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椿 오니츠바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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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건배"
칵테일 글래스가 작지만 딱딱한 소리를 냈다.
마쿠하리의 고층호텔 최상층의 라운지에서 밤 바다를 바라보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멀리 보이는 해안가에서 빨갛게 하얗게 불이 반짝인다.
어슴푸레한 가게 안, 카운터에 놓인 촛불이 류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어 매력적인 생김새가 더욱 돋보이고,
유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한층 더 빛난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아이같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다이키리(daiquiri, 칵테일의 일종. 럼·설탕·레몬즙을 섞어 만듦)를 입에 가져간다.
"시합에 져버려서, 데이트해줄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나, 어제는 기뻐서 한숨도 못잤더랬어요"
"열심히 했으니까, 상으로"
유리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선배가 날 보면서 웃어주는거, 정말이지 넘치는 상이에요.
데이트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다니, 처음 알았어요"
"...그렇구나"
무심코 대답하는 유카의 옆모습을 류지가 살짝 쳐다본다.
"인디아나 존스 어트랙션에서, 창이 날아오는 거 보고 선배 눈이 놀라 이~만해져서,
너무 웃겨서 배가 다 아팠어요"
"너무해~, 그런걸로 놀리고"
"보트 탔을때도 위험하게 몸을 쭉 빼서는 손바닥으로 물 첨벙대면서 좋아라하고,
그런 거, 요샌 어린애들도 안 해요.
의외로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선배"
"쳇, 아니다 뭐"
기분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나, 이런 때에도, 웃음이 나온다...
"선배는 계속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가 않아요"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디즈니랜드를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아직 한번도 가본적 없어"라면서 유카가 끌고 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놀고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다.
원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 얼굴을 봐야 할지 모른다.
뭐라고 해야 되는지도 모른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죄책감이 더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어쨌든, 오늘 하루만큼은, 아마노가 사츠키와 만나고있을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 잊고 싶었다.
내일 일은 내일, 제대로 생각하자.
그런 무른 생각이, 그런 현실도피가,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있었다.
"미키마우스하고 찍은 사진, 나중에 카피해 줘"
"제대로 찍혔을지 모르겠어요, 긴장해서 손이 떨렸었는데"
"수상 퍼레이드, 정말 굉장했지"
"미키마우스 인형옷 뒤집어 쓰고 수상스키타다 뒤집히면 분명 익사하고 말걸요"
"불꽃놀이 너무 예뻤지"
"선배가 더 예뻐요"
"네네, 바람둥이씨"
그저 무탈한, 피상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선배는, 즐거웠어요?"
"응, 물론"
"다행이다"
원샷으로 잔을 비운다.
"그치만 역시, 사카키사와는"
"뭐가요?"
고개를 갸웃하며 유카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에스코트도 능숙하고, 디즈니랜드도 분명 처음이 아닌것 같았고, 이런 가게도 잘 알고 있고.
자주 놀러오는거지? 여자하고."
"흐음, 뭐 그렇죠"
글래스를 들어 서빙을 불러, "마카란 락, 더블로", 벌써 두 잔째를 주문한다.
"선배한테니까, 솔직히 말할께요.
예, 자주 옵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오지 않을 수가 없다는게 맞겠네요.
자기들이 먼저 "사귀자"고 말하고는, 모두들 나한테서 기대하는건,
세련된 데이트 장소, 세련된 레스토랑, 세련된 바, 세련된 대화, 세련된 옷,..같은거.
나랑 사귀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나봐요, 다들.
나 그렇게 가벼운 남자로 보여요?
그러니까, 항상 "아, 저 여자도 또" 이런 생각이 들면 좋은 감정도 싹 사라져버리고.
사실 난 그런거하곤 전혀 인연없는 가난한 고학생인데.
이런 가게보다 근처 라면집에서 만두하고 맥주나 마시는 편이 훨씬 즐거운데.
그러자니 기대를 꺾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은 이런 데로 와서..."
"나도, 라면집같은, 그런 가게 좋아해..."
"마음이 잘 맞네요, 우리"
유카는 아무말 없이 눈앞에 놓인 글래스를 들어 한모금 마셔보았다.
"이거, 맛있네..."
얇게 붉은색 거품이 이는 칵테일을 응시한다.
"킬 로얄이라고 하는거에요. 카시스를 샴페인에 섞은것 뿐이지만 마시기 편하죠.
사실 식사전에 마시는 술이지만..., 어라, 선배, 술 약하지 않아요?"
"맨날, 그런식으로 잔소리만 하지..."
류지가 약간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대화가 끊기고 그 사이 가게에서 틀어주는 음악소리만 조용히 흐른다.
일요일 밤, 연인들이 찾는 가게에는 어울리지 않는 슬픈 발라드였다.
류지도 유카의 시선을 따라 창밖의 야경을 응시했다.
"선배는 오늘 나한테 뭘 기대했나요"
묻는다기보다 혼잣말같았다.
"이런 가게 오고 싶어서, 디즈니랜드 놀러가고 싶어서 날 부른건 아니죠?
뭘 바란건가요?"
잠깐 사이를 두었다 다시 묻는다.
"사실은 날 만나려고 부른게 아니죠?"
"그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기분을 빤히 알고 있었어.
"애인하고 다툰건가요? 최근, 표정이 계속 어두웠어요"
"싸움...같은거 아냐"
"고민이라도 있어요?"
"신경쓰지마, 즐거운 이야기 하자, 모처럼 데이트니까, 응?"
소용없는 일이니까..., 그런 생각에 말을 돌린다.
"하지만..."
"사카키사와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오늘은 고마웠어, 나하고 하루종일 있어줘서"
손목시계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이제 슬슬 가봐야지..."
"감사할 쪽은 오히려 제 쪽이에요"
오늘 이대로 얌전히 돌려보낼 생각따위, 조금도 없었다.
따뜻한 표정을 만들어 꾸미고, 다시 유카를 바라보았다.
무려 반년 이상, 아니 그 이전부터 공을 들여 차분히 파놓은 함정, 이제 마무리를 지을 차례다.
"선배, 감사합니다, 날 위해서, 하고 싶지도 않은 웃는 얼굴, 애써 만들어 줘서.
즐거워 하는 표정 지어줘서 감사합니다.
그게 진짜든 가짜든, 날 위해, 나한테만 보여준 웃는 얼굴이니까, 나한테는...정말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카를 지그시 바라보며 힘주어 말한다.
"사카키사와...."
애써 참아 온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유카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저기...그...전에 대회날, 보여져버렸어, 그이한테.
사카키사와를...껴안고 있었을 때..."
"네?!!"
눈에 띄게 놀라해한다.
"그리고나서, 카즈야...만나주질 않아...휴대폰도 받지 않고...나...나 어쩌면 좋지..."
"미안해요.."
글래스 위로 류지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사카키사와가 잘못한게 아냐, 나쁜건 나니까"
망가뜨려버리기 위해서라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여기까지 왔으니 무슨 짓이든.
거짓말같은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 그런, 전혀...몰라서..."
"내가 나쁜거야..."
"내가 그런일 안만들었으면..."
"아냐, 나, 그때, ...사카키사와 생각만 했어.
사카키사와밖에 생각하지 못했어.
카즈야 생각이 아니라...그 때, 나...분명히..."
"선배..."
"모르겠어...모르겠어....나 자신의 기분, 모르겠...."
고개를 숙이고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유카에게 류지가 다가간다.
서로의 볼이 가볍게 맞닿았다.
"사실은, 알고 있는거 아니에요...?"
"무ㅅ...!!"
입술이 닿는다. 따뜻한 감촉이 입술로 전해진다. 류지의 입술이 점점 더 강하게 부딪혀온다.
류지는 그 때와 똑같이 유카를 꼭 끌어안았다.
아마노가 아닌 남자의 입술이, 처음으로, 입술에 닿았다.
"응, 응응..."
떨어트리려고 류지의 넓은 어깨를 밀쳐보지만, 류지는 한층 더 힘을 줘 끌어당긴다.
과연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이 드문 광경이 아닌지, 빈 글래스를 거두어가는 웨이터는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심히 그들의 자리를 뜬다.
점차 유카의 몸에서 힘이 빠져 간다.
류지의 속셈대로 흘러가고 있다.
포니테일의 긴 머리카락을 류지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혐오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좋은 감각이 전신에 퍼져갈 뿐이었다.
"으음...하아...."
천천히 빰을 양손으로 감싸고 눈을 맞춘 채로 류지가 입술을 떨어트렸다.
"사카키사와...무슨..."
모기같이 작은 목소리로 뭐라 하려고 했지만,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모리사키 선배..."
조용히 감색 블레이져의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이번 달의 아르바이트비, 전부 쏟아부었습니다"
카운터 위로 내민 손바닥에는 아랫층 호텔의 룸키가 놓여있었다.
"시험해 보시겠어요? 자신의 기분을..."
무릎 위로 주먹이 꼭 쥐어진다.
무릎길이의 스커트에 눈물이 한방울씩 툭툭 떨어진다.
"치사해...치사하잖아...사카키사와...이런거...치사해..."
칵테일 글래스가 작지만 딱딱한 소리를 냈다.
마쿠하리의 고층호텔 최상층의 라운지에서 밤 바다를 바라보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멀리 보이는 해안가에서 빨갛게 하얗게 불이 반짝인다.
어슴푸레한 가게 안, 카운터에 놓인 촛불이 류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어 매력적인 생김새가 더욱 돋보이고,
유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한층 더 빛난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아이같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다이키리(daiquiri, 칵테일의 일종. 럼·설탕·레몬즙을 섞어 만듦)를 입에 가져간다.
"시합에 져버려서, 데이트해줄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나, 어제는 기뻐서 한숨도 못잤더랬어요"
"열심히 했으니까, 상으로"
유리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선배가 날 보면서 웃어주는거, 정말이지 넘치는 상이에요.
데이트가 이렇게 즐거운 거였다니, 처음 알았어요"
"...그렇구나"
무심코 대답하는 유카의 옆모습을 류지가 살짝 쳐다본다.
"인디아나 존스 어트랙션에서, 창이 날아오는 거 보고 선배 눈이 놀라 이~만해져서,
너무 웃겨서 배가 다 아팠어요"
"너무해~, 그런걸로 놀리고"
"보트 탔을때도 위험하게 몸을 쭉 빼서는 손바닥으로 물 첨벙대면서 좋아라하고,
그런 거, 요샌 어린애들도 안 해요.
의외로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선배"
"쳇, 아니다 뭐"
기분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나, 이런 때에도, 웃음이 나온다...
"선배는 계속 보고 있으면 심심하지가 않아요"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디즈니랜드를 돌아다니면서 놀았다.
"아직 한번도 가본적 없어"라면서 유카가 끌고 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놀고있을 때가 아니라는 거, 알고 있었다.
원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떻게 얼굴을 봐야 할지 모른다.
뭐라고 해야 되는지도 모른다.
무겁게 내리누르는 죄책감이 더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어쨌든, 오늘 하루만큼은, 아마노가 사츠키와 만나고있을 오늘 하루만큼은, 모두 잊고 싶었다.
내일 일은 내일, 제대로 생각하자.
그런 무른 생각이, 그런 현실도피가,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있었다.
"미키마우스하고 찍은 사진, 나중에 카피해 줘"
"제대로 찍혔을지 모르겠어요, 긴장해서 손이 떨렸었는데"
"수상 퍼레이드, 정말 굉장했지"
"미키마우스 인형옷 뒤집어 쓰고 수상스키타다 뒤집히면 분명 익사하고 말걸요"
"불꽃놀이 너무 예뻤지"
"선배가 더 예뻐요"
"네네, 바람둥이씨"
그저 무탈한, 피상적인 대화의 연속이었다.
"선배는, 즐거웠어요?"
"응, 물론"
"다행이다"
원샷으로 잔을 비운다.
"그치만 역시, 사카키사와는"
"뭐가요?"
고개를 갸웃하며 유카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에스코트도 능숙하고, 디즈니랜드도 분명 처음이 아닌것 같았고, 이런 가게도 잘 알고 있고.
자주 놀러오는거지? 여자하고."
"흐음, 뭐 그렇죠"
글래스를 들어 서빙을 불러, "마카란 락, 더블로", 벌써 두 잔째를 주문한다.
"선배한테니까, 솔직히 말할께요.
예, 자주 옵니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오지 않을 수가 없다는게 맞겠네요.
자기들이 먼저 "사귀자"고 말하고는, 모두들 나한테서 기대하는건,
세련된 데이트 장소, 세련된 레스토랑, 세련된 바, 세련된 대화, 세련된 옷,..같은거.
나랑 사귀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나봐요, 다들.
나 그렇게 가벼운 남자로 보여요?
그러니까, 항상 "아, 저 여자도 또" 이런 생각이 들면 좋은 감정도 싹 사라져버리고.
사실 난 그런거하곤 전혀 인연없는 가난한 고학생인데.
이런 가게보다 근처 라면집에서 만두하고 맥주나 마시는 편이 훨씬 즐거운데.
그러자니 기대를 꺾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결국은 이런 데로 와서..."
"나도, 라면집같은, 그런 가게 좋아해..."
"마음이 잘 맞네요, 우리"
유카는 아무말 없이 눈앞에 놓인 글래스를 들어 한모금 마셔보았다.
"이거, 맛있네..."
얇게 붉은색 거품이 이는 칵테일을 응시한다.
"킬 로얄이라고 하는거에요. 카시스를 샴페인에 섞은것 뿐이지만 마시기 편하죠.
사실 식사전에 마시는 술이지만..., 어라, 선배, 술 약하지 않아요?"
"맨날, 그런식으로 잔소리만 하지..."
류지가 약간 쓸쓸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대화가 끊기고 그 사이 가게에서 틀어주는 음악소리만 조용히 흐른다.
일요일 밤, 연인들이 찾는 가게에는 어울리지 않는 슬픈 발라드였다.
류지도 유카의 시선을 따라 창밖의 야경을 응시했다.
"선배는 오늘 나한테 뭘 기대했나요"
묻는다기보다 혼잣말같았다.
"이런 가게 오고 싶어서, 디즈니랜드 놀러가고 싶어서 날 부른건 아니죠?
뭘 바란건가요?"
잠깐 사이를 두었다 다시 묻는다.
"사실은 날 만나려고 부른게 아니죠?"
"그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기분을 빤히 알고 있었어.
"애인하고 다툰건가요? 최근, 표정이 계속 어두웠어요"
"싸움...같은거 아냐"
"고민이라도 있어요?"
"신경쓰지마, 즐거운 이야기 하자, 모처럼 데이트니까, 응?"
소용없는 일이니까..., 그런 생각에 말을 돌린다.
"하지만..."
"사카키사와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
"이야기해주면 좋겠어요, 제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오늘은 고마웠어, 나하고 하루종일 있어줘서"
손목시계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이제 슬슬 가봐야지..."
"감사할 쪽은 오히려 제 쪽이에요"
오늘 이대로 얌전히 돌려보낼 생각따위, 조금도 없었다.
따뜻한 표정을 만들어 꾸미고, 다시 유카를 바라보았다.
무려 반년 이상, 아니 그 이전부터 공을 들여 차분히 파놓은 함정, 이제 마무리를 지을 차례다.
"선배, 감사합니다, 날 위해서, 하고 싶지도 않은 웃는 얼굴, 애써 만들어 줘서.
즐거워 하는 표정 지어줘서 감사합니다.
그게 진짜든 가짜든, 날 위해, 나한테만 보여준 웃는 얼굴이니까, 나한테는...정말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카를 지그시 바라보며 힘주어 말한다.
"사카키사와...."
애써 참아 온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유카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저기...그...전에 대회날, 보여져버렸어, 그이한테.
사카키사와를...껴안고 있었을 때..."
"네?!!"
눈에 띄게 놀라해한다.
"그리고나서, 카즈야...만나주질 않아...휴대폰도 받지 않고...나...나 어쩌면 좋지..."
"미안해요.."
글래스 위로 류지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사카키사와가 잘못한게 아냐, 나쁜건 나니까"
망가뜨려버리기 위해서라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여기까지 왔으니 무슨 짓이든.
거짓말같은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 그런, 전혀...몰라서..."
"내가 나쁜거야..."
"내가 그런일 안만들었으면..."
"아냐, 나, 그때, ...사카키사와 생각만 했어.
사카키사와밖에 생각하지 못했어.
카즈야 생각이 아니라...그 때, 나...분명히..."
"선배..."
"모르겠어...모르겠어....나 자신의 기분, 모르겠...."
고개를 숙이고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유카에게 류지가 다가간다.
서로의 볼이 가볍게 맞닿았다.
"사실은, 알고 있는거 아니에요...?"
"무ㅅ...!!"
입술이 닿는다. 따뜻한 감촉이 입술로 전해진다. 류지의 입술이 점점 더 강하게 부딪혀온다.
류지는 그 때와 똑같이 유카를 꼭 끌어안았다.
아마노가 아닌 남자의 입술이, 처음으로, 입술에 닿았다.
"응, 응응..."
떨어트리려고 류지의 넓은 어깨를 밀쳐보지만, 류지는 한층 더 힘을 줘 끌어당긴다.
과연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이 드문 광경이 아닌지, 빈 글래스를 거두어가는 웨이터는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심히 그들의 자리를 뜬다.
점차 유카의 몸에서 힘이 빠져 간다.
류지의 속셈대로 흘러가고 있다.
포니테일의 긴 머리카락을 류지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혐오감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좋은 감각이 전신에 퍼져갈 뿐이었다.
"으음...하아...."
천천히 빰을 양손으로 감싸고 눈을 맞춘 채로 류지가 입술을 떨어트렸다.
"사카키사와...무슨..."
모기같이 작은 목소리로 뭐라 하려고 했지만,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모리사키 선배..."
조용히 감색 블레이져의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
"이번 달의 아르바이트비, 전부 쏟아부었습니다"
카운터 위로 내민 손바닥에는 아랫층 호텔의 룸키가 놓여있었다.
"시험해 보시겠어요? 자신의 기분을..."
무릎 위로 주먹이 꼭 쥐어진다.
무릎길이의 스커트에 눈물이 한방울씩 툭툭 떨어진다.
"치사해...치사하잖아...사카키사와...이런거...치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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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무려 8화씩이나 걸려서...
...제가 읽어본 야설 사상 가장 따먹기 힘든 히로인인것 같습니다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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