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판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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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기분은 막사를 벗어나 야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세자르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아까 전에 이자벨라가 한 말 중 뭔가가 자꾸만 세자르의 맘에 걸리고 있었다. 세자르는 그게 뭐 때문인지는 생각해내려 했지만, 하루 종일 긴장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여서 그 뭔가가 잘 떠오지는 않았다.
진영 외곽의 야영지에는 모닥불 주변으로 노만을 비롯해 용병단의 대장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은 세자르가 다가가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면서 세자르를 환영했다.
“여어, 드디어 여기 우리의 새 총사령관이 돌아왔구먼.”
“누가 총사령관이야? 총 지휘관이라고 정정해 주게.”
“아무렴은 어떤가. 군대 전체를 지휘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말이야. 자 이쪽으로 오게.”
노만은 한쪽에 놓인 잔에 술을 따라 자리에 앉은 세자르에게 건넸다. 그러는 사이 안톤이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고는 잔을 부딪치며 물었다.
“축하해, 대장! 이거 무슨 재주를 부렸기에 이렇게 대폭 승진한 거야? 낙하산도 이런 낙하산은 처음 본다고!”
“낙하산은 뭐야? 난 그저 등 떠밀려서 억지로 맡았을 뿐이야.”
“그래도 뒤에서 안전하게 부대지휘만 하면 되니 좋겠어.”
“아까 도미노 훅 가는 거 못 봤어? 방어 뚫리면 결국 난 마녀들의 방패막이가 될 뿐이라고.”
“아, 마녀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백작에게 보고하러 갔다는 사람이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혹시 또?”
안톤이 새끼손가락을 슬며시 올리면서 물었다.
“어허,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저 백작의 속마음을 알아보려고 이것저것 떠보느라 늦은 것 뿐이야.”
“그럼 뭔가 알아낸 건 있나?”
“그게 말이지.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네.”
“그럼 그렇지. 백작과 떡을 치느라 그럴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와우 그게 사실이라면 대장이 세 마녀와 모두 동침했다는 건데, 도대체 그 비결이 뭐야? 자, 털어나 보라고. 우리 사이에 이런 정보는 서로서로 공유해야지.”
“그게 아니라니까!”
“거짓말 하지 말게. 자넨 거짓말 하면 얼굴에 금방 티가 나니까 말이야.”
순간 세자르는 머리에 번개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상황과 비슷한 분위기. 그리고 계속해서 맘에 걸리는 이자벨라의 말. 그 모든 것이 세자르의 기억 속에서 갑자기 뭔가를 떠올게 하고 있었다.
그건 십 수 년 전 전쟁터였다. 아직 젊은 청년 지휘관이었던 세자르, 아니 세바스티앙은 처절했던 트라비카 평원에서의 전투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둔 날 저녁, 숙영지에서 부대 지휘관들과 승리를 자축하는 파티를 끝내고는 막사를 나섰다.
살짝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자신의 막사를 향해 길을 걷던 세자르는 곧 근처 언덕 외진 곳에서 누군가가 홀로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에 홀리듯이 그곳으로 다가간 세자르는 불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바로 이자벨라인 것을 알았다. 세자르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창창한 20대였던 이자벨라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싱그럽고 황홀할 정도의 미모를 뽐내고 있었지만, 얼음마녀라는 별명처럼 싸늘하고 냉정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세자르는 이자벨라가 좀 전의 파티에서 다른 장교와 사소한 다툼 끝에 막사를 박차고 나간 것을 기억해 냈다.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거야? 왜 혼자 여기 있어?”
“화 안 났어.”
“거짓말 마. 네가 어떤지는 네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어. 금방 티가 나니까 말이야.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니야.”
“그건 누가 할 소리인데. 너야 말로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잖아.”
“좋아.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지금은 오늘 전투에서 승리한 걸 마음껏 즐길 때야. 홀로 너무 무게 잡고 있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화난 게 아니라니까. 잠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어.”
“그게 뭔데?”
“말하기 싫어.”
“무슨 소리야, 그게? 좀 알려줘 봐. 너 혼자 고민하고 있어봐야 답은 안 나온다고.”
그러면서 세자르는 자신의 말에 침묵하는 이자벨라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이자벨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자벨라의 옆얼굴은 마치 한 점의 조각처럼 미끈한 선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자르는 절로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벨. 근데 그거 알아? 오늘따라 정말 예뻐 보인다.”
“뜬금없이 그게 뭔 소리야? 손발이 다 오글거려.”
“아니 정말이라니까! 정말 이런 미인이 내 애인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는데.”
“흥, 그건 항상 하던 사탕발림이잖아.”
“그래도 예쁜 건 예쁜 거야. 너무 자신에게 냉소적일 필요는 없다고. 너도 여잔데 때론 그 미모를 좀 즐기면서 다니라고.”
세자르는 그 말과 함께 이자벨라 옆으로 엉덩이를 바짝 붙어 앉고는 이자벨라의 어깨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았다. 그런 세자르의 행동에 이자벨라는 어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지금 뭘 하는 거야?”
“뭐긴, 알면서 그래?”
“나 참 기가 막혀서. 여기서 말이야? 누가 천하의 난봉꾼 아니랄까봐. 누군가 네 진짜 정체를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이 난봉꾼 사령관!”
하지만, 이자벨라는 새침한 표정과 말과는 달리,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세자르의 행동에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세자르는 그런 이자벨라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롭게 어깨에서 손을 들어 이자벨라의 뺨과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벨. 너야 말로 한 번 하고 싶어서 안달이잖아. 변태 귀족 아가씨. 겉으론 이렇게 아름답고 고상한 규수가 실은 파티 내내 흥분해서 팬티나 잔득 적시면서 다녔다는 사실은 어떠할까나.”
“내가 언제? 그 말은 너무 하잖.......”
“쯧쯧쯧. 아까 네가 막사에서 왜 내가 보란 듯이 히스테릴 부렸는지 다 알아. 하지만 말이야. 주인님이 기껏 위로해 주고 있는 데, 변태노예가 주인님께 일일이 대드는 건 용납할 수 없겠어.”
세자르는 그 말과 함께 이자벨라의 블라우스를 양쪽으로 힘껏 잡아 뜯었다. 그 충격에 그 안에 감춰져있던 두 젖가슴이 튕겨나갈 듯이 흔들렸다. 이자벨라는 그런 세자르의 행동에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세자르의 말이 더 빨랐다.
“떠들 테면 떠들어 봐. 그럼 얼음마녀의 진짜 정체를 군단 전체가 생생하게 확인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 말에 이자벨라는 잠자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세자르는 그런 이자벨라의 몸을 뒤로 젖히고는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이자벨라의 위아래 모든 구멍에 대해 친절히 점검을 마친 세자르는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온몸이 땀에 젖은 이자벨라가 얼굴과 사타구니 주변이 두 사람의 체액으로 뒤범벅이 된 채로 누워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세자르는 그런 이자벨라를 일으켜 앉히고는 등 뒤에 묶여있던 두 손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이자벨라는 힘겹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마치 훈련받은 것처럼 자동적으로 세자르 앞에 무릎을 꿇고는 자신의 입으로 그의 자지를 물고는 깨끗이 핥기 시작했다.
“그래야지. 이제야 제대로 된 변태 노예답군.”
세자르는 그러면서 이자벨라의 둥근 엉덩이 사이 골짜기에 있는 조갯살을 손으로 만지고 놀기 시작했다. 세자르의 장난에 이자벨라는 연신 콧바람을 내쉬면서도 그러지 말라는 듯이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세자르는 그런 이자벨라의 반응을 즐기면서 물었다.
“어때? 이제 기분 좀 나아졌어?”
“으읍, 응으으읍...... 응응으읍.......”
“뭐라고? 잘 안 들리는 데? 똑바로 얘기해봐.”
그 말에 이자벨라는 밑에서 고개를 들고, 세자르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응, 많이 좋아졌어. 이곳에 온 뒤로 통틀어 제일 근사한 시간이었어.”
세자르는 그런 이자벨라를 옆으로 당겨 앉히고는 두 팔로 이자벨라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근데 말이야. 이렇게 둘이서 근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굳이 내일 영지로 돌아가야 해?”
“그건 어쩔 수 없어.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영지 돌 볼 사람은 나밖에 없잖아. 그동안 전쟁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비워두고 있었어.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야.”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군단의 총사령관으로써, 그리고 아름다운 이자벨라 백작의 애인으로써 안타깝지만 기꺼이 보내드려야겠군.”
“너무 안타깝게 생각하진 마.”
“한데 말이야. 조건이 있어.”
“뭐?”
세자르는 자신의 옷가지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작은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이렇게 계속해서 서로가 바쁘니까 함께 시간을 보기도 힘들잖아. 그래서 말인데, 아예 같이 사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어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세자르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이자벨라에게 반지를 내밀었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바로 응답하진 않았다. 한참동안 반지를 바라보던 이자벨라는 두 손으로 반지를 든 세자르의 손바닥을 잡으면서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우리 둘 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이건 그 뒤에 생각해 보도록 하자.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잖아.”
이자벨라는 애써 세자르의 프러포즈를 거절하고는 옷을 입고 자신의 막사로 돌아갔다. 그 뒤에 남은 세자르는 예상 밖의 이자벨라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듯이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음날 아침, 이자벨라는 별다른 작별인사도 없이 자신의 영지로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가 버렸다. 세자르는 그 나름대로 남은 적군의 잔당을 ㅤㅉㅗㅈ아 추격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였다.
급하게 막사로 뛰어든 전령이 떨리는 손으로 세자르에게 잔뜩 구겨지고 때가 탄 종이를 내밀었다. 세자르는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을 느끼면서 종이를 펼쳤다. 그건 자신의 집사장이 보낸 편지였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주인님, 어서 자리를 피하십시오. 귀족파 녀석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군은 이미 왕궁을 장악했고, 동지들의 영지 또한 그들의 칼에 하나하나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곧 주인님을 체포하기 위해 반란군이 도착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백작님과 부인께서는 이미 이자벨라 일당의 손에.......’
세자르는 순식간에 떠오른 기억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의 삶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이자벨라가 일단 내뱉은 말과 행동은 어찌됐든 다시 한 번 신중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세자르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세자르는 잠시 동안 이자벨라와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노만을 비롯한 동료들은 그런 세자르를 갑자기 왜 저러나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나, 세자르?”
“음, 미안하네. 갑자기 뭔가가 떠올라서 말이야.”
“뭐야? 백작에게서 뭐라도 알아낸 건가?”
“음....... 뭐 그렇다고 해야 하나.”
세자르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뭔가를 결심한 듯이 동료들에게 물었다.
“자네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내 말을 믿고 나를 따라 올수 있겠나?”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지금 여기, 자네 말고 누구 명령을 따라?”
“내 말은 조만간 비상사태가 생길 수도 있을 듯해서 말이야.”
“몇 번을 이야기 하는 건가?”
“1번.”
“헉! 그건 아니잖아! 제발 그건 만은 아니라고 해줘!”
“목소리 낮춰, 안톤. 다들 진정하라고.”
세자르는 동요하는 동료들을 진정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나도 물론 그러길 바라진 않지만, 일단은 그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꽤 커보여서 하는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대장, 저쪽하고 붙으면 우리가 피해가 너무 크다고! 우리가 백작의 군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안톤, 진정하게. 그리고 세자르, 만약 그렇다 해도 저쪽은 대장이 없지 않은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네. 저쪽엔 백작 본인이 지휘하면 돼.”
세자르의 말에 일행은 모두 ‘뜨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낮에 백작 홀로 얼음 괴물들을 썰어대는 장면은 그만큼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
“나도 이게 단지 내 기우였으면 좋겠네. 하지만, 모든 게 좋은 쪽으로만 흘러갈 수만은 없어. 저쪽엔 왕국 정예군과 최강의 기사 그리고 마법사가 있지. 심지어 ‘드래곤의 축복’이라는 절대 방어마법까지 있네. 때문에 사실 우리가 이길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세자르의 말에 사방의 공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잠시 동안 정적 속에서 단지 모닥불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그 공간을 채울 뿐이었다.
“따라서 말인데, 지금 우리에겐 현실적으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유적 끝까지 이런저런 위험을 감수하며 모험을 강행하느냐, 아님 여기서 당장 멈추고 지상으로 야반도주 하느냐 야.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
노만을 비롯한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둘러보았다. 만약 탐사를 계속한다 해도 결국엔 이자벨라의 군대와 전투를 벌일 가능성이 컸다. 만약 달아난다 해도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용병단 만으로 무사히 돌파한다는 건 기적에 가까웠다. 이건 누군가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기나긴 침묵 끝에 노만이 입을 열었다.
“세자르,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난 이 모험을 끝까지 하고 싶네. 어찌되었든 은퇴하려면, 여기서 얻는 보물이나 보수가 필요하거든. 하지만, 무엇보다도 난 저 마녀들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를 꼭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네.”
세자르의 발언에도 용병들은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던 매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장, 난 대장이 암살단에서 도망치던 내 목숨을 구해준 순간부터 내 목숨은 대장에게 맡겼다. 나는 끝까지 대장하고 함께 할꺼다.”
그 말에 안톤이 거들고 나섰다.
“나도 대장과 함께 가겠어. 술에 절어 길거리에서 죽어가던 나를 살려준 건 다름 아닌 대장이잖아. 남자라면 의리를 지켜야지.”
“나도 같이 가겠네. 용병단에서 단 하나 남은 동기를 홀로 떠나보낸다는 건 내 구미에 안 맞아.”
“노만, 혼자 돌아가는 게 엄두가 안 나서가 아니고요?‘
“그럼 너도 여기 보물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라고 속 시원히 말해보지 그래?”
노만과 안톤의 서로 빈정대는 말에 모두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웃는 와중에 노만은 루이를 보며 물었다.
“루이, 너는?”
“그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탐험가인 제가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라고요? 차라리 저 마녀들의 기둥서방이 돼서라도 치맛자락 붙들고서 끝까지 ㅤㅉㅗㅈ아갈 겁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요 녀석 보게. 책벌레인 줄로만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컸어?”
노만은 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풀리자, 모닥불 주변에 모인 일행은 한참을 술잔을 부딪치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 무렵, 모닥불 앞에 남은 사람은 세자르와 루이뿐이었다. 첫 번째 불침번을 맡은 세자르는 장작들을 들쑤시면서 조용히 앉아 브루노의 자료와 자신의 노트를 살펴보고 있던 루이를 보며 말했다.
“잠이 안 오는가 보지?”
“그건 세자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내일이면 모든 게 결판나잖아요.”
“참, 눈치 한번 빠르군. 그건 언제 알았어?”
“아까 요정을 빙자한 키메라가 한 말 조금만 곱씹어보면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문제죠.”
“잘났다. 탐험가 나리. 근데 넌 그동안 그렇게나 연구해대더니 유적에 대해 뭐 하나 알아낸 게 없냐?”
“글쎄요. 아무래도 브루노씨가 핵심 정보는 자신의 수첩에만 기재한 모양이에요. 아무리 기록을 살펴봐도 별로 특별한 게 없거든요.”
“그럼 지금까지 네가 조사한 결론은?”
“그것도 몇 가지 이상한 점만 빼고 별다른 게 없어요. 지금까지 지나온 곳마다 단서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어서요.”
“그 이상하다는 게 뭔데?”
“우와 이거 감격적인 데요. 웬일로 대장이 고고학에 관심을 다보이고.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습니다.”
“아니 내 장담컨대 내일 해는 동쪽에서 뜰 거다. 그리고 난 단지 심심한 불침번 시간을 때울 거리가 필요한 거고.”
“나 참, 그게 뭡니까. 그런 썰렁한 농담은 철지난지 한참 됐거든요. 좋아요. 아무튼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보세요. 근데 이해는 하시려나 몰라.”
그러면서 루이는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