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의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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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에 황금의 주말까지 연속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한 주입니다.
다들 추석을 잘 쇠셨는지 모르겠군요.
먼거리를 여행하셨던 분들은 지금쯤 여독을 풀고 계시겠군요. 어째건, 다들 좋은 주말을 보내기 바랍니다. 이 글은 딱히 할일이 없어서 적었는데, 재미가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는 말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WRITTEN BY 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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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3~40분 정도의 열정이 지나고, 다시 20여분의 여운이 지나면 내 몸과 마음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내 품에 안긴 여인은 잠이 들어 새근새근 고른 호흡을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녀가 이렇게 내 품에 안겨 잠이든 세월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런 세월 탓인지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녀.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난 지금까지 애써 그런 자문을 피해왔었다. 사랑이라 말하기엔 그녀와 나의 관계는 용서될 수 없는 관계이기에 말이다. 그것은 더러운 욕망도, 빗나간 사랑도 아니라 믿으면서도 무엇이 두려운지 나도, 그녀도 그 질문에는 침묵했다. 다만, 그녀는 예전에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일 뿐이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단지 그런 관계 말이야. 그것이 세상의 잣대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거야.”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정의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 한 켠을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를 멀리 던져 버렸고, 다시는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과 타협하기 보다는 그녀와 타협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금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던 그녀가 뒤척였다.
긴 웨이브 머리가 잘 어울리고, 옅은 화장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녀는 내 엄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고, 영원한 가치란 것을 그녀도, 나도, 세상마저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구속력도 없고, 정답도 없는 가치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녀와 나의 관계가 어떠하든 나는 그녀를 내 엄마로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코 그녀를 내 아내로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내 여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말이 궤변처럼 들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내 진솔한 심정을 적은 것이다. 나에게 여러분들의 판단은 필요하지 않다. 내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생각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나의 인정일 뿐이다.
1. 가족이란 가치관을 형성하는 관계.
사고로 성적 능력을 상실하기 전까지의 아버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엄마에 대하여 집착한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사랑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었고, 엄마 자신이 아버지의 그런 관심을 즐기고 있었으니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문제라면 내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내가 민망할 때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외국 영화에서 보면 자식들 앞에서 부모가 가볍게 입맞춤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 아버지와 엄마는 때때로 가벼운 키스를 넘어 깊은 키스를 나누었고, 내가 못 보는 줄 알고 서로 짓궂은 장난을 할 때도 있었다. 가령, 아버지가 엄마의 가슴을 툭 건드린다거나, 엉덩이를 슬쩍 쓰다듬는다던가 하는 그런 장난 말이다. 정말 금슬이 좋아도 너무 좋은 아버지와 엄마였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아버지가 성적 능력을 상실한 뒤로는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엄마와 아버지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엄마가 아버지의 관심을 거부함으로써 아버지의 관심은 집착이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술을 취한 상태에서 엄마를 추궁하는 아버지의 의처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고, 나중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건 의심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억지에 가까웠고, 엄마를 악의적으로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거리에서 엄마에게 길을 물었던 사람에서부터 이웃의 남자들까지, 근처에 사는 불량한 중학교 남학생에서부터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의 바람둥이 노인까지 아버지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남자들을 거론하였다. 황당하게도 그 중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응석을 많이 부렸는데, 그런 습관은 엄마와 비슷한 키가 되었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었다. 그런 내 습관이 아버지의 의심을 자극한 것이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그런 의심이 시작 된지는 모른다. 말했듯이 내 응석은 내 생활의 일부였으니까. 짐작으로는 아마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에 있었던 그 응석 때문일 거라 생각을 할 뿐이다.
당시 엄마와 나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TV를 보았었는데, TV드라마에서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가 들어오면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졸랐고, 엄마는 안 된다고 했었다. 당연히 나는 엄마에게 아이가 칭얼거리는 것처럼 엄마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 응석을 부리며 졸랐는데, 그때 아버지가 갑자기 들이 닥친 거였다. 땀을 흘리면서 엄마와 뒤엉켜 있는 자세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엄마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버지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인해 나의 응석은 그 곳에서 끝났고, 그날 난 아버지에게서 뭔지 모를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버지의 의처증에 나도 가끔씩 거론이 되었다. 당연히 엄마와 나는 황당해 했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당시 15살의 나는 아버지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아버지의 그런 터무니 없는 의심에 몹시 기분이 상했고,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조차 거부했었다. 덕분에 중간에서 엄마만 아주 난처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아버지의 의심과 주정에 맞대응을 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큰소리를 내며 싸우기도 했었다. 그렇게 심한 싸움은 아니었지만 어째든 조용하기만 하던 우리 집에서는 큰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아버지와 엄마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깨어나면 끝없는 절망감을 느끼며 나에게 여러 번 사과를 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엄마가 나를 타이르며 혹여 내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감싸주었으며,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변명까지 해주었었던 것이다.
“네 아버지는 지금 병에 걸린 거란다. 우리가 이해해야 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게 끔 했고, 본인이 솔선수범하여 아버지의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주었다. 물론, 그건 싸움이 있을 때마다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내 나이 18살이 되었을 때, 엄마와 난 더 이상 아버지의 의처증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무슨 시선을 보내건 엄마와 나는 그로부터 자유로웠다.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의 의처증뿐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의 아버지는 엄마와 내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고, 엄마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 스스로가 우리를 피했다. 엄마가 아무리 아버지를 우리들 생활 속으로 끌어당기려 해도 그는 갈수록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었다.
그 날도 그랬다. TV를 보던 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엄마가 근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쉬게요?”
“응. 피곤하네……”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냐.”
“아니긴요. 요 근래 들어 당신 혈색도 좋지 않고 계속 피곤하다고 하면서……”
“걱정마. 병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얼마 전에 사무실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아무런 이상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빙긋 웃어 보였는데, 그 표정은 마치 세상을 포기한 사람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서 어떤 불안감을 느껴서 일까?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이상이 없긴 뭐가 없어요. 이야기 좀 해요.”
다음 날, 엄마는 아버지를 데리고 함께 병원을 갔다.
하지만, 종합병원에서 받은 정밀검진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냥 몸이 전체적으로 많이 약하다는 검사결과만 통보 받았다. 정말 맥 빠지는 검사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뭐 병이 없다는 검사결과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분명 눈에 보일 정도로 아버지는 기운이 빠져있는데 겨우 그런 검사결과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병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 엄마는 아버지를 위해서 보약을 지어 왔다. 하지만, 보약이라면 벌써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 생활의 일부나 다름이 없던 것이라 결과적으로 본다면 괜히 병원비만 날린 셈이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갖 보약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아버지의 건강이 오히려 약해지는 이유가 말이다. 엄마와 난 머리를 맞대고 그 원인을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변호사로 일하는 아버지는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후배 변호사를 5명이나 밑에 두고 있는 만큼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건강은 점점 나빠지는 것일까?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했지만, 도무지 아버지가 스트레스 받을 만한 곳이 없었다. 오직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성적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엄마 혹시 “성 불구”라는 것에서 아버지가 스트레스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성에 관련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된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닐 거야. 그게 문제라면 오래 전에 그랬어야지.”
“그때부터 조금씩 나빠져 온 것일 수 있잖아.”
“아냐. 네 아버지는 근래 들어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어.”
“……”
난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엄마 말대로 분명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였다. 그뿐이 아니라, 근래에는 술에 취했을 때에도 의처증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모자가 붙어 처먹고 있다는 걸?’이라며 떼쓰듯 말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의 관심은 아버지가 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의 건강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원인을 분석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버지의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에서부터 어쩌다 한 마디씩 내 뱉는 이야기까지 엄마와 나는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와 내가 급속도로 가까워 진 것은 말이다. 18년이란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세대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엄마도 나를 어리게만 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서 느껴졌었다.
그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내 속에 숨어있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을 깨버릴 수 있었고, 엄마의 관념 속에 숨어 있던 “자식”이란 고정관념이 깨져버렸으니 말이다. 그건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서로를 비로서 제대로 볼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였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난 엄마를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엄마의 본 모습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가 엄마에게 강요한 엄마의 가면이었다. 그렇다고 나를 걱정하고, 나에게 헌신하는 것이 엄마의 뜻과 상관없었다는 게 아니다. 분명, 그런 나에게 보여준 엄마의 사랑은 엄마에게 존재하는 엄마의 모습이지만, 그게 엄마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도 사람이고, 여자이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아직 사랑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고, 아름다운 여자의 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아버지 외의 남자를 꿈꾸기도 하고, 우연히 스쳐 지나간 한 남자로 인해 가슴 떨리는 설레임도 느끼는 보통의 여자였다. 당연히 성적인 욕구도 있는 여자이고 말이다. 어느 날, 성에 대하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참을 수는 있지만, 참기가 힘든 건 사실이야. 네 아버지가 사고로 기능을 상실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성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힘들 줄은 몰랐어. 예전에는 그냥 네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즐겁지 않았다는 말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나도 즐거웠지. 하지만, 당시에는 남편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에 더 만족을 했었어. 아니 그렇게 착각을 했었다고 봐야 할 거야.”
“지금은 그 착각에서 벗어 났다는 거네?”
“그래.”
“듣기로는 지금의 엄마 나이가 가장 참기 힘든 나이라던데…… 남자는 내 나이대가 가장 힘든 때고 말이야.”
“풋~ 그래서 너 힘드니?”
“뭐 전혀 안 힘들다고는 할 수 없지. 엄마도 알잖아.”
“뭘 알아?”
짐짓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순진하게 반문했다. 난 그런 엄마의 태도변화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욕실에서 자위를 하다가 걸린 일을 엄마는 기억도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순간적으로 내 볼이 달아 올랐다.
“왜 모르는 척 하고 그래?”
“뭘? 무슨 말이니?”
“아 진짜…… 작년의 그 사건 벌써 잊었어?”
“무슨 사건?”
“정말 왜 그래?”
내 언성은 다소 높아 졌고, 그제서야 엄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알아. 푸풋~~”
“웃지마!”
“그래 알았어. 그때 많이 놀랬지?”
“당연하지. 갑자기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내 심장도 마찬가지였었어. 아무 생각도 없이 문을 열었는데, 네가 바지를 내리고서 그 짓을 하고 있었으니……”
“쩝…… 난 잘못한 거 없어. 노크도 없이 문을 연 엄마가 잘못이야.”
“어째서 내 잘못이니? 네가 있는 줄 알고 그런 것도 아닌데……”
“알았어. 엄마 잘못도 아냐. 근데,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말해 줄 거야?”
“뭔데?”
“엄마도 자위 같은 거 해?”
“……”
“말해봐 엄마도 자위 해?”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나는 대답을 재촉했지만, 엄마는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내 눈만 응시했다. 마치, ‘이 애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나’ 하는 뜻이 담긴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엄마의 표정을 무시하고 다시금 재촉했다.
“어서 말해줘.”
“알아서 뭐하게?”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게 뭐가 궁금하니?”
“여자의 일이니까 궁금하지. 어서 말해봐. 어서…… 응?”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칭얼거리듯 보챘고, 결국 엄마는 마지 못한 듯 가볍게 실소하면서 입을 떼었다.
“네 생각은 어떨 것 같아?”
“여자도 할 것 같아!”
“그래. 여자도 해……”
“그럼 몇 일에 한번씩 하는 데?”
“뭐?”
“난 솔직히 거의 매일 해. 피곤한 날이나, 바쁜 날을 빼면. 엄마는?”
“뭐 매일?”
“응.”
“몸에 안 좋아 그러면…… 너 너무 자주 하는구나. 줄여.”
“풋~ 그래서 내 몸이 약해 보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리던 엄마는 순간 뭔가 생각이 난 듯,
“아차! 내 정신 좀 봐. 수미네 돈을 준다는 것이……”
그리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것으로 엄마와 나의 성에 관련된 구체적인 대화는 막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수미네 핑계를 대고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한 것 같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불행히도 지금의 엄마는 그때의 일을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엄마는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의심을 내가 처음 듣게 된 날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그 기억은 없다.
어째건, 그렇게 물꼬가 터진 엄마와 나의 성에 관련된 대화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고 적나라한 표현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성에 관련된 이야기는 언제나 새로웠고, 재미있었으며, 지루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엄마의 눈에선 생기가 넘쳤는데,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게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에게 점점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남성들에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기에 한편으로 그런 변화가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여기서 변화란, 머리 속 상상이 아닌 실제의 변화를 말한다. 가령, 몸에 달라 붙는 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내 아랫도리가 불룩하니 부풀어 오른 것을 엄마에게 들킨다든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장난스럽게 엄마를 뒤에서 포옹을 하다가 아랫도리로 엄마의 엉덩이에 압박을 하게 된 경우이다.
그런 내 변화를 엄마는 언제나 가볍게 받아주었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내가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엄마로서는 특별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아들을 상대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엄마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습다고 생각했기에 말이다. 물론, 엄마의 마음은 내 기준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일 뿐 엄마로부터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그러다, 엄마를 새롭게 생각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날은 내 18살이 되어 맞이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중요성에 비해서 날짜를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날의 상황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원인도 없이 건강이 계속 나빠진 아버지가 결국 변호사사무실을 후배 변호사들에게 맡기고 요양을 하기 위해 시골의 할아버지 댁으로 떠난 날이기도 했고,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는 아버지를 위한 굿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할머니가 어느 무속인에게 물어보니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것은 귀신의 농간 때문이라서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엄마도 그런 말은 믿지 않았다. 게다가, 외가가 기독교 집안이었던 탓에 무속신앙에 대한 엄마의 거부감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다고 엄마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난 그때, 처음으로 가풍이란 단어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 확연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어도 한 사람의 가치관에 확실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힘에 대해서 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사에 대한 엄마의 부정적인 시각은 그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데 있어서의 불평쯤이라 여겼었다.
어째건, 엄마는 고향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만 했을 뿐 같이 가지 않았고, 난 학교 때문에 그 배웅조차도 하지 못했다.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댁은 5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었으므로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지 않는 한 나로선 방학 때에나 아버지를 볼 수 있었으니 배웅도 하지 못했다는 건 당시 꽤 마음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 탓에 그날 하루는 학교의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복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아침에 본 그 집이 아니었다.
엄마도 복잡한 심정을 다스리기 위해서인지 때 아니게 집안 대청소와 가구배치를 새롭게 했고, 내가 집에 갔을 때에는 한창 마무리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집이 왜 이래?”
“어.. 왔니? 청소 좀 했어. 가을도 되고 해서……”
“이게 청소야? 집을 아주 바꾸어 놓았네…… 근데, 여기 있던 장식장은 어디 갔어?”
“어떤 거? 아.. 그거 서재로 옮겼어.”
“서재? 서재에 뭐 같다 놓는 거 아버지가 싫어하잖아.”
“한동안 오지지 않을 거니까…… 오시면 다시 꺼내오면 돼.”
“그래도 갑자기 오기라도 하면 기분이 나쁠 텐데.”
“……”
엄마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 했다. 난 그런 엄마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가 간편한 실내복으로 갈아 입고서 엄마의 청소를 도왔다. 뭐 도움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뒷정리와 쓰레기 버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뒷정리도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서 한 40분은 걸렸다. 내가 막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들어 왔을 때, 안방에서 엄마가 무엇인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사진이었다.
“앨범 정리 하는 거야?”
“치우기 전에 잠시 보는 거야.”
“어…… 이 사진은 못 보던 사진인데?”
칼라 사진이긴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아주 오래된 듯한 느낌이 났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엄마였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원피스 차림으로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만화에서 여자 주인공을 환상적으로 그릴 때 종종 쓰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사진 속의 엄마는 왠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풋~~”
“왜 웃니?”
“촌스럽잖아……”
“뭐가 촌스러워? 옛날에는 이게 유행이었어.”
“옛날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촌스러워.”
“지금 네 사진도 나중에 보면 그럴 걸.”
“뭐 그렇겠지. 근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엄마는 하나도 안 변했네.”
“그거 칭찬이니 욕이니?”
“당연히 칭찬이지. 근데, 이거 언제 직은 거야?”
“신혼여행 가서.”
“신혼여행?”
“그래.”
“정말? 아버지랑 결혼할 때 엄마 나이 18살이었다고 외할머니가 그러던데?”
“맞아. 그런데 그게 왜?”
“이게 18살 때란 말이야?”
“그래.”
“말도 안돼. 이렇게 성숙했어? 완전 아줌마네. 어쩐지……”
“뭐야!! 어쩐지 뭐? 뭐가 어쩐지니?”
“일찍 결혼할 만 했다고.”
“어째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너.”
“비웃긴…… 그냥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근데, 지금도 믿을 수 없어. 어떻게 18살에 결혼할 생각을 다 한 거야?”
“네가 생겨버렸으니까 그렇지.”
“나 참…… 그러고 보면 엄마도 불량 청소년이야”
“뭐가 불량 청소년이니? 정식으로 결혼을 한 건데…… 단지 너를 조금 일찍 가졌을 뿐이지. 그리고, 당시에는 18살에 결혼하는 게 그렇게 흉도 아니었어. 네 외할머니도 네 큰이모를 18살에 가졌는걸.”
“그거야 외할머니는 아주 옛날 사람이니까 그렇지.”
“아주 옛날 사람?”
“그래. 옛날에는 14살짜리도 시집을 갔었다고 학교에서 그러던데 뭐.”
“훗~~ 14살에 시집간 건 일제시대에나 있었던 거지. 네 외할머니는 그때 결혼한 건 아냐. 일제시대에 태어나긴 했어도.”
“알았어. 근데, 결혼했을 때 이미 나를 가졌었다고 하지 않았어?”
“응.”
“뭐가 ‘응’이야? 사진에는 배가 하나도 안 나왔는데.”
“풋~ 겨우 4개월 조금 넘었는데 어떻게 배가 나오니?”
“뭐?”
“배 나오는 건 그 보다 더 있어야 돼…… 한 6개월쯤 되어야지.”
“그런가?”
머쓱해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에 있는 다른 사진으로 시설을 돌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난 여자의 임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성관계를 맺으면 임신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지식은 없었던 것이다. 가령, 배란/가임기간/임신후의 여성의 몸 변화/성격변화 등에 대해서는 거의 지식이 전무했다. 오로지 내가 가진 지식은, 성관계 자체에 대한 것으로, 포르노와 소위 ‘빨간 책’을 통해서 배운 여성의 성기모양이나 흥분상태 및 섹스의 전 과정만을 학문(?)적으로 익히고 있었을 뿐이다. 즉, 아주 동물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위 수컷을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 말이다. 따라서, 성관계가 남자와 여자에게 주는 의미라던가, 그것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생명의 잉태의 의미 같은 것은 솔직히 내 관심 밖이었다. 그저 내 성적 호기심은 “여자의 몸” 그 자체였을 뿐이었고, 그런 호기심 혹은 욕망은 단지 나에게 강제적으로 주입된 ‘문화적 금기’로 인해 억압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건, 난 애써 내 무지함을 무시하면서 엄마와 아버지의 오래된 옛 사진을 오래 동안 보았는데, 그 사이 엄마는 저녁을 준비했다. 당연히 저녁을 먹는 동안 엄마와 나의 화재거리는 사진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엄마와 아버지의 연애 이야기였다.
“그럼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와 사귀었다는 말이야?”
“응. 당시 네 아버지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우리 집에서 하숙을 했었거든……”
“근데 어떻게 아버지가 엄마와 사귀게 된 거야? 엄마는 17살의 고등학생이고, 아버지는 25살의 대학생인데……”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니”
“뭐 그렇기는 하지만…… 혹시 엄마가 아버지 따라 다닌 거 아냐?”
“내가? 풋~~ 아냐. 네 아버지가 나를 따라 다녔지. 내가 귀찮아 할 정도로……”
“거짓말.”
“내가 뭐 하러 그런 거짓말을 하니?”
“그럼 25살 대학생이 17살짜리 꼬맹이를 따라다녔다는 것을 믿으란 말이야?”
“꼬맹이?”
“그래 꼬맹이.”
“아까는 사진 보고서 아줌마라고 하더니.”
“그럼 고등학교 1학년 때에도 그 비슷한 모습이었어?”
“아니 그때가 더 예뻤지. 키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혹시 엄마 태어날 때부터 아줌마 모습이었던 것은 아냐?”
“뭐야?”
“하하하~~ 농담이야.”
“네가 내 말을 못 믿나 본데, 네 외할머니에게 물어봐. 당시에 네 아버지만 나를 귀찮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 오빠들 거의 대부분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꽃을 사주었으니까.”
“우와 인기 좋았나 보네.”
“인기는 무슨…… 그냥 귀찮은 일이었지. 그 때문에 내가 네 외할머니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너를 모를 꺼야. 내가 조신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둥 어쨌다는 둥 하면서…… 하여간 이 나라는 무엇이건 전부다 여자 탓만 하는 이상한 나라야.”
“알았어. 인기 좋았다는 건 인정할게. ”
“뭐? 어째 너 말하는 투가 못 믿겠다는 거 같네.”
“아냐. 믿어. 솔직히 나이가 든 지금도 엄마는 상당히 예쁘니까. 그리고, 내 친구 중에서도 엄마에게 반한 녀석이 있을 정도니까……”
“나에게?”
“응.”
“친구 누구?”
엄마는 얼굴 전체에 미소를 띄운 채 누군지를 알고 싶어했는데, 갑자기 왠지 그런 엄마가 우습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여자란 증거일까?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도 돼. 그런 애가 있어.”
“혹시 상혁이 아니니?”
“어…… 어떻게?”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 복잡한 추론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혁이는 큰이모 친구의 막내 아들로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에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온 놈이었다. 나와 녀석은 같은 학교, 같은 반이기도 해서 쉽게 친해졌는데, 녀석은 엄마에게 한 눈에 반해서는 속된 말로 문지방이 닳도록 우리 집에 들락거렸었다. 물론, 처음에는 녀석의 그런 마음을 알지 못했다. 유난히도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을 그냥 녀석의 성격이 그런가 보다 여겼었고, 엄마에게 살살거리는 것도, 내가 없는 집에서 오래 동안 놀고 가는 것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내가 둔한 편은 아니지만, 정말 그 녀석이 엄마를 이성으로 좋아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종종 사람들이나 학교친구들이 엄마를 보고 나에게 ‘네 큰 누나냐? 시집은 갔냐?’라며 관심을 나타내기는 했었지만, 상혁이처럼 그렇게 구는 놈은 없었다.
어째건, 우리 집을 들락거리면서 우리 가족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녀석은 작년 여름에 나에게 황당한 고백을 했었다. ‘나 네 엄마 좋아해. 만약 이혼을 하신다면, 네 엄마랑 사귀고 싶어. 허락해주었으면 한다.’ 녀석은 그 말을 아주 진지하게 했는데, 난 어이가 없어서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고, 그 뒤로는 녀석과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그 녀석을 정확 지목을 하자 나로선 이상한 상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난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는 언성이 높아졌다.
“뭐야...... 그 자식이 엄마에게 말했어?!”
“어머…… 왜 화를 내고 그러니?”
“말해봐 그 자식이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내 흥분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엄마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하게 응수했다.
“상혁이가 맞나 보구나.”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 그 자식이 뭐라고 한 거야?”
“무슨 말 같은 거 한 거 없어. 그냥 느낌으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거지.”
“느낌으로?”
“그래. 느낌으로…… 그냥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뿐이야.”
“무슨 쓸데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한 것은 아니고?”
“훗~ 너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니?”
“상상이 아니야. 그 녀석 한때 엄마와 사귀고 싶다면서 내 허락을 얻으려고 했던 놈이니까.”
“뭐? 네 허락을?”
“그래”
“푸풋~~ ㅎㅎㅎ”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즐거운 듯 소리 내어 웃었는데, 난 그런 엄마가 황당했다. 당연히 내 분노에 동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즐거운 듯 웃어버리다니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웃음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려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게 웃을 일이야?”
“화 낼 일은 아니잖아.”
“어떻게 화낼 일이 아니야? 그 녀석은 엄마랑 사귀는 것을 나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웃었던 거야.”
“무슨 말이야?”
“나를 좋아하면, 나에게 와야지 너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다는 것이 우습잖아.”
“뭐? 엄마에게 직접?”
“그래. 나를 좋아하는 거라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런 말이라니? 그게 당연한 거 아니니? 난 네 소유물이 아니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엄마와 난 가족이잖아.”
“가족인 것과 그것은 별개야.”
“왜 별개야?”
“별개지.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를 구속할 수는 없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거야. 그 누구도 그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어.”
“말도 안돼. 그게 무슨 가족이야?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뭐 하러 같이 살아? 그냥 제각각 살지.”
“아무도 같이 살라고 강요하지 않아. 같이 사는 것은 개인들의 결정일 뿐이야. 결혼하는 것도, 이혼하는 것도 모두 다 그래.”
“그럼 자식들은 뭐야? 자식들은 아무런 결정권도 없잖아.”
“왜 없니? 가출도 있고, 입양도 있고 하는데……”
“엄마 말은 억지야.”
“글세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치는 그래.”
“이치? 그럼 상혁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말이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잖아. 너도 네 친구의 누나를 좋아했었잖아.”
“그 것과 이건 틀리잖아.”
“어떤 점에서 틀리니?”
“그거야 난 친구 누나이고, 상혁이는……”
엄마의 말에 강하게 반발을 하던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는데, 얼핏 생각해도 친구의 누나는 되고, 친구의 엄마는 안 된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여전히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혁이를 두둔하는 듯한 엄마의 태도에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서? 녀석이랑 사귈 수도 있다는 거야 뭐야?!!”
“그래 마음에 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네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 테고……”
엄마는 무심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이 내 감정을 격하게 자극했다.
“엄마 미첬어?!!!”
결국, 난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벌컥 지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아들 친구와 사귈 수도 있고, 결혼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말이 내 친구와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단순히 흘려버리는 말이라 할지라도 엄마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에 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었다. 왜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말이다.
다들 추석을 잘 쇠셨는지 모르겠군요.
먼거리를 여행하셨던 분들은 지금쯤 여독을 풀고 계시겠군요. 어째건, 다들 좋은 주말을 보내기 바랍니다. 이 글은 딱히 할일이 없어서 적었는데, 재미가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많은 기대는 말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WRITTEN BY 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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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3~40분 정도의 열정이 지나고, 다시 20여분의 여운이 지나면 내 몸과 마음은 다시 평상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내 품에 안긴 여인은 잠이 들어 새근새근 고른 호흡을 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녀가 이렇게 내 품에 안겨 잠이든 세월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런 세월 탓인지 이제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녀.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난 지금까지 애써 그런 자문을 피해왔었다. 사랑이라 말하기엔 그녀와 나의 관계는 용서될 수 없는 관계이기에 말이다. 그것은 더러운 욕망도, 빗나간 사랑도 아니라 믿으면서도 무엇이 두려운지 나도, 그녀도 그 질문에는 침묵했다. 다만, 그녀는 예전에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일 뿐이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단지 그런 관계 말이야. 그것이 세상의 잣대에 부합되든, 부합되지 않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는 거야.”
우리의 관계를 그렇게 정의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마음 한 켠을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를 멀리 던져 버렸고, 다시는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과 타협하기 보다는 그녀와 타협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금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던 그녀가 뒤척였다.
긴 웨이브 머리가 잘 어울리고, 옅은 화장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녀는 내 엄마다. 그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고, 영원한 가치란 것을 그녀도, 나도, 세상마저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구속력도 없고, 정답도 없는 가치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녀와 나의 관계가 어떠하든 나는 그녀를 내 엄마로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코 그녀를 내 아내로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내 여자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 말이 궤변처럼 들릴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내 진솔한 심정을 적은 것이다. 나에게 여러분들의 판단은 필요하지 않다. 내게 필요한 것은 여러분들의 생각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나의 인정일 뿐이다.
1. 가족이란 가치관을 형성하는 관계.
사고로 성적 능력을 상실하기 전까지의 아버지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엄마에 대하여 집착한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사랑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었고, 엄마 자신이 아버지의 그런 관심을 즐기고 있었으니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문제라면 내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내가 민망할 때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외국 영화에서 보면 자식들 앞에서 부모가 가볍게 입맞춤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 아버지와 엄마는 때때로 가벼운 키스를 넘어 깊은 키스를 나누었고, 내가 못 보는 줄 알고 서로 짓궂은 장난을 할 때도 있었다. 가령, 아버지가 엄마의 가슴을 툭 건드린다거나, 엉덩이를 슬쩍 쓰다듬는다던가 하는 그런 장난 말이다. 정말 금슬이 좋아도 너무 좋은 아버지와 엄마였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아버지가 성적 능력을 상실한 뒤로는 모든 상황이 변해버렸다. 엄마와 아버지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엄마가 아버지의 관심을 거부함으로써 아버지의 관심은 집착이라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술을 취한 상태에서 엄마를 추궁하는 아버지의 의처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졌고, 나중에는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그건 의심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억지에 가까웠고, 엄마를 악의적으로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거리에서 엄마에게 길을 물었던 사람에서부터 이웃의 남자들까지, 근처에 사는 불량한 중학교 남학생에서부터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의 바람둥이 노인까지 아버지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남자들을 거론하였다. 황당하게도 그 중에는 나도 끼어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응석을 많이 부렸는데, 그런 습관은 엄마와 비슷한 키가 되었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었다. 그런 내 습관이 아버지의 의심을 자극한 것이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그런 의심이 시작 된지는 모른다. 말했듯이 내 응석은 내 생활의 일부였으니까. 짐작으로는 아마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에 있었던 그 응석 때문일 거라 생각을 할 뿐이다.
당시 엄마와 나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TV를 보았었는데, TV드라마에서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엄마에게 아버지가 들어오면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졸랐고, 엄마는 안 된다고 했었다. 당연히 나는 엄마에게 아이가 칭얼거리는 것처럼 엄마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 응석을 부리며 졸랐는데, 그때 아버지가 갑자기 들이 닥친 거였다. 땀을 흘리면서 엄마와 뒤엉켜 있는 자세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엄마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 틀리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버지의 갑작스런 방문으로 인해 나의 응석은 그 곳에서 끝났고, 그날 난 아버지에게서 뭔지 모를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아버지의 의처증에 나도 가끔씩 거론이 되었다. 당연히 엄마와 나는 황당해 했고,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당시 15살의 나는 아버지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아버지의 그런 터무니 없는 의심에 몹시 기분이 상했고, 아버지와 대면하는 것조차 거부했었다. 덕분에 중간에서 엄마만 아주 난처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는 아버지의 의심과 주정에 맞대응을 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큰소리를 내며 싸우기도 했었다. 그렇게 심한 싸움은 아니었지만 어째든 조용하기만 하던 우리 집에서는 큰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아버지와 엄마를 미워하거나, 싫어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술에 깨어나면 끝없는 절망감을 느끼며 나에게 여러 번 사과를 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엄마가 나를 타이르며 혹여 내가 나쁜 마음을 먹지 않도록 감싸주었으며,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면 아버지를 대신하여 변명까지 해주었었던 것이다.
“네 아버지는 지금 병에 걸린 거란다. 우리가 이해해야 해.”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게 끔 했고, 본인이 솔선수범하여 아버지의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주었다. 물론, 그건 싸움이 있을 때마다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그리고, 내 나이 18살이 되었을 때, 엄마와 난 더 이상 아버지의 의처증에 상처를 받지 않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건, 무슨 시선을 보내건 엄마와 나는 그로부터 자유로웠다.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아버지의 의처증뿐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의 아버지는 엄마와 내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고, 엄마와 나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 스스로가 우리를 피했다. 엄마가 아무리 아버지를 우리들 생활 속으로 끌어당기려 해도 그는 갈수록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었다.
그 날도 그랬다. TV를 보던 아버지는 엄마와 내가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엄마가 근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쉬게요?”
“응. 피곤하네……”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냐.”
“아니긴요. 요 근래 들어 당신 혈색도 좋지 않고 계속 피곤하다고 하면서……”
“걱정마. 병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얼마 전에 사무실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아무런 이상 없었어.”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빙긋 웃어 보였는데, 그 표정은 마치 세상을 포기한 사람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서 어떤 불안감을 느껴서 일까?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이상이 없긴 뭐가 없어요. 이야기 좀 해요.”
다음 날, 엄마는 아버지를 데리고 함께 병원을 갔다.
하지만, 종합병원에서 받은 정밀검진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냥 몸이 전체적으로 많이 약하다는 검사결과만 통보 받았다. 정말 맥 빠지는 검사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뭐 병이 없다는 검사결과는 좋은 것이긴 하지만, 분명 눈에 보일 정도로 아버지는 기운이 빠져있는데 겨우 그런 검사결과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없는 병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 엄마는 아버지를 위해서 보약을 지어 왔다. 하지만, 보약이라면 벌써 지난 몇 년 동안 아버지 생활의 일부나 다름이 없던 것이라 결과적으로 본다면 괜히 병원비만 날린 셈이었다.
이유가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갖 보약을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아버지의 건강이 오히려 약해지는 이유가 말이다. 엄마와 난 머리를 맞대고 그 원인을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변호사로 일하는 아버지는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고, 후배 변호사를 5명이나 밑에 두고 있는 만큼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건강은 점점 나빠지는 것일까?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일 것이라고 했지만, 도무지 아버지가 스트레스 받을 만한 곳이 없었다. 오직 문제가 있다면, 아버지가 성적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엄마 혹시 “성 불구”라는 것에서 아버지가 스트레스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엄마와 성에 관련된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된 나는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닐 거야. 그게 문제라면 오래 전에 그랬어야지.”
“그때부터 조금씩 나빠져 온 것일 수 있잖아.”
“아냐. 네 아버지는 근래 들어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어.”
“……”
난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엄마 말대로 분명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근래에 들어서였다. 그뿐이 아니라, 근래에는 술에 취했을 때에도 의처증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아? 너 모자가 붙어 처먹고 있다는 걸?’이라며 떼쓰듯 말을 했을 텐데 말이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의 관심은 아버지가 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아버지의 건강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원인을 분석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버지의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에서부터 어쩌다 한 마디씩 내 뱉는 이야기까지 엄마와 나는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와 내가 급속도로 가까워 진 것은 말이다. 18년이란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나는 엄마와의 대화에서 세대차이를 느끼지 못했고, 엄마도 나를 어리게만 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서 느껴졌었다.
그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내 속에 숨어있던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을 깨버릴 수 있었고, 엄마의 관념 속에 숨어 있던 “자식”이란 고정관념이 깨져버렸으니 말이다. 그건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서로를 비로서 제대로 볼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였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난 엄마를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엄마의 본 모습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가 엄마에게 강요한 엄마의 가면이었다. 그렇다고 나를 걱정하고, 나에게 헌신하는 것이 엄마의 뜻과 상관없었다는 게 아니다. 분명, 그런 나에게 보여준 엄마의 사랑은 엄마에게 존재하는 엄마의 모습이지만, 그게 엄마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도 사람이고, 여자이다. 그녀의 가슴 속에는 아직 사랑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고, 아름다운 여자의 꿈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아버지 외의 남자를 꿈꾸기도 하고, 우연히 스쳐 지나간 한 남자로 인해 가슴 떨리는 설레임도 느끼는 보통의 여자였다. 당연히 성적인 욕구도 있는 여자이고 말이다. 어느 날, 성에 대하여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참을 수는 있지만, 참기가 힘든 건 사실이야. 네 아버지가 사고로 기능을 상실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성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힘들 줄은 몰랐어. 예전에는 그냥 네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그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엄마는 즐겁지 않았다는 말이야?”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나도 즐거웠지. 하지만, 당시에는 남편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에 더 만족을 했었어. 아니 그렇게 착각을 했었다고 봐야 할 거야.”
“지금은 그 착각에서 벗어 났다는 거네?”
“그래.”
“듣기로는 지금의 엄마 나이가 가장 참기 힘든 나이라던데…… 남자는 내 나이대가 가장 힘든 때고 말이야.”
“풋~ 그래서 너 힘드니?”
“뭐 전혀 안 힘들다고는 할 수 없지. 엄마도 알잖아.”
“뭘 알아?”
짐짓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양 순진하게 반문했다. 난 그런 엄마의 태도변화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욕실에서 자위를 하다가 걸린 일을 엄마는 기억도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순간적으로 내 볼이 달아 올랐다.
“왜 모르는 척 하고 그래?”
“뭘? 무슨 말이니?”
“아 진짜…… 작년의 그 사건 벌써 잊었어?”
“무슨 사건?”
“정말 왜 그래?”
내 언성은 다소 높아 졌고, 그제서야 엄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알아. 푸풋~~”
“웃지마!”
“그래 알았어. 그때 많이 놀랬지?”
“당연하지. 갑자기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어.”
“내 심장도 마찬가지였었어. 아무 생각도 없이 문을 열었는데, 네가 바지를 내리고서 그 짓을 하고 있었으니……”
“쩝…… 난 잘못한 거 없어. 노크도 없이 문을 연 엄마가 잘못이야.”
“어째서 내 잘못이니? 네가 있는 줄 알고 그런 것도 아닌데……”
“알았어. 엄마 잘못도 아냐. 근데,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말해 줄 거야?”
“뭔데?”
“엄마도 자위 같은 거 해?”
“……”
“말해봐 엄마도 자위 해?”
얼른 대답을 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나는 대답을 재촉했지만, 엄마는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내 눈만 응시했다. 마치, ‘이 애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나’ 하는 뜻이 담긴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엄마의 표정을 무시하고 다시금 재촉했다.
“어서 말해줘.”
“알아서 뭐하게?”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게 뭐가 궁금하니?”
“여자의 일이니까 궁금하지. 어서 말해봐. 어서…… 응?”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칭얼거리듯 보챘고, 결국 엄마는 마지 못한 듯 가볍게 실소하면서 입을 떼었다.
“네 생각은 어떨 것 같아?”
“여자도 할 것 같아!”
“그래. 여자도 해……”
“그럼 몇 일에 한번씩 하는 데?”
“뭐?”
“난 솔직히 거의 매일 해. 피곤한 날이나, 바쁜 날을 빼면. 엄마는?”
“뭐 매일?”
“응.”
“몸에 안 좋아 그러면…… 너 너무 자주 하는구나. 줄여.”
“풋~ 그래서 내 몸이 약해 보여?”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며 말꼬리를 흐리던 엄마는 순간 뭔가 생각이 난 듯,
“아차! 내 정신 좀 봐. 수미네 돈을 준다는 것이……”
그리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것으로 엄마와 나의 성에 관련된 구체적인 대화는 막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엄마는 수미네 핑계를 대고 의도적으로 자리를 피한 것 같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불행히도 지금의 엄마는 그때의 일을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엄마는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의심을 내가 처음 듣게 된 날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반대로 나는 그 기억은 없다.
어째건, 그렇게 물꼬가 터진 엄마와 나의 성에 관련된 대화는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고 적나라한 표현을 주고받은 것은 아니지만, 성에 관련된 이야기는 언제나 새로웠고, 재미있었으며, 지루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엄마의 눈에선 생기가 넘쳤는데,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내게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에게 점점 성적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남성들에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기에 한편으로 그런 변화가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여기서 변화란, 머리 속 상상이 아닌 실제의 변화를 말한다. 가령, 몸에 달라 붙는 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내 아랫도리가 불룩하니 부풀어 오른 것을 엄마에게 들킨다든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장난스럽게 엄마를 뒤에서 포옹을 하다가 아랫도리로 엄마의 엉덩이에 압박을 하게 된 경우이다.
그런 내 변화를 엄마는 언제나 가볍게 받아주었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물론, 내가 그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았기에 엄마로서는 특별하게 다른 반응을 보이기도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소녀도 아니고, 아들을 상대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엄마 스스로 생각하기에 우습다고 생각했기에 말이다. 물론, 엄마의 마음은 내 기준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일 뿐 엄마로부터 확인된 사항은 아니다.
그러다, 엄마를 새롭게 생각하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날은 내 18살이 되어 맞이한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중요성에 비해서 날짜를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날의 상황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원인도 없이 건강이 계속 나빠진 아버지가 결국 변호사사무실을 후배 변호사들에게 맡기고 요양을 하기 위해 시골의 할아버지 댁으로 떠난 날이기도 했고,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는 아버지를 위한 굿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할머니가 어느 무속인에게 물어보니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나빠지는 것은 귀신의 농간 때문이라서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엄마도 그런 말은 믿지 않았다. 게다가, 외가가 기독교 집안이었던 탓에 무속신앙에 대한 엄마의 거부감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 그렇다고 엄마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난 그때, 처음으로 가풍이란 단어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 확연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어도 한 사람의 가치관에 확실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힘에 대해서 말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제사에 대한 엄마의 부정적인 시각은 그저 제사음식을 준비하는데 있어서의 불평쯤이라 여겼었다.
어째건, 엄마는 고향을 떠나는 아버지를 배웅만 했을 뿐 같이 가지 않았고, 난 학교 때문에 그 배웅조차도 하지 못했다. 영영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할아버지 댁은 5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었으므로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지 않는 한 나로선 방학 때에나 아버지를 볼 수 있었으니 배웅도 하지 못했다는 건 당시 꽤 마음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 탓에 그날 하루는 학교의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복잡한 심정으로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아침에 본 그 집이 아니었다.
엄마도 복잡한 심정을 다스리기 위해서인지 때 아니게 집안 대청소와 가구배치를 새롭게 했고, 내가 집에 갔을 때에는 한창 마무리 중이었다.
“무슨 일이야? 집이 왜 이래?”
“어.. 왔니? 청소 좀 했어. 가을도 되고 해서……”
“이게 청소야? 집을 아주 바꾸어 놓았네…… 근데, 여기 있던 장식장은 어디 갔어?”
“어떤 거? 아.. 그거 서재로 옮겼어.”
“서재? 서재에 뭐 같다 놓는 거 아버지가 싫어하잖아.”
“한동안 오지지 않을 거니까…… 오시면 다시 꺼내오면 돼.”
“그래도 갑자기 오기라도 하면 기분이 나쁠 텐데.”
“……”
엄마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몰두 했다. 난 그런 엄마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가 간편한 실내복으로 갈아 입고서 엄마의 청소를 도왔다. 뭐 도움이라고 해봐야 간단한 뒷정리와 쓰레기 버리는 것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뒷정리도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라서 한 40분은 걸렸다. 내가 막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들어 왔을 때, 안방에서 엄마가 무엇인가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사진이었다.
“앨범 정리 하는 거야?”
“치우기 전에 잠시 보는 거야.”
“어…… 이 사진은 못 보던 사진인데?”
칼라 사진이긴 했지만, 한눈에 보아도 아주 오래된 듯한 느낌이 났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엄마였는데, 바람에 나부끼는 원피스 차림으로 한 손으로 모자를 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만화에서 여자 주인공을 환상적으로 그릴 때 종종 쓰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사진 속의 엄마는 왠지 촌스럽게 느껴졌다.
“풋~~”
“왜 웃니?”
“촌스럽잖아……”
“뭐가 촌스러워? 옛날에는 이게 유행이었어.”
“옛날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촌스러워.”
“지금 네 사진도 나중에 보면 그럴 걸.”
“뭐 그렇겠지. 근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엄마는 하나도 안 변했네.”
“그거 칭찬이니 욕이니?”
“당연히 칭찬이지. 근데, 이거 언제 직은 거야?”
“신혼여행 가서.”
“신혼여행?”
“그래.”
“정말? 아버지랑 결혼할 때 엄마 나이 18살이었다고 외할머니가 그러던데?”
“맞아. 그런데 그게 왜?”
“이게 18살 때란 말이야?”
“그래.”
“말도 안돼. 이렇게 성숙했어? 완전 아줌마네. 어쩐지……”
“뭐야!! 어쩐지 뭐? 뭐가 어쩐지니?”
“일찍 결혼할 만 했다고.”
“어째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너.”
“비웃긴…… 그냥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근데, 지금도 믿을 수 없어. 어떻게 18살에 결혼할 생각을 다 한 거야?”
“네가 생겨버렸으니까 그렇지.”
“나 참…… 그러고 보면 엄마도 불량 청소년이야”
“뭐가 불량 청소년이니? 정식으로 결혼을 한 건데…… 단지 너를 조금 일찍 가졌을 뿐이지. 그리고, 당시에는 18살에 결혼하는 게 그렇게 흉도 아니었어. 네 외할머니도 네 큰이모를 18살에 가졌는걸.”
“그거야 외할머니는 아주 옛날 사람이니까 그렇지.”
“아주 옛날 사람?”
“그래. 옛날에는 14살짜리도 시집을 갔었다고 학교에서 그러던데 뭐.”
“훗~~ 14살에 시집간 건 일제시대에나 있었던 거지. 네 외할머니는 그때 결혼한 건 아냐. 일제시대에 태어나긴 했어도.”
“알았어. 근데, 결혼했을 때 이미 나를 가졌었다고 하지 않았어?”
“응.”
“뭐가 ‘응’이야? 사진에는 배가 하나도 안 나왔는데.”
“풋~ 겨우 4개월 조금 넘었는데 어떻게 배가 나오니?”
“뭐?”
“배 나오는 건 그 보다 더 있어야 돼…… 한 6개월쯤 되어야지.”
“그런가?”
머쓱해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닥에 있는 다른 사진으로 시설을 돌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난 여자의 임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성관계를 맺으면 임신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지식은 없었던 것이다. 가령, 배란/가임기간/임신후의 여성의 몸 변화/성격변화 등에 대해서는 거의 지식이 전무했다. 오로지 내가 가진 지식은, 성관계 자체에 대한 것으로, 포르노와 소위 ‘빨간 책’을 통해서 배운 여성의 성기모양이나 흥분상태 및 섹스의 전 과정만을 학문(?)적으로 익히고 있었을 뿐이다. 즉, 아주 동물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소위 수컷을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 말이다. 따라서, 성관계가 남자와 여자에게 주는 의미라던가, 그것으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생명의 잉태의 의미 같은 것은 솔직히 내 관심 밖이었다. 그저 내 성적 호기심은 “여자의 몸” 그 자체였을 뿐이었고, 그런 호기심 혹은 욕망은 단지 나에게 강제적으로 주입된 ‘문화적 금기’로 인해 억압되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건, 난 애써 내 무지함을 무시하면서 엄마와 아버지의 오래된 옛 사진을 오래 동안 보았는데, 그 사이 엄마는 저녁을 준비했다. 당연히 저녁을 먹는 동안 엄마와 나의 화재거리는 사진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엄마와 아버지의 연애 이야기였다.
“그럼 엄마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아버지와 사귀었다는 말이야?”
“응. 당시 네 아버지는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우리 집에서 하숙을 했었거든……”
“근데 어떻게 아버지가 엄마와 사귀게 된 거야? 엄마는 17살의 고등학생이고, 아버지는 25살의 대학생인데……”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니”
“뭐 그렇기는 하지만…… 혹시 엄마가 아버지 따라 다닌 거 아냐?”
“내가? 풋~~ 아냐. 네 아버지가 나를 따라 다녔지. 내가 귀찮아 할 정도로……”
“거짓말.”
“내가 뭐 하러 그런 거짓말을 하니?”
“그럼 25살 대학생이 17살짜리 꼬맹이를 따라다녔다는 것을 믿으란 말이야?”
“꼬맹이?”
“그래 꼬맹이.”
“아까는 사진 보고서 아줌마라고 하더니.”
“그럼 고등학교 1학년 때에도 그 비슷한 모습이었어?”
“아니 그때가 더 예뻤지. 키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혹시 엄마 태어날 때부터 아줌마 모습이었던 것은 아냐?”
“뭐야?”
“하하하~~ 농담이야.”
“네가 내 말을 못 믿나 본데, 네 외할머니에게 물어봐. 당시에 네 아버지만 나를 귀찮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던 대학생 오빠들 거의 대부분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꽃을 사주었으니까.”
“우와 인기 좋았나 보네.”
“인기는 무슨…… 그냥 귀찮은 일이었지. 그 때문에 내가 네 외할머니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너를 모를 꺼야. 내가 조신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둥 어쨌다는 둥 하면서…… 하여간 이 나라는 무엇이건 전부다 여자 탓만 하는 이상한 나라야.”
“알았어. 인기 좋았다는 건 인정할게. ”
“뭐? 어째 너 말하는 투가 못 믿겠다는 거 같네.”
“아냐. 믿어. 솔직히 나이가 든 지금도 엄마는 상당히 예쁘니까. 그리고, 내 친구 중에서도 엄마에게 반한 녀석이 있을 정도니까……”
“나에게?”
“응.”
“친구 누구?”
엄마는 얼굴 전체에 미소를 띄운 채 누군지를 알고 싶어했는데, 갑자기 왠지 그런 엄마가 우습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여자란 증거일까?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몰라도 돼. 그런 애가 있어.”
“혹시 상혁이 아니니?”
“어…… 어떻게?”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 복잡한 추론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혁이는 큰이모 친구의 막내 아들로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에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온 놈이었다. 나와 녀석은 같은 학교, 같은 반이기도 해서 쉽게 친해졌는데, 녀석은 엄마에게 한 눈에 반해서는 속된 말로 문지방이 닳도록 우리 집에 들락거렸었다. 물론, 처음에는 녀석의 그런 마음을 알지 못했다. 유난히도 나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을 그냥 녀석의 성격이 그런가 보다 여겼었고, 엄마에게 살살거리는 것도, 내가 없는 집에서 오래 동안 놀고 가는 것도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내가 둔한 편은 아니지만, 정말 그 녀석이 엄마를 이성으로 좋아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종종 사람들이나 학교친구들이 엄마를 보고 나에게 ‘네 큰 누나냐? 시집은 갔냐?’라며 관심을 나타내기는 했었지만, 상혁이처럼 그렇게 구는 놈은 없었다.
어째건, 우리 집을 들락거리면서 우리 가족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된 녀석은 작년 여름에 나에게 황당한 고백을 했었다. ‘나 네 엄마 좋아해. 만약 이혼을 하신다면, 네 엄마랑 사귀고 싶어. 허락해주었으면 한다.’ 녀석은 그 말을 아주 진지하게 했는데, 난 어이가 없어서 녀석에게 주먹을 날렸고, 그 뒤로는 녀석과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그 녀석을 정확 지목을 하자 나로선 이상한 상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난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는 언성이 높아졌다.
“뭐야...... 그 자식이 엄마에게 말했어?!”
“어머…… 왜 화를 내고 그러니?”
“말해봐 그 자식이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한 거야?”
내 흥분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는데, 엄마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차분하게 응수했다.
“상혁이가 맞나 보구나.”
“말 돌리지 말고 빨리 말해. 그 자식이 뭐라고 한 거야?”
“무슨 말 같은 거 한 거 없어. 그냥 느낌으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거지.”
“느낌으로?”
“그래. 느낌으로…… 그냥 혹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뿐이야.”
“무슨 쓸데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한 것은 아니고?”
“훗~ 너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니?”
“상상이 아니야. 그 녀석 한때 엄마와 사귀고 싶다면서 내 허락을 얻으려고 했던 놈이니까.”
“뭐? 네 허락을?”
“그래”
“푸풋~~ ㅎㅎㅎ”
엄마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즐거운 듯 소리 내어 웃었는데, 난 그런 엄마가 황당했다. 당연히 내 분노에 동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즐거운 듯 웃어버리다니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웃음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려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게 웃을 일이야?”
“화 낼 일은 아니잖아.”
“어떻게 화낼 일이 아니야? 그 녀석은 엄마랑 사귀는 것을 나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래서 웃었던 거야.”
“무슨 말이야?”
“나를 좋아하면, 나에게 와야지 너에게 허락을 받으러 갔다는 것이 우습잖아.”
“뭐? 엄마에게 직접?”
“그래. 나를 좋아하는 거라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그런 말이라니? 그게 당연한 거 아니니? 난 네 소유물이 아니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엄마와 난 가족이잖아.”
“가족인 것과 그것은 별개야.”
“왜 별개야?”
“별개지.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서로를 구속할 수는 없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거야. 그 누구도 그 결정을 대신할 수는 없어.”
“말도 안돼. 그게 무슨 가족이야? 자기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뭐 하러 같이 살아? 그냥 제각각 살지.”
“아무도 같이 살라고 강요하지 않아. 같이 사는 것은 개인들의 결정일 뿐이야. 결혼하는 것도, 이혼하는 것도 모두 다 그래.”
“그럼 자식들은 뭐야? 자식들은 아무런 결정권도 없잖아.”
“왜 없니? 가출도 있고, 입양도 있고 하는데……”
“엄마 말은 억지야.”
“글세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치는 그래.”
“이치? 그럼 상혁이가 엄마를 좋아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는 말이야?”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잖아. 너도 네 친구의 누나를 좋아했었잖아.”
“그 것과 이건 틀리잖아.”
“어떤 점에서 틀리니?”
“그거야 난 친구 누나이고, 상혁이는……”
엄마의 말에 강하게 반발을 하던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는데, 얼핏 생각해도 친구의 누나는 되고, 친구의 엄마는 안 된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감정은 여전히 그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혁이를 두둔하는 듯한 엄마의 태도에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서? 녀석이랑 사귈 수도 있다는 거야 뭐야?!!”
“그래 마음에 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네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을 테고……”
엄마는 무심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그 말이 내 감정을 격하게 자극했다.
“엄마 미첬어?!!!”
결국, 난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벌컥 지르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아들 친구와 사귈 수도 있고, 결혼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말이 내 친구와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단순히 흘려버리는 말이라 할지라도 엄마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에 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었다. 왜 화를 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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