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4-친구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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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를 제가 했죠? 살면서 저는 참으로 여러 친구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촌 바닥에서 자랐지만 그 친구들 지금 모두 나름대로 성공해 잘 살고 있습니다. 한 두달에 한 번씩 모임도 갖고 있지요. 이렇게 좋은 친구를 가졌다는 것이 지금도 제 큰 자랑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친구들 얘기부터 해야겠습니다.
제가 중학을 들어가면서 시 가까이 이사한 것은 제가 학교 다니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아버지가 미군 부대를 그만두면서 군 부대 근처의 촌에서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처음 미군 부대에서 목수로 일을 했습니다만, 오래 근무하는 동안 신임을 얻었는지 나중엔 PX 일도 거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때가 그나마 좋은 시절이었고 아버지가 부대를 나와서는 제대로 일이 풀리는 것이 없었습니다. P시 가까이 이사한 것도 도시 근처에 가야 그나마 아버지의 일거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퇴직 후 잠깐 많지도 않은 일을 맡아 하다가 아버지가 건물 신축 현장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치셨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 갔고 그 병원이 친구 아버지가 하시는 병원이었습니다. 그 친구 제 중학 동창이었죠. 당시까지는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이름이 규환, 박규환으로 고등학교는 서울로 유학 간다고 따로 공부하는 녀석이었습니다. 성적은 좋았던 것 같으나 같은 반이 아니라서 잘 몰랐습니다.
응급실에서 처음 뵌 규환이의 아버님은 제가 보기에도 전형적인 의사 그리고 신사였습니다. 저희가 어려운 처지라는 것을 아시고는 정말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규환이 아버님은 그 지역에서 아주 유명하신 분으로 국회의원 출마도 하셨습니다. 당선 되지는 못했지만, 그 후로 정치에는 관심을 끊고 지역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죠. 엄마가 미제 물건 장사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었을 때, 무마해 주신 것도 그분이셨습니다. 그때 다친 후유증으로 아버지는 목수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자 매일 술타령이었고, 거기다가 여자까지 생기셨죠. 어느 날 거짓말처럼 주무시다가 그대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생계가 막연해진 엄마가 처음 P시 재래시장 뒤 켠에 노점으로 처음 자리 잡을 때도, 시장 관리인과 시장 주먹들에게 좋게 얘기해 주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대단 했을 겁니다. 시장이란 곳이 작은 노점자리 하나에도 어마어마한 권리금이 붙고, 동네 깡패까지 그런 일에 관여한다는 것은 한참 후 제가 커서야 알았습니다. 그런 어려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이 규환이 아버님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저는 P시의 고등학교를 들어갔지만 규환이는 서울의 소위 명문고로 진학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서 규환이는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일학년 마치고 그는 다시 P시 제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습니다. 서울에서 퇴학당할 일을 저질렀는데 전학 형식으로 돌아온 것이라 하더군요. 돌아와서도 그는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학교에 잘 나오지도 않았고 나와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말없는 애가 되어 있었습니다.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는 얘기까지 있었습니다.
그런 규환이를 위해서 저를 같이 집에서 지내게 한 것이 그의 아버님이었습니다. 규환이는 서울에서 학교 다니며 우연히, 그때도 지금도 결코 그런 애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우연히 학교 패싸움에 말려들었고, 그 중 한 학생이 죽었던 모양입니다. 나중에 맞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특이 체질이라고 부검 결과가 나왔지만(이런 경우가 의학적으로 실제 있습니다.), 그 사건에 연관되었던 규환이에게 정신적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는 전학 왔을 때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그가 정신병이 생겼다고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그는 나와 같이 지내며 많이 좋아졌습니다. 첫 해 대학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는 그가 원하는 미술대학에 입학했고, 그의 아버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지금 그는 그 대학 교수로 있습니다.
규환이란 녀석, 참 좋은 놈입니다. 젊었을 때는 바람도 많이 피우더니, 저도 그 덕 좀 봤고 재미난 얘기도 많습니다만.......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은 좀 조용해진 것 같습니다. 제 아내 때문은 아닌 것 같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 지, 아님 기력이 다한 것인지........ㅎㅎ
지금은 중견 작가로 미술계에서 주목하는 작가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은 별로 제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좀 어둡고 음산합니다. 간혹 오싹하는 냉정함도 보이고요. 병원 로비 장식용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미술관에서나 대접 받는 그림이죠. 그것은 어렸을 때 가졌던 그의 어두운 추억 때문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만, 하여간 요즘 그런 그림이 인기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규환이 아버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은 규환이도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가 따라 주지 않았죠. 하지만 대신 제가 의사가 되었습니다. 아버님의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아 제가 의사가 되었고, 또 지금 아버님이 하시던 병원을 제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병원의 봉급쟁이 의사이기도 하고, 또 한편 오너 원장이기도 합니다. 일부 지분을 갖고 있거든요. 나머지 지분은 규환이의 몫이지만 그는 병원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처음 이 병원에 올 때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동안 가뜩이나 많은 도움을 받아, 주변의 시선이 곱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제 딴에는 규환이 아버님을 진심으로 친 아버지 이상 존경하고 따랐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그게 꼭 좋게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규환이는 뜻이 강경했습니다. 저를 거의 떠밀어 댔습니다. 자기는 자기 아버지를 비롯한 자기 가족에 대한 제 마음을 진실로 믿고 있으며 더구나 ‘자긴 의사도 아니고 병원경영에는 관심조차 없다. 네가 이 병원이 마땅치 않아 맡지 않겠다면 자기는 병원을 팔아 정리할 수밖에 없다. 대장암 말기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님께 아버님이 키우신 이 지역 유일한 병원의 미래를 보여드리는 것이, 정말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면 이 병원을 맡아 운영하는 것이 네가 할 일이다......’ 이런 식으로 저를 설득 시켰습니다. 저는 그 당시 미국에 1, 2년 갔다 와서 학교에 계속 남을 생각이었습니다만, 결국 그의 설득에 넘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잘 된 일이기도 하죠. 학교에 남아 의대 교수해봐야 수입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어렵게 사신 엄마를 잘 모시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는 정도입니다. 제가 운영을 맡을 당시는 전문과가 외과 내과 산부인과뿐이었으나 지금은 작아도 종합병원 규모가 되었으니까요. 제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의 아버님이 남겨주신 좋은 평판과 또 아버님이 미리 병원 확장 부지를 마련해 주신 덕분이었죠.
어머니는 지금 식당을 운영하십니다. 제가 원장인 바로 그 병원 식당이죠. 제가 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대학 다닐 때까지는 시장에서 식당을 하시다가, 제가 병원장으로 오기 전 저보다 먼저 이 병원 식당을 맡아 운영하시게 되었죠. 그건 규환이 아버님의 도움 때문이라기 보다는 어머니 음식 솜씨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 병원 식당보다 그 전에 시장에서 식당 운영하실 때가 수입도 더 많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이 식당을 맡으신 것은 식당 운영으로 골치 아파하시던 규환이 아버님의 부탁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도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뭣이라도 규환이 아버님을 도울 길이라면 기꺼이 하시겠다고 하셔서, 병원 식당을 맡으신 거죠.
지금도 저는 엄마를 잘 모시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집에 들어와 며느리 손자 손녀와 같이 사시면 좋을 텐데, 어머니는 그것을 원하지 않으시네요. 혼자 사시는 게 편하시다고 하면서요. 병원 근처에 집도 마련해 드렸는데 출퇴근하시기 귀찮다며 병원에서 기거하실 때가 많습니다. 저도 때로 병원에서 자야할 경우가 생기면 병원 식당 뒤의 엄마 방에서 자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여비서가 처음 병원에 입사하여, 남보다 일찍 출근하다가, 아침에 식당 여주인 방에서 자고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제 엄마가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아, 식당 여주인이 저와 특별한 사이 아닌가 의심한 모양입니다. 전 그 얘기를 듣고 혼자 웃었습니다. 맞는 얘기죠. 우리야 말로 특별한 사이이죠......... ㅋㅋ.
언젠가는 여동생이 갑자기 병원에 늦게 찾아오게 되어 셋이 엄마 방에서 같이 지낸 적도 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옛 생각하며 하루를 정겹게 지냈습니다. 엄마 젖도 같이 만져 보고...... 그리고 또........ 그 얘기도 나중에 하기로 하죠.
그날 저는 처음으로 파출소에 불려 갔습니다. 군발이 녀석들은 파출소를 거쳐 헌병대로 넘어 갔고요. 제 엄마보다 한규 엄마가 더 크게 울며 경찰에게 제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또 주변에서 그 과정을 본 사람들이 좋게 얘기해주어 전 별 문제없이 풀려 나왔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한규를 만났습니다. 그가 저희 반에 찾아 왔더군요. 그는 저에게 " 너 싸움 잘한다고 소문 났더라." 말하며 씨익 웃더군요. 전 쑥스런 표정만 지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도 그와 크게 가까이 지낸 기억은 별로 없습니다만, 그와 잘 어울리던 그의 친구들이나, 시장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던 녀석들이 제게 잘 대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동네에 살면, 그런 녀석들과도 알고 지내면 편한 점이 꽤 있습니다. 먼 곳에서 나를 봐도 한규는 꼭 제 이름을 크게 부르며 반갑게 아는 척 해주곤 했습니다. 그게 그 녀석 딴에는 저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을 겁니다. 그의 이름을 파는 것만으로도 그 바닥에서는 도움이 되더군요. 제가 대학에 들어간 후 일이었습니다만, 동창들 몇과 함께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 청년들과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쩌다가 보니 그 동네 건달들까지 개입되었죠, 저는 그때 그들 중 한 명에게 한규와 친구 사이라고 밝히고, 술 마시다가 보니 말썽이 좀 생겼지만 더 이상 소란 피우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건달 중 하나가 제게 몇 가지 묻더군요. 한규와 정말 친구 사이인가 해서 그랬겠죠.
같은 학교 다녔고, 제 어머니도 그의 어머니와 같은 곳에서 장사를 하신다는 얘기로, 그날 일은 깨끗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죠. 그것 말고도 그의 도움은 나중에 크게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얘기같지만 한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가출........ 그리고 제가 대학 다닐 때는 형무소에도 갔다 왔다는 얘기를 누군가에서 전해 들었고...... 그때 벌써 폭력조직에 가입되어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를 다시 만난 건 제가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였습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습니다. 다른 친구 기수 얘기를 먼저 좀 해야겠습니다.
그 글에서도 친구 이름은 기수였습니다만, 물론 가명입니다. 제 글의 모든 이름은 모두 가명이라는 것, 다 알고 계시죠? 기수는 저와 비슷하게 성격이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무척 조숙했습니다. 책을 무척 많이 읽어 그런지 아는 것은 무척 많고 감수성도 예민한 친구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전과 많이 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잘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그의 어머니에게서 듣고 저는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기수의 집은 시장 입구 앞이었습니다. 기수의 어머니는 일층에서 다방을 운영하셨고요. 기수의 어머니는 기수와 달리 몸이 작았으나 상당히 미인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무척 젊은 편이었으나 그의 어머니처럼 도회지 여성으로서 세련되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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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침 홀에서 여자가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큰 쟁반에 찻잔을 얹고 방에 들어와 남자의 옆자리에 다정스레 앉더군요. 저는 그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다방 종업원이라 생각했던 여자가 바로 사실은 기수의 어머니였기 때문이었죠. 항시 틀어 올렸던 그녀의 머리가 그날은 어깨까지 풀어져 있었습니다. 찻잔에 설탕을 넣는 기수 어머니의 허리에 우원장이 손을 감더군요. 기수의 어머니가 그를 밀어내며 뭐라 얘기하는 것 같았으나 그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우원장이 다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고 이번엔 기수의 어머니를 힘껏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 하였습니다. 다시 우원장을 밀쳐내는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찻잔을 쟁반과 함께 밀어내며 일어서더군요. 저는 그 모습에 안도감과 실망감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기수의 어머니가 방을 나가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나 기수의 어머니는 방을 나가지 않았고. 우원장에게 그녀는 다리를 붙잡힌 채 서서 뜻밖에도 방의 불을 끄더군요. 방을 나갈 의사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방이 어두워졌으나 TV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방안이 어떤 때는 밝게 어떤 때는 어둡게 보였다.
기수의 어머니는 잠시 선 채로 있었습니다. 기수의 어머니 다리를 잡고 있던 우원장의 손이 기수 어머니의 치마 안 에 들어가 있었지만. 기수의 어머니가 창을 등지고 서 있어 우원장의 손 움직임이 보였습니다. 우원장의 두 손은 기수 어머니의 엉덩이 위에 있었고, 기수 어머니는 손으로 우원장의 머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우원장이 치마 속 기수 어머니의 속옷을 끌어내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기수의 어머니가 중심을 잃고 휘청였습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뒤로 버렁 누웠습니다. 검은 스커트가 배 위로 치켜지고, 드러난 아랫도리를 감추려는 기수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우원장이 그녀의 속옷을 끌어내리고 있었습니다. 우원장은 그녀의 은밀한 곳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었습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여자의 손이 남자의 머리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녀의 반쯤 벌린 입으로 신음 소리를 내는 것 같았으나 잘 들리지는 않앗습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그를 뿌리치려하는 것 같았으나 사내는 막무가내였습니다. 점차 그녀의 몸부림은 리듬감 있게 출렁이는 것으로 바뀌어 가더군요. 남자는 얼굴을 그녀 사타구니에 틀어박은 채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풀어 헤치더군요. 그녀의 흰 가슴은 저도 이미 엿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고 만날 때마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저였습니다. 사내의 얼굴이 사타구니에서 떨어져 그녀 가슴으로 향하자 이젠 남자의 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비밀스런 곳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기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저는 놀라 몸을 숙였습니다. 그러나 들킨 것 같지는 않아 다시 창가에 눈을 댔습니다. 남자가 요 위에 바로 누워있었습니다. 아직도 팬티를 걸치고 있었으나 그 앞이 엄청나게 돌출 되어 있는 것을 창 밖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시야에 들어온 기수의 어머니는 알몸이었습니다.
그녀는 전에 제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말라 보였습니다. TV빛이 어른거려 방해가 되었지만 생각보다 작은 가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원장 옆에 앉더니 두 손으로 그의 팬티를 내리더군요. 팬티 고무줄에 걸려 우원장의 물건이 튕겨 흔들리는 그것의 크기가 제가 보기에 엄청 났습니다. 완전히 팽창한 성인 남자의 자지를 몸을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방안의 그녀가 두 손으로 얌전히 우원장의 물건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올라앉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창을 완전히 등진 자세가 되어 저는 혹시라도 들킬 염려가 없어졌습니다. 도리어 그녀가 우원장의 시야도 가리게 되어 더욱 안전한 위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수 어머니의 몸이 출렁이고 그녀의 가슴 역시 출렁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둘은 지루할 정도 오랜 동안을 그런 자세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희미하게 신음 소리가 들렸으나, 단순한 신음소리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사람의 움직임이 격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터질 것 같은 제 자지를 꺼내 손으로 잡았습니다. 갑자기 기수가 계단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친구 엄마의 은밀한 비밀을 엿보며 수음한다는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렇다는 애기이지 그 당시는 아무 생각 없었을 겁니다. 저는 제 자지를 손으로 잡고 그리고 용두질 쳤습니다. 폭발하려는 직전에 저는 돌아서 벽에 기댔다. 이를 악물었으나 흰 액체가 허공에 뿜어져 날아갔고. 쏘아진 액체는 후드득 소리를 내며 사방에 떨어졌습니다. 저는 손을 털어 그것을 버렸습니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닦아냈습니다. 다시 방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마른 우원장의 몸에 비해서도 기수 어머니의 몸은 더 작아 보였으며, 기수 어머니의 흰 속살에 비해 그의 색이 너무 검었습니다. 두 몸은 리듬에 따라 같이 움직여 대더군요. 창을 통해 또 다시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둘의 움직임에 따라 반복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판단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척 긴 시간을 둘이서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방안 분위기도 점차 긴박해져 가는 것이 밖에 있는 제게도 느껴졌습니다. 둘의 움직임이 빠르고 격렬해지면서 신음처럼 새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둘의 움직임이 정지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 수 있더군요. 기수 어머니는 경련 하듯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리 나지 않게 뒤로 물러서 계단 밑을 빠져 나왔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시장 앞을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것이 언제던가? 기수 어머니의 흰 가슴을 처음 엿보았던 것이..... 기수의 할머니가 사시는 집은 횡성에서 다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하는 곳이었습니다. 저와 기수는 중학교 3학년 맞는 여름 방학에 기수와 함께 그의 외가 집을 갔었습니다. 며칠 만에 새카맣게 타버린 둘을 데리러 서울서 기수 어머니가 내려 오셨습니다. 그날 저녁을 먹은 후에 우리는 기수 어머니와 냇가로 갔었습니다. 텐트를 친 야영객 몇이 냇가에 나와 술판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셋은 그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까지 강을 따라 올라 갔다. 기수 어머니는 혼자 냇가로 목욕하러 나오기는 무서웠던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눈치 챈 우리는 공주를 지키는 충직한 신하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기수 어머니를 지켰습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알몸이었다 하더라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지만 기수 어머니는 물속에서도 옷을 다 벗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기수 어머니는 기수를 불러 몸에 비누칠을 해주더군요. 저는 관심 없는 척 하면서도 그 둘을 흘긋흘긋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수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의 웃음소리에 이상하게도 제 고추가 물속에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 그때 솔직히 기수가 부러웠습니다. 엄마가 저를 씻겨주던 때를 생각도 해 보려했지만, 별로 그런 기억이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물만 더 텀벙거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기수가 저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그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했습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죠. 제가 듣지 못한 척하자 기수가 텀벙거리며 저를 쫓아와 어머니가 부른다고 했다. 저는 마지못한 체하며 기수 어머니에게 다가갔습니다. 기수 어머니는 제 추측대로 얇은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젖은 옷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기수 어머니의 흰 살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기수 어머니는 사양 하는 저를 돌려 세웠습니다. 중3이었어도 친구 엄마에게는 애로 보여 씼겨준다 한 것이겠죠? 그러나 거의 알몸으로 막상 그녀 앞에 선다는 것이 저로서는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누칠을 한 수건이었지만 그 감촉만으로도 제 몸은 몸서리쳐질 것만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날이 어두워 가는 것이 큰 다행이었습니다. 등에 비누칠을 한 다음엔 그녀에 의해 돌려 세워졌습니다. 저는 시선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곤혹스러웠습니다. 풀어진 옷 사이로 기수 어머니의 흰 가슴이 엿보였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저는 고개를 돌려 기수를 찾아보았다. 이미 어두워져 기수는 잘 보이지 않고 그가 첨벙대는 물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물놀이 나온 사람들의 술 취한 노랫소리가 다시 들려 왔습니다. 기수 어머니는 고개 숙여 비누 묻힌 수건으로 제 배를 닦았습니다. 다시 한번 저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까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개 숙인 그녀의 자세로 그녀의 젖가슴이 거의 다 들여다보였다. 작은 젖꼭지조차 엿보였습니다.
저는 몹시 불편했습니다. 무엇보다 팬티 위로 부풀어진 자지를 기수 어머니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제 바지까지 거침없이 끌어 내리고 사타구니까지 비누칠을 했습니다.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하는 그의 거웃 까지는 이미 어두워 보여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스러웠습니다. 아랫배에 그녀의 손이 닿을 때, 절로 입에서 새어 나오려는 소리를 막으려 입술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발기된 제 자지에도 망설임없이 비누칠 할 때는 제 두 다리가 모두 휘~청 했습니다.
그날 밤 잠을 깬 것은 무언가 가슴을 누르는 압박감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기수 어머니의 팔이라는 것을 안 순간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기수 어머니는 잠들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은 고른 숨소리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고개만 돌려 기수를 찾았습니다. 기수는 자기 어머니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 얼굴은 보이지 않고 차 내버린 이불 위로 발만 나와 있었습니다. 저는 기수 어머니의 잠을 깨우지 않고 그녀의 팔을 살며시 들어 내리려 했지만 참았습니다. 그녀의 몸에서 참으로 좋은 냄새가 났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는 그런 상태에서 잠들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제 쪽으로 돌아누운 그녀의 옷깃이 벌어져 있어 그녀의 가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잠든 상태였으나 저는 다시 한번 기수를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몸을 뒤척이는 척하며 저 역시 기수 어머니 쪽으로 돌아누웠습니다. 그래도 기수 어머니는 깨지 않았고, 그녀의 팔을 치우지도 않았습니다. 그녀의 팔은 이제 제 어깨에 얹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려 코를 킁킁거렸습니다. 그것이 정말 냄새였는지 아니면 그녀에게서 전해지는 체온인지 잘 구별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는 옷을 살며시 헤쳤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방망이질 치고 있었으나 제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젖혀진 옷 사이로 그녀의 젖꼭지가 보이자 저는 그곳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쥐어 보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어린애처럼 조몰락거리기도 했습니다. 엄마와 달리 기수 어머니의 젖꼭지는 가슴 살 안에 박혀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렇지 않던 것이 조물락거리면 그렇게 숨겨진 젖꼭지도 단단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기수 어머니가 잠에 깨어났습니다. 그의 가슴을 더듬는 손이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눈을 뜬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손이란 것을 알고도 저를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제 어깨를 다독거렸고 저는 그대로 그녀의 가슴을 손에 쥔 채 다시 잠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친구 엄마의 정사를 엿 본 충격과 옛 생각에 빠져 기수를 찾으려 나왔었다는 사실은 이미 까맣게 잊고 집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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