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판타지] 중독성 음식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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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후우... 바람이.. 차구나”
쓸데도 없는 감흥을 느끼며 김환영은 근처 피씨방을 향해 간다.
올해 35세, 얼마전 퇴직한 백수. 여자친구는 커녕 친구도 거의 없음.
지방대 출신에 그 흔한 어학연수 한 번 다녀온 적이 없고, 이렇다할 커리어도 없는 그에게 재취업의 길은 벌써 세 달째 열리지 않고 있다.
“야이 새끼야! 너같은놈 받아줄데가 있는줄 알아!”
그만두겠다고 말할때의 팀장은 분노반 황당함 반으로 그에게 고함을 쳤다. 지독한 야근과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중소기업을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빠져나왔지만 세상은 그에게 한없이 차갑기만 하다.
“씨팔... 인간대접은 해줘야 할거 아냐..”
퇴직할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불평을 내뱉으며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깜빡 잊고 내지 않은 인터넷비 탓에 집에 있는 컴퓨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취업사이트에 들어가보려 피씨방을 향하는 환영은 우울한 표정으로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피씨방으로 가는 길 최단루트를 선택 한 탓이었을 뿐인데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드는 골목에 위화감을 느낀다.
‘???.... 이런 길이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진 좁은 길을 지나며 걸음을 재촉한다. 길 옆으로는 적선을 위한 것인지 조그마한 깡통을 앞에 내어놓은 노숙자차림의 한 노인이 고개를 푹 수그리고 꾸벅거리며 조는 것이 보인다.
“.....”
슬쩍 눈길이 갔지만 그대로 지나치려던 환영은 동전하나 든게 없는 깡통을 얼핏 보고는 몇 발자국 더 걸어갔다가 발길을 멈춘다. 여전히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만 있을뿐 어떠한 움직임도 없다.
‘그래... 아직 늙진 않았잖아...’
밑바닥 생활을 하는 그보다도 더욱 초라한 인생을 사는 노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어 지폐를 헤아려보고 한숨을 폭 쉰다.
‘이번달 생활비도 간당간당하네....’
큰맘먹고 오랜만에 착한일이나 하자싶어 세 장밖에 없는 만원짜리 중 하나를 꺼내어 깡통에 집어넣는 환영.
“헤헤헤”
“으악!”
그 순간 노인이 별안간 웃으며 돈을 집어넣는 그의 손목을 휙 낚아챘다. 꾸벅꾸벅 졸기라도 하고 있는줄 알았던 노인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는 환영.
“이봐.. 젊은이..”
“뭐...뭐죠?”
지저분한 중절모를 뒤집어쓰고 아무렇게나 자란 백발과 수염,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노인의 얼굴. 초라한 모습임에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자 순간 위축됨을 느낀다.
‘외..외국인 노숙자?’
손목을 붙잡힌재로 아연히 노인을 바라보는 환영은 동양인과 다른 이질적 이목구비에 다소 놀란채 그의 얼굴을 주시한다. 초라한 외모와 달리 짙푸른 눈동자의 강렬한 안광에 눈을 떼지 못하며 그대로 굳어져있다.
“이 세상에 맞지않는 녀석이로구만. 킥킥킥....”
“.....?”
쓴웃음을 지으며 환영의 손목을 놓아준 노인은 깡통속의 돈을 집어 품에 갈무리한다.
“외..국인이세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언어라는건 세계가 바뀌면 자동으로 바뀌는게지. 내가 한국말을 하는거 같은가?”
“...예?”
노숙자로 보이는 노인의 조롱섞인 말에도 미쳐 반응하지 못하고 환영은 이어지는 그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몇백... 아니 몇 천년에 한 번? 가끔말야, 다른 세상과 부딪혀 그 틈이 벌어지는 사고가 일어나지.”
“에...?”
강렬한 안광과 여유로운 말투에 그는 바보같은 되물음을 할 뿐 주저앉은 그대로 노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차원과 차원사이를 잇는 영 콘디트Young-Condit라는 구불구불한 관.. 이라고나 할까? 무한히 바뀌는 그 통로가 말이야, 그게 가끔 잘못 움직여 이쪽동네의 차원벽까지 찢어버리는 경우가 있단 말야.. 이 늙은이가 보기에 자넨 틈바구니에 빨려들어갈 것 처럼 생겼어. 킬킬...”
뭐가 그리 우스운지 노인은 재미있다는듯 낮은소리로 웃으며 환영의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본다.
‘미친 늙은인가...’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나려는 그를 바라보는 노인은 아랑곳없이 말을 잇는다.
“보아하니 먹고살기도 빡빡한 젊은이같은데... 큰 돈을 줬으니 나도 선물을 주지.”
“아.. 뭐라는거야.”
성가시다는 듯 뇌까리며 표정을 구긴 환영의 앞으로 노인은 몇 개인가의 두루마리를 내어 놓는다.
“골라봐.”
“예?”
둘둘말린 낡은 종이쪼가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보며 환영은 또다시 바보같은 되물음을 던진다.
“에헴, 첫 번째는 오거Ogre보다도 강력한 완력Strenth을 주는 스크롤Scroll, 두 번째는 혀를 내두를만한 민첩한 재주Dexterty, 세 번째는 에... 이게 아닌데..?”
자신만만하게 설명을 이어가려던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루마리를 펼쳐본다.
“푸....뭔데요 그건?”
당치도 않는 대사와 별로 신용이 가지 않는 태도에 비웃음을 섞어 물어봐도 대답없던 노인은 종이에 그려진 복잡한 문양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잠시 후 손뼉을 마주친다.
“아.. 강한 체력Constitution 스크롤 작성중에 헷갈려 섞어버렸구만 이건 미식美食 제조 스크롤이네!”
“...?”
“그러니까 말야... 체력의 스크롤에다가... 음식물에 쓰면 극상極上의 요리가 되는 스펠Spell을 덧씌워 버렸어. 으헛헛헛!!”
“별....”
알 수 없는 말에 표정을 구긴 환영이 일어나려는 하자 노인은 웃음을 멈추고는 황급히 그를 저지한다.
“기다려, 기다려! 다음으로 이 네 번째 스크롤은 높은 지능Intelligence의...”
“아, 그러니까 뭐, 선택하라구요?”
“응?? 음 그렇지.근데 설명이 아직...”
“맛있어진다구요? 그럼 세 번째꺼요.”
반쯤은 노인의 장단에 놀아주는 듯한 느낌으로 가볍게 선택해버린다.
“에...? 이건 사람한테 쓰는게 아닌데? 말했듯이 주문이 겹쳐버려서 말이야..게다가 음식에다... ”
“아, 됐어요 됐어.”
더 이상 정신나간 늙은이의 상대를 해 줄 여유는 없다. 시간낭비 한 듯한 느낌에 환영은 손을 저으며 일어나자 노인은 황망히 따라일어서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아 이할아버지 왜이러실까? 어쩌라구요?”
“알았네, 알았어. 이거 원 아크메이지Archmage가 선물을 주려고해도 애원을 해야 한다니... 허.. 가만 있어봐 잠깐만.”
“.....”
멀뚱히 서 있는 그의 앞에 마주 선 노인은 한쪽 눈을 치켜뜨며 선택한 세 번째 종이쪼가리를 그에게 겨눈다.
“..아니 무슨...”
“됐네. 이제 가도 돼.”
다른 손으로 허공을 휘적휘적 저어대던 노인은 무엇이 다 되었는지 환영의 앞길을 터주고는 다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저기 정신도 온전치 않으신 분 같은데... 날도 추워지니까 어디 지하철같은데라도 가 계세요.”
“돈 고맙네”
몸을 돌려 걸어가는 환영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손을 흔드는 외국인 노인. 신경쓰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로 노인의 손에서 좀 전의 종이 쪼가리가 순식간에 재가되어 사라져버린다.
“에픽epic급의 영웅이 될 기회를... 바보같은 놈 쯧...”
혀를 차며 말하는 노인의 목소리는 거리의 소음에 묻혀 환영의 귀에까지는 닿질 않는다.
“이봐요 아저씨. 똑바로 보고 좀 다녀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좁은 피씨방 입구에서 여고생 하나와 부딪힌 환영. 그는 순간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그녀를 바라본다.
교복을 입었으니 여고생임이 분명할텐데, 170을 간신히 넘는 환영의 키에 거의 맞먹을 정도 높이에서 커다란 눈이 자신을 노려보고, 오똑한 코 아래의 분홍빛 입술이 불쾌한 대사를 쏟아낸다.
“사과 안해요?”
세미 롱의 갈색빛이 감도는 머리, 좁은 어깨 아래로 커다란 가슴이 눈에 들어오고 타이트하게 줄인 교복탓에 그와 대비되는 가느다란 허리가 널찍이 벌어진 골반으로 이어져있다.
“재수없어...”
평범한 외보의 30대 아저씨가 대답없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위화감을 느낀 여고생은 나직히 중얼거리며 먼저 피씨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환영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맞받아치려 하지만 상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후다.
‘핫... 가버렸다.’
‘동시에 들어가려니 부딪힌거잖아 이 씨발2#$@#% 어린년이$!@$@##’
잠시동안 그 발군의 프로포션에 압도당했던 것을 부정이라도 하듯, 환영은 마음속으로 쌍욕을 퍼부어준다. 당장 쫓아들어가 돌려세우고는 한참 어린 그녀에게 고함을 버럭 지르고 싶지만 자신의 꼴만 우스워 질 뿐이다.
“하아...”
항상 그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모욕적 언사와 같은 돌발적 상황에 처하면 당황해버린다. 반응을 하려고 해도 그는 언제나 한템포 늦었고, 그 꼴은 꽤나 우스워 질 뿐이었다.
“서연! 같이가!”
“아..?”
단발머리의 여고생이 환영을 앞으로 먼저 간 친구를 부르며 따라들어간다.
“시바... 할 일이나 하자...”
불쾌한 듯 들어선 환영은 구석자리의 피씨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로긴을 한다. 주위 손님들의 게임소리가 그를 유혹하는 듯 느껴져 애써 외면하고는 곧바로 취업사이트에 접속해 이것저것 뒤져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후, 갑작스레 어지러운 느낌에 세차게 고개를 젓는 환영.
‘뭐지...?’
“아, 궁 안쓰고 뭐해? 죽었잖어!”
“잠깐만 좀 메슥거려...”
동시에 그의 옆자리 두 남자의 대화가 들리고 환영의 눈에도 피씨의 화면이 울렁거리며 시야의 초점이 잡히질 않는다.
“잠깐만, 잠깐만! 왜이러냐”
핀잔을 주며 친구에게 화를 내던 옆사람도 갑자기 당황한 듯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몸을 뒤로 젖힌채 눈을 깜빡인다.
“어...어?”
화면을 너무 바라본 탓인가 싶던 환영의 눈에 화면뿐이 아닌 피씨방의 벽면이 울렁거리며 파도치듯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차원벽까지 찢어버리는 경우가 있단 말야.. 킬킬’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괴상한 노인의 대사.
‘설마!’
숨이 가빠오며 심장이 미친듯 뛰는듯한 느낌을 받는다. 환영은 의자의 양 난간을 붙잡은 채 눈살을 찌푸리며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 때,
“야! 내가 너 여기 있을줄 알았어!”
“아 썅 어쩌라고 중요한 겜이니까 좀 기다려!”
“내가 기껏 찾으러 왔는데도 게임질이냐, 씨발!”
“좀 아 썅... #!#$”
“@!#$#%^&^&”
‘서연’이라 불렸던 그 여학생이 환영의 건너편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남학생과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친구라도 잡으러 온 것일까? ‘서연’을 따라 들어갔던 단발머리는 친구의 다툼은 아랑곳없이 또다른 자리의 남학생과 무언가 떠들고 있고 주위의 다른 학생들은 싸우는 소리에 그들을 돌아보고는 흥미진진한 듯 쳐다보고 있다.
‘어...?’
주위의 몇 명인가 자신과 같이 불쾌감을 느끼던 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성격 참 더럽네...’
조금전의 불쾌감과, 현재의 시끄러움에 짜증이 난 환영은 닥치라고 한마디 일갈하려 몸을 엉거주춤 일으킨다.
“아 시끄러 좀 닥쳐!”
“....”
선수를 빼앗겼다.
가까운 다른 자리, 그들과는 다른 타학교 교복 차림의 남학생이 그쪽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고 잠시 몸을 굳혔던 환영은 맥이 빠진듯 다시 제자리에 털썩 앉는다.
‘...항상 난 타이밍이...’
“너 뭐라고 그랬냐? 씨발놈아?”
“....?”
별안간 여학생과 싸우면서도 게임에 집중하던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온다. 180이 넘는 키에 다부진 체격,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다.
“....”
“아 씨발새끼가 죽고싶냐?”
시끄럽다고 소리를 친 남학생은 순간 위축되어 의자에 앉은채로 그를 올려다 보았고 몇몇 손님이 그런 둘을 흘끔거리며 쳐다본다. 그리고 그런 그중의 한 명 김환영.
‘X될뻔했네...’
요즘 애들은 무섭다. 하물며 그다지 덩치가 크지 않은 환영의 입장에서는 더욱 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피씨방 알바인듯한 청년이 와 그 둘을 말리는 광경을 보았고 그 사이 다시 ‘서연’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최훈경! 또 싸울려고? 맘대로 해라. 나 갈래”
“야! 야!”
화난듯 출구쪽으로 몸을 돌리는 ‘서연’과 그녀를 쫓아나가는 ‘훈경’의 뒷모습을 끝으로 소란은 일단락 된 듯 보인다. 주위상황을 관망하던 환영은 이윽고 다시 피씨화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취업사이트의 검색란에 집중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후. 환영은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서고 입구의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위화감을 느낀다.
“입은 싫다ㄱㅗ...”
“...?”
‘무슨 소리가 들린거 같은데.’
볼일을 해결하고 손을 씻고 나오며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그는 별 의심없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손에 묻은 물기를 대충 옷에 문지르는 자신을 뒤따라 들어서는 늘씬한 키와 커다란 가슴의 여고생과 눈이 마주친다.
“....”
무언가 불쾌한 듯 짜증스런 얼굴로 입가를 훔치며 걸어오는 그녀.
손의 물기를 털며 자신을 바라보는 환영을 느낀 순간 그녀는 어색하게 그를 외면하며 ‘단발머리’가 있는 곳으로 지나쳐간다.
‘설마...’
약간 헝클어진 머리, 맨 위쪽의 풀린 교복단추, 살짝 돌아간 스커트가 신경쓰이지만 그는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