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번/MC] 제국군 특별 여자수용소 File.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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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번/MC] 제국군 특별 여자 수용소
F I L E . 1 3
그 여자를 멈추려면――――...
생각해봐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시계는 이미 심야라고 말해도 좋을만한 시간을 표시하고 있다.
디트릿히는 오늘 오후에는 사령부 경비를 중점적으로 시찰한다 했기 때문에 나는 아직 한가하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타개책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세뇌는 아마 효과가 없을 거야..
그 눈에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들어있지 않다.
심지어는 「사람으로서의 존엄」이라든지... 그러한 것조차, 지금의 그 여자에게는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강간당한다 해도, 무표정으로 신음소리조차 전혀 내지 않겠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그녀가 망가지게 만든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의 원인은 제국일테지..
부모가 살해당했거나.. 연인이 살해당했거나... 아니면 그 둘 다 이거나...
어쨌든 그런 사건으로 인해, 제국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귀신」이 태어나 버린 거다.
――그래. 분명 귀신이다..
총수의 동생을 처형하다니, 귀신이 아니고서야 그런 무모한 짓 할 수 있을리가 없지...
사고가 맴돌기만 할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녀가 레지스탕스의 동조자인 증거를 찾아내 고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에밀리아의 아침 식사에 자백제를 넣었다는 것만으로는 고발할 수 있을리가 없다.
――함정을 펼쳐서, 레지스탕스 동조자인 것을 폭로할까?
에밀리아를 이용해서, 그 속내를 털어놓는 순간을 촬영한다든가.....
――아니야.. 이런 방법이 통할리가 없어.
무엇보다 상대는 에밀리아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조금이라도 위험을 감지하면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운 좋게 좋은 증거를 잡는다 해도, 친위대 측에서 그 고발을 받아들여 줄지도 의문이다.
아마 군에서 친위대를 모략하기 위해 허위신고를 했다고 치부해버릴테지...
지금까지의 과정은 둘째치고, 소령에 오를만큼 실적을 인정받은 여자다.
레지스탕스도 아무렇지 않게 죽여 오고 있다.
「디트릿히는 레지스탕스의 동료입니다」라고 한다해서, 「아 그렇군요」하고 믿어 줄리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해? 어떻게..??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망가진 인간」을 세뇌하는 것은 무리다. 최면술도 걸릴리가 없다.
망가지기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이다.
――응? 망가지기「전」이라고...??
「그래..!!!! 그게 있었구나..!!!!」
나는 책장에 달려들었다.
꽤 오래전에 구입한 책을 꽂아둔 칸으로 다가가, 임상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찾아냈다.
파라락- 페이지를 넘겨 그 안에서 하나의 단어를 찾아낸다.
「있다! 퇴행 최면..!!!!」
# 퇴행 최면
최면 암시로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기억까지 정신 시간을 되돌려, 불안을 낮추거나 공포심을 없애는 치료법.
트라우마를 남긴 문제를 객관적으로 응시하게 하여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반대로 잊고 있던 과거를 생각하게 되어 그로인해 새로운 트라우마를 갖게 될 위험성도 있다.
「과연... 단순하지는 않구만..」
디트릿히의 과거 경험은 상당히 강렬한 사건일 것이다.
별 생각없이 접근했다가, 오히려 제국에 대한 증오가 커지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목적은 디트릿히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에밀리아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고, 나의 활동의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기껏 힘들게 트라우마를 치료했는데, 오히려 「제국을 위하여 레지스탕스 포로를 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목적을 위해 퇴행최면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가 또 문제다.
「빌어먹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최면술의 연구를 해뒀을텐데...」
본래 나의 연구는 심문을 목적으로 해 온 것이니까, 지금은 정말로 돌발 상황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최면술 연구를 더 많이 해둬서 손해볼 건 없었을텐데....
――이런 식으로 후회하게 되다니.. 젠장.
「어쨌든 할 수 밖에 없어.. 그 여자는 친위대, 게다가 총수의 동생도 죽일 수 있는 여자야.. 레지스탕스 거점에 급습 작전이 실패한 이상, 와츠도 나도 즉결처형할 수 있어....」
이튿날 아침, 디트릿히는 사령부 경계부터 시찰하기 시작했다.
칠흑의 군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은빛의 독수리 문장이 박힌 군모를 쓰고 있다.
얼굴은 친위대 특유의 무표정... 게다가 이 여자는 눈에 감정이 없기 때문에, 조금도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인인데, 아깝네...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다.
친위대는 매일 아침 30분 이상을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정돈한다는 소문은 사실인 걸까..??
뭐, 내가 사령부에 배치될 일은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으음..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눈에 띄지않고 디트릿히의 빈틈을 찌르는 거겠지?
하지만 이 방법도 어제의 일 때문에, 「가능한 한 눈에 띄지않고」가 불가능해져 버렸다.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달려갔으니, 이미 충분하다 못해 넘칠만큼 눈에 띄어 버렸지. 빌어먹을....
늦잠자지 않았으면, 달릴 필요도 없었고,
그 전날에 여자들의 공격받아 피곤하지 않았으면, 늦잠잘 리도 없었다.
일순간의 방심이 지금의 곤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디트릿히는 나를 어디까지 경계하고 있을까?
내가 자기를 레지스탕스 동조자라고 의심하는 건 모르겠지...???
――....?!!!
문득 시선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뻔한 것을 억지로 참는다.
사령부의 주위의 잡초를 뽑는 척 하면서, 유리창을 거울 대신 들여다보며 뒤를 확인했다.
디트릿히다...!!!!
넓은 연병장 저 편에서, 이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등골이 오싹하다...
일단 거리는 멀고, 거울만큼 또렷하게 비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디트릿히가 어떤 표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제 봤던 그 눈동자가 생각이 나, 왠지 입술이 바짝 마르는 듯 하다.
가능한 한 평범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사령 본부의 건물로 들어갔다.
어제까지는 사령부 안을 시찰하다가, 오늘 갑자기 밖의 경비를 시찰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어디까지 경계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나를 레지스탕스의 동조자라고 의심하고 있다면, 사령부 경비는 절대로 시찰하지 못하게 하겠지」
.....라는 계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정체가 탄로났을 경우에는, 그대로 도주하기도 「밖」이 더 편할테고...
――나의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하고 있는거냐?
그토록 필사적으로 달려와, 포로의 식사를 방해한 건 어째서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건가..??
본래 심문관은 자신이 담당하는 포로가 자신 외에 타인을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실제로 나도, 에밀리아를 맡으며 와츠에게 요구한 최초의 조건이 포로의 관리권이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군인들은 친위대를 싫어한다.
――그래, 군인들이 갑자기 온 친위대를 경계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까....
나 역시 친위대에게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친위대의 행동을 방해했다... 라는 식으로 하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최악의 일은, 내가 디트릿히를 의심하고 있는 것을 그녀가 눈치채는 것이다.
그것을 눈치챈 순간, 그 즉시 디트릿히는 나를 사살할 것이다.
――총수의 남동생을 주저없이 죽일 수 있다면, 나를 죽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겠지..
「중위..!!!」
갑자기 등 뒤에서 날 부르는 말에, 펄쩍 뛰어오를만큼 깜짝 놀랐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디트릿히가 내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그렇게 먼거리를 이렇게 빨리, 쥐도 새도 모르게..??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무슨 일이십니까, 소령님?」
「아무래도 심문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런고로 지금부터 심문실을 시찰하겠다.」
「진행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호오? 그렇다면 묻지.. 어떤 성과를 올린 것이냐..??」
디트릿히의 감정없는 눈동자가, 가만히 이쪽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레지스탕스의 거점에 대한 정보를 입수해서, 적발을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디트릿히의 왼손이 홀스터(holster)에 꽂혀있는 권총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버릇인가, 그렇지 않으면 날 위협하고 있는건가..??
디트릿히의 뒤에 서있는 수행의 경비병이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다.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정보가 잘못된 것이었나?」
궁지에 몰렸다, 라는 상황이 넘치도록 확실히 느껴진다.
「조사 중입니다.」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정보를.. 바보처럼 믿었다는 이야기인가..??」
「정보 자체는 확실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적발에는 실패했지. 그 정보를 제공한 것은..?? 어제의 그 포로인가?」
「아니요, 다른 포로입니다.」
「어디에 있지?」
「석방했습니다. 사령관 명령으로...」
――지금의 나는, 정말 한심한 바보 멍청이처럼 보이겠군..
「석방했다고..??」
「네, 포로는 세실 트레크스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포로인 탓에, 사령관님께서 석방을 명령하셨습니다.」
「왜 다시 체포하지 않나?」
「준비 중입니다.」
――준비 중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디트릿히는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는 시선으로 정면에서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즉, 자네는 지금.... 포로에게서 얻어낸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믿었으며, 결국 적발은 실패했고, 그 포로마저 석방시켰다. 거기에 더해, 현재 유효한 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라고 말하는 건가..??」
「어제 소령님께서 보신 그 포로를 이제부터 심문하여, 오명을 씻을 생각입니다.」
「아직 심문을 시작하지 않은 건가?」
「세실 트레크스의 심문을 먼저 실시했습니다.」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왠지 점점 배짱이 두둑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실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갈때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오히려 디트릿히의 눈을 똑바로 마주 노려보았다.
――친위대 따위에게 지지 않을 거다, 라는 듯한 느낌으로... 친위대에 대한 적의를 최대한 드러내서....
「지금부터 심문을 실시할 겁니다. 이번에는 강한 약품을 사용해서, 격렬하게 갈 예정이지 말입니다.」
「....약품??」
「네. 반드시 유효한 정보를 끄집어 낼 겁니다.」
「..........」
디트릿히는 그 감정없는 눈으로 나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하지.」
디트릿히의 왼손이 드디어 홀스타의 권총에서 떨어졌다.
――그럭저럭 극복했다아~
약품이라는 말에 흥미를 보인 것 같다.
분명 자백제를 사용하면 에밀리아는 죽는다. 그리고 실책을 반복한 나는 즉결 처형시키면 된다.
우려되는 녀석들을 한번에 정리할 수 있으니, 디트릿히로써는 가장 손쉬운 결말인 셈이다.
――게다가 식사를 멈추게 한 것이, 자백제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나에 대한 경계도 희미해질 테고...
하지만 디트릿히가 조금만 조사해보면, 내가 에밀리아의 그 기계에 대해 이미 알고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아낼 거다.
무엇보다 나는 「약품」이라고는 말했을 뿐.. 「자백제」라고는 말하지 않다.
즉, 시간은 벌었지만 그 시간은 짧다는 것...
어떻게든 에밀리아의 심문에 들어가기 전에, 디트릿히에게 손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다.
――어라? 그런데... 디트릿히는 왜 왼손으로 권총을 만졌지..??
「소령님께서는.. 왼손잡이 이십니까?」
「오른손잡이다. 그건 왜 묻지?」
감정이 단 1%도 들어있지 않은 듯한 목소리...
――그러고 보니, 분명히 어제는 군모를 오른손으로 고쳐 썼다.
「그런데.. 홀스터는 총이 왼쪽에 걸리도록 착용하셨습니다..??」
「오른손으로 쏘면 명중이 어렵다.」
「그건 좀 특이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뭔가 오른팔에 상처같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런 거 없다.」
「으음... 그러.. 십니까..??」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발포해야 명중시킬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에밀리아가 있는 독방에 가기 전에, 먼저 의무실로 향했다.
「여기에는 심문에 사용하는 약품이 보관 되어 있습니다. 본래는 따로 보관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임시의 처치입니다. 자백제로 널리 사용되는 시오메트로도 있습니다..」
일부러 시오메트로를 말했지만, 디트릿히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세실도 상대하기 어려웠지만, 이 여자도 거의 비슷한 정도로 어려웠다.
「아, 그러고보니 소령님.. 조금 전 오른손으로 명중이 어렵다고 하셨잖습니까? 여기의 군의관에게 어깨라든지 팔꿈치 진찰을 받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이~ 거기, 너.. 이리와라.」
나는 디트릿히의 대답도 필요없다는 투로 군의관을 불렀다.
「필요없다.」
「에이~ 그런 말씀하지 마시지 말입니다.. 본부의 의무실에서는 상사에게 여러가지 쓸데없는 게 보고될지도 모릅니다만, 여기서 받는 약간의 진찰은 걱정 마십시오. 진료기록카드도 만들지 않게 지시하겠습니다.」
――그토록 암살 미수가 있다면, 약물이 있는 장소에는 얼씬도 안할테고... 당연히 건강진단도 한동안 받지 않았겠지..
디트릿히는 나의 속셈을 꿰뚫어보겠다는 듯이 무표정하게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하지만 세실 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본심을 숨기는 것에는 자신이 있다.
「......잠시만이라면.」
「자아, 자아~ 윗도리는 저에게 주시고...」
나는 반쯤은 억지로 디트릿히의 상의를 벗겨, 옷걸이 행거에 걸었다.
「오른손의 상태를 좀 봐드려. 어깨라든지.. 팔꿈치라든지...」
나는 군의관에게 그렇게 말하고 얼른 의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서둘러 급탕실에 뛰어들어 홍차를 준비했다.
이유는 둘째치고서라도, 디트릿히는 내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 경계심이 약해졌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 천재일우의 찬스를 놓칠수는 없지...!!!!!
「미안한데.. 이 홍차를, 의무실에 있는 친위대에 전해다오.」
경비병 중 하나에게 부탁하고, 나는 의무실로 돌아간다.
「탈구나 골절이 되셨던 적은 없습니까?」
「없다.」
「그렇습니까..?? 으음...... 조금.. 뼈가 비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만..」
내가 의무실로 돌아왔을때는, 군의관이 간단한 진찰을 마시고 소견을 말하고 있었다.
――정말로 비뚤어져 있는 거냐?
나는 표정에 드러내지 않고 생각한다.
「한번 X-ray 로 확인해보십시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다.」
그때, 의무실 문이 열리고 홍차가 담긴 쟁반을 들고 경비병이 들어왔다.
「그럼.. 이제 심문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보고를 하기 위해, 약간 준비할 게 있으니 기다려주십시오..」
방을 나가기 전에 그렇게 말하며 살짝 뒤돌아보니,
디트릿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홍차의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디트릿히를 데리고 심문실로 안내했다.
커텐으로 나누어진 심문실... 그곳이 내 승패를 결정짓는 전쟁터다.
나는 복도에 놓여진 작은 의자 하나까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며 시간을 번다.
――최면도입제가 들어간 홍차에 마셨으니까.. 이젠 물러날 수 없어.
홍차에 뭔가 들어갔다는 걸 디트릿히가 깨달으면...
난 그 즉시 상관모욕죄로 처형당한다.. 아니면 반역죄이거나...
드디어 커텐이 쳐진 심문실로 들어왔다.
「일단 그곳에 편히 앉으십시오. 거기서 보면, 이 커텐은....」
눈을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디트릿히.... 약효가 들기 시작했다.
「이곳과.. 이곳 옆에 있는 3개의 심문실은 모두 방음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심문도 그 종류가 다양해서.. 소리가 바깥까지 들려야 하는 심문이 있는가 하면, 밖에는 들려선 안되는 심문이 있기 때문에......」
디트릿히는 이미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는 언제 이변을 깨달아도 이상하지 않다. 서둘러야 한다...!!!!
「자아, 한번 눈을 감고...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지금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심문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정신을 차리지 마라. 제발.. 이제로 무너져라! 무너져! 무너져!!! 제발 무너져!!!
나의 염원이 닿은 것은 아닐테지만, 어쨌든 디트릿히는 눈을 감았다.
「어떻습니까...?? 심문의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정적이 흐르는 건 오히려 심문에 안 좋습니다.. 그래서 말이죠... 잘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뭔가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디트릿히는 눈감은 채 그대로다.
이러다가 언제 눈을 뜨고, 총을 들이댈지... 내 손바닥에서는 지금 땀이 흥건하게 베어나오고 있다.
「어떻습니까? 시계의 초침소리가 정확히 들릴 겁니다... 똑... 딱... 똑... 딱... 똑... 딱... 똑... 딱... 들릴 겁니다.」
최면 도입제의 효과는 순조롭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와츠에게 들키기만 해도 내 목숨은 위태로워진다.
지금 한번만으로 사태를 개선시킬만한 뭔가의 조치를 취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이제 소리에 맞추어 점점 몸이 흔들립나다. 똑... 딱... 똑... 딱... 소리에 맞춰...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몸이 흔들립니다.」
디트릿히의 신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직은 순조롭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사실 최면술은 내가 자신있어 하는 분야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그딴 걸 생각할 겨를은 없다.
「그런데... 몸을 흔드는 건 피곤합니다. 소리를 듣는 귀는 머리에 있으니까.. 고개만 흔들기로 하죠.... 똑... 딱... 똑... 딱... 몸은 가만히 있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립니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나의 소리에 맞춰, 디트릿히의 고개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 간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자아,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흔들어봅시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고개를 흔드는 방향이 바뀌어서, 시간이 흘러가는 방향도 바뀌었습니다... 과거로 흘러가는 시계의 소리가 지금도 들립니다.. 딱... 똑... 딱... 똑... 딱... 똑... 딱... 똑....」
디트릿히는 팔 다리를 아무렇게나 뻗는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걸려 있는거지..??
――정말 걸려있는게 맞긴 해..???
――실패하면, 난 어떻게 될까...????
온갖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딱... 똑... 딱... 똑... 딱... 똑... 딱... 똑.... 시간이 과거로 흘러서... 당신도 점점 어린 아이가 되어 갑니다... 어느새 당신의 나이는 20살을 지나.. 18살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쿠렌트... 사관 학교.....」
디트릿히는 잠꼬대를 하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 분명히 그 나이쯤에는 사관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거다.
「사관학교의 시험 결과가 배부되었습니다. 성적표를 볼까요..??」
디트릿히의 얼굴에는 여전히 감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성적은 어떻습니까?」
「A+, A+, A+, A+, A+, A+, A+, B+..」
터무니없이 좋은 성적이다. 그런데 전부 A+인데, 하나만 B+ 라고..??
「B+가 나온 과목은 뭔가요..??」
「.....윤리.」
――윤리만 성적이 나쁘다니.. 왠지 지금의 디트릿히를 보면 납득이 가는군.
아니, 그렇다고 해도 B+ 를 성적이 나쁘다고 할 수 없을텐데...
「좋은 성적이군요?」
「......」
「기쁘지 않습니까?」
「딱히......」
――감정이 없어? 이미?
「자아, 그럼... 또 시계소리가 들려 옵니다.. 당신은 점점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7세...
16세.....
15세...........
14세.....................
그때, 디트릿히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멈추지 않습니다..!!!! 13살이 됩니다. 13살입니다..!!! 자아, 13살의 당신은 이름이 뭡니까..??」
「디트릿히.... 디트릿히 마우세운 이에요..」
――......??
고통스러워하는 디트릿히에게 다른 화제를 꺼낸다는 느낌으로 이름을 물은 것 뿐인데, 의외로 뭔가가 걸려들었다.
슈나이젠이 아니라, 「마우세운」이라고....??? 여기에 뭔가 단서가 있지는 않을까..??
「당신은 지금 학교에 있습니다.. 친구들이 당신의 이름을 두고 뭐라고 말합니까..??」
「디트릿히가.. 이상한 이름이래요... 여자애가 남자 이름이라고 놀려.... 그치만... 테나 게이트에서는 흔한 일인데...」
――맙소사..!!!! 「테나 게이트」라고...?!!!! 그랬던 거구나...!!!!!
그렇지만 이상하다.. 친위대는 오직 제국민만이 지원할 수 있을텐데...???
◇
저는 디트릿히라는 이름이 좋아요.
왜냐하면 우리 어머님께서 사랑을 담아 지어주신 이름이거든요..
학교에 다른 아이들은 나를 막 놀리고.. 그러지만,
저의 고향인 테나 게이트에서는 여자애가 남자 이름을 쓰는 건 아주 흔한 일이랍니다.
테나 게이트에서는 여자가 태어나면 남자같은 이름을 지어주고, 남자가 태어나면 여자같은 이름을 지어줘요.
잘은 모르겠지만.. 어머님께서는 그게 우리나라의 전통이라고 하셨어요.
아버님은 테나 게이트에서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계신 귀족이시고,
어머님도 비슷한 백작 가문에서 아버님의 가문에 시집을 오셨다고 들었어요.
우리 테나 게이트 공화국은 국토의 반 이상이 산으로 되어 있는 작은 나라지만,
아버님은 제국과의 무역을 통해 엄청 많은 재산을 모으셨데요..
저는 아버님의 배려로, 제국의 샤바르테 귀족원이라는 기숙사 제도의 학교를 다니고 있답니다.
아버님께서는 제국의 학문이 테나 게이트보다 뛰어나다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매일 매일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열심히.....
아무튼 아버님과 어머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뭐든지 다 열심히하고 있답니다. 헤헷~☆
그런데 언제부턴가 제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잘 모르지만.. 선생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군 총수가 제국의 수상이 되었다든가... 그런 거 같아요.
제국의 총수는 수상이 되자마자, 귀족제도를 철폐하여 귀족에 대한 모든 우대조치를 없애버렸대요.
샤바르테 귀족원에 사람들은 모두 그런 총수를 싫어하는 것 같았지만,
제국의 시민들은 총수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 같더라구요..
◆
「자아, 다시 시간이 미래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점점 시간이 지나, 당신은 14살이 되었습니다...」
◇
나는 14살이 되었다. 지난 1년간 제국 안에서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제국의 수상이 된 총수는 제국 내에서 완전히 귀족제도를 철폐했고, 귀족이라 자처하는 자들은 모두 체포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도 그 이름을 바꿔, 샤바르테 국립학원이 되었다.
대다수 제국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군 총수라는 막강한 권력을 이용하여..
제국의 황제는 허수아비가 되어버렸고.. 총수는 그야말로 「진짜 황제」처럼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총수」와 「그의 후원자들」이 쓴 역사의 첫페이지일 뿐이었다.
총수의 후원자는 「부르조아」라 불리우던 시민 자본가들이었다.
귀족이 아닌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아가는 귀족들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들은 돈의 힘으로 총수를 후원하여, 귀족들과의 권력 투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투쟁에서 총수와 후원자들이 승리하고...
그 후원자들이 사실상 제국 안의 모든 이윤들을 독점하게 되니, 그들은 국외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천연의 요새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산악 환경 덕분에, 국방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나의 조국 테나 게이트....
방심하고 있던 그 빈틈을 노린 제국은, 전차부대로 산길을 억지로 열어 나의 조국을 침공했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었던 나의 조국 동포들 대부분은,
총수가 내세운 「개방정책」이라는 이름에 현혹되어 국경을 넘어오는 제국의 전차부대를 환영했다고 한다.
결국 테나 게이트는 나하렐 자치구를 남겨두고 단 1주일만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학교 기숙사를 뛰쳐나와 집으로 향했다.
나의 집은 나하렐 자치구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돌아왔을 때, 나하렐 자치구의 동포들은 그 빌어먹을 개자식들에게 철저히 유린당하고 있었다.
제국 육군 제 9군단...
일명 「학살 부대」라 불리우는 그 자식들에 의해, 나의 집은 이미 불에 타고 있었다.
정원에는 몇 사람의 제국군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피투성이의 어머님이.. 무참하게 찢어진 옷을 몸에 걸치고.... 제국군 놈들에게 둘러싸여.....
「어머님..!!!!」
「디트~!!!!! 오면 안돼...!!!!!!」
비명같은 어머님의 목소리에 나는 멈춰섰다.
하지만 그 직후에, 내 등뒤로 다가온 제국군 병사에게 붙잡혀 버렸다.
「디트...!!!!!」
팔 다리를 아무리 휘둘러봐도, 날 잡은 제국군 병사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병사와 나의 사이에는 압도적인 체격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
「괴롭지만.. 조금만 더 노력해봅시다. 떠올려 봅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죠..??」
◇
나는 총을 쥐고 있었다.
온 몸이 여기저기가 아프다.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가 왼쪽 눈 안으로 흐른다. 눈이 따갑다... 온 세상이 빨갛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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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서 있는 제국군 병사가 나에게 말을 한다.
「쏘면.. 널 살려줄게...」
그 병사는 한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어머님이 서 계셨다. 눈물을 흘리며 뭔가를 말씀하신다.
「어서.. 쏴...!!!! 디트...!!!!!!!」
어머님의 말씀은 비명처럼 아프게 들렸다.
어머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뭐를 쏘라는 걸까? 누구를 쏘라는 걸까? 왜 쏘라는 걸까? 어떻게 쏘라는 걸까?
난생 처음으로 쥐어보는 총은 너무 무거웠다.
비틀비틀하면서 총을 들고 있는 나를 등뒤에 있는 누군가가 붙잡는다.
총을 든 내 손을 덮어씌우듯 잡아, 그 손을 어머님에게 향하며.. 내 귓가에 속삭인다.
「쏴 버려.. 안 그러면 너희 둘 다 죽어..」
죽고 싶지 않다...
죽는 건 무섭다........
무서운 건 싫다......................
「쏴.. 그럼 널 살려줄게. 쏴 버려..」
죽는 건 무섭다. 무서운 건 싫다. 죽는 건 무섭다. 무서운 건 싫다. 죽는 건 무섭다. 무서운 건 싫다. 죽는 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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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하하하핫~~ 네가 죽이란 말이야..!!! 안 그러면 둘 다 죽일거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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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기 지루하다..!!! 앞으로 셋을 세기 전까지 쏘지 않으면... 크크크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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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디트.. 어서 쏴줘..!!!!!」
나는 눈을 감았다.
- 타, 탕...!!!!
난생 처음들어보는 총성에 귀가 먹먹해졌다.
오른팔이 너무 아프다. 총은 놓쳐버렸다. 어디로 날아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잘했어.. 네 손으로, 죽인거야.」
나는 눈을 떴다.
어머님은 그 이마의 한가운데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 어어, 어.......」
온 세상의 색이 사라진다.
「어어... 어, 어머.... 어머..........」
온 세상의 소리도 사라진다.
「ㅇㅓ~ ㅁㅓ~ ㄴㅣ~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리고....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
「정말... 지독한 짓을........」
나는 신음했다.
눈앞의 의자에는 아직 최면에서 깨어나지 않은 디트릿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둘 다 죽인다고 협박하여, 결국 딸에게 어머니를 죽이게 만들다니...
그 이야기를 하고 거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디트릿히를 간신히 진정시켜 이후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를 죽인 후, 강간을 당하기 직전에 친위대의 슈나이젠 중령이 달려와 구해줬다고 한다.
개인적인 사업도 꽤나 크게 하던 슈나이젠 중령은 때마침 무역관련 업무로 테나 게이트에 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디트릿히는 슈나이젠 중령의 딸이 되어,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제국 군인이 되었던 것이다.
――친위대가 된 것도, 슈나이젠 중령.. 아니, 지금은 슈나이젠 소장인가? 아무튼 그가 도와준 덕분이겠지..
아무튼 그녀는 자기를 아껴주던 어머니를 스스로 살해한 죄를 짊어지고....
슈나이젠 가문의 사람으로, 제국의 사람으로.. 친위대 소속의 제국 군인으로써 살아왔다.
결국 그녀가 하려는 건,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죽인 것은 디트릿히 그녀 자신이니까...
물론 그건 전적으로 제 9군의 병사 탓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즉, 복수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겠지.
「...!!!! 그래서, 그런건가...??」
디트릿히가 해왔던 무모한 행동은, 바꿔 말하자면 자기 방어가 극단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제국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도 복수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나 혼자 떨어지진 않겠다.
제국 군인을, 단 한명이라도 더 끌어안고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다.. 그것만을 위해 살아간다..」라는 거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렬한 과거의 사실은 최면술로 지울 수 없다.
처음에는 퇴행 최면으로, 과거의 기억을 흐릿하게 지울 생각이었지만... 이 상황은 어렵다.
무엇보다 자기 손으로 방아쇠를 당겼고, 총에 맞은 어머니까지 똑똑히 확인했으니까... 이건 절망적이다.
그러고 보면... 군의관이 말했던 오른팔의 문제도, 그때 총을 쏘며 팔이 탈골되었거나 했던 게 원인일 것이다.
그 이후로 디트릿히는 오른손으로 총을 다룰 수가 없다..
아니, 총 쏘는 것뿐만 아니라.. 섬세한 작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일들을 오른손으로는 할 수 없었겠지..
――...응?
뭔가가 걸린다..
뭔가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 거지..??
천천히 생각을 되돌려 본다.
스스로 총을 쏴서, 그 총알은 어머니의 이마 정중앙에 명중했다.
디트릿히 본인이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퇴행 최면을 통해 확인한 것이니까, 디트릿히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디트릿히는 분명히 누군가가 자신의 등 뒤에서 총을 든 손을 잡았다고 했다.
제국 군인이 총을 쥐고 있었는데, 발포한 후 그 반동을 못 견디고 총이 날아가 버렸다. 디트릿히는 오른팔을 다치고...
뒤에 있던 놈이 더 확실히 붙잡고 있었다면, 총을 쏜 후에도 총은 손안에 쥐어져 있엇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됐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발사 반동을 지지하지 않는 정도로, 아주 살짝 손을 얹고 있었을 뿐이겠지..
――아니, 잠깐만...!!!
그 녀석은 반동을 지지하지 않았고, 그 반동만으로 팔이 탈골되어 버릴 정도로 약한 아이가 총을 쐈다..
그런데 그렇게 쏜 총이 정확히 이마의 정중앙을 맞췄다고...???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잖아...?!!!
보통 그런 경우에 총알은 아득히 위로 날아가버린다..
어머니의 이마 한 가운데가 아니라, 어머니의 머리 위 허공으로 날아가버리는 게 보통이란 말이다.
이건 결국 한 마디로 말해서...
――「그녀의 기억은 잘못되어 있다」라는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뻗어나온 나는 긴장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사태를 호전시킬 가능성은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디트릿히에게 이해시키지..??
퇴행 최면에 빠진 그녀의 정신은 14살의 어린 아이다. 총의 발사 반동이라든가.. 그런 걸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현재로 되돌려봤자 의미는 없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으니까, 그녀의 기억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미 18살에는 완전히 망가져 있었던 그녀니까,
지금에 와서 사실을 이해시켜 봤자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말하며 내 머릿통에 총알을 박아넣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인가...??
그녀의 시간을 15살, 16살, 17살..... 조금씩 현실로 되돌리면서
「내가 어머니를 죽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계속해서 무의식 속에 심어놓는다.
누가 뭐래도 사관학교에서 그 정도로 높은 성적을 받았던 디트릿히다.
나이를 먹어가며 총에 대한 정보와 물리적인 지식이 쌓여가면, 결국에는 자기 기억의 모순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재」가 되기전에 그녀가 모순을 깨달으면.... 「그녀의 현재」은 깨끗해 질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릴 수 있을까..??
이건 정말로 뚜껑을 열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도박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녀의 현재」와 마주칠 수 밖에 없다는 거겠지..
정말.. 문자 그대로 「도박」이구나....
◇
――...음..??
나도 모르게 어느새 잠들어 버렸나?
아니, 제대로 감찰을 실시한 기억은 있다.
하지만 이 위화감은 뭐지..?? 내 직감이 붉은색의 위험신호를 발하고 있었다.
――알파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 심문관이 뭔가 한 건가..??
나를 의심하는 듯한 낌새를 보이는 건 그 심문관 밖에 없었다. 그 포로의 아침식사를 멈추게 했던 것 말이다.
사실 그 자체는 친위대에게 자신의 밥그릇을 뺏긴 병사가 자주 보이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딱히 눈여겨 보진 않았다.
게다가 그 심문관도 결국에는 자백제를 사용할 것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그 얘길 듣고.. 분명히 내 감이 지나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에 대해서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다.
지금까지 나와 레지스탕스의 관계를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나는 제국군을 죽인 것 이상으로, 더 많은 레지스탕스를 죽여 왔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나는 가볍게 복장을 정돈하고, 어제 시찰했던 심문실로 걸어갔다.
경비병이 나에게 경례하는 것이 보인다.
어제 포로가 수감되어 있던 독방이 비어 있었다.
「여기에 있던 포로는..?」
「특별심문실에서 심문 중입니다.」
「...?? 그건 어디있나?」
복도의 가장 안쪽까지 들어가보니, 책장에 숨겨져 있듯이 위치한 방문이 보였다.
위험 신호다..
내 안에 직감이 거의 최고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위험 경보를 울리고 있었다.
살며시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잠겨져 있는 것일까..?? 문 손잡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 철문을 두드리듯이 노크했다.
조금 기다리니, 문 옆에 설치된 인터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심문중이다.」
기계의 잡음 탓에 그 목소리를 상당히 바꾸고 있었지만, 이 말투는 분명 그 심문관이다.
저 심문관의 목소리를 잡음이 바꿔놓고 있다면.. 내 목소리도 기계의 잡음이 바꿔놓겠지.
「와츠 장군님으로부터의 명령입니다.」
예상대로,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들은 걸까?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철문의 잠금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천천히 문이 열린다.
나는 아주 약간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조금 열린 문틈으로 팔을 뻗어 심문관의 이마를 총구로 꽉 눌러 겨눴다.
「....!!!!」
「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어라.」
「자, 잠깐 기다려..!!!!」
서둘러 문이 열렸다.
심문실이라는 그 안에는 어제의 포로가 서 있다. 죄수옷을 입고 있긴 하지만, 쓸데없이 성적 매력이 있는 여자다.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녀를 무시하고, 여전히 심문관의 이마를 총으로 겨누며 그 안으로 들어간다.
「기다려보라구..!!! 잠깐만 이야기를 좀 하자!!!」
창백한 얼굴의 심문관..
아니, 심문관의 얼굴이 창백한지, 새빨간지, 시퍼런지..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단 죽인다. 「심문관을 죽인 이유」같은 건, 죽이고 나서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문답무용.」
나는 총의 방아쇠에 걸려있는 손가락에 힘을 집중했다.
「당신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어..!!!!」
심문관이 외친다.
「그래서, 어쩌라고?」
바보같은 헛소리에 어울려줄 생각 따윈 없다. 나는 단숨에 방아쇠를 당겼다.
- 탕!!!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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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번역을 하면서 가장 힘든건 캐릭터의 이름이었습니다.
이미 몇분이 번역하신 것을 이어서 하는 번역이다보니..
고유명사는 토씨 하나, 점 하나까지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분은 "에밀리아 엘세란"이라고 번역하고, 다른 분은 "에밀리아 에르세란"이라고 번역했더군요.
어떤 분은 "세실 트레크스"라고 번역하고, 다른 분은 "세실 트렉스"라고 번역했더군요..
어떤 분은 "샤를롯트"라고 번역하고, 다른 분은 "샤를로트"라고 번역했더군요..
어떤 분은 "와츠"라고 번역하고, 다른 분은 "왓츠"라고 번역했더군요...
결국 저도 그냥 제 마음에 드는 고유명사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ㅡㅡ;;;
소설의 흥미를 더욱 높이기 위해, 조금씩 원작에 손을 댔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리며...
이 소설의 원작자는 E=MC^2 NOVEL 이라는 사이트의 「무라사키 마사토(紫 真人)」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