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7편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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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恐皇) 5부 <새로운 시대> Part 1_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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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21 회 작성일 24-01-19 05:3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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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기본적으로 일리시드들은 발음되는 문자를 가지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의사 소통을 텔레파시로 해결하고 엘더 브레인이라는 거대한 [정보 저장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탓에, 문자로 남길만한 기록 자체도 적은 편이다. 그들의 문자로 알려진 퀄리스(Qualith)는 그들의 생각을 선과 점의 점자 형태로 기록한 아주 [원초적인] 문자인데, 그 자체는 일리시드 건축에서 흔히 보인다.


이 퀄리스는 일반적으로 4줄의 행을 가지며 그것을 동시에 읽어야만 완전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슈발츠가 본 문의 퀄리스는 16행이었다. 암호화된 퀼리스라는 것은 슈발츠도 처음 보는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게다가 4배로 복잡한 것이다. 하드룬이라고 하는 마법사는 상당히 이쪽 방면에 지식이 남다른 듯 했지만, 보는 동안 점점 삼천포로 빠져가서, 내버려두면 정말로 자멸할지도 몰랐다.


두르나들에게는 신호를 기다리며 대기하라고 해 놓고, 슈발츠는 자기 나름대로 부조에 새겨진 퀄리스를 해석해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몆행 읽어내려가지 않아서 슈발츠는 이 문의 문자 자체가 열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라면 퀼리스를 다른곳도 아니고 문짝에 새겨두었을리가 없다. 일리시드들은 언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텔레파시만으로 의사소통을 거의 해결하는 존재이며, 그들의 장치들 대부분은 그런 초능력을 가진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다. 소리내어 읽지 않고 단순히 마음 안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장치가 없을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리시드들, 그중에서도 변조된 16행의 퀼리스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고등한 지력을 가진 존재만이 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조취를 취해 두었다는 사실은, 일반의 일리시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혹은 위험한 무엇인가가 문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슈발츠는 더이상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에게 신호를 보냈다. 두르나는 하드룬을, 알루데시아는 그를 호위하는 중인 병사를, 그리고 슈발츠는 인질을 데리고 있는 레보쓰라 불린 거한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가 아크를 꺼내어 레보쓰에게 일격을 먹이면, 그것이 신호가 될것이다.


퍼엉!!


아크에서 발사된 에너지 화살은 레보쓰라는 자의 몸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법의 결계(아마도 갑옷에 걸린 마법이나 부적에 의한)에 맞아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 타격에 레보쓰가 휘청거리는 동안, 슈발츠는 재빨리 아크를 집어 넣고 숨어있던 장소에서 뛰어 내렸다. 그리고 손에서 검은 광선의 칼을 뽑아내 그가 잡고 있던 사슬들을 내리쳤다. 한철로 되어 있던 사슬이 마치 두부처럼 소리도 없이 잘리는 동안 슈발츠는 레보쓰와 여자들 사이에 내렸다.


" 어억... 크악!!... "


두르나 쪽은 좀 더 성공적이었다. 그녀가 날린 보호마법을 파괴하는 세공이 된 화살은 하드룬의 보호마법을 뚫고 그의 허벅지에 명중했다. 비명을 지르며 그가 비틀거리는 동안, 그녀가 날린 촉수 채찍이 히드룬의 목을 감아 땅바닥에 쓰러트렸다. 알루데시아가 담당한 병사는 그녀의 노도같은 공세에 금새 무기를 놓치고 손을 들어 항복했다.


" 멈춰, 이놈의 모가지가 몸통에서 떨어지는 꼴을 보기 싫다면, 무기를 버리시지? "


슈발츠에게 반격하려던 레보쓰의 움직임을 멈춘 것은 두르나의 일갈이었다.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진 하드룬의 등을 밟고 뒤통수에 레이피어를 겨누었던 것이다. 레보쓰는 슈발츠와 두르나를 한번씩 돌아본 후,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챙그랑...


" 네놈들은 대체 누구이간데 감히... "/하드룬


" 지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닌듯 하군. "/슈발츠


슈발츠는 (하프드래곤과 드로우와 서큐버스의 출현에 놀라)도망치려던 여자들을 붙잡은 후, 그녀들의 사슬과 차꼬를 풀어주면서 하드룬의 말을 맞맏았다.


" 고맙습니다 뉘신지는 모르나... "/소녀


" 고맙습니다...어라 두르나씨? "/여자


여자는 낮이 익었다. 그리고 그녀는 두르나를 알아봤다.


" 아, 헬베티아씨네? 반가워요. "/두르나


" 설마 그럼 이쪽은 슈발츠님? "/헬베티아


" 본모습을 보는게 처음이군, 그래서 알아보질 못하던 거였어. "/슈발츠


" 아는 사이에요 두분? "/소녀


헬베티아는 이미 구면이고, 동행한 소녀의 이름은 타브라(TABRA; 중도 선 인간 여성 위22)라고 했다.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나눈후, 슈발츠는 그녀들을 속박했던 사슬로 하드룬 일행을 묶었다.


"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두르나


" 슈발츠님이랑 두르나님도요. "/헬베티아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엔 주변 환경이 척박했기 때문에, 슈발츠는 일단 지상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마저 끝내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합의를 끝낸 직후에 작은 사고가 있었다.


콰르르르르!...


들러온 방향의 동굴 입구가, 너무나 낡은 나머지 무너졌던 것이다. 곧 출구를 찾기 위해 알루데시아가 나섰으나, 매로 변한 그녀조차도 나갈 구명을 찾아내는데는 실패햇다.


" 갇힌것 같군... 후후 "/하드룬


" 그러게 애시당초 이 유적을 내버려두라고 했을텐데. "/타브라


"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선배님, 이제 죽든 살든 앞으로 나갈 수 박에 없지 않겠소? "/하드룬


하드룬의 비아냥거림을 들으며, 슈발츠는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어차피 붕괴된 구역을 힘으로 뚫고 가는 것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 자신의 또 하나의 밑천을 헬베티아나 타브라에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앞에 있는 봉인된 문 안에 뭐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문득 슈발츠는 소녀에 불과한 타브라에게 하드룬이 [선배]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 이봐, 아무리봐도 니 쪽이 타브라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왜 그녀를 그렇게 부르는 거지? "/슈발츠


" 네놈에게 말해줄 필요는 없겠... "/하드룬


빠악!!


두르나의 발차기가 그지없이 훌륭하게 명중해, 하드룬의 고개가 한쪽으로 홱 꺾였다. 하드룬은 다시 고개를 똑바로 돌렸지만, 한번 더 슈발츠에게 대거리를 했다간 두르나의 레이피어가 심장을 꿰뚫은 기세였다.


" 컥... 퉤!... 니 눈에 보이는 것만이 모두 진실은 아니야. 정 궁금하면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래. "/하드룬


" ...됏어요! 내가 말하죠. "/타브라


슈발츠는 시선을 타브라에게로 돌렸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한번 침을 삼키고, 혀로 입술에 침을 바른 후, 슈발츠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 나는 아이올라움(Ioulaum; 혼돈 중립 인간 남성 위저드 31/ 아크메이지5/ 네서릴 아카니스트 5)의 제자에요. "


고대의 역사, 특히 마법학과 연관된 역사에 에 해박한 젤로나나 사피아 등이 들었다면 아마 천정까지 펄쩍 뛰어올랐겠지만, 일반적인 역사학 이외엔 별 관심을 갖지 않은 슈발츠는 아이올라움의 이름을 처음 듣기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 했을 뿐이다.


아이올라움은 고대 네서릴의 마법사로, 최초의 공중 도시, 최초의 미샬라, 최초의 미샬라 힘 아이템을 발명해 네서릴 마법의 기초를 세운 위대한 영웅이기도 했다. 타브라는 그의 마지막 도제로, 일리시드의 지하도시인 엘린" 탈(Ellyn"taal)에서 벌어진 아이올라움과 한 무리의 엘훈(일리시드 리치)와의 주문 전투를 목격한 현장 증인이기도 했다.


신생 네서릴, 즉 세이드 시의 마법은 결국 네서릴로부터 연유한 것이고, 그 가장 위대한 위저드가 아이올라움이었으니, 그 제자인 타브라가 셰이드 위저드들의 [선배]라는건 이치를 따지자면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아이올라움의 [실종]과 그에 이은 네서릴의 멸망(그 공중 도시들의 낙하)는 이천년도 더된 예전의 일이다. 따라서 그녀의 [나이]도 적어도 그만큼일 것이다.


타브라의 젊음의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슈발츠는 그녀가 어떠한 마법적인 변장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도 거기까지는 말할 생각이 없는듯 했고, 그도 당장은 더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


" 아무튼 대충 사정은 알았소. 그래서 저 비루한 친구가 [선배님]이라고 부른 것이군. 그나저나, 이 아래가 바로 그 일리시드 도시란 말인가? "/슈발츠


"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 전체가 그래요. 그리고 지금 우리 앞을 막고 있는 이 봉인이 바로 그중에서도 가장 최심부, 엘더 브레인의 풀로 가는 입구지요. "/타브라


" 봉인은 누가 설치한 거요? "/슈발츠


" 내가 도망친 후에 이 도시를 찾은 다른 일리시드들이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타브라


" 아이올라움과 엘훈들의 시체를 여기 내버려 둔 채 말인가? 마법에 걸신들려 있는 그들답지는 않군. "/슈발츠


" 그들에게 있어서도 이곳은 [두려운]장소일 테니까... "/타브라


타브라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마법사와 엘훈들의 전투의 [잔존물]이라면 아마도 위대한 마법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통로를 가로막은 문에 새겨진 16행의 퀄리스는 그것이 일리시드들조차 감당하기 힘든 무엇인가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당장 뚫고 들어가면 아마도 비밀 유지를 위해 무언가 조취를 취해야 하겠지. 그게 오히려 더 많은 밑천을 드러내게 되는 일일지도 몰랐다.


" 그나저나, 헬베티아는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거요? "/슈발츠


" 그...그게... 저도 사연이 좀 복잡해요. "/헬베티아


그렇게 마법 탐구에 걸신들려 하다가 혼이 난 후에도, 그녀의 마법 탐구에 대한 열정은 거의 식지 않았다. 고대 네서릴의 비전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던 그녀는 셰이드로 가장하고 공중 도시에 잠입했다가 들켰다. 그러나 그녀의 [명석함]을  알아본 하드룬이 자신의 일에 협조할 것을 조건으로 그녀를 풀어주어서 당분간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그만 샤도바의 요원들에게 잡혀온 타브라와 만나게 되었다. 타브라의 설득을 듣고 그제사 자신이 연구하던 문헌(고대 아이올라움의 연구물)들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그녀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던 문헌들을 파기하고 타브라와 함께 도망치려다 잡힌 것이다. 원래라면 자기 모가지가 날아가도 눈하나 깜짝 않을 타브라였지만, 그녀의 목숨이 날아가지 않기 위해 이곳의 소재를 실토했던 것이다.


" 그놈의 호기심은 여전하군. "/슈발츠


" 아... 하하하... 뭐 그렇지요. "/헬베티아


헬베티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슈발츠는 잠시 고민했다. 내려갈 것인가, 되돌아갈 것인가.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수고를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아이올라움의 유산같은 것들을 찾아서 파기할 목적에서다. 그는 전진을 결정했다.


" 일단 뒤는 막혔으니, 앞으로 가긴 가야겠지. 이영차!.. "


카카강!!...


슈발츠는 일부러 레보스가 들고 있던 검은 기운이 풍겨나오는 양손검을 들고 문을 내리쳐 보았지만 불꽃만 성대하게 튀겨올랐을 뿐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 제가 열 수 있어요. "/헬베티아


" 음, 할 수 있겠소? "/슈발츠


" 이건 일리시드 문자에 암호가 걸린 타입이라서, 아마도 읽어 내기만 하면 문이 열릴 거에요. "/헬베티아


그것을 파악한 헬베티아도 허투루 마법 탐구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현존하던 세계 제일의 마법사 중 하나의 제자이기도 했고). 그녀가 앞에 나서서 일리시드 문자를 읽어 내리는 동안,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의 감시 하에 놓인 포로들의 시선도 그녀 쪽으로 쏠렸다.


슈르릉...


헬베티아가 문에 부조된 퀼리스의 해석을 끝마치자 마자, 그 금속제 문이 한가운데서부터 잘려서 양쪽으로 열렸다. 그리고 일리시드 거주지 특유의, 짜고 습한 내음이 함유된 오래된 공기가 문 너머로부터 흘러나왔다.


" 저건... 공명석이군. "


문득 부자연스러운 두려움과 역겨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슈발츠는 그 [감정]의 근원을 찾아냈다. 입구 근처의 벽과 천정을 장식한 빛나는 보석은 일리시드들의 세공품인 공명석으로, 그들에게 부족한 감정을 채워주는 일종의 마법 장치였다. 슈발츠는 이미 언더다크 모험 시절 일리시드들의 공명석을 본적이 있어, 쉽게 알아보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두르나도 공명석을 알아보았다.


" 제법 크군. "/슈발츠


" 아마도 경고의 의미로 장치해 둔 것이겠지만... "/타브라


막 공명석이 설치된 주변까지 온 타브라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슈발츠는 두르나와 알루데시아를 포로들 감시역으로 남겨둔 후, 타브라와 헬베티아(그녀들은 자진해서 따라오려고 했다)를 데리고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무엇이 있는지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물론 출구가 있을지의 여부도 탐색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보다는 대체 안에 뭐가 있을지가 더 궁금했다.


그 지하 미로의 벽과 천정에는 마인드플레이어의 정착지임을 알리는 퀼리스 무늬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것은 보통의 4줄 짜리였다. 하지만 계속 깊이 들어갔음에도 이렇다 할 방어도 없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일리시드들의 바싹 마른 뼈만 드문드문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이미 오래 전에 기능을 멈춘 죽음의 도시였던 것이다.


지하 통로 자체도 무척 읍습했지만, 슈발츠는 그 내부로 걸어들어가면서 점점 더 [읍습]한 기분 자체에 젖어들어가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것이, (아마도 방어를 위한) 일종의 정신에 대한 간섭 작용이라는 것을 파악한 그는 속임수로 [표면]의 정신과 [진짜]정신을 분리했다. [표면의 정신]이 계속 보통의 다른 정신처럼 그 간섭의 영향을 받는 동안, 그의 [진짜 정신]은 이 방어 장치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파악과,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방어자]의 출현에 대비한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벽과 천정에 새겨진 일리시드 부조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던 헬베티아의 정신이 [음습함]에 지나치게 침윤되었다.


" 아아...이젠 안돼...절망 뿐이야..."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된 헬베티아가 꿇어앉아서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을 때, 슈발츠는 타브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이 이상한 공간이 주는 이상한 영향에 충분히 침식 된 듯, 헬베티아의 신세한탄에도 아랑곳없이 통로를 따라 걷고 있기만 했다. 슈발츠가 시험삼아 한쪽 무릎을 꿇고 주자앉자, 그녀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살아계셨군요.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아아... "


한동안 번민하듯이 슈발츠와 헬베티아를 번갈아 보던 타브라는, 결국 손에 들고 있던 검은 지팡이(하드룬에게서 빼앗은)을 들고 슈발츠를 겨누었다. 슈발츠는 자신을 향한 지팡이의 끝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 어서 쏘라고. 죽여, 차라리 죽는것이 나아... "


절망에 빠진 연기를 하면서 슈발츠는 완전히 양반다리를 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때 마주친 시선을 통해, 슈발츠는 타브라가 이 장소의 이상한 기운에 침식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완전히 제정신인 눈이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아마도 일리시드의 정신 능력이겠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 속삭이고 행동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 안돼, 이럴 수 없어!... "


타브라는 손에 든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훌륭한 정신력이라고 생각하며 슈발츠는 이제 그녀를 사주하던 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헬베티아가 일어나서 그 지팡이를 들었다. 한눈에 슈발츠는 그녀가 무엇인가에 홀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나부터 죽여줘! "


헬베티아가 타브라를 겨누는 것을, 슈발츠가 일부러 그 지팡이를 붙잡아 비틀었다. 그의 힘과 그녀의 힘은 비교가 안된다. 헬베티아의 손에 들려 있던 지팡이는 지극히 간단히 슈발츠의 손으로 넘어 왔다.


" 아윽!... "


뒤로 밀려나며 엉덩방아를 찧는 헬베티아.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슈발츠의 마음으로도 무엇인가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지팡이로 두명의 여자를 죽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첫번째 타겟은 타브라였다.


에에잇!...


슈발츠가 지팡이를 들어 타브라를 겨누는 동안, 슈발츠의 마음의 표면으로 들어오는 하나의 미약한 메세지가 있었다. 그것은 방금까지의 텔레파시와 성질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메세지를 함유하고 있었다.


" 으음... 음... 크아악!... "


슈발츠가 지팡이를 들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연기를 펼치는 동안, 그의 마음의 [표면]에서는 두가지 메세지가 서로에 대항해 울리기 시작했다. [타브라를 죽여라]는 메세지와 [좀 더 안으로 들어와서 엘더 브레인을 파괴하라]는 메세지. 슈발츠는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알기 위해 고뇌하는척 하면서 통로를 내달렸다. 엘더 브레인이 어디잇는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굳이 미로같은 지하 통로를 헤멜 필요가 없었다. 슈발츠에게 엘더 브레인을 죽이라는 메세지를 보낸 측의 텔레파시가, 엘더 브레인까지 오는 길을 정확히 알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여자들을 죽이라]는 메세지는 [멈추라]는 메세지로 바뀌었다. 그리고 슈발츠가 말을 듣지 않자, 표면의 정신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한 텔레파시를 보내 왔다.


슈발츠가 짐짓 고통을 느끼는 척 그자리에 주저앉으니, 다시 여자들을 죽이라는 메세지가 반복되었다. 이제 다른 메세지를 압도할 정도로 강력한 텔레파시였다. 슈발츠는 엘더 브레인을 파괴하라는 메세지가 지목하는 엘더 브레인의 위치가 몹시 가까움을 간파했다. 그리고 이제 주변엔 여자들이 없었다.


" 이제 연기는 그만해도 되겠군. "


슈발츠가 훌훌 털고 일어나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뼈로 이뤄진 골렘 두마리가 나타나 통로를 가로막아 왔다 그리고 벽 자체가 강력하기 그지없는 파괴적인 텔레파시를 울려내기 시작했다.


아마 슈발츠가 아니라 일반적인 다른 전설적인 모험자 였다면, 이쯤에서 죽었을 것이다. 텔레파시에 포함된 의지가 물리법칙에조차 영향을 끼칠 정도(벽의 벽감이 뜯어질 만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발츠는 이미 신적인 존재와도 맞싸우며, 지상에 출현한 마왕이 [풍겨 내는]의지도 무시할 수 있는 존재다. 정신적인 면에서, 그는 이미 누군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경지 정도는 아득하게 넘어서 있었다. 그는 검은 빛의 칼을 꺼내어 막 달려드는 골렘을 두조각으로 만든후, 무너지는 뼈들을 걷어 차고 벅을 문 모양으로 잘라내었다.


[멈춰라!...]


벽을 잘라내고 안으로 뛰어들었을 때, 머릿속으로 이제 이미지가 아니라 [분명하게 말이 되는 형태의] 텔레파시가 들어왔다.


" 만약 그러기 싫다면? "


검은 칼을 여전히 꺼내 든 채로, 슈발츠의 이글거리는 시선은 앞을 보고 있었다. 거기엔 하나의 거대한 원통형 유리 수조와, 그 안을 거의 채운 채로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거대한 뇌 덩어리가 있었다. 일리시드들의 삶의 중심이자 목적인, 지식과 텔레파시의 존재, 엘더 브레인이었다.


" ... "


슈발츠는 약간의 꼼수를 썼다. 자신의 정신을 다시 [검사]하려고 드는 엘더 브레인의 텔레파시에 편승해, 자신 쪽에서 엘더 브레인의 정신의 표면을 훝었기 때문이다. 노예가 아닌 존재에게 능동적으로 텔레파시는 보내는 능력은 없지만, 들어오는 텔레파시의 파장을 타고 상대를 [감지할]수는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재주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슈발츠는 눈앞에 있는 엘더 브레인이 [누구인지]알 수 있었다.


" 죽었다고 들었는데, 멀쩡히 잘 살아계셨구려. 아이올라움 옹... "


그제사 슈발츠는 타브라가 가장 먼저 텔레파시의 타겟이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자이기 때문에 스승에게 거역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왜 다짜고자 죽이려 했는지 그 이유도 짐작이 갔다.


지금은 어쩐 일인지 엘더 브레인이 되어 있지만, 아이올라움의 본업은 마법사다. 엘더 브레인 고유의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 뿐 아니라 마법 역시도 신적인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브가 멀쩡했을때는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위브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침입자의 의도도 모르고, 하물며 자신의 옛 제자와 함께 들어온 것이다. 자신의 정체와 본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잠시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텔레파시가 울려 왔다.


[너는 누구냐?...]


" 슈발츠라고 하오. 원래는 장사꾼이었지만 지금은 실업자지... 그리고 혹시나 궁금하실까봐 해명하자면, 아르바이트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요. "


급여가 시급도 아니고 선불로 과외를 받은 것인데다, 알바를 시킨게 바하무트라는건 비밀이었다.


" 듣자니 분명히 네서릴 인(人) 이었다던데, 대체 어떻게 이 상태가 된 것인지 궁금하구려. "


아이올라움은 침묵했지만, 대신 슈발츠의 정신으로 또 다른 텔레파시가 전해져 왔다. 그것은 아이올라움의 텔레파시 중간에 방해하며 끼어들었던 것이었다. 그 희미하기 그지없는 텔레파시의 내용을 [듣는] 즉시 아이올라움의 방해가 시작되었지만, 슈발츠의 [안테나]의 성능은 그 방해를 초월할 정도로 좋았다.


텔레파시의 내용은 한 일리시드의 생전의 기억이었다. 놀랍게도 그 일리시드는 아이올라움에게서 위저드학을 배웠고, 자신들을 자칭해 [엘훈]이라 불렀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모든 일리시드 리치들을 엘훈으로 부르는데, 이 첫 엘훈들이 바로 그들의 시조였던 것이다.


원래 일리시드들이 사악하고 싸가지가 없는 종족이긴 하지만, 이 엘훈들(모두 열두명의 엘훈이 있었다)은 염치를 알았다. 자신들에게 위저드학을 가르치고 리치가 되는 길을 열어준 댓가로, 이 엘훈들은 아이올라움이 주도하는 하나의 거대한 마법적인 실험에 협조하기로 한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함정이었다. 그 의식은 열두 엘훈들에게서 마법적으로 뇌를 추출하며 가짜 [엘더 브레인]을 만드는 주문이었다. 의식이 시작된 직후 그것을 깨달은 엘훈들은 저항했지만, 아홉이 의식에 삼켜지고 셋만 살아 도망칠 수 있었다. (타브라가 본 [스승과 열두 엘훈과의 주문 전투]는 이것이었다) 그리고 아이올라움의 영혼과 엘더 브레인이 합쳐지며 의식이 끝났고, 엘더 브레인에 합쳐진 엘훈들의 의지가 아이올라움의 의지에 짓눌리기 시작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 텔레파시는 끝이 났다.


[세상의 마법을 발전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네. 게다가 일리시드들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생물이야.]


변명하는 텔레파시가 들려왔다. 슈발츠는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 일리시드들이 사악한건 나도 알지만, 그 사악한 놈들의 뒤통수를 친게 정의 어쩌구는 더더군다나 아니구려. 게다가 듣자니, 당신 자신도 페아림들의 공격에서 네서릴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그 후로 페아림들을 물리치기위해서 어떤 노력을 한 것 같지도 않고... "


[그것은 날 이곳에 봉인한 일리시드들 탓... ]


" 여기 봉인이래봐야 끽해야 몆백년 짜리인데, 당신네 나라가 망한건 이천년 전이잖소. 게다가 네서릴 시대의 마법이 다시 이 세계에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게 내 알바요. 미안하지만 이만 세상에 미련을 끓고 가셔야 겠어. "


[안돼!!!]


강력한 거부의 텔레파시가 다시 울려 나왔지만, 엘훈들의 미세한 텔레파시가 다시 슈발츠의 [안테나]에 잡혔다. 그들은 이 상태-즉 진짜 엘더 브레인이 아닌 가짜 엘더 브레인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하고 있는-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은 슈발츠의 다음 행동을 감사히 기다리고 있었다.


[날 죽이면 저것들도 죽는다!...]


뒤를 돌아보니 타브라와 헬베티아가 서 있었다. 그녀들은 이제 완전히 눈이 풀린 채로,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단검들을 들고 스스로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 거참, 마지막 가는 길까지 꼭 그래야 되겠소이까? "/슈발츠


[네놈이야말로 그만둬야 할것이다!... 내 죽음은 세계의 손실이야!... 너는 지금 고대로부터의 가장 훌륭한 지성 중 하나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다!]


슈발츠는 더 듣지 않고 손으로부터 빛의 칼을 꺼내어 수조를 향해 찔러넣었다. 그 전광석화 같은 쾌속함은 아이올라움의 허를 찌르기에 충분했다.


[!!!!]


챙그랑!!


수조가 깨지고, 터져 나오는 소금물 사이를 가른 슈발츠의 검은 칼이 엘더 브레인의 가장 중심부에 파고들었다. 그곳을 중심으로 강렬한 텔레파시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 후,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검게 변색된 엘더 브레인이 물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잃고 [썩어 가기]시작하더니, 마침내 소금물 안으로 완전히 녹아 내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소금물도 깨진 유리 수조 사이로 흘러나와 바닥으로 퍼져 나갔다.


수천년을 살아 남은 네서릴의 위대한 마법사의, 지극히 허무한 죽음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상대가 슈발츠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나오는 길에 눈과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던 헬베티아와 타브라를 회수한 슈발츠는 그대로 그 유적을 벗어났다.


" 출구는 없더구만. "


양쪽 옆구리에 여자들을 끼고 유적을 나온 슈발츠는 셰이드 포로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무너진 돌더미를 걷어 찼다.


퍼엉!!!... 와르르르...


얼마나 강력한 발차기였던지, 돌이 섞인 흙더미가 발차기에 맞고 폭발하듯이 튕겨 날아갔다. 그리고 약간 다시 무너진 것을 대충 발로 치우는 슈발츠를 보며, 셰이드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을, 슈발츠가 머쓱하게 웃어 넘겼다.


" 별로 많이 무너지진 않은거 같드라고. 예감이 맞았군. "


포로들을 끌고 다시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몆시간 후였다. 슈발츠는 장비는 압수했지만, 포로들은 살려서 풀어주기로 했다.


" 다시 와 봐도 상관없지만, 이제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게야. 내가 다 두들겨 부쉈거든. "/슈발츠


" 오늘의 치욕은... "/하드룬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지하로부터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슈발츠가 두르나를 시켜, 노움 화약으로 통로들을 파괴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 아, 그리고 이젠 들어가기도 좀 힘들게 되었군. "/슈발츠


" 으으으으... "/하드룬


마지막으로, 슈발츠는 레보쓰의 양손검을 모래 위에 박아 세웠다.


" 좋은 칼이니 잃어버리면 아깝겠지. 그럼 이만, 되도록 다시는 서로 안보는것이 좋을게야. "


인사를 마친 직후, 슈발츠와 그의 노예들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아이올라움옹, 지못미.


이로써 인간으로써는, 그리고 마법사로써는 가장 높은 경지까지 몰라갔던 필멸자 한분이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솔까말 대격변이 아니면 이분, 죽일수가 없어요. 엘민스터가 어지간한 소신격을 찜쪄먹을 수준이라면, 이양반은 엘민스터를 셋트로 가지고 놀 수준이거든요. -_-;... 마법만 사용할 수 있다면 슈발츠랑 맞다이 떠도 꿀리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십니다.


위저드 31에 아크메이지 5에 네서릴 아카니스트 5면 41레벨. 신격의 에센스를 강제로 스틸하는데 성공했던 카서스(아마도 37이던가)보다 렙이 높아요. 거기에 엘더 브레인에 빙의한 상태니 추가로 HD가 붙지요... 같은 네서릴 시대의 마법사로 [워록 킹]이라고 불리는 살아있는 넘사벽 랄록도 끽해야 30대 초중반... 하긴 아이올라움옹이 영웅대접 받았을때 랄록은 이름없는 떨거지 마법사에 지나지 않았지요.


HD로도 슈발츠보다 높고, 엘더 브레인의 각종 염력 능력을 감안하면 사실상 언터쳐블이죠. 게다가 소설상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이분은 몆마리의 드라코리치를 [지배]해서 부리십니다... 봉인된 상태에서도 이분이 머무는 도시가 유령의 도시로 남은건, 그 드라코리치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대격변으로 드라코리치들도 풀려나거나 매몰되고, 아이올라움 옹 자신은 염력 이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반 병신 상태로, 멀쩡한 상태로도 맞다이 뜨면 똥줄이 타야할 수준의 슈발츠랑 맞닥뜨렸으니...


다시한번, 지못미 아이올라움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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