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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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변화의 발현.
씩씩거리며 아파트 근처의 공원으로 나온 나는 화를 다스리느라 꽤 애를 먹어야 했다.
내 분노의 근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강력한 불길이 일었다. 그건 내가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논리적 판단이 더해지면 더욱 거세게 나를 괴롭혔는데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당시 엄마와 나의 싸움을 처음부터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엄마는 전통적인 가족개념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스스로 반박을 하면서 완전한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만들어 버린 상태였고, 당시의 나는 비판 없는 가족개념을 단순히 가지고만 있었기에 엄마의 비판적 의견에 당연히 반론을 펼 수가 없었다. 비유하자면, 엄마는 책을 직접 쓴 저술가의 입장이었고, 나는 그 책을 단순히 소유하기만 한 사람일 뿐이었다. 따라서, 엄마는 자신의 책에 대하여 자유롭게 그 내용의 허점을 비판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지만, 책의 단순한 소유주일 뿐이고, 그 책을 제대로 이해도 못한 나는 그런 엄마의 그런 비판에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그 책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저술가의 그런 비판은 내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완전 사기 당한 기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엄마는 내 정체성을 파괴하는 독재자와 같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뭐랄까 좋은 마음으로 손님을 초대했는데, 손님이 내 집을 망가트린 꼴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그대로 당할 수만은 없는 일. 나는 공원에서 한참 동안 생각을 하여 엄마의 생각을 공격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한 다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막 집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거실을 다시 닦고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까 청소했는데 뭐 하러 또 닦아?”
“그냥 허전해서……”
“뭐가 허전해?”
“글세…… 네 아버지가 잠시 집을 비운 것뿐인데 기분이 그러네……”
엄마는 아까의 일은 다 잊은 듯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내 말이나 행동에 상처 같은 것은 받지도 않았는지도 몰랐다. 난 직감적으로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이 손해일 거라 느꼈지만, 지고는 못산다는 쪼잔한 남성적 기질 때문에 소파에 앉으며 말을 꺼내고 말았다.
“이야기 좀 해!”
“아까 그 이야기라면 그만 둬.”
“뭘 그만 둬? 엄마라면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거야?”
내 준비된 말은 거침없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고, 엄마의 표정을 읽기 위해서 엄마의 눈을 직시했다. 하지만, 엄마는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실제로 그런 거는 아니잖아.”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어째든 가만히 있을 거야?”
“글세…… 네 외할아버지가 굳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막지는 못할 거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야?”
“네 외할아버지가 그러겠다고 하면……”
“하~~ 그럼 외할머니 인생은 망가져도 좋다는 말이네?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친구를 새엄마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고……”
그 말에 엄마는 거실 닦는 행동을 멈추고서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앉은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그건 다른 문제야.”
“뭐가 달라?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만약, 네 외할아버지가 내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할 정도이면, 이미 네 외할머니를 버릴 작정을 한 후이기 때문에 설령, 네 외할아버지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불행이 달라질 것은 없어. 그리고, 내가 내 친구를 새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안 들이고는 내 판단에 달린 거야. 난 네 외할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그분의 결정은 그분의 결정이고, 내 생각은 내 생각이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니!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화만 내지 말고 차분히 내 말을 생각해. 그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가족이 운명공동체라고는 하지만, 그건 사실 허무한 말이야. 가족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유리잔과 같아. 아주 작은 충격에도 깨어질 수 있는 그런 거야. 그 유리잔을 평생 지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부부의 이혼으로 깨어지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자식을 버리기도 해. 때론 가족간의 불화로 인해서 평생 서로 얼굴을 보지 않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살자는 말이야?”
나는 점점 극단적으로 나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전부다 그랬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부모도 필요 없고, 자식도 필요 없다는 그런 말이야?”
“너 왜 자꾸 그러니? 그런 말이 아니란 것을 알잖아.”
“뭐가 아냐? 내 친구와 사귈 수도 있다고 한 것은 엄마야!! 뭐 아버지와 이혼하고 상혁이랑 결혼도 할 수 있다고? 그런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도대체 엄마는 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넌 가족을 무엇이라 생각하니?”
“그건……”
난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쉽게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데 전혀 문장으로 형상화 되지를 않았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말로 표현하려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족’이란 것이 점점 더 이해가 안 되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가족만큼 분명하고 명확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를 못하니 말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난 ‘가족’이란 글자에 대하여 한번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족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늘 내 곁에 있어왔고,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는 단 한번의 고민도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참담한 낭패였다.
그렇게 되자 난 더욱 어깃장을 놓았다.
“좋아 엄마 마음대로 해!! 세상이 개판되던 말던 엄마 마음대로 하라고! 세상이 개판되어 가족도 몰라보고, 근친상간도 일어나도록 말이야.”
그 말에 엄마의 안색이 굳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왜 근친상간이란 말까지 하는 거야?”
“엄마 말이 그런 말이니까 그렇지. 내 친구와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게 근친상간과 무슨 상관이니?”
“헹~! 그래도 근친상간은 싫은가 보지?”
난 빈정거렸는데, 지금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는 치졸함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도 화가 난 것 같았다.
“말해봐 내 말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엄마부터 말해! 근친상간이 좋아 나빠?”
난 대답은 않고 엄마를 오히려 공격했고, 그런 나를 엄마는 말없이 한 참을 응시하다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 깊은 호흡을 한 뒤 말했다.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야.”
“하~! 그럼 그것도 개인의 선택이라는 거야?”
“그래.”
“정말 엄마 어떻게 된 거 아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럼 넌 근친상간이 왜 나쁜지 말해 볼래?”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정말 화가 난 듯 보였다. 하지만, 내 분노는 엄마의 반응을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엄마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보이자 한편으로 즐거운 느낌마저 생겼다. 뭐랄까 드디어 궁지로만 몰리던 기분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쁜 거에 이유가 어디 있어?”
“이유 없이 나쁜 것은 없어!! 도둑, 사기, 강도, 살인 같은 것들이 나쁜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나쁜 것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근친상간도 나쁜 것이 되려면 분명하게 이유가 있어야 돼.”
“……”
“근친상간을 하면, 누가 피해를 보는 거니? 폭행이 아닌, 두 당사자간에 합의해서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면 내가 아는 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그게 왜 나쁜 거니?”
그런 엄마의 말에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 바람 피는 것은 누가 피해를 보는데? 그런 것은 왜 간통죄로 처벌하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면 이해 할 수 있어? 그건 죄가 아니라고 보는 거야?”
“부부는 틀려. 부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니까. 따라서, 바람을 피는 것은 그런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죄가 돼!”
“엄마 말은 궤변이야. 가족은 모두 다 신뢰를 바탕으로 해.”
“그래 가족 모두에게 신뢰는 필요해. 하지만, 그건 성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아. 따라서, 부부 외의 가족들이 바람을 피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부부는 분명히 죄가 돼.”
“그래? 그럼 적어도 아버지는 이제 바람 피워도 되겠네?”
“무슨……”
“모르는 척 하지마. 아버지가 성 기능을 상실해서 엄마와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 엄마와 아버지는 성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없잖아. 따라서,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되는 거 아냐? 아니지, 엄마도 이제는 바람을 피워도 되겠네. 그래 엄마는 지금 바람 피우고 있어? 엄마 생각대로라면 바람을 피워도 되잖아.”
내 말에 엄마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내 눈에는 내 논리에 져서 그런 것 같았다. 엄마와의 언쟁에서 처음으로 내가 기선을 잡은 것 같았고, 나는 더욱 기가 살아서 더욱 거침없이 말을 뱉었다.
“왜 바람 피울만한 상대가 없어? 엄마에게 응해주는 남자가 없는 거야? 정 없다면 상혁이를 불러 줄까? 아니면, 나라도 엄마의 상대가 되어 줄까? 말만 해. 상혁이를 불러주든, 내가 직접 엄마를 상대 해주든 얼마든지 해 줄 테니까 말이야. 상혁이 못지 않게 나도 엄마에게 성적으로 관심 많아. 어떨 대는 엄마와 관계를 가지는 꿈도 꾸었고, 몇 번은 엄마를 생각하며 자위도 했었어. 그런데 왜 내가 그런 내 욕망을 참은 줄 알아? 내 엄마이기 때문이었어. 엄마와 난 같은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거였어. 그런데, 엄마 생각을 들어보니까 내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네? 안 그래? 말해봐!!!”
숨도 안 쉬고 말을 끝내었을 때, 내 몸에서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같은 쾌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전율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는 듯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저 내 눈을 한번 응시하고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고, 나는 완전히 자아도취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소인배처럼 엄마가 여유롭게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을 똥개 근성으로 물고 늘어졌다.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말해 보라니까. 나도 엄마 좋아해. 엄마와 성관계를 가지고 싶고, 엄마와 사귀고 싶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니까. 어서 엄마의 의견을 말해봐! 만약, 엄마가 싫다면 그만 둘게. 대신, 엄마에게 거절 당한 나는 엄마와 같이 살 수 없을 거야. 세상의 논리대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는 것처럼, 엄마와 나도 헤어져야 해. 알아 들어?!!”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나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런 내 말은 확신에 찬 말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를 상대로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하는 저능아 수준의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건 당시의 엄마도 아는 것이었을 거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내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그냥 조용일 일어나서 안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지금에 와서 가끔 엄마에게 그날 왜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는지 물어보지만,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하면서 웃기만 할 뿐이다. 느낌상으로는 내가 기분 나빠할 까봐 일부러 말 안 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어째든 그 날 결국 내가 승리를 했고, 이후로 난 많이 변했다.
말싸움의 승리에 도취하여 엄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어줍잖은 말도 하고, 행동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가 보기에 그런 내가 얼마나 꼴사나웠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은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지우고 싶은 부분을 지우라고 한다면, ‘꼴값’을 떤 그 시절을 지우고 싶다. 지우개로 싹싹 말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된 것은 아니다. 가족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근친상간이란 것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하였고, 그런 생각들은 지금의 내 가치관 형성의 가장 밑 바탕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내 18살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의 잣대와 내가 보고 배운 것들에 비추어 보면 그건 분명 잘못 된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닌 그런 것이니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일 뿐이다.
어째건, 그 일의 시작은 12월 19일 내 생일에서 비롯 되었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시골에서 잠시 올라온 아버지는 엉뚱하게도 엄마에게 이혼을 요구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했는데, 그것은 엄마에게 남자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당신 만나는 남자 없어?”
아버지의 그 말에 엄마와 난 ‘또 의처증이군’ 하는 시선을 주고 받았고, 엄마는 익숙한 말을 대꾸를 하듯 무덤덤하게 아버지의 말에 대꾸했다.
“없어요. 제가 누굴 만나요.”
“만나지 말라는 말이 아니야.”
“없다니까요.”
“나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망치지는 마.”
그 말은 예전과 다른 아버지의 말이었지만, 엄마도 나도 그 것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제 인생은 불행하지 않아요.”
“그럼 다행이고, 근데 이렇게 혼자 지내는 거 힘들지 않아?”
“제가 왜 혼자에요? 당신도 있고, 현석이도 있는데……”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런 게 아니라면 그만 해요. 애도 있는데……”
엄마는 내 핑계를 대면서 아버지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예전에 차마 해서는 안될 말까지 다 했던 아버지라 그런지 엄마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이 녀석도 알 거 다 아는데 뭐……”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나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짖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나이는 이제 겨우 35살이야. 이대로 평생 혼자 지내는 건 힘들 거야. 지금이라도 새 출발해.”
뜻밖의 말에 엄마는 잠시 멍하니 아버지를 보다가 입을 떼었다.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야. 서류에는 언제든 도장 찍어 줄 테니까 괜찮은 남자를 찾아봐.”
그 말에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시골에 가서는 겨우 그런 생각만 한 거에요?”
“글세……”
“시비 거는 것이라면 그만 둬요. 이젠 대꾸하는 것도 귀찮아요.”
“큿~~”
“비웃지 말아요.”
“그런 거 아냐. 그 동안 내가 당신을 괴롭힌 생각이 나서 일 뿐이니까.”
“알면 되었어요. 식사나 하세요.”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아니라고는 못해요.”
엄마의 그 답변에 아버지는 식사하던 것을 멈추고 말을 꺼내었다.
“미안해. 내가 많이 옹졸했어. 막상 시골에 내려가서 조용히 지내다 보니까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더군.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내가 당신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아버지의 음성은 낮으면서도 분명했지만, 엄마를 보고 말하지는 않았다. 혼자 독백을 하듯이, 혹은 밥그릇하고 대화를 하는 냥 밥그릇만 보고 말을 이어갔다.
“그저 내 삶에 있어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고, 당신을 사랑함에 있어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잃어버린 것뿐인데, 난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했었어. 그래서 당신을 괴롭히고, 현석이를 괴롭혔어.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야. 그것이 잘못이란 것을 알면서도 난 멈출 수가 없었지. 머리에서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들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시골에서 조용히 생활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어.”
“다행이군요. 그럼 됐어요. 그만해요.”
“아니, 그것만 안 것이 아니야.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가치도 함께 알았거든.”
“무슨……?”
“난 잃어버렸으니까 문제가 안되지만, 당신은 아니니까.”
“이상한 소리라면 그만 둬요.”
“그럴까?”
“그래요.”
“아니, 당신이 틀렸어.”
“제가요?”
“그래.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나에겐 없으니까 부정할 수도 없지만, 당신은 그럴 수 없어.”
“도대체 애 앞에서 왜 이래요? 또 옛날처럼……”
엄마는 조금 언성을 높여 화를 내었는데, 아버지가 엄마의 말을 잘랐다.
“현석이어도 알아야 해!”
“……!!”
“이건 당신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현석이어도 관련이 있어.”
“억지부리지 말아요.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들은 현석이와 관련이 없어요. 당신과 나만의 문제일 뿐이에요.”
“현석이는 애완용 동물이 아냐. 먹을 것만 주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구.”
“말 잘했어요. 현석이는 애완용 동물이 아니에요. 당신이 옛날에 했던 말이나, 지금 하는 말들이 얼마나 충격이 될지 생각이나 해 보셨어요?!”
엄마는 다소 흥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생각해봤어.”
“그럼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에요!!”
“아니.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현석이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어. 그 것은 깨어지기 쉬운 환상을 심어주는 것에 불과해.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은 뭐든 균형적으로 배울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만약, 내가 과거에 현석이에게 까지 몹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이야기를 현석이 앞에서 할 필요는 없겠지. 혹여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현석이와 따로 대화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궤변이에요.”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어차피 지금 대화의 중심은 그게 아니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해.”
“좋아요.”
“다만, 이 점은 생각해주길 바래.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당신과의 이혼이라는 것.”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했고, 그런 아버지를 엄마와 난 얼빠진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해는 말아줘. 당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니까.”
“……!!!”
“난 그냥 당신이 지금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못들은 걸로 하겠어요.”
“그런다고 내 생각이 바뀌지는 않아.”
“제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런 생각 말아요.”
“당신 지금 행복해?”
“예. 충분히.”
“거짓말 하지마.”
“당신이 뭘 안다고 제 말이 거짓말이란 거죠?”
그 말을 한 엄마는 다분히 감정적이었는데, 그건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했다.
“밤마다 괴로워하잖아.”
순간, 엄마의 얼굴이 확하니 붉어지면서 상당히 분노했다.
“도대체 애 앞에서 무슨 소리에요? 다시 옛날 버릇이 도졌나요? 내가 무슨 성에 미친 여자인 줄 알아요?”
엄마는 상당한 노기가 들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것은 곧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나는 조건반사에 가까운 행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나가 있어’라는 엄마의 말이 뒤를 이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고 보면 습관이란 것은 정말 무시 못하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런 나를 만류했다.
“앉아 있거라. 오늘 이야기는 너도 듣도록 해라.”
그 말에 나는 엄마를 보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아버지만 노려보고 있었다. 무엇이 엄마를 저렇게 흥분시킨 것일까? 자위에 대하여는 엄마 자신도 예전에 나에게 시인했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째건, 난 아버지의 만류로 인해 어정쩡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고, 잠시 뒤 아버지는 엄마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도 이제 솔직해져 봐.”
“뭘 솔직 하라는 거죠?”
“당신 자신의 본능에 대해서 말이야.”
“그만해요!”
“당신은 그 점이 문제야. 한 번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다는 점.”
“제 본능과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 상관 있어. 당신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억지 부리지 말아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지금까지 당신 집에 살지도 않았어요.”
“내 집?”
“그래요. 바로 이 집.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집에서 지금까지 산 것 같나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난 벌써 오래 전에 이 집을 나갔을 거에요. 알아요?”
“당신 설마 계속 그런 생각으로 나랑 산 거야?”
“무슨 말이죠?”
“자신의 집에 사는 것이 아닌, 내 집에 와서 산다는 생각 말이야.”
“……”
“그랬군. 당신과 나는 그런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차이가 났었군.”
“말을 하려면 알아 듣게끔 하세요. 뜻 모를 혼잣말 말고요.”
“물론, 당신 생각이 맞을 거야. 결혼하면서 당신은 내 집에 와서 산 것은 맞아. 우리의 자식인 현석이어도 내 성을 따르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결혼한 그 시점부터 난 당신도 우리 집의 사람인 줄 알았었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게 아니군.”
“지금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건가요? 제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알았어. 그만하지. 어째든 당신은 나를 이해한 적이 없어. 아니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 거야. 만약, 이해를 했더라면 차라리 당신은 나 몰래 바람이라도 피웠어야 했어.”
“뭐에욧?”
“진정하고 들어. 당신도 알고, 현석이어도 알 듯이 난 불구자야.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그런 불구자. 그런 내가 밤마다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괴로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 것 같아?”
“그만하세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무슨 소리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아니 모르겠어요. 당신은 나를 마치 성에 미친 여자쯤으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뜻으로 들렸다면 미안해. 난 단지, 당신에게 남자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야.”
“그게 그런 말이잖아요. 부부관계는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에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요.”
“말은 쉽군. 하지만, 당신 스스로 생각해봐. 우리 사이에 부부관계가 없어진 이후로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말이야.”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그 것 때문이라는 말인가요?”
“그래.”
“당신이 틀렸어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의 그 터무니없는 의처증 때문이에요. 당신이 저를 믿어주기만 했어도 우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당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거야. 왜 내가 의처증이 생겼는지를 당신은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으니까.”
“……”
“지금 나에겐 당신과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야. 당신은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우린 부모자식도, 남매도 아닌 부부야. 부부 사이에서 섹스를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돼.”
“그럼 친구라고 생각해요.”
“억지 부리지마.”
“당신이야 말로 억지 부리지 말아요.”
“억지가 아니야.”
“뭐가 아니에요? 단지 섹스를 할 수 없으니까 헤어지자는 것이 말이나 돼요? 그런 이유로 헤어진다면, 세상의 사고 당한 부부들은 모두다 헤어져야 하게요? 그게 부부에요? 부부는 섹스파트너가 아니에요.”
“알아.”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당신이니까.”
“……??”
“당신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당신 나이 이제 겨우 35살이야. 게다가 항상 보살펴 주어야 하는 어린 아이가 있는 것도, 아픈 남편이 있는 것도 아냐. 즉, 자신을 희생해가며 나와 살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하~”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 실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엄마처럼 소리 내어 실소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째건, 엄마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잠시 허공에 시선을 보내다가 입을 떼었다.
“내 존재가 겨우 그런 거였어요? 아이를 보살피는 보모와 남편 뒷바라지나 해야 하는…… 게다가, 남편이 멀쩡할 때에는 남편의 섹스파트너 역할을 해야 하는 그런 존재였나요?”
“당신 일부러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야? 왜 그런 말을 해?”
“제가 못 알아듣는 다고요? 뭘 못 알아 듣는 다는 거죠? 그럼 당신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데요? 지금 이 집에서 내 역할은 다 끝났으니 이제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요?”
“아냐. 내 말은 당신 자신을 희생하지 말라는 말이야.”
“희생요? 당신이 이렇게 저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희생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보라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엄마는 아버지의 말장난 같은 소리에 짜증이 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버지도 화난 듯 말했다.
“왜 그렇게 못 알아 들어?! 나와 사는 동안 계속 이렇게 당신이 괴로움을 당해야 할 거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순간,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고함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했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엄마 편을 들고 있던 나는 정신이 확 깨버리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뭐랄까 착한 줄 알았던 주인공인 알고 보니 나쁜 놈이었을 때 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아버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처럼 당신과 내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서류상으로만 부부로 남아 있는 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슨 도움이 돼?”
“……”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엄마도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그제야 안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무슨 말인가 대꾸 하려고 멈칫거렸지만 끝내 엄마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주방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아버지였다.
“시골에서 지낸 지난 3개월은 정말 마음 편했어. 물론, 처음에는 이 곳이나, 그 곳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었지만, 부모님과 많은 대화도 하고, 고향에 정착한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점점 마음이 편해지더군. 그러다 깨달았어. 당신이 더 이상 내 배우자가 아닌 한명의 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야. 처음에는 그런 깨달음이 너무나 싫었지. 그래서, 부부는 ‘삶의 동반자’라는 글귀를 보고 또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삶의 동반자는 부부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라는 것뿐이더군. 사람은 누구나 혼자 일 수밖에 없다는 것하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이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를 가족으로 라도 본다면……”
“당신과 나는 만나면 괴롭기만 한 가족이니까.”
“……”
“물론, 내가 바뀌면 된다는 것은 알아. 그러나 그건 이상향일 뿐이야. 나에겐 당신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계속 남아 있을 테고, 그런 기억들은 결국 당신과 내가 단순한 가족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우리는 계속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아마 그건 당신 늙어서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될지도 몰라.”
“그럼 이렇게 떨어져 살면 되잖아요. 가끔씩 만나면서……”
“그게 의미가 있을까?”
“헤어지는 것보다는……”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난 단지 당신을 구속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당신이 30살 때에 내가 사고를 당했고, 그때부터 당신은 청상과부처럼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 것이 안타까울 뿐이야.”
“마치, 남처럼 이야기 하네요. 가족이라 해 놓고서는……”
“그런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아니요. 그렇다고 미안할 것까지는 없어요.”
그렇게 말한 엄마는 이마를 손으로 짚는 듯 하다가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식기를 개수대에 넣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버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그날, 아버지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곧장 시골로 내려갔다.
씩씩거리며 아파트 근처의 공원으로 나온 나는 화를 다스리느라 꽤 애를 먹어야 했다.
내 분노의 근원을 알 수는 없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강력한 불길이 일었다. 그건 내가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논리적 판단이 더해지면 더욱 거세게 나를 괴롭혔는데 정말이지 참기 힘들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당시 엄마와 나의 싸움을 처음부터 불공정한 싸움이었다. 엄마는 전통적인 가족개념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스스로 반박을 하면서 완전한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만들어 버린 상태였고, 당시의 나는 비판 없는 가족개념을 단순히 가지고만 있었기에 엄마의 비판적 의견에 당연히 반론을 펼 수가 없었다. 비유하자면, 엄마는 책을 직접 쓴 저술가의 입장이었고, 나는 그 책을 단순히 소유하기만 한 사람일 뿐이었다. 따라서, 엄마는 자신의 책에 대하여 자유롭게 그 내용의 허점을 비판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지만, 책의 단순한 소유주일 뿐이고, 그 책을 제대로 이해도 못한 나는 그런 엄마의 그런 비판에 그냥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그 책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었으니, 저술가의 그런 비판은 내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완전 사기 당한 기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그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엄마는 내 정체성을 파괴하는 독재자와 같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뭐랄까 좋은 마음으로 손님을 초대했는데, 손님이 내 집을 망가트린 꼴이라고나 할까.
당연히 그대로 당할 수만은 없는 일. 나는 공원에서 한참 동안 생각을 하여 엄마의 생각을 공격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한 다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내가 막 집에 들어섰을 때 엄마는 거실을 다시 닦고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까 청소했는데 뭐 하러 또 닦아?”
“그냥 허전해서……”
“뭐가 허전해?”
“글세…… 네 아버지가 잠시 집을 비운 것뿐인데 기분이 그러네……”
엄마는 아까의 일은 다 잊은 듯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내 말이나 행동에 상처 같은 것은 받지도 않았는지도 몰랐다. 난 직감적으로 엄마와 대화를 하는 것이 손해일 거라 느꼈지만, 지고는 못산다는 쪼잔한 남성적 기질 때문에 소파에 앉으며 말을 꺼내고 말았다.
“이야기 좀 해!”
“아까 그 이야기라면 그만 둬.”
“뭘 그만 둬? 엄마라면 외할아버지가 엄마의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면 가만히 있을 거야?”
내 준비된 말은 거침없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고, 엄마의 표정을 읽기 위해서 엄마의 눈을 직시했다. 하지만, 엄마는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실제로 그런 거는 아니잖아.”
“실제로든 상상으로든…… 어째든 가만히 있을 거야?”
“글세…… 네 외할아버지가 굳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 막지는 못할 거야.”
“받아들이겠다는 말이야?”
“네 외할아버지가 그러겠다고 하면……”
“하~~ 그럼 외할머니 인생은 망가져도 좋다는 말이네? 그리고, 엄마는 엄마의 친구를 새엄마로 받아 들일 수도 있다는 말이고……”
그 말에 엄마는 거실 닦는 행동을 멈추고서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앉은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그건 다른 문제야.”
“뭐가 달라?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만약, 네 외할아버지가 내 친구와 결혼을 하겠다고 할 정도이면, 이미 네 외할머니를 버릴 작정을 한 후이기 때문에 설령, 네 외할아버지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불행이 달라질 것은 없어. 그리고, 내가 내 친구를 새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안 들이고는 내 판단에 달린 거야. 난 네 외할아버지의 소유물이 아니니까. 그분의 결정은 그분의 결정이고, 내 생각은 내 생각이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니!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화만 내지 말고 차분히 내 말을 생각해. 그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가족이 운명공동체라고는 하지만, 그건 사실 허무한 말이야. 가족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 유리잔과 같아. 아주 작은 충격에도 깨어질 수 있는 그런 거야. 그 유리잔을 평생 지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부부의 이혼으로 깨어지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자식을 버리기도 해. 때론 가족간의 불화로 인해서 평생 서로 얼굴을 보지 않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살자는 말이야?”
나는 점점 극단적으로 나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전부다 그랬다.
“그러니까 엄마 말은 부모도 필요 없고, 자식도 필요 없다는 그런 말이야?”
“너 왜 자꾸 그러니? 그런 말이 아니란 것을 알잖아.”
“뭐가 아냐? 내 친구와 사귈 수도 있다고 한 것은 엄마야!! 뭐 아버지와 이혼하고 상혁이랑 결혼도 할 수 있다고? 그런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도대체 엄마는 가족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넌 가족을 무엇이라 생각하니?”
“그건……”
난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쉽게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데 전혀 문장으로 형상화 되지를 않았다. 아니 더 엄밀히 말하면, 말로 표현하려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족’이란 것이 점점 더 이해가 안 되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가족만큼 분명하고 명확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를 못하니 말이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난 ‘가족’이란 글자에 대하여 한번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족은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늘 내 곁에 있어왔고,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는 단 한번의 고민도 없었다. 처음으로 느껴본 참담한 낭패였다.
그렇게 되자 난 더욱 어깃장을 놓았다.
“좋아 엄마 마음대로 해!! 세상이 개판되던 말던 엄마 마음대로 하라고! 세상이 개판되어 가족도 몰라보고, 근친상간도 일어나도록 말이야.”
그 말에 엄마의 안색이 굳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거니? 왜 근친상간이란 말까지 하는 거야?”
“엄마 말이 그런 말이니까 그렇지. 내 친구와 결혼도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게 근친상간과 무슨 상관이니?”
“헹~! 그래도 근친상간은 싫은가 보지?”
난 빈정거렸는데, 지금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는 치졸함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도 화가 난 것 같았다.
“말해봐 내 말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엄마부터 말해! 근친상간이 좋아 나빠?”
난 대답은 않고 엄마를 오히려 공격했고, 그런 나를 엄마는 말없이 한 참을 응시하다가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 깊은 호흡을 한 뒤 말했다.
“그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야.”
“하~! 그럼 그것도 개인의 선택이라는 거야?”
“그래.”
“정말 엄마 어떻게 된 거 아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럼 넌 근친상간이 왜 나쁜지 말해 볼래?”
그렇게 말하는 엄마는 정말 화가 난 듯 보였다. 하지만, 내 분노는 엄마의 반응을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엄마의 얼굴에 분노의 기색이 보이자 한편으로 즐거운 느낌마저 생겼다. 뭐랄까 드디어 궁지로만 몰리던 기분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쁜 거에 이유가 어디 있어?”
“이유 없이 나쁜 것은 없어!! 도둑, 사기, 강도, 살인 같은 것들이 나쁜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나쁜 것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근친상간도 나쁜 것이 되려면 분명하게 이유가 있어야 돼.”
“……”
“근친상간을 하면, 누가 피해를 보는 거니? 폭행이 아닌, 두 당사자간에 합의해서 관계를 가지는 것이라면 내가 아는 한 피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데 그게 왜 나쁜 거니?”
그런 엄마의 말에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럼 바람 피는 것은 누가 피해를 보는데? 그런 것은 왜 간통죄로 처벌하는데? 엄마는 아버지가 바람을 피면 이해 할 수 있어? 그건 죄가 아니라고 보는 거야?”
“부부는 틀려. 부부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관계니까. 따라서, 바람을 피는 것은 그런 신뢰를 깨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죄가 돼!”
“엄마 말은 궤변이야. 가족은 모두 다 신뢰를 바탕으로 해.”
“그래 가족 모두에게 신뢰는 필요해. 하지만, 그건 성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아. 따라서, 부부 외의 가족들이 바람을 피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부부는 분명히 죄가 돼.”
“그래? 그럼 적어도 아버지는 이제 바람 피워도 되겠네?”
“무슨……”
“모르는 척 하지마. 아버지가 성 기능을 상실해서 엄마와 더 이상 관계를 맺지 않잖아. 그러니까 더 이상 엄마와 아버지는 성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할 수 없잖아. 따라서,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되는 거 아냐? 아니지, 엄마도 이제는 바람을 피워도 되겠네. 그래 엄마는 지금 바람 피우고 있어? 엄마 생각대로라면 바람을 피워도 되잖아.”
내 말에 엄마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게 내 눈에는 내 논리에 져서 그런 것 같았다. 엄마와의 언쟁에서 처음으로 내가 기선을 잡은 것 같았고, 나는 더욱 기가 살아서 더욱 거침없이 말을 뱉었다.
“왜 바람 피울만한 상대가 없어? 엄마에게 응해주는 남자가 없는 거야? 정 없다면 상혁이를 불러 줄까? 아니면, 나라도 엄마의 상대가 되어 줄까? 말만 해. 상혁이를 불러주든, 내가 직접 엄마를 상대 해주든 얼마든지 해 줄 테니까 말이야. 상혁이 못지 않게 나도 엄마에게 성적으로 관심 많아. 어떨 대는 엄마와 관계를 가지는 꿈도 꾸었고, 몇 번은 엄마를 생각하며 자위도 했었어. 그런데 왜 내가 그런 내 욕망을 참은 줄 알아? 내 엄마이기 때문이었어. 엄마와 난 같은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거였어. 그런데, 엄마 생각을 들어보니까 내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거네? 안 그래? 말해봐!!!”
숨도 안 쉬고 말을 끝내었을 때, 내 몸에서 짜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같은 쾌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전율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는 듯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저 내 눈을 한번 응시하고서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고, 나는 완전히 자아도취에 빠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소인배처럼 엄마가 여유롭게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을 똥개 근성으로 물고 늘어졌다.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말해 보라니까. 나도 엄마 좋아해. 엄마와 성관계를 가지고 싶고, 엄마와 사귀고 싶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니까. 어서 엄마의 의견을 말해봐! 만약, 엄마가 싫다면 그만 둘게. 대신, 엄마에게 거절 당한 나는 엄마와 같이 살 수 없을 거야. 세상의 논리대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헤어지는 것처럼, 엄마와 나도 헤어져야 해. 알아 들어?!!”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나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런 내 말은 확신에 찬 말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를 상대로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하는 저능아 수준의 말이었지만 말이다. 그건 당시의 엄마도 아는 것이었을 거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내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그냥 조용일 일어나서 안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왜 그랬을까?
지금에 와서 가끔 엄마에게 그날 왜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는지 물어보지만,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하면서 웃기만 할 뿐이다. 느낌상으로는 내가 기분 나빠할 까봐 일부러 말 안 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어째든 그 날 결국 내가 승리를 했고, 이후로 난 많이 변했다.
말싸움의 승리에 도취하여 엄마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어줍잖은 말도 하고, 행동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가 보기에 그런 내가 얼마나 꼴사나웠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은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까지의 내 삶에 있어서 지우고 싶은 부분을 지우라고 한다면, ‘꼴값’을 떤 그 시절을 지우고 싶다. 지우개로 싹싹 말이다. 그렇다고 그 시절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된 것은 아니다. 가족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고, 근친상간이란 것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하였고, 그런 생각들은 지금의 내 가치관 형성의 가장 밑 바탕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내 18살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난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의 잣대와 내가 보고 배운 것들에 비추어 보면 그건 분명 잘못 된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리면 그렇게 잘못된 것도 아닌 그런 것이니 절대적으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일 뿐이다.
어째건, 그 일의 시작은 12월 19일 내 생일에서 비롯 되었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시골에서 잠시 올라온 아버지는 엉뚱하게도 엄마에게 이혼을 요구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말처럼 했는데, 그것은 엄마에게 남자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에서 시작했다.
“당신 만나는 남자 없어?”
아버지의 그 말에 엄마와 난 ‘또 의처증이군’ 하는 시선을 주고 받았고, 엄마는 익숙한 말을 대꾸를 하듯 무덤덤하게 아버지의 말에 대꾸했다.
“없어요. 제가 누굴 만나요.”
“만나지 말라는 말이 아니야.”
“없다니까요.”
“나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망치지는 마.”
그 말은 예전과 다른 아버지의 말이었지만, 엄마도 나도 그 것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제 인생은 불행하지 않아요.”
“그럼 다행이고, 근데 이렇게 혼자 지내는 거 힘들지 않아?”
“제가 왜 혼자에요? 당신도 있고, 현석이도 있는데……”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
“그런 게 아니라면 그만 해요. 애도 있는데……”
엄마는 내 핑계를 대면서 아버지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예전에 차마 해서는 안될 말까지 다 했던 아버지라 그런지 엄마의 말은 먹히지 않았다.
“이 녀석도 알 거 다 아는데 뭐……”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나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짖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나이는 이제 겨우 35살이야. 이대로 평생 혼자 지내는 건 힘들 거야. 지금이라도 새 출발해.”
뜻밖의 말에 엄마는 잠시 멍하니 아버지를 보다가 입을 떼었다.
“무슨 뜻이에요?”
“말 그대로야. 서류에는 언제든 도장 찍어 줄 테니까 괜찮은 남자를 찾아봐.”
그 말에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시골에 가서는 겨우 그런 생각만 한 거에요?”
“글세……”
“시비 거는 것이라면 그만 둬요. 이젠 대꾸하는 것도 귀찮아요.”
“큿~~”
“비웃지 말아요.”
“그런 거 아냐. 그 동안 내가 당신을 괴롭힌 생각이 나서 일 뿐이니까.”
“알면 되었어요. 식사나 하세요.”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아니라고는 못해요.”
엄마의 그 답변에 아버지는 식사하던 것을 멈추고 말을 꺼내었다.
“미안해. 내가 많이 옹졸했어. 막상 시골에 내려가서 조용히 지내다 보니까 그제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더군.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내가 당신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의심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아버지의 음성은 낮으면서도 분명했지만, 엄마를 보고 말하지는 않았다. 혼자 독백을 하듯이, 혹은 밥그릇하고 대화를 하는 냥 밥그릇만 보고 말을 이어갔다.
“그저 내 삶에 있어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고, 당신을 사랑함에 있어서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잃어버린 것뿐인데, 난 모든 것을 다 잃은 듯 했었어. 그래서 당신을 괴롭히고, 현석이를 괴롭혔어. 해서는 안될 말까지 해가면서 말이야. 그것이 잘못이란 것을 알면서도 난 멈출 수가 없었지. 머리에서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들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시골에서 조용히 생활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았어.”
“다행이군요. 그럼 됐어요. 그만해요.”
“아니, 그것만 안 것이 아니야.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가치도 함께 알았거든.”
“무슨……?”
“난 잃어버렸으니까 문제가 안되지만, 당신은 아니니까.”
“이상한 소리라면 그만 둬요.”
“그럴까?”
“그래요.”
“아니, 당신이 틀렸어.”
“제가요?”
“그래. 부정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나에겐 없으니까 부정할 수도 없지만, 당신은 그럴 수 없어.”
“도대체 애 앞에서 왜 이래요? 또 옛날처럼……”
엄마는 조금 언성을 높여 화를 내었는데, 아버지가 엄마의 말을 잘랐다.
“현석이어도 알아야 해!”
“……!!”
“이건 당신과 나만의 문제가 아니야. 현석이어도 관련이 있어.”
“억지부리지 말아요.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것들은 현석이와 관련이 없어요. 당신과 나만의 문제일 뿐이에요.”
“현석이는 애완용 동물이 아냐. 먹을 것만 주면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구.”
“말 잘했어요. 현석이는 애완용 동물이 아니에요. 당신이 옛날에 했던 말이나, 지금 하는 말들이 얼마나 충격이 될지 생각이나 해 보셨어요?!”
엄마는 다소 흥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생각해봤어.”
“그럼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니에요!!”
“아니. 사실을 숨기면서까지 현석이에게 좋은 면만을 보여주는 것은 의미가 없어. 그 것은 깨어지기 쉬운 환상을 심어주는 것에 불과해.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은 뭐든 균형적으로 배울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만약, 내가 과거에 현석이에게 까지 몹쓸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이야기를 현석이 앞에서 할 필요는 없겠지. 혹여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현석이와 따로 대화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궤변이에요.”
“그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어차피 지금 대화의 중심은 그게 아니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해.”
“좋아요.”
“다만, 이 점은 생각해주길 바래. 내가 지금 바라는 것은 당신과의 이혼이라는 것.”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을 했고, 그런 아버지를 엄마와 난 얼빠진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해는 말아줘. 당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니까.”
“……!!!”
“난 그냥 당신이 지금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못들은 걸로 하겠어요.”
“그런다고 내 생각이 바뀌지는 않아.”
“제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그런 생각 말아요.”
“당신 지금 행복해?”
“예. 충분히.”
“거짓말 하지마.”
“당신이 뭘 안다고 제 말이 거짓말이란 거죠?”
그 말을 한 엄마는 다분히 감정적이었는데, 그건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아버지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했다.
“밤마다 괴로워하잖아.”
순간, 엄마의 얼굴이 확하니 붉어지면서 상당히 분노했다.
“도대체 애 앞에서 무슨 소리에요? 다시 옛날 버릇이 도졌나요? 내가 무슨 성에 미친 여자인 줄 알아요?”
엄마는 상당한 노기가 들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것은 곧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나는 조건반사에 가까운 행동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나가 있어’라는 엄마의 말이 뒤를 이을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고 보면 습관이란 것은 정말 무시 못하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런 나를 만류했다.
“앉아 있거라. 오늘 이야기는 너도 듣도록 해라.”
그 말에 나는 엄마를 보았지만, 엄마는 나에게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아버지만 노려보고 있었다. 무엇이 엄마를 저렇게 흥분시킨 것일까? 자위에 대하여는 엄마 자신도 예전에 나에게 시인했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어째건, 난 아버지의 만류로 인해 어정쩡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고, 잠시 뒤 아버지는 엄마에게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도 이제 솔직해져 봐.”
“뭘 솔직 하라는 거죠?”
“당신 자신의 본능에 대해서 말이야.”
“그만해요!”
“당신은 그 점이 문제야. 한 번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다는 점.”
“제 본능과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에요?”
“아니 상관 있어. 당신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신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억지 부리지 말아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지금까지 당신 집에 살지도 않았어요.”
“내 집?”
“그래요. 바로 이 집.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집에서 지금까지 산 것 같나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난 벌써 오래 전에 이 집을 나갔을 거에요. 알아요?”
“당신 설마 계속 그런 생각으로 나랑 산 거야?”
“무슨 말이죠?”
“자신의 집에 사는 것이 아닌, 내 집에 와서 산다는 생각 말이야.”
“……”
“그랬군. 당신과 나는 그런 가장 기초적인 것에서부터 차이가 났었군.”
“말을 하려면 알아 듣게끔 하세요. 뜻 모를 혼잣말 말고요.”
“물론, 당신 생각이 맞을 거야. 결혼하면서 당신은 내 집에 와서 산 것은 맞아. 우리의 자식인 현석이어도 내 성을 따르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결혼한 그 시점부터 난 당신도 우리 집의 사람인 줄 알았었어. 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게 아니군.”
“지금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건가요? 제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알았어. 그만하지. 어째든 당신은 나를 이해한 적이 없어. 아니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 거야. 만약, 이해를 했더라면 차라리 당신은 나 몰래 바람이라도 피웠어야 했어.”
“뭐에욧?”
“진정하고 들어. 당신도 알고, 현석이어도 알 듯이 난 불구자야. 치료조차 받을 수 없는 그런 불구자. 그런 내가 밤마다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괴로워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 것 같아?”
“그만하세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무슨 소리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잖아.”
“아니 모르겠어요. 당신은 나를 마치 성에 미친 여자쯤으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뜻으로 들렸다면 미안해. 난 단지, 당신에게 남자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야.”
“그게 그런 말이잖아요. 부부관계는 그저 삶의 한 부분일 뿐이에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요.”
“말은 쉽군. 하지만, 당신 스스로 생각해봐. 우리 사이에 부부관계가 없어진 이후로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말이야.”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그 것 때문이라는 말인가요?”
“그래.”
“당신이 틀렸어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의 그 터무니없는 의처증 때문이에요. 당신이 저를 믿어주기만 했어도 우리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었을 거에요.”
“그래서 당신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거야. 왜 내가 의처증이 생겼는지를 당신은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으니까.”
“……”
“지금 나에겐 당신과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야. 당신은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우린 부모자식도, 남매도 아닌 부부야. 부부 사이에서 섹스를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돼.”
“그럼 친구라고 생각해요.”
“억지 부리지마.”
“당신이야 말로 억지 부리지 말아요.”
“억지가 아니야.”
“뭐가 아니에요? 단지 섹스를 할 수 없으니까 헤어지자는 것이 말이나 돼요? 그런 이유로 헤어진다면, 세상의 사고 당한 부부들은 모두다 헤어져야 하게요? 그게 부부에요? 부부는 섹스파트너가 아니에요.”
“알아.”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당신이니까.”
“……??”
“당신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당신 나이 이제 겨우 35살이야. 게다가 항상 보살펴 주어야 하는 어린 아이가 있는 것도, 아픈 남편이 있는 것도 아냐. 즉, 자신을 희생해가며 나와 살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하~”
엄마는 어이가 없는 듯 실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엄마처럼 소리 내어 실소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어째건, 엄마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잠시 허공에 시선을 보내다가 입을 떼었다.
“내 존재가 겨우 그런 거였어요? 아이를 보살피는 보모와 남편 뒷바라지나 해야 하는…… 게다가, 남편이 멀쩡할 때에는 남편의 섹스파트너 역할을 해야 하는 그런 존재였나요?”
“당신 일부러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야? 왜 그런 말을 해?”
“제가 못 알아듣는 다고요? 뭘 못 알아 듣는 다는 거죠? 그럼 당신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데요? 지금 이 집에서 내 역할은 다 끝났으니 이제 나가라는 소리 아닌가요?”
“아냐. 내 말은 당신 자신을 희생하지 말라는 말이야.”
“희생요? 당신이 이렇게 저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희생할 것도 없어요.”
“그래서 생각해보라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엄마는 아버지의 말장난 같은 소리에 짜증이 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버지도 화난 듯 말했다.
“왜 그렇게 못 알아 들어?! 나와 사는 동안 계속 이렇게 당신이 괴로움을 당해야 할 거란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순간, 엄마의 표정이 굳어졌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고함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나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했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엄마 편을 들고 있던 나는 정신이 확 깨버리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뭐랄까 착한 줄 알았던 주인공인 알고 보니 나쁜 놈이었을 때 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아버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지금처럼 당신과 내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서류상으로만 부부로 남아 있는 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슨 도움이 돼?”
“……”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엄마도 아버지의 진정한 뜻을 그제야 안 것이 분명했다.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무슨 말인가 대꾸 하려고 멈칫거렸지만 끝내 엄마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고, 주방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아버지였다.
“시골에서 지낸 지난 3개월은 정말 마음 편했어. 물론, 처음에는 이 곳이나, 그 곳이나 별반 다를 것도 없었지만, 부모님과 많은 대화도 하고, 고향에 정착한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점점 마음이 편해지더군. 그러다 깨달았어. 당신이 더 이상 내 배우자가 아닌 한명의 가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야. 처음에는 그런 깨달음이 너무나 싫었지. 그래서, 부부는 ‘삶의 동반자’라는 글귀를 보고 또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삶의 동반자는 부부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라는 것뿐이더군. 사람은 누구나 혼자 일 수밖에 없다는 것하고 말이야.”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엄마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이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저를 가족으로 라도 본다면……”
“당신과 나는 만나면 괴롭기만 한 가족이니까.”
“……”
“물론, 내가 바뀌면 된다는 것은 알아. 그러나 그건 이상향일 뿐이야. 나에겐 당신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계속 남아 있을 테고, 그런 기억들은 결국 당신과 내가 단순한 가족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우리는 계속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아마 그건 당신 늙어서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될지도 몰라.”
“그럼 이렇게 떨어져 살면 되잖아요. 가끔씩 만나면서……”
“그게 의미가 있을까?”
“헤어지는 것보다는……”
“그래.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난 단지 당신을 구속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당신이 30살 때에 내가 사고를 당했고, 그때부터 당신은 청상과부처럼 살아왔는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 한다 것이 안타까울 뿐이야.”
“마치, 남처럼 이야기 하네요. 가족이라 해 놓고서는……”
“그런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아니요. 그렇다고 미안할 것까지는 없어요.”
그렇게 말한 엄마는 이마를 손으로 짚는 듯 하다가 머리를 뒤로 쓸어 올리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식기를 개수대에 넣었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아버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그날, 아버지는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가벼운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곧장 시골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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