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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 그 황홀한 유혹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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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200 회 작성일 24-02-10 15:4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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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 그 황홀한 유혹』 ⑩

김현세와 그 일이 있고 부터 현숙은 하루하루가 허공중을 걷는 듯한 기분의 연속이었다. 민섭은 그런 아내를 보고, 몸이 안 좋으면 친정에 가서 며칠 쉬었다 오라며 비상금까지 꺼내 주었다.
"괜찮아요. 환절기 탓 일거예요. 자기 갈치 좋아하지. 오늘 일찍 퇴근해야 돼, 시장 가서 물 좋은 갈치 몇 마리 사 와서 노릿노릿하게 구워 놓을 테니까. 알았죠?"
"허허, 이 여자가 갈 때가 됐나. 왜 안 하던 짓을 하지. 난 갈치 안 먹어도 되니까, 제발 그 얼굴이나 피고 살아. 도대체 지금 자기 얼굴이 어떤 줄 알고나 있어.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가 억지 웃음을 짓고 있는 거 같다구."
민섭은 그렇지 않아도 다음 달에 있을 정기 승진 때 누락될까 봐, 기분이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아내가 우울해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는 없어서 퇴근하면 가능한 명랑하게 지내려고 했다.
"피! 언제부터 내 얼굴에 그렇게 관심이 많아졌어. 언젠 아이 셋 낳은 사십 대 아줌마 같다고 잘도 놀려대더니......"
현숙은 남편으로부터 걱정 어린 핀잔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러면서 가능한 남편이 집에 있을 때는 명랑하게 지내리라고 다짐을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그릇은 마구 굴려도 잘 깨지지 않으나, 새 그릇은 긴장하면 긴장할수록 잘 깨질 때와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를 미치도록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 할 때였다. 남편은 언제나 정상위를 원했고, 그녀 역시 다른 부부들은 몰라도 자기와 남편은 그 방법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고 섹스를 했다.
"아......자.....자기! 나 미칠 거 같아."
남편하고 섹스를 할 때 예전처럼 만족을 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교성을 지르는 등, 어느 때는 남편 보다 저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섹스 후에는 김현세와의 섹스가 생각났다.
"자기, 요즘 더 강해 진 거 같아."
그러다 남편이 이상하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또 거짓말을 했다. 첫 단추가 잘 못 꿰어지면, 마지막 단추까지 잘못 꿰어진다고 했던가. 거짓말이 거짓말을 잉태하는 나날들이 계속 될수록 그녀는 여의어 만 갔다.
그러다 승혜의 여덟 번째 생일날이 돌아왔다.
며칠 전부터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 온 승혜는 출근 전의 민섭을 붙잡고 게임기를 사 달라고 졸랐다. 게임기를 사 달라는 나름대로의 이유도 있었다. 아래층의 보람이도 그것을 가지고 있고, 종점 슈퍼의 영이는 물론 이 골목에서 게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 혼자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승혜 안경 쓰고 싶어. 텔레비 앞에서 게임 많이 하면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쓸지도 몰라. 아빠는 예쁜 승혜가 안경을 쓰는 거 보면 가슴이 아플 꺼야."
민섭은 승혜의 생일 선물로 인형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 고개를 흔들며 점잖게 반대했다.
"피, 보람이도 게임기가 있는데 안경을 안 썼잖아. 나 게임기 있으면 하루에 한 시간씩 밖에 안 할 꺼야. 그러니까 게임기 사줘 응?"
"보람이하고 너하고, 같니 보람이는 엄마가 안 계시잖아."
현숙은 다른 날과 다르게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내 어린 승혜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 닫았으나, 이미 승혜의 두 눈에는 의아심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 뒤에 그녀의 머릿속에는 텁수룩한 수염에 밤에 글을 쓰느라 늘 붉게 충혈 되어 있는 김현세의 얼굴이 떠올랐다.
"피! 엄마는......언제는 그런 말하면 안된다고 해 놓고, 엄마가 먼저 그런 말하면 어떡케."
아이들은 영리했다. 그 중에서 비교치의 기억력에 관해서는 어른들 보다 훨씬 능가하다. 현숙은 염려하고 있던 말이 승혜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쥐구멍이라도 숨을 수 있다면 숨어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엄마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보람이네는........"
현숙은 얼른 말을 잇지 못했다. 또 김현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편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민섭은 빙긋이 웃는 얼굴로 승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럼 엄마한테 물어 봐. 엄마가 허락하면 사 줄게."
민섭은 이럴 때는 아내에게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내는 자기와 다르게 승혜의 생각을 바꾸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싫어. 엄마는 돈 없잖어."
"엄마가 왜 돈이 없니?"
"엄만 돈 안 벌고, 아빠가 회사에 나가서 돈 벌어 오잖아."
현숙은 저 작은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까 하는 생각으로 기가 막혀서 민섭을 쳐다보았다. 민섭도 비슷한 생각으로 현숙을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좋아. 돈은 승혜 말대로 아빠가 벌어 오는 거야. 하지만 아빠가 아파서 회사에 나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지금도 아빠 몸이 아파서 약 드시는 중이잖아."
현숙은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약 중에서 세 봉을 꺼냈다. 그 중 한 봉은 지금 먹을 수 있도록 봉지를 열어서 남편에게 건네주고 나머지 두 봉은 그의 서류 가방에 넣어 두었다.
"그래도 오늘은 내 생일 이잖어."
승혜는 현숙의 말에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반박했다.
"아무튼 게임기는 안돼. 오락이 정하고 싶으면 보람이네 집에 가서 조금씩 하고 와. 그 대신 이번 주 일요일날 육삼 빌딩 데려가 줄게. 됐지?"
민섭이 약 봉지를 입안에 털어놓고, 물을 한 모금 마신 후에 단정적으로 말했다.
"보람이네 집에 가면 안돼? 알았지."
현숙이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며 다짐을 받으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나서 얼른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은 물 컵을 싱크대 위에 같다 놓기 위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휴! 남 모르게 한숨을 내 쉬고 있으려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내가 왜 이렇게 가슴 조이면서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엄마 오늘 참 이상하다. 왜 보람이네 집에 못 가게 하는 거야. 그리고 육삼 빌딩은 유치원 다닐 때 두 번이나 같다 왔는 걸. 하지만 게임기는 지금까지 한 개도 없었잖아. 그러니까 생일 선물로 게임기 사줘야 해."
"또, 저 고집 나온다, 자 그만 나가자. 너 자꾸 아픈 아빠 아침부터 피곤하게 만들면, 점심 때 피자 안 사 줄 거야. 네 친구들도 초대 못하게 할거구."
현숙은 억지로 타협안을 제시했다. 진땀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띰이 나면 큰일이었다. 단번에 남편의 시야에 사로잡힐 것이고, 그렇게 되면 왜 그러냐고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또 다른 거짓말을 잉태하여 하기 때문이었다.
"엄만 순 거짓말쟁이. 학교 같다 와서, 친구들 초대하면 피자하고 치킨하고, 콜라 사준다고 승혜하고 약속했잖아. 하지만 게임기는 처음 말하는 거잖어. 그치 아빠?"
승혜는 되는 것 보다, 안되는 것이 더 많은 엄마 보다 아빠 쪽이 편하다는 생각에 민섭을 쳐다보았다.
"좋아. 우리 공주님이 그렇게 원하신 다면 퇴근할 때 게임기 사 올게. 됐지?"
"아빠 사랑해요. 엄마는 미워? 쩌번에도 아빠 월급 타면 게임기 사 준다고 해 놓고선....."
승혜는 민섭의 다리를 껴 않으며 팔짝팔짝 뛰다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현숙을 흘겨보았다.
"게임기 가격이 얼만줄 이나 알아요. 못 줘도 십만 원 한 장은 줘야 할걸. 그렇다고 오랫동안 좋아 할 것 같아요. 며칠 안 가서 장난감 박스 안에 쳐 박히고 말걸. 그러니 그러지 말고 동화책이나 한 질 사주는 게 어때요?"
승혜가 민섭에게 재롱 부리는 모습을 쳐다보던 현숙은 문득 자기는 이 가정의 구성원 이 아니고, 제 삼자 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갑자기 머리가 아파 오는 것을 느끼며 차분한 음성으로 민섭에게 말했다.
"김선생 딸이 오락하는 걸 보면 저도 얼마나 하고 싶겠어. 그러니 이 참에 한 개 사주지 뭐. 그리고 게임 종류가 많으니까, 친구들끼리 게임 프로를 교환도 해 가며 즐기면 되잖아."
민섭은 아내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일을 핑계되어 조르는 승혜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다.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일찍 퇴근하여 백화점에 들려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류 가방을 들었다.
"마음대로 해요........"
현숙은 열외자 가 되어 버린 기분으로 억지 웃음을 지으며 결국은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난감 같은 것은 사주지 않는 게 그녀의 성격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사랑하는 딸과 남편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간통, 그 황홀한 유혹』 ⑪

승혜까지 학교에 간 후에 현숙은 한참 동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가 오려는 지 하늘이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게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오늘 오후부터 소나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휴!
다른 때 같았으면 어김없이 승혜 손에 우산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현세와 그 일이 있고 부터는 겉돌기만 하는 자신이 싫어서 우울한 얼굴로 텅 빈 집안에서 마음놓고 한숨을 내 쉬었다.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는 거죠?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또 김현세의 말이 생각났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정액과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팬티를 껴입으려고 할 때, 그가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왜 이러지......아......안돼!
현숙은 잊으려 애를 쓸수록 김현세에게 다가서고 있는 의식이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김현세의 생각을 지워 버리려면 바쁘게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집안 청소부터 하리라고 막 일서 서려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그 사람인가?
현숙은 무서웠다. 전화를 받게 되면 약간은 탁한 김현세의 목소리가 들려 올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그가 살고 있는 지하층을 노크하고 말 것 만 같아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제발!
전화 벨 소리를 무시하면, 무시하려 할수록 더 요란스럽게 울어 돼는 법이다. 현숙은 걸레를 떨어트리고 눈을 질끈 감은 체 두 귀를 감았다.
현숙씨를 사랑합니다. 아! 당신은 너무 아름다워요. 이 젖꼭지하며, 이 계곡은.........싫어!
눈을 질끈 감은 체 귀를 막고 있으려니까 전화 벨 소리는 들려 오지 않았다. 그 대신 기억의 여신이 김현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현숙은 히스테리칼 하게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안돼!
마침내 현숙은 무릎을 끓고 울었다. 텅 빈 집안에서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아 냈다. 울면서 제발 김현세를 잊게 해 달라고 신께 기원을 했다. 신이 기도를 들어준 탓인가, 천둥소리처럼 울어 되던 전화 벨 소리가 뚝 끊어지면서 괴괴할 정도의 무서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그이를 사랑해. 승혜도 버릴 수가 없어.
현숙은 마치 남편과 딸로부터 버림이나 받은 것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한 손에 걸레를 든 체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물도 삼층 짜리 다세대 건물 인 탓에 방안으로 햇볕이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붉은 벽돌 벽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 앞으로 검은 비닐 봉지 하나가 포르르 날라 들었다가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내려 않는 게 보였다. 비가 올 징조 였다. 비닐 봉지가 창문틀 밑으로 사라지면서 다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는 뿌연 먼지를 안고 차가운 골목을 황량스럽게 훑어 갔다.
"좋아. 너도 어린애가 아니니까. 더 이상 말리지는 않겠어. 하지만 네가 만약 그 놈하고 결혼을 한 다면 더 이상 이 집에 발 들여놓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난 이십 삼 년 동안 남부럽지 않게 키워 온 딸을 가진 거 라곤 부랄 두쪽 밖에 없는 놈한테 시집 보내긴 싫으니까."
남편과의 결혼을 극구 반대하던 아버지가 최후의 통첩을 하던 때도 이처럼 초여름이었다. 그러나 장소는 틀렸다. 거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정원에로 잘 다듬어진 향나무가 보였고, 꽃이 지고 잎새만 무성한 목련 나무와, 담장에는 손톱 만한 꽃망울이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넝쿨 장미가 늘어져 있었다.
"엄마!"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아버지의 말에 대답을 못하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난생 처음 으로 어머니에게 거리감을 느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아버지처럼 찬바람이 불고 있지 않았으나, 철저한 방관자의 얼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좋아요. 보란 듯이 살아 주겠어요.
어머니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원하는 스물 세 살의 딸을 위해 아버지에게 단 한마디라도 변호를 했었다면,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까지 독한 마음을 먹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 이었다.
아무리 가정에서 경제권이 없다지만 아버지의 독선과 횡포에 잘 길들여진 어머니라지 만, 딸의 미래가 걸려 있는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도 방관자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김현세의 집 식탁에서 커피를 마실 때까지 만 해도 부모님들이 보란 듯이 열심히 살려고 최선을 다해 왔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했고, 딸을 기르는 어머니로 서 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랬다. 김현세의 식탁에서 커피를 마실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 왔었다.
정말 잘 살아 왔었는데......
현숙은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지 콧잔등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며 왜 김현세에게 빠져들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 날,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김현세가 손을 잡으면서, 현숙씨를 보면은 난 세상을 멋지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깁니다. 라는 말을 듣기 전 만 해도 모든게 순조로웠다. 그러던 것이 손을 잡히고,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받았다는 설레임 때문인지 몰라도, 키스에서 페팅으로, 급기야는 그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만나면 안돼.
현숙은 거실에 걸려 있는 벽시계가 열 시를 알릴 때서야 자신이 청소를 하다 자신도 모르게 또 김현세 생각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일어섰다.
승혜 생일날 도대체 왜 이래야 되는 거지.
승혜가 학교 같다 오기 전에 생일 상을 차려 놓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서둘러야 할 시간이었다. 피자와 치킨만 있다고 생일 상이 준비되는 것은 아니었다. 음료수도 있어야 하고, 후식으로 먹을 과자냐, 과일류나, 케이크도 있어야 한다.
승혜가 초등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날 제 친구들에게 기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식탁을 짰다. 피자나 치킨은 제 시간에 맞춰서 배달을 시키고, 음료수와 과일은 종점 슈퍼에서 사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가구에서 윤이 나도록 청소를 하려고 했으나, 김현세 때문에 헛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고 생각하고, 팔이 아프도록 빠른 시간 내에 대충대충 눈에 보이는 부분만 소를 했다. 걸레를 목욕탕에 갖다 두고 슈퍼에 가기 위해 집에서 입는 헐렁한 원피스를 벗으려고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이 시간에 찾아 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으로 등뒤에 지퍼를 절반쯤 내리다 말고 문 앞으로 갔다.
"접니다."
김현세 였다. 김현세의 탁한 음성이 문을 뚫고 들려 오는 순간 현숙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을 쳤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는 거지.......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덜렁거리는 것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른 뜻은 없고 이것을 전해 주려고 왔습니다. 이웃들의 시선도 있을 테니 빨리 문을 열어 주시죠."
김현세의 목소리 작았으나 침착했다. 현숙은 면으로 된 헐렁한 원피스의 지퍼를 반쯤 내린 상태여서, 어깨 깃 이 벌어진 탓에 브래지어 끈이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김현세의 말대로 다른 사람, 즉 이웃들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늘 승혜 생일이라고 해서."
문안으로 들어선 김현세의 손에는 두 개의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장미꽃과, 프리지어며 튜울립 등이 어우러진 다발과, 다른 손에는 새빨간 장미꽃이 셀로판 용지에 쌓여 있었다.
"고.....고마워요."
현숙은 김현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그가 와락 껴 않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김현세는 얼른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현숙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김현세를 바라보았다.
"장미꽃은 제가 현숙씨에게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왜,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까?"
김현세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서 있는 현숙에게 탁한 음성으로 물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저......전화를 했었어요?"
현숙은 이 기막힌 예감에 몸을 후두두 떨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다.
"그 동안 제가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냈는 줄 아십니까?"
"그러지 마세요. 저 때문에 괴로워 하셨다면 제가 용서를 빌겠어요."
현숙은 붉게 충혈 된 김현세의 말을 듣는 순간 멈칫 하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간절한 갈망에 떨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얼굴도 많이 여의어 보였다. 그 뒤에 자신의 쉽게 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아내가 없지만 어린 딸을 데리고 그래도 행복하게 살던 김현세가 고통스럽게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아닙니다. 모든 잘못은 제게 있습니다. 사과를 하려고 그 동안 기회를 엿 보았지만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왜요?"
"현숙씨에게 사과를 하기 이전에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 닫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마음을 이해 하실 수 있습니까."
"아......안돼요. 우리 더 이상 만나면 안돼요."

『간통, 그 황홀한 유혹』 ⑫

현숙은 김현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끝이 되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고통 속에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김현세가 말꼬리를 흐리며 신발을 벗고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현숙은 그를 거실로 못 들어오게 말려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뒷걸음을 치며 고개만 흔들었다.
"현숙씨 때문에 내가......."
현숙이 뒷걸음치다 거실의 장식대에 부딪쳐 옆으로 허리를 비트는 순간이었다. 원피스의 벌어진 어깨깃 이 한쪽이 팔뚝으로 훌렁 벗겨져 내렸다. 순간 파란색의 브래지어 한쪽의 절반이 드러나고 말았다.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압니까?"
김현세는 현숙을 와락 껴 않았다. 으......읍! 현숙은 당황했다. 양손에는 꽃다발이 한 개 씩 들려져 있었고, 브래지어 한쪽이 겉으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김현세가 껴 않는 순간 꽃다발을 떨어트리고 원피스를 치켜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김현세의 품안에 안겨 있는 상태 여서 자신도 모르게 김현세의 등을 껴 않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제.....제발!"
김현세는 키스를 하지 않았다. 곧장 원피스의 어깨 깃을 잡아 당겼다. 이어서 이미 절반 정도 지퍼가 열려 있던 헐렁한 원피스의 허리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며 반라가 되고 말았다. 그 틈을 이용해서 브래지어를 치켜올린 김현세의 입술이 젖꼭지를 공략해 왔다.
"우리.......마.....말로 해요."
현숙은 김현세의 거친 입술이 젖꼭지를 정신없이 흡입하는 순간 더 이상의 말을 잃고 말았다. 김현세는 젖꼭지를 빠는 한편 다른 손으로 허리까지 내려 와 있던 원피스를 내렸다.
"아......아......으.....음!"
현숙은 원피스가 허벅지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했으나, 생각과 다르게 김현세의 목을 껴 않고 턱을 한껏 치켜 올린 체 이빨을 악물었다. 이것이었던가. 김현세의 손은 마법사의 손과 같았다. 손끝이 스쳐 가는 곳마다 불꽃이 일어 나는 듯한 전율이 튀어 나왔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현숙이 반항하기를 포기했다는 것을 눈치챈 김현세는 젖꼭지에 있던 입술을 어깨로 올렸다. 둥그스름한 어깨에 질퍽한 타액을 묻혀 가면서 목덜미로 옮겨갔다.
"이.......이러면!"
현숙은 김현세의 단단한 심벌이 팬티를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그의 입술을 받았다. 불꽃이 이처럼 뜨거울까. 김현세의 입에서는 용암이 분출되고 있는 것 같아서 혀가 스쳐 가는 것마다 온 몸이 녹아드는 것 같았다.
"아......안돼요."
현숙이 몸이 타오르는 듯한 전율에 떨며 헉헉거리고 있을 때 였다. 김현세의 손이 불쑥 팬티 안으로 들어와서, 이미 젖어 가기 시작하는 꽃잎을 덥석 움켜쥐었다.
"여......여기선 안돼요."
현숙은 김현세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김현세의 손은 기어이 꽃잎 속으로 들어가고 말겠다는 듯이 밑으로 뻗어져 나갔다.
"우......우리 집에서는 안돼요. 다......다른 곳에서."
현숙은 있는 힘을 다하여 팬티 속에 들어가 있던 김현세의 손목을 빼 냈다.
"그럼?"
김현세가 거친 숨을 내 쉬며 짧게 반문했다.
"오....오후에 전화를 해 줘요. 아셨죠?"
현숙은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사는 집에서 그와 섹스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잠시 멈칫거리고 있던 김현세의 품안을 빠져나갔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후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김현세는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벽에 등을 기댔다. 그 틈을 이용해 재빠르게 원피스를 치켜올린 현숙은 냉장고가 있는 것으로 갔다.
"자! 이 물을 마시고 어서 이 집을 빠져나가 주세요."
김현세는 현숙이 건네주는 생수를 거침없이 마시고 나서 돌려주었다. 그러다 현숙이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생수병을 받은 순간 다시 달려들어 키스를 했다.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아.......알겠어요."
현숙은 조금 전과 다르게 김현세의 입술이 얼음을 머금었던 것처럼 차갑다는 느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약속을 해 버렸다.
밖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현숙은 이상하도록 가슴이 편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매를 맞아 버린 후에 가슴이 편해지는 그런 기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김현세를 두려워했던 것은 가정이 깨질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를 향한 목마름이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여하튼 그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기분이 한결 낳아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는 한참 되었는지 보도불럭이 물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잔뜩 움추린체 골목을 빠져나갔다.
영이네 는 때묻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사과를 한알, 한알 닦아 내고 있었다. 박스 안에 들어 있던 사과가 그녀의 장갑 낀 손을 한번씩 스쳐 지나갈 때마다 윤이 나도록 반짝 거렸다.
"갑자기 왠 비 래요."
현숙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음에도 짐짓 모르고 있었던 표정으로 우산을 접으며 웃음으로 인사를 했다.
"글세 말여. 이왕 내릴 비면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릴 일이지, 과부 기분 심숭생숭 해 지게 왠 가랑비가 내리는지 모르겠네."
현숙은 영이네 가 닦아 놓는 사과 중에서 알이 굵고 큰 것으로 몇 알 고르기로 하고 그녀 옆으로 갔다.
"사람이나 과일이나 때깔이 좋아야 실속이 있능겨. 이 사과 맛이 그만잉께. 이왕이면 많이 사가 덤으로 하나 더 줄팅게 말여."
영이네는 현숙이야 사과를 고르던 말던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사과 값이 비싸서 많이 살수가 있어야죠. 천 원에 얼마씩 한데요?"
"세 개에 천원만 줘. 모래내 시장 가도 여기 보다는 비쌀 겨. 그라고 말여, 계, 는 들 거지? 이 번으로 줄텡께 꼭 들으라고. 들어서 손해 볼거 없어. 이 번이면 공짜나 마찬가지 아녀.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저 밑에 공터 옹기장수 알지. 그 여편네가 이 번 달라고 사정사정 했쌓는 걸. 승혜 엄마 생각해서 삼번 으로 미뤘잖어. 그라니까 내 체면을 생각해서라두 계는 꼭 들어야 햐. 알았지?"
"그 분한테 이 번을 주시지 왜 저한테 이 번을 주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저는 아직 결정도 안 내렸는데."
현숙은 이 번을 준다는 말에 구미가 당기긴 하나 결정을 내리지 않은 체 웃으면서 반문했다.
"그 여편네야 서울 슈퍼 단골 아님감. 그라고 승혜 엄마는 우리 집 단골잉께 당연히 이 번을 줘야지 안 그려? 그라고 결정을 내리고 안 내릴 것도 없어. 막말로 은행에 가 봐. 적금 한달치 불입했다고 원금을 내 줄거 가텨. 어림 반푼 어치도 없지. 그것 뿐인 줄 알아. 인감 증명서 떼와라. 보징인 안쳐라, 귀찮은 서류가 좀 많아. 그랑께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은 뭐니뭐니 해도 몫돈 만드는 데는 계만큼 좋응게 없어. 하긴 승혜 내야 남편 직장 확실하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월급날 만 되면 돈이 착착 나오니까 해당 사항 없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말여."
영이네가 현숙을 계원으로 끌어 드리는 이유는 마지막 말에 있었다. 재벌 회사는 아니지만 이름만 대면 쉽게 떠오르는 중소 기업체에 다니는 남편을 둔 현숙이 계원이 된다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제법 믿을 만한 사람만 계원으로 가입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줌마 말대로 이 번을 든다면 그만큼 불입액도 많아지잖아요?"
현숙은 계를 들어보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끼며 구체적으로 물었다.
"불입액이 많은 거야 당연한 거 아녀. 그란데 아무리 불입액이 많다 해도. 삼 백 만원에 대한 이자 보다는 작응께. 그런 걱정일 랑 하지도 말아."
계의 구조가 선 순위로 갈수록 불입액이 많아지고 후순위로 갈수록 불입액이 적어지게 마련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계금을 미리 타면, 늦게 타는 사람들의 이자를 보충해 주게 되고, 늦게 타는 사람은 불입액 총액이 원금 보다 적게 된다. 영이네는 계 오야를 하는 틈틈이 사채놀이를 하여 쏠쏠한 재미를 보는 여자답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얼굴로 잘라 말했다.
"하긴 그런 맛에 계를 든다고 하는 말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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