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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내가 사랑한 아이 -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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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511 회 작성일 24-01-17 06: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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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부스럭....
옆에서 소리가 나서 설풋 들었던 잠이 깼다. 비비면서 눈을 떴더니 하얀 등이 보였다.
[.....]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가 옷을 갈아 입는 중에 내가 잠이 깬 모양이다. 내 뒤에서 부스럭 거리던 소리가 잠깐 멈췄다. 그쪽도 내가 일어난걸 안 모양이다.
[.... 일어났나]
[....응]
부스럭부스럭!
다시 한동안 소리가 나더니 내 앞에 잘 개킨 면티가 놓였다.
[오빠꺼제]
[응? 응. 아. 몸은좀 괜찮나?]
[응....]
허둥대는 나와 달리 그애는 차분했다. 나는 별다른 오해를 사는게 싫어서 땀때문에 갈아 입힌걸 이야기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아무말 안하고 있어야 할지 고민하느라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젠장. 애초에 다 그렇고 그렇게 할려고 여관까지 잡고 들어왔던 거잖아. 왜 이제와서...
[오빠야 전화 계속왔는 갑더라]
[응?]
그제서야 나는 내 핸폰이 깜빡깜빡 점멸하고 있는 것을 봤다. 친구녀석들이 전화 걸었던 모양이네. 근데 잔다고 매너모드로 해놨었으니 ...
[마...마흔네통?]
전화기를 펴보고 나는 깜짝 놀랬다.
<부재중통화 44회>
친구. 친구. 친구. 친구. 모르는 번호 (아마도 공중전화?) 로 가득 찍혀있는 전화통.
뭐야 대체?
좀 어이가 없어서 삐삐 거리며 번호들을 확인하고 있으니 옷을 다 갈아입은 여자애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거 요즘 최신 모델이제?]
[응. 바꾼지 얼마 안됐다]
[좋겠다... 나는 전화기도 없는데]
[전화 없나?]
끄덕끄덕
조금 안쓰러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자애.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그 위에 턱을 얹은.
다리를 창쪽으로 돌렸기에 속옷을 보이지 않게 한. 귀엽고. 앙증맞은. 그런 모양이었다.
[집에 전화 안해도 되나?]
끄덕끄덕
[부모님 걱정하실긴데....]
도리도리
[어제 안들어 갔다이가? 내 전화 써라]
도리도리
[오래 써도 괘안타. 걱정말고]
[내....]
핸폰을 밀어주자 계속 대답 안할것 같이 하던 그애가 입을 열었다.
[집에서 내놨다]
[응?]
무슨말인가 잠시 갈피를 못잡다가 조금 뒤에 의미를 알았다.
나는 집에서 내놓은 자식이다. 라는.
[가출...한기가?]
끄덕끄덕
[.... 전에 어디서 살았는데?]
[양산]
[지금은 ?]
[희연이가 서면에 방 얻어 놨다]
희연이?
[아. 어제 청치마 입은 걔?]
끄덕끄덕
흠.
[너네 친구들도 전부 집 나왔나?]
끄덕끄덕
[괜찮은가 모르겠네... 가출한 아들한테 방 내 주더나?]
[희연이가 아는... 언니가 있어서. 그 언니가 구해줬다]
[방세는?]
[우리가 낸다]
[너거 돈은 있나?]
[번다]
[어떻게...]
어떻게 버느냐는 말을 묻다가 말아버렸다. 
가출한 애들이 돈벌 방법은 많지 않다. 아르바이트도 잘 써주지 않으니까. 그럼 남는 방법이라고 하면 뭐...
머리를 벅벅 긁고 있는 나에게 여자애가 갑자기 툭 던지듯이 말했다.
[오빠야]
[응?]
[어제... 했나?]
휘청!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침대 밑으로 떨어질뻔 했다.
[내. 내가 짐승인줄 아나! 아픈아 한테 그라게!]
[....]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말을 꺼낼게 없어서 애꿎은 전화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시계는 아홉시. 아침때는 진작 지나가고 있었다. 아침 생각을 하자 아닌게 아니라 배가 고파왔다.
[오빠야...]
[응?]
[어제... 오빠야였제]
[뭐가?]
[내... 아플때 안아주고... 같이 있어준거]
[아. 응.]
고개를 팔 사이에 묻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께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미미하게 흐느끼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저...저기. 내 딴짓 안했다. 니 옷 갈아입힌거는, 그냥 그대로 놔두면 더 아플거 같아서 그런거고. 그라고 딴짓은 안했다. 니 이름이 민지라 했제. 바라. 민지야. 내 맹세한다]
다소 당황한 나머지 나는 오른손 엄지를 이마에 대고 새끼 손가락은 천정을 가리켰다. 갑자기 떨리던 민지의 어깨가 뚝 멎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킥킥 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와...와?]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동안 민지는 그러고 있었다. 어전히 얼굴은 팔 사이에 묻고 있었지만 깔깔거리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기에 나는 안도감은 가질수 있었다. 적어도 여자애를 울리는 건 아니라는 거니까.
한참동안 침묵하던 끝에.
[오빠야....]
[와?]
[고맙다...]
[뭐가?]
[아이다. 그냥]
그러고는 다시 침묵.
[현수라고... 부르데]
덜컥 하는 소리가 난것 같았다. 하얀 스웨터로 복실복실한 어깨가 크게 한번 떨린다.
[니 전에 사귀던 놈이 가가?]
대답은 없었다.
[금마하고 잘 안됬나?]
다시 침묵
[니 이라는거 금마가... 니 찼기 때문이가?]
다시 침묵
하지만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니 이라는거 금마가 아나?" 라고 물을 뻔 했으니까.
아무 생각없이 던지는 말 중에서는 최악으로 상처를 줄 말이다. 답답하고 안도한 마음이 동시에 섞여서 길게 한숨을 뽑아냈다.
[후우....]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다 말고 나는 민지를 돌아 보았다.
[오빠 담배좀 피도 되나?]
끄덕끄덕
[창문 여까?]
도리도리
[목 안아프겠나?]
[오빠야]
[응?]
[나도 한대 도]
팔에 눈가를 슥슥 훔치며 민지가 얼굴을 들었다. 울어서 그런지 조금 초췌해 보이는 모습이다.
[니도 담배 피나?]
[가끔]
나는 말없이 담배에 불을 당겨서 건넸다. 주고나서 보니 이거 간접키스인가 싶었다. 민지는 멍하니 내가 내민 담배를 바라보다 입에 물고는 한모금 당겼다. 그리고는 살짝 눈이 동그래 진다.
[맛이 박하맛 나네?]
[멘솔. 나 담배는 항상 멘솔 핀다]
[시원하고 좋네]
[감기걸렸는데 목 안아프나?]
도리도리
[어제 푹 자서 다 나은거 같다]
[다행이네...]
연상되는게 있어서 나는 얼굴이 좀 붉어졌다. 밤 새도록 기사도 정신 발휘니 지랄이니 한답시고 쟤를 품에 안고 잤던것. 동그란 어깨. 머리에서 나던 샴푸냄새. 부드러운 감촉. 하나하나 되살아나 버렸다.
[오빠야.]
[으. 응?]
[얼굴 빨갛다]
킥킥 거리며 민지가 나를 놀렸다. 나는 짐짓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척 하며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아무래도 생각하다 보니 더 달아오른 모양이다.
[다른 오빠야들은 어제 다 갔제?]
[그런갑데]
[오빠야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거가?]
[아니. 나 그때 화장실에 있었거든]
[맞다... 내 잘때 문잠갔었제]
혼자서 끄덕거리며 납득하는 그애와 달리 나는 그제서야 골치가 아파졌다.
[아... 어제는 미안하다]
[뭐가?]
[아니. 내 친구들. 좀 이상하데. 금마들 그런놈들 아닌데 갑자기 그래 가지고 가버리데. 무슨일인지]
[오빠야]
[응?]
[괘안타. 한두번 있는 일도 아니고]
[....]
나는 그애가 말을 끊어서가 아니라 그 내용에 조금 질려버렸다. 그리고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되어 버렸다.
얘는 대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거지?
꼴꼴꼴꼴....
민지가 침대옆에 놓인 작은 생수병에서 물을 따라 마셨다. 후우. 하고 숨을 내뱉는 작은 분홍빛 입술이 귀엽다.
[배 안고프나?]
도리도리
[그래도 감기 완전히 떨어진거도 아닌데 뭘 좀 먹고 기운을 차리야지]
묵묵부답
[오빠가 아침 사주께. 먹으러 갈래?]
[......]
대답은 없었지만 뭔가 고민하는 것 처럼 보였다. 혹시 괜히 부담느끼는 건지도 모르겠군. 나 원. 어린것이 괜히 조숙한척 하기는.
[자자. 일나라. 아침 먹으러 가자]
나는 그러는 그애의 까만 단발을 톡톡 쳐 주었다.
[아...머리 치지 마라. 울리서 아프다]
[아. 미안. 어쨌든간에.]
나는 머리에 올렸던 손을 내려 팔을 잡아 민지를 일으켰다. 억지로 끌어당기자 그제서야 민지도 자기 힘을 더해 일어선다.
[참. 너네 친구들은?]
[가들은 지금 아침 못먹을거다]
[와?]
[어제밤에 술 먹는다고 나갔다. 열두시는 되어야 일어 날거다]
그러고보니 그랬지. 흠.


국제시장은 굉장히 가깝다. 어제 민지들이랑 만난곳이 용두산 공원이었고 거기서 산따라 내려만 가면 바로 남포동이다. 그리고 남포동에서 술먹고 노래방가고 놀다가 보수동 까지 올라갔다. 남포동쪽은 여관비가 너무 비쌌으니까.
여관비로 방 네개면 돈이 15만 가까이 된다. 조금이라도 싸게 칠려고 우리는 책방골목으로 유명한 보수동 주변으로 올라갔었다. 뭐. 그런것도 따지고 보면 다 허탕이 되어 버렸지만.
"하기야 애초에 일 자체가 웃겼지."
나나 친구들은 쾌활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질펀하게 노는 스타일도 아니다. 부킹의 달인들이 있는것도 아니고, 오는여자 안막는다는 적극적인 플레이보이도 아니다.
다만 다같이 있다보면 서로서로 허세를 부리는 식으로 나가고. 그리고 서로 잘나간다는 식으로 과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잘봐줘도 고등학교 3학년 정도 -물론 화장빨 덕에 얼핏보기엔 스물 두엇은 되어 보이지만- 나이로 보이는데 그런애들 데리고 그날 바로 여관 갈 생각을 했다니.
"아니. 땡긴다고 다 땡겨와준 걔들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되는건 아니었을거야"
속으로 은근히 정당화를 시키며 나는 앞에 놓인 돼지국밥을 열심히 퍽퍽 떠먹었다.
[먹을만 하나?]
[응]
생각도 못했는데 대답이 나왔다. 과연. 뭘 먹는 중에 끄덕끄덕은 안되는 모양이군. 나는 속으로 웃었다.
[비리지는 않나?]
[응]
[된장 너무 많이 들어간거 아니가? 안 짜나?]
[응]
[아직 속이 좀 안좋을텐데 조금씩 먹어라]
[응]
[남겨도 되니까]
[응]
도리도리 끄덕끄덕 대신에는 이제는 무조건 응이냐?
이건 이거대로 재밌네 싶어 나는 속으로 웃었다.
꿀꺽! 민지가 입안에 든걸 넘기고 살짝 골난 표정으로 입을 삐죽였다.
[오빠야]
[응?]
[말 고마 시키라. 밥좀 묵게]
푸하하하하.
 
식후 땡은 건강을 위한 불변의 진리다. 나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를 건네며 다시 담배 한대를 물었다.
[마시라.]
[아. 졸린다]
배가 불러서 나른해 진건지 아니면 남은 감기약이 몸에 돌아서 그런지 민지는 멍한 얼굴로 햇살 닿는 곳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먹고 바로 자면 소된다. 모르나?]
[바로 안잔다. 좀전까지 잤었는데]
[하긴. 먹고 바로 자면 얼굴 붓는다고 우리 누나도 안잘라 하데]
나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민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와?]
[아니]
나는 커피를 입에 가져다 댔다.
[어제는 얼굴이 부었던 거가?]
[응?]
[어제는 얼굴이 좀 통통해 보이데. 근데 오늘보니까. 갸름하네]
아닌게 아니라 붓기가 완전히 빠진 민지는 무척 예쁜 얼굴이었다. 나올때 그새 챙겼는지 엷게 바른 화장으로 피부는 투명할정도로 하얗게 보였고. 민지는 작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
[희연이 그 가스나가 어제 잘때 라면 먹으라 그랬다]
[라면?]
[응. 감기에 라면이 좋다면서]
[흠...]
매운걸 먹고 땀을 빼려는 방식이군.
[그래서 아침에 퉁퉁 부었다]
웃음이 나오는걸.
[지금보니까.... 민지. 예쁘네]
삭 고개를 돌려버리는 민지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함 하까?]
홱! 이번에는 완전히 몸을 돌려버리는 민지.
그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낄낄 웃어버렸다.
[밥 먹은거 되게 오랫만인거 같다]
[응?]
고개를 갸웃거릴수 밖에 없는 말.
[밥 안먹고 머 먹는데?]
[밥 말고... 라면이나... 빵이나... 어제처럼 사람 만나면 로바다야끼에서 안주 먹어서 배 채웠다]
[너거...]
또 이렇다. 농삼아 던진 말에 농담으로 들을 수 없는 말이 대답으로 돌아온다. 나는 저 말이 가지는 의미에 잠시 침묵해 버렸다.
가출소녀 넷.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을리가 없겠지.
[민지야]
[왜]
측은하다고 할까. 아니 안쓰럽다고 할까. 가만히 볼수 없는. 물가에 내다놓은 어린애 같은. 가만히 두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것 같은.
그래서 아마 그 말은 쉽게 나왔던 것 같다.
[니 내랑 사귈래?]
민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니 마음에 든다. 귀엽기도 하고. 또 이쁘고. 그라고 니랑 있으면 재미있을거 같다]
민지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바로 대답 안해줘도 된다. 오빠 전화번호 주께. 니가 생각 나면 연락해라]
대답하지 않았다.
[오빠는... 니 지켜주고 싶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전에 사귀던 놈이 있었던 것도 같다. 내 가슴에 안겨서 그렇게 애절하게 불렀던걸 보면 아직 안 끝난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애가 좋았다. 가능하다면. 지켜주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오빠는.... 내 어떤앤지 모르잖아]
[모르면 알면 되지]
나는 바로 대답했다.
[오빠랑.... 내 어제 처음 봤다]
[앞으로 자주 볼거다]
민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민지 니는 오빠야 싫나?]
대답하지 않았다.
[니가 오빠가 싫어서 그러는거 같으면 괜찮다. 그라고... 바로 연락 안줘도 괜찮다. 오빠 기다릴 수 있을거 같다]
[오빠야... 내 이제까지 어째 살았는지 알잖아]
[...그거야...]
이번에는 나도 바로 대답하지는 못했다. 충분히 그 의미가 짐작이 갔었으니까.
공원에서 처음 만난 남자들과 그날 밤에 바로 여관으로 가는 애들.
얌전하고 착하게 살았을리는 없다. 꽤나 많이 굴러 먹었을 테지. 어쩌면 병이 있을 지도 모르고.
담배를 두어모금 빨고 나서 말했다.
[상관없다.]
후우....
내뱉은게 한숨인지 담배연긴지 모르겠다.
[니가 이제까지 어떻게 살았고. 그런거 다 상관없다. 오빠는. 니가 좋다. 그래서 사귀고 싶다. 내랑 사귄 다음부터는 안 그라면 된다]
[.....]
[니 아직 학교 졸업 안했제?]
끄덕
[조금 이르긴 한데. 괘안타. 오빠 노력하면 니 하나는 먹여 살릴수 있다. 방 하나 구하면 되고. 거서 같이 살면 되고. 니 다시 학교 다니라. 아니면 검정고시 치든가. 오빠가 다 대줄수 있다]
[오빠는...]
갑자기 고개를 숙인채 민지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런 말 하는데...]
[몰라. 그냥. 아니. 방금 말햇잖아. 니가 마음에 든다고. 니가 좋다고. 그래서 사귀고 싶다고. 그냥 그게 다다]
민지는 다시 말이 없었다.
[내가 좀 바보라서 그런가 모르겠는데. 나는 한눈에 반하면 상대 가마 안놔둔다. 그라고 니한테 한눈에 반한거 같다]
담배를 한대 다 피고. 다시 한대를 입에 물었다.
답답할때는 주로 줄담배가 된다. 그 한대를 완전히 다 태우고 바닥에 비벼 끌때 민지가 입을 열었다.
[오빠야]
[응]
[오빠야 친구들 어제 갑자기 간거 알제]
[응]
[왜 갑자기 갔는지 아나?]
[아니]
[왜 갑자기 다른 오빠야들이 내 친구들한테 욕하고. 씨발씨발새끼야 하고. 그랬는지 아나]
[....]
이번에는 내가 할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내 친구들 원래 그런놈들 아닌데. 나중에 머라 하께]
[그뜻 아니다]
민지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들었다.
아.
그순간에 잠시 나는 숨이 막혔다.
하얀 얼굴에 흐르는 두줄기 눈물.
화장이 약간 얼룩져 있기는 했지만 초가을 오전 햇살을 뒤에서 받은 민지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그 얼굴에는 웃음도. 울음도 아닌 이상한 것이 걸려 있었다.
마치 절망같은. 혹은 체념같은.
그러면서도 뭔가 바라는것 같은.
상처입은 동물의 눈동자.
[오빠야는 아직 몰라서 그란다]
[뭘?]
민지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부스럭 거리며 종이 한장을 꺼내 거기에 뭔가를 적어 주었다.
010-XXX-XXXX
[먼데?]
[희연이 전화번호]
[희연이?]
[내... 잘 모르겠다. 오빠 그말. 오빠 아직 모르니까. 믿어야 되는지. 어째야 되는지]
[내는 진심이다]
도리도리
[오빠는 아직 모른다]
[뭘? 대체 뭘?]
또 그말이다.
하지만 민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쥔 종잇조각을 가만히 받쳐 들고 있을뿐. 아무래도 고민하는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홱 뺏아 들었다.
[아.....]
[일로 전화하면 되나?]
[......]
끄덕
[근데 희연이 전환데. 네가 받을수 있나?]
[일주일...]
[일주일?]
[일주일 뒤에 전화해라]
민지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착 가라 앉아 있었다. 소리도 작아서 마치 중얼거리는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다.
[그때... 희연이한테 전화 빌리께. 하루동안 빌리가 전화 기다리 보께. 오빠가 진심인가 아닌가]
[나는 진심이라니까]
홱홱!
이번에는 도리도리 정도가 아니라 거세게 머리를 휘저었다. 몸 전체로 뭔가를 부정하는 모습에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오빠야]
[응]
[고맙다]
느닷없는 말에 나는 좀 벙벙해 졌다.
[어제 오빠야 때매 진짜 좋은 꿈 꿨다]
[응.... 아. 그거는...]
[진짜 고마웠다. 아플때. 힘들때. 오빠야가 마침 옆에 있어 줘서... 민지 좋았다]
뭔가 대답하기 힘들었다. 그런 무거운 공기.
[다음주에.... 기다리 보께... 오빠가 전화 안해도.... 내 오빠 원망 안할거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나는 이해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건드리면 깨져버릴것 같은. 예리예리한 공기가 민지 옆에서 흐르고 있었다.
[내 간다. 친구들이 기다릴거다]
토박토박.
민지가 골목을 걸었다. 뭔가 다가오면 안된다는 그런 느낌을 주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초가을 아침의 바람이 추운지 두팔로 자기자신을 끌어 안은채로.
[민지야!]
갑자기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민지 옆에 있었던 이상한 공기가 다 깨져 나간 다음. 민지가 걷기 시작한 다음에야 겨우 움직일수 잇었던 미련한 발이다.
나는 전력으로 뛰어서 민지의 어깨를 와락 잡았다. 그리고.
그 새하얀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
멍한 얼굴의 민지를 보며 나는 씩 웃으며 영화처럼 엄지손가락을 쓱 치켜세웠다.
[다음주에 전화하께. 자지말고 꼭 받아라]


 



이날의 말을 나는 후회하게 된다. 무척이나.
몇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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