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애착증에 관한 고찰 (엄마와 나)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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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애정에 관하여 (군생활 시절....)
난 2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다.
형은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휴학을 하고 입대까지 6개월 동안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낮 시간은 엄마와 나 두 사람만의 시간이었고 내가 엄마에게 문득 임신을 걱정 할 정도였다.
엄만 날 낳은 후 난관 수술을 하셨다고 했다.
아들만 둘이라 더 이상 욕심이 없다고.
난 정말 발정 난 수캐처럼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덤벼 들었다.
특히 엄마의 뒷모습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렸다.
설거지할 때, 방 닦을 때, 심지어 머리 감는 때까지 수시로 덤벼들었고 결국 엄마는
아버지가 출근 하신 후 퇴근 전까진 팬티를 안 입으시게 되었다.
불쑥 치마로 손이 들어 오고, 머리를 집어 넣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는 자지를 잡고 덤벼도
엄마는 힘들어 하면서도 받아 주셨고 그러면서도 입대 할 날짜가 다가오자
군대에서 어찌 견딜까 걱정하시며 눈물지었다.
그런 수심과는 상관없이 엄마는 점점 예뻐지고 젊어져 갔고
주위에서 비결을 알자며 부러워했다.
그러면 내가 엄마에게 열심히 효도를 해서 그렇다고 하면 사람들은 효자둬서 호강한다며
엄마를 부러워했고 엄마는 표 안나게 날 흘기며 얼굴을 붉혔다.
입대 전 마지막 1 주일 아버지에게 엄마랑 같이 자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쾌히 승락하셨다.
아버진 엄하셨지만 어릴 때부터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커서 남들에게
자랑거리가 되더니 명문 대학에 진학한 막내 아들이었기에 나에겐 늘 관대한 편이었다.
엄마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맛있는 걸 해 먹이려 애썼고
난 엄마가 해 먹인 음식들이 소용에 닿는 한 엄마를 안으려 했다.
결국 1 주일간은 하루 7~8 번을 엄마에게 정액을 쏟아 부었고
하루의 반 이상을 엄마 몸 속에 내 자지를 담아 두어서 자지를 가끔 꺼낼 때면
불은 오뎅 같다며 엄마랑 둘이서 웃기도 했다.
전 날밤 빡빡 깎은 머리를 감싸 안고 내 밑에서 몸부림치며 엄마는 소리 죽여 눈물지었다.
다음날 춘천 보충대로 떠나는 난 아무도 따라 오지 못하도록 하고 대구역 광장에서
전세 버스에 몸을 싣었다.
어느덧 해가 두 번 바뀌어 27개월의 군 생활 중 2개월만 남았다.
말 그대로 코스모스 필 때면 돌아가는 것이었다.
속초 위의 간성에서의 군 생활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포병 생활에 익숙해지고는 나름
즐기며 보낸 것 같았다.
몸도 건강해지고 허벅지도 굵어졌다.
단지 아쉬웠던 건 내가 기대했던 엄마의 면회가 한 번은 여름 방학에 맞추어
아버지가 동행이었고 한 번은 형이 동행해서 속으로 안달하다 복귀해서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며 진정시켜야 했던 점이었다.
첫 휴가를 나갔을 때 선배들이 술을 사 주고는 자갈 마당에 집어 넣어
새벽에 들어가다 엄마에게 들켜서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던 것....
나중에 복귀할 때 엄마가 살며시 군대에서 건강이 너무 좋아진 것 같아 걱정이라며
살며시 얼굴 붉히던 일도 생각난다.
하기야 처음엔 나도 놀랐다.
10개월 만이라지만 안고서 거의 40분을 계속 쑤신 다음 사정할 때
엄마는 이미 방바닥을 적실 정도로 물을 흘렸었고,
내가 사정을 했음에도 죽지 않고 그대로 엄마 안에 머물러 있음에 엄마도 나도 의아해하다
다시 움직여서 3번 연속 사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을 때 근 3 시간의 정사에
엄마는 허리가 아파 꼼짝 못해 아버지 퇴근때까지 저녁 준비를 못 할 뻔 하기도 했다.
토요일이지만 월요일부터 유격을 들어가 군장 검사를 하기에 어수선했다.
나야 말년이라 잔류로 남기에 상관 없었지만 말년엔 몸조심이 최고라고 그냥
일찌감치 상황실로 피해서 짱박혀 있었다.
행정반에서 방송이 들려왔다.
‘ x 병장님, 면회왔답니다. 피엑스로 가 보세요. ‘
‘누굴까? 집에선 왔다 간지 얼마 안되고...올 사람이 없는데........혹시? 혜영이?’
파로호에서 만났던 혜영은 약 3달 후 나에게 연락이 왔었고
난 휴학을 하기 전까지 6개월 정도를 만났었다.
입대 후 학교로 편지를 몇 번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고 그 동안 잊고 있었다.
대학 생활 동안 서클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가족을 빼면 친구들은 대부분 나처럼
2학년 마치고 군댈 갔기에 올 사람이 없었다.
궁금해하며 내려가는데 후임병이 마침 지나가다 나를 보고 자기가 좀 전에 피엑스에
면회 때문에 갔다 오는 길인데 두 여자분이 날 기다리고 있더라고 했다.
인상착의를 물으니 자매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이모 조카 사이도 같다는 애매한 말에
더 의문만 커져 버린 채 난 피엑스로 들어서 둘러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혜영인 혹시나 했지만 엄마랑 같이 앉아 있으리라곤 생각도 안 했다.
엄만 아버지랑 왔다 간지 1달밖에 되지 않았고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제대 후
집에서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혜영이랑 같이 있다니.....
앉아서 잠깐 물으니 읍내에서 택시를 잡다가 우연히 마주쳐서 같이 왔다고 했다.
난 외박 신고를 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내무반으로 와서
군복을 갈아 입고 행정반에서 신고를 하고 나왔다.
피엑스로 가면서 머리가 복잡했다....
하필 같은 날 오다니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일단
방을 두 개 잡고 생각하자고 마음 먹었다.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와서 밥을 먹으면서 엄마는 혜영을 보면서 긴가민가 했다.
4년이 넘은 일이었고 그 때 잠깐 본거라 어디서 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아
고민하셨던 모양이다. 헤영은 반대로 엄마를 바로 알아 보았다고 했다.
처음에 워낙 인상 깊게 봤었고 4년 전이랑 전혀 변하지 않아서 쉽게 알아 봤다고 했다.
이제 엄마가 궁금해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
난 엄마에게 그 때 보고 마음에 들어 혹시나 남자 친구랑 헤어지면 사귀자고
연락처를 주어서 나중에 사귀게 되었다가 입대 후 연락이 끊어졌었는데 오늘 이렇게
갑자기 왔다라고 이야기하곤 혜영이 차례라는 듯이 바라 보았다.
혜영이는 그 동안 2년 넘어 외국에 가 있었다고 했다.
와서 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후배가 보관해 두었던
우편물을 전달해 주었고 내 주소를 알고는 면회를 왔다고 했다.
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에게 미안했다.
그 때 서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비에 흠뻑 젖어서 울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냥 연락이 끊어졌기에 휴학을 하고 집에 있을 때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게 새삼 후회되었다.
밥을 먹고는 내가 일단 방을 잡고 간단하게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오자 이야기했고
간성 읍내에 몇 개 안 되는 여관은 토요일이라 면회객들 때문인지 방이 두 개 있는 곳은 없었다.
아니면 낮부터 방을 2개나 주지 않으려 한 건지도 모른다.
할 수 없이 큰 방으로 달래서 방을 하나 잡고 간단하게 갈아 입고서 다시 읍내로 나왔다.
나야 반바지로 갈아 입어도 군바리 표시가 팍팍 났지만 엄마는 정말 나이 같지 않게
젊어 보여 술집의 실내 불빛 아래에선 혜영과 자매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어찌된 사연이냐니 동네 모임에서 설악산에 1박 2일로 놀러 오길래
잘 되었다 싶어 와서는 인솔자에게 이야기하고 아들 면회 갔다가 따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왔다고 했다.
엄마도 이럴 때 보면 용감한 것 같기도 했다.
낮에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읍내 여기저기를 구경하다 일찍 저녁을 먹고는 스탠드 바에 갔다.
술도 마시고 어색해하는 엄마를 끌고 나가 춤도 추고 엄마와 혜영이를 교대로 안고
블루스를 추며 살짝 쓰다듬기도 하다 술에 취해 엄마와 혜영에게
집적대는 하사관들 때문에 술집을 나왔다.
맥주와 안주를 사서 여관으로 돌아와서는 씻고 앉았다.
난 양해를 구하고 군용 런닝에 팬티 차림으로 편하게 앉았고
혜영은 반바지에 티, 엄마는 통 넓은 치마에 나시티 차림이었다.
엄마는 술이 약하기에 조금씩 마셨고 혜영과 난 건배를 하면서 마셨다.
10시쯤 되어서 자릴 정리하고 누웠다.
내가 가운데 눕고 엄마와 혜영이 좌우로 누웠다.
머리 속이 복잡해서 있는데 혜영이 몸을 돌리더니
바짝 붙어서 다리를 내게 올리고 내 가슴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아직 주무시지 않기에 난 좀 기다리라는 의미로 혜영의 손을 꼭 쥐었다.
그런데 혜영이 엄마를 불렀다.
난 뭔 일인가 하고 가만히 있으니 혜영이 엄마에게
아직 안 주무시는 걸 안다며 밑도 끝도 없이 오늘 밤은 날 자기에게 양보해 달라고 했다.
난 황당해 하며 쿡쿡 찔렀지만 혜영은 내 손을 잡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4년 전 여름 밤....
번개 속에서 언뜻 사람이 지켜서 보고 있는 걸 알았다고 했다.
잠깐 보였지만 엄마인 줄 알았고 엄마가 지켜보는 걸 알면서도
나와 관계를 가졌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방으로 간 후 자기는 방으로 돌아 가지 않았다고 했다.
난 가슴이 뛰었고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혜영은 우리방 앞에서 멍하니 몇 시간을 있다가 날이 샐 무렵에야
방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끝장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그리고 엄마가 걱정되어 손을 더듬어 쥐었다. 엄마는 손에 땀이 흥건했다.
혜영은 계속 이야기 해 나갔다. 자신은 한 동안 혼란스러워하다
그냥 엄마의 모습이 여자가 보기에도 참 아름다웠다는 것과
나와 엄마의 둘 사이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애정과 행복감 신뢰 이런 게 떠돌고 있어 너무나 자연스럽고
잘 어울려 보인다는 걸 기억해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부딪히면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모른 척하고 나와 만났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변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
당분간 이 나라를 떠나기로 결정했고 유학을 준비 해 오다 이제 결정이 되어
1달 후에 영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라도 한 번 보고 싶어 고민했는데 마침 알게 되어
만나러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떠나면 언제 돌아올 지 아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인연이 된다면 나와 배우자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되다면 자신은 엄마와 나의 관계를 인정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엄마는 앞으로도 언제나 나의 엄마이며
언제라도 날 안고 싶으면 안을 수 있지 않냐며 울었다.
자기는 지금도 한국을 떠나기 싫다고 했다.
그냥 나랑 엄마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잊지 않게 오늘 밤 나와 사랑을 나누어도 참고 용서해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일어나 혜영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엄마는 막내가 어리광쟁이더니 결국 여자 친구도 어리광쟁이를 만났다며 딸 같다며 웃으셨다.
그냥 영국 안가고 살수만 있으면 이렇게 귀염둥이 둘이 데리고 살면 좋을텐데 라고
한탄 하시며 나에게 많이 사랑해 주라 하셨다.
마음에 있는 서러움이 씻겨 내려가게 사랑해 주라고 했다.
혜영이에게 엄마로서 실격이겠지만 우리 아들이 참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
어리긴 하지만 자상하고 밤일도 잘한다며 농담을 하셨다.
그리곤 일어서서 더워 좀 씻어야겠다며 숨도 돌리고 천천히 씻을 거라 하고 욕실로 들어 갔다.
3년 만에 보는 혜영의 몸은 전의 요정 같은 날씬함 대신 부드러운 곡선과 볼륨이 자리했고
작지만 탄탄했던 가슴은 이젠 아주 보기 좋게 부풀어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몸이었다.
순간 이런 멋진 몸을 남에게 그것도 영국이라는 곳에 사는, 백인일 확률이 높은 놈에게
주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화도 치밀었다.
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자 혜영이 날 안으며 왜 그러고 있냐고 물었다.
딴 놈이 널 안을걸 생각하니 화가 난다고 하자....
혜영이 그러면 날 영원히 잊지 못하게 그렇게 안아달라고 했다.
난 혜영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핥았다.
마치 새끼를 핥는 어미개처럼 귓구멍, 배꼽, 손가락, 발가락, 항문, 요도, 안구까지
성스럽게 핥고 빨았으며, 혜영에게서 흘러나오는 눈물과 애액과 오줌까지 먹었다.
혜영은 내 머리를 허벅지로 조이며 울었고
머리를 바닥에 쳐 박은 채 엉덩이를 흔들어 댔고
나와 벽 사이에서 박혀서 허우적거렸다.
나에게 구멍이란 모든 구멍을 열어 줬으며
내 자지를 넣을 수만 있었다면 배꼽 속에라도 넣었을 것이다.
자지로 손가락으로 혀로 막을 수 있는 한 모든 구멍을 막아 주길 원했고
나 또한 쑤실 수 있는 모든 곳을 쑤실 길 원했다.
혜영이 지쳐 잠들었을 때 엄만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조용히 수건으로
혜영의 입가에, 보지에, 항문에 흘러 넘친 정액과 애액을
말없이 닦아주고는 이불을 덮어 주었다.
엄마를 뒤에서 안자 가슴 속에서 미안함이 솟구쳤고 엄마는 그런 내 마음을 아신 듯이
날 안으며 ‘장하다. 용기와 희망을 준 것 같다.’ 고 했다.
그 순간 난 엄마를 너무나 절실하게 원했고 엄마를 찌르는 딱딱해진 내 성기를 본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 갔다.
엄마의 옷을 벗기고 팬티를 내릴 때 엄마의 몸과 팬티 사이에 음액이 길게 늘어졌고
엄마는 부끄러워하시며 가리려 했지만 난 보고 싶다고 엄마의 손으로
벌려 보여 주길 원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변기에 걸터 앉은 채 자신의 손으로 무릎을 세우고 보지를 나에게
벌려 보였고 이미 젖어서 항문까지 액을 흘러 내리는 분홍빛 보지가 실룩대었다.
난 엄마에게 자위하는 걸 보여 달라고 했다.
전에 몇 번 원한적이 있었지만 팬티 위로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왠지 지금은 보여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시 주저하던 엄마는 다시 부탁하자
서서히 보지를 따라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고는 아래 위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켜 보다 구멍으로 손을 넣자 엄만 젖은 눈으로 나를 보다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누르고는 비벼대며 눈을 감았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항문에다 혀를 대자 엄마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악~악 하는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조이며 경련을 일으키는 엄마를 안고 변기에 앉았다.
엄마에게 키스하며 허리를 잡고 일으켜 다리에 앉게 하자 엄마가 손을 뻗어 자지를
잡고 엄마 구멍에 맞추었다.
쭈욱하고 들어가는 느낌이 난 후 엄마는 발을 변기에 올리더니
내 목을 잡고는 아래 위로 찧고 좌우로 돌려대었다.
전과는 달리 적극적이고 뭔가 더 다양해진 움직임에 조임도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하여튼 전체적으로 좀 더 색스럽고 맛있고 다양해진 거 같았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져 변기를 잡고 엎드리게 하곤 뒤에서 박기 시작했다.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엄마가 무릎을 후들거리며 변기 뚜껑에 무릎을 대고는
간신히 서서 버티는 듯 했다.
뒤로 뺏다 찌르는 순간 잘못해서 밖으로 빠졌다가 엄마의 항문을 찔렀다.
순간 엄마의 항문이 쑥 열리는 느낌이 잠깐 들었다.
난 보지에 다시 넣고는 움직이며 아까 자위도 그렇고 왠지 항문도 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엄지에 애액을 묻혀 항문에 넣었다.
엄마는 움찔 하며 돌아 봤지만 내가 계속 손가락을 움직이며 찌르자
그냥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엄지를 뺏다가 둘째와 셋째 손가락에 애액을 묻혀 항문에 넣자
엄마의 엉덩이가 긴장으로 약간 굳었지만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자지를 움직이며 손가락을 움직이자 엄마도 엉덩이를 다시 움직이며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러다 자지를 빼고 손으로 엉덩이를 벌린 후 자지를 항문에 갖다 대었다.
엄마는 움직임을 멈춘 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천천히 밀어 넣었다.
잠깐 막힌 듯 자지가 휘는 것 같다 갑자기 활짝 열리는 느낌이 들며
쑤욱하고 자지가 들어갔다.
뜨거운 느낌과 끊어질 듯 조였다가 풀렸다가 하는 게 엄마의 숨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엄마는 끙 하는 소리만 내고는 엉덩이를 들고 머리를 낮춰
좀 더 엉덩이를 벌려 통증을 줄이려 하는 것 같았다.
좀 있다 자지를 조이는 게 좀 부드러워 진 것 같아 엄마에게
움직여도 괜찮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엄마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천천히 움직였고 엄마는 간헐적으로 끙끙거리셨다.
언제부턴가 항문 속이 매끄러워졌고 엄마에게서도 끙끙대는 소리 대신
콧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난 점점 속도를 높여 갔고 엄마의 보지에 손가락을 넣은 채 클리토리스를 문지를 때쯤엔
엄마도 거의 몸을 세운 채 엉덩이만 뒤로 빼 내 목을 감싸 안고 있었다.
내가 엄마의 가슴을 자국이 날만큼 세게 잡을 때 엄마의 항문 속으론 내 정액이
뜨겁게 쏟아졌고 엄마의 보지는 내 손가락을 비집고 보짓물을 밖으로 흘리고 있었다.
옷을 입으려는 엄마를 난 우겨서 벗은 채 나오게 했고 내 예상처럼 혜영은 깨어서 빨개진
얼굴로 앉아서 욕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혜영도 옷을 벗게 하고 세 사람은 모두 벗은 채 엉켜서 안고서 누웠다.
잠시 누워서 숨을 돌리고는 난 서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여자에게 번갈아 가며 넣었다.
가끔 혜영이 엄마에게 키스를 했고 몇 번 피하던 엄마도 받아 주었고 엄마의 젖가슴을
혜영과 내가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을 하기도 했다.
아침에 깼을 때 우린 한 가족처럼 같이 비누칠을 해주며 씻었다.
혜영도 엄마를 엄마라고 불렀고 엄마도 혜영을 우리 딸이라고 불렀다.
난 혜영을 간성 읍내 터미날에서 상봉터미날로 가는 버스를 태워 보냈고
혜영은 버스를 기다리다 탈 때까지 모두가 돌아 볼만큼 엉엉 울다 차를 타고 떠났다.
나도 다시 못 볼거라 생각하자 눈물이 돌았다.
엄마도 소리 없이 울고 계셨다. 엄마가 괜찮을까 걱정하며 속초에서 대구까지의
버스를 태워 보내 드렸다. 엄마 역시 계속 우셨다.
몸은 기분 좋은 피로함을 느꼈지만 두 여자를 보내고 나자 당장 난 지독한
외로움에 빠졌고 혜영과 엄마의 눈물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
결국 복귀 후 난 몸살로 쓰러졌고 군 생활 처음으로 의무대 신세를 지고
3일만에 일어 났다.
말년 휴가를 나가서 혜영에게 전화를 했지만 몇 일 전에 출국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집으로 온 나는 10일간 두문불출하며 형이
소개해 준 예비 형수에게도 심드렁해하며 의욕 없이 지내다,
둘 만의 시간에 엄마가 해주는 갖은 서비스 덕분에 복귀할 땐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