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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글] 경아 이야기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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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551 회 작성일 24-02-11 00: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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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7일간의 섹스·1

그날 경아는 민 과장이 집에까지 태워주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경아는 하체의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경아는 어떻게든 민 과장이 있는 곳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있는 곳에서 한걸음이라도 더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경아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지나가는 승용차를 무조건 세워 올라타고 버스를 갈아탔다는 것이 경아의 기억의 전부였다. 승용차 주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는지, 버스요금을 내었는지 안내었는지 조차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그날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한 경아는 회사에서 민 과장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이제 그를 상사로만 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무관심한척 할 수도 없을 것같았다. 자칫하면 그는 경아에게 계속 추근댈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아는 밤을 새우면서 그에게 허점을 보였던 자신을 원망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미 경아는 남자를 받아들인 몸이 되고 말았다. 경아는 끓어오르는 슬픔과 분노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에 안기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왔는데.... 그것이 이렇게 무산될 줄이야.
경아는 죽음을 생각해보았다. 이렇게 살아서 뭣해. 죽어버리자. 이러다가 나마저 엄마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돼? 사무실에 나가서 처녀인 척, 아무런 일도 없었던 척 해야 해? 아아, 민 과장님은, 아니 그 인간은 또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 날 경아는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각조차 하지 않았던 경아에게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시간이 되어 화장실에 들어가 세면을 하던 경아는 그만 다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버렸다. 도저히 회사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오전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지만 경아는 받지 않았다. 엄마를 시켜 몸이 안좋다고만 말을 하였다. 엄마는 경아의 말대로 회사에서 온 전화를 받고 그렇게 말을 하였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는 경아에게 다가왔다.
"경아야, 너 무슨 일 있었니? 회사에 그렇게 착실하게 나가던 애가 왠일이냐? 어디 아프니?"
경아 엄마는 경아의 이불을 걷으며 경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거 놔아!"
순간 경아는 엄마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엄마는 깜짝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아니 얘, 너 도대체 왜 그러냐? 응?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지?"
경아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 일도 아니야, 엄마"
엄마는 다시 경아의 머리에 손을 짚었다.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엄마! 이러지 마. 제발 좀 나가줘!"
경아는 갑자기 엄마가 싫어졌다. 엄마가 불결하게 여겨졌고, 그런 엄마의 생활을 잘 알고 있는 경아는 자신도 엄마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괜히 엄마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래도록 말이 없던 엄마는 경아에게 시간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던지 방을 나가면서 말했다.
"경아야, 엄마 좀 나갔다올테니 식사해! 그리고 엄마랑은 이따 저녁에 다시 이야기 하자꾸나."
엄마가 나가면서 방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자 경아는 이불을 머리 위까지 덮어쓰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경아는 주루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경아는 가만히 있었다.
민 과장의 전화가 온 것은 얼마 뒤였다. 몇번에 걸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경아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벨소리는 끊겼다가 다시 울리고 끊겼다가 다시 울리곤 하였다. 전화벨 소리가 성가셔서 경아는 전화기 코드를 빼버리려고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들고 "네" 하고 말았다.
"미스 리, 나야 민 과장"
"....."
경아는 그의 전화를 받자 소름이 끼쳤다. 경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 과장이 다급하게 경아를 불렀다.
"미스 리, 전화 끊지마. 나 지금 미스 리 집 앞에 와있어. 기다리고 있을게. 좀 나와"
"......"
경아는 기가 막혔다. 이 남자가 무슨 염치로 우리집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경아는 그의 얼굴을 보고싶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세요? 저는 할 말이 없어요"
"미스 리, 미안해. 잠깐만 시간 좀 내줘!"
민 과장은 다급하게 경아에게 말했다. 그러나 경아의 생각에는 변화가 없었다.
"돌아가세요. 나가지 않을 거예요."
"미스 리. 그럼 문 좀 열어줘! 내가 들어갈게. 아니면 문을 부셔서라도 들어갈 거야."
경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뭘 믿고 이렇게 나오는 걸까.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사무실에서 빠져나온 것일까. 경아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사람이야. 만나자.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알았어요. 지금 나갈께요."
경아는 대충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민 과장의 차는 골목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경아가 다가가자 민 과장은 빵빵 클렉션을 울리며 차에 타라는 손짓을 하였다. 경아는 잠시 망설이다 차에 올랐다. 민 과장은 자동차를 몰아 경아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낮의 텅빈 놀이터 앞에 자동차를 세웠다. 경아와 민과장은 차에서 내려 놀이터의 벤치에 앉았다.
"미스 리. 걱정돼서 왔어. 어디 아퍼?"
경아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 아프냐구? 나에게 할 말이 이것 밖에 없는 것일까? 이 남자는.
"아녜요. 그래서 일부러 오신 건가요?"
"미스 리. 그날 놀랐어. 미스 리가 아직 처녀라는 것에"
경아는 갑자기 그가 불결해지기 시작했다. 놀라다니. 처녀가 처녀인 것에 놀라다니. 그렇다면 내가 남자 경험이라도 있는 것으로 알고 나를 겁탈했단 말인가. 경아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서서히 분노와 적개심이 일기 시작했다.
"미안해 미스 리. 나 미스 리 사랑해.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구 응?"
"......"
앞으로 잘 지내자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이 남자는 내가 마치 자기 여자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겨우 그말 하려고 여기까지 찾아오신 건가요?"
민 과장은 경아의 기습적인 질문에 다소 당황하면서 허허 하고 웃었다.
"미스 리, 왜 그래. 화났어?"
"......"
경아는 민 과장의 너스래에 더욱 경멸과 분노가 솟구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민 과장은 경아 가까이 다가앉으며 경아의 손을 잡았다.
"그날 어땠어? 좋았어?"
경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 과장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민 과장은 느닷없는 경아의 행동에 놀라며 자신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경아는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다가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저지를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미스 리! 미스 리!"
민 과장이 다급하게 경아를 불렀지만 경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제20화: 7일간의 섹스·2

그 다음 날도 경아는 회사에 나가지 않았다. 엄마가 경아에게 이것저것 캐 물었지만 경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불만 덮어쓴채 누워 있었다. 이틀째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아는 얼굴이 몰라보게 핼쓱해져 있었다.
박 대리가 찾아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박 대리는 경아의 엄아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한후 경아의 방에 들어왔다.
"미스 리. 아니 이경아씨! 많이 아퍼?"
"오셨어요?"
경아는 그의 방문이 반갑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인사를 받아주었다.
"걱정돼서 왔어."
"고마워요. 안오셔도 되는데...."
"아니야, 지난번 일 사과도 할겸 해서 왔어. 그때 미안했어. 내가 잘못한 거야. 용서해줘."
"?"
"나는 그만 경아씨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 행동이야. 내 진심이야."
경아는 그제서야 심야극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많이 놀랐지?"
"......"
경아는 대답 대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송구스러움의 빛이 역력했다.
"경아씨, 나 용서해줄 수 있어?"
경아는 그의 입에서 경아씨라는 말을 듣자 다소 위안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이름도 없이 미스 리로만 통했는데 그에게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경아는 그만 그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그에게 품었던 적개심이 풀어졌다. 경아와 박 대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경아는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경아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저 사랑하세요? 아니면 여자를 원하세요?"
당돌하면서도 기습적인 질문이었다.
"경아씨. 내가 경아씨라고 부르는 건 경아씨에 대한 호감의 표시야. 나 사랑해!"
경아는 웃었다. 이 남자가 지금 삼류연극을 하고 있는 것일까. 경아는 그날의 일 때문에 그에게 아직도 역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얼마나 사랑하는데요?"
경아는 물었다. 박 대리의 시선이 경아를 뚫어지도록 응시하고 있었다. 경아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어쩌면 정말로 나를 좋아하고 있는지도 몰라. 아아, 하지만 안돼. 나는 이제 그의 여자가 될 수는 없어. 누구의 여자도 될 수가 없어.
"경아씨! 내 마음 몰라주겠어?"
"돌아가세요. 미안해요. 저는 지금 누구의 사랑도 원치 않아요. 혼자 있고 싶어요."
경아는 돌아누우며 이불을 덮어썼다.
"경아씨! 그래 푹 쉬어. 그런 다음 이야기해. 회사에서 만나."
박 대리가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경아는 회사에 나갔다. 몸이 많이 아팠던가 보군, 어머, 미스 리 얼굴이 헬쓱해졌다. 어디 아팠어? 미스 리가 이렇게 결근을 하니 사무실이 텅 빈 것 같더군..... 하는 동료들의 위안을 미소로 받으며 경아는 조용히 그날 하루 근무를 했다.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하느라 경아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다음에야 회사를 나왔다. 회사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경아에게 승용차 한 대가 다가왔다. 민 과장의 차였다. 경아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민 과장이 차에서 내려 경아에게 다가왔다.
"미스 리, 타!"
"혼자 가겠어요."
"그러지 말고 차에 타!"
민 과장이 경아의 팔을 잡았다. 경아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이 손 놓으세요"
"미스 리! 하고싶은 말이 있어."
민 과장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경아를 강제로 자신의 차에 태웠다. 경아는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그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좀 더 버팅겨보거나 소리를 지르면 차에 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민 과장의 차는 어느 사이에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경아는 묻지 않았다. 이제 그에 대한 두려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뭔가 확실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저께는 그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참을 수 업서 그에게 매몰차게 대했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민 과장의 차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계속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동차는 몇시간을 달려 대구로 접어들었다. 다시 민 과장의 차는 대구 교외로 빠져나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으로 한참 달려가자 관광지가 나타났다. 민 과장의 차는 어느 호텔 앞에 멈추었다.
민 과장은 승용차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경아는 자동차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달아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잠시후 민 과장이 다가와 말했다.
"경아, 내려. 여기 방을 얻어놨어. 이제 우리 여기에서 지내는 거야. 경아와 나 단 두 사람만이...."
아아, 도대체 이 남자는 뭘 어쩌자는 것일까. 여기서 무얼 하자는 것일까. 나는 돌아가야 해. 아니야, 여기까지 따라온 이상 그럴 필요는 없어. 경아는 언뜻 자동차의 전자시계를 보았다. 11시 30분. 조금 있으면 자정이 가까워 올 시간이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경아는 현기증을 느끼며 자동차에서 내려 민 과장을 따라 호텔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 멈춰섰다. 민 과장은 살며시 경아의 어깨를 부축해주었다. 경아는 그의 팔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호텔 객실로 들어서자 민 과장은 경아를 침대에 앉혔다.
"경아, 내 말 잘 들어. 나 경아와 함께 여기서 지내겠어. 경아가 거절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지고 온 돈이 바닥이 날때까지 열흘이고 한달이고 여기서 지내고 싶어. 경아가 싫다면 굳이 여기 있지 않아도 돼. 나는 지금부터 경아와 대화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경아가 나에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잘 알어. 이해해. 하지만 나는 생각했어. 경아는 나에게 마지막 희망이야. 경아마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없어. 나는 모든 걸 다 잃은 사람이야. 나는 지금 여기서 죽어도 좋은 사람이야. 경아!"
민 과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경아, 우리 여기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말자. 식사도 여기서 하고, 잠도 여기서 자고...... 한시도 떨어져 있지 말자. 나는 오직 경아만 바라보며 여기서 지내고 싶어. 진한 사랑을 나누고싶어. 나에겐 여기가 천국이야. 경아는 나를 구원해주는 천사이고......그날 나는 생각했어. 이제 나에게 경아는 떼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아,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도대체 뭘 하자는 걸까? 여기서 진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그렇다면 섹스에의 탐닉만을 하겠다는 건가? 나는 왜 여기까지 따라온 거지?
그런 생각의 갈피에서도 경아는 그가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불과 이틀전만 하여도 그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그를 만나자 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는 눈녹듯이 스르르 사라지고 있었다.
이것이었을까. 한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의 감정를 다르게 하는 것일까.
"경아, 마음 편하게 가져. 나 저쪽 쇼파에서 잠잘 거야. 경아가 원하지 않은다면 경아의 옆에 가지도 않을게. 침대에 누워서 자. 정말이야. 내 말 믿어줘.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경아의 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경아의 마음을 사고싶어. 경아의 따뜻한 마음을 받고 싶어. 경아.....나를 생각해줘. 오늘 밤 하루만이라도. 그러고 나서 내일 아침에 우리 생각해.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마. 여기 침대에서 자. 나는 저쪽 쇼파에서 잘테니까. 그리고 정말이지 생각해줘, 나에 대해서. 그러면 돼. 그뿐이야."
그리고 민과장은 쇼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경아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민 과장의 눈빛으로 보아 그날처럼 강제로 나를 겁탈할 것 같지는 않아. 어쩌면 그의 말은 진심인지도 몰라. 그런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허물이지는 거지. 내가 이렇게 쉽게 그를 따라오다니....... 아아,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여기에 와 있어. 나는!
경아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경아는 어렴풋이 날이 밝아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랬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이 가시고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상쾌한 아침이었다. 회사에 대한 생각, 가족들에 대한 염려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하늘나라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었다.
민 과장은 쇼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경아는 베개를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평화롭게 잠을 자는 모습이 경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경아는 베개를 그의 머리 아래로 넣어주었다. 그는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자고 있었다.
경아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말끔히 씻어내렸다. 며칠만에 하는 샤워인지 몰랐다. 오랜만에 샤워를 하면서 경아는 생각했다. 이젠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닌지도 몰라. 어쩌면 이제부터 한 남자를 위해 내 몸은 가꾸어질런지도 몰라. 그 남자를 위해. 경아는 거울 속의 알몸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운 몸매였다. 경아는 타월로 물기를 닦고 욕실을 나왔다. 그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경아는 창가로 다가가서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창문을 열자 상쾌한 공기와 함께 새소리가 들려왔다. 맑고 신선한 아침이었다. 경아는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때 그가 다가와 경아의 어깨를 살며시 안았다. 경아는 꿈틀거렸으나 곧 가만히 있었다. 싫지 않았다.
"잘 잤어?"
"네, 불편하셨죠?"
경아는 자신의 입에서 이렇게 다정한 말이 나올줄은 몰랐다. 경아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도 놀랐다.
"시장하지 않어? 어제 저녁도 못했잖아"
"네 배 고파요"
"그래, 조그만 기다려. 내 얼른 씻고 같이 식사해"
경아는 돌아서며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경아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아아, 왜 이 남자가 이렇게 편안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제21화: 7일간의 섹스·③

남자는 샤워를 하고 나와 경아와 함께 객실에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하면서 남자는 경아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경아! 경아가 맛있게 식사를 하는 걸 보니 보기 좋아."
"과장님도 많이 드세요"
"그래, 그래."
식사를 다하고 나서 남자는 말했다.
"걱정 안돼? 회사나 가족들에게...."
"괜찮아요. 집에는 전화를 하죠 뭐"
경아는 하룻밤 사이에 많이 변해 있었다.
그래, 이제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가봐. 이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지가 않아. 이상한 일이야. 그리고 나는 왜 이러지. 이 남자는 결혼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고, 나는 아직 아무런 경험도 없는데..... 우리 사이는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될 텐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진정 사랑하게 된다면 그런 형식적인 장애물들이 무슨 문제야......
경아는 식사를 한 뒤에 집에 전화를 했다. 전화는 동생 경희가 받았다.
"언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미안해 경희야. 아무런 말도 묻지 말아줘. 며칠 후에 돌아갈게. 돌아가서 이야기 할게. 응?"
"언니, 회사는 어떻게 하고?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해?"
"회사는 돌아가서 생각하기로 하자. 엄마에게는 네가 알아서 적당히 좀 말해줄래? 엄마 지금 없어?"
"응. 언니 잘 있는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지?"
"그래, 그래. 경희야. 내 걱정 절대 하지마. 전화 끊는다아"
"언니! 언니! 여보세요!....."
경희가 다급하게 경아를 불렀지만 경아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미안해, 경희야. 더 이상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니? 너는 알 수 없을 거야. 지금 내 심정을. 그렇지만 언젠가는 나를 이해해줄지도 몰라. 네 살 아래의 경희는 남자 문제에 관한한 매우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엄마나 아빠 때문이리라.
경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경희야. 세상 사는 일은 언제나 뜻대로 되는 법은 아닌가 봐. 이렇게 가끔은 현실에서, 기존의 기치관에서 일탈하고 싶을 때도 있어. 그리고 그것은 내 자신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인지도 몰라. 미안해, 경희야. 이런 모습 보여주어서......
"무슨 생각해?"
경아가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에 빠져있자 남자는 경아에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경아는 남자의 목을 껴안았다.
"흠,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상태로 시간도 흘러가지 않고 오래도록 오래도록 멈추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자는 경아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남자의 얼굴에서 스킨 냄새가 전해졌다. 욕실에 있던 샘플용 화장품을 발랐나보다.
"경아, 미안해. 이래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상하게 경아와 함께 있고 싶었어. 경아와 함께 있으면 모든 게 편안해져."
"걱정되지 않으세요? 회사에서는 발칵 뒤집혔을텐데..... 어쩌면 지금쯤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사라진 것을 알텐데....."
"두렵지 않아. 나는 다만 이 순간 이렇게 경아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해. 경아!"
"나쁜 사람! 미운 사람!"
경아는 남자의 가슴을 때렸다.
"그래 그래. 나는 나쁜 사람이고 미운 사람이야. 뭐라고 욕해도 좋아. 하지만 날 버리지만 말아줘. 그러면 돼."
"아아,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
경아는 남자의 목을 세게 끌어당겼다.
"안아주세요. 세게! 아주 세게!"
남자는 팔에 힘을 주어 경아를 꼭 껴안아주었다.
"아아, 좋아요, 그렇게요. 그렇게 세게."
"경아......."
"지금 이 손을 놓아버리면 안돼요. 이 손을 놓아버리면 나는 어디론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경아, 경아"
경아는 손가락을 세워 남자의 입술을 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아무 말도...."
남자는 고개를 숙여 경아의 입술을 찾았다. 경아는 남자가 무엇을 원하는 가를 알 것 같았다. 경아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남자의 입술이 경아의 입술에 닿는 순간 경아는 눈을 감았다. 남자는 마치 건드리면 터질세라 경아의 목에 두 손을 받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경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놓았다.
"아아, 아아!"
경아는 생각했다.
남자의 입술이 닿은 순간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세상 잡사가 모두 잊혀졌다. 회사도, 엄마도, 경희도 그리고..... 아빠도. 지금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 해도 상관없어. 아득하게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아득하게 내가 땅 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아. 이런 것일까. 키쓰란 이런 것일까.
하지만 경아는 부르르 눈을 떨었다. 가슴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황홀했다. 아니 아니, 황홀한 것이 아니라...... 그래 그래 아득했어. 나는 지금 그렇게 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그냥 아득한 느낌 그것이야.
경아는 남자의 입술을 받으면서 남자의 목을 껴안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남자가 키스를 원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일까. 남자의 입에서 담배 냄새와 함께 스킨 향기가 싸아하게 전해졌다.
남자의 턱에서 까칠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하룻밤 사이에 남자의 턱에는 까칠한 수염이 자라 있었다. 어쩌면 어제 아침에도 수염을 깎지 않고 출근했는지도 몰라. 그래. 그랬을거야. 그렇게도 깔끔하게 하고 다니던 그였지만 언젠가부터 그의 모습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적당히 구겨진 옷을 입고 출근하기도 하고, 머리는 조금씩 헝클어지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그의 꼍을 떠나고 부터였을 거야. 아아, 이 남자의 수염을 내가 직접 깎아주고 싶어. 남자의 수염을 깎아주고 싶어했었는데 그게 이 남자가 될 줄이야. 남자의 까칠한 수염이 느껴져 잠시 멈칫거렸지만 경아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경험해본 남자의 감촉이었다. 경아는 다시 말했다.
"아아.... 안아주세요."
남자는 경아를 들어안아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경아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남자는 곧 걸음을 멈추었다. 경아는 남자의 목을 안은채 가만히 있었다. 남자가 살며시 경아를 내려놓았다. 침대 위였다.
경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창문으로 스며든 햇볕이 경아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아는 부끄러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경아는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 창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 가려줘요. 보이지 않게."
남자는 경아의 말에 일어나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스르륵. 스르륵. 커텐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커텐이 닫히자 방 안은 어두워졌다.남자는 다시 경아에게 다가왔다. 경아는 팔을 오므려 자신의 가슴을 안았다.
남자는 경아의 팔을 옆으로 내리고 있었다. 경아는 남자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경아의 팔이 침대로 떨어지자 남자는 경아 위에 몸을 실었다. 묵직한 몸무게가 느껴졌다. 경아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경아!"
"하아!"
경아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무거운 몸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경아는 남자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하아..... 무 무서워요!"
경아의 무서움을 덜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남자는 입으로 경아의 입을 막았다.
"으흡!"
조금전에 받아들였던 남자의 입술이었지만 왠지 조금전과 느낌이 달랐다. 뜨거운 입김이 전해졌다. 남자의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소리고 뜨거운 것 같았다. 경아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입을 벌려 경아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고 있었다. 경아의 입술이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다. 싫지 않은 남자의 냄새가 경아의 입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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