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환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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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저 사람의 실력인지 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성공은 했군요.”
“앞으로 저 친구가 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믿음이 가실 겁니다. 설사 운이라고 해도 그게 계속 되면 실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일단은 계속해서 지켜보도록 하죠. 자, 전 부대원 이동준비!”
도미노는 뒤를 돌아보며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뒤쪽의 병사들 사이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악, 이게 뭐야?”
“습격이다! 적의 기습이다!”
순간 세자르들은 반사적으로 전투태세를 잡으며,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뭔가 이상한 물체들이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커다란 수박만한 크기의 푸른빛 반투명한 젤리같은 그 물체들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공중에 둥둥 뜬 채로 천천히 병사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익!”
“이런 젠장!”
“사람 살려!”
어느새 부대 가까이에 접근한 그 물체들을 향해 제일 가까이에 서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들은 봄철 흩날리는 꽃가루 마냥 바람을 타며 유유히 칼날을 피하거나, 칼끝에 걸리더라도 마치 물을 베는 것같이 투명한 몸통을 통과해 그대로 칼을 흘려보냈기에 병사들의 맹렬한 공격은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 모습에 도미노가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방어태세로! 그것들에게서 떨어져 진영을 갖춰라!”
적의 습격에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던 병사들은 도미노의 명령에 곧 정신을 차리고 뒤로 후퇴해 방패를 내세우고는 방어진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진영을 갖추기도 전에 그 물체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가장 외곽에 있어 미쳐 진영에 합류하지 못한 몇몇 병사들 위로 접근한 물체들은 순식간에 아래로 달려들어 병사들의 몸을 감쌌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마치 커다란 젤리 안에 갇힌 듯한 모습으로 그것들 안에서 꼼짝 못하고 허우적거리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온 몸의 수분이 빨려나가는 것처럼 삐쩍 말라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미라처럼 뼈와 가죽밖에 안남은 병사들을 밖으로 내뱉은 그 물체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다른 병사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건 대체 뭐지? 왜 공격이 안 먹히는 거야?”
“슬라임처럼 보이는데요.”
“너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냐? 저렇게 공중에 떠다니는 슬라임이 어디 있어?”
“아아, 우리가 지금 마법사의 본거지에 있다는 것을 잊으셨군요. 저것도 분명히 마법으로 강화된 형태일 거예요. 하지만 봐요. 게걸스럽게 먹이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습성도 그렇고, 저놈의 특유의 액체 같은 몸뚱이 때문에 물리적인 공격이 전혀 안 먹히잖아요.”
루이의 말대로 떠다니는 슬라임들은 처음과 비교해서 수분을 흡수한 후 엄청나게 부피를 늘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건장한 남자만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 그 모습에 더해 자신들의 공격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것에 그것들을 상대하는 병사들은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슬라임이라면, 대응하는 방법은 뻔 하겠죠. 자, 모두 화공이다! 횃불과 불화살로 공격해라!”
도미노 명령에 병사들은 무기를 거두고 슬라임들을 향해 횃불을 치켜들었다. 과연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슬금슬금 병사들에게 접근하던 슬라임들은 열기를 느끼자마자 서둘러 움직이던 방향을 바꾸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기세를 올려 슬라임들에게 적극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도미노는 오랜만에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면서 세자르와 루이를 돌아봤다.
“슬라임이 불에 약하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죠.”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저건 일반적인 슬라임이 아니니까요.”
“루이씨. 이번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군요. 지금 우리 병사들이 충분히 상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정도의 기습이라니 좀 실망스러운데요. 어제처럼 뭔가 어마어마한 함정이 준비된 줄 알았는데.......”
그러나 도미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황은 뒤바뀌고 있었다. 병사들이 휘두른 횃불에 제대로 맞은 슬라임들은 그 열기와 타격에 피해를 입을 거라는 예상을 비웃는 것처럼 오히려 맞을 때마다 분열을 하듯이 여러 작은 조각으로 쪼개질 뿐이었다.
순식간에 일행을 압도할 만큼 개체수가 늘어난 슬라임들은 또다시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아까 전 보다 더 맹렬한 기세로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머리 위를 뒤덮을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슬라임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자, 공포와 겁에 질린 병사들은 제대로 된 대처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순간에 진영이 무너지면서 병사들은 늑대를 피해 도망 다니는 양떼들 마냥 그저 횃불과 방패를 휘두르며 슬라임들을 피해 어리저리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도미노와 부장들은 곳곳에서 고함을 지르면서 그런 병사들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한번 무너진 진영은 쉽사리 회복되어지지 않았다. 대장들의 명령들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방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 때였다.
“파이어 버드(Fie Bid)!”
갑자기 굉음과 함께 공중으로 커다란 새 모양의 화염이 날아오르더니 슬라임들을 덮쳤다. 그리고 공중을 절단하듯이 그 불새가 광장을 한바탕 가로지르고 나자, 그것이 스쳐간 공간에선 불길에 바싹하게 구워진 슬라임들이 우수수 병사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바보같이 뭣들 하는 거야? 이 정도에 정신을 못 차리다니, 니네들 친위대 맞아?”
한 손으로 불새를 조종하며 날리는 아이린이 어이없다는 듯이 날리는 말은 질타가 아닌 냉소에 가까웠다. 하지만 감히 그녀의 말에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병사들이 평생 보지도 못한 강력한 마법으로 그 공간을 지배하는 아이린의 모습은 그만큼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내 마력을 소모해야 겠냐’며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아이린이 머리 위로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 곳에 떠있던 슬라임들이 빗자루에 쓸리듯 깨끗이 정리되어 갔다. 그렇게 아이린이 슬라임들을 청소하고 있는 사이, 도미노와 부장들은 부대를 재정비 할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수세에 몰린 슬라임들이 갑자기 하나로 뭉치며 덩치를 키우더니 불새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 공중에서 불새와 슬라임이 충돌하자, 두 물체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소멸되어 버렸다.
“어머나, 사라져버렸네. 이것들 의외로 머리 좀 굴리는데. 하하하.”
슬라임들의 갑작스러운 반격에 자신의 마법이 막혀 버리자, 아이린은 멋쩍은 듯이 웃었다. 하지만, 아이린 덕에 자신들에게 끈덕지게 달라붙던 슬라임들이 일거에 처리되었다는 것에 병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방금 전의 폭발이 신호였던 것처럼 병사들 주위의 분수들 안 고인 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또 다른 슬라임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아까 전의 몇 배나 되 보이는 슬라임들이 공중을 뒤덮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머리 위 호수 천장이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광경에 일행은 모두 말문이 막힐 뿐이었다. 방금 전 슬리임들을 상대로 가볍게 마법쇼를 펼쳐보였던 아이린도 이번엔 좀 황당한 눈치였다.
“이, 이번 건 좀 힘들겠는데....... 이자벨라, 무슨 수를 내야 될 것 같아.”
주변사람들이 그렇게 당황하는 중에도 과연 얼음마녀 이자벨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도미노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군, 이동태세로. 굳이 저것들과 싸울 필요는 없다. 방패로 위쪽을 방어하면서 신속하게 이곳을 벗어나도록.”
“옛! 모두 즉시 이곳을 빠져나간다! 전군 이동! 출구 쪽으로 달려라!”
도미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슬라임들의 공격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명령만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은 일제히 머리위로 방패를 치켜들고는 장대비가 쏟아지듯이 끝도 없이 떨어져 내리는 슬라임들의 공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루이가 찾은 출구를 향해 죽어라 뛰어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다들 평생 그보다 더 빨리 뛰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섭게 달린 덕분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출구 쪽으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게다가 다행히도 병사들의 피해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비록 슬라임들의 공격은 거셌지만, 행동반경이 광장 안까지가 한계였던지 출구 안까지는 ㅤㅉㅗㅈ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다시 한 번 살아남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지만, 한편으론 앞으로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 반 근신 반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