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상(愛傷)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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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그때...그 여자...내가 정리한다고 했었지? 미안해...약속을 못 지켰어...정말 미안해...란아...”
“ 뭐, 뭐야?.....”
“ 계속 들어줘...그게 끝이 아니야...”
“ ..........”
란은 기가 막혔다.
아직도 그 여자와 관계를 끊지 못했다는 것만해도 기가 막힌 데 그 외에도 남은 것이 또 있다고?
너무나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강인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 전에 내가 그랬지? 우리가 평생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어려운 일들이 많을 거라고?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할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 여자와 우리 두 사람의 평생이 왜 같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나 큰 충격 탓일까?
란은 극심한 혼란 속에서 미처 강인의 말을 머리 속으로 정리도 못한 채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 처음에 만난 건.....”
왜 내가 당신과 그 여자의 시시콜콜한 사연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건데?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아니야?
란은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남의 몸인 것처럼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혀가 입 천정에 딱 달라붙어버린 것만 같았다.
왜 이러지?
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잖아?
물론 아직도 정리를 못했다는 건 충격이지만....그래도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이 떨리는 걸까?
“ 그리고....우연하게 다시 만나게 된 건....”
듣기 싫어도 다 듣고 말았다.
강인과 딴 여자 사이에 생긴 일이라 정말 싫었지만 이야기의 내용 자체는 별다르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생생하게 실감을 하고 있었다.
자신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물론 그 여자의 입장이지만....
강인을 만나기도 아득히 전...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열기로 가득 찬 주말의 나이트...들뜬 분위기...취한 상태...
그리고 핸섬하고 매너가 좋은 남자와의 즉석 부킹...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하룻밤의 정사...
문득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그걸 강인에게 미안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니 아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강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 기억이 나다니...
들끓던 감정이 갑자기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흥분을 할 문제도 이유도 없었다.
어찌되었던 그것들은 과거의 일이 아닌가?
어떻게 보면 피장파장이라고 까지도 할 수가 있었다.
지금 신경을 써야 할 건 강인이 조금 전에 언뜻 언급한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왠지 귓가에서 웅웅 대며 겉돌던 강인의 목소리가 라디오 볼륨을 올린 것처럼 똑똑하게 들려왔다.
“ 네 언니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간 날이었어...난 처음에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 자, 잠깐....지, 지금...뭐라고 했어?”
분명히 뭔가를 들었는데, 아니 문장의 뜻은 알겠는데도 그 말이 가지는 의미가 와 닿지가 않았다.
그 여자, 우연히, 재회, 언니에게 인사를 온 날?.......
콰~쾅~
착각이 아니라 진짜로 눈앞에서 하얗게 번개가 쳤다.
그리고 머리 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귀까지 울리는 걸 보면 정말로 벼락이 떨어진 지도 모른다.
설마...설마...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 가, 강인 씨....”
목소리가 덜덜 떨리면서 목이 콱 막혀 다음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아니, 너무나 무서워서 자신이 금방 떠올린 것을 뱉을 수가 없었다.
“ ..맞아...내가 말한 그 여자가...처형...아니 네 언니, 연이 씨야.....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미안해....”
“ 아악~~!!!그만~~!!!”
란은 귀를 두 손으로 막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게 무슨 질 나쁜 장난이야?
강인 씨..지금 나하고 농담을 하는 거지?
우리가 부녀놀이를 하는 것처럼 야한 상상을 하는 거 맞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했어...언니를 등장시키다니....하하...하...
정말 변태 같아....자기는....그런데....왜...이렇게 몸이 떨리고 눈물이 나지?
숨을 쉬기가 힘들어....죽을 것 같아....
“ 란아...란아...제발...진정해...정신을 좀 차려봐...”
“ 아아악~ 악~~”
귀를 막고서는 이불 속에다 얼굴을 묻은 채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는 란을 보고 강인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심야에 울리는 비명이 문제가 아니라 란의 상태가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란의 부드러운 알몸을 끌어안자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쇼크로 인한 일시적인 경련이 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너무나 큰 충격에 자칫 정신에 문제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만큼
목이 쉴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 란의 눈에서 지나치게 흰자위가 드러나고 있었다..
“ 란아...란아..제발...제발...”
짝~ 짝~
강인은 입가에 하얗게 거품까지 보이기 시작하는 란의 상태에 그냥 정신 없이 따귀를 날렸다.
손바닥이 화끈거릴 정도의 강한 타격에 란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한번, 두 번....그리고...
“ 아, 아파...그만...아파.....”
“ 란아...흑흑흑...미안해...란아...흑흑....”
그제야 힘 없이 아프다고 내뱉는 란의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양 뺨에 벌겋게 손자국이 난 채로 멍하니 바라보는 란의 흐릿하던 눈빛이 조금씩 맑아졌다.
강인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늘 밝고 때로는 황당하기까지 할 정도로 태평한 란이었기에 이런 상황까지는 상상을 못했었다.
의학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좀 전에는 히스테리로 인해서 아주 위험한 지경까지 갔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있었다.
짝~
“ 나쁜 놈....”
짝~
“ 나쁜 새끼....”
좌우로 따귀가 날라오면서 욕설이 쏟아졌지만 강인은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란이 이제야 제대로 감정을 표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은 아까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여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여자의 손이라고 만만하게 보기가 힘들 정도로 란의 손길은 매웠다.
몇 대나 맞았을까?
찝찔하게 피 맛이 번지는 걸 보면 입안이 조금 터진 것 같았다.
후후~ 아까 내가 따귀를 너무 세게 때렸나 보군? 마음 먹고 복수를 하나 봐?
강인은 뺨이 부어 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속으로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어찌되었던 간에 란에게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주고 싶었던 만큼,
이렇게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수록 속으로 맺히는 게 적어지리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 저리 비켜....”
“ 라, 란아.....커~억~”
그러던 란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 옷을 입으려 하자 강인이 말렸다.
이 시간에 어디를 간단 말인가?
이 상태로는 집으로 가는 것도 문제였다.
버둥거리는 란을 껴안자 갑자기 어깨를 깨물었다.
얼마나 강하게 물었던지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통증에 겨우 신음을 참았던 게 착각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입을 떼어낸 란의 입가에 벌겋게 뭔가 묻어 있고 자신의 어깨에서 뜨거운 액체가 주르르 흘러내린 걸 보면....
현기증을 나게 만드는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 풍겨왔다.
“ 가, 강....”
“ 란아...내가 잠시라도 보기가 싫겠지? 내가 나갈게...넌 그냥 있어.....지금 시간에 네가 움직이는 건 무리야...
한숨이라도 눈을 붙이든지..아니면 그냥 조용히 생각을 하든지...편한 대로 해...난 네가 출근을 하고 나서 올게...”
어깨의 살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는 걸 보고서 깜짝 놀라 뭔가를 말하려던 란을 강인이 말렸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대충 체육복을 챙겨 입고는 어깨에다가 수건을 누른 채로 급히 현관을 나섰다.
밖에서 열쇠로 잠그고서는 그제서야 자신이 지갑도 핸드폰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다시 들어가기도 곤란했다.
그나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던 란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그게 아니라도 지금 수건으로 누르기는 했지만 옷에 피가 묻은 상태로 돌아다니기도 곤란했다.
그나마 여름인 게 다행이었다.
강인은 옥상을 향했다.
몇 시간만 참으면 될 것이었다.
혹시라도 란이 엉뚱한 일을 벌일까 위에서 출입구를 지켜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흐흐흑~ 흐흑~~ 와앙~”
도망을 가듯이 강인이 허겁지겁 사라지고 방안에 혼자 남자
벌거벗은 채로 멍하니 서있던 란이 풀썩 주저앉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무서웠다.
강인이 너무나 미우면서도 자신에게 물려 어깨가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 흑흑..나쁜 새끼...차에라도 치어서 콱~ 죽어버려...헉~ 딸꾹~ 딸꾹~”
이상했다.
강인의 그 모습이 왠지 자신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면서 두렵게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반발심에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 무서운 말을 뱉어놓고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울음마저 그치고 딸꾹질을 시작했다.
갑자기 무심결에 뱉은 말로 인해서 뭔가가 스산하게 느껴졌다.
멈추려 해도 그쳐지지가 않는 자신의 딸꾹질마저 너무나 불길하게 다가왔다.
늘 포근한 보금자리로 여겨지던 이 방과 가구들이 왠지 자신에게 적대감을 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딸꾹~ 딸꾹~ 흑..흑...미, 민아....민아...악~”
란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전화기를 찾아 들고 조카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은 강인을 부르고만 싶었다.
자신에게 가장 안도감을 주는 존재...그건 당연히 강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본능을 누르고는 조카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기를 들다가 비명을 지르면서 놓쳐버렸다.
등에다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면서 온몸이 싸늘해졌다.
너무나 놀라서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딸꾹질마저 멈춰버렸다.
내가...내가...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이 미친 년....흑흑...흑...나 어떡해....어떡해...강인 씨...나...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조카와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지금 자신이 어떻게 감히 강인과 언니를 욕할 수가 있는가?
머리채가 쥐어 뜯기고 발가벗은 채로 거리로 내쫓겨도 오히려 할 말이 없는 건 자신이었다.
강인과 언니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냥 불륜이었다.
그것도 자신과 강인이 만나기도 전에 우연히 생겼던....
그렇다면 자신과 조카는?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근친상간...더군다나 강인과 결혼을 약속하고도 그 이후에 만들어진 관계였다.
그뿐만 아니라 시작된 이후에는 강인보다는 오히려 조카와의 관계가 더욱 많았다.
언니? 언니의 하나뿐인 아들을 진흙구렁텅이로 끌어넣은 자신에게 무슨 변명이 있으랴?
그런데도 자신이 어떻게 했더라?
미친 듯이 때리고 발악을 했다.
물어뜯어서 어깨를 찢어놓았다.
분명히 봤었다.
어깨를 덮은 수건이 빨갛게 물들 정도로 피가 흘러나오는 걸....
그리고....죽으라고....했다...조금 전에는....
“ 아, 안돼..강인 씨...흑흑...강인 씨..미안해..자기야...내가 잘못했어..돌아와..제발...흑흑...”
란은 두려움과 절망감에 눈물이 쏟아졌다.
자신이 뱉은 저주로 인해서 강인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얼음 굴에 들어온 것처럼 오한이 들면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해? 경찰? 아니....아니...민이...그건 절대 안돼....
제발...제발 강인 씨...그래..맞아..강인 씨한테 전화를 하면 돼...
바보같이 그것도 생각을 못하다니...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빨리 오라고 하는 거야...
“ 가만...가만...흑흑...왜 이리 생각이 안 나는 거야? 흑흑...”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려 하자
눈물로 눈앞이 흐려진 탓도 있지만 갑자기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란은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상태로 자신이 늘 누르던 단축번호까지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 흑흑흑...흑흑..제발..제발...강인 씨....”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산발로 만들어가면서까지 겨우 발신에 성공을 한 란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갑자기 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기겁을 했다가 다시 절망했다.
그제서야 강인의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과 지갑이 보였던 것이다.
나쁜 년...천벌을 받을 년....흑흑....
란은 자신을 마구 욕하고 저주했다.
얼마나 미친 듯이 굴었으면 겨우 옷만 걸친 채,
더군다나 상처를 치료는 고사하고 지혈마저 할 시간도 없이 내쫓기듯이 나섰을까?
자신은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요부요, 악녀였다.
“ 흑..흑...아니야..강인 씨...아무 일도 없는 거지? 안돼...”
울음만 터뜨리며 무기력하게 있던 란은 기운을 차려서 옷을 챙겨 입었다.
지갑도 없이 체육복만, 거기다 상처까지 입은 사람이 멀리 갔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돌아올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고 있기에는 너무나 불안했다.
이대로는 피가 마르고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란은 자신이 직접 근처를 돌면서 강인을 찾기로 했다.
“ 흑흑흑...강인 씨...강인 씨...자기야...내가 잘못했어...제발...흑흑흑....”
우선 생각이 나는 대로 근처의 놀이터부터 들렀다.
컴컴한 놀이터의 텅 빈 그네와 미끄럼틀이 을씨년스러웠다.
시원함을 느끼게 하던 나무들조차 음습한 기운을 뿜으며 두렵게 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면서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작은 놀이터가 커다란 숲이라도 되는 것처럼 몇 바퀴를 돌고도
강인이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순간에 힘이 쭉 빠지면서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득 도로가로 나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나 겁이 났다.
자신이 아까 뱉은 말 때문에 뭔가를 확인하게 되고 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란은 자신의 어깨를 두 손을 감싸고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한 없이 움츠리고만 있었다.
“ 란..아..란이니?”
“ 악~”
란은 갑자기 들려온 남자의 음성에 비명을 질렀다.
“ 란아..란아..나야...정신 차려...”
“ 자, 자기? 자기야~ 와앙~~ 강인 씨...”
놀라서 울음마저 그쳐버렸던 란은 어둠 속에서도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그림자에게서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애타게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 품에다 몸을 던지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자 주춤하다가 포근하게 어깨를 감싸오는 그리운 손길에
서러움과 반가움 그리고 미안함과 안도감이 몰려들면서 한 없이 파고들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강인의 심장 속으로 녹아 들고만 싶었다.
“ 후~ 많이 놀랐어? 이제는 괜찮아...가자...”
“ 흑흑흑...강인 씨...미안해...흑흑...”
“ 자자....이제는 안심해...”
강인은 자신의 품 속에서 비를 맞은 새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란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다가 빠르게 튀어나가는 란을 발견하고서 내려왔을 때는 보이지가 않았다.
택시를 타기 위해 도로가로 나갔는가 싶어 뛰어갔지만 없었다.
그래서 맥이 빠진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가 란의 소지품들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다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사방을 찾아 헤매다가 놀이터에서 들리는 울음소리를 따라왔던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두려움에 쌓여서는 쪼그린 채로 울고 있는 란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란아...란아...정말 내가 못할 짓을 했구나...미안해...
강인은 눈물이 솟아났다.
저 밝고 착한 아이를 이렇게나 슬프고 처량하게 만들다니...
“ 흑흑...많이 아프지...흑...”
“ 아니야...아무렇지도 않아..그냥 조금 벗겨진 것 뿐이야...”
“ 흑흑흑....뭐가 그래? 완전히 패였는데? 흑흑...내가 미쳤어....미안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강인의 윗옷을 벗기고는 약 상자를 가져와 수건을 떼어내는 순간 비명이 나올뻔했다.
이게 정말로 내가 한 짓이란 말인가?
강인의 한쪽 어깨는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서는 피범벅인 채로 퉁퉁 부어있었다.
란은 자신의 잔인함에 치가 떨렸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될 때까지도 묵묵히 당하고 있었던 이 남자의 바보스러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 흑...흑...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자...꿰매야 할 것 같아...흑흑...”
“ 하하..아니야..그냥 침만 바르면 나을 정돈걸? 너 보약을 좀 먹어야겠더라? 무슨 애기보다 무는 힘이 약해?
“ 엉엉~ 이 바보~ 엉엉~”
소독약이 상처로 스며들자 새하얀 거품이 일면서 무척이나 아픈지
입술을 이빨로 질끈 깨물고 몸까지 부들부들 떨면서도 신음소리 대신에 농담을 건네는 이 남자....
란은 다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말았다.
“ 가, 강인 씨?”
일단 응급처치가 끝나고 상처에다 붕대를 감은 후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갑자기 강인이 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 란아...더 들어줘...힘들겠지만 부탁이야...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고 죽일 놈인진 잘 알아...하지만..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았어...”
“ 자..기..야...”
란은 같이, 아니 강인 대신에 자신이 무릎을 꿇고만 싶었다.
하지만....
“ ...그래서 휴가가 끝나고 온 날....”
“ .........”
란은 강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리 속으로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시험을 앞두고서 자신에게처럼 일시적으로 떨어진 사연...
그리고 휴가를 가서 생겼던 일들...
그 동안에 자신은 어떠했던가?
너무나 당연하게 조카와 육욕을 불태웠다.
강인은 갈등 속에서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자신은 조카의 손과 입 그리고 성기가 주는 쾌락에 미쳐있었다.
“ 결국에..내가 연이 씨를 그렇게 만든 거야....그래서 책임을 져야 해...
아니...솔직히 말할 게...너하고는 다르지만...또 다른 감정으로 사랑하고 있어...미안해...란아...
그런 희생까지 치른 연이 씨를 외면할 수는 없어....그렇다고 너를 포기하기도...정말 미안해...”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강인뿐만이 아니라 언니에게마저 위축이 돼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려 한 것이다.
책임감으로 언니를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길을 포기하려 했던 강인이나,
그런 강인을 제 길로 보내기 위해서 다른 남자에게 몸을 던져버린 언니....
완전히 그쳤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흘러나왔다.
이건 자책과 미안함 그리고 회한의 눈물이었다.
“ 란아...미안해...너를 아프게만 만들어서...
약속할게...절대로 널 외롭거나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할게...나를 떠나지만 말아줘...
그리고 언니...연이 씨도 지켜줄 수 있게 해줘...제발...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
“ 흑...강인 씨....”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막막했다.
란은 이미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남자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유를 대야 할까?
나는 조카에게 보지를 대주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란은 어쩌면 강인이면 이해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
그냥 자신도 모든 걸 털어놓아버리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일의 경중이 다른 것이었다.
별 수가 없었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척하는 수 밖에는....
“ 자기야....”
“ 란...아...”
강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정하게 부르는 란의 목소리에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말보다 눈빛으로도 모든 걸 알 수 있을 때가 많았다.
강인은 란이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 기뻐야 하는데도 실감이 나지 않는 탓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 약속할 수 있지? 자기가 말한 대로 나를 외롭지 않게..그리고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 그래...내 목숨을 걸고....”
“ 언니는? 언니는 어쩔 건데?”
“ ..그건...스스로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기 전까진 지켜주고 싶어..미안해...”
“ ...그래...믿을게...그 약속....”
“ 란아...고마워....정말 고마워...”
이제야 실감이 나면서 가슴이 감동으로 벅차 올랐다.
역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란은 운명의 반쪽이었다.
“ 그러면...내가 어떻게 해야 해?”
“ 그건...그냥 모른 척을 해주면 좋겠어...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서로가 알게 되어서 이야기를 하기 전까진 그러는 게...
솔직히 섣불리 아는 척을 했다가 연이 씨가 또다시 그런 극단적인 일을 할까 겁이 나...”
“ 휴...그래...맞아...”
란은 언니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질 줄을 알면서도 강인을 위해 다른 남자에게 안기다니...
그런 언니의 면모에 경악을 하면서도 강인의 말에는 동감을 했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안다는 걸 깨닫게 되면 이번엔 동생을 위해 어떤 일을 벌릴 지가 상상이 안 갔다.
어떻게 보면 형제인 자신이 먼저 언니를 챙겨야 하는데도 강인이 나서자
미안한 마음과 함께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사람이기에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 자기야...이제 그러지 말고 어서 일어나...보기 싫어....”
“ 으, 응....”
보기가 싫다기 보다는 미안해서였다.
강인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면 자신은 석고대죄를 해야 했다.
용서를 빌며 무릎을 꿇은 강인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너무나 괴로웠다.
“ 사랑해..란아...그리고 고마워..평생 갚을게...”
“ 나도 사랑해...자기야...”
그제야 침대 위로 올라온 강인이 키스를 해왔다.
란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면서 가슴이 떨려왔다.
아까는 얼마나 무서웠던가?
이 사람더러 죽어버리라니?
아무리 화가 났었다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뱉었을까?
그나마 그 화도 나중에 생각하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상처를 냈지만 그래도 이렇게 무사한 모습으로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는 강인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자 아래가 화끈거리면서 욕정이 강하게 몰려왔다.
비록 언니에게도 양보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이 남자는 내 거야...
“ 라, 란아?”
“ 하아~ 자기야...나를 안아줘..아니...내가 할게...자기는 그냥 누워 있어...아프니까...”
“ 하지만..너..조금이라도 자야 출근을 하지...”
“ 아니야...나 오늘은 쉴래...전화를 해서 월차를 낼 거야....자기랑 병원도 같이 가봐야 하고...
아니..그것보다도 지금 당장에 못 참겠어...자기 자지를 내 보지에다가 안 넣으면 미쳐버릴 거야...사랑해...”
“ 사랑해...란아...아름답고 착한 내 신부....”
“ 여보....”
강인은 자신의 하의를 벗겨내고는 성기를 입에 물고서 스스로 옷을 벗어 던지는 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기를 뿌리 채 뽑을 듯이 강하게 빨아들이는 란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드러났다.
그러자 마치 오줌이라도 싼 것처럼 물기가 번들거리는 음부가 골 사이로 비쳤다.
이제야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아니면 자신을 유혹하는 저 비밀의 정원 때문일까?
강인은 갑자기 밀려드는 갈증에 둥글게 쪼개진 엉덩이로 손을 뻗었다.
“ 아흑~”
“ 자, 자기야..아파?”
“ 아, 아니야..너무 좋아...계속해...”
“ 아앙~ 자기도 보지를 빨아줘...”
순간 어깨에 느껴지는 통증에 강인은 신음을 토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얼굴 위에다 올려준 란의 가랑이에서 풍겨 나오는 음란한 냄새의 근원을 혀로 더듬기 시작했다.
“ 휴~ 어떻게 해야 할까? 티를 안낼 수가 있을까?”
란은 집의 현관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결근을 하고는 강인과 함께 병원을 갔었다.
이빨 자국이 완연하게 보이는 상처를 보고 힐끔 자신을 쳐다보는 의사의 눈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히도 몇 바늘을 꿰맨 것 빼고는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자기가 맛있었냐고 소곤거리는 강인을 보기가 민망했다.
“ 에라~ 모르겠다...그냥 몸이 안 좋아서 조퇴를 했다 그러고 방에 들어가 자는 척을 해야지..뭐...”
란은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섰다.
“ 란...아..?”
“ 어, 언니?”
“ 꺄악~”
“ 어머머머...미, 미안해..언니...”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란은 멍해졌다.
욕실에서 막 나온 건지 알몸으로 거실에 서있는 언니가 보였던 것이다.
언니의 저렇게 적나라한 알몸을 본 게 언제였던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언니도 마찬가지였던지 잠시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란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돌아섰다가 안방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자신의 방으로 황급히 들어왔다.
“ 하아~ 놀래라....”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알몸은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불현듯 저 육체를 강인이 안았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심 자신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 아휴~ 그런데..언니도 미쳤어...다 큰 아들....아들? 민이?”
무심결에 중얼거리던 란은 갑자기 몸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언뜻 조카의 방문이 닫히는 것 같기도 했었다.
서, 설마?
란의 가슴은 한 가지 무서운 상상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아닐 거야...
하지만 점점 더 몸이 떨려오고만 있었다.
자신과 조카를 생각하면.....
그러자 문득 휴가 때 타서 보기 좋은 갈색을 띤 탓에 유달리 새하얗게 눈에 들어오던 언니의 하체가 떠올랐다.
쿵~
커다란 돌덩어리가 가슴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분명히 언니의 그곳은 자신처럼 한 올의 털도 없이 매끈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어쩌면 아까 순간적으로 의식을 못했지만 란은 언니의 알몸보다 자신처럼 면도가 된 음부에 놀랐던 것 같았다.
그, 그래...강인 씨..강인 씨가 면도를 시킨 걸 거야....맞아...
하, 하지만....자신 역시 강인이라기보다는 조카의 꼬임에 오히려 강인을 유도하지 않았던가?
란은 점점 더 무서워지고만 있었다.
이미 강인과 언니의 문제는 머리 속에서 까맣게 사라지고 없었다.
“ 미, 민아~?”
“ 으, 응...이모? 웬일이야? 이 시간에?”
“ 으~응...몸이 좀 안 좋아서 조퇴를 했어...”
“ 잠깐만...기다려...”
“ 아니야...열지마...한숨 잘까 봐...”
“ 응...알았어...이모...”
잠긴 조카의 방문 앞에서 나지막이 불러보면서 제발 대답이 없기를 바랬다.
그러나 왠지 당황한 듯한 조카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졌다.
언니는 조카가 집에 있는데도 수건 하나 가리지도 않고서 벌거벗은 채로 거실을 돌아다닌 것이었다.
란은 자신의 방문을 잠그고는 침대에 누워 머리 위로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