鬼椿 오니츠바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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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준결승까지 시합은 예상대로 전개되었다.
상대의 추격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고 일방적인 원사이드게임.
가을의 동아리 대항전도 이제 남은 것은 남자 싱글의 결승뿐.
류지가 이기면 종합우승 확정이었다.
부원들은 이미 코트 주변에 모여 벌써 우승이라도 한 것같은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잠깐 마시지하러 빠져나왔어요. 집중력을 흐트리지 않으려면 혼자 있는 편이 낫거든요"
오랜만에 웃는 얼굴로 땀을 닦으며 구립 코트의 전용대기실에 앉아있는 류지의 옆자리에 유카만이 앉아있었다.
W대 내의 테니스 동아리는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 대회에 출장할만한 실력이 있는 써클은 10개 남짓.
그 중에서도 우승을 다툴만한 팀은 유카가 있는 써클을 포함해 4개 팀 정도.
캔맥주라던가 여행권이라던가 PC 같은, OB들의 회사로부터 협찬받는 상품이 내걸리긴 하지만,
진짜 목적은 대학내의 테니스코트 독점사용권이었다.
우승만 하면 다음 대회까지 1년 동안, 연습장을 찾아다닐 고민하고는 바이바이다.
부원들의 열광적인 기대는 당연했다.
그 기대를 한 몸에 받고있는 류지는 소파에 앉아 열심히 장딴지나 허벅지의 근육을 풀고 있었다.
"사카키사와군..."
"저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얼굴을 들어올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상관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다리, 아픈거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거짓말"
"거짓말 아니라니까요"
손가락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럼 어디 봐봐"
말하자 마자 류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오른쪽 다리의 장딴지를 잡아 올린다.
"선배! 아, 아파!"
류지가 반사적으로 유카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다.
그대로 무릎을 안고 크게 어깨를 부들부들 떤다.
"역시...언제부터 통증이 온거야"
"방금 모리사키 선배가 만지고 나서부터에요"
내뱉듯이 대답한다.
"정직하게 얘기해줘. 언제부터 그런거야?"
"....들켜버렸네요. 역시 선배는 속일수가 없어요.
준준결승 도중부터요. 그때부터 조금 위화감이 있었는데...
준결승 2세트때 서브 연속으로 3개 놓쳤을때 있었죠, 그때부터 아프기 시작했던거 같아요. 헤헤헤..."
"헤헤...가 아니잖아 지금"
애써 밝게 웃는 류지에게 힘들게 말을 꺼낸다.
"기권하는게 좋겠어. 내가 대신 가서 말하고 올께"
일어서는 우화를 향해 바닥을 쳐다보며 낮게 소리를 지른다.
"그만 두지 못해! 쓸데없는짓 하기만 해봐!"
"아마노 선배, 안녕하세요! 모리사키 선배 응원 오셨어요?"
"아, 사츠키, 근데 유카 시합은 벌써 끝난거야?"
연구가 계속해서 지지부진하는 바람에 마리에에게 온갖 잔소리를 듣고, 간신히 시간을 내 빠져나온 아마노가 코트 주변에서 기웃기웃하는 모습을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으로 재빠르게 찾아낸 사츠키가 번개처럼 아마노의 눈앞으로 달려나왔다.
"이제 남자 싱글 결승만 남았어요.
여자 시합은 조금 전에 막 끝났구요.
모리사키 선배, 3위였습니다"
"...역시 늦어버렸구나.
꼭 응원하러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이러다 또 들들 볶이겠네..."
고개를 푹 숙이며 낙담하는 아마노.
코트 사이드의 스탠드에는 결승시합을 관전하려고 이미 시합을 끝낸 각 써클 부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츠키, 유카는 지금 어디 있어?"
"음....조금 전까진 있었는데요...아! 대기실로 간것 같아요.
안내해드릴테니까, 이쪽 계단으로 오세요"
스탠드 밑의 통로를 따라 같이 걷는다.
"저기, 아마노 선배, 저번 일은 정말로 죄송했어요. 사과할께요"
"알면 됐어, 엊그제도 제대로 사과해줬잖아.
유카한테도 제대로 사과한거 맞지? 그거 사실은 기습키스였다는거"
"그럼요, 제대로 했어요"
물론 새빨간 거짓말.
그날 이후로 유카하고는 이야기는커녕 얼굴을 마주치는것조차 피해오고 있었다.
"다시는 그러지 마. 그랬다가는 연구실 출입금지 시켜버릴거야"
"이제 안 그래요, 사츠키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네?"
아마노를 올려다보며 애교있게 웃음짓는다.
"안돼, 이런 몸으로 대체 어떻게 시합을 하겠다는거야"
웅크리듯 무릎을 온몸으로 감싸쥐고 있는 류지의 아래에서 유카가 열심히 설득하고 있다.
"선배가 무슨 말을 해도, 이제 겨우 한 시합 남았어요"
"무리하지 않겠다고 그 때 약속했잖아"
"모두가 기대하고 있어요, 모두가 나한테 기대하고 있다구요.
나, 거기에 부응하지 않으면...앞으로 한 번만 더 이기면 된다구요.
그러면 모두 다 날 인정해줄거에요. 꼭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습니다"
"아냐, 이미 다들 사카키사와 인정하고 있어.
연습, 정말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도 노력했으니까.
그러니까, 다들 알고 있으니까, 제발 무리하지 말자.
대회는 또 있잖아, 또 열심히 해서 다음번에..."
"아니요, 그건 안되요, 부탁할께요 선배, 앞으로 딱 한 게임만요"
"...대체, 대체 모두에게 인정받는 거, 그런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거야!?"
간신히 얼굴을 든 류지, 새빨개진 눈으로 유카를 응시한다.
"저녀석은 제 엄마에게도 버려진 놈,...이라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녀석들에게,
뒤에서 그렇게 수근대는 경험따위, 그런 눈으로 바라봐지는 그런 일, 선배는 없지요?
...그러니까 몰라요.
인터하이 베스트4로 뽑혔을때조차, 뒤에선....
그러니까, 나 노력하지 않으면, 그래서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이제 더 이상 그런 생각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선배, 딱 한 시합만, 딱 한 시합만 더 부탁합니다"
방울방울 흘러넘치는 눈물.
잘생긴 얼굴을 엉망으로 하며 매달리는 류지에게 더 이상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잠시 가만히 응시하다 "알았어..."라고 말하고 류지에게 손을 내민다.
"이제 가자, 시합, 다들 기다리고 있을테니"
류지가 유카의 손을 잡는다.
"힘 내...꺄아!"
유카의 손을 지탱해 일어나, 그 기세로 그대로 유카를 끌어안았다.
어깨와 머리에 팔을 돌려 꼭 껴안는다.
"사카키사와..."
단단하게 단련된 근육질의 몸으로부터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졌다.
몸이 거부하지 않는다.
"감사합니다"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인다.
"나, 열심히 할께요"
껴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선배, 만약 내가 우승하면, 다음날...저...데이트...딱 한번만...
저하고 데이트 해줄수 없습니까?...저한테는 최고의 격려가 될거에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류지의 등에 자신의 팔을 돌렸다.
"가자...시합, 시작해버리겠어"
들것에 실려 코트로부터 나갈 때, 류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유카를 바라보고 짧게 한 마디,
"지고 말았습니다, 아쉽게도"
라고 힘없이 말했다.
수줍은 웃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주위를 부원들이
"잘 했어"
"우리들을 위해 그렇게까지 무리한거야"
"노력했구나"
라고 모두들 위로의 말을 건내면서 의무실까지 우르르 따라간다.
3세트의 2게임까지는 압도적인 시합이었지만, 결국 서브를 넣던 도중 무릎을 감싸쥐고 무너지고 말았다.
결과는 기권.
유카는 코트 사이드에서 몰려가는 부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모리사키 선배"
뒤에서 사츠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면 안절부절 못하고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있는 듯한 사츠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츠키, 유감이었지"
"네, 유감입니다. 모리사키 선배가 참 지독한 사람이란거 알게 되서, 정말 유감입니다"
"사츠키, 무슨?..."
뜻밖의 말에 당황한다.
"선배, 아마노 선배가 응원하러 온 거 압니까?"
"카즈야가?..."
"역시 몰랐군요. 정말 지독한 사람이에요, 선배"
"왔어? 카즈야, 카즈야 어디 있는데?"
"아까 돌아갔어요.
연구, 바쁘다고 했는데,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애써 빠져나와줬는데,
그런데도 선배는...결승전, 쭉 스탠드에서 봤어요.
아마노 선배, 몇 번이나 선배한테 손을 흔들었는데...
그런데 그걸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 때, 선배는 누굴 보고 있었습니까?
모리사키 선배는, 그이는 알아채지도 못하고 대체 누굴 보고 있었습니까?"
둘 사이의 관계가 망가지는 걸 바라고 있는 사츠키는 굳이 대기실에서 류지와 유카가 얼싸안고 있던 것,
그 장면을 아마노가 목격한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비장의 카드는 마지막까지 아껴둬야 하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유카를 몰아세웠다.
"사츠키..."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죠? 대체 누구냐구요?"
유카가 아무 대답도 못하는 틈을 타, 연달아 거칠게 매도하는 말을 퍼붓는다.
"농담도 아니고, 모리사키 선배같은 사람, 아마노 선배의 연인이라니 말도 안돼.
그렇게 좋은 사람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바보취급하다니.
사카키사와가 좋으면 그 쪽하고 사귀면 되잖아요?
이제 아마노 선배와 헤어지라구요. 절대 용서 못해요"
울먹이는 소리로 열심히 호소하던 사츠키가 팔로 눈물을 훔치며 뒤돌아 달려가버렸다.
절대로 무너질 리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