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바이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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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한테 붙잡혀...◈
마취가 깬 지도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시간이 지나
면서 다시 새로운 얼굴이 들어와 이불 속으로 발을
묻었다. 처음엔 이야기를 듣느라 귀를 쫑긋거리다가
어느새 진지한 이야기 틈바구니에 끼어들곤 했다.
주리는 회복실을 나와 중학생 소녀랑 같이 근처 분
식집으로 들어갔다.
마취가 깨면서 공복감을 느꼈다. 그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중학생 소녀에게 뭔가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기도 했다.
조촐한 분식집에 앉아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
어느 정도 친근감이 든 탓인지 중학생은 주리에게 있
어 마치 동생처럼 굴었다.
"어떠니? 많이 아프지?"
"네."
그러면서 그녀는 인상을 썼다. 자리를 고쳐 앉는 것
으로 아직도 아래쪽이 아프다는 표시를 냈다.
"그럴 거야. 나도 많이 아픈데...... 원래 이런 수술을
하고 나면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거라는데 그럴 수는
없고, 여기서 분식이나 먹지. 집엘 가면 따뜻한 방에
누워 있어야 돼. 그래야 나중에 몸고생을 안 한다더
라. 아이를 낳은 거나 다름없다는 거 너, 알지?"
"네."
중학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를 낳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에 쑥스러움을 느
끼는 모양이었다.
"남자 친구들도 만나지 마. 그런 친구들은 친구가
아냐."
그 말에 중학생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남자 친구들 땜에 그런 거 아니예요."
"그럼?"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늦게 집으로 돌
아가다가 여럿한테 붙잡혀서 그랬어요. 그 중엔 내가
아는 애도 한 명 있었어요."
"그래?"
주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중학생인 그녀가 노
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그럼, 걔네들이 널 일부러 그랬겠구나?"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
아가는 길목을 지켰다가 나를 끌구 간 거죠. ......집
근처 야산으로 저를 데려 갔어요."
이제 중학생인 그녀는 스스럼 없이 말을 꺼냈다. 부
끄러워하거나 어색함은 가신 듯했다.
"노래방에도 너희들 같은 애들이 있니?"
주리의 말에 그녀는 키들거리며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기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마치 소꿉장난질을 치다가 그만 애를 밴 것처럼 아
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네, 학교 마치고 노래방에 나와서 아르바이트 하는
애들이 여럿있어요. 손님들은 우리보고 영계중에 영
계라고 불러요. 팁도 만이 줘요. 나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더 많은 팁이 나와요. 인기도 최고고요. 그만큼
노래도 잘 불러야 돼요."
"......?"
주리는 그 말을 듣자, 턱 숨이 막혔다. 괜히 이상한
말을 들었을 때처럼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너,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다 잘 먹어요."
그녀는 싱그럽게 웃었다. 웃느라 가지런한 흰 이빨
이 다 드러났다.
주리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참 맹랑한 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자궁을 긁어낸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저런 천진한 웃음이 나올 수 있다니.
그 당시의 자신과 비교해 보았지만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요즘 엑스세대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 어딘
가에 몹쓸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고, 몸이
짓이겨질 대로 짓이겨졌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안
는 저 배짱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순결이란 요즘 젊은 애들 말마따나 거추장스런 의식
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언제고 한번은 奐 버려야
될 성질의 그런 것일까. 아예 이참에 잘 떨궈 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일까.
더 심하게 말하자면, 어린 나이의 그녀가 어른들의
성에 일찍 눈을 뜨게 된 것에 스스로를 대견하고 생
각하고 있지는 안는지......
그녀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수그러들
었다.
너무 천진한 모습들을 보면서 주리는 너무 몰라서
저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저렇게 순진하게 나오는 그녀
를 아파트로 데려가 일주일간만이라도 몸조리라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같은 동병상련을 겪은 여자의 운명 같은 나
무뿌리가 그녀에게로 뻗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문한 떡볶이와 유부국수, 순대가 나왔다. 중학생인
그녀가 나무 젓가락을 주리의 앞에 놓아 주었다. 주
리는 그걸 보고는 피식 웃어주었다.
"너, 이런 건 잘 하는구나. 붙임성도 만고."
"네, 학교에서도 그래요. 학교 친구들이 내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다고 그랬어요."
그녀는 뽀얀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주리는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귀염성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남자 애들이 제법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뭐하시니?"
드디어 주리는 그녀의 가정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
"네, 아버진 고급 공무원이세요. 국장인걸요. 연말
때마다 우리집엔 공무원 아저씨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막 찾아와요. 전 그때 집에 있다가 그 사람들한
테 인사라도 하면 용돈에 쓰라고 얼마나 주는지 아세요?"
"얼마나 주는데?"
주리는 웃으면서 물었다.
"어떤 땐 5만 원도 주고, 또 어떤 분들은 10만 원짜
리 수표도 줘요. 다 우리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
는 거죠 뭐."
"......?"
주리는 약간 놀랐다. 처음엔 얘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 얘기를 듣고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집안의 딸이, 그것도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딸
이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이상했다.
"엄마나 아버지는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알고
있니?"
"전혀 몰라요. 학원에 간다고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
는 거예요. 아르바이트를 하면 재밌거든요. 공부는 취
미가 없어요. 내가 벌어서 콘서트도 갈 수 있고, 친구
들이랑 같이 영화구경도 가요. 저번엔 동해안으로 겨
울 여행도 갔다가 왔어요."
그녀는 마치 기성세대가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어른스러움인 것처럼 재잘거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리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그걸 보고는 뚝, 입을 다물었다.
"요즘 어른들은 우리들의 세계를 너무 몰라요. 우리
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고선
야단만 치려고 그래요. 전 그게 싫거든요."
"이름이 뭐니?"
주리는 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혜진이에요. 나혜진, 제 이름, 예쁘죠?"
혜진은 입에 잔뜩 넣은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뻐. 그런데 공부는 싫어한
다니 이상하구나. 공부만 잘 하면 나중에 대학가서
메이퀸도 될 수 있겠는데."
"전 대학 같은 건 관심도 없어요. 대학을 나오면 회
사에나 들어가서 틀에 얽매인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일?"
주리가 넌지시 물어봤다.
"아직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하고 싶
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응......, 영화감독
같은 게 맘에 들어요. 여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메
가폰을 잡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요."
혜진은 챙이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듯이 손으로 머
리 위를 누르면서 쫑알거렸다.
말을 할 때마다 볼에 작은 우물이 패이는 것 같은
앙징스러움이 드러났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해도 돼, 그런 일은.
그리고 그런 일을 하려면 대학을 가서 많이 배워야
지. 마음만 갖고서는 안 돼. 너처럼 그런 생각만 갖고
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난 벌써 영화감독이 됐
게? 그쪽으로 전공을 해서 배워야지 할 수 있는 거야."
주리는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말을 했다.
"언닌, 전공이 뭐예요?"
"지질학과."
"피이, 여자가 지질학과를 다녀서 뭘 해요. 땅 연구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맞아. 나도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원하지도 않던 지질학과밖에 못 들어갔어.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영문학과나 법학과를 갔
을지도 모르지.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과
에 들어가. 그게 성공하는 거야."
"......"
혜진이는 주리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먹는 데만 열중이었다.
마취가 깬 지도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시간이 지나
면서 다시 새로운 얼굴이 들어와 이불 속으로 발을
묻었다. 처음엔 이야기를 듣느라 귀를 쫑긋거리다가
어느새 진지한 이야기 틈바구니에 끼어들곤 했다.
주리는 회복실을 나와 중학생 소녀랑 같이 근처 분
식집으로 들어갔다.
마취가 깨면서 공복감을 느꼈다. 그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기도 했다.
중학생 소녀에게 뭔가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기도 했다.
조촐한 분식집에 앉아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
어느 정도 친근감이 든 탓인지 중학생은 주리에게 있
어 마치 동생처럼 굴었다.
"어떠니? 많이 아프지?"
"네."
그러면서 그녀는 인상을 썼다. 자리를 고쳐 앉는 것
으로 아직도 아래쪽이 아프다는 표시를 냈다.
"그럴 거야. 나도 많이 아픈데...... 원래 이런 수술을
하고 나면 미역국을 먹어야 하는 거라는데 그럴 수는
없고, 여기서 분식이나 먹지. 집엘 가면 따뜻한 방에
누워 있어야 돼. 그래야 나중에 몸고생을 안 한다더
라. 아이를 낳은 거나 다름없다는 거 너, 알지?"
"네."
중학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를 낳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에 쑥스러움을 느
끼는 모양이었다.
"남자 친구들도 만나지 마. 그런 친구들은 친구가
아냐."
그 말에 중학생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남자 친구들 땜에 그런 거 아니예요."
"그럼?"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늦게 집으로 돌
아가다가 여럿한테 붙잡혀서 그랬어요. 그 중엔 내가
아는 애도 한 명 있었어요."
"그래?"
주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중학생인 그녀가 노
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그럼, 걔네들이 널 일부러 그랬겠구나?"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내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
아가는 길목을 지켰다가 나를 끌구 간 거죠. ......집
근처 야산으로 저를 데려 갔어요."
이제 중학생인 그녀는 스스럼 없이 말을 꺼냈다. 부
끄러워하거나 어색함은 가신 듯했다.
"노래방에도 너희들 같은 애들이 있니?"
주리의 말에 그녀는 키들거리며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기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마치 소꿉장난질을 치다가 그만 애를 밴 것처럼 아
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네, 학교 마치고 노래방에 나와서 아르바이트 하는
애들이 여럿있어요. 손님들은 우리보고 영계중에 영
계라고 불러요. 팁도 만이 줘요. 나이가 어리면 어릴
수록 더 많은 팁이 나와요. 인기도 최고고요. 그만큼
노래도 잘 불러야 돼요."
"......?"
주리는 그 말을 듣자, 턱 숨이 막혔다. 괜히 이상한
말을 들었을 때처럼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너, 뭐 먹을래?"
"아무거나요. 다 잘 먹어요."
그녀는 싱그럽게 웃었다. 웃느라 가지런한 흰 이빨
이 다 드러났다.
주리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참 맹랑한 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자궁을 긁어낸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저런 천진한 웃음이 나올 수 있다니.
그 당시의 자신과 비교해 보았지만 그런 일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요즘 엑스세대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 어딘
가에 몹쓸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고, 몸이
짓이겨질 대로 짓이겨졌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안
는 저 배짱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순결이란 요즘 젊은 애들 말마따나 거추장스런 의식
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언제고 한번은 奐 버려야
될 성질의 그런 것일까. 아예 이참에 잘 떨궈 버렸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일까.
더 심하게 말하자면, 어린 나이의 그녀가 어른들의
성에 일찍 눈을 뜨게 된 것에 스스로를 대견하고 생
각하고 있지는 안는지......
그녀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수그러들
었다.
너무 천진한 모습들을 보면서 주리는 너무 몰라서
저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엄청난 일을 당하고도 저렇게 순진하게 나오는 그녀
를 아파트로 데려가 일주일간만이라도 몸조리라도 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같은 동병상련을 겪은 여자의 운명 같은 나
무뿌리가 그녀에게로 뻗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문한 떡볶이와 유부국수, 순대가 나왔다. 중학생인
그녀가 나무 젓가락을 주리의 앞에 놓아 주었다. 주
리는 그걸 보고는 피식 웃어주었다.
"너, 이런 건 잘 하는구나. 붙임성도 만고."
"네, 학교에서도 그래요. 학교 친구들이 내 성격이
명랑하고 쾌활하다고 그랬어요."
그녀는 뽀얀 이를 드러내며 하얗게 웃었다.
주리는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 귀염성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남자 애들이 제법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뭐하시니?"
드디어 주리는 그녀의 가정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났다.
"네, 아버진 고급 공무원이세요. 국장인걸요. 연말
때마다 우리집엔 공무원 아저씨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막 찾아와요. 전 그때 집에 있다가 그 사람들한
테 인사라도 하면 용돈에 쓰라고 얼마나 주는지 아세요?"
"얼마나 주는데?"
주리는 웃으면서 물었다.
"어떤 땐 5만 원도 주고, 또 어떤 분들은 10만 원짜
리 수표도 줘요. 다 우리 아빠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
는 거죠 뭐."
"......?"
주리는 약간 놀랐다. 처음엔 얘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 얘기를 듣고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집안의 딸이, 그것도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딸
이 아르바이트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이상했다.
"엄마나 아버지는 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알고
있니?"
"전혀 몰라요. 학원에 간다고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
는 거예요. 아르바이트를 하면 재밌거든요. 공부는 취
미가 없어요. 내가 벌어서 콘서트도 갈 수 있고, 친구
들이랑 같이 영화구경도 가요. 저번엔 동해안으로 겨
울 여행도 갔다가 왔어요."
그녀는 마치 기성세대가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
어른스러움인 것처럼 재잘거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리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그걸 보고는 뚝, 입을 다물었다.
"요즘 어른들은 우리들의 세계를 너무 몰라요. 우리
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고선
야단만 치려고 그래요. 전 그게 싫거든요."
"이름이 뭐니?"
주리는 그제서야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혜진이에요. 나혜진, 제 이름, 예쁘죠?"
혜진은 입에 잔뜩 넣은 채, 우물거리며 말했다.
"이름도 예쁘고, 얼굴도 예뻐. 그런데 공부는 싫어한
다니 이상하구나. 공부만 잘 하면 나중에 대학가서
메이퀸도 될 수 있겠는데."
"전 대학 같은 건 관심도 없어요. 대학을 나오면 회
사에나 들어가서 틀에 얽매인 생활을 해야 되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어떤 일?"
주리가 넌지시 물어봤다.
"아직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하고 싶
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응......, 영화감독
같은 게 맘에 들어요. 여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메
가폰을 잡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어요."
혜진은 챙이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듯이 손으로 머
리 위를 누르면서 쫑알거렸다.
말을 할 때마다 볼에 작은 우물이 패이는 것 같은
앙징스러움이 드러났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해도 돼, 그런 일은.
그리고 그런 일을 하려면 대학을 가서 많이 배워야
지. 마음만 갖고서는 안 돼. 너처럼 그런 생각만 갖고
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난 벌써 영화감독이 됐
게? 그쪽으로 전공을 해서 배워야지 할 수 있는 거야."
주리는 차근차근 설명하듯이 말을 했다.
"언닌, 전공이 뭐예요?"
"지질학과."
"피이, 여자가 지질학과를 다녀서 뭘 해요. 땅 연구
하는 거 아녜요?"
"그래, 맞아. 나도 고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원하지도 않던 지질학과밖에 못 들어갔어.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영문학과나 법학과를 갔
을지도 모르지.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원하는 과
에 들어가. 그게 성공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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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이는 주리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먹는 데만 열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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