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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1』 제94부 거짓말과 섹스 ②
내가 말을 해 놓고도 너무나 어이가 없고, 대책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런 말이라도 해야 소장과의 섹스가 합리화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랑은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리고 사랑은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냥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 거지..."
"그럼 그 때는 왜 그랬어요?"
소장의 말이 너무 진지하게 들려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다시 떠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어떻게 강제적으로 섹스를 하려고 했는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 이다.
"아! 그때는 나도 모르겠어.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난 그 때 일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몰라."
소장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며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순간 이 남자의 말이 진실 일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아요. 그 때 있었던 일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어요.
저도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니까요.
하지만 날 사랑해 줄 수는 있는거죠?"
소장의 말이 진실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야릇한 생각이 떠올랐다.
일종의 유회 였다.
소장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소장에게 날 사랑한다는 말을 받아 내고야 말겠다는
거짓의 유회 였다.
그러면서도 소장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장 이 자리를 떠나겠다고 생각했다.
"난 널 사랑하고 있지 않아.
널 사랑하기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어."
소장은 벌떡 일어났다.
탁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와 침대에 걸터앉으며 나를 바라
봤다.
"왜 건널 수 없다는 거죠?"
"난 며칠 있으면 이혼 경력이 있는 사십 대 남자가 돼.
그러나 미스 노는 아직 이십대 초반이야.
이런 우리가 세상의 시선을 곱게 받아들이면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소장의 말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소장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소장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와
결혼을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장의 생각처럼 다른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언제부터 싹트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절망하고 있는 소장에게 더 큰
상처를 주기 위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 졌다.
"나이가 무슨 상관 있다는 거죠?
언젠가 신문에서 보니까? 서른 몇 살 먹은 노처녀하고, 칠십대 노인하고 결혼을
했다는 보도가 있다던데.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우린 겨우 열 여덟 차이 밖에
안 나잖아요?"
소장의 말이 진실의 빛을 밝힐수록 나는 조금씩 요염해 지고 있었다.
소장이 피우던 담배를 살짝 뺏어서 한 모금 길게 피우고 다시 그의 입술에 꽃아
주기까지 하는 여유를 부리고 있을 정도 였다.
"그들은 예술가야.
현실을 초월하고 이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 들이지.
하지만 우린 틀려.
난 보험회사 영업 소장이고..."
"저는 그 영업소의 여 사원 인 하찮은...
그야말로 빛날 거 없는 인간들이라 이 말씀이죠?"
소장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을 때, 나는 갑자기 우울해 지기 시작했다.
언제 내가 소장의 사랑을 빙자해서, 그를 고통 속으로 몰고 들어갔는지 의심이 될
정도 였다.
영업소 내에서 설계사들에게나, 직원들 앞에서 늘 당당해 보이던 소장도 이 처럼
인간적인 갈등이 숨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 말 처럼 우리 모두가 빈약한
존재들이 맞을꺼라는 생각이 들면서 였다.
"미스노는 착해."
소장이 내 손을 끌어다가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착해요?"
한방 먹은 기분이었다.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이처럼 순수하게 대해 주고 있는 소장의 뭐가 미워서
사랑을 빙자해서 상처를 주려고 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아름답고...그 말밖에 생각이 안 나는군."
소장이 내 손을 잡고 있는 손에 지긋이 힘을 주며 다시 말했다.
그런 소장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상처를 주면 소나기
같은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았다.
"그렇게 싱거운 말이 어디 있어요.
그러나 걱정은 하지 말아요.
억지로 사랑해 달라는 말은 안 할 테니까요.
그런데 남자가 왜 그렇게 박력이 없어요.
영업소 내에서는 절대 군주처럼 굴더니..."
"거긴 직장이고, 여긴 선미 앞이잖아."
"좋아요. 소장님은 제가 첫사랑 여자를 닮았다고 했잖아요.
그런 제가 소장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절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없나 보죠?"
나는 우울해 질수록 또 다른 방향에서 소장의 상처에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내 자신이 밉기는 했지만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로 소장을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난 빈말을 못해,
더 이상 여자들에게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
소장이 괴로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했을 때 나는 금방이라도 손을 들고 항복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들이란 원래 그런지 몰라도 마음과 다르게 소장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점이 서운 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여자들에게 아픔을 주고 싶은 게 아니라 또 상처받게 될 까봐 겁이 나시는 거죠?"
"그럴지도 모르지."
소장의 괴로운 표정으로 내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나도 소장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방갈로의 그 어둠 속에서 입술을 비비고 젖꼭지를 빨리고 알몸이 되어 땀을 뻘뻘
흘리던 얼굴이 이 얼굴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소장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용기를 내서 날 사랑해 봐요.
난 첫사랑의 여자와 비슷하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내 말이 끝나자 마자 소장이 나를 끌어 당겼다.
소장의 가슴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그의 눈을 응시했다.
마음이 변하면 시선도 변하는 것일까?
그 동안은 못 느끼던 점이었는데 소장의 눈이 양처럼 무척이나 선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소장이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을 지켜 보다가
손을 뻗어서 목을 껴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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