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5_33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시빌레 공주가 제구실을 하던 못하던 상관없이, 슈발츠는 자기 일에 착수했다. 그는 일단 급한 불부터 끄기 시작했는데, 두르나와 교대로 시빌레 공주로 가장한 그는 트위스티드 룬의 잔당(주로 연락책)과 새도우 시프들을 색출해 내서 잡아 죽이기 시작했고, 특히 새도우 시프의 경우 그 수뇌부가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고 느낄 무렵엔 슈발츠의 긴 손이 엠 한가운데의 그들의 본거지에까지 닿고 있었다.
트위스티드 룬의 경우도 점조직의 특성상 반응이 빠르지 못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슈발츠는 고구마 줄기를 뽑아 내는 것 같은 전술을 썼는데, 이를테면 말단의 하나를 찾아내서 그와 연결된 자들을 찾아내는데 써먹은 후 처단하고, 다시 잡은 놈을 더 상급자에게로의 안내역으로 삼아 써먹는 식이었다. 테티르의 신민과 귀족들 사이에 침투한 그들의 첩자 조직을 색출해내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코람과 시리나 공주를 포함한 나머지 왕실 가족들의 행방에 대해서 수소문하기 위해서, 슈발츠는 샤이라를 테티르 연안 지방에 파견했고, 두르나는 왕성 주변의 정보를 탐문하도록 시켰다. 물론 젤라노라도 수정구 주문을 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 설다네셀러? "/슈발츠
" 네, 아무래도 그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코람이나 시리나 공주, 혹은 자란다 여왕이나 하다크 3세... 그 네명 중 한둘이 그 도시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해요. "/젤라노라
강력한 예지술과 수정구 주문을 병용한 젤라노라의 결론은 그것이었다. 어차피 설다니셀러도 방문해야 할 참이었기 때문에, 슈발츠는 젤라노라에게 버딘이 쓰던 [환상의 왕홀]을 주고 그녀를 시빌레 공주의 대역을 시켰다. 아직도 제정신을 찾을 것 같아 보이지 않던 진짜 시빌레 공주는 시어릭의 제단이 있었던 밀실에 가두었다.
.
.
.
슈발츠가 두르나와 배탈에서 완전히 회복한 알루데시아를 데리고 웰다쓰 숲의 어귀에 도착한 것은 DR1375년의 새해가 밝은지 며칠 지나지 않은 한겨울이었다.
온난한 지대에 위치한 웰다쓰의 숲은 겨울엔 좀 쓸쓸한 풍경이 되지만, 그 나름대로 정취가 있다. 동물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슈발츠는 숲의 경계를 지킨다는 설다네셀러의 순찰대들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사실 슈발츠와 두르나는 이 숲을 방문하는 것이 두번째였다. 그들이 언더다크에서 탈출했던 바로 그 장소가 웰다쓰 숲이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올라와 난생 처음 뻥 뚫린 하늘과 별을 보았을 당시의 기억을, 그는 잊지 못한다.
슈발츠가 웰다쓰 숲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그의 첫 노예였던 일랙트라와 그녀의 자매들이 합장된 임시 무덤이었다.
" 이제야 왔다. 조금 늦어서 미안하구나. "
무덤 앞에 선 슈발츠는 먼저 한마디 건네고 난 후 잠시 서 있었다. 처음 지상으로 올라온 그날부터 강산이 한번 바뀌었고, 슈발츠에게도 한번에는 말로 다 못할 정도의 일들이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의 시초는 우스트 나타였고, 일랙트라였다.
두르나와 함게 묘 안의 유골을 수습해 쇼우-룽 산의 백자 항아리에 담아 봉인한 후, 슈발츠는 무덤의 흔적을 지웠다. 그는 자신이 지상에서 자리가 잡히면 그녀들을 이장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었고,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스스로에게 한 그 약속을 지켰다.
조심스럽게 항아리를 배낭에 넣은 두르나. 그녀에게도 일랙트라 자매들은[언니]들이다. 유골을 담은 항아리를 다루는 그녀의 손길도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유골을 수습한 후, 슈발츠는 근처에 있던 오래된 엘프의 묘소를 두르나와 알루스트리엘을 데리고 거닐었다. 이곳은 언더다크로의 입구가 있기 때문에 엘프 순찰이 자주 도는 곳이다. 그는 일부러 엘프들의 눈에 뜨이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강력한 환상의 결계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설다네셀러는 슈발츠조차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도시였다.
" 엘프들이 안오네요... "/두르나
" 그렇구나. 이쯤 되면 나타나야 정상일 시각인데. "/슈발츠
" 캠프라도 차려 볼까요? "/두르나
마침 작은 샘과 그 샘을 둘러싸고 있는 공터가 가까이 있었다. 슈발츠는 롯드를 꺼내 휘둘러 공터 위에 근사한 텐트를 만들었다. 태이에서 썼던 바로 그 텐트였다. 그리고 샘의 물이 괜찮은지 확인한 두르나가 물을 떠 와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라고 해 봐야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발레리아가 고안한 레시피 대로 건조한 [국거리]를 물에 넣고 양념을 조절해서 끓이기만 하면 근사한 스프가 되는 것이다. 최근 약간 중독되는 경향이 있는 강렬한 향취를 가진 마즈티카 산의 조미료를 첨가하자, 매콤한 냄새가 공터 내에 퍼졌다.
" 꺄웅~ "
그 냄새를 즐기며 모닥불 옆에 앉아 꼬리를 흔드는 알루데시아. 모닥불에 줏어온 나뭇가지를 좀 더 집어넣은 다음, 슈발츠는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와 함께 스프를 나누어서 식사를 시작했다.
" 아아, 잘먹겠습니다~ "
두르나가 알루데시아가 허겁지겁 자신의 그릇을 비우는 동안, 스프를 떠먹던 슈발츠는 공터 밖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 아아, 식사는 끝내게 해 줄것이지. "
슈발츠는 남은 스프를 한번에 마신 후, 그 뜨거움에 잠깐 괴로워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기척이 난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 식사를 방해하려 나타나신 손님은 누구인가? 만약 설다네셀러의 순찰대라면, 보다시피 우리는 숲에 해를 끼친 바가 없노라. "
엘프는 아니었다. 곧바로 사방에서부터 볼트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발츠가 한번 주화의 불길을 일으켜 몸을 푸른 오라로 감싸자, 볼트들은 그의 몸에 맞기도 전에 다 발사한 방향으로 되튕겨 날아갔다.
" 크아악!... "
" 케엑!... "
비명들이 사방에서 들렸다. 슈발츠가 서있는 동안 두르나와 알루데시아가 잽싸게 달려 나가 잔적들을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비명들이 계속 이어져 갔다.
" 오호, 이런 깊은 숲 속에서 인간의 얼굴을 보다니, 반갑기 그지 없군. "
두르나의 양 손에 붙잡혀 끌려오는 두명, 그리고 알루데시아에게 발목을 물려 질질 끌려오고 있는또 한명. 포로들은 모두 몸 한구석에 볼트가 꽂힌 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척 봐도[나 좋은 무리는 아니요]하는 차림새였다. 두르나가 포로들을 한데 묶어서 뭉뚤그려 앉힌 후, 슈발츠는 그들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어 주었다.
" 으으으... 크악!... "
슈발츠가 허벅지에 박힌 볼트를 힘으로 뽑아 내자, 핏줄기가 솟구치며 포로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픈건 포로지 자기가 아닌 슈발츠에겐 그것도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인 것이다. 그는 손에 쥔 볼트를 까딱거리며 빙긋이 웃었다.
" 질문이 몆가지 있네. 대답해 주겠지? "/슈발츠
" 무... 우린 아무말도 하지 않을 거다, 엘프놈 같으니!... "/포로 1
슈발츠가 약간 상심한 표정으로 두르나 쪽을 돌아보자,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께를 으쓱 해 보였다. 그리고 레이피어를 꺼내어 그 입이 방정인 포로의 허벅지에 난 볼트 구멍을 레이피어로 메꾸어 주었다.
" 끄아아아악!!!! "/포로 1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포로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나머지 포로가 그 잔혹한 처사에 경악하는 동안, 두르나는 두건을 벗고 자신의 검은 얼굴을 드러내 보였다.
" 드... 드로우!... "/포로 2
" 맞아, 그리고 여기 계시는 마님의 고문 기술은 전설적이지. 방금건 오픈 게임에 지나지 않아. 내 그건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어. "/슈발츠
" 워...원하는게 뭐요?... "/포로3
두르나는 부츠 차림의 발로 질문을 한 포로의 머리를 옆으로 걷어 찼다.
빠악!!
" 컥!... "/포로 2
당연하지만 그 포로의 머리가 한쪽으로 꺾이며 핏방울이 튀어 올라 부츠에 묻었다. 그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것을 포로의 옷에다 닦아낸 후, 레이피어로 찔린 흔적이 역력한 포로의 옆구리를 부츠의 굽으로 지그시 눌렀다.
" 질문은 주인님께서 하신다. 버러지. "/두르나
" 끄아악!... 말하겠소, 뭐든지 말할테니 제발!... "/포로 3
" 이제야 우호적인 대화를 나눌 분위기가 되었군. 그럼 왜 날 향해 다짜고짜 이런 흉흉한 물건을 사용했는지부터 시작해 볼까?... "/슈발츠
슈발츠는 다시 손에 쥔 볼트를 까딱거려 보였다. 아직 그 끝에는 하얀 살점이 묻어 있었다.
.
.
.
슈발츠를 공격해 온 것은 도적이며 또한 벌목꾼인 일당이었다.
" 엘프들의 숲에서 벌목이라니,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가 되고 싶은가 보지? "/슈발츠
" 엘프들은 더이상 없소. 두목이 그들을 멀리 쫒아 보냈거든. "/포로 3
" 오, 그거 굉장한데? "/슈발츠
사정이야 어떻든 벌목꾼들이 엘프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있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설다네셀러에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인가 하며 슈발츠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그의 지시를 받은 두르나는 포로들을 풀어 주엇다.
" 다시 내 눈에 뜨이면... 어떻게 될지 알지? "/두르나
" 아무렴입쇼, 다시는 이 숲에 발을 들이지 않겠습니다요!... "/포로 2
" 감사합니다요!... "/포로 3
이미 슈발츠의 심문 과정에서 포로 하나가 출혈과다로 죽었다. 그것을 본 나머지 포로들이 겁에 질리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살아남은 포로들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동안, 두르나는 알루데시아와 함께 시신들을 한데 모아 태울 준비를 했고, 슈발츠는 텐트를 걷어 치웠다.
" 오늘 저녁은 지붕이 있는 통나무집에서 자 보기로 하지. "
슈발츠는 벌목꾼들을 급습할 생각이었다. 벌목꾼들의 아지트를 찾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무지막지하게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또한 아지트가 (임시로 만든)통나무 천막도 아니었다.
" 아예 여기 살림을 차릴 모양새인데요?... "
엘프들이 신성시 하는 옛 영묘 바로 앞에 터를 잡은 벌목꾼의 캠프는 요새화 되어 있었다. 날카롭게 끝을 깎아서 세운 목재들을 나란히 세워서 만든 방벽과 방벽 뒤에 세워진 망루는 제법 그럴듯 했다. 망루 위에는 석궁을 든 궁수들이 대기 중이었고, 울타리 밖에서는 도끼와 톱을 든 수백명의 벌목꾼들이 부지런히 주변의 나무를 벌채하는 중이었다.
" 이야, 이정도라면 설다네셀러와 전쟁을 벌여도 될 규모인걸. "
슈발츠가 감탄하는 동안, 한 무리의 [벌목꾼들(슈발츠가 방금 퇴치했던 것과 비슷한 무리들)]이 엘프 포로 몆몆을 염주알 꿰듯이 줄줄이 줄에 묶어 끌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차림새로 보건데 설다네셀러의 투사들로 보였다.
" 포로를 잡아 가네. 정말 전쟁을 한건가?... "/두르나
" 크르르... "/알루데시아
그때 갑자기 알루데시아가 담 너머의 [무언가]를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두 종류 뿐이다. 하나는 맛없는 음식, 그 다음이 베이어터 출신의 바테주다.
" 저 안에 숲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들이 있나 보군. "/슈발츠
" 그러게요. 알루데시아가 저렇게 으르렁거리는걸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으로 본 게 젤라노라가 크림치즈 케이크를 먹이려고 시도했을 때니까... 작년 가을이네요. "/두르나
졸지에 바테주와 크림치즈 케이크가 동급이 되는 농을 주고 받으면서, 슈발츠와 두르나는 숨어 있던 능선에서 벗어나 비탈을 타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르렁거림을 멈춘 알루데시아가 인간형으로 변해서 그 뒤를 소리도 내지 않고 따르기 시작했다.
" 웬놈이냐!? "
막 계곡 아래의 벌목장 경계 즈음에 닿았을 무렵, 비로소 슈발츠를 발견한 벌목꾼 중의 하나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들려 했지만, 단도 손잡이를 잡은 시점에서 날듯이 뛰어든 알루데시아의 글레이브에 목이 날아 갔다. 목을 잃어버린 벌목꾼의 몸뚱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벌목꾼들의 시선이 슈발츠 일행에게로 꽂혔다.
" 엘프다! "
" 잡아! "
슈발츠는 진전과 용수를 꺼내어 들었다. 그가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하기 직전에 두르나와 알루데시아가 그의 좌우에서 총알처럼 튀어 나가 벌목꾼들을 베어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 으헉!... "
" 드래곤이다... 으아악!... "
드래곤 치고는 좀 작지 아마... 하고 생각하며 슈발츠는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의 수비 범위를 벗어나 돌격해 들어오는 벌목꾼 둘의 무릎 아래를 잘라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제사 슈발츠를 발견한 망루의 용병들이 슈발츠 쪽을 향해 볼트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 아아악! "
" 으악! "
벌목꾼들 따위야, 그 숫자가 얼마가 되든 두르나 만으로도 충분히 정리가 가능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어서 달려오는 놈을 걷어 차 배를 터트리면서, 슈발츠는 용수를 집어 넣고 왼손을 뻗어 벌목꾼의 캠프를 둘러싸고 있는 목책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투명했지만 더없이 파괴적인 마력이 날아가 목책을 두드렸고, 다음 순간 목책과 그 뒤의 망루를 떠받치고 있던 기둥까지 한번에 박살이 나며 대폭음을 일으켰다.
쿠아앙!...
우드득!... 우드드드득!!!... 콰앙!!...
목책이 쓰러지면서 먼지 사이로 슈발츠가 다시 모습을 드러 내었다. 당연하지만 마법의 진로에 있던 망루 위에서 석궁을 쓰고 있던 경비는 땅바닥에 개구리처럼 패대기쳐졌다. 바닥에 패대기쳐진 자의 머리를 밟아서 당바닥에 지그시 박아 넣으며, 슈발츠는 텔레파시로 목책 밖의 정리를 두르나와 알루데시아에게 일임했다.
" 가끔은 이렇게 몸을 풀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
휘리리리릭!!..
" 으아아악!! "
" 크아악!! "
무너져 내린 목책 사이로 한걸음 들어가자 마자 한 무더기의 볼트가 날아왔고, 그 모두가 예외 없이 슈발츠의 몸을 둘러 싼 푸른 주화의 불길에 튕겨서 날아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볼트가 발사자에게로 되돌아 가면서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도 슈발츠에 근처에 접근하면 예외없이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팔다리나 몸통이나 목을 잃었다. 그의 손에 든 두 자루의 환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진 덕이다.
그럭저럭 하는 동안 슈발츠의 눈에 엘프 포로들이 갇힌 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예외없이 여자였고, 발가벗겨진 채 목에는 개목걸이가 걸려져 있었다.
" 아아, 이놈들의 다른 취미가 있었군. "
슈발츠는 손도 대지 않고 시선을 향하는 것 만으로 마력을 휘둘러 그들이 갇힌 우리의 문짝을 뜯어 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을 본 몆몆이 그제사 공포를 느끼고 주춤거리기 시작는 동안, 풀려난 엘프 포로 중 한명이 슈발츠에게 외쳤다.
" 도와주어 고맙소 이방인, 나는 설다네셀러의 숲지기인 잔다라 하운이라고 하오! "
귀에 익은 이름, 플로라의 어릴적 친구라는 여자였다. 슈발츠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목책 아래 걸려 있던 무기 보관대를 가리켰다.
" 그럴 필요는 없지만, 복수를 하고 싶다면 기회는 지금이오. "/슈발츠
" 당연한 말씀을! "/쟌다라
엘프들이 저마다 손에 익숙한 무기를 찾아 쥐는 동안, 슈발츠는 에버라스카의 아크를 꺼내어 엘프들을 저격하려던 궁수 몆명을 쓰러뜨렸다. 그러고 나서는 그들에게 맏겨 두면 될일이었다. 슈발츠는 눈앞의 석조 영묘의 입구를 통해 그 안으로 들어 갔다.
밖은 그렇게나 대소동이 났지만, 상대적으로 안쪽은 조용했다. 아니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게다가 문 안쪽으로 한발 내딛었을 뿐인데 사방이 어두침침했다. 이 부자연스러운 어둠과 정적은 부정적인 마법이 행해질 때의 특징이다. 알루데시아의 으르렁거림도 이 영묘 안으로 향해 있었다. 직감적으로 슈발츠는 이 영묘가 악마술에 의해 더럽혀 졌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슈발츠는 활을 집어 넣었다. 어두운 영묘의 복도를 걸어 가는 동안, 불길한 영기가 점점 더 짙어 졌다. 마침내 영기의 근원이라 생각되는 석제 문을 밀어서 열었을 때, 슈발츠는 불길함의 근원을 볼 수 있었다.
" 핏 핀드인가... "
" 브리큐러스라고 불러주게나. "
거대한 붉은 날개를 가진 데빌이 영묘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슈발츠를 내려다보며 우아하게 인사해 보였는데, 슈발츠도 마주 인사를 하고 나서 핏 핀드 쪽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 자네는 유명하더군. 헤일-자카람에게 들어 알고 있네. "/브리큐러스
" 내 정체를 안다면 내가 왜 여기 온 것인지도 알고 있겠군. "/슈발츠
" 아아, 불행히도. 나도 계약에 매인 몸이라서 말일세. "/브리큐러스
악마(타나리)와 달리 악귀(바테주)는 계약 엄수가 철칙이다. 그것이 불리한 싸움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슈발츠도 약속의 무게를 무겁게 여기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 계약이 뭔지 물어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슈발츠
" 음, 계약에 비밀 엄수 조항은 없었으니 상관 없겠지. "/브리큐러스
" 누구랑 뭘 하고 있던 건가? "/슈발츠
" 내 계약자는... 아직 그리 멀리 도망치진 못했겠지만, 여기에서 크게 사업을 벌리려고 했던 모양이야. "/브리큐러스
이어진 브리큐러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를 소환해 계약을 맺은 것은 자칭 [남작]인 번랩(Bunlap: 중도 악 인간 남성 파 7/ 로 1)이라는 악당이었다.
" 전사가 악마와 계약을? "/슈발츠
" 아아, 그는 마법엔 재능이 없었지만 우리의 방식을 잘 알고 있더군. 웬 근육질의 엘프 마법사도 그를 돕고 있었어. "/브리큐러스
잠깐의 태클을 넘기고 이어진 설명에 따르면, 브리큐러스와 마법사의 조력을 받은 번랩은 설다네셀러를 공격해 그 도시 내부를 분탕질 치고 많은 엘프 포로를 잡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약화된 그 도시가 빈타에 신음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나무를 벌채하기 위해 대규모의 용병까지 사들여서 요새화된 캠프를 짓고, 엘프들은 보이는 대로 공격해 노예로 삼는 방식을 고수한 것이었다.
" 듣자니 상당히 오랜 계약이겠구만. "/슈발츠
" 아아, 내일이면 일단 1차 계약 기간이 끝나는데, 재계약은 안할 생각이야. 엘프 마법사들의 마법을 대신 맞아 주는 것도 지긋지긋 하거든. "/브리큐러스
" 내일까지 기다려 주고 싶지만, 그 번랩이라는 놈과 조언자라는 마법사를 잡아야 할 것 같아. "/슈발츠
" 뭐 그렇겠지. 하지만 나도 계약을 지키는 만큼 허투루 할 수는 없다네. "/브리큐러스
슈발츠는 고개를 끄덕인 후, 양손에 환도를 꺼내어 들었다.
" 좋은 칼이군. "
슈발츠는 고개를 끄덕인 후 브리큐러스를 향해 도약했다.
싸움 자체는 무척 간단하게 끝났다. 예전이라면 핏 핀드를 잡는에 꽤 애를 먹어야 겠지만, 지금의 슈발츠는 마법을 쓰지 않아도 어지간한 마왕과 맞상대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동안의 드잡이질 후, 슈발츠가 날린 용수에 목을 잃은 핏 핀드의 거체가 소리없이 사그라 들었다. 그의 본래 차원으로 강제로 되돌려진 것이다. 그것과 동시에 영묘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악의 영기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환상술로 가려져 있던 벽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엘프들의 숲인데다 다름아닌 영묘의 한가운데이다. 당연하지만 순간이동류나 차원이동류 마법을 쓸 수 없는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때문에 도망친다고 해 봐야 직접 뛰어서 더 깊숙한 곳으로 숨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슈발츠가 핏 핀드와 농사리를 깔 수 있었던 것이다.
"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다 보며, 슈발츠는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 속의 곡조를 흥얼거렸다.
.
.
.
-후기-
이즈음의 슈발츠는 [그저 바라만 봐도] 군대가 몰살하니까요. 핏 핀드 따위.
소환된 악마들은 주 물질계에서 죽으면 완전히 파괴당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차원으로 강제로 되돌려집니다. 그리고 몸살로 한 보름쯤 고생하지요(그래서 브라큐러스가 무척 협조적이었지요. 져도 그냥 돌아가 버리면 그만). 이점은 정령도 마찬가지.
하지만 D&D 설정에서 [차원의 친구(성직자)] 주문이나 [차원 가둠(마법사)] 주문을 사용하거나, 혹은 더 고위의 주문인 [문(Gate)] 을 통해 직접 [부름]을 받은 이계의 크리처는 진짜로 이 세계로 완전히 넘어 오기 때문에, 그런 크리처는 전투에서 죽으면 정말로 죽습니다. 그 때문에 같은 소환류 주문이라도 지속 시간, 발동 비용, 효율 등등이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요.
참고로, 슈발츠의 노예 중 타 차원의 존재가 분명한 알루데시아나 수니 등도 [부름]받은 것과 같이 슈발츠에게 묶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