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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란제리하우스 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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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713 회 작성일 24-02-12 12: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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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도쿄플라워 그리고 지하철
새벽 3시를 이제 막 넘긴 오동시의 사무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만이 겨우 어둠을 밝혀주고 있었다.
오동시는 모니터를 주시하면서 위스키잔을 기울였다. 그의 기분만큼이나 독한 위스키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목구멍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또 한 잔의 위스키를 따라서 마셨다. 취할 수만 있다면 흠뻑 취해서 정신을 잃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밤은 이상하게도 정신이 또렷한 게 쉽게 취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뭐랄까? 어느 책에선가 오래 전에 읽었듯이 자살을 하기에 좋은 밤이었다.
어둠에 잠긴 창문 저쪽으로 수지 모의 미소띤 얼굴이 실루엣처럼 스쳐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얼굴과 그녀의 미끈한 알몸과 그녀와의 아름다운 섹스...... 그래, 그 아름답고도 우아한 섹스 결코 동물적이지 않고 더럽지 않은 섹스...... 오동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느낀 그 섹스의 장면 들이 천천히 동영상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수지는 잊어야 해. 난 오직 수지의 행복만을 빌어주어야 해...! 알콜로 혼탁해진 머리 속에서 수지를 몰아내야 해...!
난 수지를 잊어야 한다구......!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여자를 찾아야 해!
그는 안간힘을 다해서 수지를 잊기라도 하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모니터에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도쿄플라워(Tokyo Flower)의 화려한 꽃무늬 홈페이지가 나타나 있었다.
붉은 장미와 노란 장미를 주제로 해서 원색적으로 만들어진 홈페이지는 우아하면서도 도발적이었다. 무언가 끈끈한 에로티시즘을 강조하는 것 같으면서도 비즈니스의 세련됨이 있어서 기대에 부풀게 만들었다.
그는 망설이다가 회원이라고 쓰인 버튼을 마우스로 눌러주었다. 그는 약 반 년 전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도쿄플라워에

회원으로 가입을 했지만 이용을 결심한 건 처음이었다.
화면이 바뀌자 그는 키보드를 두드려서 자신에 관한 몇 가지를 기록해 넣고 컴퓨터 앞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사무실과 연결이 된 문을 열었다. 그곳은 원룸으로 만들어진 오동시의 생활공간이었다. 그는 침대로 비틀비틀 다가가서 쓰러지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그가 눈을 뜬 건 오후 4시였다. 지난 보다 기분은 좀 나은 상태였다. 그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어깨에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이 없는 노트북 컴퓨터를 걸쳐메고 사무실로 나왔다.
박유미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 좀 나갔다가 올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죠? 몸은 괜찮으세요?"
그녀는 수지와의 이별 때문에 몹시 상심해 있을 그의 기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탁해."
오동시는 그의 스타로드는 그대로 두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그는 매표구에서 1구간 표 한 장을 사들고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철을 탔다. 승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렸다. 롯데백화점으로 통하는 출구가 보였다. 그는 가급적 천천히 그리로 다가갔다. 백화점 입구에는 젊은 남녀들이 유난히 많았다. 손목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베이지색 투피스 차림에 짧은 머리의 여자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170센티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큰 키에 세련된 용모가 돋보이는 여자였다. 얼굴은 한눈에 보아도 예뻤고 모든 게 수준급이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오동시 선생님이신가요?"
공손한 일본어로 여자가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오후 2시 비행기로 서울에 도착한 아리사까 고무로예요."
"반가워요."
오동시는 망설이다가 그녀와 악수를 했다.
"저는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데 어떻게 하죠? 서울에는 몇 번 놀러왔었기 때문에 을지로 순환선 같은 건 알고 있습니다만......."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아리사까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을지로 순환선을 이용합시다."
두 사람은 지하철 매표구에서 표를 사서 탑승구로 내려갔다. 지하철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미끄러지듯이 다가왔다. 승객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좌석을 채우고 몇몇 승객은 서 있는 상태였다. 승객들은 주로 젊은 직장인과 학생 등의 부류였다.
두 사람은 반대편 출입구 쪽으로 섰다. 아리사까가 앞에 서고 오동시는 뒤에 서는 자세였다.
"실례입니다만 직업을 물어봐도 될까요?"
오동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물어보았다. 아리사까가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대답했다.
"공무원이에요. 지금은 특별 휴가 중이구요. 그런데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계신 걸 보니 프로그래머이신 모양이죠?"
"프로그래머는 아니지만 컴퓨터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요즘은 컴퓨터가 없으면 생활이 안되는 세상이죠."
오동시는 짧은 스커트 아래에 드러난 그녀의 미끈한 다리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질좋은 스타킹에 부드럽게 감싸여 있는 그 다리는 보기 드물게 늘씬했으며 자세도 좋았다.
오동시는 주변의 승객들을 한 번 돌아보고는 오른손을 미끄러뜨려서 아리사까의 스커트 자락을 만졌다. 긴장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고 모든 승객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만 쏠리는 것 같았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는 용기를 내어 그녀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쓸어보았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손바닥 가득 전해져오면서 아리사까가 움찔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18.플레이 코스

이병태 형사는 1304호를 노크하고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문을 벌컥 열었다. 박유미가 혼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불쾌한 얼굴로 일어섰다.
"무슨 일이죠? 요즘 경찰관은 노크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모양이죠?"
"안녕하십니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다시 들렀습니다."
"지금 사장님은 외출 중이신데요."
"아, 괜찮습니다. 오동시 씨에게 볼일이 있는 게 아니라 박유미 씨에게 있는 거니까요."
"저한테요?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나요?"
"호다리 세이이찌 피살사건 발생 시간에 왜 박유미 씨는 오동시 씨와 같이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니까? 그 시간에 카섹스를 했다구요? 혹시 박유미 씨는 오동시 씨와 결혼할 사이라도 되는 겁니까?"
이형사는 일부러 마구 몰아붙였다.
"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죠? 저는 분명히 그 시간에 사장님과 함께 카섹스를 했어요. 대체 무슨 증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박유미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박유미 씨. 당신을 공무집행방해죄로 당장에 체포할 수도 있어요. 앞으로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각오해야 할겁니다. 아가씨도 잘 알다시피 오동시 씨는 수지 모라는 수퍼모델을 몹시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가씨와 함께 그 시간에 카섹스를 해? 대체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그녀의 안색이 변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수지 모가 국내에 있었다는 걸 알까? 막노동자 같은 우리나라의 형사들치고는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녀의 음성에는 이미 힘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바른대로 말해줘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줄 알고 사실대로 말해줘요. 만약 이번에도 거짓말을 한다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이형사는 엄포를 놓듯이 완강한 어조로 말했다.
"좋아요.... 사실대로 말하겠어요. 이렇게 된 이상 무얼 더 숨기겠어요...?"
문득 그녀가 허물어지는 어조로 말했다.
"사실 사건이 발생하던 시간에 저는 사장님과 같이 있지 않았어요. 그 시간에 사장님은 수지 모와 함께 있었어요. 형사님도 아시다시피 수지 모가 국내에 있다는 것 그리고 사장님과 사귀고 있다는 것이 매스컴에 드러나면 절대 안되는 것 이어서 제가 부득이 거짓말을 했던 거예요. 사장님은 그 시간에 스타로드를 타고 수지와 함께 드라이브를 했던 거예요.... 저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다른 의도가 있어서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니까 제발 용서해 주세요...."
이형사는 기운이 탁 빠지는 것만 같았다.
망할...! 이거다 싶었는데...!
그녀는 그런 이형사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속으로 혀를 낼름, 하고 내밀었다. 이게 바로 임기응변이라는 거라구...! 스스로 생각해도 아주 잘 둘러댄 것 같아서 그녀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것도 틀림없이 거짓말은 아니지요?"
이형사는 맥없이 물었다.
"물론이에요.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수지 모에게 연락을 해서 확인해 보세요."
이 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지는 그와 같은 말단 경찰관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거리의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마치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그녀에게 확인을 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녀는 외국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든지 오동시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좋습니다. 수지 모의 연락처 좀 주시겠습니까?"
일단 이형사는 이렇게 요구했다.
"개인적인 연락처는 사장님만이 알고 계시는데요."
수첩을 탁 소리가 나도록 덮은 이형사는 일어서서 1304호를 나왔다. 그의 뒤에 대고 박유미가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곧 매력적인 여자의 음성이 요란한 소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나 이형사야.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지하철 속에 아니 을지로 순환선 안에 있어요."
"오동시는 있고?"
"물론이에요. 어떤 여자와 함께 있어요."
노미 형사는 오동시를 오피스텔에서부터 주욱 미행하고 있었다.
"여자와? 수퍼모델 아니 그 수지는 아니고?"
"선배님도 참, 수지는 출국했잖아요? 어쨌든 혼자 보기는 아까운 장면이 많이 있어서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겠어요. 그런데 선배님 일은 어떻게 됐죠?"
"틀렸어. 박유미에게 깨끗하게 한 방 먹었어. 뉴시티 호텔 부근에 가서도 스타로드를 본 사람이 있는가 하고 탐문 수사를 해보았지만 그것도 틀렸어. 그 커다란 스타로드를 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망할......! 오늘은 재수가 옴 붙은 날이야. 어쨌든 노형사는 한 건 건져서 오라구."
"아, 알았어요. 더 이상 가슴이 두근거려서 말을 못하겠어요. 전화 끊어요...."
"무슨 소리야? 심장병이라도 걸린 거야?"
그러나 이형사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져 버렸다.
가슴이 두근거려? 대체 무슨 소리야?


이형사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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