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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란제리하우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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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523 회 작성일 24-02-12 03: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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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미녀와 살인
강남경찰서 강력4반의 이병태(李炳泰)와 노미(盧眉), 두 형사가 뉴시티 호텔의 504호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감식계원들이 도착해서 카메라를 번쩍이고 있었다. 그들은 두 사람을 보고는 부녀(父女)께서 오셨다고 하면서 낄낄거렸다.

이병태는 그들을 노려보면서 뭐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가는 입을 다물었다. 피냄새가 너무 지독했고 또 피살자의 모습이 기괴했기 때문이었다. 이병태는 뚱뚱한 몸을 기울여서 피살자를 살펴보았다. 둔기로 이마를 가격당해서 죽었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깨진 이마에서는 피와 함께 뇌수가 흘러나와서 버터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나이에 이마가 약간 벗겨진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형사같은 사내였다. 다만 나이가 좀 들고 인상이 험악한 늙은 형사였다.

그는 형사 생활 31년에 갖가지 사건을 경험했지만 이렇게 벌거벗은 온몸에 하얀 칠을 하고 죽어자빠져 있는 피살자의 모습을 보는 건 또 처음이었다.

"몸에 베이비 파우더를 칠한 것 같아요."

노미가 그의 곁에 쭈그리고 앉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올해 스물일곱 살의 여형사로 이제 경찰에 입문한 지 1년이 채 안되는 신출내기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잠시 모 회사 비서실에 근무하다가 경찰관이 되었는데 경찰관치고는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키는 175센티미터에 몸무게는 57킬로그램, 바스트 35, 허리 24, 히프 35의 사이즈였다.

이 수치는 물론 동료 형사들이 재본 건 아니고 그녀가 강력반에 배치되었을 때, 동료들이 몹시 궁금해하는 눈치를 보이자 그녀 스스로가 당당하게 밝힌 내용이었다. 그때 그녀의 말을 들은 동료 형사들은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는 짐승들! 이라고 말하고는 어딘가로 사라졌었다.

"일본인이에요, 이건 피살자 신상명세서구요."

노미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부녀간이라서 그런지 손발이 척척 맞는구만. 부러워, 부러워. 나는 언제나 저렇게 이쁜 딸과 함께 다녀보나."

또 누군가 뒤에서 낄낄거리면서 말했다.

"제기랄...! 어떤 놈이야...! 대가리를 부숴놓기 전에 입다물지 못하겠어? 누군 이 짓거리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네놈들도 부러우면 네놈들 딸내미라도 데리고 다니면 될 거 아냐?"

이병태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이병태가 화가 나면 물불을 안가린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움찔해서 딴청들을 부렸다.

이병태는 노미를 한 번 노려보고는 뭐라고 한마디하려다가는 쓴 입맛을 다실 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물론 이병태와 노미는 부녀간이 아니다. 다만 부녀간처럼 보인다고 동료들이 그렇게 놀리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 팀은 지독한 언밸런스였다. 한 사람은 나이가 오십대 중반의 뚱뚱하고 험악하게 생긴 남자인 반면에 또 한 사람은 이십대 후반의 아름다우면서도 늘씬한 아가씨다. 그들이 범인을 잡으러 거리를 걸어간다고 생각해보라. 길을 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한번쯤은 뒤돌아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언제나 붙어다닐 수밖에 없는 짝이다. 요즘 같이 강력사건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때에는 하루에 평균 18시간 이상은 붙어 지내야 한다.

어떤 놈은 늘그막에 복 터졌네 하는 소리도 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딸같은 동료와 함께 하루 종일 싸돌아다닐 생각을 해보라. 아마 그런 소리는 쑥 들어갈 것이다.

이병태는 서류에 눈길을 주었다. 호텔의 숙박부에 기록되어 있는 간단한 자료였다.

국적:일본

성명:마쓰다 히사오

생년월일:1963년 5월 22일

주소:도쿄도 렌바구 강이쬬오 2231번지

직업:회사원

참고:숙박 상태는 일주일을 숙박할 예정이었으며 마쓰다 히사오 명의의 마스터 신용카드를 오픈시켜 놓은 상태임

이병태는 서류를 노미에게 건네주고 경대 쪽으로 가서 그 위에 놓인 여성 팬티 두 장과 분비물을 살펴보았다. 분비물은 한눈에 보아도 정액이다. 그런데 여자 팬티는 뭔가? 페티시즘에 빠진 자의 소행? 어디선가에서 보고들은 일이 있다.

이병태는 여자 팬티를 들고 살펴보았다. 새 것은 아닌 게 확실했다. 이병태는 팬티를 뒤집어서 살펴보았다. 피비린내 속에서도 여자의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다른 팬티 한 장에는 팬티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음모 한 가닥도 붙어 있었다. 음모는 약간 갈색이며 아주 부드럽다. 그리고 새하얀 팬티의 사타구니 부분에는 약간의 희미한 얼룩도 묻어 있다.

"... 팬티가 하나는 외제고 하나는 국산이에요. 둘 다 고급품이구요. 사이즈로 볼 때는 처녀가 입던 것이구요. 아마도 강제로 여자에게서 벗기거나 했을 거 같아요. 일부러 벗어준 게 아니라면 말예요."

헛기침을 한 노미가 약간은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고급품이라는 건 뭘 말하는 거지?"

팬티를 노미에게 건네준 이병태가 물었는데 그것은 이병태가 오늘 처음 노미에게 한 말이었다.

"그건 팬티가 비싼 것이라서 아무나 쉽게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적어도 그 팬티들은 한 장에 5만원 이상 가는 거니까요"

"노미는 얼마짜리를 입었지?"

이병태는 남자 동료에게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하지만 노미는 얼굴을 붉혔다. 그녀도 형사이기 전에 젊은 여자였다.

"세 장에 2만원짜리니까 낱개로는 7천원 정도 되겠죠."

"그럼 그게 대다수의 평범한 여자들이 입는 팬티의 가격이 되겠지?"

"보통은 1만원 내외의 가격대 것을 입는 것 같아요. 물론 돈도 없으면서 외제 속옷을 찾는 아이들도 있지만요."

"그럼 이 팬티는 일단은 부유한 계층의 미혼 여성들에게서 벗겨진 것으로 봐도 되겠지?"

"그렇죠. 혹시 이런 호텔로 몸을 팔러오는 여자들한테서 사거나 강제로 벗긴 게 아닐까요? 이런 곳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 같으면 일단은 속옷이 외출복 같은 개념이 있어서 비싼 것을 입지 않겠어요?"

외출복 개념...? 이병태는 실소를 지었다.

"그럼 여기 마스터베이션을 한 자국 같은 건 뭐야? 여자와 섹스도 하고 마스터베이션도 즐긴다? 그 정도로 힘이 넘친단 말야?"

이병태는 머리를 흔들면서 분비물을 가리켰다. 이병태는 노미에게는 말을 안했지만 5cc는 될 것 같은 엄청난 분비물의 양으로 보아 피살자가 여자와 섹스를 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여겼다. 적어도 5cc 정도의 정액이 저장되려면 물론 체질에 따라 다르긴 하겠으나 최소한 삼사일 정도는 금욕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5cc의 양도 보통 사람으로서는 배설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보통 건강한 성인 남자는 1회에 3cc 정도의 정액을 배설한다.

얼굴이 넓적하게 생긴 호텔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노미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 부탁하신 거 가져왔습니다."

마쓰다 히사오가 504호에서 전화를 사용한 기록이었다. 일본으로 국제 전화를 사용한 기록이 다수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통화 시간이 최소한 30분 이상씩 될 정도로 길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국내 통화 기록은 한 건도 없었다. 어떤 목적으로든 한국에 일을 보러 온 사람이 국내 전화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이병태는 그 통화기록을 챙겨서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이봐, 이리 잠깐 와보게."

이병태는 막 방을 나가는 호텔종업원을 불렀다.

"자네가 이 방 담당이었나?"

"그렇습니다만...."

"그럼 혹시 자네가 피살자에게 여자를 소개해 준 적이 있나?"

"여자라뇨?"

"몸파는 여자말야. 괜찮으니까 딴청부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없습니다."

"정말이지? 나중에 딴소리 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이병태는 엄포를 놓았다.

"물론입니다."

종업원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여기에 있는 팬티들은 피살자가 다른 곳에서 구했다는 것이 된다.

종업원이 돌아가고 나자 이병태는 방안을 살펴보았다. 피살자의 옷가지와 소지품들이 전혀 눈에 뜨이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범인은 피살자를 죽인 다음에 모조리 쓸어가버린 것이다. 하다못해 냄새나는 팬티와 양말까지도 말이다. 따라서 단순 절도 등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라기보다는 원한 등에 의한 계획적 살인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리고 피살자의 머리통 앞에 있는 캔음료, 그러니까 범인에게 대접하려고 했을 그 캔음료가 그것을 더 확실하게 증명해준다.

노미는 비닐장갑을 끼더니 피살자를 들척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포경 상태인 마쓰다 히사오의 물건을 확인하고는 그것을 막대기라도 되는 것처럼 들어보았다. 그 나이에 포경이라는 것이 그녀의 상식으로도 특별하게 여겨졌다.

그 부분에도 처음에는 베이비 파우더가 진하게 칠해져 있었는데 마스터베이션 때문에 많이 지워져 있었다.

경대 위의 여자 팬티만 볼 것 같으면 페티시즘에 빠진 자가 틀림이 없는데 또 온몸을 하얗게 칠을 한 건 또 뭘까? 피살자를 뒤집어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체격이 좋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점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문신 같은 것도 없다. 베이비 파우더는 상당히 정성들여서 잘 칠해져 있는 편이었다. 최소한 30분 이상은 소모해서 칠을 했으리라.

비닐장갑을 벗고 일어서려던 노미는 문득 피살자의 성기(性器) 상단부분에 뭔가가 씌어져 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는 볼펜으로 작은 글씨가 씌어져 있었는데 읽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글씨가 씌어져 있는 부분의 피부를 약간 당겨보았다. 글씨가 겨우 보였다. 아마 성기가 한껏 팽창한 상태에 있을 때, 전화를 받거나 그와 유사한 상태에서 성기에 메모를 한 것이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성기에 메모를 한다는 건 들어본 일도 없는 짓거리다.

mystman

pm 6:00

"미스트맨, 신비한 남자, 오후 6시...? 신비한 남자를 오후 6시에 만난다...?"

어쨌든 그녀는 그것을 수첩에 옮겨 적어놓았다.

"별 희한한 일본놈 다보겠네. 적을 데가 없어서 그래 물건에다 메모를 해?"

감식계 직원이 뭔가 해서 들여다보더니 혀를 차면서 재미있어 했다.

노미는 이제 비닐장갑을 벗어버렸다. 지독한 피냄새 때문인지 불현듯 담배 한 대를 태우고 싶은 생각이 솟구쳤다. 그러나 그녀는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부패해 가는 피냄새를 맡고 어느 틈으론가 들어온 파리떼들이 붕붕대며 피살자 위를 날아다닌다.

강력4반 사무실로 돌아온 이병태와 노미는 일본대사관에 자국 국민이 피살되었음을 통보하는 한편, 동경경시청에 수사협조 요청을 했다. 그런데 이병태가 문득 일어서서는 수사과장실로 들어갔다.

"제기랄! 나보고 뭘 어쩌란 거야? 오늘은 상사고 나발이고 얘기 좀 해야겠어."

이병태는 소파에 엉덩이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수사과장은 그런 이병태를 쳐다보면서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왜 또 그러시나?"

"왜 그러냐고? 언제까지 저 애송이를 나한테 붙여서 웃음거리를 만들 거야? 나보고 옷을 벗으라는 거야 뭐야? 아니면 내가 유모라도 되는 줄 알아?"

이병태는 그간의 화풀이를 하려는 것처럼 나오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알겠어. 좀 진정해, 진정해. 어린애처럼 그러지 말고."

수사과장은 이병태를 달래면서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실은 경찰학교 동기이면서 친한 친구였다. 한 사람은 귀밑머리가 허옇도록 겨우 경장에 머물고 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바로 경찰서장 아래의 계급인 경정까지 올라가 있었으며, 조만간 총경 승진과 함께 다른 경찰서의 서장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만약 내가 노미와 계속 파트너를 해야 한다면 차라리 나를 다른 곳으로 전출시켜 줘. 그게 더 낫겠어."

"그러지 말고 참고 내 말 좀 들어봐. 자네가 아니면 누가 노미 형사를 파트너로 맞이하겠어? 다른 팀들? 그 팀들에서는 자네보다 더 난리를 칠 거라구. 자네도 생각해봐. 총각 형사와 이쁜 처녀 형사가 밤낮으로 붙어 다니면 일이 제대로 되겠어? 그리고 조만간 다른 여형사 한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어. 그렇게 되면 노미를 그 여형사와 짝을 지워줄 테니까 나가서 일보라구. 자, 자, 난 바쁘니까 어서...! 어서...! 그리고 일본인 피살 사건은 신경 좀 쓰고...!"

수사과장은 이병태의 등을 밀어서 밖으로 내보냈다. 이병태는 속이 씁쓰름했지만 할 수 없었다. 또 속는 셈 치는 거였다.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노미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이병태를 노려보았다.

"왜 그래, 노형사?"

"선배님, 나 좀 봐요."

노미가 이병태의 손을 잡아끌었다.

"왜 그러는 거야?"

"나 좀 보자니까요!"

이병태는 할 수 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갔다. 뒤에서 동료 형사들이 어째 오늘은 딸한테 아버지가 당할 거 같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킬킬거렸다.

제길...! 이게 무슨 꼬락서니인가?

이병태는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노미의 뒤를 따라 경찰서를 나왔다. 노미는 늘씬한 몸을 흔들며 앞장서 가더니 불고기집으로 쑥 들어갔다.

엉거주춤 그가 따라들어오자 노미는 아줌마 소주 두 병하고 돼지갈비 2인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앉아요."

이제는 숫제 명령조였다. 노미는 뚱뚱한 아줌마가 소주를 가져오자마자 병째로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노형사, 대낮부터 이게 무슨 짓이야? 지금 3시밖에 안됐어."

"놔요! 난 오늘 좀 마셔야겠어요!"

이병태는 그녀를 내버려두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도 늙다리와 함께 다니자니 맺힌 게 많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망할......!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이병태도 소주 한 잔을 자작했다. 노미가 갑자기 그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나보다 이뻐?"

어느 새,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소주병이 바닥나 있었다.

"아니."

이병태는 순순히 고개를 저어주었다.

"아저씨, 나보다 젊어?"

"아니."

"아저씨, 나보다 노래 잘해?"

"아니."

"아저씨, 나보다 컴퓨터 잘해?"

"아니."

"근데 아저씨는 왜 나한테 까부는 거야?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을 하는 거야? 나보다 잘하는 게 하나도 없으면서? 그럼 나이먹은 게 자랑이야?"

늦은 점심을 먹으러 온 손님들 몇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킬킬거렸다. 이병태는 죽을 맛이었다. 다 늙어서 이게 무슨 꼬락서니인가?

노미는 소주를 두 병째 마시는 중이었으나 이병태는 말리지 않았다. 대신 조용하게 말했다.

"노미야, 다신 안 까불 테니까 그만 일어나자. 내가 잘못했다."

입에서 술병을 뗀 노미가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정말이라니까. 다시는 너한테 까불지 않을게."

노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발그레하게 술기운이 오른 얼굴이 더욱 예쁘고 귀여워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형사보다는 탤런트나 모델 같은 연예계 쪽으로 어울리는 얼굴이다.

"아저씨, 그 말 정말이지?"

"맹세해."

"좋아, 그럼 일하러 가야지. 난 아저씨가 마음에 들어. 그 벗겨진 머리도 귀엽구. 생각같아서는 쓰다듬어주고 싶어."

노미는 벌떡 일어서더니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보다 제법 술이 센 여자였다. 안주도 없이 소주를 한 병 반이나 먹고도 끄떡이 없다.

강력4반으로 돌아온 그들은 호텔에서 가져온 마쓰다 히사오의 전화통화 기록을 다시 펼쳐들었다. 마쓰다는 일본 내의 한 번호로만 일곱 차례 통화를 한 상태이며 총 통화 시간은 8시간 37분이었다. 통화 시간 치고는 지나치게 긴 편이었다. 그것도 국제전화를 굳이 한국까지 와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가 의문이었다.

노미가 직접 일본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신호음이 두 번 가고 팩시밀리에서 수신대기 할 때와 같은 신호음이 이어진다. 세 번을 반복해서 걸어보아도 마찬가지다. 노미는 짚이는 게 있어서 일본 내의 전화번호 안내로 전화를 걸어서 마쓰다가 건 전화번호가 어떤 번호인지 확인을 요청했다.

잠시 후 노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번호 확인이 됐나?"

뚱뚱한 이병태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는 물었다.

"예, 통신회사 번호입니다. 일본에 있는 유명한 통신회사인 니프티서브(Nifty-Serve)의 번호죠."

"통신회사라면 우리나라의 한국통신 같은 전화회사를 말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하이텔, 천리안, 유니텔 같은 이런 PC통신회사를 말하는 거죠."

이병태도 들은 건 있어서 노미의 말을 대충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알겠어. 마쓰다 히사오가 일본 통신회사에 접속을 해서 통신을 했다는 얘기 아냐?"

"맞아요."

"8시간 37분 동안 말이지? 그렇다면 대체 한국에까지 와서 비싼 국제전화를 써가면서 굳이 통신을 해야 할 이유가 뭘까?"

"그걸 우리가 지금부터 알아내야 하는 게 아닌가요?"

"피살자가 만약에 PC통신을 했다면 컴퓨터가 있었을 것이고 그 컴퓨터는 범인이 가져갔다? 이렇게 되는 건가?"

"그렇죠. 그리고 그 컴퓨터는 노트북 컴퓨터가 되겠죠. 그리고 이 메모 말인데요."

노미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병태의 책상에 커다란 엉덩이를 털썩 올려놓았다. 팽팽한 청바지에 감싸인 엉덩이가 이병태의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죽 뻗어내린 미끈한 다리가 시야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여튼 요즘 아이들은......!

그러나 이병태는 귀찮아서 내버려두었다. 또 뭐라고 나무라면 술먹고 덤빌 게 뻔하다.

노미는「mystman pm 6:00」라는 메모를 이병태에게 내밀었다.

"이게 피살자의 성기에 적혀 있었단 말이지? mystman과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mystman은 누구냐? 이런 얘기가 되겠군."

"뉴시티 호텔에서 피살자와 미스트맨이란 자가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한 게 아닐까요? 지금이 5시인데 제가 한 번 속는 셈치고 호텔로 가볼까요? 수상한 사람이라도 있나 보게요."

"가봐야 소용없어. 그리고 이건 통신 ID야."

이병태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 나도 막내 아들놈이 통신하는 걸 뭔가 해서 몇 번 지켜본 일이 있는데 이건 전형적인 통신ID라구. 그리고 피살자는 노트북 컴퓨터가 있었을 것이고 일본의 Nifty-Serve PC통신회사에 연결해서 통신을 한 기록도 있잖아?"

"그럼 이건 피살자와 통신에서 만나고는 하던 어떤 자의 ID가 되겠군요?"

"우리는 지금부터 그 ID의 임자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닐 거야. 그 ID의 임자는 분명히 일본인일 거고 Nifty-Serve 가입자일텐데 말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터치하겠어?"

"일단 동경경시청에 부탁해서 Nifty-Serve에 mystman이라는 ID를 가진 사람이 있나 알아보도록 하죠.만약 있다면 일본측에서도 자국민이 피살된 사건인데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 협조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가능하면 피살자 마쓰다 히사오의 ID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해봐."

어쨌든 골치 아픈 사건이 될 것 같았다. ID소유자를 안다해도 니프티서브에 접속해 보려면 패스워드가 필요하고 또 통신비밀보호법이란 게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병태와 노미는 일본과는 별 상관이 없는 한국의 형사라는 게 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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