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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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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669 회 작성일 24-02-06 18: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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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그녀의 딸(7)




7)하숙집 아줌마와 아줌마의 조카딸


우리 집을 시골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잘 사는 편도 아니다.


겨우 아들 하나 있는 것을 힘들게 대학에 보내고 허리가 휠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난 반 지하 방에 세 들어 자취를 하면서도 거의 굶다시피 하며 대학에 다녔을 정도였다.


대가리나 좋았으면 장학금이라도 받아 긴요하게 썼을 것이지만 대가리가 그리 썩 좋지를 못 하니 장학금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 하고 최저 임금을 주는 곳도 얻어 걸리지를 못 하여 그도 덤핑으로 최저임금에 미치지도 못 하게 주는 곳도 감사하게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여야 하였다.


다만 한 과목 전공이 국문학이었기에 국어 그리고 국어와 관련이 있는 것만은 아주 자신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남에게 뒤지지 않는 편이었다.  




길실 집안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 마음 같았으면 고등학교도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 그도 공고 쪽을 다니고 졸업을 하면 바로 산업현장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외동아들이라 부모님의 기대를 받는 입장에서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실업계에 가기란 나의 다부지지 못 한 성격은 그도 허용하지 못 하고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격에 맞지도 않은 대학을 억지춘향처럼 다녀야 하였으니 얼마나 대학생활을 거지처럼 하였겠는가는 구차하게 말을 더 하지 않아도 이해를 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니 미팅인들 꿈에나 꾸겠는가.


심지어 동아리 모임에도 선배들이 자금을 지원하고 동아리 회원들은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신입생 환영회 같은 곳이나 나갈까 단 돈 몇 천원이라도 내야 할 때는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참석을 하지 않을 정도로 가난한 대학생활을 하여야 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먹고 싶은 것을 가장 많이 먹은 때가 어느 때였냐고 물었다.


그때 내 대답이 무엇이었냐.


아마 듣고 나면 기절초풍을 하고 나자빠질 것이다.


대학 2학년을 다니다 말고 1학기가 마치자마자 난 군대에 입대를 하였다.


몇 안 되는 일가친척들이 그래도 내가 군대에 입대를 한다고 하니 몇 푼씩 손에 쥐어주더라.


그 중에 일부는 부모님에게 드렸고 나머지 일부는 훈련소에 입소를 하면서 가져갔고 그것을 훈련소에 맡겼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고 선임을 따라 PX에 갔더니 내 수중에 가진 돈이면 사회에서는 몇 끼 군것질꺼리나 사 먹을 정도의 돈이었지만 거기에서는 사서 먹고 또 먹어도 남을 정도의 돈이었고 그 덕에 사회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남이 먹는 것을 바로 보지도 못 하고 곁눈질로만 봐야 하였던 나로서는 몇 날 몇 칠 만찬을 벌려도 될 만큼 배부르게 사 먹을 수가 있는 돈이었고 거기다가 월급에 보너스까지 나오는 달이면 그 돈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졸병이라 마음대로 PX에 드나들지 못 하는 것이 문제는 되었지만 이도 고마운 선임을 만나 덕에 무난하게 해결을 하였는데 제대를 하고 대학도 졸업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그 고마운 선임은 잊지 못 하고 적어도 몇 달에 한 번 씩은 만나서 쓴 소주이지만 그때를 회상하며 목을 축이기도 하고 있다.




누군 그러더라.


제대를 하고 다시 대학생활을 하려면 그 돈이라도 모아 두었으면 유용하게 썼을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 일 년 하고도 반년을 다니는 동안 변변한 군것질을 해 보지 못 한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었겠냐?




그런 군대를 다녀오고 보니 다시 예전보다 더 어려운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예전과 같은 생활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대에서 그나마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보낸 세월 덕에 예전에 어렵게 생활하던 것은 잊어버리고 군대 시절의 생활과 비유를 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반 지하 자취방은 그나마도 호강이라면 호강이었다.


오뉴월 땡볕 아래에서의 옥탑 방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도 시멘트와 블록으로 조잡하게나마 지어진 집은 호강이었다.


철제로 만들어진 컨테이너 방은 그야말로 불지옥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런 건물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일수록 사람 수에 비하여 월등하게 작은 방을 비롯한 공간을 가진 방이나 집이었기에 빨래를 하면 모조리 내가 생활하고 있는 컨테이너 방이 있는 옥상에서 말려야 하였기에 아무리 더워도 팬티나 러닝차림으로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고 밤에 더위를 식히려고 등목이나 물바가지라도 뒤집어쓰려면 물통을 들고 밑층으로 내려가서 받아와야 하는 곤욕을 치러야 하였기에 그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뿐인가.


같이 어렵게 세 들어 사는 주제에 전기 요금 조금 많이 나오면 잔소리요 수도세 많이 나와도 만만한 것이 홍어 좆이라고 가난한 대학생인 나에게만 잔소리란 잔소리는 모조리 퍼부어대니 없는 것도 슬픈 일인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런 잔소리 때문에 선풍기도 날개가 아이 손바닥만 한 것을 사용하였고 세수를 할 때도 거의 고양이 세수 하듯이 해야 하였고 옷의 세탁도 일주일 정도 입어야 하였는데 그렇게 했더니 이번에는 신경이 무딘 학생이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는 같은 집에 살자니 더러워서 함께 살 수가 없다며 핀잔을 주었다.


이래도 마음에 안 들고 저래도 마음에 안 드는 그런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난 작년 초에 그나마 무사히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뜻 하지도 않게 군대 선임이셨던 분의 도움으로 작지만 장래성이 보이는 회사에 취업을 할 수가 있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대가리나 좋았으면 장학금이라도 받아 긴요하게 썼을 것이지만 대가리가 그리 썩 좋지를 못 하니 장학금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 하고 최저 임금을 주는 곳도 얻어 걸리지를 못 하여 그도 덤핑으로 최저임금에 미치지도 못 하게 주는 곳도 감사하게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겨우 대학을 다녔고 오뉴월 땡볕 아래에서의 옥탑 방의 그나마도 철제로 만들어진 컨테이너 방은 그야말로 불지옥이나 다름이 없었던 곳에서 자취를 하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얻은 최고의 행운은 역시 취업이었다.


그간의 고생이 춘삼월 봄바람에 눈 녹듯이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신입사원 주제에 다른 사원들처럼 정 시각에 출근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원들보다 일직 출근하여 기다리는 것이 나를 그 화사에 취업을 알선한 군대 선배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나와 같이 입사를 한 사원들의 경우 나보다 훨씬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고 실력 역시 나는 그들의 발굽 사이에 끼인 때보다도 못 한 존재란 사실이 나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자취를 하다가는 아침은커녕 저녁도 굶을 처지였다.


입사 후 한 달 동안 점심이야 모조리 챙겨 먹었지만 아침은 몇 번 먹었는지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였고 저녁은 겨우 손가락 전부를 채우고 조금 넘기는 정도였다.


쉬운 말로 밥을 먹는 것보다 굶은 때가 더 많았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말이다.


어떻게 되었겠는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니는 동안의 영양 결핍도 모자라 남들이 어렵게도 하지도 못 하는 취업을 당당하게 하고도 밥을 제대로 먹지 못 한 탓에 내 몰골은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그런 모습이었다.




첫 봉급을 받자 나는 나를 취업 알선을 해 준 군대 선임이었던 분과 술자리를 마련하였는데 그 분은 내 몰골을 보고는 이유를 묻기에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 한 이유를 이야기하자 그분은 그 자리에서 술자리를 파하자고 하더니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아담한 주택으로 일층에는 몇 개의 가게가 있었고 이층에는 무슨 사무실 같은 것이 있었으며 삼층으로 올라갔더니 일이층에 비하여 연 면적은 적은 건물이 있었는데 그 선임께서 주저 없이 차임벨을 누르자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더니 선임의 손을 잡고 왜 이제 왔느냐고 펄쩍펄쩍 뛰며 반기셨다.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고 거실로 들어간 선임과 아주머니의 대화를 들어 본 결과 선임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기 전 까지 하숙을 한 집이 바로 그 집이었고 선임을 하숙친 아주머니가 바로 그 아주머니였었던 모양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선임이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의 아들 소식을 물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유학을 간 아들이 아직 석사 코스를 밟고 있어서 박사 학위까지 받으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자 선임은 아주머니께 나를 소개하며 집도 지킬 겸 말동무나 하게 나를 하숙생으로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한참을 내 얼굴이며 몸을 살폈고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며 대학생활은 어떻게 하였느냐는 둥의 갖가지 사소한 것까지 묻더니 같이 생활을 해 보자고 거두어 주었다.


난 그 아주머니 아니 하숙집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술자리에서 다시 선임의 고마움에 감격의 눈물을 보여야하였다.


술자리 끝에 아주머니 집에서 나와서 군대 선임은 나에게 아주머니에게 조카로서 아주머니가 조카이지만 딸처럼 여기는 고등학생이 하나 간혹 올지 모른다면 혹시 자기에 다하여 묻더라도 절대 모른다고 하라는 이상 한 말을 남기고 갔다.  




그리고 일요일 난 살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는 짐을 챙겨들고 하숙집으로 입주하였다.


정말이지 행복하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는 엄마가 해 준 밥을 먹고 다녔지만 찌들게 가난하였던 우리 집은 말 그대로 자린고비 같은 생활을 하였기에 군대에서 하는 일식삼찬은 호강이라고 할 정도로 빈약한 상차림이었던데 반하여 하숙집 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저녁 상은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돈을 벌어 수입이 있었지만 나 혼자 자취를 하는 동안 죽어 나가는 것이 빈 라면 봉투였고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들이었고 그나마도 절만 이상이 쉬어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또 내가 시간이 나는 일요일이나 쉬는 토요일의 경우에고 돈은 있었지만 귀찮아서 라면이나 기껏 한다고 해 봐야 켄터키치킨이나 족발은 안주로 소주나 마시지 밥 같은 밥을 먹어 보지 못 한 나로서는 최고의 호강스런 날의 연속이었다.




하숙을 하면서 시간이 나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도 하숙집 아주머니에 대하여 한 둘 알아갔다.


아주머니는 일찍 남편하고 사별을 하였고 다행히 지금의 집을 남겨준 덕에 가게며 사무실에서 나오는 달세로 외동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있었는데 그 아들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유학을 갔고 유학을 가 있는 동안 혼자 집을 지키기에 너무나 적적한 나머지 알음알음을 통하여 나의 군대 선임이었던 분을 소개 받아 그분만 하숙을 쳤고 그분이 결혼을 하자 혼자 적적하게 지내던 중이었던 차에 군대 선임이 나를 자기에게 소개를 해 줬다며 이상하게 자기는 하숙을 쳐도 멋진 남자만 친다며 우스개 소리로 끝을 맺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에 비하여 5살이 적었지만 시골에서 논밭을 갈며 뙤약볕 아래에서 일만하던 우리 엄마하고는 달리 10살 이상 치아가 난다고 할지라도 더 밑으로 보면 봤지 위로 보지는 않을 것 같은 그런 여자였다.


또 소박한 반면 반찬은 김치와 몇 가지 밑반찬 빼고 찌개 종류는 매일 바뀌었다.


또 밥이란 혼자 먹으며 맛이 없고 여럿이서 같이 먹어야 운이 달려 더 먹힌다며 항상 나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기를 즐겨하여 회사에서 일이 밀려 늦게 퇴근을 할 때까지도 아주머니는 밥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가 나가 집으로 가면 함께 식사를 하였기에 회사에서 야식이 나와도 겨우 손만 댈 뿐 먹지를 아니하고 하숙집으로 와서는 아주머니의 성의를 생각하며 아주 맛나게 먹었다.




그런데 군대 선임의 말처럼 아주머니에게는 남자 손님은 거의 아니 손님이란 자체가 거의 없었지만 뻔질나게 드나드는 애가 하나 있었으니 고등학교 3학년에(작년)다닌다는 조카딸이 있었다.


그 애는 별로 볼일도 없이 아주머니 집을 드나들었고 와서는 고작 밥을 먹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기에 나도 그 애에게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다.


몰라 몸매나 좋고(겨우 고등학생을 그렇게 본다고 변태라고 하지나 않을지.....)예쁜 짓이나 한다면 그나마 작은 관심이라도 두겠지만 키는 고작해야 155Cm가 될까 말까 하는데 몸무게는 어림잡아도 60Kg은 넘어보였고 다리는 겨울 김장 무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굵었으며 몸무게의 절반이 마치 젖가슴에 있는 냥 축 늘어져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을 정도의 그런 애인데 어찌 내가 관심이나 주겠는가.




“어머 오빠 오빠도 00부대 출신이야? 전에 00 오빠도 같은 부대던데”그날은 마치 예비군 훈련이라 개구리 복을 입고 훈련을 다녀오는데 마침 하숙집 아주머니 조카딸과 집 앞에서 마주치고 만 것이다.


“그래 같이 군대에 있었지”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난 아차차 싶었다.


분명하게 군대 선임께서 나를 그 하숙집에 소개를 해 주고 나와서는 아주머니에게 조카로서 아주머니가 조카이지만 딸처럼 여기는 고등학생이 하나 간혹 올지 모른다면 혹시 자기에 다하여 묻더라도 절대 모른다고 하라고 하였던 말을 그만 깜빡하고 만 것이었다.


“그럼 그 오빠 연락처 오빠는 알겠네?”그 애가 나에게 바짝 붙으며 물었고 묻는 그 애 눈에는 빛까지 났다.


“왜?”일단 시간을 벌 필요를 느꼈다.


“알아? 몰라?”그 애는 계단을 오르면서 팔짱을 끼며 물었다.


“어떤 사이인데?”팔을 빼려들며 물었다.


“그건 몰라도 되고 알아? 몰라?”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 하는 동안 그 애와 난 삼층에 올랐고 차임벨을 눌렀다.


“이모 안 계셔. 계모임 간다고 오빠 밥 챙겨주라고 해서 왔어”그 애가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문을 따며 말하였다.


“아~그래. 씻을게”하고는 두 말도 하지 않고 난 내 방으로 가 트레이닝 바지와 상의를 들고는 욕실로 갔다.




“오빠 알아? 몰라?”씻고 타월로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거실로 나가자 싱크대 앞에서 나를 보고 다시 물었다.


“좋아 바른 말을 하면 알려 줄 수도 있지만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 난 모르는 거야. 알았지?”웃으며 말했다.


“좋아 뭐가 그리 궁금한데?”그 애가 몸을 돌리더니 빤히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양반하고 어떤 사이지?”나도 같이 빤히 보며 물었다.


“좋아 했던 사이야 그럼 됐어?”하고 대답하고 묻기에


“아니 일방적으로 아님 들이 같이?”다시 물었다.


“같이”대담을 하는 그 애는 당당하였다.


“호~그래? 그럼 마음으로? 아님 그 이상?”또다시 물었다.


“이미 갈 때까지 갔어.”역시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그럼 그 양반 장가 든 것도 알겠네?”하고 묻자


“응 하지만 꼭 한 번만이라도 더 안겨 보고 싶어”고등학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그 양반이 좋아서 아님 다른 이유라도?”슬며시 욕심이 생겼다.


못 생기고 몸매도 엉망에 가깝지만 나는 동정인데 반하여 이미 섹스 경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무런 부담이 없을 듯싶었던 것이었다.


“몰라 그 오빠만 생각하면 근질거려”그 애 입에서는 내가 기대한 이상의 답이 나왔다.


“혹시 내가 그 근질거림 잡으면 안 될까?”행여 하는 마음에서 물었다.


“오빤 경험 있어?”맹랑한 애였다.


“없다면?”가다가며 대답하자


“호호호 대학교 졸업하고도 동정이란 말이야?”비웃듯이 웃으며 물었다.


“불행하지만 그래”하고 대답하자


“호호호 오늘 모처럼 동정 하나 깨뜨려 버려? 초짜 좆을 먹어”웃으며 손에 묻은 물기를 입고 있던 행주치마에 닦았다.


“하하하 그래 그럼 물침대로 내 동정 버려”나도 지지 않고 응수하였다.


“호호호 그 오빠도 날 물침대라고 불렀지”그 애가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텐트를 친 나의 바지 중앙을 손가락을 모조리 모은 손을 툭툭 치며 말하였다.


“내 방으로 가”난 그 손을 잡고는 내 방으로 데리고 갔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난 아주 난폭하게 옷을 벗기자 지지 않겠다는 듯이 그 애는 나보다 더 난폭하다고 할 정도로 빠르게 나의 옷들을 벗겨버렸다.




“!”어림잡아도 60Kg은 넘어보였고 다리는 겨울 김장 무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굵었으며 몸무게의 절반이 마치 젖가슴에 있는 냥 축 늘어져 꼴불견도 그런 꼴불견이 없을 것 같았던 그 애를 막상 완전한 알몸으로 만들고 방바닥에 눕혔더니 예상과는 달리 볼륨도 있었고 피부도 매끄러워 보였다.


다만 뱃살과 옆구리 살 장딴지며 허벅지 살이 나보다 좀 많아 보인다는 흠은 있어보였지만 없는 형편에 그런대로 가지고 놀고 또 먹을 만 해 보였다.


고등학생이라는 점이 문제가 되었지만 이미 나의 군대 선임과 몸을 섞은 사이란 것을 안 이사 그 선임이 더 문제이지 나 정도는 약과란 생각이 들었다.


“어서 물침대로 오르시지”그 애는 방바닥에 클 大짜를 하고는 누운 상태로 검지 하나는 입에 넣고 빨았고 나머지 검지로는 까딱거리며 오라는 시늉을 하며 도발적인 면모를 보였다.


“먼저 사까지가 기본 아닌가?”내려다보며 물었다.


“후후후 난 아냐 먼저 굵기부터 대 봐야 해”발기되어 하늘을 지금 당장이라도 찌를 태세를 한 나의 좆을 가리키며 대답하였다.


“좋아 그렇다면”난 그 애 아니 물침대 위로 몸을 포갰고 그 애는 내가 동정 즉 그 애 말로 초짜란 것을 알았기에 나의 발기 된 좆을 쥐고 구멍으로 보이는 곳에 대더니


“어이 초짜 총각 어디 눌러 봐”웃으며 말하였다.


“에~잇! 이렇게”난 힘주어 하체를 그 애 몸에 밀착을 시켜버렸다.


“오~쓸 만한데!그 애가 내 엉덩이를 두발로 감았고 그리고 두 팔로 내 목을 감고 매달렸다.




솔직해 지겠다.


너무 따뜻하고 포근하였다.


겨우 고등학교 3학년에 지나지 않는 애의 몸 위였지만 엄마 품보다 포근함을 난 느끼고 말았다.


펌프질은 누구에게 배우지도 않았지만 제대로 되었다.


아니 군대 선임이었던 양반이 얼마나 가지고 놀았던지 난 그 애가 시키는 대로만 하였다.


모든 리드는 그 애 목이었고 난 그 애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안에 싸지 마 위험 기간이야 앞으로 말만 잘하면 안에 쌀 기회 엄청 줄게”그 애는 나의 마지막도 미리 알고 선수를 쳤다.


대학도 졸업하고 심지어는 군대까지도 다녀와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내가 애송이 고등학생에게 진정한 동정을 빼앗기고 만 순간이기도 하였다.




“오빠 국문과 나왔다며?”그 애가 휴지로 내 정액이 묻은 배를 닦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아도 좆을 닦으며 대답하자


“나 논술 조금 도와주면 안 돼?”그 애가 나에게 부탁을 하였다.


짧다면 짧은 생애였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누구에게도 받아보지 못 하였던 부탁을 나는 그 애로부터 받았다.


“좋아!”하고 난 승낙을 해 버렸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전공이 국문학이었기에 국어 그리고 국어와 관련이 있는 것만은 아주 자신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남에게 뒤지지 않는 편이었던 것이 도움이 된 셈이었다.


“그럼 일요일 아침에 우리 집으로 와 그 시간이면 엄마아빠 교회에 가서 집에 나만 남거든 미리 엄마아빠에게 논술 선생님 온다고 해 놀게 알았지? 이거도 하고 어때?”그 애는 정말이지 능구렁이를 몇 마리 잡아먹은 애로 보일 정도로 구렁이 짓을 하였다.


그 애는 그런 말을 하면서 주먹을 쥐더니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끼워 넣고 소위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할 것 없이 은밀하게 빠구리라는 말 대신 사용하는 행위를 거침없이 나에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일요일 오전이면 핑계는 논술 준비 과외였지만 실상의 주목적인 빠구리 과외를 병행하였다.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하숙집 아주머니는 자기 조카딸아이 논술 과외를 공으로 해 준다며 반찬은 안 그래도 진수성찬에 가까운 것도 모자라 더 걸게 차리는 통에 머쓱해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년 겨울 직장에서 안정도 되었고 자리도 잡았다.


공부에 대한 대가리는 나빴지만 일에 대한 대가리는 좋았던지 상사들로부터 인정도 받았다.


마침 그날은 금요일이고 도요일 일요일 양일간에 연휴의 전날이기도 하였으며 한 달에 한 번 씩 정기적으로 하는 우리 부서의 회식이 있는 날이기도 하여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먼저 식사를 들고 주무시라는 전화를 하고 회식에 참석을 하였다.




평소에는 일차 이차 심지어는 사차까지도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더구나 입사 초기 나와 같이 입사를 한 사원들의 경우 나보다 훨씬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고 실력 역시 나는 그들의 발굽 사이에 끼인 때보다도 못 한 존재란 사실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도 상사들 앞에서 굽실거리며 상사들은 물론 우수한 성적으로 같이 입사한 동료들의 심부름까지 하여야 하였기에 사차든 오차든 가는데 까지 따라가서 뒷바라지를 하고는 모두 귀가를 시키고 나서야 나도 집으로 가는 형편이었지만 직장 내에서 나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고 나서는 끝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요령을 피하여 빠져 나올 수도 있게 되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상사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자격지심에 밀려 단 한 번도 이행을 하지 못 하고 자리를 지켰기에 거의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갔던 것에 비하여 그 날은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차까지 마치고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차를 탔고 시계를 보니 아직 열시는커녕 겨우 아홉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아~흑!”무심결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보니 하숙집 아주머니의 방에서 이상한 기계음과 동시에 아주머니의 신음이 들렸다.


아주머니의 안방 문의 문고리를 잡고 살며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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