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상(愛傷)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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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아, 안녕하세요...”
“ ..란이는...몰라요...”
“ 네? 아~ 네...”
강인은 오전에 걸려온 전화를 무심결에 받았다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란의 큰 언니인 연의 전화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하고는 끊어버린 태도에 황당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 그...일..이 아니라...오늘 우리가 만나는 걸 모른다는 이야기에요...”
“ 네? 네...잘 알겠습니다...”
말하면서도 조금은 어색했던지 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자 강인은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가도 그냥 씁쓸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어쩌겠는가?...이건 감정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란이 몰래..핸드폰에서 전화번호를 찾은 것뿐이에요...행여나 다른 기대는 마세요...”
“ 제가..기대할 게 뭐가 있나요? 말씀하셨다시피...백수에다 사기꾼인데...”
그래도 사람이란 게 어쩔 수가 없는 걸까?
강인은 란의 애틋한 모습을 떠올리며 애써 억누르려던 마음이
계속 신경을 긁어대는 연의 삐딱한 말투에 결국에는 날카롭게 반응을 하고 말았다.
“ 죄,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그건 제가 사과를 할게요...”
순간 당황해서 사과를 하는 자신에게 연이 되려 미안해하자 강인은 더욱 허둥거렸다.
“ 아니..그럴 필요까지는...”
“ 미안해요...제가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닌데...”
“ 아...네...괜찮습니다..”
강인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의 기색이 보이는 연의 태도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 하지만..그거하고 란이 문제하고는 별개인 건 아시죠?...”
“ 네? 그러면...”
강인은 다시 바짝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 란이하고...절대..안 되는 건 강인 씨도 충분히 이해하죠?..”
“ 하지만...연이 씨..아니...제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지...”
“ 그냥 편한 대로 부르세요...어차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 같으니까...”
참으로 대하기가 힘든 여자였다.
저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 속에 어떻게 란과는 전혀 다른 저런 단단함이 숨어 있었던 걸까?
“ 연이 씨...이런 말..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저희는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그리고 행복하게 살 자신도...”
“ 그만!...미안해요...말을 잘라서...하지만 그건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어요...”
“ 연이 씨...”
저 눈빛이었다.
한 없이 맑으면서도 부드러운....
연은 빠져들 것만 같은 강인의 눈을 보면서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연 자신도 잘 알고는 있었다.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뱉기는 했지만 절대로 사기꾼도 그리고 나쁜 사람도 아니라는 걸...
아니 오히려 굉장히 진지하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화가 났다.
“ 강인 씨 혼자만의 잘못도 아니고....운명이 그런 걸 어떡하겠어요?...
원래는 두 사람을 떼어놓기 위해서 당장에 란이를 고향으로 내려 보낼 생각까지 했었어요...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그렇다고 란이에게는 말을 할 수가 없는 문제잖아요?
강인 씨가 란이와 자연스럽게 헤어져주세요....그때까지는 제가 그냥 모른 척을 할 테니까...”
“ 연이 씨...그건....”
처음의 단호했던 태도에서 이제는 애원하다시피 절절하게 말하는 연의 모습에
강인은 머리 속에서 맴돌던 많은 말들을 그냥 삼킬 수 밖에 없었다.
“ 그냥..그냥...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으로...그렇게 추억으로만 남겨줘요..제발...
제가 이렇게 부탁을 할게요...아시잖아요?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건....”
“ ...저...담배 한대만 필게요...”
“ 네..전 괜찮으니까...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
연은 담배를 물고서 길게 빨아들였다가 다시 내뱉으며 깊은 시름에 빠진 강인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울적해졌다.
아들의 말처럼 자신은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다니는 것만 같아 더욱 그랬다.
언제부터 이런 악녀의 모습을 가지게 된 걸까?
“ 연이 씨...”
“ 네? 네..말씀하세요....”
그렇게 강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며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러자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감정에 또다시 슬그머니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누구한테 화를 낼까?
앞에 앉은 강인한테? 아니면 동생인 란한테?...
아니었다, 정말로 꼭 화를 내야만 한다면 그건 바로 자신한테 해야 옳은 일이었다.
그런 복잡한 심경 속에 연은 입 안이 바짝바짝 타는 느낌을 받으면서 강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정말, 정말로 안 될까요? 그냥 영원히 묻어둘 수는...”
“ 아니요..안돼요...그건...미안해요....”
연의 단호한 대답에 강인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담배를 비벼 껐다.
“ 후~...그렇군요...도저히 안 되는 일이라면.....”
“ .....”
“ 솔직히...자신이 없어요...란이를...제 운명이라고까지 생각했으니까...그리고 그건 란이도 마찬가지이고...”
연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 하아~ 이것도 운명이란 걸까요?...왜 하필이면 제가 그때...”
“ 강인 씨...”
“ 죄송해요...저도 모르게...연이 씨의 입장은 충분히 알았습니다...
모두가 그나마 덜 힘 들려면 그게 옳겠죠...
말씀하신 대로 란이와는 헤어지도록 최대한 노력을 할게요...
이 정도 밖에는 제가 약속을 드릴 수 없군요...더 이상을 자신한다면 거짓말이 될 테니까..”
“ 믿을게요...정말 고마워요...”
연은 강인의 말에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인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남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아마 진심으로 노력을 할 게 분명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저 맑고도 슬픈 눈빛을 못 믿는다면 어쩌면 누구도 믿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연은 갑자기 울음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 미안해요..정말로 미안해요...꼭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기를 빌게요...염치없는 말이지만...”
“ 아, 아닙니다...고맙습니다......쿡~”
힘들게 말을 뱉다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는 강인의 모습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울음을 참는 걸까?
덩치가 커다란 저 남자가?...그렇게나 동생을 사랑하고 있었던 걸까?
연은 자신도 모르게 강인의 머리로 손이 나가려는 걸 억지로 참고서 일어섰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울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죄송해요...먼저 일어설게요...”
“ 네...배웅을 못해드려서...죄송해요...”
“ 아니에요...그냥 앉아계세요...”
연은 도망을 치듯이 허겁지겁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로 울음을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연은 자신에 대한 모멸감과 비참한 감정을 느끼면서 뛰다시피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 어딜 가는 거야?”
“ 호호..잔말 말고 따라오기나 해...너 오늘 이 언니 덕에 호강하는 줄이나 알고...”
연은 고등학교 동창모임에 갔다가 간만에 조금 과음을 했다.
남편이 갑자기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내려가버리고 나자 그 빈 공간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일찍 결혼을 한 탓에 자신의 나이에 비해 장성한 아들이 있을 만큼 오랜 결혼생활을 했지만,
다정다감한 남편과는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여전히 즐겁게 살고 있었기에 더 그랬다.
처음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주말마다 올라오던 남편도 두어 달이 지나자 드문드문해지더니,
이제는 거의 두 달이 되어가도록 보지를 못하게 되자 매사에 괜히 짜증이 나던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급하게 마시다 보니 어느새 제법 취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연의 그런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단짝 친구 나영이가
스트레스를 풀게 해준다며 자리가 파하자 자신을 끌고 어디론가 향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제법 날라리였지만 그래도 성격이 화통 해서 절친했던 나영은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뒤늦게 결혼을 하더니 결국에는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했다.
표나게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딱히 불만이 있을만한 결혼생활이 아니었는데도
집에서 살림만 하고 지내기에는 활동적인 그 성격이 도저히 버텨내지를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작은 옷 가게를 열어 이제는 제법 자리를 잡고서 원하던 대로 아주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연도 가끔씩은 나영의 그 자유로운 삶을 상상해보고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때 잠시뿐 쉽게 잊어버리고는 했었기에 부러워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행복한 가정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나영의 그런 생활을 조금은 엿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뭔가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데도 못이기는 척하고 따라가고만 있었다.
“ 에~ 나이트? 뭐야? 이런 촌구석까지 찾아와서는? 보니까 딥다 후진 것 같은데...”
“ 어머~? 얘 봐라? 아주 세게 나오는데? 쿡쿡~ 요조숙녀인 척하더니 은근히 기대를 했단 말이지?”
“ 흥~ 내가 집에서 식순이나 한다고 아주~ 눈하고 귀까지 닫고 사는 줄 알아? 알건 다 안다고...왜 이래?”
“ 호오~ 좋아~..호호호..걱정은 붙들어 매셔...네가 원하는 대로 아주 화끈하게 놀게 해줄 테니까..”
연은 막상 큰소리를 쳐놓고는 음흉하게 들리는 나영의 낮은 목소리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이제라도 그만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술기운인지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 호호호..너 솔직히 말해...”
“ 뭘?..”
“ 요즘..죽겠지? 네 서방님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몸살이 날 지경이지?”
“ 뭐, 뭐가?”
룸에다 자리를 잡고는 술잔을 채운 다음에 옆으로 온 나영이
은근히 묻는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지만 모른 척하고 시치미를 떼었다.
“ 이게? 우리 사이에 내숭을 떨기는? 뭐긴 뭐야? 이거지...”
“ 꺅~ 미, 미쳤어...저리 가...”
“ 깔깔깔~~ 아주 뜨끈뜨끈하게 열이 나는데? 잔뜩 꼴렸지?”
갑자기 자신의 가랑이를 콱 쥐어오는 나영의 손길에 연은 기겁을 하고는 후다닥 떨어졌다.
사실은 이미 나영을 따라 나설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뭔가를 기대한 건지
룸에 앉고부터 아래가 계속 움찔거리면서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 야~ 야~ 우리 나이에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이야? 말해봐..많이 쌓였지? 괜히 짜증도 나고?”
“ ..치~ 꼭 그렇게 대놓고 말을 해야 해? 이 년아~..”
“ 킥킥킥...우리 얌전이가 오늘 드디어 망가지는구나?...”
화가 나면 입이 거칠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멀쩡한 정신에 쌍소리를 하기는 처음인 연은,
막상 뱉어놓고 보니까 왠지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호호...이제는 아주 색기까지 좔좔 흘리네?”
“ 지랄? 장난은 그만하고..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연은 이왕 나가는 김에 대차게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쩌면 한번쯤은 이런 흐트러진 행동을 하고 싶었던 것도 같았다.
“ 햐~ 대단한데? 알았어...뭐..너도 알건 다 안다며?”
“ 그래..그런데?”
“ 그런데는 무슨 그런데야?
네가 아주 몸살이 날 것 같아서 친구된 도리로 새끈한 영계를 하나 붙여주려고 데리고 왔지...
너도 알지? 나이트에서 하는 부킹...”
“ 으, 응...물론..당연하지...”
연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뚫린 게 귀고 눈인데...
온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모른다면 그건 정말 저 어디 두메산골에서 살다 온 사람일거다.
나이트, 부킹, 그리고 불장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나영의 입을 통해 직접 듣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마치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아랫도리가 움찔거리고 물기가 점점 많이 배여 나오고 있었다.
‘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러다가 정말 다른 남자랑 그렇게 되면 어쩌지?
아니..그냥 모른 척하고 나영이가 하자는 대로 해봐? 남들은 그러고도 잘만 사는데?
란이만 봐도 그래...남자만 해도 벌써 몇 번이나 바뀐 것 같던데..
그래도 여기저기 좋은 자리에서 선만 잘 들어오고..
나만 바보처럼 살았던 걸까? 잠깐 스트레스를 푼다고 생각을 하면?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미쳤나 봐?...’
“ 그래서 말이야...야~!! 듣고 있어?”
“ 응..계속해...”
“ 이게 벌써 몸이 달아서 정신이 없구나? 킥킥...급하긴 급했나 보다?”
“ 까불지 말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
연은 잠시 딴 생각을 하다가 나영의 말에 찔끔했지만 딱 잡아떼면서 재촉을 했다.
그냥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다가 자신은 나중에 슬쩍 빠지면 별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을 하면서...
뭐..젊은 남자와 춤을 추고 슬그머니 몸을 비비는 정도야 상관이 없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다시 마음이 편해지면서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 여기 근처에 뭐가 있는지 알아?”
“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촌 동네에...”
“ 호호..실망을 하지마..아무렴 내가 널 그런 데로 데리고 왔겠어?”
“ 그러면 뭐 특별한 거라도 있는 거야?..”
“ 물론이지...근처에 사법연수원이 있어...”
“ 응? 사법연수원? 그게 뭐 어째서?”
연은 이 후진 나이트와 사법연수원이 무슨 관계인지 전혀 감이 안 왔다.
“ 잘 들어봐...여기 연수생들이 어떤 사람들이니?”
“ 그거야..사법고시를 합격하고 연수를 받는 사람들..아니니?”
“ 맞아..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주말이 되면 외출을 나온단 말이야..
그리고 이 근처에서는 마땅히 갈 데도 없어서 술을 한잔 하고는 대부분 이리로 몰려와...”
“ 흥~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 골샌님들이 뭐가 좋아?
아닌 말로 우리가 처녀라면 하나를 꽉 물어서 시집이라도 간다지만...”
“ 킥킥~ 그게 아니야...이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절대로 안 되는 사람들이지?”
“ 당연하지..그거야...”
“ 그리고 우리 같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지...그러니까 유부녀들...”
“ 응? 그, 그러면?”
“ 그래..맞아...쉽게 말하면 절대로 비밀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끼리야...
그래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연수생들과 마음 놓고 바람을 피우고...
연수생들은 그 사람들 대로 자칫 발목을 잡힐 염려가 없는 유부녀라면 안심이고..오케이?”
연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들어올 때 이런 후진 곳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나 하고 의아하긴 했었다.
특히나 여자들은 대부분 나이들이 좀 있어 보였다.
“ 호호..유부녀들 사이에 은근히 소문이 퍼져나가서 주말이면 꽉 차...멀리 서울서 원정을 온다니까..”
“ 하지만 연수생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 그러니까 잘 살펴야지..일단은 양복은 절대로 금물..”
“ 왜?...”
“ 소문을 듣고 타지에서 건수를 찾아온 남자들이거든? 괜히 잘못하면 골치가 아파...
그러니까 그냥 편한 차림에 운동화 같은 그런 남자들을 찾는 거야...
그리고 잘 보면 표가 나...아무래도 공부만 한 사람들이라서 뭔가 어색하거든? 킥킥...
재미는 조금 없어도 안전한 게 최고지..그리고 그 동안에 참았던 게 많아서인지 무지 밝혀...밤새...킥킥...”
“ 넌 벌써 꽤나 재미를 봤었던 모양이네?”
“ 호호..당연하지..그러니까 널 데리고 왔지...나만 믿어..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연은 나영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처음과는 달리 살며시 기우는 걸 느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말대로라면 확실히 안전하게 비밀이 지켜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참 희한하게도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았다.
누가 이런 걸 생각해냈을까?
“ 안녕하세요..강인입니다..반갑습니다...”
“ 네, 네...전 연..희라고 해요...”
연은 얼결에 자신의 이름을 살짝 바꾸어서 대답을 했다.
세상일은 알 수가 없는 거라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조심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잠시 앉아 기다리라면서 룸을 나간 나영이 한참 후에 두 명의 남자와 같이 돌아왔다.
그리고 오면서 이미 약속이 되었던지 자연스럽게 한 남자가 곁에 앉아 인사를 했다.
언뜻 보아도 강인이란 이 남자가 훨씬 호감이 가는 사람이란 걸 알 수가 있어서
나영이 자신을 위해서 일부러 양보한 거라는 생각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자신은 적당한 선에서 빠질 마음이었기에 미리 나영에게 말을 안 해준 게 조금 미안했다.
“ 눈이 참 맑네요?”
“ 네? 아...고마워요...”
연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도 몇 번 남자들과 잠깐 연애도 해보았었지만,
보통 자신의 미모를 칭찬하거나 가벼운 농담으로 웃기려고 애를 쓰곤 했지
이렇게 너무나 잔잔하고 진지하게 말을 꺼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연 또한 이 남자의 눈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뜨끔했다.
그랬다.
잠깐 마주쳤을 뿐인데도 남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맑으면서도 조금 슬퍼 보이는 눈빛에
왠지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면서 무릎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 이라죠?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연희 씨의 눈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투명해서 저까지 순수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랄까요?
후후..우습죠? 이런 데 와서는 분위기를 깨는 소리나 하고...죄송해요...”
“ 아, 아니에요....”
왜 이럴까?
너무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입가에서부터 파문이 일듯이 얼굴전체로 번져나가는 강인의 미소에
순간적으로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끼면서 연은 자신의 아래가 찡하고 울리는 걸 깨달았다.
이, 이건 부정할 수가 없는 욕정이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그리고 왠지 자신의 이름을 거짓으로 알려주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 잠시라도 모든 걸 잊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고 온 건데 저도 모르게 이러고 있었군요..
자..우리 건배를 한 다음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춤을 추러 나가볼까요?”
“ 네...”
자신에게 술을 따라주는 강인의 가늘면서도 긴, 섬세하게 보이는 손가락이 아프게 눈에 박혀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직 몇 마디를 나누어 본 것도 아닌데다가 작은 접촉마저도 없었는데,
저 감각적으로 보이는 손길이 자신의 몸을 부드럽게 더듬는 촉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숨을 막히게 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남자의 손을 보면서 애무를 상상하는 자체가 너무나 생소한 일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죄송해요...하지만 일부러 숨기거나 그러진 않을게요...
전 그냥 속물인 남자일 뿐이고, 연희 씨가 너무나 매력적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연희 씨가 불편하다면 그냥 자리로 돌아갈까요?”
“ 아, 아니에요...저는...괜찮아요...아니 저한테 그렇게 느낀다니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요..후후..”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몸짓으로 빠른 음악에 맞추어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다가
자신만이 그런 게 아니라 상대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는 두 사람은 동시에 웃고 말았다.
그러자 뻣뻣하던 몸에서 긴장이 사라지고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는 상관하지 않고서
둘만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며 정말로 분위기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정신 없이 시간이 흘렀던지 조용한 음악소리와 함께 번쩍이던 불빛이 은은하게 바뀌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틈을 타 자신을 당기는 강인의 품에 안겼을 때는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옷 너머로 화끈거리며 열기를 토하는 단단한 남자의 육체와 함께
땀 냄새와 섞여 희미하게 풍겨오는 상큼한 스킨로션의 향이
너무나 기분 좋게 느껴져 연은 자신도 모르게 폐부로 깊숙이 빨아들였다.
언제 그렇게 되었을까? 아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았다.
연은 강인의 목에다 두 팔을 두르고는
자신의 허리를 감은 팔뚝의 강철 같은 근육을 느끼면서 하체를 한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와 엉덩이의 경계선에 놓인 강인의 손이 주저하듯이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짜릿한 감촉에
자꾸만 풀어지려는 자신의 다리에다가 힘을 주면서 더욱더 강인에게 매달렸다.
아까 상상했던 것처럼 혹시 악기연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만큼
너무나 섬세하게 움직이는 강인의 손은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갈망과 주저함 속에서도 너무 무례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서운하게 만들지도 않겠다는 따스한 배려가 머리 속에 그려지듯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은 자신의 아랫배를 찌르는 단단한 성기....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달리 확연하게 물이 왈칵하고 쏟아지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런 걸 알아챘을까? 아니면 그냥 미안했던 걸까?
낮게 귓가에 속삭이는 강인의 목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뜨거운 입김에
연은 자신도 모르게 쾌감의 신음소리가 나오려는 걸 참으며 오히려 목을 더 강하게 안았다.
“ 가, 강인 씨?”
“ 연희 씨...키스를 하고 싶어요..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 하~ 강인 씨...”
아직도 무대 위에 남아있는 나영과 파트너를 뒤로 하고 룸으로 먼저 들어오자마자
강인이 연을 문에다 밀어 부치면서 열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연의 입술 위로 겹쳐지는 강인의 입술...
연은 뭉클하게 들어오는 살덩이를 느끼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정신 없이 빨아들이면서 비음을 흘려내고 말았다.
“ 아흐흑~ 그, 그만...제발 강인 씨...”
“ 연희 씨...미안해요...”
강인의 뒷머리를 안고서 타액을 삼키느라 정신이 없다가
자신의 젖가슴을 쥐면서 가랑이 사이를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무릎에
연은 머리 속이 하얘지는 쾌감으로 비명을 지르고서는 급하게 밀어냈다.
“ 아, 아니에요....”
갑자기 어색해지는 분위기...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 저도 한잔 줄래요?”
“ 연희 씨?”
연은 묵묵히 자신의 잔에다 술을 따르는 강인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 미안해요..싫다거나 불쾌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그냥 저도 모르게 당황해서...”
“ 연희 씨...”
왜일까? 이 사람의 표정 하나에까지 이렇게 조바심이 나고 안타까운 건...
연은 풀이 죽은 듯한 강인의 모습에 가슴이 찡하고 울려왔다.
“ 보세요...제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 연희 씨...”
무슨 용기가 난 걸까?
연은 강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젖가슴에다 올려주었다.
그러자 다시 키스를 해오면서 이제는 거침없이 거침 없이 주무르는 손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자신의 허벅지에 올라와서 망설이는 손에 다리를 살며시 열어주자 치마 속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남편 이외에는 처음으로 닿는 남자의 손이 이미 흠뻑 젖어버린 자신의 팬티를 더듬고서
연약한 꽃잎까지 마구 헤치는데도 연은 부끄러움보다는 타는 갈증으로 안달하고 있었다.
이 순간에는 남편이나 아들도 그리고 친구인 나영마저도 전혀 떠오르지가 않았다.
“ 하아~ 하아~ 우리...나가요...딴 데로 가요...”
“ 알았어요...연희 씨...”
팬티 위에서 음부를 탐색하던 손이 속으로 들어와 음모를 스치는 순간 연은 손목을 붙들고서 말했다.
그리고는 먼저 간다는 짧은 메모만을 남기고서 나영이 오기 전에 두 사람은 그곳을 빠져 나왔다.
터질 듯한 몸으로 인해서 참기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왠지 나영과 부딪치면 자신의 마음이 변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니, 틀림없이 후회를 하게 되겠지만 지금만큼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
“ 가, 강인 씨..먼저 씻고요...엉망이에요...”
“ 아니..이대로가 좋아요...잠시도 못 기다리겠어요...”
“ 아흑~ 강인 씨...”
모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키스를 하더니 화장실로 향하려는 자신을
뒤에서 안고는 젖가슴을 쥐어오는 손길에 연은 꿈틀거리며 비음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다시 자신을 돌려세우고는 옷을 벗겨나가는 강인의 손길에 어느새 동조하고 있었다.
“ 너무 예뻐요...”
“ 가, 강인 씨..학~”
껍질을 훌훌 벗겨버리고는 무릎을 꿇고서 흠뻑 젖어버린 팬티를 끌어내리는 강인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면서 다리를 교대로 살짝 들어주었던 연은,
강인이 그러고도 주저앉아서 멍하니 자신의 하체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묻어오자 비틀거리면서 강인의 어깨를 짚었다.
땀과 애액으로 흠뻑 젖은 자신의 음부를 창피해할 새도 없이
뜨거운 숨결과 함께 꽃잎을 핥는 혀에 비명을 토하면서 강인의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파묻었다.
“ 아아아~ 아앙~ 강인 씨..그만~ 아흑~ 그...그만...아아아~”
이제는 침대에다 눕히고서는 자신의 허벅지를 넓게 벌려 그 사이에 엎드리더니,
음부의 구석구석을 핥다가 거침 없이 질 속으로까지 파고드는 뭉클한 살덩어리에
연은 허리를 허공으로 띄우고서 깃발이 날리듯이 휘젓다가 비명을 길게 내지르며 늘어졌다.
그리고는 푸드득 경련을 일으키며 입가에다 반짝이는 액체를 잔뜩 묻힌 채로
하나씩 옷을 벗어나가면서 드러나는 강인의 근육질 몸을 바라보았다.
‘ 하악~ 저게....’
연은 남편 이외에는 처음으로 보는 남자의 성기에 숨이 막혀왔다.
징그럽게 혈관이 불끈 솟아서는 자신이 매달려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처럼
튼튼하게만 보이는 굵고도 검은 기둥이 하늘을 항해 치솟아있었다.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던 음부에서의 열기가 다시 화끈하게 피어 올랐다.
“ 하아~ 하아~ “
“ 연희 씨...저도 빨아줄래요?”
침대 위로 다시 올라온 강인의 하체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가져간 연에게 강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남편에게도 드물게 해주는 것인데도 연은 어색하다거나 망설이는 마음도 없이 자연스럽게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귀두의 끝에서 반짝이는 물기가 왠지 눈물방울 같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살며시 혀를 내밀어 핥아보았다.
희미한 냄새와 함께 입으로 밀려드는 끈적한 액체...
연이 이미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단단하고도 뜨거운 그 감촉을 입안의 구석구석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때 몸을 뒤로 눕히면서 허리를 당기는 강인의 손길에
연은 성기를 입에 문채로 몸을 빙글 돌려서 강인의 얼굴 위에다 자신의 가랑이를 내려놓았다.
“ 아하학~ 가, 강인 씨...”
“ 후~ 네? 왜요?”
“ 아, 아니에요...그대로...계속 해요....아아~”
음부로 밀려드는 쾌감에 숨이 막혀 몇 번이나 도중에 성기를 입에서 빼내고 진저리를 치다가 다시 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방안의 풍경이 뒤집히는 어지러움과 함께 자신의 위에 올라탄 강인의 탄탄한 몸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정신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아래를 뻐근하게 만들면서 파고드는,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하지만 한편으론 생경하기만 한 성기의 촉감에 화들짝 놀라 강인을 불렀다.
그러자 움직임을 멈추고서 내려다보는 강인의 모습에 연은 잠시 망설였다.
귀두가 살짝 파고든 상태...지금이라도 물러설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갈등은 아주 짧았다.
연은 강인을 밀어내는 대신에 눈을 감으면서 목을 끌어안는 걸로 망설임을 날려버렸다.
“ 아아앙~ 좋아...더, 더....아아~”
그냥 기분이 그래서일까?
남편의 것보다 훨씬 크고 단단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뜨거움이 주는 쾌감도...
연은 강인의 성기가 끝까지 박혀 드는 순간에 이미 작게 절정을 느끼면서 그 다음부터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질 속에서 그 동안 잠을 자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깨어나서 비명을 지르고
온몸의 신경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참을 수 없는 쾌감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 헉헉~ 나올 것 같아요...밖에다..해야겠죠?...”
“ 아아~ 빼지 말아요..괜찮으니까...그냥...그냥...아흑~”
연은 아들을 낳고 난 다음에 난관수술을 한 게 지금처럼 다행스럽게 생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냥 아이 하나만 잘 키우자며 자신에게 수술을 권했던 남편에게
새삼스럽게 고마움과 함께 이런 이율배반적인 마음으로 인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순간일 뿐 지금은 잠시라도 강인의 몸을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뜨거운 정액을 넘쳐나도록 자신의 자궁에다 가득 받아들이고 싶은 본능만이 있었다.
“ 아앙~ 뜨거워...아아아~ 사랑해요..아아앙~”
속에서 크게 부푸는 느낌이 들더니 세차게 부딪쳐오는 물줄기에
연은 비명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사랑한다는 말을 뱉고는 화들짝 놀랐지만,
연이어 흘러 들어오는 뜨거운 느낌에 재빨리 그런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음부를 강인의 치골에다 밀어 부치면서 조금이라도 더 짜내려는 듯이 무의식 중에 질을 조여댔다.
“ 집이 어디세요? 서울인가요?”
“ 네? 네...”
연은 모텔을 나와서 강인과 팔짱을 끼고 걷다가 화들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의 자신의 치태를 떠올리면서 차가운 새벽공기와는 반대로 얼굴을 화끈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 속에 그렇게나 많은 수분이 숨어 있었는지,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빨고 박아달라는 말까지 하며 애원하는 그런 음탕함을 가졌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었다.
심지어는 마지막에 욕실에서 같이 씻으면서 자청해 강인의 성기를 빨다가
그게 다시 서는 걸 보자 욕실 벽을 짚고 엉덩이를 뒤로 내밀며 다시 원하기까지 했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욱 타오르게 만들었던 걸까?
“ 그러면 저하고 일단 같이 타고 서울까지 가요...그리고 적당한 데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태워드릴게요..”
“ 네? 그러면 강인 씨는 여기까지 어떻게 다시 오려고요? 지금 시간이...”
“ 하하...저도 집이 서울이에요...”
“ 네? 여기서 연수를 받는 게 아니었어요?”
연은 그 순간에 깜작 놀라면서 자신이 실수를 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 아~ 오해를 하셨군요...아까 그 친구가 연수를 받고 있는 거고 저는 친구를 만나러 온 거에요..
하..하기야...어쩌면 저도 여기서 지내고 있었을 지도....”
“ 응?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연은 걱정이 되면서도 마지막 말에 궁금해졌다.
“ 하하..그게...그 친구랑 같이 공부를 했었는데...나란히 1차가 되었다가...
그 녀석은 2차가 되고 전 떨어졌죠...모르죠..운이 좋으면 저도 내년엔 거기에 있을지도...”
“ 네..그랬군요...힘 내세요...분명히 잘 될 거에요..믿어요...”
“ 고마워요..연희 씨...”
“ 뭘요..흡~”
연은 그제야 다시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면 크게 걱정을 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빈말이 아니라 정말 내년에는 강인이 합격을 할 것 같다는 여자 특유의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다시 강인이 키스를 해오자 길거리라서 조금 신경이 쓰이면서도
새벽이라 사람이 없는데다가 서울과 떨어진 곳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아니, 그런 것보다는 이 남자의 키스가 너무나 좋았다.
영영 매달리고만 싶다는 감정이 순간적으로 들만큼...
“ 조심해서 들어가세요...바래다 드리고 싶지만...그러지 않는 게 낫겠죠?”
서울로 와서는 다시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에 서있는 중에
강인이 뱉은 말에 연은 안심이 되면서도 너무나 안타까웠다.
맑으면서도 슬픈 눈을 가진 남자...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이고 그러면서도 너무나 배려가 깊은 남자...
남편에 대해서 불만 같은 게 전혀 없이 행복하다고만 생각해 왔는데
지금 이 순간에 밀려드는 허전함을 감당하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 저..강인 씨..사실은 제 이름은 연희가 아니라...”
“ 괜찮아요...말하지 마세요...눈치를 채고 있었으니까..가정이 있죠? 그것도 아주 행복한...
처음에 연희 씨...그냥 이렇게 부를게요...앞으로도 그 이름으로 추억을 할 테니까...
연희 씨의 눈을 보면서 느꼈어요..참 따뜻한 사람이구나..그리고 그런 따뜻함 속에서 살고 있겠구나..하고...
이게 뭔지 아세요?”
“ 그..게 뭐에요?
연은 아련한 아픔 속에서도 강인이 내민 손바닥 위의 구겨진 종이를 보았다.
“ 제 전화번호에요...아까 적어두었다가 그냥 구겨버렸어요...
연희 씨를 너무나 붙들고는 싶은데 제 욕심으로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아니까...
그런데 지금 다시 연희 씨가 제게 그런 틈을 보여주면..전 당신에게 매달리게 될지도 몰라요..
그러면 연희 씨의 그 따뜻한 보금자리는 위협을 받게 되겠죠...
사실...시험이 떨어지고 난 다음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친구를 축하해줘야 하는데 같이 공부를 하다가 성공한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게...휴~ 참 못난 놈이죠?
“ 아니에요...강인 씨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에요...”
연은 마음이 찡해졌다.
“ 하하하..그래도 다행이에요...오늘 이렇게 천사를 만나서 치료가 다 되었으니까..
이제는 정말로 힘을 내서 다시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고마워요...그리고 추억 속에서 연희 씨를 사랑할게요...그 정돈 허락해주겠죠...”
“ 강인..씨...”
“ 택시가 왔네요...행복하세요...안녕...연희 씨...사랑해요...”
“ 강인...씨...”
연은 자신을 택시에다 밀어놓고서 문을 닫으며 작게 속삭이는 강인의 목소리에 그만 눈물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 그래...이건 불륜이 아니야..그냥...짧게 아름다운 꿈을 꾼 거야...사랑해요...강인 씨...저도 간직할게요..’
연은 겨우 행선지만 말하고서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강인과 자신은 전생에 어떤 인연이었을까?
얼마나 깊은 인연이었기에 이 짧은 만남에도 이렇게 자신을 온통 흔들어 버린 걸까?
강인의 모습은 이미 연의 가슴에 깊이 남아있었다.
어쩌면 남편보다도 더 자신의 마음을 가져가 버린 것도 같았다.
“ 흐흐흑~ 흑흑....”
연은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을 지우다가 지난 겨울의 추억을 생각하고는 눈물을 쏟아냈다.
아까부터 참았던 울음이 결국에는 터져버렸다.
그 남자의 슬픈 눈에 그렇게나 마음을 아려했으면서도
결국에는 자신이 못질을 하고는 난도질까지 해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냉정하게 대하리라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아침부터 정성을 들여서 화장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만 느껴졌다.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그 동안에 란에게 모질게 대했던 것도 결국 강인에 대한 그리움을 아닌 척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둘을 갈라놓으려 하는 이유가 자신과 강인의 관계 때문이라는 것도
너무나 그럴싸한 핑계일 뿐 사실은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이었다.
“ 흑흑흑...난...난...정말 나쁜 여자야....흑흑....강인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