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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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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10 회 작성일 24-02-01 21: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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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11)


객실안을 들어서자 알수없는 후끈함과 비릿함이 기분나쁘게 풍겨 왔다.
입구에서 한참을 그 기분 나쁜 냄새를 희석시키듯 마음을 진정시키고
룸에 들어서자 침대위에 하얀 시트가 구겨져 침대가에 헝클어져 있었다.
유희연의 마음도 그 구겨진 시트와 다를바 없었다.
선뜻 눈이 가는 침대위를 외면하듯 창가를 향해 돌아섰지만 이제 막 어둠에
물들어가는 야경을 시간을 가지고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더 없었기에
이내 돌아서서 침대를 내려다 보았다.

구겨진 시트 위로 꼬불거리는 털들과 무엇에 젖었는지 군데 군데 얼룩져 있는
모습들이 이내 다잡은 마음에 짜릿한 통증이 밀려 왔다.
무슨 짓거리들을 하였는지 하얀 시트위의 털들은 마치 자신의 치부에서
빠져 나온것처럼 유희연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화장실에 들어선 유희연의 얼굴이 찡그려진채 좀처럼 퍼지지 않았다.
익히 짐작을 해서 인정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속에서 일어나는 배신감
비슷한 감정은 쉽사리 사그라 들지 않았다.
두사람의 행동과 이 짓거리에 자신이 화낼 이유는 따지고 보면 하나도
없었다.한데도 자신은 마치 상진에게는 자기를 놔두고 바람이라도 핀듯한
부부간에야 느끼는 감정이 일었고 정수란에게는 내 남자를 뺐긴듯 한 서슬
퍼런 증오의 감정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모를 일이었다.
자신이 왜 그와 같은 감정이 이는지 정녕 모를 일이었다.
처절한 배신감이 가슴을 싸잡고 분노로 치밀어 올랐다.
순간 아랫배에서 역겨운 뜨거운 열기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뿜어져 나왔다.
변기에 앉기도 전에 쏟아질것 같아 허둥대다가 가까스로 스커트를 올리고
팬티를 내리자 마자 그 역겨움은 자신의 요도를 통해서 맹렬하게 쏟아져
나왔다.더불어 유희연의 눈에서도 근원을 알수없는 눈물이 방울져 흘러
내렸다.

이상진은 요즘 바쁜 그만의 일정을 소화내고 사느라 정작 자신의 일에는
등한시하는 생애 초유의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천성적으로 모질지 못한 성격도 한몫하였고 혼자 살아온 인생이 서러워 작은
인연마저도 소중히 여기는 까닭에 자신이 뿌린 인연의 굴레를 상처 입히지
않고자 시간이 날때면 여러 사람을 찾아 다닌다.
물론 그 중에서도 정수란도 포함되어 있지만 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정기적으로 출장나간 남자가 집에 돌아오듯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고교시절의 서경미와 강인선 이었다.
둘다 상진에게는 잊을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피폐해진 감정의 터전을 온기를
지니고 보전하는 계기로 삼을수 있도록 지켜주고 함께한 여자들 이었다.

주로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찾아가도록 신경을 쓰는 편이었고 서로 약속된
바는 아니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두 여자간의 시간을 조율해 주었다.
오늘은 특별한 일도 없었기에 일찍 학교를 나와서 김인선의 딸 하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게 즐거울것 같았다.
점점 말하는게 상진과 김인선을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다운
귀여움이 사라지는것은 아니다.더군다나 하나는 자신을 얼마나 따르는지
간혹 자신이 그 아이의 아빠라도 된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키곤 하였다.
하나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연하는 마치 여행이라도 가듯 마음이 진정이 안되었다.
책을 봐도 글자는 읽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엉덩이만 자꾸 들썩거리는게
아무래도 오늘 공부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래 들어 자기도 모르는 이상한 버릇들어 생겨 혹시나 남의 눈이 뜨일까
적지않게 긴장도 하는 지경이고 보면 예민한 자신의 신경으로 병원을 찾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책을 주섬 주섬 챙기고 지식의 욕구로 열기 가득찬 도서관을 나오자 5월의
햇살이 이내 언찮았던 심사를 청명하게 비추어 주는것 같아 한결 마음이
편안해져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것 보다 가끔 이렇게 나와서 햇빛을 느껴
보는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따갑지 않은 햇살과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 그리고 아무렇게나 자유
분방하게 자리잡은 학생들의 얼굴이 5월을 닮아 환하고 싱그럽게 연하의
시선을 잡았다.
그러고보면 자신은 이러한 풍경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낯선 풍경들이 생소하기 보다는 별로 어렵게 않게 다가오는게 다분히
그녀의 가슴속에도 이런 풍경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도서관의 계단을 내려와 기분 내키는 발걸음으로 하나도 바쁘지 않은 마음은
절로 콧노래를 불러 일으키었고 나긋 나긋한 걸음거리는 뒤를 따라 오는
사람에게는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더군다나 목적지가 분명한 사람에게는
산책을 하듯 좁은 길을 차지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줄려고 해도
고개를 젖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그녀의 뒤를 붙듯이 따르던 남자가 이연하의 옆을 스치듯 앞지르는 순간
이연하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튀어 나왔다.

"악~~"
"괜찮으세요?"

상진은 조급한 마음에 하늘빛 플레어 스커트를 입고 노란 가디건을 걸친 긴
머리를 빨간 리본으로 치장한 여학생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앞서가고자
시멘트로 포장한 폭 1미터의 길을 차지한 그녀의 옆을 지나쳤건만 상진이
밟은 시멘트 옆의 흙이 미끄러지며 마침 생각없이 발을 그족으로 옮긴 여자의
발을 밟은 것이다.
하필이면 여학생은 발가락이 드러나는 샌달 비슷한 신발을 신고 있었고
뼈대굵은 상진의 체중이 실린 발은 사정없이 연하의 발을 짓밟은 것이다.

"아~아~~"
"미안합니다.제가 조심성이 없이 그만.....일어서실수 있겠습니까?"
"네..괜찮아요."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녀는 쉽게 일어서질 못했다.
근처 벤치로 업듯이 옮겨와 하얀 양말을 벗기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발가락
은 허물이 벗겨지고 빨갛게 부어 올라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심하군요.아무래도 병원에 가야 겠어요."
"아니..예요.잠시 이러고 있으면 괜찮아 질거예요."

연하는 다친 발보다 양말을 벗기고 발바닥을 받쳐든 그의 모습이 그리고
다리를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더 부끄러워 발가락의 아픔도 잊은채 발을
오무리기에 더 여념이 없었다.

"괜찮은게 아닌것 같은데...가만 있어 보세요."
"정말 괜찮아요."
"그럼 잠시 있다가 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가지요."
"..네...."

다행히 남자는 일어서서 흙이 묻은 양말을 털고 옆자리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어들다가 자신을 빤히 쳐다 보았다.

"저 담배 한대 태우겠습니다."
"네........"

둘사이에 상진이 담배를 다 태우고도 두사람은 말이 없었다.
마땅하게 할말이 없었던 것이다.
상진은 기다리고 있을 하나의 생각에 연하는 뒤숭숭한 마음이 결국 화를 불러
오는구나 하는 자책감이 일어 할말을 잃고 있는 것이다.

"저 제 탓도 있으니 너무 신경쓰지 마시고 바쁘신것 같은데 그만 가보세요."
"아닙니다.바쁘기는요.그리고 환자를 내버려두고 어떻게 갈수가 있나요."
"환자는요.그냥 발이 까진것 뿐인데요.병원에서 돌 날라 오겠네요."
"후후~그렇기도 하지만..돌에 맞더라도 지켜봐야 될것 같군요.잠시만요."

남자는 큰키로 성큼 성큼 도서관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남자가 자리를 비운사이 연하는 신발을 신고서 발걸음을 하였는데 까진
곳도 신발에 걸려 쓰라리고 이상하게 시큰거리는게 순간 주저 앉을뻔 하였다.
아무래도 진짜 병원에 가야 할듯 싶었다.
엄마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그냥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고 마음을 정하고
있을때 허우대만 멀쩡한 그 남자가 양손에 종이컵을 들고 도서관 사잇길 그
시멘트 길에 모습을 드러 내었다.

말없이 건네주는 종이컵을 받으며 연하는 정문까지만 부축을 부탁할
셈이었다.

"저...저기 정문까지만 데려다 주세요."
"정문까지요?"
"네."
"그렇게 하지요."

발을 제대로 디딛지 못하는 연하의 팔을 잡고 정문을 나서자 연하는 택시를
잡아 달라고 했다.
괜찮다고 걱정말라는 연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상진은 기어이 택시에
올랐다.
어딘가로 전화를 하는 연하는 이모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고 곧
도착한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마쳤다.
강남의 대형병원에 도착하자 가운을 입은 여의사가 휠체어를 준비하고 있다가
연하를 맞이 하였다.

"음..까진거 말고는 외상은 별 문제 없어 보이나 통증이 있는걸로 봐서 신경
이나 뼈에 이상이 있는것 같으니 일단 필름나올때까지 조금만 참아라."
"네.이모 움직일때 말고는 아프지는 않아요."
"그래..엄마한테 연락은 했고?"
"아니...난리날까봐 안했어요."
"호호호..그러고도 남지.니 엄마 극성이 유난해야지.근데 저 남잔 누구니.
남자 친구니"
"아니예요!"

의사의 뒷말은 나즉했으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상진의 귀에도 들리긴 들렸다.
아마 저 의사는 연하라는 여자의 엄마와 친분이 있는듯 보였다.
두여자의 말투에는 가족과도 같은 감정이 묻어 나왔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신경이 늘어난 상태라 당분간 활동이 불편
할거라는 진단이 나왔고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나서야 한 숨을 돌리게
되었다.
진찰실 양쪽에 대기석으로 준비한 길다란 의자에 앉아 이모라는 사람이
건네준 녹차를 마시며 상진은 내심 큰 부상이 아닌걸 안도하고 있었다.
자신의 지나친 행동으로 인한 피해에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어쩌면 성장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런 마음은 피해의식같은 종류의
해석을 할수도 있겠지만 자신으로 인해 타인의 영역이 침범당하거나 비슷한
고통이 가해지는걸 소심한 그로서는 별거 아닌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아파하고 있었다.
세상을 내마음 대로만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일일까마는 세상은 그가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만은 않았다.
상진이 그런저런 생각으로 멍하니 병원의 벽을 바라보고 있을때 연하의 눈이
상진의 옆모습을 살피며 동그란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보다 더 부실해 보인다.
잔병치례가 많이 병원다니기를 이웃집 다니듯 다니면서도 그리 어둡지 않은
표정은 물론 가족의 덕분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밝은 마음이
원인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녀의 시선에 비친 이상진의 모습은 딱히 이거다라고 말할수는 없지만
안면 깊이 들어간듯한 눈과 야위어보이는 얼굴은 이 남자의 모든것을 대변
하는듯한 모습이었다.그러면서도 파릇파릇한 수염자국은 길게 자라 드리운
머리칼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아마 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면도를 하면 아마도 헤멀건한 얼굴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연하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상상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두 사람의 상반된 생각이 깊게 이어질때 이모라는 의사가 연하와 상진의
사고를 깨뜨리며 나타났다.

"연하야 너 헌혈좀 해야 되겠다.지금 RH-O형의 피가 필요한데 병원에서
보유한 혈액만으로는 감당할수 없을것 같아.그러니 혈액병원에서 공급될때
까지 임시로라도 니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
"네 근데 급한 환자인 모양이네요.검사를 생략할 정도면...?"
"그래 중환자야 차량사고 환자인데 장파열이라 급히 수혈해야 하거든."

혈액의 검사란 채취한 혈액의 혈액형과 항글로불린검사,수혈자와 헌혈자의
수혈적합성 확인을 위한 교차시험,항체검사,매독.간염,그리고 AIDS등과 이
밖에 여러가지 검사를 헌혈뒤에 실시하는데 연하의 말은 이 것을 생략한다는
말이다.
물론 전부 다 생략한다는것은 아니고 중요한 몇가지 검사는 하지만 병원실정은 그것마저 생략하고 혈액형만 맞으면 바로 수혈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다량의 피를 쏟은 경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나야 도움이 된다면 열번이라도 하지."
"됐어 넌 한번이면 돼.근데 제때 혈액이 도착해야 할텐데 걱정이다."

"저 선생님..?"
"네."

연하와 이모라는 사람의 대화는 너무 다정하고 온기가 스며있어 상진은
두어번 침을 삼키고 난 다음 입을 열었다.

"제가 RH-O형인데 저도 도움이 된다면 헌혈하고 싶은데..."
"정말인가요?"
"네."
"어머 잘됐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나.구경하기 힘든 RH-O형의 사람들을
오늘은 두명이나 보게 되네.고마워요."

연하는 신기한 눈초리로 다시 한번 상진을 쳐다 보았다.

"말 나온김에 두사람 다 채혈하기로 해요.그 환자도 운이 따르는군요.
어쩌면 두사람이 오늘 사람하나 살릴것도 같아요."
"헌혈한번 하고 사람하나 살리면 정말 좋겠군요."

좋은 말로 전화위복이라고 말 할수도 있다.
다친 상처에도 불구하고 선듯 헌혈을 자청한 연하나 뭐 먹을거 있다고 따라
서는 그나 웃음띤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모습은 예매한 두사람의
분위기를 어느정도는 동질감으로 그리고 공유라는 감정으로 이끌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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