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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하는 즐거움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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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094 회 작성일 24-02-13 00:4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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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농담이 아니다, 그 큰 덩치의 레이몽이 그런 식으로 의기저하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겁이 날 정도였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이해가 간다. 내내 같이 살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와 보니 뻣뻣하게 굳은 시체로 변해 있었으니! 하지만 일흔 여섯 나이의 할머니에게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게다가 협심증을 지병으로 갖고 계시던 분이 아니시던가. 그래도 어머니를 잃은 충격은 엄청나게 컸으리라!
모두들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기 위해 장례식에 갔다. 장례식장에서 위로의 말을 던지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그리고 마땅한 위로의 말을 찾기도 힘들다. 우리는 그가 금방 털고 일어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만 갔다. 레이몽 같은 친구가 그렇게 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황금처럼 진솔하며, 항상 익살이 넘치던 그였다. 입을 열면 늘 우스갯소리가 쏟아져 나왔고, 포복절도하던 우리들이 채 숨을 가누기도 전에 또다른 농짓거리가 웃음으로 벌어진 우리들의 입 속으로 들이닥쳤다. 레이몽 같은 친구와 함께 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트럭을 타고 갈 때 뿐만아니라 짐을 부릴 때도 그는 지속적으로 코메디를 했다. 짐을 묶은 밧줄을 풀고, 상자를 꺼내고,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계단을 오르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실내 때문에 불평을 하고, 덮개가 벗겨져 내려가 애를 먹고, 상자를 내려 놓을 때 허리에 충격을 받고....
하지만 이 모든 일의 고통을 레이몽의 농담이 한순간에 씻어가 버린다! 결국 우리는 레이몽 덕분에 하루 종일 웃고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변해 버렸으니!
물론 그는 고객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내놓는 술잔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입술만 축일 뿐, 생각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옛날에 그는 그렇지가 않았었다.
일부러 작당을 하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레이몽 문제를 거론하게 되었다. 이제 그를 보살필 사람은 우리 말고 누가 있겠는가! 우리가 그의 생각을 바꾸어 주어야지.
하지만 일은 쉽지가 않았다. 불쌍한 친구, 정말 충격이 컸던 모양이구나!
친구들의 초대에는 전혀 응하지 않기 때문에 일을 마치면 그를 차로 바래다 주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내친 김에 그의 집을 방문하는 일도 가끔 생겼다. 그렇게 친구들이 쳐들어가면, 그로서도 쫓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들 선 자리에서 한잔씩 마셨다. 집안 분위기는 독신 생활에 단련된 노총각의 그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병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가 나았다고 했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일인지 몰랐다면서 지금도 텔레비전은 있으니까 하고 얼버무렸다. 아무튼 그의 생각은 정상적이지가 못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버티고 살아가는 것 같아 우리는 더 이상 닥달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일을 할 때, 느닷없이 농담을 꺼내 웃음을 선사하긴 하지만, 갑자기 침묵에 빠져 좌중을 곤란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우리는 한참을 기다린다. 담배 개비를 손바닥에 대고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이, 친구! 밥 먹을 때까지 아직 세 군데 더 갔다 와야해...."
그는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행동했다. 담배 개비를 귀 뒤에 꽂고, 머리를 한 번 흔든 다음, 소매를 걷어 붙였다. 하지만 그런 일도 시간이 갈수록 드물어졌다.
요즘은 일요일에 마권을 사러 미밀네 가게에 올 때만 그를 보게 된다. 어제, 그는 우연히 우리와 함께 프로축구 시합 구경을 갔다. 그는 옛날처럼 떠벌이며 응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폴렛트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

낼 때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살며시 꺼져주었고, 폴렛트에게 관심을 가지는 그의 모습이 너무 보기가 좋아 우리는 축구장에서 나오면서 바로 술집으로 향했다.
밤 늦게까지 떠들고 놀려고 술집에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점에서는 때로는 사이다만 마시고 노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여편네들의 말이 옳았다. 레이몽이 옛모습을 되찾은 것이 반가웠고, 전력이 약한 셍테티엔느 팀이 이긴 것이 대견스러워 간단히 한 잔 하기로 한 것이 새벽 한시까지 죽치고 앉아 남의 험담까지 하게 되었다.
나이 어린 조조가 레이몽이 폴렛트에게 마음을 두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토록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가 뭣 때문에 절름발이와 놀아나는 거야!
"아, 모르는 소리,"
리케가 말했다.
"레이몽은 엉뚱한 데가 있는 놈이야. 넌 어려서 옛일을 잘 알지 못하는 모양인데, 절름발이 땅콩 장수 전에는 애꾸눈과 연애를 했고 그전에는 곱추랑 붙었었어."
"무릎까지 살이 접히던 바 나베의 비계 덩어리는 어떡하구."
딴 친구가 덧붙였다.
어린 조조는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설명이 필요했다.
"레이몽 그놈은 보통여자는 좋아하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난 기차게 빠진 여자를 택하겠어요. 무슨 말인지 알아 듣겠어요."
"꼬마야, 니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리케가 말했다.
"레이몽은 철학자야, 알아? 내일, 오늘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 봐, 아마 비결을 가르켜 줄 거야."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지는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칼칼하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다들 다시 모여 해장술을

마시러 갔다. 레이몽이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한결 젊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레이몽, 어젯밤 어땠어?"
그는 예전처럼 가만히 미소를 지으며 눈만 깜빡였다. 그러자, 모두들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얘기 안할래?"
"뭐 말이야?"
그가 시침을 뗐다.
"조조를 위해서 약간만 얘기해 봐. 조조는 폴렛트가 전혀 아니올시다인가봐."
레이몽이 카운터 뒤에 서 있는 조조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다 알고 있는 듯한 눈친데 뭘."
"말하자면... 무엇이 그렇게 다리를 절게 만들었는지 알고 있다는 건가요?"
큰 덩치의 레이몽이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했다.
"핵심은 그녀가 다리를 전다는 것이야. 어떻게 다리를 저는지 봤지? 예사로 심각한 게 아니지, 응?"
"그게 마음에 든다는 말... 말씀인가요?"
어린애가 당황해하며 말했다.
"그렇건 그렇지 않건.... 그 여자는 못생겼어. 그게 못마땅한 거지? 다리까지 저는 미운 오리 새끼. 사람들이 그 여자를 보면 고개를 돌리는 것은 얼굴을 찌푸리기 위해서야.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아. 그리고 이것 하나는 알아둬. 침대에서는 못생긴 여자가 기가 막히게 잘하는 법이야. 못생기면 못생길수록 다른 것으로 보상하려 하거든."
그쯤에서, 레이몽은 손등으로 콧수염을 쓸었다.
"아!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냐. 살아가는 데는 여자하고 자는 것만 있는 게 아냐. 자, 한 잔 들지?"


32
오래 전, 우리는 수영복마저 벗고 맨몸으로 물 속에 들어가는 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이십 년 전을 말한다), 물 속으로 들어가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이르면 살그머니 수영복을 벗어들고 지칠 때까지 수영을 했다. 발가벗은 몸에 물살이 와닿는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고 나서 아쉬움을 느끼며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그전에 물 속에서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다시 수영복을 꿰입는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외진 해변을 찾아 벌거벗고 햇볕을 즐겼다. 물 밖에서도 물 속에서와 마찬가지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벌거벗긴 했지만 일상의 행동을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고 할 수 있어 더 나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정한 이웃 사람들의 신고를 받고 나타나는 경찰들이 성가셨다.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 나체촌을 찾게 되었다.
나체촌은 생각보다 진지한 곳이었다. 벌거벗고 마음대로 사는 곳이 아니라 나체주의를 실현하는 장소였다. 같은 말이지만 어감의 차이가 있었다. 나체주의자들은 우리들에게 그 차이를 오랫동안 장황하게 설명해 주었다. 다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동의는 하지 않았지만, 별로 해가 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든지, 태양과 자연을 찬미하는 나체주의자들은 우리들의 틈입을 묵인해 주었다. 채식 또는 금연 따위의 부수적인 의례는 면제받은 채,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 생활의 자유분방함과 단순성은 높이 평가해 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두에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 놓은 것은 우리들식으로 나체주의를 해온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벗고 즐기는 것이 우리로서는 전혀 주목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어느 날, 대수롭지 않은 손님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갑작스레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아직 더위가 가시

지 않은 구월의 어느 저녁, 남편이 전화를 걸어 거래처 사람과 함께 집에 가서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삼십분쯤 뒤에 도착할 거야,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준비할게."
기록적인 시간내에 성대한 식탁을 차리는 것이 내 장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전화의 내용이 아니었다. 남편이 말하고자 한 것은 대충 빨리 식사를 준비해라, 누구랑 함께 들어갈테니였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남편은 단정하게 입은 롱드레스가 어울린다고 나를 추켜주고는, 곱슬머리에, 안경까지 쓴 꺽다리 손님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를 소파에 앉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목욕 좀 하고 옷 갈아 입고 나올 테니까. 제 아내랑 먼저 한 잔 하셔도 무방합니다...."
모르는 손님에게 나는 안주인으로의 모든 예를 다했다. 공통된 화젯거리가 거의 바닥날 때 쯤해서 인터폰이 울렸다.
여름 휴가 때 함께 바캉스를 갔던 친구 부부가 들이닥쳤다. 우연히 우리 동네를 지나가다가 같이 칵테일이나 한 잔 할까해서 들렀다고 했다. 나는 손님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친구들의 이름만 말하고 대충 소개를 끝냈다. 손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프랑수아예요."
"마르크는 어디 있어?"
베르나데트가 물었다.
"목욕 중이야."
베르나데트는 욕실을 향해 달려갔다. 키득거리는 소리, 웃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만 베르나데트가 비누거품을 곳곳에 묻히고 다시 나타났다. 그것을 보고 곱슬머리 키다리 손님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
앙드레가 호주머니를 뒤지면서 말했다.
"여름휴가 때 찍은 사진이 나왔어. 자 봐. 괜찮은 것들이 많아."
"음흉한

사람! 내겐 보여 주지도 않구서."
베르나데트가 말했다.
우리들은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사진을 돌려보았다. 사진의 내용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손님에게도 사진을 건네주었다. 사진을 받아든 손님은 콧수염을 쥐어 뜯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저녁 먹고 가. 생각이 있으면.... 음식은 충분해."
친구들에게 내가 말을 건넸다.
나는 친구 부부와 함께 재잘거리며 식탁을 차렸다. 그때, 마르크가 상쾌하게 목욕을 마치고 나와 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마르크가 그들에게 물었다.
"목요일인데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납시었어?"
"앙드레가 포르노 영활 보러 가자 그래서 한 편 보고 오는 길이야."
베르나데트가 말했다.
"그래," 앙드레가 말을 받았다.
"괜찮았어. 너희들에게도 얘기해주고 싶었어. 너희들이 봤어도 좋아했을 거야."
그 말에 이어서, 앙드레는 우리가 몇 주 전에 화제로 삼았던 환상적인 성유희를 다시 거론하며 영화가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위스키를 벌써 세 잔씩이나 마신 손님은 안경을 벗어들고 한참 열심히 안경알을 닦더니만 마침내 우리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식사중에 마신 보졸레 포도주가 그의 눈을 더욱 외설스럽게 만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내가 좌중을 향해 특별히 바쁜 일이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을 때, 손님은 서둘러 시간은 충분하니 전혀 상관치 말라고 대답했다.
"좋아요."
내가 말했다.
"그러면 배로 담근 술을 식후주로 한 잔 마시고 한 번 놀아봅시다. 어때요?"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은 싫어. 내일, 할 일이 많아."
앙드레가 간곡히 부탁했다.
잔을 채 비우기도 전에 손님은 조바심을 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우리는 술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것이 실망스러웠지만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모두가 잔을 다 비웠을 때, 마르크가 말했다.
"오늘은 브리지를 한 판 하지? 카드는 누가 가서 꺼내올래?"
그 말에 취기가 사라진 듯, 프랑수아는 입만 헤 벌리고 멍청히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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