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야설) 색몽전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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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몽전
20
용비강 이야기.
적뢰가 운남으로 가 독성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용비강은 목표를 하였던 경지에 오르자 강호 출도를 결심하였다.
용비강은 냉약빙의 도움으로 피의 대신 검은 장포를 걸치고 긴 장발을 단정하게 뒤로 묶었다.
냉약빙은 필사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자! 다 되었다. 이제 그만 가보거라! 천중산을 내려가면 먼저 하북의 태양곡에 들려봐야겠지?”
그녀는 용비강의 옷깃을 여며주며 짐짓 쾌활한 음성으로 말했다.
용비강은 그런 냉약빙의 모습을 감회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불현듯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누님! 약속하겠습니다. 은원을 모두 해결한 후에는 이곳 자애원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누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용비강은 열정과 진심이 깃든 음성으로 말했다.
그의 말에 냉약빙은 그윽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런 날이 한시라도 빨리 오길 기다리마!”
“그럼 다시 뵐 때까지 잘 있으세요!”
용비강은 잡고있던 냉약빙의 손을 풀고, 양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아 안고 나서 긴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고 신검 천무혼과 짐을 짊어지고 성큼성큼 운무곡을 나섰다.
“몸조심 하거라!”
냉약빙은 문간에 선 채 용비강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화라라락!
용비강은 그런 냉약빙을 향해 싱긋 미소짓고 그대로 몸을 날려 운무곡 아래로 날아 내려갔다.
“흐윽!”
용비강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자 냉약빙은 그대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잘 가거라! 내 사랑!”
그녀는 슬픔이 가득 배인 음성으로 울먹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용비강이 떠난 방향을 계속해서 바라 보았다.
천중산에서 내려온 용비강은 고향인 태양곡을 향해 질풍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름모를 야산을 지나가는 도중,
끼야악!
돌연 어디선가 한소리 사나운 괴성이 들려왔다.
용비강은 그 소리에 흠칫했다.
(새의 울음소린데....!)
방금 들린 날카로운 괴성,
그것은 어떤 거조가 지른 것임이 분명했다.
다음 순간,
휘익!
용비강은 본능적으로 새의 울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갔다.
하나의 황량한 석곡!
지금 그 석곡의 끝에서 두 마리의 짐승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거대한 새,
그리고,
끔찍한 모습의 구렁이였다.
거대한 새,
그놈의 전신은 온통 시커먼 깃털로 뒤덮여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편 길이가 오장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새였다.
만리천붕!
한번의 날개짓으로 만리를 날아간다는 하늘을 지배하는 모든 날개 달린 짐승의 제왕!
만리천붕의 강인한 발톱은 바위를 으깨고 코끼리를 낚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하늘의 제왕 만리천붕이 오늘은 실로 대단한 강적과 조우한 듯했다.
보라!
카아악....!
또아리를 튼 채 만리천붕가 맞서 싸우고 있는 괴물,
그것은 차라리 이무기라 해야 옳을 거대한 괴망이었다.
몸통이 한 아름이 넘고 그 길이가 무려 십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렁이,
그놈의 머리에는 한 자 정도에 날카로운 뿔이 하나가 있었다.
어느 정도 수련만 더 쌓으면 용이 되어 승천할 수두 있는 영물,
그놈의 동체는 온통 번들번들 빛이 나는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독각한혈대망!
전설적인 괴물,
지심의 한기와 수기를 먹고 산다는 그 놈은 몸속에 엄청 차가운 한독을 지니고 있었다.
그놈이 내뿜는 한독은 너무 지독하여 무쇠라도 얼려 산산조각이 날 지경이었다.
또한, 독각한혈대망의 껍질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어 도검이 불침이다.
카아.........!
독각한혈대망은 사나운 괴성을 내지르며 허공에 뜬 만리천붕을 향해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화악!
그때마다 하얀 백광의 독기가 뿌려졌다.
바로 그놈이 지닌 강렬한 한독이었다.
그것에 스치면 아무리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만리천붕이라 해도 단번에 얼음덩이로 변하고 말 것이다.
카아!
도리없이 만리천붕은 급급히 날개짓을 하며 독각한혈대망의 독기를 피해냈다.
만리천붕의 깃털은 이미 상당 분량이 한독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하늘의 제왕으로서 실로 낭패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지경이 되고도 만리천붕은 호시탐탐 독각한혈대망을 노리며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한편,
계곡 옆의 바위 위에는 용비강이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장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런 괴물들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그는 아연함을 금치 못하며 두 눈 가득 경악의 빛을 띠었다.
그는 자애원주 천기무영자 냉곡이 가지고 있는 많은 고서들에서 만리천붕과 독각한혈대망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었다.
한데, 지금 그 전설적인 두 영물이 바로 용비강의 눈 아래서 치열한 쟁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장내를 둘러 본 용비강은 두 영물이 싸우는 뒤편을 보게 되었다.
석곡의 한쪽,
깎아지른 듯한 가파른 절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절벽 가운데, 하나의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 나무에는 황금빛에 향기로운 향이 나는 열매 한 개가 달려 있었다.
금정신과!
몇 천년의 한 번씩 천지간의 자연지기가 모여 만들어진다.
전설의 열매였다.
금정신과를 복용을 하면 금강지체의 신체와 가장 정순한 내가 공력을 얻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와 함께 영수들이 신과를 복용을 하면 몸속에 있던 자연지기를 탁기가 없는 정순한 기운으로 만들면서 그 기운 또한 상승 시킨다는 글이 적혀져 있다.
즉, 독각한혈대망이 금정신과를 복용을 하면, 탈피를 하여 빠른 시간안에 악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리천붕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독각한혈대망이 금단신과를 섭취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방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싸움은 독각한혈대망 쪽이 유리했다.
그놈은 한독으로 만리천붕을 위협하며 슬금슬금 신과가 있는 석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용비강.
(일단 전설대로 독각한혈대망이 악룡이 되어 세상에 재난을 오는 것은 막야야 할 것 같군.....)
용비강은 만리천붕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상대는 독각한혈대망이었다.
그놈은 전신이 도검불침의 괴물이 아닌가?
용비강은 장내를 주시하며 염두를 굴렸다.
(일단 주의를 분산시키면 만리천붕이 그 틈에 공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큰 지혜로운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쐐액!
용비강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변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장내로 날아들었다.
“이거나 먹어라!”
그는 질풍같이 독각한혈대망의 옆을 스치며 그놈의 머리통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쇄애액~!
텅~~!!
크아아악~!!!
청령한 쇳소리와 함께 용비강이 휘두른 검에서 나온 검기는 독각한혈대망의 머리통을 명중 하였다.
그러나 독각한혈대망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하였지만, 그 놈의 주의를 끌기는 충분했다.
크아악........!
화악!
분노한 독각한혈대망은 스쳐 지나가는 용비강의 뒤를 향해 무서운 한독을 토해냈다.
하나, 그것에 휩쓸릴 용비강이 아니었다.
“하하하! 여기다!”
쇄애액~!!
용비강은 빠르게 움직이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검기가 아닌 검강을 내보냈고, 검강은 단숨에 독각한혈대망의 한독을 가르고 독각한혈대망의 머리로 날아갔다.
독각한혈대망도 본능적으로 용비강의 이번 공격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급히 고개를 숙여 검강을 피했다.
두 번 연달아 용비강에게 방해를 받은 독각한혈대망.
크아아.......
그놈은 사나운 괴성을 토하며 발광했다.
그와 함께,
마침내 그놈은 공격 대상을 만리천붕에게서 용비강으로 완전히 바꾸었다.
스르릉.......
화악~!
그놈은 거구를 끌고 용비강을 뒤쫓으며 무서운 한독을 토해냈다.
하나,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잠시 영문을 몰라 하던 만리천붕,
그놈은 이내 용비강이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쐐액~!!
독각한혈대망이 용비강을 쪼아가느라 주의가 분산된 사이,
만리천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벼락처럼 독각한혈대망을 향해 내리꽂혔다.
독각한혈대망이 움찔했을 때는 늦은 후였다.
콰드득!
만리천붕의 강철같은 발톱은 그대로 독각한혈대망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크아아아...!!
만리천붕의 발톱에 두 눈이 으깨진 독각한혈대망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거구를 버둥거렸다.
그러나, 저항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때,
카아!
독각한혈대망의 머리통을 움켜쥔 만리천붕은 사납게 울부짖으며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머리통을 잡힌 이상 독각한혈대망의 한독도 더 이상 만리천붕을 위협하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만리천붕은 독각한혈대망의 거대한 몸뚱이를 움켜쥐고 수백장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까마득한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만리천붕,
그놈은 그대로 독각한혈대망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던 발톱을 풀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꽝~~!!!
거대한 굉음과 함께 독각한혈대망의 거구는 마치 바위가 떨어지듯 그대로 계곡의 바닥으로 팽개쳐졌다.
그 충격은 가히 엄청났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의 바닥에 삽시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겨났다.
끄르륵......
수백 장 높이에서 떨어진 독각한혈대망, 그놈은 벌린 입으로 선혈을 꾸역꾸역 토하며 죽어갔다.
제아무리 그놈의 몸뚱이가 도검불침이라 해도 그 까마득한 허공에서 떨어진 충격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겉은 멀쩡했으나 독각한혈대망의 내부는 무참하게 박살나 버렸다.
이윽고,
“휴우....... 정말 끔찍한 놈이로군!”
용비강은 숨이 끊어진 독각한혈대망의 시체 옆으로 다가서며 혀를 내둘렀다.
죽어 자빠진 독각한혈대망의 몸뚱이는 무려 십여 장에 달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둔덕이 하나 새로 생겨난 듯했다.
한데,
(저것은.......!)
죽은 독각한혈대망의 시체를 살피던 용비강은 문득 두 눈을 번뜩 빛냈다.
내장과 피를 토하고 죽은 독각한혈대망, 그놈의 아가리 부분, 핏속에 무엇인가 섞여 불그스름한 백광을 토하고 있지 않은가?
자세히 보니 그것은 메추리 알만한 구슬이었다.
얼음처럼 투명한 하얀 구슬, 그것에서는 은은한 하얀 한기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문득,
“내단이다!”
용비강은 나직한 환호성을 발했다.
내단!
그렇다.
그 하얀 구슬은 다름이 아닌 독각한혈대망의 내단이었다.
독각한혈대망이 천 년의 세월 동안 지저에 흐르는 한기와 수기를 흡수한다.
그 한기와 수기가 응축된 것이 바로 내단이었다.
빙망단정!
한독의 정화,
무공을 연마한 자가 복용하면 극에 이른 극음의 내력을 얻을 수 있다.
용비강,
그는 흥분된 표정으로 독각한혈대망의 시체에서 빙망단정을 집어들었다.
그때,
구우........화르르!
만리천붕이 허공에서 선풍같이 몸을 휘돌려 서서히 용비강의 옆으로 날아 내렸다.
실로 엄청난 거구,
그놈은 앉은 키만 해도 무려 이 장 이상이었다.
만리천붕이 날아내리자 용비강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이것은 네 것이었지!”
그는 고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빙망단정을 만리천붕에게 내밀었다.
어쨌던,
독각한혈대망을 죽인 것은 만리천붕이니 빙망단정도 만리천붕의 것인 것이다.
만리천붕은 빙망단정을 내밀고 있는 용비강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부리로 빙망단정을 단숨에 삼켰다.
그리고 다시 몸을 날려, 석벽에 매달려 있는 금정신과를 따, 다시 용비강 앞에 내려왔다.
만리천붕은 고개를 숙여 용비강 앞에 금정신과를 내밀었다.
그 모습에 용비강은 흠칫하며 물었다.
“이것을 내게 양보하겠다는 말이냐?”
만리천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용비강은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고맙다, 천붕!”
그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
(잘 되었다. 금정신과라면 넘쳐흐르는 이 몸의 양기의 균형을 잡아주고, 내력을 몇 단계 상승시켜 줄 것이다.)
현재 용비강은 극양지체로 인해 음양의 균형이 깨져 있었다.
그 덕택에 천무존의 무극양의신공이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금정신과로 음양의 균형이 맞추게 되면 무극양의신공의 성취가 더 높아 질 것이다.
그렇게, 용비강이 기쁨에 들떠 있을 때,
구우......
만리천붕이 갑자기 낮게 울며 용비강을 향해 등을 보이며 주저앉았다.
용비강은 그 모습에 흠칫했다.
“나를 태워주겠다는 말이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만리천붕에게 물었다.
그러자,
구우.......
만리천붕은 낮게 울부짖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하하! 좋다! 나도 세상을 한 번쯤 허공에서 관람을 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용비강은 흔쾌히 웃으며 말했다.
이어, 그는 훌쩍 만리천붕의 등 위로 올라탔다.
다음 순간,
구워~!!!
만리천붕은 웅혼한 울음을 토하며 날개를 퍼뜩였다.
이어,
콰아아......!
그놈은 용비강을 등 위에 태운 채 선풍같이 휘돌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우와! 앗!”
용비강의 입에서 절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석곡과 웅장한 산봉들이 용비강의 발 아래로 멀어졌다.
“하하, 정말 장관이다!”
용비강은 발 아래로 휙휙 지나가는 산역을 내려다보며 흥분된 음성으로 외쳤다.
그러다,
그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라락... 스으... 스으...!
북쪽을 향해 날아가며 만리비붕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용비강의 장발과 옷이 요란하게 펄럭이게 만들었다.
“이봐, 천붕! 도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냐?”
문득 용비강은 이마에 손을 대고 사방을 살피며 만리천붕에게 크게 외쳤다.
만리천붕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북쪽을 향해 더 빨리 날아갔다.
얼마나 날아왔을까?
정오였던 시간은 어느 시간이 흘러 석양이 질 무렵이 되었다.
주위의 하늘은 온통 핏빛노을로 선명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짙은 홍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붉은색으로 타오르는 하늘!
아아아!
손으로 만져질 듯 가깝게 보이는 하늘의 일몰은 실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온톤 짙붉은 비단휘장으로 뒤덮여 있는 것 같은 하늘.
그것은 가히 환상적인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화려한 장관이 용비강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벅찬 격동에 휩싸인 용비강, 그가 흥분에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구우우~!!
만리천붕은 웅혼한 울음을 토하며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저것은......!”
용비강은 갑자기 눈앞으로 확 다가드는 지면을 바라보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돌연 그의 눈앞으로 확 다가서는 거대한 절벽!
동서로 이어진 그 거대한 절벽은 아득하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지반의 남쪽이 어떤 이유로 침몰하여 이루어진 절벽!
그 모습은 마치 수많은 창을 꽂아 놓은 듯이 보였다.
가히 일대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는 장엄한 광경!
문득,
“대...... 대과벽이다!”
용비강의 입에서 격동에 찬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대과벽!
그렇다.
갑자기 용비강의 앞에 나타난 천길단애는 대과벽이었다.
거대한 대과벽은 온통 저녁노을로 짙게 물들어 마치 피를 칠한 듯 시뻘겋게 보였다.
용비강의 가슴은 세차게 뛰놀았다.
“글로만 잃었던 대과벽에 실제로 오게 되다니......!”
그는 흥분된 표정으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하고도 장엄한 대과벽을 바라보았다.
그때,
화아......!
용비강을 태운 만리천붕은 대과벽의 아랫쪽을 향해 돌진해갔다.
“......!”
용비강은 흠칫했다.
그의 눈에는 거대한 대과벽 사이로 갈라진 틈바구니가 보였다.
(천붕이 나를 데려온 목적지가 바로 저기인 모양이군!)
과연, 만리천붕은 대과벽 사이의 틈바구니를 향해 날아들었다.
틈바구니, 그것은 뜻밖에도 하나의 동굴이었다.
동굴은 너무 은밀하여 허공에서 보지 않으면 전혀 그런 동굴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다시 말해, 새를 타고 살펴보기 전에는 발견할 수 없는 지극히 은밀한 동굴이었다.
화락!
용비강을 태운 만리천붕은 선풍을 일으키며 동굴의 입구에 내려섰다.
용비강은 전면의 동굴을 주시하며 호기심 어린 눈을 빛냈다.
“천붕! 여기가 네 집이야?”
그는 만리천붕의 등 위에서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구우우... 쿠쿠!
용비강의 물음에 만리천붕은 낮게 웅얼거리며 용비강의 등을 밀면서 뒤뚱뒤뚱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전면의 벽에는 오랜 세월로 마모된 갑골문자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붕검......선부>
글은 그런 뜻을 담고 있었다.
용비강은 동굴벽을 주시하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붕검선부라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붕검선부라는 명칭은 없었다, 대체 이곳은 얼마나 오래된 곳이란 말인가? 그리고 천붕은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 온 것이지?)
그렇게 머릿속에서 의문을 품은체 용비강은 만리천붕이 이끄는 데로 붕검선부 안으로 들어갔다.
“아...!”
용비강은 낮은 탄성을 발하며 눈을 크게 떴다.
붕검선부 안은 넒은 지하광장이었는데 그 광장의 중앙에 커다란 수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수정들의 모양이 마치 거대한 새의 둥지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 들어오는 빛에 반사되어 수정의 둥지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만리천붕은 위풍당당하게 걸어가 수정둥지 안으로 들어가 주저 앉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서 만리천붕은 고개 돌려 용비강에게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용비강은 만리천붕이 가리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윽!”
그쪽을 바라보던 용비강은 질겁하고 말았다.
눈!
한 쌍의 새파란 눈이 석벽 아래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흡사 예리하게 날선 두 자루의 칼날과도 같아 용비강을 대경실색케 했다.
그 쪽 석벽의 방향은 한마디로 서고였다.
석벽의 아래쪽으로 수많은 고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모양이나 형태를 보아 오랜 세월이 지난 고서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관리가 잘 되어 있는지 전혀 훼손되지 않고 고서들이 유지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좌의 석대가 놓여져 있었다.
예의 눈 주인은 바로 그 석대 위에 단좌하고 있었다.
나이는 삼십 전후 정도 되었을까? 극히 단아하고 영준한 용모의 문사였다.
그는 너무 단정하고 영준하여 오히려 사악하게 느껴졌다.
그는 머리 위에 하나의 옥관을 쓰고 있었으며 일신에는 고급스러운 붉은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그 붉은 장포의 가슴에는 하나의 새 형상 아니 천붕 형상이 생생하게 수 놓여져 있었다.
석대 위의 적포문사를 자세히 살펴보던 용비강은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체...!)
그렇다. 그 적포인은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시신이었다.
그가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보이는 것은 그 인물이 생전 절대지경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문득 용비강의 눈빛이 적포인의 가슴에 새겨진 천붕형상의 무늬에 머물렀다.
(천붕! 혹시 막북 적붕호황천의 고인이 아닐까?)
용비강은 그렇게 머릿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현재까지 무림에서 붕새 형상을 사용한 문파는 별로 없었다.
거기다가 적포인의 옷 색깔을 보고 혹시? 하는 생각으로 적붕호황천을 떠오르고 있었다.
막북 적붕호황천
변황무림의 최고 명문들인 변황오천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두 하늘 중에 한 곳이다.
변황오천은 천 년 간 중원제패의 야심을 키워왔다.
그들은 천 년 간 변황에서 힘을 길러왔고 마침내 저 강대한 몽고의 대원제국과 함께 중원으로 들어왔다.
그 후, 백 여년의 세월동안 반원활동을 하는 중원 무림인들과 변황오천의 고수들 간에 보이지 않는 혈전을 벌렸고 사십 년 전 명나라가 일어나고, 원나라가 북쪽으로 물러나면서 같이 중원을 떠난 변황오천이었다.
그런데 뜻 밖에 장소에서 그런 변황오천의 한 곳인 적붕호황천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용비강은 호기심으로 눈을 번뜩이며 조심스럽게 적포인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적포인의 시신 앞에는 두 가지의 물건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한 권의 양피비급과 붉은 빛이 도는 한 자루의 검이었다.
붉은 검!
그것에서는 맑은 핏빛이 우러나오면서 마기가 흐르고 있어 일견하기에도 예사 물건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검의 표면에는 수많은 용이 뒤엉킨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
용비강은 한눈에 그 문양에 오묘한 현기가 서려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혈검을 집어든 후 그 아래의 비급을 살펴보았다.
<적붕유전.>
비급의 표지에는 그와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역시... 이 분은 적붕호황천의 고인이셨군!”
용비강의 예상대로 적포인은 적붕호황천 출신인 것 같았다.
용비강은 적붕유진을 집어 들어 그 내용을 살펴보다가 적포인의 신분을 알게 되어 매우 놀란 표정으로 적포인을 바라보았다.
적붕황 단목천뢰!
적붕호황천의 전대 천주로 변황제일인이었다.
그 이름은 변황 일대에서 아직도 무신으로 떠받들고 있었다.
또한 용비강의 스승인 천무존 독고한의 호적수이다.
사십여 년 전 당시 반원활동을 하던 천무존 독고한과 세 번 대결을 하였지만, 세 번 전부 승부를 내지 못할 정도의 강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추면서 중원과 변황무림의 균형이 깨지고 결국에는 원의 패망과 명나라의 건국이 되는 흐름이 되었다.
만약 적붕황이 계속해서 존재를 하였다면 원나라가 그렇게 빨리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천무존과 천기무영자의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특히 스승인 천무존 독고한의 유일한 아쉬움은 적붕황과 제대로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이라고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 적붕황 단목천뢰의 유체를 천무존의 전인인 용비강이 발견을 한 것이다.
용비강은 조심스럽게 적붕황 단목천뢰가 남긴 글을 읽어 나갔다.
<노부는 막북 적붕호황천의 천주인 적붕황 단목천뢰라는 사람이다. 노부는 천주라는 자리보다 한 명의 무인, 아니 검사로 있는 것 좋았다. 그 저 검이 좋았고, 검에 있어서는 누구한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원의 쿠발라이 칸과 본 천의 맺은 맹약에 따라 중원에 들어와 원나라 황실을 지켰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보아 원의 몰락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당장이라도 고향인 막북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만, 선대가 맺은 맹약 때문에 할 수 없이 말년에 대부분을 중원에서 보내야 했다.
임무 때문에 다른 변황사천의 천주들을 만나보았고, 당시의 중원 십대고수들도 만나보았다.
그 중에서 천무존 독고한이 제일 강했지만, 아무 의욕도 없던 노부와 동수였다.
만약 제대로 승부욕을 가지고 대결을 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그렇게 적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의미 없이 맡은 임무만 해결하며 시간을 보낸 것이 노부의 큰 실수였다.
어느 날이었다. 황실에서 임무가 내려왔다.
당시 금릉에서 크게 세력을 일으키고 있는 주원장의 세력을 토벌하라는 명령이었다.
계획은 이러했다, 다른 변황사천의 천주들이 또 다른 반란세력인 진우량의 군으로 가 중원의 무림인들의 시선을 진우량쪽으로 돌리게 만들고, 나와 변황오천의 정예고수들이 금릉으로 내려가 주원장과 그 심복들을 제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노부와 정예들이 금릉의 외곽에 도착을 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중원의 어떤 무인들보다 뛰어났다.
특히 노부를 상대한 면사로 얼굴을 가린 여성의 무학은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무인들보다 강했다.
그 여인의 무학을 상대하던 노부는 여인의 무학이 무엇인지 기억해 냈다.
여인의 무학은 어떤 전설상의 초 고수에 무학이었다.
바로 고금팔대고수에 일인이자, 고금제일의 살인자 아수혈마에 수라혈마공이었다.
노부가 자신의 무공을 알아보자, 여인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그녀는 아수혈마의 후예인 혈문의 당대문주인 혈후라고 신분을 밝히고 공격을 하였다.
당대에 적수가 없다는 나의 생각은 오판이었다. 아수혈마의 마공은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엄청났다. 혈후의 일 검에 노부의 검이 부러졌고 다시 어어지는 일 검이 노부의 몸에 박힌 체, 심맥이 모두 타버렸다.
본 천의 수호신인 만리천붕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본 천 탄생지인 전설의 붕검선부에 올 수가 있었다.
죽어가던 노부는 본 천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천붕이 거절을 하였다.
그 이유는 천붕과 본 천의 인연은 노부의 대로 끝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부를 이곳 붕검선부를 되리고 온 이유도 노부 죽음을 시작으로 천하는 대 혈란이 시작될 것이고 하늘이 그 혈란을 막기 위해 내려 보낸 천인과 노부와 이곳 붕검선부와 인연이 있다는 천기를 읽고 천붕이 노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다고 말하였다.
적붕유전에는 그대를 위해 기록한 네 가지 무공이 있다.
그 중 세 가지는 본 적붕호황천의 천주에게만 계승되는 지존무학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곳 붕검선부로 오는 도중 혈마검에서 찾아낸 혈마의 초절기다.
그대가 누구든... 이 모두 그대의 것이다. 한 가지 부탁이라면 후일 적붕호황천의 제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도움을 주라는 정도이다.
나머지는 지존삼절에 하나인 만수령대법을 연마하여 천붕에게 직접 듣도로 하여라!
적붕황 단목천뢰 절필>
글을 읽어 나가던 용비강은 경악했다. 사십여 년 전 적붕황의 실종 비사를 진실을 알게 되어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전설의 고금팔대 고수에 후인이 당대 존재한다는 사실과 대혈겁의 예언.
이것으로 용비강은 스승인 천무존의 암습과 가문인 태양곡의 멸문에 대한 진실에 한 발 다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