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중독성 음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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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으아아아아악!!!”
“크라아아아아아!!”
인간이 아닌듯한 기괴한 고함소리.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원인-猿人-이나 짐승과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에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섞여가며 점차 들리지 않게 된다.
‘미...미안’
잠시 뒤에야 자신의 손 위치를 깨닫고 그녀의 몸에서 손을 떼며 환영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비스듬하게 누워있는 불안정한 상태로 그 위에 올라탄 서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맺힌 눈과 마주치자 왠지모를 부끄러움에 그는 고개를 돌려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시선을 돌린다.
밖에서는 비명소리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기괴한 괴물들의 고함소리가 커지는 상황임에도 환영의 몸뚱아리는 다른 의미로 잔뜩 긴장되어있다. 처음 마주쳤을때의 그 표독스런 표정은 어디가고 불안한 표정으로 밀착된 여고생에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켜버린 것만같아 불안하기만 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 했다.
“꺄...ㅃ”
그리고 별안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잘려진 머리가 굴러와 문 앞에 부딪혀 왔다. 몸뚱아리 잃은 머리와 눈이 마주친 서연이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려 하고 환영이 재빨리 손을 올려 입을 틀어막는다.
“으..ㅂ....ㅂ...”
우연히도 목이 잘린 순간의 그 경악스럽게 치켜뜬 핏발선 두 눈이 문틈을 향해있다. 마치 둘이 숨어있는 것을 원망하듯 안쪽을 바라보는 눈두덩이에서 피눈물이 고여가며 그로테스크함이 항층 배가되는 광경. 서연은 불과 수 센티 앞의 그 끔찍한 시선에 굳어진 채 꺽꺽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알싸한 피비린내가 문틈으로 들어와 코를 찌르고 환영은 시체의 머리에서 눈도 떼지못하고 온몸을 사시사무 떨듯하는 그녀의 머리를 감싸안으며 시야를 가려준다.
“우워어어어어어!!”
길게 이어지는 괴물의 포효에 서연이 더욱 움츠러들고 환영 역시도 그녀를 안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사타구니가 서서히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며 동시에 축축함이 하복부 전체로 퍼져나간다.
‘실금했나...’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올려 서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울상이 된 채 시선을 피한다. 그대로 환영의 위에 올라탄 그녀가 괴기스런 고함소리가 들릴 때 마다 움찔움찔하며 몸을 떠는것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부끄러운지 몸을 조금씩 뒤틀기 시작했다.
‘괜찮아, 움직이지마.. 움직이지...’
무언가에 부딪혀 소리가 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환영은 진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그녀를 안심시킨다. 거의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속삭이던 환영의 눈 앞이 순간 어두워지고, 시커먼 털로 뒤덮힌 두꺼운 발이 나타나 문을 가로막고 서 있음을 깨달았다.
‘히익...’
부끄러움도 잠시, 서연은 몸을 떨며 환영과 동시에 숨을 멈추었다.. 조잡한 샌들 형태의 신발에 두꺼운 철판이 덧대어져 있고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발가락이 그대로 드러나있는 시커먼 피부의 발.
그것으로부터 좀전의 피비린내와 섞여 역겨운 냄새가 타고 들어오는 듯했다.
‘들켰나...!?’
침을 꿀꺽 삼키고 싶지만 그 순간 저 발이 얇은 수납장 문을 뚫고 들어올 상상이 되자 식은땀이 흐르며 온 몸이 경직된다. 반쯤깨져있는 노란색의 엄지발톱이 언제 움직일 것인가에 온 신경이 집중되는 순간, 위에서 내려온 굵고 검은 팔이 잘려진 머리를 움켜쥐고 들어올리며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어눌하고 기괴한 말소리가 발소리와 함께 점차 멀어지고 실내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전까지 미친듯한 비명과 고함으로 가득찼던 실내는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이 대체되었고 ‘그것들’이 쉽사리 이곳에서 나가지 않을 작정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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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밖에서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끔찍했던 비명과 괴성이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듯 핏기가 가신 서연의 얼굴이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단지 몇 분이 지난건지, 몇 시간이 지난건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한 혼란스러움에 애써 저항하려는 환영은 주위를 조심스레 살피며 수납장에서 천천히 기어나왔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목없는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로 인해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고 거의 모든 것들이 철저히 부서져 있다.
“히익....”
따라나오려던 서연은 눈 앞의 시체에 몸을 굳히고 움직이지 않는다.
“저... 설.. 수가....”
다리에 힘이 풀린탓인지 여전히 바닥에 네 발로 엎드려 환영을 바라보는 여고생. 그녀를 말없이 일으켜 세우자 곧바로 팔에 달라붙어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그의 품에 파고든다.
“괘...괜찮아요?”
“....”
서로 안고 있을때도 느꼈지만 와닿는 가슴의 감촉에 애써 떼어놓을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란놈은... 이럴때도....’
“흐윽... 으앙....”
여기저기 널부러진 목 없는 시체, 내장이 흘러나와 바닥에 흩어져있고 토막난 팔다리가 그의 발치에도 굴러다닌다. 실내를가득 메운 피비린내 탓에 ‘들리기만’ 했던 참상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도록 만들어주었다.
흐느끼며 주저앉아가는 그녀를 억지로 지지해 넘어지지 않도록 하며 환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를 전부 가져갔어...’
열리지 않았던 그 녹슨 비상구쪽. 철문은 절반이상이 피로 물들어있고 바로 앞에는 또 하나의 목없는 시체가 있다. 옷차림으로 보아 그 아르바이트생인걸로 보인다. 왼팔과 다리가 짓이겨져 있고 몸뚱아리 역시도 절반이 으깨어져 장기가 흘러나와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그가 꼈던 안경이 짓밟혀져 찌그러진채로 내팽겨쳐져 있다.
여고생을 껴안고 있어 팔이 자유롭지 못하다.
“부축해줄테니까... 얼른 나가자.”
“아저씨... 나 눈 감고 있을게요.. 보기싫어.. 무서워... 흐윽........ 여기서 빨리 나가요...”
환영이 흐느적거리는 그녀를 부축해 피씨방 입구를 향해간다.
피해자들의 저항이 격렬했던 것인지, 나중에 ‘그것들이’ 그런건지 모니터나 의자가 여기저기 떨어져있고 곳곳이 핏자국과 ‘신체의 일부’가 굴러다닌다. 환영 역시도 치밀어오는 욕지기를 참으며 그것들을 무시하고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긴다. 계속해서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은 느낌에 유리문이 부서진 입구쪽만을 바라보며 다른곳에 눈길을 주려 하지 않는다.
“푸하.... 드디어 나왔다...”
한숨 돌리는 환영.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게... 좋겠다.’
시체들과 이 곳에 더 있다간 무슨일을 당할지 모른다... 추운 날씨가 아님에도 목 언저리로 스멀스멀 느껴지는 한기에 오싹해져 환영은 목을 움츠리고 그녀를 잡아 끌려 했다.
“우우우웨엑....”
그것을 뿌리치고 피씨방의 벽면으로 달려가 몸안의 것들을 게워내는 서연.
“우욱... 우욱......흐윽....”
“.....”
“흐앙.. 뭐야 대체 그것들...흐윽....”
실컷 토해내자 벽면을 향해 허리를 숙인채 서연이 흐느끼고 환영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저기.. 아까 들었는데.. 서연..이라고 했나? 난 저기.. 김환영이라고 해.”
“....흐윽...”
“......아, 저기...”
“.....”
한시라도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환영은 안절부절하며 필사적으로 말을 걸었다. 둥글게 내밀어진 체크무늬의 플렛 스커트가 완만하게 서연의 엉덩이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것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괴물들이 다시 나타나 순식간에 목을 잘릴것만같은 불안감이 떠나질 않았다.
“...저.. 서연아..?”
“...함부로 남의 이름 부르지 마요.”
눈물을 훔치며 그녀가 일어서서 환영에게로 다가왔다.
“....”
“..그... 바지 적신건 죄송합니다.”
“아.. 뭐... 별수없지..”
마치 자기가 오줌이라도 싼 듯 하복부가 흥건히 젖어있다는걸 그제서야 느끼며 환영은 크로스백에서 생수 한 통을 꺼내서 바지를 대충 헹궜다.
“저기.. 너도?”
“....”
아랫입술을 깨물며 반쯤남은 생수통을 건네받은 서연은 뒤돌아서 치맛자락을 대충 헹궈간다.
“일단 저기 숲속으로 들어가자. 여기 있다간 위험할 것 같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데리고 한참을 걸어 숲 속으로 들어선다.
눈에 잡힐듯 피씨방 가까이 수목壽木들이 보였지만 직접 걸어보니 그곳은 의외로 멀었고 간신히 안쪽으로 들어설 때는 사위가 어둑어둑해져 있을때 였다.
“아저씨, 여기 어딘지 모르겠죠?”
“응? 으응... 핸드폰도 안터지고...”
어렴풋이 보이는 숲 속의 오솔길을 따라 정처없이 걷는 와중 먼저 침묵을 깨고 그녀가 말을 걸었다. 환영은 손 안의 액정화면을 바라본다. 여전히 먹통인 상태인지라 시간조차도 정확한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아마 서연의 핸드폰 역시도 마찬가지일거란 생각이 든다.
“저기...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저도...”
“....”
뒤따라 걸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자 멈춰선채로 양 어깨를 감싸쥐고있다. 밤이 되자 기온은 이상하리만치 급격히 낮아졌고 늦가을에 걸맞는 가벼운 차림의 환영 역시도 추위에 몸서리치며 때때로 몸 여기저기를 문질러대며 걸었다. 그러나 서연의 행동은 당연히도 추위때문은 아니었다. 아마도 아까전의 끔찍한 광경이 생각난 것이리라.
“됐어.. 뭐... 이해안가는 일 투성이지만.. 근처 민가든 도로든 찾아서 빨리 돌아가자.”
환영 역시도 참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잔해’가 떠올라 뇌리에서 가시질 않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 유서연이라고 해요.”
“으응..?”
“아까 아저씨 이름도 말했잖아요.”
“아...아아. 예쁜애가 이름도 예쁘네.. 하하하..”
‘쌍팔년도에도 이렇겐 안꼬셨겠다’
순간 당황해 내뱉은 말에 환영은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웃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풋..”
‘나이에 안맞게 순진한거 같네...’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눈 앞의 아저씨에 저도 모르게 살짝 웃는 서연. 그런 그녀의 표정을 확인하자 여유없이 굳어있던 환영의 얼굴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어색한 듯 걸음을 재촉한다.
저항없이 손을 맞잡은채로 걷자 그 작은 온기에 다소간의 안정감이 느껴졌다.
“손 따뜻하네...”
“.....”
몇 년만에 맞잡는 여자의 손인가.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지는 환영은 끔찍한 기억은 잠시 잊고 지금 이 상황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답없이 맞잡고 있는 손을 놓지 않는 서연이 그저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
“...아저씨...”
“왜..왜?”
얼마 못 가서 또다시 걸음을 멈춘 서연. 손을 뿌리칠까 순간 불안해진 환영이 돌아보았지만 그녀는 저항없이 손을 잡은 채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왜..?.......!?”
하늘을 가린 나무들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달. 서연은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주시하고 있고 그에 따라 고개를 돌린 환영도 이내 할말을 잊은채 입을 쩍 벌린채로 굳어진다.
‘여기는.... 대체...?’
허탈한 표정으로 서연이 해설이라도 하듯 대답한다.
“달이.... 세 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