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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포르노 소설 번역가』 제11화 이별을 거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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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947 회 작성일 24-02-12 04: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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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 이게 제가 가지고 있는 끝입니다.
더 있으신 분이 계속해서 연재를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포르노 소설 번역가』 제11화 이별을 거듭하며
- 류 희 -

당신과 메일교환을 한 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군요. 당신의
메일을 기다리는 설레임 덕분에 제 모습이 얼마나 생기있어
졌는지 모르죠?

사람에 대해서 설레임을 느껴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서
른이 넘은 나이에 여전히 스무살 시절의 달콤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물론 그동안의 메일로 이야기 했듯이 나는 성에 대해 개방
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여자이므로, 당신과 메일을 나누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한 적이 있지만 (아, 이렇게 말
하면 당신이 화낼까요), 이렇게 첫사랑 할 때처럼 가슴설레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가끔씩 들려주는 충고들이 흐트러지려는 생
활을 많이 잡아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언제 우리도 한
번 만나야죠? 당신은 워낙 모범가장이시니까 아내 이외의 여
자와는 만나지 않으려 하시겠지만, 후후.

저도 모범가장을 유혹하는 나쁜 이혼녀가 되긴 싫습니다.
그럼, 내일 또 당신의 메일이 수북히 와 있기를 기대하면서.
M>


---당신과 메일을 나누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한
적이 있지만 (아,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화낼까요)---

당연히 화가 나지요. 아니 화가 난다기 보다 질투가 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질투란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 할 때도 있지만, 때로 그 뜨거운 마음을 빙점
이하로 얼어붙게 할 때도 있는 법.

난 당신의 메일을 읽으며 내 마음이 빙점이하로 얼어붙는
느낌을 잠시 받았습니다.

당신은 자주 메일속에 당신이 만난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그 글들을 읽었습니
다. 그리고 웃으며 쓰는 글인 척 답장을 썼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어쩌면 사랑하는지도 모르는) 여자
가 뭇 남정네의 품속에서 혹은 그 아래에서 혹은 그 위에서
교성을 지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분좋을 남자가 어디 있겠
습니까.

당신이 들려주는 당신 주변의 남자 이야기들은 그대로 내게
와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달 남짓 당신과 메일을 교환
하는 동안 내 가슴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남자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나
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설레인다는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처난 가슴위에 또 상처를 내는 일은 말아주십시오.

당신을 책임질 수 없는 처지이면서 당신의 행동에 대해 간
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단지, 한 아이를 가진 엄마로
서, 어느 정도 공인이 된 작가로서 조금 더 절제된 생활을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기분나빴다면 용서하십시오. 십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내 이
외의 여자와는 손한번도 잡아본 적 없는 저의 사고방식으로
는 당신이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어쩌면 난 당신의 그런 요녀같은 면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
습니다만.

그럼, 당신의 말대로 얼굴 볼 수 있는 날이 가까운 장래이길
바라면서 줄입니다.

당신은 서른여섯에 겨우 만난 나의 첫사랑입니다. S>


당신의 메일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너무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고해성사 하듯 당신에게 아무 사심없이 들려주었
던 내 주변사들에 대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실 줄은 몰랐습
니다.

언제든 쉬고 싶은 고목나무같은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가 기대고 있던 무게를 무겁게 느꼈다니, 이제 더 이상 메일
교환을 할 필요성이 없어졌군요.

그래요. 난 뭇 남정네와 틈만 나면 교성을 지르며 섹스를 하
는 요녀예요. 당신처럼 아내밖에 모르는 사람과는 격이 틀릴
지도 모르겠네요.

그동안 메일 즐거웠습니다.M>

그녀는 그에게 절교장같은 메일을 쓰는 가슴이 몹시 아렸다.
모처럼 만난 진짜 사랑이라고 느꼈던 사람이었는데 겨우 한
달동안의 메일교환만으로 끝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녀의 일방적인 절교선언이기는 하지만 그녀라고 해
서 그와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을 뿐이다. 그
자존심을 치유받기 위해서는 이런 메일을 보내서 그가 치마
자락 잡고 매달리며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어디선가 동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정말 헤어지게 된다면......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잃는 것, 사랑을 잃는 것에 그녀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이 정도의 아픔에 가슴앓이 할만큼 여린 가슴을 가지
고 있지는 않다고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 눈물은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남편과 헤어질 때도 흘렀던 눈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단 한 번이라도 마음속
에 들어왔다 나가는 사람에 대한 마지막 애정표시라고 그녀
는 생각했다.

남편?

그녀는 끝말잇기를 하듯 이어지던 생각 끝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남편을 떠올렸다. 그 모진 사람(그는 내가 모질다 하
겠지만)은 자기 딸도 보고싶지 않은지 헤어진 후 한 번도 연
락이 없다.

합의이혼이라고는 하지만 그녀가 이혼이란 말을 꺼낸 후 그
는 적어도 열흘동안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며 그녀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애썼다.

어쨌거나 그는 그녀를 사랑하였던 것이다. 그녀가 없는 삶이
란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록 도
화살이 있는 그녀와 달리 전혀 성생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긴 하였지만, 그래도 틈만 나면 그녀의 아래쪽에 대단한 집착
을 보이기는 했었다.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 그녀를 눕혀놓고 (라기 보다 그녀가
누워있을 때) 스커트를 걷어부치고 팬티를 벗긴 다음 그녀의
그곳의 구조를 자세히 보려고 애쓰는 그의 모습은 사춘기 소
년같았다.

아니다. 개구리를 해부하는 초등학생의 시선같았는지도 모른
다. 그는 한참동안 두 손으로 이리저리 뒤집어보고 찔러보고
건드려 보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어휴, 드러워." 하고 손을 씻
으러 가는 것으로 그 실험을 끝냈다.

실컷 아래쪽의 애무 아닌 애무를 받으면서 그녀가 잔뜩 젖
어들고 있을 때 그는 그렇게 손을 떼었다. 그녀의 성기는 그
에게 있어 개구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실험대상에 지나지 않
았기 때문이다.

"여길 만지면 기분이 좋아?"

"이렇게 벌려주면 어때?"

"이렇게 클리토리스를 꼬집으면 아퍼?"

"G 스포트라는 게 어딨을까? 그걸 건드려주면 여자도 사정
을 한다며?"

그러나 그 실험은 언제나 그녀의 입에서 약간의 신음같은
소리가 새어나올 때, 그리고 그곳에서 끈적하게 뭔가가 묻어
나올 때 정확하게 끝났다.

겨우 그 정도로 끝날 걸 알면서 그것도 마지막엔 "어휴, 드
러워." 하는 말을 들을 걸 알면서 그곳은 왜 주책없이 젖어드
는지 대뇌에서는 왜 쾌감을 전달하는지 그녀는 오히려 남편
보다 자신의 그런 신체구조에 더 화가 났었다.

남편이 결정적으로 그녀와 헤어질 걸 마음먹었던 것은 그녀
가 마지막에 악을 쓰며 내뱉은 이 대사 때문이었다.

"당신을 만난 후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어!"

도장을 찍고 법적으로도 확실히 남이 되어 법원을 나올 때
그녀는 처음으로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는 사실을 발
견하였다.

먼산보는 척 하며 계속 눈물을 감추더니 나중엔 마치 그녀
가 투명인간이어서 보이지 않기라도 한 듯, 꺼이꺼이 소리내
어 울어서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주차장까지 다 와서 서로 다른 차에 올라탈 무렵에 그제서
야 그녀가 보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한마디 했다.

"당신을 만나서 정말 행복했었어."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눈물이 젖어나
올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지않았던 결혼생
활 동안 수도 없이 그에게 보인 눈물이다. 헤어지는 이 마당
에까지 그에게 눈물을 보이긴 싫었다.

하지만 그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그녀는 운전대에
엎드려 목놓아 울었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그의 울타리였
다. 그런데도 가슴이 쓰라렸다. 정말 사랑보다 무서운 건 정
이었다.

그래도 4년동안 그의 와이셔츠를 다려주었으며 밥을 해주었
으며 팬티도 빨아주었으며 그의 아이도 낳아주었으며 가끔은
그를 위해 사타구니를 벌려주었다.

이제 그에게 와이셔츠를 다려주지 않아도 되고 밥을 해주지
않아도 되고 팬티를 빨아주지 않아도 되고 그의 아이는 더더
욱 낳을 필요가 없으며 볼썽사납게 사타구니를 벌리지 않아
도 된다.

그것이 슬펐다. 지금까지 익숙해져 왔던 모든 사실들과 기억
들과도 헤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녀는 아직도 눈물이 가시지 않은 젖은 눈으로 잠든 윤지
곁에 가만히 가서 누웠다. 윤지는 잠결에도 엄마가 온 것을
아는지 조그만 팔을 벌려 그녀의 목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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