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약유정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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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종소정의 집에서 나와 단지 입구를 지날 때 나는 예상 밖의 인물과 마주쳤다. 며칠 동안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던 곽기가 뜻밖에 이 작은 단지 내에 출현한 것이었다. 그의 안색은 어두웠고 머리는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입에는 담배를 물고 연기를 연신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인사하는 것을 보지 못한 듯 그냥 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역시 1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마음 속으로 약간 궁금함이 치솟았다. 이 화상이 어찌 여기서 뛰노는 거지? 그가 며칠 씩이나 집에 돌아오지 않는데도 백리원 또한 그를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 역시 이 사람이 집 안의 한 구성원이라는 것을 등한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각 나는 곽기를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전부가 백리원의 신상을 향해 있었다. 그 PC방 화장실 안에서 발생한 3P 동영상을 통해, 정욱이 이야기해준 늙은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런 것들을 모두 부득이하게 마주치자 나는 이 문제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도대체 이 몇 년간 모친은 탈선을 일삼은 것이란 말인가? 혹은 현재까지 그녀는 이런 불륜의 남녀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종종 나타나는 흔적들과 나의 짐작은 그것에 대한 긍정의 답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른 남자와 투정을 하고 있는 증거를 확실히 장악하기 전에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기에는 충분치가 않았다. 나로서는 지금 막 다시 재건하고 있는 모자지간의 친밀을 감히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경솔할 수가 없었고 또 충동을 자제했다. 모든 것을 장악할 노력이 필수였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곤란한 지경에 빠질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자 백리원은 이미 풍성한 식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나는 앞 전에 발생한 일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다. 또한 직접 그녀에게 그 일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묻지도 않았다. 표면상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가장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그녀와 평정한 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암암리에 그녀 생활의 자세한 세부를 유의해서 관찰했다. 그녀의 탈선과 관련된 어떤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들어와 살게 된 이후로 곽기를 제외하고는 이 집안에 기타 남자는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녀의 개인 생활과 일상용품 속에서도 남자의 흔적은 없었다. 이것이 나를 약간 초조하고 불안하게 했다. 비록 아주 많은 조짐이 그녀에게 존재하는 다른 일면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친히 목도하지 못한 바에 나는 감히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줄곧 그런 눈꼽 만큼의 환상을 품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이유 없는 근거 없는 의심이기를.
이번 주 일요일 아침이다. 고정된 일정에 따라 엄마는 그녀의 매장에 가서 사업을 돌봐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보물 아들이 되어야 했다. 일찍부터 명령에 따라 그녀를 대동하고 그녀의 여자 친구들과 대면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옷을 잘 차려 입고 그녀가 화장을 하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여인이 화장을 하는 동안 기다리는 것은 아주 무료한 일이다. 설령 그 여인이 아주 아름답거나 또는 당신의 모친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실외로 나가 담배라도 피울까 하는 무렵 백리원의 목소리가 안방 그쪽에서 전해져 왔다. 나보고 들어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향기가 코를 찌르는 안방으로 걸어 들어가니 백리원은 이미 백색의 해마털로 된 상의를 입고 있었다. 하반신에는 아직 잠옷 바지를 입고 있는 채였다. 등을 문 쪽으로 한 채 그녀의 웨이브진 긴 머리결을 손질하고 있었다. 그녀는 백색 화장대 앞에 앉아 있었다. 거울을 통해 나의 신영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급히 거울 속의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말했다.
“석두야! 빨리 와. 엄마 머리 뒤로 묶은 것 좀 잘 정돈해 주지 않을래? “
그녀의 긴 머리결은 이미 머리 뒤로 시뇽 헤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가닥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가 옆으로 삐져 나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들어올려 백리원의 손 안에 넘겨 주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잘 정리해 백색의 차꽃 무늬 헤어핀으로 잘 고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통해 몇 번 비추어 보더니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 착하지. 여기서 좀 기다려. 엄마 치마 갈아 입으면 바로 출발 할거야. “
말을 마치자 일어나더니 드레스룸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마침 이 순간 울려 퍼졌다. 나는 화장대 위 그 눈에 익은 아이폰의 액정이 이미 환히 밝혀진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그녀에게 다가가 건네주었다. 백리원은 전화를 보더니 얼굴색이 약간 우울해졌다. 몸을 돌려 드레스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나는 희미하게 그녀가 안에서 전화를 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마음 속이 불안했다. 드레스룸 문 입구로 다가가 무슨 일인가 들으려 했다. 하지만 그 거울을 끌어 닫는 문은 이미 닫혀져 있었다. 룸 안의 방음 효과는 아주 좋아서 근본적으로 안쪽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씩씩거리며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대략 10분쯤 후에 드레스룸 문이 열렸다. 안쪽의 대화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백리원도 옷을 다 갈아 입은 상태였다. 그녀는 하반신에 군청색의 패키지 힙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스커트의 허리 부위는 연잎으로 된 레이스가 치장되어 둘러져 있었다. 스커트 길이는 무릎 위쪽으로 검은 색 스타킹으로 감싸인 아름다운 다리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최근 날씨가 약간 선선해지고 있었다. 나는 또 그녀가 스타킹을 신은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그 흑색 스타킹은 분명 고급 제품일 것 같았다. 무늬가 세밀하고 반들반들 한 것이 그녀의 길고 곧은 아름다운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그녀 신상의 제2의 피부가 된 듯 돌출된 다리 부위의 곡선미를 우아하게 증가시켜 주고 있어 한 줄기 독특한 여성의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백리원은 걸어 나오는데 약간 편치 않은 듯 눈쌀을 찌푸리고 있었다. 손에 든 가방을 침상 위에 던지고는 바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그녀가 침상에 던진 그 은색의 격자무늬의 손가방을 바라봤다. 뇌 속으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다. 화장실 그 쪽을 살펴봤다. 그 거울이 엄밀하게 가려주고 있었다. 나는 쾌속하게 엄마의 가방을 나꿔챘다. 지퍼를 열었다. 과연 그 아이폰을 찾을 수 있었다. 액정을 밝혔다. 이미 락이 걸린 것을 발견했다. 나는 먼저 엄마와 아빠의 생일을 입력했다.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엄마는 금방 화장실에서 나올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 앨범에 써있던 나의 생일이 떠올랐다. 즉시 입력을 했다. 마침내 순조롭게 해제가 됐다.
다른 것을 돌볼 겨를 없이 직접 통화기록을 열고 봤다. 엄마의 전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이미 만났던 여자친구들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기타 보존되어 있는 낯선 전화번호는 많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통화는 10분 전에 온 것이었다. 나는 자세히 살폈다. 이 번호로 전부 3통화가 기록이 되어 있었다. 나머지 통화는 지난주 금요일 오후 4시 20분에 결려온 것이고 최초의 것은 지지난주 토요일 낮 11시쯤 걸려온 것이었다. 통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7~10분 좌우였다.
더 자세히 볼 틈 없이 화장실 쪽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종료하고 가방의 원래 자리에 넣은 후 화장대 옆으로 되돌아갔다. 백리원도 그 때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얼굴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석두야! 방금 시언니에게서 전화가 온거거든. 몇몇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고 해서 오늘 같이 그녀가 새로 개업한 미용실을 가기로 했어. “
“네가 평소에 그런 여인들과 교류하는거 즐거워 하지 않는 거 잘 알아. 우리 미용실 가면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니 분명 너 참기 힘들거야. 그러니 오늘은 엄마랑 같이 안가도 돼. “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녀의 거짓말을 알고 있었다. 방금의 그 전화는 시언니에게 걸려온 것이 아니었다. 어제 저녁 시언니에게 전화가 걸려 왔었는데 번호가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얼굴에 내심의 활동을 나타낼 수 없었다. 다만 맞장구를 치며 그녀에게 그런 장소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에서 쉬는게 좋다고 했다. 백리원은 동의를 하고는 가방을 집고는 문을 나섰다. 나는 그녀를 문에서 보내며 넌지시 말했다.
“엄마! 일찍 들어와. 나 기다리고 있을게. “
나의 말이 무엇을 건드린 것 같았다. 백리원의 이미 걸음을 내딛던 하이힐이 뚜렷이 멈춰 섰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약간 떨리는 것이 보였다. 이 시각 나는 그녀가 몸을 돌려 돌아와 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결국 현실이었다. 그녀는 잠깐 멈췄다가 다만 등 뒤의 나를 향해 말했다.
“응! 알았어. “
그런 후 나의 시선에서 사라져 갔다.
백색의 BMW X1이 주차장에서 빠져 나가는 것을 보며 뒤를 따르던 나는 서둘러 길에 서있던 택시 한 대를 올라탔다. 기사에게 말해 백리원의 차를 뒤쫓도록 했다. 다행히 X1은 그렇게 빠르게 운전을 하지 않아 기사 역시 그리 어렵지 않게 그것을 따라갈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사십 좌우의 중년인 이었는데 나의 요구에 대해 그렇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아주 흥미롭게 나를 대우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아마 나를 바람난 여편네를 쫓아가는 남편 쯤으로 여긴 것 같았다. 나는 가타부타를 하지않고 마음 속으로는 일종의 쓴 맛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X1 차의 흐름을 따라 가보니 만륭빌딩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내 중심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엄마는 과연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오늘 말한 것은 모두 나를 속인 것이었다. 그녀는 그 여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스케쥴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앞서 받은 그 전화와 관계가 있을 것이었다. 그 전화의 주인이 누구이든간에 그 사람의 엄마에 대한 통제력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전에 걸려왔던 두 번의 통화 시간을 보고 나는 저절로 한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의 전화와 정욱이 이야기한 그 회색 양복의 늙은 남자는 동일 선상의 일이 아닐까? 또한 지지난주 토요일의 전화는 의대부속 병원에서 엄마가 받았던 그 전화와 동일인이 아닐까? 이 통화들과 이 일들이 발생한 시기는 절묘하게 부합했다. 매번 이 전화가 출현한 후 엄마는 각종 핑계를 대며 나의 신변을 떠나간 것이었다. 이 일어난 모든 사실이 일종의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게 일종의 공포스런 가능성 말이다.
X1을 쫓다보니 한 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이 곳은 이미 시중심의 최고 번화한 구역이었다. 길 양쪽에 늘어 서 있는 건축물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각종 고딕 양식의 꼭대기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먼지 투성이의 벽돌과 석조 구조물이 역사의 무거움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 곳은 이 젊은 도시에서 가장 역사적인 색채가 심한 곳이었다. 또한 이전의 영광과 몽상의 한 모퉁이였다.
X1은 커브를 돌아 길 옆 녹음이 울창한 속 빌딩으로 들어갔다. 이 빌딩은 말하자면 겨우 10층 높이였지만 독특한 녹색의 뾰족한 지붕 꼭대기에는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건축 외형은 르네상스 스타일로 아주 정중하고 대범하게 이 길 위에 놓여 있었다. 흑색의 대문 입구 위에는 금박이 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Fairmont Hotel”, 안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의관이 말쑥한 것이 대단히 부귀해 보였다.
백색의 X1이 막 빌딩 문 앞에 정차하자 갈색에 금 테두리를 한 복장을 입고 챙이 큰 모자를 쓴 의전관이 정중하게 다가와 차문을 열었다. 회색의 신끝이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선조가 지극히 우아한 검은 스타킹으로 감싸인 아름다운 다리가 먼저 차 밖으로 드러났다. 그런 후 백리원의 우아한 신영이 차 밖으로 걸어 나왔다. 손가방을 들고 바로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벨보이가 다가와 아주 숙련되게 차를 몰고 갔다.
나는 일찍 이미 멀지 않은 뒤쪽에 차를 내려 이를 보고 있다가 서둘러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몸매와 입고 있는 차림에 서비스맨이 아주 예의 있게 환영의 인사를 표시했다. 나는 로코코 식의 황금빛과 푸른빛이 찬란한 메인 홀을 지나 50미터 좌우의 거리를 두고 백리원 뒤를 따랐다. 그녀는 이 곳의 시설에 아주 익숙한 듯 직접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한 대의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안의 사람들이 모두 내리자 백리원은 혼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서둘러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보았다. 엘리베이터의 층수를 가리키는 것은 복고식의 시계바늘형이었다. 10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른 엘리베이터를 살폈다. 정말 공교롭게 옆에 또 한대의 빈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나는 즉시 안으로 들어가 10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밖이 시끄럽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다가 다시 열렸다. 다시 세 사람이 타는 것이었다. 두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어린아이였다.
이 두 어른은 느낌으로 보아 한 쌍의 부부였다. 그중 남자는 나이가 마흔살 전후였고 머리는 기름이 번지르르하고 신상에는 가격이 적지 않을 것 같은 정장을 입고 있어 전신에 넌지시 유지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 옆에 여인은 서른살 좌우인데 몸매는 호리호리하고 얼굴은 청수했다. 오히려 비교적 분위기가 있었다. 그들이 데리고 있는 어린아이는 겉보기에도 무척 장난꾸러기 처럼 보였다. 통통한 머리가 짧고 굵은 목 위에 놓여 있는데 이마 앞 쪽은 빡빡 깍고 뒷 머리 쪽에만 돼지 꼬리처럼 머리를 땋아 놓고 있었다. 언제적이였는지 여진족의 머리 모양을 이 어린 아이가 하고 있었다. 한족의 가장들이 자신의 후대를 바꾸려고라도 하는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돼지꼬리 모양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장난꾸러기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떼를 쓴 것은 아니었고 엄마에게 달라 붙어 있으면서 한 쌍의 검은 콩 같은 작은 눈을 굴리며 나의 신상을 마치 무엇을 찾는 듯이 훑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서운 눈초리로 째려보자 장난꾸러기는 나의 신형상 재미가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모친의 품을 벗어나 엘리베이터 문 앞으로 달려가 단추를 마구 눌러대는 것이었다. 이것은 완전히 나의 예측을 벗어난 것이었다. 내가 반응해서 그를 잡으려 하기도 전에 2층부터 9층까지의 층이 전부 그에 의해 밝혀진 것이었다.
장난꾸러기의 모친은 급히 달려와 아들을 잡았다. 입으로는 연신 나에게 무례를 사과했다. 장난꾸러기의 부친은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 속에서는 마치 이런 일 쯤이야 아무런 일이 아니라는 듯 했다. 도리어 장난꾸러기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장난꾸러기는 나의 노려보는 눈에 약간 겁을 먹은 듯 했다. 4층에 도달하자 엘리베이터를 나가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의 부모는 아들을 안고는 엘리베이터를 나갔다.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이 무슨 어이없는 가족인가? 하지만 일은 벌어졌으니 지금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나는 다만 눈을 빤히 뜨고 엘리베이터가 매 층마다 3초 정도의 시간을 머무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10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나섰을 때는 이미 백리원의 신영을 찾을 수 없었다.
이 빌딩의 층은 보통의 호텔과 같지 않았다. 그것의 천장은 특별히 높았다. 상면의 인테리어는 화려한 벽화가 치장되어 있었고 발에 밟히는 것은 자색의 페르시야 융탄자라 푹신푹신했다. 온전히 한 층마다 사치스럽게 5개의 방으로 설계가 되어 있었다. 육중한 홍목으로 된 방문은 모두 꼭 닫혀 있었다. 방음 효과도 아주 좋아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근본적으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방에 사람이 들어 있는 것인지 판단할 길이 없었다. 백리원은 도대체 어느 방으로 들어간 것일까?
내가 속수무책에 빠져 있을 때 엘리베이터 쪽에서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올라오는 것이었다. 나는 마땅히 자신이 어찌해서 혼자 이곳에 서있는가 구실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은 이미 나에게 더 많은 사고를 하게끔 해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쾌속하게 복도 막바지에 있는 최후의 한 방문 앞으로 달려갔다. 이 방은 특별히 엘리베이터 문과 마주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방문 입구 바로 앞에 하나의 거대한 크리스탈 등이 달려 있었다. 나는 양손 양발로 양쪽 벽을 디디며 힘을 주어 밟고 위로 기어올라가 크리스탈 등 머리 위로 올라갔다. 등 부위가 완전히 천장에 닿아 있었다. 양손과 양발을 완전히 뻗어 천장 옆의 벽을 딛고 있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쪽에서의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원래 제복을 입은 종업원이 다이닝 카를 몰고 내리는 것이었다. 그는 내 아래쪽을 지나쳐 5호실 문 앞으로 갔다. 벨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한 남자가 종업원을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종업원은 그의 분부대로 따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이닝 카가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이 꽉 닫히지가 않았다.
이러한 보기 드문 기회를 내가 어찌 놓칠 것인가? 안에 누가 있는 것인지를 고려할 틈도 없이 나는 몸을 뒤집어 천장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약간 쩌릿한 느낌을 돌 볼 겨를 없이 쾌속하게 문 옆에 붙어 안쪽을 들여다 봤다. 백색의 목욕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문 입구에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종업원에게 지시를 하며 그의 요구에 따라 식기들을 내려 놓도록 하고 있었다. 나는 기회를 틈타 방안으로 몇 보 걸어 들어갔다. 안쪽의 공간은 상당히 넓었다. 문을 들어서면 하나의 거실이 있었고 또 커다란 발코니가 하나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발코니 쪽에 서 있었다. 옆쪽에는 다른 방이 하나 있었다.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들이 언제 고개를 돌릴지 몰랐다. 그러면 나는 숨을 곳이 없었다. 번개같이 그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분명 침실이었다. 비록 백주대낮이었건만 육중한 실크 커튼이 전부 가려져 있었고 침대 머리에 있는 두 개의 조명등이 켜져 있었다. 3미터가 넘는 초대형 침상에는 순결한 하얀 침구가 둘러져 있었다. 정연한 모습으로 보아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옆에 있는 욕실문은 닫혀져 있었다. 유유히 비쳐 나오는 불빛과 떨어지는 물소리로 보아 안에 누군가가 샤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방의 사방을 살펴 보았다. 무의식 중에 시선을 끈 것은 침상 좌측 바닥 위 아무렇게나 벗어둔 것 같은 한 쌍 여인의 하이힐이었다. 회색 빛에 끝이 뾰족한 7센티미터 높이의 힐. 이것은 엄마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신었던 바로 그 하이힐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가슴이 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바닥에 벗어 놓은 하이힐, 욕실 안에서 들려오는 물소리, 목욕가운을 입고 있는 낯선 남자, 고급 호텔 안에서의 밀회. 이러한 적나라한 단서들이 가혹하게 나의 눈 앞에 늘어서 있었다. 나로 하여금 백리원이 탈선하고 있는다는 사실을 부득불 접수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잡아서는 무엇을 한단 말인가? 당장 그들의 관계를 까발리고는 엄마를 끌고 가버릴 것인가?
내가 결정을 하기도 전에 방문 쪽에서 이미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 방은 그 욕실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숨을 곳이 없었다. 나는 그 남자와 대면을 해야 하는 것인가? 설마 욕실로 뛰어 들어가야 하는가? 엄마가 안에서 샤워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전광석화간에 나의 등 뒤로 차디찬 물건이 닿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손으로 잡았다. 문 손잡이 같은 것이 잡혀졌다. 고개를 돌려 보았다. 욕실 옆쪽 벽에 뜻밖에 하나의 문이 있었다. 이 때 나는 이미 이것이 무슨 문이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방문 입구의 발자국 소리는 가면 갈수록 가까워져 왔다. 나는 서둘러 손잡이를 돌렸다. 이 문을 연 후 급히 그 문 안으로 들어간 후 손으로 다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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