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와 업소 다니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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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땠어, 형?”
업소에 다녀온 다음주, 사무실에서 영근이가 묻는다. 난 좋았다고, 짧게 대답한다.
“재인씨는 어땠대?”
영근이가 진짜 관심 있는 건 이 부분일 것이다. 나는 쓴웃음을 짓는다.
“어땠을 것 같냐?”
영근이는 쬐그만 눈을 불안하게 굴리며 내 눈치를 볼 따름이다.
“좋았댄다.”
조금 뜸을 들인 후 내가 말한다.
“생각보다 재미있고 흥분되고 뭐 그랬단다. 생각보다 상처받거나 많이 창피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네.”
“창피하기야 창피했겠지.”
영근이가 말했다.
“근데 그걸 즐기는 거지. 재인씨가 보기보다 아주 끼가 있더라고.”
“응.”
“그래서 이번주에 진짜 또 가는 거야?”
영근이의 눈이 욕심에 초롱초롱하다. 저렇게 살찐 애들의 특징은, 저럴 때마다 볼살 가득 욕심이 드러나면서도 또 그게 딱히 밉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웃는다.
진짜 욕심 사나운 것은 내 동료들과 그런 데를 또 갈 수 있다는 재인이도 아니고, 얼른 그녀를 거기 데려가 다시금 벗겨놓고 싶어하는 내 친구도 아니다. 재인이를 자꾸만 그리로 몰아넣고 싶어하고, 내 친구들이 그녀에게 벌건 욕심을 품는 것에 흥분하는 내가 제일 나쁘다. 이 흥분은 가학적이면서 동시에 피학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잔인하게 괴롭히면서, 그로 인해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즐기는 게임이다. 가학과 피학을 이토록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게임은 여지껏 없었다.
“가야지.”
내가 말한다.
“생각해둔 데 있어?”
“글세. 그냥 지난번에 거기 갈까? 수위가 더 높은 데면 재인씨가 부담스러울 테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똑같은 곳에 가서 같은 자극을 느끼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재인이와 개저씨 문화를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더 벗기고, 더 노출시키고, 더 더럽히는 일이다.
“블랙홀 가자.”
영근이의 눈의 휘둥그래진다.
“괜찮겠어, 형? 거긴 너무 세지 않나?”
“난 좀 센 데로 하고 싶은데. 넌 별로냐?”
“나야 뭐...... 세면 셀수록 좋지. 아니 내가 원하는 걸로 하자면야 아예......”
영근이는 말꼬리를 흐렸지만 나는 녀석의 눈에서 ‘2차’, ‘오피스’, ‘미아리‘ 뭐 이런 단어들을 읽는다.
“지난번에 네가 그랬잖아. 블랙홀 가면서. 바로 이런 데서 연예인들 ‘체험 삶의 현장’ 그런 걸 해야 된다고. 아이돌 같은 애들이 풀살롱 가서 서너 시간씩 아저씨 좆을 좀 빨아보고 해야 민초의 삶을 체험하는 것이고 진짜 소통, 경험, 진정성 그런 거라고 말야.”
“그랬지.”
“연예인은 아니지만...... 부족하나마 재인이한테 그런 걸 시켜보고 싶네. 내가 말이야.”
영근이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나, 나야 뭐...... 우리야 뭐 땡큐일 뿐이지. 근데 재인씨가 괜찮겠어? 진짜.”
“얘기해봐야지.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되든 안 되든 말야. 어쨌든 너는 분위기 잘 만들고 다들 잘 놀게 해주면 돼. 재인이가 진짜 거기 가게 된다면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응, 형.”
영근이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분고분해 보인다.
“맡겨둬요 나한테. 내가 아주......”
영근이는 다시금 말꼬리를 흐리는데, 나는 거기서 또 ‘그 년을 개씹창 걸레로 만들어버릴게’ 이런 험한 목소리를 듣는다. 아니, 그건 영근이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어두운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더 해줘요. 더, 더.”
재인이의 숨가쁜 목소리가 아주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더, 더! 더 세게. 더 거칠게. 더...... 나를 막.”
재인이와 섹스를 할 때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쾌감만을 탐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내가 뿌리를 박고 움직이고 있는 여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인이, 재인이의 가장 재인이스럽고 솔직한 모습 같으면서, 또 재인이와는 다른 어떤 불특정의, 개념화된, 여기에 있지 않은 누군가인 것 같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벌거벗은 나 자신으로 재인이 위에서 씨근덕대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나 아닌 누군가, 어쩌면 제각기 다른 여러 명의 남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 재인이를 범하는 것 같다.
나는 나 혼자서, 나만의 재인이를 윤간한다.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미칠 것만 같다.
“나는 짐승이야.”
내가 헐떡인다.
“응. 날 잡아먹어줘요.”
재인이가 답한다.
“더, 더 무참하게. 엉망으로 만들어줘요.”
나는 이제 숨이 가쁘다. (이젠 나도 나이의 한계가 느껴진다. 20대 때와는 다르다) 그래서 더는 전력질주하지 못하고, 움직임을 천천히하면서 재인이를 내려다본다. 재인이는 헝클어진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어딘가 다른 곳에 머리를 담근 것 같다.
“다른 놈들이 여길 만졌지. 지난주에.”
움직임을 멈춘 채로 그녀의 젖가슴을 쥔다. 재인이의 유방은 누운 상태에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가는 내 손아귀 속에서 모양을 회복해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새빨개진 젖꼭지가 도발하듯 도드라졌다.
“응, 그랬어. 오빠 친구들이.”
“어땠어?”
“형편없었어.”
재인이가 말했다.
“징그러웠어. 구역질났어. 오빠 친구들은 최악이야.”
“아재들이지. 개저씨들이고.”
“원숭이새끼 같아.”
재인이가 되뇐다.
“더럽고, 천박하고, 아무데서나 발정하고.”
“자기한테 발정한 거야.”
내가 말한다.
“자기를 잡아먹고 싶어서.”
“날 먹고 싶어서?”
“응. 다들 널 먹고 싶어해.”
재인이는 업소에서 본 내 친구들의 적나라한 모습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그걸 떠올리면서, 아니 정확히는 그런 적나라한 욕구가 바로 자신을 향해 스멀거렸다는 점에 이상하게 흥분하는 것 같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먹게 해줄까?”
내가 말한다.
“그 더러운 새끼들이, 너를.”
“더러운 손으로.”
“더러운 혀로, 네 몸에 더러운 분비물을 묻히면서.”
재인이의 속살이 저절로 나를 조였다.
“응. 그렇게 해 줘.”
“너한테 침을 바르고. 냄새나는 입으로.”
“응, 응!”
“널 다 벗기고. 네 구석구석을 다 보고, 맛보고.”
“응, 나를 다 갖게 해 줘.”
“그 새끼들의...... 더러운 좆으로.”
나는 견디지 못하고 다시금 그녀 안의 내 몸을 움직인다. 재인이가 어깨를 뒤틀며 한숨을 토한다.
“오빠 꺼 너무 커. 막...... 부풀어서.”
“짐승이니까.”
내 호흡이 다시 거칠어진다.
“걔들도 짐승이야. 더 더러운 짐승.”
“고추도 크고?”
하필 여기서 튀어나오는 ‘고추’라는 다소 부적절한 단어에 나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직접 만져봤잖아. 나보다 더 크고...... 더 흉측할 거야. 자기를 더 아프게 박아댈 거야.”
재인이가 눈을 꼭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걔들이 널 먹게 할까? 네 안에 박게 할까? 더러운 좆으로 널 찌르게 할까? 이렇게?”
내가 동작을 크게 하자, 재인이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그 놈들한테 대줄 거야?”
“응. 해줄게.”
“어떻게? 어디까지?”
“다. 자기가 원하는 만큼, 뭐든지.”
“그 새끼들이 원하는 대로.”
“응.”
“그 새끼들이 하고 싶은 만큼, 끝까지!”
“아, 자기야 나 될 것 같아.”
“그 새끼들한테 보지 대줄 거야?”
“응, 대줄게.”
“태민이한테도?”
“응.”
“영근이 좆도 받을 거야?”
“응.”
“준후 좆물도 받을 거야? 자기 보지에.”
순간 재인이의 몸이 굳어지면서 나를 꽉 안았다. 누운 몸을 바닥에 부비며 몸부림을 쳤고, 그녀의 어깨와 다리와 질구가 동시에 나를 쥐어짜듯 틀어쥐었다.
그 절정은 평소보다 한층 오래갔다. 한참 후에야 재인이는 헐떡이며 나를 놓았고, 나는 시체처럼 널브러진 그녀에게서 내 것을 꺼냈다. 내 성기는 그녀의 분비물로 범벅이 된 채 아직도 쌩쌩하게 발기해 있었다.
“너무 좋았어요.”
재인이는 악몽에서 깨어난 듯 중얼댔다.
“막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땅 끝까지 떨어졌다 그랬네.”
“원숭이 같은 놈들이 자기한테 막 박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되네.”
나는 웃었고, 재인이는 대꾸가 없었다.
“진짜 싫은데. 더러운데.”
한참 만에 재인이가 말했다.
“근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자기도 그래요?”
“응.”
나는 짧게 답했고, 재인이는 뭔가 생각하는 듯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진짜 대줘요?”
아주 한참 만에, 축축해진 내 성기가 슬그머니 수그러들 즈음에야 재인이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진짜로? 내가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그것일까?
“주말에 걔들이랑 같이 만날 거야. 이번에는 강남이야.”
내가 말했다.
“이번에 갈 데는 지난번보다 좀 더...... 더, 센 곳이야. 그러니까, 더......”
“더 더러운 곳.”
재인이가 혼잣말처럼 중얼댔다.
“자기도 처음부터 벗어야 돼. 거기 언니들하고 똑같이.”
“응, 그렇게 할게요.”
“이번엔 파트너를 바꿀 거야.”
내가 불쑥 말했다.
“자기가 다른 녀석 곁에...... 있을 거야. 누구로 할까? 누구 옆에 앉을래?”
재인이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몇 번이나 독촉하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몰라요, 자기가 골라줘요......’ 한다.
“자기 꺼 커졌어요.”
사실이다. 건드리지 않았는데, 곁에 있는 재인이의 벗은 몸을 다시 눈여겨보거나 만지지도 않았는데 내 성기는 어느새 혼자서 하늘 끝까지 외눈을 부릅떴다.
“근데 다른 사람 옆에 앉으면...... 그 사람한테도, 해주는 거예요? 그 때 그......”
“그래야지.”
내 호흡이 점차 거칠어진다.
“재인아, 내 것 좀 빨아줘.”
재인이는 기다렸다는 듯 상체를 움직여 내 것을 입에 문다. 그녀의 분비물로 더럽혀진 것을 말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무슨 생각해요?”
내가 꿈을 꾸듯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자 재인이가 묻는다. 내 성기를 입에 물었다 꺼내었다 하면서, 눈만 치켜올려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오금을 저리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나는 다시금 눈을 감는다.
“상상해.”
“뭐를?”
“네가 그 놈들 것을 빨아주는 걸. 지금, 바로 그 얼굴로.”
“이렇게......요?”
“응!”
이번에는 내가 몸을 뒤틀며 어쩔 줄 몰라 이를 악문다.
“그 새끼들 것을 빨아주면서, 좋냐고, 그렇게 올려다보면서...... 맛있다고 말하면서!”
“그리고?”
재인이는 내 것을 입에서 꺼낸 채 나를 쳐다보면서, 주로 손으로 흔들어주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 것이 여전히 그녀의 입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 느낀다.
“그 새끼들 것을 빨아먹어.”
내가 헐떡인다.
“그 새끼들이 싼 좆물을, 입안에서, 다 삼켜. 빨아들여...... 한 방울도, 한 방울도 빠짐없이!”
“그거면 돼요?”
재인이가 손놀림을 한층 빠르게 해준다.
“내가 그걸, 질로...... 보지로 받아주고 싶으면 어떡해요?”
순간 내 눈앞이 새하얘진다.
“오빠들 꺼를, 내 자궁에 다 받고 싶어지면?”
대답할 새도 없이 내 정액이 사방으로 분출했다. 재인이가 입으로 받거나 손으로 막아줄 틈도 없었다. 주체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것들을 재인이는 신기하다는 듯 쳐다볼 따름이었고, 그 일부는 그녀의 얼굴과 머리칼까지를 잔뜩 더럽혔다.
한동안 나를 빤히 쳐다보던 재인이가, 이윽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내 볼에 입맞춰주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내려 내 성기 끝에, 배꼽과 가슴 언저리에 묻은 정액 방울들에 입 맞추고는 쪽 빨아들여 주었다. 입안에 들어온 것들을 음미하듯 혀로 굴리다가 꿀꺽 삼켰다.
“사랑해, 재인아.”
재인이가 미소 짓는다. 내 정액으로 반짝대는 입술로.
“걔들한테도 그렇게 해 줄 거야?”
“오빠 친구들한테도?”
재인이가 못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그럴게요. 자기가 진짜 원한다면.”
재인이가 말했다.
“자기한테 해 준 거랑 똑같이. 어쩌면 더 한 일을, 더 더러운 짓을.”
그녀의 얼굴이 한층 더 고양이 같아졌다. 사악해 보이기까지 하는 짓궂은 눈매가 먹잇감을 살피듯 나를 훑었다.
이번에도 업소에 가기 전에 인근의 이자까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번에는 시내라서, 가게 될 업소와 이자까야가 걸어가기 충분할 만큼 가까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같은 강남이라도 제법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먹고, 함께 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재인이는 처음에는 어색한지 도통 입을 열지 않았고, 어지간해서는 내 친구들과 눈도 잘 맞추지 못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사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재인이는 내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다. 지난번의 이자까야 자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 녀석들이 재인이의 속옷차림 모습과 젖가슴을 보았고, 드러난 젖가슴을 주물러댄 녀석도 생겼으며, 심지어 한 녀석의 성기가 잠시나마 재인이의 입안에 들어간 이후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필요한 건 역시 술의 힘이다.
다행이 녀석들의 넉살이 지난번보다 훨씬 천연덕스러웠다. 놈들은 이제 재인이를 반쯤은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난번 ‘그 곳’에서의 이야기를 꺼내는 녀석은 아직 없었지만, 건네는 이야기가 거침이 없었고, 목소리가 컸으며, 무엇보다 말이 짧아졌다. 지난번에는 무슨 말에든 꼬박꼬박 경어를 붙이던 녀석들이 술기운과 이상한 친근감(그 친근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대충 알만하다)을 빌어 존댓말 어미를 생략하고, ‘...요’를 ‘...어’와 ‘...요’의 중간쯤으로 발음했다. 말을 하거나 웃어댈 때 장난처럼 재인이의 어깨나 심지어 허벅지를 살짝살짝 때리기도 했다.
재인이는 괜찮은 척 웃거나, 애매하게 맞장구를 쳐주거나 하면서 녀석들을 받아주었다. 권하는 술도 거의 마다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알기로 재인이는 영근이와 태민이를 싫어했고, 준후에 대해서도 지난번 자리 이후 ‘그 분도 역시 못쓰겠네요’란 말로 반감을 표현했다. 평소 같았으면 정색을 하고 거부감을 표하거나 하다못해 싫은 기색을 나타냈을 법한데, 이상하리만치 모든 걸 받아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의 분위기를 진심에서 좋아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재인이는 말 그대로 받아주고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 무언가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술집에서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그녀가 왜 이렇게 수동적일지 생각했다. 재인이를 먹이느라 다소 무리하게 마셔대서 뻐근해진 머릿속으로, 어쩌면 재인이도 이런 어색함, 일종의 고통을 즐기기 시작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본심으로는 혐오하는 남자들의 장난을 받아주는 모멸감이랄까, 천박한 녀석들과 어울리는 배덕감이랄까.
아니면 단지 내가 너무 원하기 때문에, 내가 안달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화장실에서 자리로 돌아가자, 재인이는 여전히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세 녀석은 필요 이상 재인이에게 밀착해 있었고, 벌개진 얼굴을 들어대는 것이 금새라도 그녀를 더듬어댈 것 같았다.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어릴 적 집에 놀러온 친구가 내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허락 없이 건드리는 걸 보았을 때처럼.
분노와 흥분이 동시에 기어올라왔다. 알 수 없는 것은 그 분노가, 나를 아랑곳않는 듯한 내 친구들보다, 그 자리에 끌려온듯 붙잡혀 최선을 다해 맞춰주고 있을 뿐인 재인이를 향한다는 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제 슬슬 2차 가지? 보니까 술도 거진 다 마신 것 같은데.”
영근이가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표정으로 못이기는 척 ‘그럴까?’ 웃었다. 태민이와 준후의 눈가에도 비굴한 웃음이 피어났다.
“근데 나 생각이 바뀌었는데 말이지.”
내가 말했다.
“나 빼고들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래? 나도 금방 따라갈게.”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눈이 휘둥그래져서는 나를 향했다.
“왜?”
“그냥...... 그 편이 더 재미있지 않겠어? 재인이도 내 눈치 안 보고 더 잘 놀 수 있을 거고.”
“진짜?”
녀석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내 눈치를 보았고, 재인이는 놀란 나머지 무어라 말도 못 꺼낸 채 나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사실은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나 자신도 몰랐던 내 안의 잔인한 마음이, 술기운을 빌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세차게 내몰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그렇게 해. 진짜로 내가 그러고 싶네.”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뭔가에 언짢아하는 게 아닌지 염려돼서, 재인이는 내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해맑게 웃으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저께 약속한 것 있지?”
내가 재인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재인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여기 오기 바로 직전에도 나는 재인이에게 키스하고, 살며시 귀를 깨물면서 ‘그 새끼들한테 다 해 줘. 거기서 허락되는 것 같은 만큼, 거기서 걔들이 원하는 만큼.’ 속삭였던 것이다.
“그 약속대로 되게 하려고 그래. 괜찮지? 먼저 가서 얘들이랑 놀아줘. 빼지 말고, 신나게.”
재인이는 떨리는 눈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야 재인씨를 너무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 그래가지고서야 재인씨가 어디 제대로 놀 수 있겠냐? 부담스러워가지고.”
“응, 그것도 그렇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인아, 핸드폰 이리 줘 봐.”
나는 영문을 몰라하는 재인이로부터 핸드폰을 반강제로 뺏었다.
“가게가 어딘지 아니까, 난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그러다가, 니네가(세 친구들 말이다) 전화로 부르면 가게로 갈게. 김 이사(‘블랙홀’의 지배인을 그렇게 불렀다)한테도 미리 얘기해놔 줘.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내가 말했다.
“재인아, 그러니까 난 네가 충분히 논다고, 거기서 혼자서도 빼지 않고 잘 놀고 있다고 저 녀석들이 다 인정한 다음에야 그리로 갈 거야. 네 전화는 내가 갖고 있으니까 당연히 못 받고, 네가 혼자 나와도 나랑 만날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쟤들이랑 잘 놀고, 충분히 잘 놀아서 허락을 받아야 돼. 이만하면 날 불러도 된다고 말이야.”
“게임이네. 게임은 안 한다고 하더니.”
준후 녀석이 꼭 잠자코 있다가 이런 때만 눈치 없이 불필요한 한 마디를 보탠다.
“알겠지? 재인아, 넌 쟤들한테 허락을 받아야 돼. 그게 오늘 규칙이야. 쟤들이 나한테 전화하지 않으면, 나는 밤이 다 새더라도 그리로 가지 않을 거야.”
재인이가 나를 쳐다본다.
“재밌겠네.”
영근이가 웃었다.
“근데 우리가 일부러 전화 안 하면 어떡하냐? 우리가 너 빼고 재인씨랑 노는 게 너무 좋아서, 끝까지 널 안 부르면 어떡하려고?”
“그거야 니네 맘이지.”
내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어떤 면에서 잔인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일단 방 잡으면, 방 번호를 안 알려주면...... 아니 번호를 알려주더라도 우리가 가게에 얘기해놓지 않으면 누가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가 없을 텐데.”
태민이가 미안한 척 어색하게 웃으면서, 사실은 이 게임의 진행을 거든다.
“진짜 괜찮겠냐? 우리가 재인씨를 아예 납치해 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든가.”
나는 짓궂게 웃었지만, 그래도 소심하게시리 ‘이 참에 우리 사업 다 접을 거면 말이야’라고 뒷말을 붙이고 만다.
“그럼 진짜로 우리가 재인씨 데려간다? 재인씨 괜찮죠?”
영근이가 정말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재인이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면서.
“응, 재밌게들 놀아. 이따 보자고.”
“과연 이따 보게 될까? 우리 블랙홀 말고 다른 데 가 버릴지도 모르는데?”
영근이가 농을 했고, 나는 그냥 웃기만 했다.
“......진짜로요?”
“응, 재미나게 놀고...... 얘들 말 잘 들어. 안 그러면 우리 오늘밤에 영영 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재인이의 표정에는 놀랍게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위로하듯 맞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허, 누구 맘대로 재인씨 손을 잡냐? 이제부터 재인씨는 우리 꺼야! 오늘 밤에는 우리 허락을 받아야 되는 것 모르냐?”
영근이가 장난을 걸었고, 나는 웃으며 ‘응, 미안하다’ 라 받아주었다. 비대한 체구의 영근이한테 어깨를 붙잡힌 재인이가 사뭇 작아 보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재인이를 건장한 남자 셋이 에워쌌다. 그리고 그들은 유흥가 밤거리 속으로 빠르게 멀어져갔다. 재인이를 녀석들한테 넘겨준 채, 나는 어둠 속에 혼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