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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는 처제 킬러였다.(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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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7,875 회 작성일 24-02-06 16:3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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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는 처제 킬러였다.




1,혼자 좋아한 형부




제목을 달고 보니 오해의 소지가 대단히 많아 보입니다.


사실인 즉은 형부가 처제들인 우리를 꼬드겨서 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처제들이 형부의 근육질적인 몸과 확실한 성격에 반한 나머지 스스로 몸을 바친 것이나 진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형부에게 반하여 스스로 몸을 바친 처제들 이야기>란 제목을 달자니 아무리 스스로 몸을 바친 입장이지만 그래도 여자의 자존심 문제인지라 그대로 사용하겠습니다.


  


형부가 우리 언니와 결혼을 한 것은 2000년 3월이었습니다.


당시 형부는 28살로 22살의 언니를 건들어서 임신을 시켰고 우리 부모님은 청교도적인 기질을 가지신 분들이라 유산이란 것은 엄두도 내지 못 하고 결혼을 하도록 허락을 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청교도 신자도 아닌데 무슨 청교도 운운 하느냐고요?


하긴 그럽디다.


구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가진 사람들은 봉건주의 사상에 물든 사람들이라고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봉건주의는 그래도 남녀차별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본받아야 할 여자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신사임당님의 아버님이 적어둔 자기 자손들에게 대한 상속 문서를 보면 요즘의 남녀차별이 없어졌다고 하는 세상의 그것보다도 더 남녀평등이 장 되어 아들딸 구분 안 하고 골고루 유산을 분배한 흔적이 있었잖아요. 


조선 말기에 와서 왜놈들의 여자를 거의 천시하는 더러운 풍습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남녀차별이 별반 없는 풍속 속으로 스며들면서 남녀차별이란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고 보거든요.




왜놈 나리인 일본을 보세요.


자기 남편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하는 나라아닌가요?


그런 더러운 풍습이 아직도 남은 나라가 선진국이라고요?


자다가 봉차 두드리는 소리 같이 들리내요.  




하여간 먼저 우리 집부터 소개를 하겠습니다.


먼저 시골집에는 우리 부모님들이 할머니를 모시고 산답니다.


아빠는 62살이고 엄마는 57살인데 두 분 다 농사일만 한 탓에 나이에 비하여 훨씬 늙어 보이는 것이 자식인 저나 언니 그리고 동생들의 마음입니다.




참고로 우리 자매 소개도 간단하게나마 해야겠죠.


제일 큰언니 종선이란 이름을 가졌는데 종자는 항렬이고 선은 제일 선두에 나왔다고 하여 종선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요 둘째 언니는 종슬이 인데 둘째도 딸이라 슬픈 나머지 슬프다고 슬 자를 써서 종술이가 되었고요 제 바로 위의 언니이지 우리 집의 셋째 딸이라 스스로가 얼굴 안 보고도 데려가는 딸이란 자부심을 가진 언니의 이름은 종례인데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는 식이 종례잖아요?


아빠가 딸을 그만 낳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진 이름이 우리 언니인 종례 언니의 이름에 내포가 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막내인 제 이름이 무엇이냐고요?


후후후! 그렇게 딸 낳기를 종례로 하고 싶었지만 또 나온 것이 딸이라 아빠는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아주 강력한 표현이 담긴 이름을 저에게 지어 주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종막이랍니다.


마지막의 막 자를 따 온 것이랍니다.


하지만 우리 자매들 누구 하나 이름가지고 시비를 아빠에게 건 사람은 없을 정도로 착하답니다.




할머니는 83살로 지금도 아주 정정하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을 경로당에 가셔서 논답니다.


그리고 형제로는 앞에 말한 22살의 어린 나이로 시집을 가서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인 32살의 맏언니를 필두로 29살의 나이인데도 결혼을 하려는 마음은 가지기는커녕 어떡하던지 형부 품에 한 번이라도 더 안기려고 안달을 부리는 중간언니와 연년생인 셋째언니는 못난 미모 때문에 형부가 자주 눈길을 주지 않는다며 안달이며 막내인 저는 엄마나 낳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혹시 아들일지 모른다는 아빠의 설득으로 인하여 억지로 낳았다면 엄마에게 가장 미움을 받으며 자랐지만 인물 곱고 큰언니 다음으로 제일 먼저 형부 품에 안긴 탓에 형부의 도움으로 이번에 대학까지 무난하게 졸업을 하고는 형부가 운영하는 자그마한 회사에 입사를 하여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듬뿍 받는 막내랍니다.




물론 시집을 갔지만 제 위의 두 언니들도 결혼 전에는 형부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모조리 현장 즉 공장에서 근무 하였었지만 사무실에는 저만이 근무를 하고 있답니다.




큰언니가 시집을 갈 당시 전 겨우 14살의 중학생이었습니다.


큰언니가 임신을 하였다며 엄마아빠에게 사실을 고하고 형부를 데리고 인사를 드리러 왔을 때 우리 자매들은 언니 이상으로 가슴이 설레었었답니다.




180이 넘는 늘씬한 키에 70Kg정도의 근육질적인 체격은 곧바로 우리들의 우상이 되고 말았고 양가 집안의 빈부 격차가 너무나 차이가 났기에 걱정을 하는 엄마와는 달리 우리 세 자매는 어서 언니와 결혼을 하길 기도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종교도 가지지 않은 년들이 부처님이며 하느님 마호메트 등의 신이란 신을 다 불러가면서 말입니다.




큰언니가 형부와 안 것도 직장에서였습니다.


당시 아버지 공장이었다가 사돈어른께서 병석에 들어 누우시면서 장남인 형부가 맡아 운영을 하게 된 지금의 회사에서 형부는 관리 부장이란 직함으로 회사 전체는 물론이요 제품을 조립 생산하는 공장에서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당시 형부는 주로 본사인 회사에 근무를 하면서 일주일이면 두세 번 정도 공장에 들러서 일의 생산 진척 정도를 체크하는 수준이었고 거의 본사에서 근무하였답니다.




지금도 여자라면 사족을 쓰지 못 할 정도였던 형부 눈에 예쁘지는 않지만 조금은 귀여운 상의 얼굴이었던 큰언니가 눈에 든 것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부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 실습을 나가면서였답니다.


하지만 형부는 그저 귀여운 상이라는 정도로만 생각을 하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는데 큰언니가 21살이 되든 해 가을에 공장에서 단체로 야유회를 가게 되었고 야유회에서 장기자랑을 하면서 라인 대표들과 같이 나가서 섹시한 춤을 추게 되었는데 언니가 과감하게 관리 부장이었던 지금의 형부 어깨를 짚고는 흐느적거리는 춤을 추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큰언니와 형부는 데이트를 시작하였고 공장의 여 공원들 사이에서 킬러로 소문이 난 형부에게 언니는 거의 강간 비슷한 수준의 섹스로 임신을 하게 되었고 성에 대하여서는 거의 몰랐던 큰언니는 배가 한참 불어와서야 자신이 임신을 한 것을 알았고 형부는 유산을 시키라고 애원을 하였지만 큰언니가 죽어도 낳겠다고 고집을 부림으로서 형부 집에 먼저 인사를 드렸고 처음엔 형부 집에서도 극열하게 반대를 하였지만 사장이셨던 사돈이 병으로 들어 눕자 죽기 전에 손자를 안게 해 주자는 쪽의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 바람에 겨우 고졸 그도 실업계 출신의 언니가 대학은 물론이고 아버지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대학원에서 수료 중이던 형부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집으로서는 반대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최고의 사윗감이었고 형부 감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불러오자 결혼은 말 그대로 속전 속겨로 이루어졌습니다.


재산이라고는 시골에 약간 있던 전답이 전부였던 우리 집으로서는 형부 집안의 격에 맞는 혼수를 장만을 해서 시집을 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황새가 뱁새를 따라가는 격으로 감당을 할 수가 없었고 그런 사정을 알게 된 형부가 큰언니를 통하여 돈을 마련하여 주었고 우리 부모님은 그 돈으로 형부 집안의 격에 맞는 혼수품을 장만하여 무난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부잣집에 시집을 갔지만 중간언니와 연년생인 셋째언니들은 고등학교를 마치자 형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였다.


그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기들의 형부가 사장님을 대신하여 공장을 운영하는 관리 부장임을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두 언니들은 공장 근처에서 자취를 하며 공장에 다녔고 결혼 2년이 되던 해에 형부의 아버지가 기어이는 운명을 다하자 형부는 일약 30살의 나이로 사장에 취임을 하였고 또 큰언니는 시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건 나의 인생에 하나의 크나큰 한 획을 긋게 만드는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그 누구도 알지 못 하였습니다.




언니가 형부를 졸랐답니다.


그 조른 이유는 막내인 나 하나만은 대학에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두 언니에 비하여 많은 귀여움을 형부에게서 받았던 난 시골의 촌년에서 벗어나서 언니들과 자취를 하면서 도시에서 당당하게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것이었습니다.




일 년은 두 언니들과 함께 자취를 하면서 지냈습니다.


이 학년으로 오르게 되자 대학이 목표인 제가 언니들 수발을 들어가면서 공부를 하려니 엄청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큰언니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를 큰언니 집으로 들어오게 하여 큰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업에 전념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 큰언니 집으로 입주하자 가장 곤란해 하는 사람이 형부였습니다.


큰언니는 제가 큰언니 집에 입주하기 전에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중간언니와 셋째언니 그리고 막내인 제가 함께 기거하던 자취방으로 와서 수다를 부리곤 하였습니다.


그때 언니의 말에 따르면 집에 오면 거의 팬티차림으로 지내는 것이 젊어서 부터의 습관이라며 손님이 왔을 때 무척 당황하여 죽을 맛이란 말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활을 하던 형부는 제가 입주하자 엄청 힘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일요일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저는 형부에게 지나가는 말로 저를 동생처럼 여기고 편하게 대해 줘야 저도 편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형부는 물론이고 언니도 그럴 수는 없다고 하였지만 동생처럼 편하게 대하여 주지 않는다면 언니들 자취방으로 가서 생활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형부와 언니도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합의를 하고 방에서 공부를 하다가 큰언니가 점심을 먹자고 부르기에 나갔습니다.


“!”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편하게 대하여 달라는 말에 형부는 몸에 짝 달라붙은 삼각팬티차림이로 있었는데 그도 사각 트렁크 타입의 팬티였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부는 꽉 낀 삼각팬티를 입고 식탁에 앉자 있었고 형부의 은밀한 부분은 칼끝이라도 살짝 들이대면 팬티가 바로 찍 소리를 내며 찢어질 그런 형상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었고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를 몰라 해야 하였습니다.




“처제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면 편하겠어?”형부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예 그렇게 지내세요.”편하게 대해 달라고 한 저로서는 그렇게 뿐이 대답을 할 수밖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의 처제를 앞에 두고 형부는 밥을 먹으면서도 거의 안의 훤히 들여다보이는 임신복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야한 가운을 입은 언니의 배를 쓰다듬기도 하였고 엉덩이를 가볍게 툭툭 치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였으며 식탁 밑으로 손을 넣고는 무슨 짓을 하는지 언니는 형부에게 눈을 흘기기도 하였습니다.


“아이 여보 그러지 말고 들어가요”기어이 언니 입에서는 형부에게 방으로 들어가자는 말이 나왔고 일어선 언니의 훤히 안이 들여다보이는 가운 안의 팬티 가장자리는 이미 많은 물기를 머금은 것으로 봐 형부의 손놀림에 언니는 흥분을 한 상태인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처제 미안 언니하고 볼 일이 조금 있거든 혼자 먹고 있어”형부는 칼끝을 대지 않고도 터질 것 같은 아랫도리의 은밀한 부분을 감추려는 듯이 손으로 가리는 시늉은 하였지만 그 형상은 이만큼 커졌으니 그리 알라는 듯한 자세로 언니의 뒤를 다라 안방으로 갔습니다.


전 조카 근수가 탄 보행기가 행여 넘어지지나 않을지 한시도 눈을 때지 못 하고 겨우 밥을 먹었습니다.




“다 먹었어?”그때서야 형부가 나왔습니다.


나온 형부의 거기는 더 불룩하게 보였습니다.


“예 형부 그럼 제 방에 가서 공부 할게요”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제 방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책을 봐도 보이는 것은 조금 전에 봤던 불룩하여진 형부 하체의 가장자리뿐이었습니다.


어쩔 방법이 없이 전 자위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자위를 하면서도 생각을 한 상대는 형부였고 엄밀하게 말하면 형부의 불룩한 그곳이었습니다.




다음 날인 일요일 오후에 난 아주 좋은 것을 하나 습득을 하였습니다.


형부 골프 모임에 갔고 언니는 시가에서 시어머님의 호출을 받고(손자 근수를 보기 위한 것이었음) 외출을 한 틈에 제 화장품 하나가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다음 날 하교를 하면서 사리라고 생각하며 다음 날 등교를 하면서 발라야 하겠다는 생각에 언니의 화장품을 조금 덜어서 쓰려고 언니의 방으로 간 것입니다.


언니 방에서 필요한 화장품을 조금 덜고 나오려다 말고 난 다른 한 가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장자리에 누런 것이 말라 비틀어져 있는 형부의 팬티였습니다.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여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두려운 나머지 잽싸게 형부의 팬티를 주머니 안에 감추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저는 언니 방의 휴지통을 뒤적였습니다.


예상대로 휴지통에는 누런 것이 묻어 형부 팬티보다 더 진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는 휴지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묻어서 말라 비틀어져 있는 휴지를 몇 개 역시 주머니 안에 숨겼습니다.




제 방으로 온 저는 형부의 팬티와 팬티의 그것보다 더 진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는 휴지를 코에 대고 냄새도 맡았고 그것으로 저의 은밀한 부분을 문지르기도 하였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가장자리를 빨기도 하였습니다.


천하를 얻은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언니와 형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하나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비록 형부의 팬티 위이지만 언니와 형부의 꿀물 좆 물이 나의 꿀물과 합쳐진 상태였기에 우리 셋은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언니와 형부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심지어 형부의 좆 물이 묻은 휴지의 일부는 제 작은 보지 구멍 안에 조금은 들어갔답니다.


형부의 우람한 좆이 제 보지에 들어오는 꿈을 꾸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꿈을 꾸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또 학교에 가서 화장실에서는 물론이고 수업 중에도 선생님이나 친구들 몰래 자위를 하였습니다.




그런 사이 전 놀라운 변화를 제 스스로 발견하고 놀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형부가 나에게 올라올라치면 반항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형부의 좆을 받아들이리라고 말입니다.




또 변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학교에서 집으로 와서든지 아님 공휴일에 언니와 형부가 집을 모두 비울라 치면 언니의 안방으로 들어가 형부의 흔적을 찾았고 없으면 세탁기를 뒤져서라도 형부의 흔적을 찾는 버릇까지 생기고 말았으니 그걸 다른 말로 표현을 한다면 점점 변태의 길로 접어든 계집애로 변하여 갔습니다만 그런 저를 제 스스로 발견을 하고도 고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변태의 길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든 환절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언니와 형부를 결혼으로 가게 해 준 조카 근수가 그만 심한 감기에 결렸는가 싶었더니 급기야는 폐렴을 동반하자 입원을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언니 시가집에는 때 아닌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언니는 간병인을 두고 교대로 근수 병수발을 들려고 하였으나 언니의 시어머니는 어린 송자의 병간호는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없다고 하며 자신이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언니는 하는 수가 없이 근수 옆에서 24시간 병수발을 들어야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자 언니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아침 야자는 물론이고 방과 후의 야자까지도 빠지게 해 주고는 절 더러 형부 조석을 부탁하였습니다.


언니가 그렇게 부탁을 하지 않고 학교에 연락을 하지 않았어도 제 스스로가 하였을 것인데 말입니다.




“처제 오늘 아침에 벗어둔 팬티 처제가 씻었어?”근수가 입원을 하고 이틀이 된 저녁에 밥을 준비하는데 퇴근을 하고 온 형부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아뇨”말을 더듬으며 겨우 대답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형부가 말한 그 형부의 팬티는 제 방 그도 제 침대 속에 있었거든요.


예전에 입수한 형부 팬티는 너무 많이 제 보지에 문질렀고 그리고 제 보지에서 나온 꿀물이 묻은 탓에 보기에도 흉하였는데 아침에 형부가 출근을 하기에 안방에 들어갔더니 침대에 형부의 팬티가 걸려있기에 이게 웬 횡재냐 하고는 제가 가져갔고 그걸 본 김에 아침부터 그 팬티를 빨면서 자위를 하였고 학교에서 집으로 와서도 하였으며 자위 끝에 온 조름을 이기지 못 하고 팬티를 끌어안고 약간의 눈을 붙이기도 하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팬티를 형부가 찾았으니 얼마나 곤란하였겠습니까.




“아무리 처제지만 내가 그런 것 까지 처제 시키겠어? 어서 내 놔”하고 손을 벌리지 뭡니까.


“알았어요, 형부 먼저 씻기나 하세요.”어떻게 하던지 그 난처한 순간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어서 줘 씻으면서 팬티도 씻게”형부는 계속 자신의 팬티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픈 그런 심란한 마음만 생겼습니다.


“어서! 어서 줘”형부는 제가 주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달라고 바틸 그런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형부 씻고 계세요 갖다 드릴게요.”거의 읍소에 가까울 정도로 사정을 하였습니다.


“그래 어서 갖다 줘”하고는 안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급하게 손에 물기도 닦지 않고 제 방으로 달려가 팬티를 침대 속에서 끄집어내었습니다.


“!”아뿔싸!


형부 팬티 가장자리에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맑은 꿀물이 나오는데 어떻게 누런색으로 변색이 되었냐고요?


바보! 멍청이!


형부가 출근을 하자마자 설거지를 하던 물 묻은 손 그대로 형부 방으로 갔고 거기서 형부의 팬티를 습득하고는 바로 바로 침대에 올라가 빨면서 자위를 하였고 학교에서 돌아와서도 먼지며 갖은 오염된 때들이 그대로 묻은 손으로 쥐고 자위를 하였고 자기 전에는 손에 핸드크림을 잔뜩 바른 손으로 팬티를 잡고 빨면서 자위를 하였는데 팬티가 누렇게 변하지 않고 하얀색이길 바랬나요.


형부의 팬티 가장자리는 꿀물에 손때와 침으로 인하여 얼룩이 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씻으려고 세탁기에 넣어 뒀더니.......”생각을 한 것이 거실에 딸린 욕실 겸 세탁실에 있던 세탁기에서 끄집어 낸 것처럼 형부 팬티에 물을 잔뜩 묻혀서 형부에게 건넨 것입니다.


머리 좋죠?


그런 방면에서 제 머리 따라올 애 우리 반에서는 없거든요.


“알았어.”형부는 아무런 의심도 하질 않고 평소처럼 팬티차림으로 세수를 하다 말고는 제가 건네준 팬티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이상 한 점은 형부가 밥을 먹다 말고 자주 힐끗힐끗 처다 본 점입니다만 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였답니다.




다음 날 아침 형부가 출근을 하자마자 난 다시 형부 방으로 잠입을 하였습니다.


역시 전날 입고 있었던 팬티가 침대 위에 걸쳐져 있었습니다.


득의양양하게 형부의 팬티를 습득한 저는 제 방으로 와서는 알몸이 되었고 형부의 우람한 좆을 상상하며 좆이 닿았던 형부의 팬티 부분을 빨고 또 그것으로 제 보지를 마구 비비며 자위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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