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날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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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골목길은 흔들리고 있었다.
봄이 와서 아지랑이가 저녁까지 남아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대학가 전체가 취해 있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뻗어있는 여자 후배 하나를 보며 길거리에서 은근한 신경전들을 보이는 예비역들의 모습이 눈에 띄였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빤히 보는 신입생 남자애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 도수 높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것처럼 뿌옇고 흔들리게 보였다.
그런 내 눈에, 두 번 방문했던 강한별의 집 건물이 또렷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사진의 조리개를 조인 것처럼 아웃포커스로 잡히는 듯한 화면이었다. 후문에 있는 몇 개의 원룸형 건물들. 그 중에서도 새로 신축해서 깔끔한 외관을 갖고 있는 그 건물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비틀 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거기로 향하는지, 강한별이 우습다고 느끼면서 왜 그녀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있는지 도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도 최근 몇 번의 경험들처럼, 뇌에서 명령을 내리기 전에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나는 두 번정도 헛다리를 짚고, 세 번 정도의 넘어질 뻔할 위기를 넘기고는 겨우겨우 강한별의 집 앞 현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녀의 문자에 지금 간다고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가서 문을 두드려도 나이겠거니 할 아이였다. 강한별은 평범한 아이들의 잣대를 들이대서 행동할 아이가 아니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강한별이 살고 있는 209호의 벨을 지긋이 눌렀다.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 차가운 철문에 이마를 살짝 대고는 열을 식혔다. 내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무언가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묻는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문이 빼꼼히 열렸고,거기에 이마를 기대고 있던 내 몸도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졌다.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바디샴푸 냄새를 동반한 수증기가 얼굴에 확 하고 닿았다. 젖은 머리결, 하얀 어깨. 그리고 가슴의 아랫부분을 긴 타올로 가린 강한별이 문 틈으로 보였다.
샤워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아까와는 달리 살짝 미소짓는 모습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닌것 같아 잠자코 그녀의 집안으로 내 몸을 들이밀었다. 이 여우가 혹시 자기 집에 오유민을 들여놓고 날 불러 함정에 빠트릴려고 하나 하는 의심을 잠깐 했던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방과 여지없이 코에 닿는 그 안나수이의 향수냄새를 맡으며 안심해야 했다.
“방금 씻고 나와서 그래요. 선배도 씻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샤워해야 하는 거야?”
내 물음에 내게서 훤히 드러난 등을 보이며 머리를 수건으로 닦던 강한별이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슬아슬하게 묶여 강한별의 몸에 걸려있는 저 타올을 확 하고 내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왔다.
“하고 싶어서 왔잖아요. 그럼 씻어야죠.”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곳은 강한별의 홈 그라운드였고, 원정을 온 나로서는 약간의 핸디캡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내 스스로 여기를 찾아온 것 부터 약간의 감점을 안고 가는 것이다. 아까와는 달리 강한별은 여유로웠고, 적당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자켓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얀색의 일회용 칫솔이었다.강한별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 빨간색의 칫솔 옆에, 포장지도 찢어지지 않은 일회용 칫솔 하나가 컵 안에 꽂혀 있었다.나는 옷을 말끔히 벗고는 욕실문을 살짝 열어 던져 버렸고, 문이 닫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옷가지들을 주워드는 강한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이를 닦고 샤워를 해도, 뭔가 옷에 묻은 듯한 그 찜찜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옷에 묻은 얼룩은 지르잡아 씻어내면 그만이지만, 마음에 있는 그 이상한 기분은 쉬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예림이의 얼굴과 숙모의 얼굴, 그리고 강한별과 오유민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예림이를 제외하고는 딱히 나와 확실한 관계에 놓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절한 삼촌의 아내, 대학 후배들. 냉정하게 말하자면 철저하게 무시해 도 될 인물들 사이에 나는 알 수 없는 찜찜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누나를 갖고 싶니? 라는 질문, 혹은 숙모를 안고 싶니? 라는 질문에는 확실히 네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죄책감의 정도를 넘어서서, 세상이 모른다면 그것은 깨도 좋을 유리와도 같은 장벽이었다.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강한별과 오유민이었다. 둘 다 딱히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와 미묘한 관계아래에 있는것 같았다. 무시할 수 없는것은 그녀들 모두 내 생각속에 등장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울에 잔뜩 낀 습기를 뿍뿍 소리가 나도록 닦아내고는,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벌게지도록 마신 술기운이 거울에도 비춰지는 듯했다. 애써 얼굴은 순진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흉측한 아랫도리까지 같이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에 그런 가식을 떨기엔 쉽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 맞다. 무슨 이유로든 내가 여기 왔다면, 마음가는대로 하는 것이 옳다. 구태여 이상한 느낌을 받는 것도 웃겼다. 누나나 숙모의 몸을 만졌을때도 죄책감은 들었으나 후회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엄청난 뒷북이었다.
마치 내가 올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처럼 한 쪽에 따로 준비된 타올로 젖은 몸을 닦아 내고는, 그것을 골반에 둘러 욕실문을 열었다. 다시금 느껴지는 향수 냄새가 심장박동을 더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문을 열었을 때는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이미 불을 꺼버린 것일까? 욕실 불 마저 꺼버리니 침대 쪽에서 빨간 불빛 하나가 아른거리는 게 보였다. 창가쪽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훅 하고 뿜어지며 일그러진다. 저 아이, 원래 담배를 피웠던가? 잘 모르겠다.
강한별은 아까처럼 수건을 두른 채로,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잘은 보이지 않지만 달빛 사이로 간간히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은 꽤나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내가 다 씻고 나왔음을 눈치챈 듯, 빨간 불빛은 곧 어딘가에 일그러지며 사라졌고, 향수냄새 대신 은근한 담배냄새만 방안에 남았다.
“오늘도 잠시 머물다 가는 건가요?”
“그래야 할 것 같아. 외박은 한 적이 없어서.”
내가 침대에 몸을 실었을때 그녀는 내 귓가에 그렇게 속삭여 물었고, 나는 약간의 경계심을 품은 채로 그렇게 대답했다.잘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젖은 머리결이 오른팔에 와서 닿았다.
“올 줄 알고 있었어요.”
“어째서?”
“오빠는 나랑 비슷한 사람이니까.”
애매한 말에 뭐라고 하려던 찰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쪽에 와서 덮여졌다. 그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부끄러움을 탈리 없는 강한별이 어째서 철저하게 조명을 제거하는지를, 나를 선배가 아닌 ‘오빠’로 부른 그 모습에서 단박에 알아낼수 있었다. 어둠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둠으로 상대방의 모습을 가리고, 그 대신 상상의 눈을 열어야 했다.지금 이 순간은 강한별이 아닌 김예림이며, 김예영이 아닌 그녀의 사촌오빠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강한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진실게임때 어째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다만 차가워진 손으로 내 배쪽을 더듬었고, 이윽고 그 밑에 묶여 있는 수건의 매듭을 풀어주었을 뿐이었다. 술이 살짝 오른 아랫도리는 차갑고 부드러운 강한별의 손에 잡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동작도 차츰 조화를 맞춰 자리잡아 갔다. 처음부터 묶기는 한 걸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강한별의 몸에 걸쳐진 타올은 너무나 쉽게 스르르 풀렸다. 역시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몸의 굴곡은 내 숨을 헐떡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알몸과 알몸이 닿아 일그러지며 부드러운 감촉이 머리속을 번쩍 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처음 그 날과 달랐다. 나는 강한별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다리는 활짝 벌어져 내 상체가 끼어들기 쉽도록 도와주었고, 나는 한별이의 귓볼부터 천천히 핥아 내려갔다. 살짝 꿈틀거리던 손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그 어둠속에서도 기대감에 어린 강한별의 눈빛이 보이는 듯해서 정신이 없었다.
분명, 강한별의 몸과 누나의 몸은 달랐다. 물론 내가 누나의 몸을 샅샅히 만져보며 느껴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랐다. 가슴과 힙이 발달하여 통통한 느낌을 주는 누나의 몸과, 적당한 가슴에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가진 강한별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강한별의 몸은 숙모의 몸과 비슷한 것 같았다. 자연스레 오유민의 몸은 예림이의 몸과 비슷할 것이라는 가설이 세워졌지만, 머리를 흔들어 그것을 떨쳐 버리며, 볼록 하게 솟은 가슴을 혀로 훑었다.
“흐음..좋아 오빠..그때 처럼..”
그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아마 나와 처음 잤던 그 날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날 이렇게 애무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강한별은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팽팽하게 솟아오른 젖꼭지를 혀로 아우르며, 손을 내려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까칠한 방초의 느낌과, 좌우로 벌어진 속살의 감촉이 손끝에 전달되며 지릿지릿한 느낌이 들었다.내 손바닥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움켜쥐었고, 이윽고 아무런 대비책이 없던 그녀의 속살 사이로 내 손가락 하나가 쑤욱하고 침범했다.
“흑! 흠..”
강한별은 천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메말라 있던 속살은 차츰차츰 윤기있는 액체를 내 손가락에 가득 묻히기 시작했다.내 혀가 그녀의 배꼽을 향하고, 나아가 살짝 벌어진 보지를 입안 가득 베어 물었을때는 그 신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흑! 오빠아..흑!”
조금은 놀라고 말았다.아무리 둘만의 공간이지만 신음소리가 너무 큰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녀는 혀로 아랫부분을 핥고 있는 내 얼굴을 허벅지를 오무려 강하게 조여왔다. 그녀의 엉덩이를 손잡이 삼아 잡아들고는, 나는 정신없이 한별이의 깊은 샘을 끊임없이 탐하고 있었다.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성적 환타지를 마음껏 펼칠 기회의 장이었다.상대도 나에게 그것을 원한다면, 내가 구태여 점잔을 뺄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게 무엇일까? 열심히 혀를 놀리면서도 그것을 생각했다.
맞아. 문득 나는 화상채팅을 할 때를 떠올려 보았다.화면으로 보이던 예림이의 도톰한 입술을 상상했다. 천둥번개가 치던 날을 떠올리며, 파르르 떨리던 숙모의 입술을 상상했다. 내가 갖고 있던 욕망, 그것의 실체를 확인한 나는 잔뜩 젖어있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얼굴을 들었다.
더듬더듬 침대를 더듬어 무릎으로 기어 머리맡까지 올라갔다. 이미 잔뜩 흥분한 자지가 수직으로 뻗어 강한별의 얼굴을 향했다. 그녀는 금세 내 의도를 알아 챈듯 누워 있는 상태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고, 이윽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그 불기둥의 뿌리를 움켜쥐고는 망설임없이 입술로 그것을 삼켜주었다.
짜릿했다. 부드러운 느낌이 귀두에 닿았을때는,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예림이의 모습 혹은 숙모의 모습으로 변한 강한별의 머리칼을 나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었다.
쪽..쪽..
자극적인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한별이의 머리가 앞뒤로 움직이며 이미 술기운 때문에 감각이 많이 죽은 내 분신을 핥아주고 있었다.입술 전체가 기둥을 따라 움직이기도 했고, 혀가 귀두 부분을 훌어 주기도 하는 꽤나 디테일한 움직임이었다. 절로 끄응..하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속옷차림의 누나를 보며 자위를 하면서,상상속으로만 조심히 꺼내보았던 그 환상을 재현하기 위해 내 움직임은 바빠지기 시작했다.강한 압력으로 쪽 하고 빨아들인 그녀의 입술에서 번들거리는 내 분신을 뽑아 들고, 예고 없이 그녀의 몸위로 내 몸을 실어 덮쳤다. 한별이는 능숙하게 내 목에 팔을 감았고, 서툰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껏 달궈진 창은 수비가 허술한 성 안을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하윽!”
평소보다 톤이 높은 신음소리가 방안의 적막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나도 욕정에 찬 헉헉거리는 소리를 마음껏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강한별의 도톰한 허벅지는 더욱더 내 자지를 강하게 조였고, 내 허리는 곧이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 하응! 오빠아..더 세게 해줘! 흑!”
현관에서 누가 듣는다면, 아니 굳이 귀를 현관에 대지 않더라도 들을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심하게 흥분한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것을 지적하거나 혹은 제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하이톤의 그 신음소리에 내가 흥분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체위가 바뀌어 갔다. 그녀는 내가 조금의 손길만 줘도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알아서 자세를 바꿔주었다.내가 조금만 허리쪽에 손을 넣으면 얼른 나를 껴안고 일어나 기승위의 체위로 바꿔주었고, 내가 몸을 일으키면 마주보고 앉아서 하는 체위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자세를 취했다. 경험이 많은듯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 강한별의 보지속으로, 단단하게 솟아오른 내 불기둥은 연신 삼켜졌다 토해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하응!하앙..으응! 오빠..흑!”
애액이 묻은 그녀의 하반신이 내 몸위에서 춤을 추었다. 찰싹찰싹하는 살끼리의 마찰음과 함께,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의 신음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방안을 가득 메웠다. 내 이마에서 솟아난 땀방울이 후두둑 그녀의 하얀 몸위로 떨어지고, 다시 증발하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강한별의 몸을 살짝 잡아 돌렸다.역시나 그녀는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살짝 엎드려, 엉덩이를 크게 위로 들어 올려 주었다. 예림이보다는 발달된 엉덩이는 아니었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둠은 예림이와 다른 매력을 지닌 강한별도 예림이 처럼 만들어주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술기운은 그런 신비한 힘에 특수효과까지 더해줘,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상상의 장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하응!흑!좋아..더 세게 오빠..흑!”
그녀의 뒤로 진입한 내 자지는 열심히 그녀의 몸안을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했다. 처음 강한별과 섹스를 했던 그 날과는 차원이 다른 조임이었다. 가냘픈 허리를 잡아 쥔 내 움직임은 더더욱 빨라졌고, 그녀의 신음소리역시 정비례하며 상승했다.
“흑! 흐응..아흑!흐응! 내 안에 싸줘요..어서 오빠..흑!”
땀에 젖은 내 몸이 달빛에 흔들렸다. 내가 절정에 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안다는 것처럼, 강한별은 내가 몸을 흔드는 것과 박자를 맞춰 살짝 엉덩이를 돌려주었다.그녀의 속살이 내 것을 꽉 움켜쥐고 흔든다는 그 느낌이 강하게 전달될 즈음에, 마치 항아리에 가득찬 물이 조그만 구멍으로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중심부에 쏠려있던 술기운이 일제히 알수 없는 무언가와 함께 빠져나갔다. 강한별은 뜨끈한 느낌을 만끽하듯 스르를 몸을 침대위로 떨어뜨렸고, 그녀의 움직임으로 인해 강한별의 몸속에 들어가 있던 내 자지는 젖은 몸통을 허공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아..하아..”
그녀도 나도, 액체로 범벅이 된 몸을 침대에 뉘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훨씬 길고 길었던 섹스였다. 한별이의 도톰한 허벅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이제는 눈에 보이고 있었다.
옆에 누워 있는 그녀의 알몸을 끌어 안았다. 가느다란 허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그것은 애써 몰입한 환상속에서 깨지 않으려는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었다.그렇게 해서라도 계속 취해있고 싶을 뿐이었다.
“눈치가..없는 편이죠?”
“무슨 뜻이야?”
그녀의 입에서 세어나온 말에, 마지막까지 가슴의 감촉을 느끼려던 내 손길이 뚝 하고 멎었다.내게서 등지고 옆으로 누워있어 그녀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왠만한 남자들은..그정도 신호를 보내면 아 나를 좋아하는 구나 착각이라도 할 텐데..선배는 정말 모르는 건가요? 아님 모르는 척 하는 건가요?”
“니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유민이 말이에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어색하게 흠..하는 소리를 내는 것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섹스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살짝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섹시하게 느껴졌다.
“선배를 좋아하고 있잖아요.”
“어째서?”
“증거를 대라는 건가요?”
“아니. 왜 나를 좋아하는지가 궁금해.”
“그건 본인만 아는 거겠죠.”
“하지만 말이 안되는데.”
“어째서요?”
“나를 본게 고작 한달이나 되었을까? 그 짧은 순간에 나를 좋아하게 된다는 게 웃기잖아.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첫 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는데요 뭘.”
“설마.나는 누군가가 첫 눈에 반할 만큼 멋지지 않아”
“아니면 오래부터 선배를 봐 왔을 수도 있겠죠.”
“무슨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알 수 없는 강한별의 말에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사실은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그제서야 과제로 제출한 것 외에 따로 청첩장을 챙겨둔 오유민의 행동과, 술집에서 그녀가 대답한 진실게임의 답에대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요?유민이를.”
“이쁘잖아. 귀엽고..뭐..”
“선배의 누나도 은근히 닮았구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그녀의 가슴위에 손을 얹은 채로, 어색한 적막의 시간이 잠시 지나갔다.,
“내가 선배와 자는 이유는..선배가 내 사촌오빠를 닮았기 때문이에요.”
조용조용한 톤으로 돌아온 한별이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나를 아득한 잠에 취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배신감, 혹은 누군가의 짝퉁이 되었다는 자괴감따윈 들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내 알몸을 그녀의 하얀 피부에 닿게 한 것만으로도 그 심정이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유민이 착하잖아요. 사귀어 봐도 좋을 듯한데.”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사귈 이유가 있는건 아니잖아.게다가 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한데.”
“누나와 닮은 여자.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해 보여요.”
역시나 강한별은 여우였다. 뭔가 속을 훤하게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불쾌한 기분. 하지만 선뜻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유민이 마음에 안들어서가 아니다. 그런말을 하는 강한별의 속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곳은 강한별의 집. 철저하게 강한별에게 어드벤테이지가 적용되는 공간인 것이다. 성급한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왕자병 같이 느껴지겠지만 하나만 묻자.”
“뭔데요?”
“만약 내가 오유민과 사귄다면, 니가 나를 보면서 사촌오빠를 떠올리는 시간도 자연히 사라지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걸 추천하는 거야?”
“사라지지 않아요. 유민이랑 선배가 사귄다고 해서, 이것이 깨진다는 보장은 없죠.”
역시나 알 수 없는 아이였다. 쿨하다 못해 차가웠다. 도대체 이 어린 여자애의 마음속에는 어떤 모습의 여자가 살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영화 속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그런 팜므파탈의 케릭터라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위험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좋을대로 해요. 하지만, 제가 본 모습은 그래요. 유민이는 선배의 누나와 닮아 있어요. 선배가 내 오빠와 닮아 있듯이.”
역시나, 오늘도 묻지 못했다. 어째서 그를 사랑하면서 증오하는지. 아직은 물어볼 단계가 아닌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강한별을 껴안으면서 다른 사람을 떠올리듯이, 나 역시 그녀의 상상속 세계가 자연히 깨지기 전까지 지켜줘야할 책임이 있었다. 적어도, 그것이 ‘페어 플레이’였다.
“돌아가 볼게.술이 깼으니까.”
“같이 씻고 가요.저도 많이 젖어서...씻어야 해요.”
“오늘은 더 흥분한 것 같던데..목소리가 컸어.”
“그랬나요?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구한테?”
강한별의 상상속 세계는 샤워까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그것이 싫을리는 없었기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녀에게 슬쩍 질문을 던지고는, 이제는 적응이 된 어둠속으로 나는 조금도 비틀거리지 않는 걸음으로 욕실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스위치를 켜려던 그 찰나, 강한별의 대답에 나는 그만 휘청하고 말았다.
“바로 옆방에요. 거기 유민이가 살거든요.”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은 모양인지, 나는 허둥지둥 인재의 집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제법 얇아진 자켓을 벗지도 않고 서둘러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오늘은 목요일. 별다른 약속은 없었지만 은연중에 밤비를 만나기로 되어 있는 그 날이었다. 물론 그녀가 들어오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으로도 나는 컴퓨터를 켜고 접속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는 화상채팅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누나와의 벽을 조금씩 허물 자신이 있었지만, 허물고 난 그 벽을 재확인하는 길은 화상채팅에서 그녀와 직접 대화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벽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무너진 베를린의 장벽처럼 한꺼번에 붕괴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감정이 침식작용을 하면서 그 벽을 갉아먹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나는 바닥에 누워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한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번 맥주를 마시면 슬쩍 넘었던 선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철벽의 수비를 자랑하는 성의 약점을 발견한 그런 기분이었다. 내 자신이 그토록 집요한 놈인줄 몰랐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그 약점만을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런 소소한 야한 이야기를 하면서 잠드는 우리의 숨결은 그 어느 밤보다 짙었다.
예림이는 계속해서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늘 란제리 차림을 내게 보여주었고, 물론 용기내어 그것을 벗지는 못하는 듯했지만 나는 욕실문을 열고 의무적으로 자기 위안을 했다. 여전히 예림이는 욕실문의 틈바구니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채 란제리 차림으로 무의미한 행동들을 했고, 내가 씻고 나올때 쯤엔 늘 완벽하게 몸을 가린 복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쯤에서 내가 느낀 것은 갈증이었다. 대놓고 누나에게 벗어달라고 할 수 없으니, 또다시 목요일이 기다려 지는것은 정말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다.
다행히도 운은 끝까지 나를 따르는 듯했다.화상채팅에 접속하고, 초조하게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밤비’라는 대화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번에는 그녀쪽에서 먼저 대화신청이 들어왔고, 나는 서둘러 승낙버튼을 눌렀다. 자연스레 오른쪽 하단에 표시된 남아있는 포인트에 먼저 시선이 갔고, 꽤나 많은 양의 금액이 남아있음에 안심하고 나서야 화면을 응시했다.
관리자 알림-채팅이 시작되었습니다.
Fetish king: 반가워요.
밤비: 안녕하세요.
이제는, 작은 화면에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은 그렇게 큰 의미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그 작은 창으로 누나의 알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나 실제 생활에서의 김예영이 그것을 보는 편이 훨씬 좋았다.
Fetish king: 오랜만에 채팅하네요.그쵸?
밤비: 네. 그러네요.
Fetish king: 어떻게 되었어요?
밤비: 음...
나는 꽤나 서두르고 있었다.빨리 무너진 성벽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 벽을 이루는 부서진 콘크리트의 조각들을 두 눈으로 봐야만 직성이 풀릴것 같았다.
누나..아니, 밤비는 나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단 1퍼센트의 거짓말도 보태지지 않은 그간의 일들을 예림이의 시점에서 듣는 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동생이 바라보는 주기, 즉 샤워하는 주기가 더욱더 늘어났으며, 아직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아 속옷을 벗지 못했다고 예림이는 밤비의 이름을 빌려 내게 말해주었다.
Fetish king: 왜 용기가 나지 않나요?
밤비: 한번쯤은 해보려고 용기를 내려고 했는데..잘 안되었어요.
나는 벌써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채팅이라는 수단을 써서 내 모습을 인터넷의 익명성에 가린다 해도, 그녀가 옷을 벗게 할 의지를 억지로 심어주기는 너무나도 힘이 든 것이었다. 나는 문득 버스 안에서의 일이 생각나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렸다.
Fetish king: 그것 외엔 별 일 없었나요? 둘이 같이 영화를 봤다고 했잖아요.
밤비: 아..그게..
Fetish king: 말해봐요.
밤비: 동생이 버스에서 제 몸을 더듬은것 같아요.
Fetish king: 어땠나요?기분이..
초조했다. 어서 빨리 그녀가 대답을 해주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중요한 것은 나 역시 다 알고있는 사건의 흐름이 아니었다.그녀가 어땠는지. 그것이 내가 알고 싶은 진실의 건너편이었다.
밤비: 기분이 이상했어요.몸이 간질거리기도 하고..몰라요. 왠지모르게 님이 밉네요.
Fetish king: 왜요?
밤비: 그냥...
내가 밉다? 물론 김예영이라는 인물이 아닌 화상채팅에서의 가상의 인물이 밉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왠지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말인것 같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끝까지 진정 미운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내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분명..누나도 싫지 않다. 아니,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위험한 가설이었다.철썩같이 믿기엔 어느부분이 썩어 있는지 모를 로프와도 같았다. 그것은 정말로 벼랑끝에 돋아난 나무가지를 잡고 있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었다.두근두근 떨렸다.란제리 차림의 예림이를 처음 보았을 때 처럼, 그런 비슷한 종류의 떨림이 전달되어 왔다.
Fetish king: 어차피 둘 만이 있는 공간이잖아요.상관없지 않나요? 그저 보여주는 것 뿐이라면 말이에요.
밤비: 궁금한게 있는데..님은 왜 저와 동생의 일에 관심을 갖으세요?
Fetish king: 흥미로우니까요. 밤비님의 동생이 부럽기도 하구요.
간접적인 이야기로 흥분을 하는 변태로 오인받아도 상관없었다. 화상채팅에서의 나는 그야말로 작업용 장갑과도 같은 것이었다. 속에 들어있는 하얀 살갖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마음놓고 대신 더럽히기 위한 그런 가면이자 무기였다. 실제로 화상채팅에서의 내가 이상한 녀석이 되어갈수록, ‘하얀 살갖’과도 같은 동생인 김예영은 조금씩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장갑이 너덜너덜 투박하게 변하지 않은 이상은, 김예영이란 인물을 누나의 마음속에서 더럽힐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Fetish king: 님의 일이니까, 밤비님의 자유에요. 하지만, 확실한것은 동생분도 밤비님을 원하고 있을거에요.
밤비: 잘 모르겠어요.조금은 혼란스러워요. 막상 일이 닥치면 까맣게 잊어 버리는데..또 혼자 있을때는 그러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슴이 너무나 덜컹거려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횡경막 쪽에 무언가가 걸려있는 것처럼 호흡소리가 스타카토로 툭툭 끊겨서 내뿜어진다. 그녀가 한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흥분을 하고 있었다. 늘 채팅을 하고 나서 들었던 원색적인 흥분이 아니었다. 조금씩 허물어지는 벽의 잔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최후의 한 방으로 그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이제는 즐겁게 기다릴 자신이 생겨났다.
밤비: 예전에는 사이좋은 평범한 남매였는데 그것이 깨지는 것 같아요.
Fetish king: 과거는 신경쓸 필요 없어요. 지나간 달력을 보는 건 쓸대 없는 일이잖아요.
밤비: 그치만...
그녀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맞다. 지나간 달력을 다시 꺼내어 보는 바보는 없다. 나와 예림이의 달력은 10년간 넘겨져 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하나씩 하나씩, 우리 둘만이 허용된 공간에서 우리 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연호의 달력을 쓰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밤비: 그리고 저 자주는 못 올지도 몰라요. 아르바이트건도 있지만..그래도 목요일날에는 시간되면 들어와 볼게요.그때 이야기 나눠요.
Fetish king: 알았어요.
자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밤비의 말에 속이 상하거나 혹은 섭섭하거나 하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 더이상 장갑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확신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몰랐다. 누나와의 일이 사회적 금기사항이라는 것이 상기될 때마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그 규율과 화(和)를 부수고 싶은 충동이 반발적으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채팅에서의 밤비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이제 중요한 것은, 가상이 아닌 실제인 것이다.
기분 좋은 햇볕이 캠퍼스 전체를 졸리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모락모락 땅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때즈음엔,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너..강한별이랑 사귄다며?-
처음엔 그냥 실없는 녀석이 한 말이거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지만, 오늘만 해도 인재를 포함해서 다섯명에게 그 말을 들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2학년 김예영이 1학년의 퀸카와 사귄다라는 소문 자체가 남자로서 기분 상할 일은 절대 아니었지만, 쌍수들고 환영할 정도로 기분좋은 오해가 아니었다. 찝찝한 것은 아무도 그 소문의 근원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결혼과 가족’의 수업을 들으러 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강한별은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그녀의 가상 커플로 지정된 파트너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는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별이야 그런 소문이 돌던 말던 무관심할 아이겠지만, 나는 왠일인지 조금은 찔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로 이성적으로 끌리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아무일도 없는것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내 옆에 앉는 오유민의 인사를 받아주며,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강한별의 옆 방 이라는 여섯 글자가 머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그 집의 방음상태에 많은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의 표정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지 않았다.내 옆에 앉아 연습장을 꺼내었고, 조그마한 책을 옆에 두고 턱을 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그 조그마한 책 사이에 청첩장이 아직도 끼워져 있을까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화장기가 없던 뽀얀 피부위로, 아주 미세하지만 화장기가 첨가되어 있었다. 귀여운 복장역시 브라우스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스러운 차림으로 변화해 있었다. 늘 모자 같은 것에 감춰져 있던 짧은 머리칼을 어깨위로 늘어뜨린 그녀는, 눈 화장을 해서 더욱더 커 보이는 눈망울로 책을 보고 있었다.
-유민이는 선배의 누나와 닮았어요-
강한별이 했던 그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유민이를 좋아하는 인재가 우리 누나를 보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같이 연상되었다. 조금은 통통한 볼살에 큰 눈. 그리고 하얀 피부는 예림이와 유민이 둘 다 갖고 있는 공통점이었다.
“왜 그러세요?”
“응?아..아냐. 아무것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옆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별의 말이 옳았다. 예림이와 유민이는 많이 닮은 편이었다. 얼굴이 판박이라는 것이 아닌, 풍겨지는 이미지가 거의 흡사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 들어왔다. 오유민의 브라우스와 청바지 속에 감춰진 몸매는 어떤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예림이가 유민이에 비해 가슴과 힙이 발달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둘의 체형 마저도 조금은 비슷했다. 내 어깨를 약간 넘는 키. 여성스러운 아담한 골격까지도 거의 일치했다.
‘정말 그렇잖아. 왜 이제서야 알아챈 거지?’
교수가 들어와서 수업이 진행되고 나서도, 나는 아직도 생각에 빠져서는 힐끔힐끔 오유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별이 말을 했을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녀가 그런 말을 할만큼 둘은 꽤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때에 따라 예림이에게는 귀여움에 ‘섹시함’이 첨가 된다는 것이 많이 다른 점이겠지만, 외향적으로 풍기는 이미지는 많이 흡사했다.
-그 날은 잘 들어갔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유민이 첫 경제학 수업시간에 내게 했었던, 그 실없는 쪽지질을 하고 있었다. 노트에 써서 옆으로 쓰윽 내미는 내 손을 본 오유민은, 조금 놀란 듯이 나를 응시했다.
-잘 들어갔어요 벌써 며칠전 일인데요.-
뭐가 웃긴건지, 답변을 해주며 그녀는 살짝 웃고 있었다. 머리속에서는 한별이와 내가 같이 있던 것을 들었을까?하는 의문만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표현할수 없는것이 너무나 답답할 뿐이었다.
-근데 오빠 정말 한별이랑 사귀는 거에요?-
다시 뭐라고 써야하나 고민할 때쯔음, 이번에는 그녀의 노트가 내 쪽으로 쓰윽 밀어졌다. 나는 아주 황급히,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헛소문이야.’라고 써 주었고, 그것을 본 오유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날 바로 집으로 들어가셨어요?-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의미 없는 질문일까? 아니면 그날의 일을 알고서 나를 떠보려는 걸까? 강한별이 이렇게 물었다면 백프로 나를 떠보려는 것이겠지만, 유민이가 이런 질문을 하니 괜시리 긴장이 되었다. 이유없이 저 멀리서 앉아 있는 강한별을 쏘아 보았지만, 그녀에게 ‘혹시 유민이 한테 나랑 잔거 이야기 했어?’라고 묻는 것은 또다른 약점을 잡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응.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
내가 선택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물론 진실을 말하는 게 미친놈이겠지만, 나도 사람인지 궁지에 몰리니 발뺌부터 하게 되는 듯했다. 게다가, 오유민의 표정에서 혐오감 혹은 의심의 눈길은 보여지지 않아 더욱더 배짱이 생겼다.
오유민은 얼굴을 교수쪽에 향한채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아. 그 날은 오유민도, 나도, 강한별도 취했으니까 알아채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한별이라면 그녀가 알아채지 못할 것을 알고 일부로 내 앞에서 그런 여유를 부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당황하게 한 것처럼, 내 당황하는 얼굴을 보려고 꾸민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음주 경제학 수업 끝나고..밥 사줄게.-
나 답지 않은 제안을 하는 것에 내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하물며 오유민의 눈이 살짝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정말인가요?-
-응. 대신 인재에게는 말하지 마-
-왜요?-
-그런게 있어.-
무슨 의미인지, 오유민은 쿡쿡 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화장을 한 발그레한 볼에서,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왔다.어째서 내가 자진해서 유민이에게 밥을 사준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밥’이었다.
착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유민의 얼굴은 그 이후부터 밝아지고 있었다. 내 제안에 단순히 기분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한별이와 같은 여우과라서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자의 쪽일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건 이 수업의 유일한 이론 정리니까 적어두세요.”
교수의 말에 나 처럼 교양과목을 무시하며 설렁설렁 강의실에 왔던 인물들은 뒤늦게 펜과 노트를 꺼내어 화이트 보드에 적힌 것들을 필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필기를 할 양은 지극히 적었지만, 대부분 참고문헌이 되는 책들을 집필한 저자들에 관한 필기였기에 적어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 그 펜. 의외로 글씨 잘 써지죠?-
금세 필기를 끝내고 살짝 턱을 괸 내 팔 쪽으로, 유민이의 귀여운 글씨체가 적혀진 노트가 쓰윽 하고 밀려져 왔다. 펜? 펜이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자연스레 내가 쥐고 있는 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 59회 졸업기념-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하얀 글씨가 프린트 되어 있는 그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졸업할 때 전교생에게 나눠주는 펜이었다. 엄청 나게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생 들에게 검정색 펜을 나눠주는 것이 내 모교의 전통이었다.
-잘 써지기는 한데..뜬금없이 왜?-
-저도 똑같은 것을 갖고 있거든요.-
다시금 돌아온 답변에 깜짝 놀라 그녀쪽을 바라보았다.립클로즈를 발라 반짝거리는 입술이 나를 보며 희미하게, 하지만 수줍게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의 오유민이 들고 있는 것은, 내 것과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색상의 도톰한 볼펜이었다. 그리고, 그 펜에 써있는 글자들이 내 두 눈에 비춰졌다.
‘제 60회 졸업기념- 졸업을 축하합니다’
골목길은 흔들리고 있었다.
봄이 와서 아지랑이가 저녁까지 남아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대학가 전체가 취해 있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뻗어있는 여자 후배 하나를 보며 길거리에서 은근한 신경전들을 보이는 예비역들의 모습이 눈에 띄였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빤히 보는 신입생 남자애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모두 도수 높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것처럼 뿌옇고 흔들리게 보였다.
그런 내 눈에, 두 번 방문했던 강한별의 집 건물이 또렷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사진의 조리개를 조인 것처럼 아웃포커스로 잡히는 듯한 화면이었다. 후문에 있는 몇 개의 원룸형 건물들. 그 중에서도 새로 신축해서 깔끔한 외관을 갖고 있는 그 건물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비틀 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왜 거기로 향하는지, 강한별이 우습다고 느끼면서 왜 그녀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있는지 도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이번에도 최근 몇 번의 경험들처럼, 뇌에서 명령을 내리기 전에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어쨌든 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나는 두 번정도 헛다리를 짚고, 세 번 정도의 넘어질 뻔할 위기를 넘기고는 겨우겨우 강한별의 집 앞 현관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녀의 문자에 지금 간다고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가서 문을 두드려도 나이겠거니 할 아이였다. 강한별은 평범한 아이들의 잣대를 들이대서 행동할 아이가 아니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강한별이 살고 있는 209호의 벨을 지긋이 눌렀다.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 차가운 철문에 이마를 살짝 대고는 열을 식혔다. 내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무언가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고 묻는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들어오세요.”
문이 빼꼼히 열렸고,거기에 이마를 기대고 있던 내 몸도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졌다.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바디샴푸 냄새를 동반한 수증기가 얼굴에 확 하고 닿았다. 젖은 머리결, 하얀 어깨. 그리고 가슴의 아랫부분을 긴 타올로 가린 강한별이 문 틈으로 보였다.
샤워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아까와는 달리 살짝 미소짓는 모습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닌것 같아 잠자코 그녀의 집안으로 내 몸을 들이밀었다. 이 여우가 혹시 자기 집에 오유민을 들여놓고 날 불러 함정에 빠트릴려고 하나 하는 의심을 잠깐 했던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방과 여지없이 코에 닿는 그 안나수이의 향수냄새를 맡으며 안심해야 했다.
“방금 씻고 나와서 그래요. 선배도 씻어요.”
“당연하다는 듯이 샤워해야 하는 거야?”
내 물음에 내게서 훤히 드러난 등을 보이며 머리를 수건으로 닦던 강한별이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슬아슬하게 묶여 강한별의 몸에 걸려있는 저 타올을 확 하고 내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왔다.
“하고 싶어서 왔잖아요. 그럼 씻어야죠.”
잠시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곳은 강한별의 홈 그라운드였고, 원정을 온 나로서는 약간의 핸디캡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내 스스로 여기를 찾아온 것 부터 약간의 감점을 안고 가는 것이다. 아까와는 달리 강한별은 여유로웠고, 적당히 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자켓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하얀색의 일회용 칫솔이었다.강한별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 빨간색의 칫솔 옆에, 포장지도 찢어지지 않은 일회용 칫솔 하나가 컵 안에 꽂혀 있었다.나는 옷을 말끔히 벗고는 욕실문을 살짝 열어 던져 버렸고, 문이 닫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내 옷가지들을 주워드는 강한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이를 닦고 샤워를 해도, 뭔가 옷에 묻은 듯한 그 찜찜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옷에 묻은 얼룩은 지르잡아 씻어내면 그만이지만, 마음에 있는 그 이상한 기분은 쉬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예림이의 얼굴과 숙모의 얼굴, 그리고 강한별과 오유민의 얼굴이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예림이를 제외하고는 딱히 나와 확실한 관계에 놓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절한 삼촌의 아내, 대학 후배들. 냉정하게 말하자면 철저하게 무시해 도 될 인물들 사이에 나는 알 수 없는 찜찜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누나를 갖고 싶니? 라는 질문, 혹은 숙모를 안고 싶니? 라는 질문에는 확실히 네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죄책감의 정도를 넘어서서, 세상이 모른다면 그것은 깨도 좋을 유리와도 같은 장벽이었다.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강한별과 오유민이었다. 둘 다 딱히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와 미묘한 관계아래에 있는것 같았다. 무시할 수 없는것은 그녀들 모두 내 생각속에 등장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울에 잔뜩 낀 습기를 뿍뿍 소리가 나도록 닦아내고는,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벌게지도록 마신 술기운이 거울에도 비춰지는 듯했다. 애써 얼굴은 순진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흉측한 아랫도리까지 같이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에 그런 가식을 떨기엔 쉽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 맞다. 무슨 이유로든 내가 여기 왔다면, 마음가는대로 하는 것이 옳다. 구태여 이상한 느낌을 받는 것도 웃겼다. 누나나 숙모의 몸을 만졌을때도 죄책감은 들었으나 후회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엄청난 뒷북이었다.
마치 내가 올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처럼 한 쪽에 따로 준비된 타올로 젖은 몸을 닦아 내고는, 그것을 골반에 둘러 욕실문을 열었다. 다시금 느껴지는 향수 냄새가 심장박동을 더더욱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문을 열었을 때는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이미 불을 꺼버린 것일까? 욕실 불 마저 꺼버리니 침대 쪽에서 빨간 불빛 하나가 아른거리는 게 보였다. 창가쪽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달빛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훅 하고 뿜어지며 일그러진다. 저 아이, 원래 담배를 피웠던가? 잘 모르겠다.
강한별은 아까처럼 수건을 두른 채로,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잘은 보이지 않지만 달빛 사이로 간간히 연기가 가득 차오르는 것은 꽤나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내가 다 씻고 나왔음을 눈치챈 듯, 빨간 불빛은 곧 어딘가에 일그러지며 사라졌고, 향수냄새 대신 은근한 담배냄새만 방안에 남았다.
“오늘도 잠시 머물다 가는 건가요?”
“그래야 할 것 같아. 외박은 한 적이 없어서.”
내가 침대에 몸을 실었을때 그녀는 내 귓가에 그렇게 속삭여 물었고, 나는 약간의 경계심을 품은 채로 그렇게 대답했다.잘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젖은 머리결이 오른팔에 와서 닿았다.
“올 줄 알고 있었어요.”
“어째서?”
“오빠는 나랑 비슷한 사람이니까.”
애매한 말에 뭐라고 하려던 찰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쪽에 와서 덮여졌다. 그제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부끄러움을 탈리 없는 강한별이 어째서 철저하게 조명을 제거하는지를, 나를 선배가 아닌 ‘오빠’로 부른 그 모습에서 단박에 알아낼수 있었다. 어둠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둠으로 상대방의 모습을 가리고, 그 대신 상상의 눈을 열어야 했다.지금 이 순간은 강한별이 아닌 김예림이며, 김예영이 아닌 그녀의 사촌오빠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강한별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진실게임때 어째서 그런 질문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다만 차가워진 손으로 내 배쪽을 더듬었고, 이윽고 그 밑에 묶여 있는 수건의 매듭을 풀어주었을 뿐이었다. 술이 살짝 오른 아랫도리는 차갑고 부드러운 강한별의 손에 잡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동작도 차츰 조화를 맞춰 자리잡아 갔다. 처음부터 묶기는 한 걸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강한별의 몸에 걸쳐진 타올은 너무나 쉽게 스르르 풀렸다. 역시나 보이지는 않았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몸의 굴곡은 내 숨을 헐떡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알몸과 알몸이 닿아 일그러지며 부드러운 감촉이 머리속을 번쩍 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처음 그 날과 달랐다. 나는 강한별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다리는 활짝 벌어져 내 상체가 끼어들기 쉽도록 도와주었고, 나는 한별이의 귓볼부터 천천히 핥아 내려갔다. 살짝 꿈틀거리던 손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그 어둠속에서도 기대감에 어린 강한별의 눈빛이 보이는 듯해서 정신이 없었다.
분명, 강한별의 몸과 누나의 몸은 달랐다. 물론 내가 누나의 몸을 샅샅히 만져보며 느껴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랐다. 가슴과 힙이 발달하여 통통한 느낌을 주는 누나의 몸과, 적당한 가슴에 전체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가진 강한별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굳이 비교하자면 강한별의 몸은 숙모의 몸과 비슷한 것 같았다. 자연스레 오유민의 몸은 예림이의 몸과 비슷할 것이라는 가설이 세워졌지만, 머리를 흔들어 그것을 떨쳐 버리며, 볼록 하게 솟은 가슴을 혀로 훑었다.
“흐음..좋아 오빠..그때 처럼..”
그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아마 나와 처음 잤던 그 날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날 이렇게 애무해주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강한별은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팽팽하게 솟아오른 젖꼭지를 혀로 아우르며, 손을 내려 그녀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까칠한 방초의 느낌과, 좌우로 벌어진 속살의 감촉이 손끝에 전달되며 지릿지릿한 느낌이 들었다.내 손바닥은 그녀의 가랑이 사이를 움켜쥐었고, 이윽고 아무런 대비책이 없던 그녀의 속살 사이로 내 손가락 하나가 쑤욱하고 침범했다.
“흑! 흠..”
강한별은 천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메말라 있던 속살은 차츰차츰 윤기있는 액체를 내 손가락에 가득 묻히기 시작했다.내 혀가 그녀의 배꼽을 향하고, 나아가 살짝 벌어진 보지를 입안 가득 베어 물었을때는 그 신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아흑! 오빠아..흑!”
조금은 놀라고 말았다.아무리 둘만의 공간이지만 신음소리가 너무 큰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녀는 혀로 아랫부분을 핥고 있는 내 얼굴을 허벅지를 오무려 강하게 조여왔다. 그녀의 엉덩이를 손잡이 삼아 잡아들고는, 나는 정신없이 한별이의 깊은 샘을 끊임없이 탐하고 있었다.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성적 환타지를 마음껏 펼칠 기회의 장이었다.상대도 나에게 그것을 원한다면, 내가 구태여 점잔을 뺄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게 무엇일까? 열심히 혀를 놀리면서도 그것을 생각했다.
맞아. 문득 나는 화상채팅을 할 때를 떠올려 보았다.화면으로 보이던 예림이의 도톰한 입술을 상상했다. 천둥번개가 치던 날을 떠올리며, 파르르 떨리던 숙모의 입술을 상상했다. 내가 갖고 있던 욕망, 그것의 실체를 확인한 나는 잔뜩 젖어있는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얼굴을 들었다.
더듬더듬 침대를 더듬어 무릎으로 기어 머리맡까지 올라갔다. 이미 잔뜩 흥분한 자지가 수직으로 뻗어 강한별의 얼굴을 향했다. 그녀는 금세 내 의도를 알아 챈듯 누워 있는 상태에서 살짝 고개를 들었고, 이윽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그 불기둥의 뿌리를 움켜쥐고는 망설임없이 입술로 그것을 삼켜주었다.
짜릿했다. 부드러운 느낌이 귀두에 닿았을때는,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예림이의 모습 혹은 숙모의 모습으로 변한 강한별의 머리칼을 나도 모르게 움켜쥐고 있었다.
쪽..쪽..
자극적인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한별이의 머리가 앞뒤로 움직이며 이미 술기운 때문에 감각이 많이 죽은 내 분신을 핥아주고 있었다.입술 전체가 기둥을 따라 움직이기도 했고, 혀가 귀두 부분을 훌어 주기도 하는 꽤나 디테일한 움직임이었다. 절로 끄응..하는 신음소리가 나왔다.
더이상 참을수가 없었다. 속옷차림의 누나를 보며 자위를 하면서,상상속으로만 조심히 꺼내보았던 그 환상을 재현하기 위해 내 움직임은 바빠지기 시작했다.강한 압력으로 쪽 하고 빨아들인 그녀의 입술에서 번들거리는 내 분신을 뽑아 들고, 예고 없이 그녀의 몸위로 내 몸을 실어 덮쳤다. 한별이는 능숙하게 내 목에 팔을 감았고, 서툰 공격에도 불구하고 한껏 달궈진 창은 수비가 허술한 성 안을 가볍게 뚫고 들어갔다.
“하윽!”
평소보다 톤이 높은 신음소리가 방안의 적막을 찢어내기 시작했다. 마음같아서는 나도 욕정에 찬 헉헉거리는 소리를 마음껏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강한별의 도톰한 허벅지는 더욱더 내 자지를 강하게 조였고, 내 허리는 곧이어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 하응! 오빠아..더 세게 해줘! 흑!”
현관에서 누가 듣는다면, 아니 굳이 귀를 현관에 대지 않더라도 들을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였다. 심하게 흥분한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그것을 지적하거나 혹은 제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하이톤의 그 신음소리에 내가 흥분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체위가 바뀌어 갔다. 그녀는 내가 조금의 손길만 줘도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알아서 자세를 바꿔주었다.내가 조금만 허리쪽에 손을 넣으면 얼른 나를 껴안고 일어나 기승위의 체위로 바꿔주었고, 내가 몸을 일으키면 마주보고 앉아서 하는 체위로 자연스럽게 자신의 다리를 움직여 자세를 취했다. 경험이 많은듯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 강한별의 보지속으로, 단단하게 솟아오른 내 불기둥은 연신 삼켜졌다 토해졌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하응!하앙..으응! 오빠..흑!”
애액이 묻은 그녀의 하반신이 내 몸위에서 춤을 추었다. 찰싹찰싹하는 살끼리의 마찰음과 함께,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의 신음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방안을 가득 메웠다. 내 이마에서 솟아난 땀방울이 후두둑 그녀의 하얀 몸위로 떨어지고, 다시 증발하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강한별의 몸을 살짝 잡아 돌렸다.역시나 그녀는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살짝 엎드려, 엉덩이를 크게 위로 들어 올려 주었다. 예림이보다는 발달된 엉덩이는 아니었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둠은 예림이와 다른 매력을 지닌 강한별도 예림이 처럼 만들어주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술기운은 그런 신비한 힘에 특수효과까지 더해줘,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상상의 장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하응!흑!좋아..더 세게 오빠..흑!”
그녀의 뒤로 진입한 내 자지는 열심히 그녀의 몸안을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했다. 처음 강한별과 섹스를 했던 그 날과는 차원이 다른 조임이었다. 가냘픈 허리를 잡아 쥔 내 움직임은 더더욱 빨라졌고, 그녀의 신음소리역시 정비례하며 상승했다.
“흑! 흐응..아흑!흐응! 내 안에 싸줘요..어서 오빠..흑!”
땀에 젖은 내 몸이 달빛에 흔들렸다. 내가 절정에 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안다는 것처럼, 강한별은 내가 몸을 흔드는 것과 박자를 맞춰 살짝 엉덩이를 돌려주었다.그녀의 속살이 내 것을 꽉 움켜쥐고 흔든다는 그 느낌이 강하게 전달될 즈음에, 마치 항아리에 가득찬 물이 조그만 구멍으로 한꺼번에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엄습하기 시작했다. 중심부에 쏠려있던 술기운이 일제히 알수 없는 무언가와 함께 빠져나갔다. 강한별은 뜨끈한 느낌을 만끽하듯 스르를 몸을 침대위로 떨어뜨렸고, 그녀의 움직임으로 인해 강한별의 몸속에 들어가 있던 내 자지는 젖은 몸통을 허공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아..하아..”
그녀도 나도, 액체로 범벅이 된 몸을 침대에 뉘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훨씬 길고 길었던 섹스였다. 한별이의 도톰한 허벅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이제는 눈에 보이고 있었다.
옆에 누워 있는 그녀의 알몸을 끌어 안았다. 가느다란 허리를 팔로 감싸 안았다. 그것은 애써 몰입한 환상속에서 깨지 않으려는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었다.그렇게 해서라도 계속 취해있고 싶을 뿐이었다.
“눈치가..없는 편이죠?”
“무슨 뜻이야?”
그녀의 입에서 세어나온 말에, 마지막까지 가슴의 감촉을 느끼려던 내 손길이 뚝 하고 멎었다.내게서 등지고 옆으로 누워있어 그녀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왠만한 남자들은..그정도 신호를 보내면 아 나를 좋아하는 구나 착각이라도 할 텐데..선배는 정말 모르는 건가요? 아님 모르는 척 하는 건가요?”
“니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유민이 말이에요.”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어색하게 흠..하는 소리를 내는 것 뿐이었다. 아직까지도 섹스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살짝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섹시하게 느껴졌다.
“선배를 좋아하고 있잖아요.”
“어째서?”
“증거를 대라는 건가요?”
“아니. 왜 나를 좋아하는지가 궁금해.”
“그건 본인만 아는 거겠죠.”
“하지만 말이 안되는데.”
“어째서요?”
“나를 본게 고작 한달이나 되었을까? 그 짧은 순간에 나를 좋아하게 된다는 게 웃기잖아.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첫 눈에 반한다는 말도 있는데요 뭘.”
“설마.나는 누군가가 첫 눈에 반할 만큼 멋지지 않아”
“아니면 오래부터 선배를 봐 왔을 수도 있겠죠.”
“무슨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알 수 없는 강한별의 말에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사실은 기분이 묘하게 좋았다.그제서야 과제로 제출한 것 외에 따로 청첩장을 챙겨둔 오유민의 행동과, 술집에서 그녀가 대답한 진실게임의 답에대한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해요?유민이를.”
“이쁘잖아. 귀엽고..뭐..”
“선배의 누나도 은근히 닮았구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그녀의 가슴위에 손을 얹은 채로, 어색한 적막의 시간이 잠시 지나갔다.,
“내가 선배와 자는 이유는..선배가 내 사촌오빠를 닮았기 때문이에요.”
조용조용한 톤으로 돌아온 한별이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나를 아득한 잠에 취하게 하는 것만 같았다. 배신감, 혹은 누군가의 짝퉁이 되었다는 자괴감따윈 들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내 알몸을 그녀의 하얀 피부에 닿게 한 것만으로도 그 심정이 이해되는 것만 같았다.
“유민이 착하잖아요. 사귀어 봐도 좋을 듯한데.”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사귈 이유가 있는건 아니잖아.게다가 니가 그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한데.”
“누나와 닮은 여자. 그거 하나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해 보여요.”
역시나 강한별은 여우였다. 뭔가 속을 훤하게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불쾌한 기분. 하지만 선뜻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유민이 마음에 안들어서가 아니다. 그런말을 하는 강한별의 속마음을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곳은 강한별의 집. 철저하게 강한별에게 어드벤테이지가 적용되는 공간인 것이다. 성급한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왕자병 같이 느껴지겠지만 하나만 묻자.”
“뭔데요?”
“만약 내가 오유민과 사귄다면, 니가 나를 보면서 사촌오빠를 떠올리는 시간도 자연히 사라지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걸 추천하는 거야?”
“사라지지 않아요. 유민이랑 선배가 사귄다고 해서, 이것이 깨진다는 보장은 없죠.”
역시나 알 수 없는 아이였다. 쿨하다 못해 차가웠다. 도대체 이 어린 여자애의 마음속에는 어떤 모습의 여자가 살고 있는 걸까?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영화 속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그런 팜므파탈의 케릭터라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위험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야.”
“좋을대로 해요. 하지만, 제가 본 모습은 그래요. 유민이는 선배의 누나와 닮아 있어요. 선배가 내 오빠와 닮아 있듯이.”
역시나, 오늘도 묻지 못했다. 어째서 그를 사랑하면서 증오하는지. 아직은 물어볼 단계가 아닌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강한별을 껴안으면서 다른 사람을 떠올리듯이, 나 역시 그녀의 상상속 세계가 자연히 깨지기 전까지 지켜줘야할 책임이 있었다. 적어도, 그것이 ‘페어 플레이’였다.
“돌아가 볼게.술이 깼으니까.”
“같이 씻고 가요.저도 많이 젖어서...씻어야 해요.”
“오늘은 더 흥분한 것 같던데..목소리가 컸어.”
“그랬나요?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구한테?”
강한별의 상상속 세계는 샤워까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라고 해서 그것이 싫을리는 없었기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녀에게 슬쩍 질문을 던지고는, 이제는 적응이 된 어둠속으로 나는 조금도 비틀거리지 않는 걸음으로 욕실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스위치를 켜려던 그 찰나, 강한별의 대답에 나는 그만 휘청하고 말았다.
“바로 옆방에요. 거기 유민이가 살거든요.”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은 모양인지, 나는 허둥지둥 인재의 집 현관문을 열어 젖혔다. 제법 얇아진 자켓을 벗지도 않고 서둘러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오늘은 목요일. 별다른 약속은 없었지만 은연중에 밤비를 만나기로 되어 있는 그 날이었다. 물론 그녀가 들어오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실낱같은 희망 하나만으로도 나는 컴퓨터를 켜고 접속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는 화상채팅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누나와의 벽을 조금씩 허물 자신이 있었지만, 허물고 난 그 벽을 재확인하는 길은 화상채팅에서 그녀와 직접 대화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벽은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무너진 베를린의 장벽처럼 한꺼번에 붕괴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감정이 침식작용을 하면서 그 벽을 갉아먹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나는 바닥에 누워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야한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한번 맥주를 마시면 슬쩍 넘었던 선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철벽의 수비를 자랑하는 성의 약점을 발견한 그런 기분이었다. 내 자신이 그토록 집요한 놈인줄 몰랐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그 약점만을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런 소소한 야한 이야기를 하면서 잠드는 우리의 숨결은 그 어느 밤보다 짙었다.
예림이는 계속해서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늘 란제리 차림을 내게 보여주었고, 물론 용기내어 그것을 벗지는 못하는 듯했지만 나는 욕실문을 열고 의무적으로 자기 위안을 했다. 여전히 예림이는 욕실문의 틈바구니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채 란제리 차림으로 무의미한 행동들을 했고, 내가 씻고 나올때 쯤엔 늘 완벽하게 몸을 가린 복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쯤에서 내가 느낀 것은 갈증이었다. 대놓고 누나에게 벗어달라고 할 수 없으니, 또다시 목요일이 기다려 지는것은 정말 어쩔수 없는 현상이었다.
다행히도 운은 끝까지 나를 따르는 듯했다.화상채팅에 접속하고, 초조하게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밤비’라는 대화명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이번에는 그녀쪽에서 먼저 대화신청이 들어왔고, 나는 서둘러 승낙버튼을 눌렀다. 자연스레 오른쪽 하단에 표시된 남아있는 포인트에 먼저 시선이 갔고, 꽤나 많은 양의 금액이 남아있음에 안심하고 나서야 화면을 응시했다.
관리자 알림-채팅이 시작되었습니다.
Fetish king: 반가워요.
밤비: 안녕하세요.
이제는, 작은 화면에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은 그렇게 큰 의미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그 작은 창으로 누나의 알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나 실제 생활에서의 김예영이 그것을 보는 편이 훨씬 좋았다.
Fetish king: 오랜만에 채팅하네요.그쵸?
밤비: 네. 그러네요.
Fetish king: 어떻게 되었어요?
밤비: 음...
나는 꽤나 서두르고 있었다.빨리 무너진 성벽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 벽을 이루는 부서진 콘크리트의 조각들을 두 눈으로 봐야만 직성이 풀릴것 같았다.
누나..아니, 밤비는 나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단 1퍼센트의 거짓말도 보태지지 않은 그간의 일들을 예림이의 시점에서 듣는 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동생이 바라보는 주기, 즉 샤워하는 주기가 더욱더 늘어났으며, 아직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아 속옷을 벗지 못했다고 예림이는 밤비의 이름을 빌려 내게 말해주었다.
Fetish king: 왜 용기가 나지 않나요?
밤비: 한번쯤은 해보려고 용기를 내려고 했는데..잘 안되었어요.
나는 벌써부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채팅이라는 수단을 써서 내 모습을 인터넷의 익명성에 가린다 해도, 그녀가 옷을 벗게 할 의지를 억지로 심어주기는 너무나도 힘이 든 것이었다. 나는 문득 버스 안에서의 일이 생각나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렸다.
Fetish king: 그것 외엔 별 일 없었나요? 둘이 같이 영화를 봤다고 했잖아요.
밤비: 아..그게..
Fetish king: 말해봐요.
밤비: 동생이 버스에서 제 몸을 더듬은것 같아요.
Fetish king: 어땠나요?기분이..
초조했다. 어서 빨리 그녀가 대답을 해주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중요한 것은 나 역시 다 알고있는 사건의 흐름이 아니었다.그녀가 어땠는지. 그것이 내가 알고 싶은 진실의 건너편이었다.
밤비: 기분이 이상했어요.몸이 간질거리기도 하고..몰라요. 왠지모르게 님이 밉네요.
Fetish king: 왜요?
밤비: 그냥...
내가 밉다? 물론 김예영이라는 인물이 아닌 화상채팅에서의 가상의 인물이 밉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왠지 너무나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말인것 같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끝까지 진정 미운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내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분명..누나도 싫지 않다. 아니, 즐기고 있을지 모른다.
위험한 가설이었다.철썩같이 믿기엔 어느부분이 썩어 있는지 모를 로프와도 같았다. 그것은 정말로 벼랑끝에 돋아난 나무가지를 잡고 있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었다.두근두근 떨렸다.란제리 차림의 예림이를 처음 보았을 때 처럼, 그런 비슷한 종류의 떨림이 전달되어 왔다.
Fetish king: 어차피 둘 만이 있는 공간이잖아요.상관없지 않나요? 그저 보여주는 것 뿐이라면 말이에요.
밤비: 궁금한게 있는데..님은 왜 저와 동생의 일에 관심을 갖으세요?
Fetish king: 흥미로우니까요. 밤비님의 동생이 부럽기도 하구요.
간접적인 이야기로 흥분을 하는 변태로 오인받아도 상관없었다. 화상채팅에서의 나는 그야말로 작업용 장갑과도 같은 것이었다. 속에 들어있는 하얀 살갖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마음놓고 대신 더럽히기 위한 그런 가면이자 무기였다. 실제로 화상채팅에서의 내가 이상한 녀석이 되어갈수록, ‘하얀 살갖’과도 같은 동생인 김예영은 조금씩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장갑이 너덜너덜 투박하게 변하지 않은 이상은, 김예영이란 인물을 누나의 마음속에서 더럽힐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Fetish king: 님의 일이니까, 밤비님의 자유에요. 하지만, 확실한것은 동생분도 밤비님을 원하고 있을거에요.
밤비: 잘 모르겠어요.조금은 혼란스러워요. 막상 일이 닥치면 까맣게 잊어 버리는데..또 혼자 있을때는 그러면 안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슴이 너무나 덜컹거려 숨쉬기가 곤란할 지경이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횡경막 쪽에 무언가가 걸려있는 것처럼 호흡소리가 스타카토로 툭툭 끊겨서 내뿜어진다. 그녀가 한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흥분을 하고 있었다. 늘 채팅을 하고 나서 들었던 원색적인 흥분이 아니었다. 조금씩 허물어지는 벽의 잔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최후의 한 방으로 그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이제는 즐겁게 기다릴 자신이 생겨났다.
밤비: 예전에는 사이좋은 평범한 남매였는데 그것이 깨지는 것 같아요.
Fetish king: 과거는 신경쓸 필요 없어요. 지나간 달력을 보는 건 쓸대 없는 일이잖아요.
밤비: 그치만...
그녀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을까. 맞다. 지나간 달력을 다시 꺼내어 보는 바보는 없다. 나와 예림이의 달력은 10년간 넘겨져 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하나씩 하나씩, 우리 둘만이 허용된 공간에서 우리 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연호의 달력을 쓰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밤비: 그리고 저 자주는 못 올지도 몰라요. 아르바이트건도 있지만..그래도 목요일날에는 시간되면 들어와 볼게요.그때 이야기 나눠요.
Fetish king: 알았어요.
자주 보지 못할 것이라는 밤비의 말에 속이 상하거나 혹은 섭섭하거나 하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다. 더이상 장갑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확신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몰랐다. 누나와의 일이 사회적 금기사항이라는 것이 상기될 때마다, 내 마음속 한구석에는 그 규율과 화(和)를 부수고 싶은 충동이 반발적으로 솟아 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채팅에서의 밤비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이제 중요한 것은, 가상이 아닌 실제인 것이다.
기분 좋은 햇볕이 캠퍼스 전체를 졸리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모락모락 땅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한 착각이 들때즈음엔,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너..강한별이랑 사귄다며?-
처음엔 그냥 실없는 녀석이 한 말이거니 하고 신경쓰지 않았지만, 오늘만 해도 인재를 포함해서 다섯명에게 그 말을 들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2학년 김예영이 1학년의 퀸카와 사귄다라는 소문 자체가 남자로서 기분 상할 일은 절대 아니었지만, 쌍수들고 환영할 정도로 기분좋은 오해가 아니었다. 찝찝한 것은 아무도 그 소문의 근원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결혼과 가족’의 수업을 들으러 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강한별은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데, 그녀의 가상 커플로 지정된 파트너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는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별이야 그런 소문이 돌던 말던 무관심할 아이겠지만, 나는 왠일인지 조금은 찔리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서로 이성적으로 끌리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아무일도 없는것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내 옆에 앉는 오유민의 인사를 받아주며,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강한별의 옆 방 이라는 여섯 글자가 머리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그 집의 방음상태에 많은 신뢰가 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의 표정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지 않았다.내 옆에 앉아 연습장을 꺼내었고, 조그마한 책을 옆에 두고 턱을 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그 조그마한 책 사이에 청첩장이 아직도 끼워져 있을까 생각을 하던 나는, 문득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화장기가 없던 뽀얀 피부위로, 아주 미세하지만 화장기가 첨가되어 있었다. 귀여운 복장역시 브라우스에 청바지를 입은 여성스러운 차림으로 변화해 있었다. 늘 모자 같은 것에 감춰져 있던 짧은 머리칼을 어깨위로 늘어뜨린 그녀는, 눈 화장을 해서 더욱더 커 보이는 눈망울로 책을 보고 있었다.
-유민이는 선배의 누나와 닮았어요-
강한별이 했던 그 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유민이를 좋아하는 인재가 우리 누나를 보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같이 연상되었다. 조금은 통통한 볼살에 큰 눈. 그리고 하얀 피부는 예림이와 유민이 둘 다 갖고 있는 공통점이었다.
“왜 그러세요?”
“응?아..아냐. 아무것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옆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별의 말이 옳았다. 예림이와 유민이는 많이 닮은 편이었다. 얼굴이 판박이라는 것이 아닌, 풍겨지는 이미지가 거의 흡사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머리가 울리는 기분이 들어왔다. 오유민의 브라우스와 청바지 속에 감춰진 몸매는 어떤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예림이가 유민이에 비해 가슴과 힙이 발달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둘의 체형 마저도 조금은 비슷했다. 내 어깨를 약간 넘는 키. 여성스러운 아담한 골격까지도 거의 일치했다.
‘정말 그렇잖아. 왜 이제서야 알아챈 거지?’
교수가 들어와서 수업이 진행되고 나서도, 나는 아직도 생각에 빠져서는 힐끔힐끔 오유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별이 말을 했을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녀가 그런 말을 할만큼 둘은 꽤나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때에 따라 예림이에게는 귀여움에 ‘섹시함’이 첨가 된다는 것이 많이 다른 점이겠지만, 외향적으로 풍기는 이미지는 많이 흡사했다.
-그 날은 잘 들어갔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유민이 첫 경제학 수업시간에 내게 했었던, 그 실없는 쪽지질을 하고 있었다. 노트에 써서 옆으로 쓰윽 내미는 내 손을 본 오유민은, 조금 놀란 듯이 나를 응시했다.
-잘 들어갔어요 벌써 며칠전 일인데요.-
뭐가 웃긴건지, 답변을 해주며 그녀는 살짝 웃고 있었다. 머리속에서는 한별이와 내가 같이 있던 것을 들었을까?하는 의문만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표현할수 없는것이 너무나 답답할 뿐이었다.
-근데 오빠 정말 한별이랑 사귀는 거에요?-
다시 뭐라고 써야하나 고민할 때쯔음, 이번에는 그녀의 노트가 내 쪽으로 쓰윽 밀어졌다. 나는 아주 황급히,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헛소문이야.’라고 써 주었고, 그것을 본 오유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날 바로 집으로 들어가셨어요?-
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의미 없는 질문일까? 아니면 그날의 일을 알고서 나를 떠보려는 걸까? 강한별이 이렇게 물었다면 백프로 나를 떠보려는 것이겠지만, 유민이가 이런 질문을 하니 괜시리 긴장이 되었다. 이유없이 저 멀리서 앉아 있는 강한별을 쏘아 보았지만, 그녀에게 ‘혹시 유민이 한테 나랑 잔거 이야기 했어?’라고 묻는 것은 또다른 약점을 잡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응. 그냥 집으로 돌아갔어.-
내가 선택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물론 진실을 말하는 게 미친놈이겠지만, 나도 사람인지 궁지에 몰리니 발뺌부터 하게 되는 듯했다. 게다가, 오유민의 표정에서 혐오감 혹은 의심의 눈길은 보여지지 않아 더욱더 배짱이 생겼다.
오유민은 얼굴을 교수쪽에 향한채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아. 그 날은 오유민도, 나도, 강한별도 취했으니까 알아채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한별이라면 그녀가 알아채지 못할 것을 알고 일부로 내 앞에서 그런 여유를 부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져 당황하게 한 것처럼, 내 당황하는 얼굴을 보려고 꾸민 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음주 경제학 수업 끝나고..밥 사줄게.-
나 답지 않은 제안을 하는 것에 내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하물며 오유민의 눈이 살짝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정말인가요?-
-응. 대신 인재에게는 말하지 마-
-왜요?-
-그런게 있어.-
무슨 의미인지, 오유민은 쿡쿡 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화장을 한 발그레한 볼에서,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왔다.어째서 내가 자진해서 유민이에게 밥을 사준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밥’이었다.
착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오유민의 얼굴은 그 이후부터 밝아지고 있었다. 내 제안에 단순히 기분이 좋아진 건지, 아니면 한별이와 같은 여우과라서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전자의 쪽일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건 이 수업의 유일한 이론 정리니까 적어두세요.”
교수의 말에 나 처럼 교양과목을 무시하며 설렁설렁 강의실에 왔던 인물들은 뒤늦게 펜과 노트를 꺼내어 화이트 보드에 적힌 것들을 필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필기를 할 양은 지극히 적었지만, 대부분 참고문헌이 되는 책들을 집필한 저자들에 관한 필기였기에 적어두지 않으면 안되었다.
- 그 펜. 의외로 글씨 잘 써지죠?-
금세 필기를 끝내고 살짝 턱을 괸 내 팔 쪽으로, 유민이의 귀여운 글씨체가 적혀진 노트가 쓰윽 하고 밀려져 왔다. 펜? 펜이라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자연스레 내가 쥐고 있는 펜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제 59회 졸업기념- 졸업을 축하합니다’라는 하얀 글씨가 프린트 되어 있는 그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내가 나온 고등학교에서 졸업할 때 전교생에게 나눠주는 펜이었다. 엄청 나게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생 들에게 검정색 펜을 나눠주는 것이 내 모교의 전통이었다.
-잘 써지기는 한데..뜬금없이 왜?-
-저도 똑같은 것을 갖고 있거든요.-
다시금 돌아온 답변에 깜짝 놀라 그녀쪽을 바라보았다.립클로즈를 발라 반짝거리는 입술이 나를 보며 희미하게, 하지만 수줍게 웃고 있었다. 웃는 얼굴의 오유민이 들고 있는 것은, 내 것과 똑같은 디자인, 똑같은 색상의 도톰한 볼펜이었다. 그리고, 그 펜에 써있는 글자들이 내 두 눈에 비춰졌다.
‘제 60회 졸업기념- 졸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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