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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鬼椿 오니츠바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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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348 회 작성일 24-01-18 04: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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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마노...군. 아..마..노..군... 안 들려?!"
"에.. 아, 죄송합니다. 어.. 저분자화합물의.. 어.. 결합은"
"틀렸어, 정신차려요. 당신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분야잖아. 그렇게 집중을 못 해서 어떻게 해"
노트 위로 볼펜을 꽉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있는 아마노에게 마리에가 매섭게 질책했다. 곤란한 표정으로 다시 앞을 보고 정면의 소파에 앉은 공동 연구자에게 "젊은 아이라 어쩔 수 없네요" 라고 평소의 귀여운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잠시도 유카의 옆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혼자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발견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대규모 연구였다. "카즈야의 꿈인데, 연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라며 염려하는 유카에게 억지로 떠밀려, 어제 류지의 아파트를 나와 그 길로 마리에의 출장에 뒤늦게 합류했다. 교토, 오사카, 나라, 3개 현에 걸친 광대한 연구도시 일각에서 연초부터 본격화될 프로젝트의 면밀한 협의. 심야까지 수작업으로 자료작성, 아침부터 쉬지않고 계속되는 회의, 하지만 아마노는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무엇을 하고 있어도 머리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멀리 떨어져있는 연인에 대한 생각뿐. 시간이 날 때마다 유카에게 짧은 메일을 보내고 그 답신을 받으며 간신히 조금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헌신적인, 아마노다운 상냥함이었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상처입었을거야, 그렇게 연인의 몸과 마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 세세한 사항은 메일로 나누는 걸로 하죠"
저녁이 다 되서야 간신히 마라톤회의가 끝나 갇혀있던 응접실을 나서면, 마리에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새로 지은 시설의 복도를 시원스러운 발걸음으로 지나 엘리베이터 홀 옆의 자판기에서 캔커피 2개를 뽑아들고 그대로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마노는 심부름꾼같은 모습으로 마리에의 가방을 들고 뒤를 따른다.
"수고했어요"
인기척이 없는 잔디밭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길다란 그림자가 잔디밭에 드리운다. 저녁시간이 되자 점점 더 쌀쌀해진다. 마리에가 캔커피를 아마노 앞에 내밀었다.
"아, 죄송합니다"
"역시, 좀 지쳐버렸나 보네"
찰랑거리는 흑발이 석양에 빛난다. 마리에가 양손을 크게 위로 들며 기지개를 켰다. 캔커피를 받아 든 아마노의 눈에 소녀의 청순함이 남아있는 얼굴과 투명한 눈동자가 들어왔다.
"오늘은 죄송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아마노에게 리에가 "괜찮아... 너무 무리하지 마요" 라고 짧게 대답했다. 어제밤, 약속장소였던 신오사카역 근처 호텔의 로비에서 얼굴이 온통 부어오르고 피멍에 반창고 투성이였던 아마노를 보고, 마리에는 아주 살짝 놀란 표정을 짓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마노 입장에선 추궁당해도 대답할 방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묻지 않은 것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네요"
마리에는 언제나 필요이상으로 발을 디디거나 하지 않는다. 무심코 아마노가 먼저 그 화제를 꺼냈다.
"얼굴 상처?"
"...그렇습니다"
"내가 들어줬으면 해?"
김이 솟아오르는 캔커피를, 손을 녹이려는 듯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감싸쥔 마리에가 온화한 표정으로 가만히, 멀리 보이는 불그스름한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그런건..."
훗, 살짝 웃으며 "아마노군은 강하네" 그렇게 말하면서 아마노를 바라보고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강해요? 내가? 그런... 그렇지 않아요"
자조하듯 말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연인이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전혀 깨닫지 못했다... 연인을 도울 수 없었다... 축 쳐진 어깨 위로 마리에가 살며시 조그만 손을 올렸다.
"도망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다친거잖아? 그렇게 자신을 무시하면, 안 되요"
그렇지 않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내가 좀 더 확실히 하고 있었으면, 유카를... 아마노는 크게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했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맞장구칠 말 하나조차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이 뒤틀리듯 심하게 아프다.
"...혼자 다 떠안으려고 하지 마"
아마노의 쳐진 어깨를 천천히 끌어 안았다. 마리에가 제자를 가슴으로 품어 안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생님... 나..."
아마노는 마리에의 손길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달콤한 향기에 휩싸인다. 마리에의 손가락이 아마노의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아마노군, 알고 있어?"
평소 연구실에서 보이는 늠름한 모습에서 돌변해 마리에가 소중한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약간은 아이처럼 애교섞인 말투로 얘기했다.
"아마노군은 혼자가 아니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는걸"
잠깐 사이를 뒀다가 옅게 루즈를 바른 입술을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 많이... 걱정하고 있어... 그러니까, 혼자 다 떠안지 마... 지금 당장, 말해주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괴로워서 혼자 견딜 수 없게 되면... 망설이지 말고 나한테 와요... 반드시... 당신한테 힘이 될거라고 생각해... 알았죠?"
안겨있으면서,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릴 적에 항상 따뜻하게 안아주셨던 상냥한 어머니... "카즈야의 웃는 얼굴이 너무 좋아. 그러니까, 자, 웃어보렴" 그렇게 말해주시던 상냥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기를 친가족처럼 걱정해주는 마리에의 따스함을 처음 접하고 아마노는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간신히 참았다.



"유카를 건 게임이라니, 그런 웃기지도 않는 얘기, 난 절대로 인정 못 해. 더 이상 유카를 힘들게 하는 일 없어"
"하,하지만, 그러면, 그 사람, 카즈야에게 무슨 비열한 짓 할지 몰라..."
아무 대답없이 류지의 아파트를 도망치듯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마노와 유카는 터미널역 근처의 조그만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유카는 끊임없이 아마노의 찢어진 입술이나 부은 눈 위에 대고 누르고 있던 티슈를 바꾸고 있었다. 간신히 피가 멈추고, 계속 말이 없던 아마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 일은 걱정하지 마... 그보다 유카, 정말... 미안했어.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해서, 해주지 못해서..."
"아냐 아냐, 내가 나빴어, 내가 잘못했어..."
"그렇지않아. 유카는 아무것도 잘못한 거 없어"
"...카즈야, 아냐"
"어쨌든, 이건 나하고 그녀석 문제야. 유카하곤 관계없어. ...자, 집에 가자"
그렇게 말하며 아마노가 일어섰다.
"카즈야, 오늘부터 타카쿠라선생님하고 출장이라고... 중요한 회의가 있다고..."
"괜찮아, 연구는. 지금은 유카 곁에 있고 싶어"
"카즈야... 고마워"
그러나 유카는 바로, "하지만, 안돼, 지금이라도 가야 돼" 라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잖아, 지금까지 열심히 연구에 몰두해 왔는데, 내 탓으로... 더 이상, 카즈야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제발, 가줘.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을 돕는 게 꿈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나, 카즈야가 열심히 노력하길 바라는 걸. 열심히 노력하는 카즈야를 응원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유카가..."
"나 때문이라면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걸. 카즈야... 기뻤어. 카즈야, 이런 나를, 그렇게나 상냥하게 해주고, 감싸주고.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카즈야를 기다릴테니까. 괜찮아... 정말이야..."
그렇게 억지로 웃어보였다. 아마노의 눈에도 그게 진짜 웃는 얼굴이 아니라는 게 빤히 보였다. 유카 본래의 밝고 화려한 미소가 아니었다. 깊이 상처받고, 아파하면서도, 나를... 잠시동안 구름낀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던 아마노가 "알았어" 라고 대답했다.
"회의 끝나면 바로 돌아올께"
"응"
아마노가 내민 손을 잡고 유카도 일어섰다.
"그런데... 카즈야, 저기... 하나만, 가르쳐줬으면 해... 카즈야하고 그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제발... 그것만, 가르쳐줄래?"
보이지 않는 상처를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아마노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일 밤, 내 방에서 기다려 줘. ...그 때 전부 유카에게 말해줄께. 그녀석하고도 제대로 결말을 지을거고"
간신히 짜낸 것같은, 그런 인상을 주는 목소리였다.
"응, 기다릴께..."
두 사람의 어색한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오후 강의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부는 캠퍼스를 종종걸음으로 나섰다. 어제, "전부, 말해줄께", 그렇게 말할 때 아마노의 복잡한 표정이 계속 신경이 쓰여 어쩔 수가 없었다. 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거지?... 그리고, 모든 걸 말해준다고 한 카즈야에게, 나도 털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이 모든게, 내가 카즈야를 배신했기 때문인걸... 나에게, 이제와서 카즈야에게 사랑받을 자격따위 없어... 내가 류지군에게, 그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게 잘못인걸...
"미움받아버려도, 어쩔 수 없어..."
역의 승강장을 걸으면서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그래도, 제대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돼... 해가 기울어 석양이 고층빌딩의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지금 카즈야는 뭘 하고 있을까... 아직 회의중일까... 아님 벌써 도쿄로 돌아오는 중일까?... 아마노를 생각하면 할수록, 비록 미움받게 되더라도, 만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혼자 있는게 너무 괴로웠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유카는 아마노의 방으로 바로 가, 그이의 귀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카즈야, 저녁은 잘 챙겨먹으려나..."
메일로 물어 볼까?... 맨션의 엘리베이터에 올라 자신과 아마노의 집이 있는 층수의 버튼을 눌렀다. 집에서 뭔가 먹을 걸 만들어놓고 기다릴까? 이런 내가 만든 걸, 카즈야가 먹어줄까? 응, 카즈야라면 반드시... "맛있어"라면서 먹어 줄거야... 카즈야는 그런 사람이니까... 갑자기 그이의 상냥한 미소가 떠올라, 유카는 안에서 복받쳐올라오는 감정을 참기가 힘들었다.



"저... 타카쿠라선생님, 잠깐 괜찮을까요?"
머리를 목덜미 근처에서 한 가닥으로 묶어 내리고, 애용하는 안경을 쓰고 논문원고에 코를 박고 있던 마리에에게 뭔가 결심한듯 아마노가 말을 걸어 왔다.
"에에, 그래요. 뭔데?"
신칸센의 차내 방송이 곧 도쿄역에 도착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드물게 안경을 쓰고 있던 마리에가 부드러운 눈길로 아마노를 바라봤다.
"선생님은 그... 저기..."
"아마노군, 왜?"
"역시, 아니에요"
"사양하지 말고"
"그게, 그니까..."
마리에의 손가락이 열려있는 블라우스 가슴 위로 진주목걸이를 매만진다.
"뭔데?"
"바람, 피워본 적 있어요?"
"에에...!?"
느닷없는 엉뚱한 질문에 마리에가, 곧바로 "미안해요, 깜짝 놀라서" 라고 말하며 논문을 무릎 위로 덮었다. 물론, 타카쿠라와 결혼한 뒤로 바람을 피워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변함없는 미키와의 관계는, 굳이 그걸 바람기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서 일단 지금은 제껴두기로 했다.
"이상한 걸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마리에의 표정이 당혹스러워 보여 얼른 대화를 중단하려고 하는 아마노에게 "없어요" 라는 예상대로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 군요". 아마노가 "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었죠,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녀와 확실하게 이어져있으려면, 믿는 것 외에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그럼, 선생님의 남편은 선생님께 어떻게 하셨습니까?" 단숨에 이야기했다.
"믿는 것 외에 어떤 것을..."
스스로에게 묻듯 중얼거리며 바닥을 내려다 보는 아마노의 무릎에 감색 천의 타이트 스커트에서 쭉 뻗어나온 마리에의 무릎이 부딪혀왔다.
"선생님..."
"알고 싶어?"
"...네"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드는 아마노에게 마리에가 몸을 기울여 다가간다. 신칸센이 역에 들어서며 속도를 늦추자 차내의 웅성거림이 높아졌다.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내가, 받은 것을.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을"
마리에의 눈에서 청초한 분위기가 조금씩 사라지며 요염한 빛이 어른대기 시작하자, 아마노가 당황한다.
"좋아요, 가르쳐줄께. 이번에 집에 놀러와요. 말로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거니까"
이마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마리에가 말했다.



막 닫히려고 하는 문에 갑자기 단단한 팔이 끼어들었다. 엘리베이터를 덜커덩 흔들며 올라 탄 남자를 보고 유카의 눈이 놀라 커다래졌다.
"류,류지군!? 어,어째서..."
"말했잖아, 매일 선배를 안아준다고. 헤헤헤"
천박한 웃음을 지으며 류지가 손을 뻗어 재빨리 유카의 어깨를 만진다.
"싫어, 하지마, 가까이 오지 마!"
어째서, 이런 곳에서... 유카가 좁은 상자 안에서 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친다. 곧 카즈야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이럴 때... 내가 만나고 싶은 건 카즈야인데... 류지의 뱀과도 같은 강한 집념이 새삼 느껴졌다.
"싫어하는 척 해봐야 소용없어. 이제 슬슬 참을 수 없을 지경이지? 내가 아니면 만족할 수 없는 음란녀 주제에. 항상 나한테 안길 때만 생각나면 거기가 축축해지지? 질퍽질퍽 흘러넘치잖아? 선배 거기 진짜 음란해. 내 물건을 탐욕스럽게 꿀꺽 삼키고나서는, 한 두 번 가는 걸로는 떨어지질 않잖아"
아마노에게 유카와의 관계를 폭로한 결과, 유카를 건 복수의 게임을 성립시켰다고 멋대로 믿고 있는 류지에겐 이미 어떤 브레이크도 망설임도 없었다. 어떻게든 철저하게 유카의 육체를 능욕하고 마음을 유린해 아마노로부터 빼앗을 뿐. 그 바보녀석의 앞에서 이 여자를 넙죽 엎드리게 해 스스로 내 노예라고 맹세하게 만들어 주마...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석도 소중한 사람을 빼앗기는 괴로움을 당해야만 하니까... 그것만 이루어진다면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다.
"쓸쓸해 할까봐 일부러 만나주러 왔잖아. 기쁘지? 빨 수 있으니까. 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내 물건을 말이야"
류지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지독한 말을 쏟아내며 조금씩 유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웃기지 마. 장난 해? 두 번 다시는 당신따위한테.."
다부진 말과는 달리, 사냥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날카로운 류지의 눈빛에 유카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길게 찢어져 잔혹하게 내려다 보는 눈, 비뚤어진 입가, 위압적으로 크게 부풀린 어깨... 무,무서워, ...도와줘, 카즈야... 수도 없이 유린당해 미쳐날뛰었던 조교의 기억이 몸에 각인되어 있었다. 광기에 사로잡힌 류지의 모습에 마음 속 깊이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벌벌 떨었다. 팔로 자신을 껴안듯 가슴을 감싸안은 채, 엘리베이터 구석에 쳐박힌 유카가 숫자판을 올려다 보았다. 곧 문이 열릴거야... 그러면...
"뭐야? 앙큼떠는거야? 오늘도 실컷 기쁘게 해준다니까. 미쳐서 날뛸만큼 가게 해줄께"
전자음이 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유카가 류지의 옆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아,아파!"
류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포니테일을 움켜잡고는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잡아 당겼다.
"히익, 싫어!"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엘리베이터 벽에 내던져진 유카. 곧바로 류지가 단단히 팔 안에 가둬버린다.
"이제 게임은 시작된거야. 너는 잠자코 안기기만 하면 돼... 라는 이유로, 내가 선공이다, 선공. 내가 먼저 선배를 공격하는거야, 헤헤헤"
"시,싫어! 싫엇!"
발버둥쳐봐도, 벽과 류지사이에 단단히 갇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 류지의 커다란 손이 청바지 위로 유카의 조금 작은 편이지만 예쁘게 위로 올라붙은 엉덩이를 움켜쥐고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만둬, 떨어져, 떨어지라니까"
엘리베이터의 벽과 두꺼운 가슴 틈으로 간신히 빼낸 오른 손으로 류지의 옆구리를 때려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만해, 그만!"
류지가 목덜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일부러 침을 흘리고 혀로 핥는다. 무서움으로 소름이 돋아, 유카는 열심히 고개를 저어 피하려고 했다.
"그만해, 그만 안 하면 소리 지를거야, 도와줘요! 여기요! 누가 좀 도와줘요! 꺄악!"
류지가 유카의 뺨을 손아귀로 쥐고 주먹으로 벽을 내리찍었다. 묵직하게 흔들거리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천천히 닫혔다.
"난 말야, 잃을게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무서운게 없다구... 그러니까말야, 언제나처럼 순순히 굴라구, 선배. 안그럼 그녀석을... 난 그녀석을 차라리 죽여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그래도 괜찮아? 그럼 그만두고"
그저 협박만이 아닌, 진심이 담긴 서슬퍼런 목소리에, "그런... 싫어...", 중얼거리는 유카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거역같은 것,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좋아... 도와줘, 카즈야, 도와줘... 전해지지 않는 말을, 마음 속으로 반복한다. 이대로는, 나, 또... 어떤 비열한 짓을 당하는 걸까? 이제부터 또 어떤 음란한 행위를 강요당하는 걸까. 절정이 아닌, 절망의 예감에 사로잡혀 간다. 또, 카즈야를... 배신하고...
"어째서... 이런... 심한... 짓"
"그런 빌어먹을 새끼하고 만난 불운을, 그런 놈에게 반한 네 어리석음을 원망해"
이마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류지가 말했다.



"오늘은 지금부터 남편하고 데이트야"
기쁜 듯 말하는 마리에와 야에스 중앙 개찰구에서 헤어졌다.
빨리 유카와 만나고 싶다... 아마노의 머리속은 연인의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랑과 후회가 얽힌 복잡한 기분. 그저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던 유카를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다.
연인 실격이다...
지금까지 난 유카의 뭘 봐온거지? 유카에게 뭘 해온거지? 쭉 함께 있었으면서, 언제나 함께 있었으면서, 그렇게 가까이 있었으면서, 그래놓고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마리에의 따뜻함 덕에 아주 조금은 생기를 되찾았지만, 자책하는 마음의 무게에 짓눌려 부숴질 것같은 생각은 그대로였다.
빨리 집에 가서 유카의 곁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만큼, 유카를 지금까지 이상으로... 그리고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그녀석과의 관계를,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 다 털어 놓으면, 유카에게 미움받아 버릴지도 모른다. 어제는 결국 망설이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확실하게 사실을 말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저녁시간 러쉬아워의 끝자락인 승강장을 빠져나와 오렌지색 전철로 갈아탔다. 회의가 길어져 생각보다 귀가가 늦어졌다. 시계바늘이 벌써 9시를 지나고 있었다. 저녁에 유카로부터 "지금 카즈야 집으로 가" 라는 메일이 왔었다. 집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멍하니 연인을 생각하며 자리에 앉는 순간, 휴대폰이 메일착신을 알렸다. 좀 전에 "지금 막 도쿄역에 도착했어. 금방 갈거야" 라고 유카에게 보낸 메일의 답장일까?... 그러나 메일을 확인하고 아마노는 숨을 집어삼켰다.
본문 없이 첨부된 화상은 손가락으로 잡아당겨져 길게 늘어난 유두를 아래쪽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서 처참하게 짓눌린 젖꼭지, 새하얀 젖가슴도 복숭아색의 유륜도 한계까지 늘어나 한눈에도 고통스러워 보이는 사진. 뭐야? 이 사진은?... 작은 액정화면에 비춰진 그 쇼킹한 사진은 틀림없이 연인의 휴대폰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온몸에 핏기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현기증으로 시야가 어두컴컴해지는 듯한 느낌.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아마노를 옆 자리의 샐러리맨이 힐끗 쳐다보고는 "괜히 남의 일에 불필요하게 끼어들지 말자" 라는 듯이 석간신문을 펼친다.
"...서,설마"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는데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유카가, 그녀석에게... 설마, 그 남자에게... 또, 그런 짓을... 전차 안이라는 것도 잊고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유카의 휴대폰은 연결음도 울리지 않고 바로 자동응답으로 넘어가 버린다. 연인이 기다리고 있을 집 전화도 아무도 받지 않는다. 휴대폰을 쥔 손에, 이마에, 등에 식은 땀이 배어나왔다.
시나노마치를 지날 무렵,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이번엔, 굵은 새끼줄에 이중으로 묶인 발목이었다. 발가락이 힘들게 고통을 참고 있는 것처럼 잔뜩 오무려져 있었다. 말을 잃었다. 확신했다. 그 녀석이다... 그 남자다...
격렬한 분노가, 초조함이, 조바심이, 서로 엉망진창으로 뒤엉킨다. 빨리, 빨리, 어서 유카를... 신쥬쿠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선반에서 가방을 꺼내 안고 승강장으로 뛰쳐나갔다. 그 순간, 3번째 메일이 도착했다. 시커먼 자지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사진. 차마 볼 수가 없어 바로 삭제해 버렸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아까 보내온 사진 두 장도 지워버렸다. 그러나 그런 아마노를 비웃기라도 하듯 도착한 4번째의 사진은 자지를 집어넣은 입술과 홀쪽해진 뺨을 옆에서 비추고 있었다. 크윽, 유카...
"기사님, 서둘러 주세요"
마음이 급한 아마노의 신경을 건드리기라도 하듯이 메일의 간격이 점점 짧아졌다. 차창 밖으로 흐르는 경치가 마치 슬로모션처럼 보였다. 이런 사진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메일을 열 때마다 유카를 혼자 두고 온 자신의 짧은 생각과 어리숙함에 대한 자책이 밀려왔다.
5번째는 억센 손으로 누르고 있는 뒷머리. 붉은 리본이 보인다. 6번째는 입을 가리고 있는 손. 그리고 간신히 맨션에 도착했을 때, 크게 벌린 입술 사이로 정액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액정화면에 떠올랐다.
빌어먹을!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이 계단으로 뛰어오른다.
"유카!"
헐떡이며 뛰어들어온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은 켜져 있었지만 텅 비어있는 집. 침대 시트도 전혀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유카, 대체 어디에...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그래서 또 유카를... 후회와 조급한 마음, 그러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아마노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것처럼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메일이 아니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마자, "유카! 유카! 지금 어디야!? 어디 있어!?". 그러나 아마노의 절규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유카! 안 들려? 유카!"
몇 번을 불러봐도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희미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을 간신히 깨달았다.
츄르릅.. 쯉.. 츄웁.. 츄릅.. 츄우.. 쯉쯉...
"그래, 잔뜩 먹게 해줄께, 그렇지, 열심히 빨아"
류지의 목소리였다.
"그만! 그만 둬!"
쩌업.. 쩝.. 츄르릅... 아마노의 목소리는 전혀 닿지 않는다. 점점 습기찬 소리의 리듬이 빨라진다.
"으윽.. 유카, 똑바로 전부 다 삼켜.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그만! 그만 두라고!"
"우웁.. 그읍.. 하압.. 케에.. 켁.. 쿠욱.. 쿠,쿨럭..."
"쳇, 뭘 흘리는거야? 전부 다 삼키라고 했잖아!"
"쿠욱.. 쿨럭.. 쿨럭.. 켁... 흐윽..."
"또 벌이다. 오늘 이걸로 몇번째야. 선배, 사실은 벌 받는게 좋은 거 아냐?"
"...요,용서.. 용서.. 해.. 줘..."
"에엥? 뭐야? 강한 척 하는건 처음에만 그런거야? 어이, 좀 전의 허세는 다 어디 간거야?"
까불까불 떠들며 노는 어린애같은 유치한 류지의 목소리는 마음 속 깊이 즐거워 보인다. 그런 말 하나하나가 아마노의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 했다.
"미,미안해요... 이제, 이제 그만 용서해줘... 네? 더 이상, 반항하지 않을테니까... 뭐든지 시키는대로 다 할께요. 그러니까... 제,제발이요..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심한 짓, 하지마세요..."
유카의 어조에 이미 다부짐은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스러질 것 같은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고 있었다.
"심한 짓을, 해달라는 거겠지. 기쁘게 해달라는 거잖아. 혼자 남아서 쓸쓸해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대신해서 이렇게 기쁘게 해주는 거 아냐. 싫어하는 척만 했지 사실은 즐기는 거지?"
류지는 가볍게 대꾸하고는, "읏차~ 벌이다. 자, 간다... 최강으로 올려줄께... 스위치 온!". 그 말과 동시에, "하으윽! 하아아아아.. 아아아앙!", 유카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유카----!!!"
아무리 외쳐봐도, 한 마디도, 전화 저 편에는 닿지 않는다. 아마노의 말은 전화 저 편의 두 사람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오로지, 몰아세우는 류지의 즐거워하는 목소리와 유카의 목을 조이는 듯한 소리만 일방통행으로 들려올 뿐이었다.
"우와~! 선배 끝내주는데! 엄청나게 넘쳐나오고있어. 나한테 이렇게 희롱당하는걸 잊을 수가 없었구나. 역시 몸은 정직한거야. 그렇게 기분 좋아하고말야"
"몰라.. 아아.. 아앙... 더이상.. 하나도.. 하아앙.. 모르.. 하아.. 모르겠어... 하으윽!"
힘도 없고, 말도 나오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아마노는 부엌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들려오는 연인의 끔찍한 신음소리에 바닥을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갔다.
지금, 어디 있는거야?... "거,거기 말고, 아.. 아니, 아니". 다른 남자의 손에... "하아아앙.. 멈춰.. 그만.. 아아.. 그만---!". 무슨 생각으로... "대단해, 대단해... 아아앙... 네.. 좋아요.. 기분 좋아요!" 왜 이런 일을... "아아, 뜨거워.. 아앙.. 하아앙.. 뜨거워.. 하으윽.. 조,좋아.. 어서!". 내 탓으로... "망가져버려.. 미안해요.. 그만 용서해줘.. 망가져버려!".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류지군! 류지군! 가게 해줘.. 이,이대론.. 이대로는.. 류지군!". 유카...
"아아.. 조,좋아... 기분좋아.. 아아.. 아아앙... 좋아.. 아아아아.. 안돼.. 이젠..."
들려오는 유카의 목소리가 어느새 달콤한 신음소리로 변해있었다.
"가버려.. 아아.. 하아윽... 싫어.. 보지마.. 보지마.. 아아..."
얼마나 지났을까. "그만... 하아하아... 네? 안돼... 아아...", 갑자기,"어~이, 바-보-카-즈-야-, 듣고 있냐?", 류지가 부른다.
"네 노오오옴! 유카를, 잘도 유카를!"
격렬한 분노로 떨리는 아마노의 말을 무시하며 류지가 말했다.
"너말야, 나와의 약속을 깨고, 이녀석한테 우리 얘기, 전부 다 말하려고 했다며? 게임같은 거 할까보냐, 라고도 하고. 휴우.. 야, 잠깐 박아주니까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유카가 술술 다 알려주더라. 네가 그렇게 말했다고"
"유카는 어디.. 유카 어디 있어?"
"아 시끄럽긴, ...내 장난감을 어떻게 하든 그건 내 맘이지. 사실 네놈이 지껄인 말 때문이잖아. 유카는 말이지, 그러니까, 약속을 깬 벌을 받은거야. 널 대신해서. 뭐, 이 계집, 워낙 좋아죽는 바람에 벌이 전혀 벌같지가 않긴 했지만"
"그만해, 유카는 관계없어, 유카하고는 관계없잖아!!"
말을 쥐어짜내는 아마노의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에에? 크게 관계가 있지"
갑자기 유카의 한층 더 높은 교성이 들려왔다.
"아아.. 가.. 또.. 간다.. 또.. 가버려---!!"
"안돼, 참어"
"싫어... 제발.. 가게.. 가게 해주세요.."
"유카! 그만해! 그만두지 못해!"
"가버려.. 안돼.. 에헤헤... 이상해.. 아아아아.. 이상해져..버려.. 아아.. 아아.. 간다----! ...아아아 ..하아.. 하아아아..."
"유카.. 유카.. ...어째서, 유카를... 네가 원망하는 건 나잖아... 더이상 유카를 끌어들이지 마.."
"그러니까, 그렇게는 안된다고"
"어째서?"
"...네놈이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여자니까"
"무,무슨 소리야?..."
"아무튼.. 이라는거지. 알았냐? 게임을 받아들이라구. 그 외에 선택지는 너한테 없으니까. 알아들어?"
"...유카한테서, 유카한테서 손 떼"
변함없이 휴대폰에서는 멀리서 유카의 희미한 신음이 계속 들려온다.
"게임 받아들이는거야?"
다짐받는 류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알았어. 그러니까 유카를.. 유카를.."
큭큭큭큭 웃으며 류지가, "유카라면 벌써 아까 집에 돌려 보냈어. 충분히 귀여워해준 다음에. 바보카즈야가 들은 소리는, 큭, 이건, 녹음이야 녹음. 지금쯤 네 방에서 "흑흑 울면서" 네놈 돌아오는 것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걸. 자알 토닥여 주라구" 라고 지껄인다. 그리고, "알았냐? 잘 들어. 또 나한테 반항하려고 들면, 그 계집, 이 정도로 안 끝나. 완전히 망가져버릴 때까지 범해줄테니까.. 부숴버릴거야... 알아들어?".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아마노에게 으름장을 놓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격렬한 흥분을 억누르며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여벌 열쇠를 찔러 넣었다. 최근 유카의 부모님은 계속 출장중이시다. 집 안은 깜깜하고 유카의 방에도 불은 켜져있지 않았다. 정말 집에 돌아온 거 맞아?... 노크도 하지 않고 유카의 방 문을 열었다. 후끈 달아오른 공기가 느껴진다. 남자와 여자가 질퍽한 섹스를 벌이고 난 후의 독특한 냄새, 그 비릿함이 코를 찔렀다.
유카!
어둠 속을 향해 연인의 이름을 부르려고 한 아마노보다 조금 먼저,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 유카가 입을 열었다. 게다가, "류지군..." 이라고. 연인의 이름이 아니고, 능욕자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고 아마노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유카의 침대 위에, 유카가 전라로 양팔과 양다리를 속박당한 채로 위를 보고 큰 대(大)자로 묶여 있었다. 어둠 속으로 새하얀 부드러운 피부가 떠올라 있었다. 하아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름다운 입술에서, "아아... 안돼.. 류지군.. 살려줘.." 라고, 애처롭게 매달리는 목소리와 함께, 어딘가에서 희미한 전동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가리개를 하고 있는 유카는 지금 방에 들어온 사람이 연인이라고는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류지군, 네? 유카, 제대로, 제대로..."
류지의 화를 돋구지 않으려고,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명령받은 대로 대답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장난감으로 세 번, 세 번이나... 갔습니다. 아주, 많이 느껴버렸어요"
전부 류지가 짠 계략대로였다. 류지는, "잠깐 편의점에 갔다올께. 그 사이에 바이브로 몇 번 갔는지 확실히 세어 둬. 돌아와서 또 즐겁게 해줄께" 라고 말을 남기고 나와, 맨션 앞에 숨어 아마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유카는, "제발이요... 또, 또.. 이상해져버려.. 이상해져버려...!". 꽁꽁 묶인 나신을 몸부림치며, 유혹하듯 허리를 높이 들어올린다. 보지털 사이로 시커먼 물체가 살짝 엿보인다. 유카의 허리가 꿈틀거리며, 그 반동으로 풍만한 유방이 이리저리 튀었다.
"류지군... 아아.. 싫어.. 아아.. 하아.. 또, 또.. 가버려.. 가버려어어! 이,이런 장난감 싫어.. 해줘.. 제발... 류지군꺼.. 넣어줘어어.."
갑자기 유카의 신음소리가 높아지며 등을 위로 크게 젖힌다. 양손이 굵은 새끼줄을 꼭 붙들고,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마와 뺨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유카, 장난감은 싫어.. 류지군 거가 좋아... 빨리, 아아아... 더 못 참겠어.. 해줘.. 제발.. 류지군.. 유카를 엉망진창으로.. 느끼게 해줘.. 더 느끼게 해 주세요!"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요염하게 유혹하는 연인의 모습. 쾌락에 빠져 관능적으로 나신을 춤추면서 음란한 말을 늘어놓는 연인의 모습. 아마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한 적도 없는, 연인의 믿을 수 없는 치태였다. 유카... 자신의 무력함에 분노하며 이가 갈렸다. 어금니가 부숴졌는지 입에서 미지근하고 씁쓸한 피 맛이 느껴졌다. 아무튼 돕지 않으면... 연인의 뜨거운 신음소리에 귀를 막으며, 연인의 보지에 꽂혀있는 바이브레이터에 손을 가져갔다. 천천히 당겨 뽑아낸다. 안에 가득 담겨있던 여자의 색향이 물씬 풍겨나온다. 흘러넘친 애액으로 시트도 흠뻑 젖어 있었다.
"으응.. 아아.. 아아 좋아.. 좋아"
묶여 있던 줄이 팽팽하게 늘어나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음을 낸다. 이,이런걸... 믿을 수 없을정도로 거대한 바이브레이터가 애액의 실을 당기며 유카의 몸 속에서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뽁,하는 소리와 함께 뽑아내자, "아앙.. 왜.. 어째서?...". 유카의 불만어린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묵묵히 팔다리를 묶고 있는 줄을 풀고, 아마노는 "유카, 이제 괜찮아" 조그맣게 속삭였다.
"류지군!? ...에!? ...아, 아..."
자유롭게 된 손으로 안대를 벗는다.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난 익숙한 얼굴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어, ...어째서?"
텅 빈 시선으로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갈 곳을 잃은 손이 허공에서 헤맨다.
"카... 카즈야!? 아,안돼!!!!"
왜...?? 유카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고,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다. 설마 여기 연인이 있을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저녁내내 끝없이 반복된 능욕으로 셀 수 없을만큼 절정에 올랐다. 몇 번은 의식까지 잃어버렸었다. 이대로는 정말로 머리가 이상해져 버릴것 같았다. 그래서 그저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빨리 도망가고 싶어서, 오직 그 생각만으로 쾌락에 빠져 도망쳤다. 류지가 좋아할 말을 늘어놓았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처참한 상황이었다. 류지의 계획대로. 무슨 짓을... 나... 카즈야 앞에서... 카즈야에게, 그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줘 버렸다... 음란한 말을 들려줘 버렸다... 경악과 공포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로 그대로 침대 위에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계속해서 절정에 허덕이던 뜨거운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카즈야에게 또 다시, 상처입혀 버렸다...
"잘못했어..."
아마노는 유카의 가녀린 어깨에 이불을 씌워주며 "나때문에... 잘못했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몇번이나... 카즈야를 배신하는 거야... 나... 그런 광태를 보이고, 치욕적인 말을 하고, 그 모든 걸 보여버린 유카는 아마노의 얼굴조차 차마 보지 못하고, 웅크린 채 "미안해..."라고 중얼거릴 뿐.
어루만지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안 나...
꼭 껴안고 싶은데, 차마 그 말을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어...
류지의 계획대로, 서로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엇갈린다. 결코 망가지는 일 따위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던 정이 허무하게... 조금씩...
"목욕물, 준비해줄께..."
그렇게 말하며 아마노가 방을 나가고, 유카는 침대 맡에 놓여있던 소중한 테디베어를 꼭 껴안고 소리없이 어깨를 들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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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귀엽게 반항하죠? 유카.

등장한 작품이 에로소설만 아니었어도 이런 험한 꼴 안 당했을 것이지만... 어쩌겠어요, 007영화 본드걸은 결국 악세사리인거고, 공포영화 히로인은 목이 쉬어라 비명만 질러댈 팔자인거고, 액션영화 히로인은 주인공 대신 납치당하고 살해당하고 온갖 더러운 꼴 다 당할 팔자인거고, 에로물 여주인공은 특히나 그게 능욕계라면 보X물이 마를 때까지 하염없이 쑤시고 박히고 당해야지 어쩌겠어요ㅋ 각 장르의 소비자들이 바라는 게 그건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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