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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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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674 회 작성일 24-01-20 03: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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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일행은 아침식사 후 행군준비에 바빴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새 지휘관 세자르의 명령에 따라 알베르토의 연구소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곧게 펼쳐진 길을 따라 걸어가던 일행은 얼마 안가 처음 유적에 도착했을 때 맞닥뜨렸던 것처럼 사방이 벽화로 장식된 높은 벽에 둘러싸인 큰 문에 도착했다. 물론 여기서도 일행 중 유일한 탐험가 루이는 이젠 이런 일엔 이력이 붙었다는 듯이 손쉽게 문을 열었고, 그동안 유적 안에서 이런 일을 여러 번 경험했던 병사들 또한 조심스럽게 사방을 경계하며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문 너머 광경은 번번이 그래왔던 것처럼 일행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병사들 앞에는 호수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밝은 아침햇살 아래 싱그럽게 잘 자란 푸르른 잔디로 뒤덮인 널따란 벌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나지막한 구릉 위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분수정원이 있었다. 정원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조각상들 사이에 자리 잡은 크고 작은 분수들과 구릉 중앙의 계단식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들은 경사를 타고 그 아래 넓은 직사각형의 호수로 흘러내렸다. 그 모습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시원한 느낌을 들게 하고 있었다.

그 분수정원 너머 구릉 위에는 각 모서리에 서있는 네 개의 크고 높은 둥근 첨탑과 중앙의 에메랄드빛 거대한 돔 지붕이 인상적인 거대한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크기는 이전에 봤던 마법사 알베르토의 저택과 맞먹을 정도로 거대했다. 왕궁에 버금갈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은 저게 과연 마법사의 연구소가 맡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일행이 그 광경에 감탄하면서 정원과 연구소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하자, 정원 여기저기에 뭔가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처음엔 얼룩덜룩한 점같이 보이던 그것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작은 동물처럼 보였다. 좀 더 접근했을 때, 일행은 그것들이 키메라인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전에 유적 안에서 상대했던 키메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이었다. 사슴의 몸통 위에 젊은 미녀의 상반신이 붙어 있는 키메라는 인간 병사들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팔다리 대신 기린같이 긴 네 다리로 서있는 또 다른 여성 키메라가 네 발로 서있었고, 근처에는 온몸이 표범무늬 털에 뒤덮인 키메라가 한가로이 나뭇가지 위에 엎드려있었다. 그 너머 다른 나무에는 팔 대신 커다란 날개를 가진 키메라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좀 더 안쪽에 있는 호수에는 하반신에 원색의 비늘이 반짝거리는 지느러미를 가진 인어들이 물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선 일행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일행이 연구소 쪽으로 접근할수록 정원 곳곳에서 나타나는 키메라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들은 병사들이 신기한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계하면서도 일행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대다수의 병사들은 얼굴에 황홀한 표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비록 키메라지만,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아름다운 전라의 미녀들이 사슴같이 순박한 눈망울로 자신들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뭔가에 홀린 듯이 자신도 모르게 칼과 방패를 내리고는 미녀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낀 세자르가 병사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 명령을 듣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키메라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앞서가던 병사들 중 하나가 앞에 있던 키메라를 만지려는 순간, 갑자기 주변의 키메라들의 눈매가 달라지더니 한꺼번에 그 병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일행을 둘러싼 키메라들은 사방에서 흩어진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큰 눈동자와 호기심 어린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했던 키메라들의 얼굴은 눈 깜짝할 사이 뱀처럼 크게 찢어진 입과 날카로운 이빨들로 채워졌고, 역시나 길고 뾰족하게 튀어나온 손톱과 함께 병사들의 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키메라들의 유혹에 빠져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서둘러 본대 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던 키메라들의 공격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공격에 병사들이 혼란에 빠진 상황 속에서도 세자르의 대처는 침착했다. 세자르는 우선 놀란 토끼마냥 겁에 질려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던 알폰소를 비롯한 근처의 부장들에게 고함을 질러 각자의 분대를 이끌고 부대 외곽으로 방어진형을 펼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노만을 비롯한 사수들을 부대 중앙으로 집결시킨 후, 키메라들을 향해 파상공격을 지시했다.

사방으로 쏟아지는 화살에 맞은 몇몇 키메라들이 그 자리에 쓰러져버리자, 깜짝 놀란 키메라들은 본능적으로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러는 동안 안쪽에 있던 풀아머 차림의 정규군이 커다란 방패를 앞세우고 방어진형을 펼치자, 키메라들은 다시금 간격을 띄운 채로 일행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외곽에 떨어져있던 병사들은 간신히 본대 안쪽으로 도망쳐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야, 세자르 잘하는 데! 과연 총지휘관다워!”

“과찬이십니다. 대마법관님. 아직 저들의 포위망은 그대로이니까요.”

“근데 이다음엔 어떨 건데? 저것들을 어떻게 박멸할 거야?”

“글쎄요. 그건 상황을 보면서 결정해야 할 것 같군요.”

 

그 때, 멀리 숲 속에서 괴성과 함께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건 이마에 여자의 상반신이 붙은 코끼리 덩치만한 괴물이었다. 그 뒤로도 연달아 비슷한 덩치의 괴물들이 무리를 지어 일행들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 일단은 여기를 뜨는 게 더 좋을 듯 하군요, 클로에 님.”

 

그리고는 세자르는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전군 사방진 대형으로! 알폰소 대를 선두로 최고 보행속도로 저 건물을 향해 전진한다! 진격!”

 

 

22.

 

잠시 후, 세자르의 지시에 따라 마름모 대형을 이룬 채 키메라들을 견제하며 될 수 있는 한 최고 속도로 분수 정원을 벗어난 일행은 간신히 계단을 올라 연구소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키메라들은 일행이 계단에 올라서자, 그 이상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는 듯이 추적을 포기하는 바람에 병사들은 그 위에서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세자르는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한 병사들에게 다시 진영을 정비하게 한 뒤, 앞에 서있는 연구소의 커다란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 문은 이곳이 마법사 알베르토의 본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처럼 두꺼운 앞면의 머리부터 바닥까지 각종 신기한 마법 기호들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알베르토 자신의 업적을 기록한 듯한 수많은 조형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 문을 한번 쓱 훑어 본 세자르는 루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열 수 있겠어?”

“물론이죠. 잘 보세요.”

 

루이는 아무런 경계도 없이 성큼성큼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치 시험문제의 답을 채우는 것처럼, 사방에 널려져 있던 마법기호들을 움직이더니 아래쪽에 있는 자그마한 빈 공간을 채웠다. 그러자 사방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나팔소리와 함께 문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마법 기호들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곧이어 문에 붙어있던 조형들이 양 벽 쪽으로 이동하자, 문이 있던 자리에는 안쪽으로 활짝 열린 입구가 들어나 있었다. 그 장면을 보던 세자르는 의아한 표정으로 루이를 쳐다보았다.

 

“루이, 이거 너무 쉽게 열린 거 아니야? 무슨 함정 같은데.”

“글쎄요.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별다른 보호 마법도 없고, 딱히 함정같이 보이는 구석도 없어요. 이런 건 지금까지 것들과 비교하면 가장 쉬운 축에 속하는 데요.”

“음, 그렇단 말은 여기가지 왔으니 환영한다는 제스처 던지, 아님 안에 더한 것을 준비해 뒀다는 말이겠군. 좋아. 주인이 기꺼이 초대를 했으니, 그 초대에 당연히 응해 줘야 예의겠지. 매니!”

 

잠시 후, 선발대인 매니가 입구 안을 조사한 뒤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오자, 세자르는 병사들을 연구소 안으로 천천히 진입하게 했다. 그렇게 안에 들어간 일행은 새로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모두가 합창이라도 하는 것처럼 감탄사를 내 뱉었다.

정문에서 한 걸음 안쪽에 위치한 거대한 홀은 이전 저택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서 과연 대마법시대의 실내양식이 얼마나 호사스러웠는지를 일행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사방의 벽은 높은 천정에 위치한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부끄러울 정도로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하얀 바탕의 대리석 위에 아직까지도 번쩍거리는 각종 문양의 금박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병사들이 들고 다니기에도 힘들 만큼 커다란 각종 보석들이 벽에 붙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각종 금은 그리고 광택이 흐르는 안료들로 장식된 벽화들과 조각상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래 병사들이 밟고 있는 바닥에는 모자이크 형태의 오색빛깔 꽃무늬 조각타일들이 빈틈없이 깔려있었는데, 납작한 타일 모양으로 장식된 그것들은 모두가 형형색색의 보석들이어서, 그 하나하나가 거기 서있는 병사들 집에 있는 어떠한 물건들 보다 더 값어치 있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일행들이 더 놀란 것은 그 모든 장식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있는 보석 타일들은 매번 색깔이 바뀌면서 색다른 모자이크 패턴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 박혀있는 보석 근처를 지나가자 그 안에서 이곳 주인의 업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환영이 떠올랐다. 그리고 사방의 벽화와 조각상들 또한 보는 각도에 따라 일정한 동작으로 자세가 바뀌어 보였고, 각 모서리에 있는 커다란 단상 위 금빛 모레더미들은 매순간 일정한 간격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뭉쳐지면서 수많은 마법 이미지를 보여주며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그 장식들을 둘러보면서 드디어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일제히 그것들을 약탈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갈 태세였다. 하지만 세자르는 그런 병사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진영을 유지하라! 이건 또 다른 함정인지 모른다! 방금 전에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나?”

“그래도 총지휘관, 어차피 이건 이제 우리 차진데 지금 좀 챙기는 게 뭐가 어떻습니까?”

“들어라! 탐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간 여러분이 고생한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이곳 연구소를 완전히 확보한 뒤에 각자가 행동하는 것이 모두에게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여기까지 와서 기껏 보물 몇 점 얻으려다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허망한 것이 어디 있겠나? 물론 탐사가 모두 끝나면, 나는 여러분이 이곳 보물들을 원하는 데로 챙길만한 시간을 충분히 줄 것이다. 그때까진 다들 꾹 참고 내 지시에 따라주길 바란다!”

 

다행이도 세자르의 말에 불평하는 병사들은 없었다. 어쨌든 각자 보물을 챙길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약속에 병사들은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자르는 병사들을 다독이면서 연구소 안을 향해 부대를 이동시켰다. 노만은 그런 세자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역시나, 자네의 말빨은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먹혀들어가는 구만.”

“남녀노소라니?”

“낮에는 병사들을 홀리고, 밤에는 저기 마녀들을 차례차례 홀려 데니 말일세.”

“쉿! 조용히 좀 하게!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농담일세. 자네가 난봉꾼이 아니라는 건 내가 더 잘아. 특히 자네가 저 마녀들을 상대로 목숨을 건 줄다리기를 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란 것 또한 말이야.”

“흠, 알아준다니 다행이군, 그래.”

“그나저나 여긴 연구소가 아니라 무슨 왕궁 같구먼. 근데 이 길이 맞긴 한 건가?”

“맞을 걸. 지금까지 이어진 통로는 이것 하나지 않나.”

“그래도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어제까지 지나온 곳과는 분위기가 너무 대조적이거든. 지금까지 너무 조용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왜, 겁나나? 그럼 다시 돌아가던가.”

“여기까지 와서 어떻게 되돌아가란 말인가? 원, 말을 해도.”

“그게 아니라 정신 차리란 얘기야. 이러다가 어제처럼 또 무슨 일이 갑자기 터질지 모르잖나.”

 

그러는 사이 세자르와 일행은 홀을 지나고 거대한 방들을 여러 곳 지나 연구소 깊숙이 들어갔다. 각 방들은 그래도 연구소 목적에 충실한 듯 각종 마법 자료들과 도구들, 자재들로 가득했다. 그 광경에 루이는 흥분한 어린애마냥 연신 감동의 눈망울로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바람에 세자르는 매번 루이를 제지하기에 바빴다. 결국엔 선두까지 달려간 세자르가 바로 옆에 루이를 찰싹 붙이고는 각종 으름장과 협박을 동반한 뒤에야 간신히 루이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루이도 다음 공간에 당도하자 갑자기 태도가 진지해졌다. 그런 루이에게 세자르가 물었다.

 

“뭐야, 루이? 뭐라도 발견한 거냐?”

“글쎄요. 이건 대장이 척 봐도 감이 오지 않나요?”

 

루이가 가리킨 앞쪽엔 높은 천장에 길게 이어진 복도가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큰 문까지 이어진 그 통로 양 옆에는 어림잡아도 병사들의 10배는 거뜬히 될 듯한 거대한 거상들이 기둥사이마다 하나씩 쭉 줄을 지어 서있었다. 각각의 거상들은 오래전 대마법시대에 유행한 것 같은 디자인의 풀아머 갑옷차림이었는데, 갑옷들은 좀 전의 동상들처럼 전체가 금은으로 뒤덮여 있었고, 곳곳에 알록달록 보석들이 장식되어 있어서 엄청나게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위쪽 호수 천장에서 들어오는 햇빛에 눈부시게 빛나는 그 거상들을 바라보면서 세자르가 말했다.

 

“이런, 젠장! 환영인사 한 번 거창하군!”

“그래서 여기서 포기하실 건가요?”

“내가 포기한다고 해서 우리 뒤에 있는 마녀들이 승낙할 것 같아?”

“그렇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물어보나 마나잖아. 방법을 찾아 봐야지.”

“앞에 무슨 일이야?”

 

세자르들이 뒤를 돌아보자 세 마녀가 앞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세자르는 그들 옆으로 살짝 비켜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예의를 갖추고는 말했다.

 

“앞쪽에 함정입니다. 통로는 여기 하나뿐인데 여길 통과하려면 저 거상들 밑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모두 다 짐작하시겠지만, 저 거상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게 뻔 하다는 게 바로 문제죠.”

“세자르, 그건 너무 걱정하는 거 아냐?”

“클로에님, 지금은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넘어갈 때입니다. 지난번 브루노씨가 비명횡사할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이라도 대비는 하고 있어야 전원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른 비밀통로는 없는 듯 하고, 결국 저 문을 통과해야 연구소 중심부로 갈수 있을 것 같은데.”

“맞아. 지금까지 일방통행이었으니까 저 문을 넘어가야지만 우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해결책이 생길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안 될까?”

“그건 정말 위험한 행동입니다. 이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

 

하지만 이후 벌어진 상황은 세자르가 제대로 대책을 마련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갑자기 멀리서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일행 모두가 저도 모르게 흠칫하는 사이, 갑자기 일행이 서있던 사방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행들이 서있던 복도 앞 입구가 미끄러지듯이 순식간에 일행의 뒤쪽으로 물러나는 동시에 거상들이 서있는 복도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눈 깜박할 사이에 졸지에 자신들이 복도 중앙으로 이동한 상황을 맞닥뜨린 병사들은 모두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런 병사들이 뭔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세자르가 우려했던 다음 일이 벌어졌다.

한순간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금속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더니, 주위에 서있던 거상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각자가 들고 있는 거대한 창과 칼, 도끼들을 앞세우면서 일행을 포위하는 형태로 한걸음 한걸음 병사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런 거상들의 모습에 병사들을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거상들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이 병사들에게 다가오더니 그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겁에 질린 병사들은 거상들의 공격을 피해 재빨리 뒤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렸거나 다른 동료들에게 걸려 그 자리에 넘어진 병사들은 다가 온 거상들의 창검에 그대로 온 몸이 뭉개지며 목숨을 잃었다.

그 참혹한 장면에 주위의 병사들이 단지 거상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사방으로 달아나다 보니, 일순간에 부대전열이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흩어진 병사들은 단순히 늑대를 피해 도망치는 양들 같은 신세였다. 마냥 거상들을 피해 바쁘게 뛰어다니기 바빴지만, 정작 복도 어디에도 도망칠 구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앞쪽 문은 아직 열리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뒤쪽에 서있던 입구로 도망치기에는 이미 다른 거상들이 겹겹이 진을 치고 있어서 그 사이를 뚫고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그 입구에는 거상 하나가 문지기 마냥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병사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닐 동안, 거상들은 병사들을 하나하나 착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저승길로 보내고 있었다. 거상들이 한 번씩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피바람이 불었다. 그 장면들은 남아있는 병사들을 더욱 공포에 질리게 하고 있었고, 공포는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경직시키고 있었다. 거상들은 그런 병사들을 상대로 마치 바닥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쓸어버리는 것처럼 손쉽게 그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병사들에게 세자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고 싶으면 모두 저쪽 구석으로 집결하라! 명령이다! 모두 달려라!”

 

세자르는 총지휘관을 상징하는 자신의 붉은색 망토를 휘두르면서 한쪽 코너를 향해 달려갔다. 그것을 본 병사들은 모두 죽어라하고 세자르가 달려가는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신히 목숨을 건진 병사들이 모여든 곳은 아직 열리지 않은 앞쪽 문 한쪽 구석이었다. 물론 도착하고 나서 아무 도망칠 곳도 없는 그곳에 집결하라는 세자르의 명령에 병사들은 황당해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총지휘관이 또 무슨 수가 있겠거니 하고 세자르의 지시대로 그 모퉁이가 북적북적 모여들었다.

그렇게 한쪽 구석에 모여든 병사들을 ㅤㅉㅗㅈ아오던 거상들도 곧 그 자리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좁디좁은 공간에 바글거리는 병사들을 단번에 쓸어버리겠다는 기세로 병사들을 향해 무기들을 휘둘러댔다. 하지만 그 순간,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은 병사들 머리 위로 떨어지던 거상들의 무기는 갑자기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뭔가에 막힌 것처럼 ‘탕’소리와 함께 튕겨나가 버렸다. 병사들은 그제야 왜 세자르가 자신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았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클로에가 가진 절대방어마법, ‘드래곤의 축복’의 효과를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세자르. 아무리 살기 위해서라지만, 나같이 연약한 여자를 이런 상황에서 매번 앞장세우다니 너무하는 거 아냐?”

“죄송합니다. 클로에님. 하지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지금 병사들을 어여삐 여기시는 클로에님의 자상하신 배려 덕에 모두가 목숨을 건졌으니, 아마 평생을 어머니처럼 모실 겁니다.”

“난 저런 얼간이들을 아들로 둔적 없거든! 그리고 이건 한두 번도 아니고, 더 이상 그런 사탕발림은 안 통해. 세자르.”

“그럼 나중에 단둘이 따로 은밀하게 정산해 볼까요? 물론 클로에님의 막사에서요.”

“으음, 그건 생각해 보지. 한데 여길 빠져가야 하는 게 먼저 아냐?”

“그래서 말인데. 아이린님, 저 거상들은 마법으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 돼. 불가능해. 저 거상들 어깨에 마법진 모양 보이지? 저건 어제 우리가 상대했던 문지기 괴물과 똑같은 방어마법진이야. 그걸 양쪽에 하나씩 달고 있는데 과연 마법공격이 통할 것 같아?”

“왠지 익숙한 문양이라서 짐작은 했지만, 역시 그렇군요. 그럼 저 거상들을 멈출 방법은 달리 없는 겁니까?”

“원래 저런 마법은 기본적으로 골렘과 같이 핵이 되는 마법석을 중심으로 각종 재료들을 뭉쳐서 만드는 거야. 그래서 그 핵만 제거하면 저것들을 간단히 박살낼 수 있어.”

“그럼 저것들의 핵은 어디쯤에 있을 까요?”

“가만있자, 저기 마력이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해 보면.......”

 

아이린은 잠시 두 손을 공중에서 모아 뭔가 인을 맺으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아이린의 손바닥에서 파란 기운이 생기더니 거상 중 하나를 향해 날아갔다. 그것에 흠ㅤㅉㅣㅅ 놀란 거상이 날아오는 것을 향해 양 팔을 흔들어 댔지만, 그 기운은 연기처럼 그 사이를 가볍게 통과하더니 거상의 이마에 박혀있는 보석 주변에서 빙빙 돌다가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생각보다 간단해서 어의가 없군. 세자르. 저기 이마에 있는 보석들을 제거하면 쓰러질 거야."

“그렇단 말이죠. 흠.”

 

아이린의 설명을 들은 세자르의 시선은 거상들을 향했다. 10기나 되는 거상들은 병사들을 공격하기 위해 들고 있는 창칼을 끊임없이 휘둘러대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들의 공격은 클로에의 ‘드래곤의 축복’을 깨부수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거상들의 공격은 여전히 사나웠고, 살아남은 병사들이 모두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탓에 본의 아니게 좁은 공간에 몰려든 거상들은 먼저 공격하려고 각자의 몸을 꽉 밀착한 채로 맞부딪쳐 가면서 비비적거리는 통에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는 건 코끼리 무리 사이를 지나가려는 쥐 마냥 어림도 없어 보였다.

그 상황을 가만히 주시하던 세자르는 뭔가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이린에게 물었다.

 

“아이린님, 이런 것은 괜찮겠습니까?”

 

세자르는 아이린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자르의 말을 들은 아이린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말했다.

 

“가능은 하겠지만, 세자르, 할 수 있겠어?”

“마법은 안 통하니, 별수 있습니까? 몸으로라도 때워야죠.”

 

세자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신호를 드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자르는 그길로 매니가 있는 앞쪽으로 가서 뭔가를 상의했다. 그 직후 매니와 그의 선발대는 ‘드래곤의 축복’의 최대범위까지 나가서는 거상들을 항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거상들은 일제히 매니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살짝 한 발짝 뒤쪽으로 물러난 매니는 또다시 거상들을 상대로 낚시질을 하며 거상들을 더욱더 앞쪽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세자르는 거상들을 최대한 안쪽으로 들였다고 생각이 들자, 지체 없이 아이린에게 한쪽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아이린은 여전히 작전이 통할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주문을 외쳤다.

 

“아이스 필드!!”

 

아이린이 시동어와 함께 세자르가 가리킨 쪽으로 손을 뻗자, 그 일대 바닥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빙판이 생겨났다. 동시에 일부 거상들의 발에 얼음이 달라붙어 발을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그 공격을 예상하지 못한 거상들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면서 발걸음을 뒤로 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거상들의 발이 빙판이 된 바닥에서 그대로 미끄러지자, 좁은 곳에 서로 밀착된 거상들은 마치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모두가 그 자리에서 뒤로 쓰러져버렸다.

그렇게 모든 거상들이 거대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일제히 제자리에 나자빠지진 것을 확인한 세자르는 병사들 앞에서 칼을 빼어들고는 외쳤다.

 

“자 병사들이여, 이젠 우리가 공격할 차례다! 뭣들하고 있는가? 목표는 각 거상의 이마에 붙은 보석들이다! 모두 돌격하라!!”

 

이 말과 함께 세자르는 고함을 지르면서 곧장 앞에 넘어진 거상을 향해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세자르를 뒤따라 각 거상들을 항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제자리에 쓰러진 거상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뒤엉킨 채 눌려있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손쉽게 제일 앞에 있는 거상의 몸통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간 세자르는 그대로 이마에 박힌 보석의 모서리 부분에 있는 힘껏 칼을 박았다. 그리고는 칼을 비틀면서 보석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보석은 의외로 꼼짝 하지 않았다.

 

“이런, 이런. 대장 그러게 밤마다 계집질에 힘 빼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 그런 말 할 시간 있으면 빨리 도와주기나 해, 안톤!”

 

안톤은 껄껄껄 크게 웃으면서 세자르에게 다가와서는 다른 모서리에 도끼를 박고 세자르와 박자를 맞춰 도끼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두 사람의 힘겨운 노동 끝에 거상의 이마에 박힌 커다란 보석이 간신히 뽑혀져 나오자, 그 순간 거상은 마치 바람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갑옷과 온 몸의 보석 광택이 사라지더니 죽은 듯이 제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전이 맞아 들어간 것에 기쁨의 함성을 지른 세자르는 안톤과 함께 방금 제거한 거상의 몸 밑에 깔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다른 거상의 몸 위로 점프해서는 그 거상의 이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병사들이 앞의 2열의 거상들을 무너트릴 무렵, 뒤쪽에 있어서 비교적 다른 거상들에 적게 깔렸던 일부의 거상들이 간신히 몸을 빼서는 일어서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동료 거상들을 공격하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분노의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세자르는 조장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노만! 연막탄으로 녀석들의 시야를 가려! 안톤! 넌 부하들을 이끌고 왼쪽의 녀석들을 공격한다! 루이! 넌 오른쪽을 맡아! 공격목표는 놈들의 다리 아래쪽, 특히 발목을 노려라! 우선 녀석들을 넘어트리는 데 주력해!”

 

지시가 떨어지자, 조장들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만은 흩어져 있는 사수들을 불러 모으고는 연막탄이 달린 화살들을 장전하자마자 거상들을 향해 쏘아 올렸다. 노만들이 날린 화살들은 곧장 거상들의 가슴이나 목 부분으로 날아가서는 맞자마자 시커먼 연기를 내품으면서 거상들이 아래쪽을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거상 아래로 접근한 병사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거상들을 공격해 들어갔다.

 

“자, 여기서 거기까지 로프를 연결한다! 서둘러!”

 

안톤은 서둘러 근처 한쪽 기둥에 로프를 연결하고는 다른 기둥 쪽에 자리 잡은 부하들에게 로프를 던졌다. 부하들이 그 로프를 그쪽 기둥에 단단히 묶은 뒤 다시 안톤이 있는 곳으로 로프를 던졌다. 그렇게 두 기둥 사이 로프를 여러 차례 단단히 연결한 안톤 일행은 곧 뒤로 물러나서는 그쪽에 있는 거상들에게 마치 공격하러 가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거상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하지만 앞서 걸어오던 거상이 안톤들이 설치한 줄에 걸려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버리자, 그 뒤로 따라오던 거상들도 넘어진 거상에 걸려 줄줄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톤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으하하, 좋아! 이대로 돌격! 저 바보들을 처리하자! 그럼 남은 보석은 다 우리차지다! 서둘러!”

 

한편 루이는 아까 전에 아이린이 했던 것처럼 마법을 사용했다.

 

“아이스 트랩!”

 

주문과 함께 아이린의 마법만큼은 아니지만, 거상들의 발 주위로 자그마한 빙판들이 생겨났다. 연막에 시야가 가려 허둥대던 거상들 중 일부가 그 빙판 위로 발을 대자, 거상의 무게에 얼음이 깨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 거상들의 발이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아래로 푹 들어갔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거상들은 엄청난 굉음을 내면서 주변의 다른 거상들을 넘어트리면서 주저앉아 버렸다.

 

“어때요? 얼음 마법과 차원 마법을 합친 저만의 특기가!”

“그래봤자, 아까 대마법관님의 마법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임팩트가 너무 적어.”

“대장, 이게 보기엔 좀 허술해 보여도 실제로는 위력이....... 어,어, 대장, 같이 가요!”

 

그렇게 세자르와 루이는 다른 병사들을 이끌고 오른쪽의 거상들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세자르의 작전대로 대다수의 거상이 힘을 잃고 쓰러져 버리자, 아직 남아있던 두 기의 거상이 뒤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 저것들 뭐하는 거지?”

“혹시 겁에 절어 도망치려는 거 아냐?”

“바보야, 저게 그런 모습으로 보이냐?”

 

수군대는 병사들의 말처럼 두 거상의 행동은 이상했다. 연막을 피해 천천히 뒤로 물러나던 두 거상은 둘이서 뭔가 상의하듯이 고개를 끄떡이며 쑥덕이더니, 갑자기 한 거상이 온 몸에서 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온몸의 갑옷이 변형되면서 커다란 날개가 달린 와이번 모양으로 변했다. 와이번은 괴성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라서는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다른 거상이 앞쪽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런 거상들의 공격에 혼비백산한 병사들이 서둘러 뒤쪽으로 도망을 치자, 더 이상 쫓지 않고 다른 쓰러진 거상들 사이에 멈춰선 그 거상은 또다시 몸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에 쓰러진 거상들의 갑옷들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그 자리에 서있던 거상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빛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반인반마 모습의 한층 거대해진 거상이 서있다.

그런 거상들의 변신에 병사들은 또다시 겁에 질려서는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움직이기 시작한 거상의 움직임은 빨랐다. 과연 커다란 덩치답게 거상은 넓은 보폭으로 순식간에 달아나는 병사들을 따라잡고는 뒤처지는 병사들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한순간에 몇 명의 병사들이 저 멀리 공중으로 쳐 올려졌다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인마거상이 복도를 한 바퀴 크게 휘저으며 그 앞길에 서있던 병사들을 네 발로 마음껏 짓밟고 양 손에 든 칼로 도륙하는 동시에, 그 공격 범위 밖에 있던 병사들 머리 위에선 거대 와이번이 날아다니면서 다른 병사들을 물어뜯거나 손톱으로 몸을 절단하거나 공중으로 집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등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 콤비플레이에 복도는 또다시 병사들의 비명과 피바람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두 거상의 공격을 피해 한곳으로 모인 일단의 병사들 속에서 아이린과 클로에는 한쪽은 경의적인 눈빛으로 한쪽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거상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였다.

 

“이자벨라님, 잠깐 손을 좀 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세자르?”

“저 공중에 떠있는 날파리를 제거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왜? 그리고 나 혼자 그런 게 가능할거라 생각하는 건가?”

“먼저 우리가 살아서 문 너머에 도착하려면 어떻게든 저기 두 녀석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런 거 하나 처리 못한다면, ‘무적의 하얀 마녀’라는 별명이 아깝겠지요. 병사들 모두 ‘아무리 대단한 백작이라도 나이는 세월을 이길 수가 없나’ 할 겁니다.”

 

세자르의 말에 이자벨라의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말이 너무 심한데. 내가 저거 하나 감당 못할 것 같나? 잘 지켜보고 있으라고.”

이자벨라는 두고 보라는 듯이 고개를 휙 돌리더니 병사들을 가르고 거상을 향해 복도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무지막지한 거상들을 상대하려고 단독으로 나선 이자벨라의 모습에 병사들은 다들 감탄과 기대의 표정으로 이자벨라를 쳐다보았다.

그런 병사들 앞에서 이자벨라는 칼을 높게 빼어들고는 온몸의 힘을 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자벨라의 ‘하얀 섬광’의 칼끝에서 새하얀 검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세자르는 매니와 함께 인마 거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상은 복도 끝에서 잠시 자세를 고르면서 다른 거상과 그것을 상대하기 위해 나온 이자벨라의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세자르는 그런 거상의 머리를 향해 노만에게서 받아온 연막탄을 힘껏 던졌다.

갑작스런 공격에 잠시 허둥지둥한 거상은 그러나 곧 옅어지는 연기 사이로 근처에서 세자르와 매니가 자신을 피해 죽어라 달아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고함을 지르면서 그 둘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세자르는 거상이 전속력으로 자신을 뒤쫓아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시간을 벌기 위해 거상이 ㅤㅉㅗㅈ아오기 힘들게 한쪽 벽과 기둥 사이 좁은 공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워낙 한 덩치 하는 거상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히려 그 사이를 파고들어서는 주변의 모든 것을 박살내면서 집요하게 세자르와 매니를 ㅤㅉㅗㅈ아왔다. 하지만 역시 벽과 기둥들이 방해가 됐는지 거상이 달려오는 속도를 조금은 늦출 수가 있었다.

 

“거기 앞에 모두 비켜!!”

 

세자르는 자기가 달리는 앞쪽에 모여 있던 병사들에서 팔을 흔들면서 피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병사들은 세자르 뒤로 바로 코앞까지 ㅤㅉㅗㅈ아오고 있는 거상의 모습에 너나 할 것 없이 그 자리에서 달아나고 있었다.

 

“노만! 연막탄 쏴! 어서!”

그 말과 함께 클로에들이 있는 코너 쪽에 도착한 세자르는 앞에 있던 클로에를 힘껏 껴안듯이 하면서 간신히 발을 멈추었다. 동시에 미리 세자르의 지시가 있었던 듯 사수들과 자리를 잡고 있던 노만은 거상을 향해 연막탄을 날렸다. 순식간에 얼굴 주변을 검은 연기로 둘러싸인 거상은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발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미 속도가 붙은 거대한 몸체는 곧장 멈추지를 못하고 그대로 클로에가 서있던 ‘드래곤의 축복’에 부딪히더니, 그대로 위로 붕 떠올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공중을 가르더니, 거대한 소음과 함께 뒤쪽에 있던 벽을 힘껏 들이박았다.

잠시 후, 자북하게 일어났던 먼지구름이 가라앉자, 거상은 온 몸의 갑옷이 찌그러진 채로 무너진 벽 안에 몸을 반쯤 박힌 채 쓰러져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그 모습에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전에 거상은 몸을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신의 갑옷들도 원래대로 복원되고 있었다.

일행은 순간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 그러나 그 순간 갑자기 엄청난 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뭔가에 강하게 휘둘려 맞은 것처럼 날아온 와이번이 인마 거상을 강타했다. 마치 날카로운 것에 당한 듯이 온몸의 갑옷이 휴지조각처럼 찢겨진 와이번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두 거상은 좀 전의 충돌에서 꽤나 강한 충격을 입었는지 둘 다 갑옷 여기저기가 부셔진 채로 부딪힌 상태 그대로 몸을 꿈틀대기만 할 뿐, 전혀 움직이질 못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던 병사들 뒤쪽에서 한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얼른 남은 것들 처리하지 못해!!”

 

이자벨라의 새파랗게 날이 선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린 병사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면서 잇따른 충돌과 충격에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는 두 거상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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