 지옥대전을 일으킨 그들이..."
지옥혈천종이 화우성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좌중 전체가 술렁거리자 그 술렁임을 꿰뚫고 그의 말
이 이어졌다.
"남해의 해왕세가, 남만의 독왕세가, 서장의 사왕세가, 대초원의 도왕세가 모두가 준동하기 시작
했소!"
"네 곳이 동시에!"
팽팽한 긴장이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왕세가이오! 그들은 이미 청해까지 진입했소. 청해의 본벌 분성이 모두 하루만에 궤멸
했소. 특히 열 구의 강시는 천하무적이어서 청해최강고수인 청해삼마존이 단 삼 초 만에 죽었소!"
"우우!"
"청해삼마존이 단 삼 초 만에..."
좌중의 인물들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청해삼마존(靑海三魔尊)...
지옥마천루의 오백 마두 중의 삼 인으로, 혈각의 청해 책임자들로 십대고수에 끼지는 못하지만
합공이 일품이어서 혈천마라제조차 경시하지 못했다. 헌데, 그들이 단 삼 초 만에 죽었다.
"그들의 목표는 분명하오! 바로 본벌인 것이오!"
지옥혈천종이 비장하게 외치자 화우성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크녠! 그 쥐새끼들이 감히 도전을 해 와?"
분노를 이기지 못한 듯 화우성이 벌떡 일어섰다.
"안 그래도 각주에게 은혜만 입었는데 내 이번에 가서 이 자식들을 박살내 버려야겠군!"
"태공께서?"
"크녠! 천왕팔가 놈들, 언젠가는 한 번 겨뤄보고 싶었는데 잘됐군. 각주, 허락해 주시게나!"
"좋습니다! 태공께서 가신다면 무조건 안심입니다. 그럼 누구를 데려 가실지?"
지옥혈천종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색을 하며 말하자 혈천마라제가 호기롭게 일어섰다.
"각주, 오랫 동안 쉬었더니 몸이 녹이 스는 것 같아서..."
"호호... 소녀도 가겠어요!"
순간 환락밀염후가 교소를 터뜨리며 일어나자 지옥혈천종의 눈가에 이체가 떠올랐다.
"염후, 그대도?"
이때, 화우성의 기괴한 음성이 들렸다.
"크녠... 야참이 생겼군!"
"야참이라니요?"
환락밀염후는 그를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자 혈천마라제가 빙글빙글 이죽거렸다.
"흘흘! 계집이 그것도 몰라? 하루 세 끼 먹는 것 외에 별식으로 먹는 것 말이다!"
"크하하핫!"
사방에서 폭소가 터졌다.
지옥혈천종도 몹시 즐겁고 마음이 놓이는 듯 웃었다.
"하핫! 태공께는 두 손 들었습니다!"
헌데, 환락밀염후는 모든 사람이 폭소 속에서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교태롭게 몸을
비비 꼬는 것이 아닌가?
"호호! 태공께서 소녀를 그리도 극진히 생각해 주시니 앞으로는 야참이 정찬이 되도록 노력하겠
어요!"
"엥!"
"으하핫! 태공께서 한방 먹으셨습니다!"
순간, 화우성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만만찮은데 좋아! 잡숴 주지!)
마침내 화우성은 먹기로(?) 결정을 굳세게 내려 버렸다. 이미 한 번 잡숴본 경험으로 그녀의 맛은
기가막혔던 것이다.
이때, 지옥혈천종이 자세를 가다듬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자, 그럼 태공께서 출전하시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크녠! 걱정마사게! 사왕세가 정도는 간단히 박살내고 올 테니 야참이나 많이 준비해 놓으라구!"
"하핫! 그 점은 염려를 아예 하지 마십시오!"
지옥혈천종이 대소를 터뜨리더니 이어 좌중을 쭉 훑어보았다.
"지옥마천루의 이백천마노군(二百天魔老君)과 신비원(神秘院)의 일천철기무적군단(一千鐵騎無敵軍
團), 환락밀궁의 일만혈염신녀대(一萬血艶天女隊), 오만의 혈혈마살천단(血血魔殺天團)을 합해 통
칭 대천마군단(大天魔軍團)이라 부르겠소! 이제 태공께서 바로 그 대천마군단의 단주로서 출진하
실 것이오!"
지옥혈천종의 엄청가공할 말이 천둥처럼 마령지존청을 뒤흔들고 있었다.
대천마군단(大天魔軍團)!
중원최강의 무적마군단(無敵魔軍團)은 이렇게 결성되었다.
화우성이 침중한 안색으로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다. 허리까지 길게 늘어진 칠흑같은 흑발에 뇌전
을 방불케 하는 검미성목(劍眉星目)을 한 것이 그는 지금 본래의 면목을 회복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는 본면목으로 돌아온 것일까?
(으음... 과연 잘하는 것인지...)
화우성의 봉안에는 고뇌와 갈등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제 출전(出戰)을 하려면 지옥사화를 데리고 가야 의심을 받지 않는다. 허나 그리하면 마음대로
활동할 수가 없을 테니...)
그렇다. 화우성은 오늘 출전하기로 이미 발표해 놓았다. 헌데, 천하의 호색가인 천마대불종이 지
옥사화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어찌 생각하겠는가?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일천 년에 걸친 지옥대전(地獄大戰)으로 인해 죽은 자가 그 얼마인가?
모든 것은 천왕팔가의 야망 때문 결국 사부님들도 혈왕마가의 야망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닌
가!)
일순, 파스스스!
사부들이 머리에 떠오르자 화우성의 눈에 새파란 살광이 스쳐갔다.
(또다시 지옥대전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더구나 지금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
는 상태로 야망은 야망으로 분쇄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중대한 결정을 내린 듯 화우성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옥사화에게 나의 실체를 보여 주어야 한다! 손자병법의 제 십삼편 용간편(用間篇:諜者 쓰는
법)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손자병법(孫子兵法)...
총 삼십 편으로 이루어진 고금 최강의 병서, 그 마지막이 용간편(用間篇)으로 전쟁 수행시에 적정
(敵情)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협자의 활용에 대해 논한 부분이다.
그에 따르면 책자는 크게 다섯으로 분류된다.
향간(鄕間)!
적국의 관리를 회유해서 이용하는 고정첩자...
내간(內間)!
적국의 관리를 이용한 첩자...
반간(反間)!
적(敵)의 첩자를 역이용한 첩자...
사간(死間)!
결사(決死)를 각오한 첩자로, 주로 적에게 거짓 정보를 올리는데 이용되는 첩자...
생간(生間)!
직접 이쪽에서 적국에 보내어 정보를 가지고 오게 하는 첩자...
화우성은 계속해서 자신의 생각에 골몰했다.
(지옥사화는 아마도 생간(生間)일 것이다. 나의 본심과 실체를 보여 주고 여인지로(女人之路)를
걸으며 나의 반간(反間)이 되게 해야한다. 만일 거부하고 야망지로를 걷는다면 베는 수밖에 없
다!)
마침내 화우성은 모든 절정을 확고히 했다.
똑똑!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밖에서 청아한 옥음이 들렸다.
"부르셨습니까? 태공..."
"들라!"
화우성의 짧은 대답에 문이 스르르 열리며 네 여인이 들어섰고 그녀들은 이미 화우성에게 모든
것을 준 네 여인은 요 며칠 사이에 무척이나 수척해졌다.
그것은 화우성의 끊이지 않는 정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야망지로와 여인지로의 갈림
길에서 그녀들은 자신의 심적 갈등이 컸기 때문이다.
"어인 일?"
막 방으로 들어서던 지옥사화는 경악에 물들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부각주이자 태상봉공인 천마대불종은 간 곳이 없고, 본 적도 없는 절세미공자가 서 있는 것이 아
닌가?
일순, 놀라고 당혹했던 지옥사화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대는 누구냐?"
"감히 혈각에 침투하다니!"
휘리릭!
싸늘한 교갈이 비수처럼 사방으로 비산하고, 섬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로 화우성을 포위하자, 가공
할 경기가 일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한데, 화우성은 태연한 신색으로 장난스럽게 웃었다.
"후후! 지옥사화 과연 명불허전이군!"
스슷!
말이 끝남과 동시에 기이한 음향이 연이어서 들리며, 화우성의 미안이 붉은 적안으로 바뀌고, 치
렁치렁한 흑발은 금발로, 붕안은 금안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또한, 전신의 뼈마디마디가 기음이 터지면서 키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구 척의 장신이 되었다.
"태, 태공!"
지옥사화가 넋이 빠져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우성은 그녀들의 놀란 토끼같은 표정을 보며 다시 본래의 면모로 돌아왔다. 그는 한 쪽 눈을
찡긋 감으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때? 그 흉측한 모습보다는 이게 훨씬 낫지?"
".....?"
너무도 놀란 지옥사화는 아직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이런 일이!"
소수선자 진미령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으나, 벽안미녀 사아라의 시선은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정말 멋있어!)
흑진아나 진미령도 사아라처럼 몽롱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때, 퍼뜩 정신이 든 진미령이 싸늘한 교갈을 터뜨렸다.
"당신은 누구시죠? 혈각에 변신을 한 채 침투하다니 정말 간이 부었군요!"
헌데, 화우성은 진미령을 주시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른 목적으로 들어왔다고? 후훗!"
그것을 본 진미령이 내심을 들킨 듯 흠칫했다.
파파팟!
화우성의 안색이 일순 딱딱하게 굳더니 지옥사화를 하나씩 뚫어지게 응시했자 그의 강렬한 안광
에 지옥사화는 한결같이 교구를 부르르 떨었다.
(아아! 천하가 가득 찬 듯한 느낌이다!)
(거인(巨人)! 태산이시다!)
지옥사화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보라! 화우성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도는 대해 같은 넓음과 태산을 방불케 하는 웅장
함과 만인을 압도하는 제왕의 풍도이다.
또한 심유무심한 동공은 심혼을 모조리 빨아들일 듯 마력적이지 않은가? 가히 완벽한 천인지도
(天人之道)인 것이다.
이때, 화우성의 웅후한 음성이 그녀들의 혼미한 머리 속을 맑게 했다.
"그대들이 모종의 임무를 띄고 혈각에 잠입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우성의 말에 지옥사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어떻게?)
(지옥혈천종조차 모르는 일이거늘!)
경악에 물든 지옥사화는 자신들도 모르게 주춤 물러섰다.
"첩자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 그대들은 내간(內間)과 생간(生間)..... 목적을 위해서라면 여인지로라
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허나..."
화우성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방안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일순, 화우성이 급격히 신형을 돌리며
흑진아를 주시했다.
(헉!)
이미 화우성에게 내심을 들켜 기선을 제압당한 지옥사화는 가슴이 뜨끔했다.
화우성은 그녀들의 그런 심리를 놓치지 않았다.
"독종염후... 그대는 독왕세가의 간세!"
"헉! 어, 어떻게?"
"아라... 그대는 사왕세가의 끄나풀!"
"으흠!"
"미령과 요랑은 개인적인 목적을 침투했지!"
"흑!"
"그, 그걸 어떻게?"
지옥사화의 안색이 눈보다도 새하얗게 변했다.
그랬던가? 지옥혈천종이 최후의 비책으로 얻은 지옥사화 중 두 여인이 천왕팔가 중 두 세력의 간
세(間世)였던 것이다.
추천101 비추천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