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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련사 로크란 07 (환관 카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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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466 회 작성일 24-01-16 20: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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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宦官) 카이만


#02-07 : 개조련사 로크란


제국의 중심 "황도"에서는 주식이 되는 밀이나 쌀과 같은 가장 근본적인 상품에서부터, 마법도시 "루비안"의 천문학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아티팩트(마법도구)까지 모든 것이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업의 규모를 접어놓고 생각한다면,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역시 서비스업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보기 힘들정도로 거대하고 고도로 발달된 유흥산업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냥감이 있으면 그들을 노리는 포식자들이 모여들듯, 아니면 지나칠 정도로 농익어버린 과실의 썩은 부분에 벌래때가 끌려모이듯, 위대한 제국의 수도 "그레이트 레오니아"의 화려한 불빛이 빛나면 빛날수록 그 그림자의 깊이도 깊어져갔다.


물론 황도의 치안은 무척 뛰어난 편이었으나, 도시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나는 크고 작은 술집과 유곽들 모두에게 손을 뻗히기는 무리였으니, 여기에 밤 세계의 이권을 탐하는 음습한 무리가 기생하기 시작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적길드. 이들은 오래전부터 밝은 세상의 그림자속에서 살아가며 세상의 크고 작은 정보들과, 갖가지 지저분한 심부름에서 살인청부나 암살까지도 다루는 뒷세계의 조직이었다.


현재 황도의 밤거리는 세 개의 조직 "웃는 초승달(grinsen halbmond)", "두개의 손톱(zwei nagel)", 그리고 "흑맥주의 형제들(brothers of blackbeer)"에 의하여 삼등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바로 지금 그 밤의 조직중 하나인 "두개의 손톱"의 한 남자가 누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가 자신을 두개의 손톱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오른손의 검지와 약지의 검게 물들인 손톱은 다름아닌 도적길드 두개의 손톱의 표식이었다. 로크란은 어쩌다가 이런 위험한 무리와 엮여 버렸는지 정말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어떻게 할껀가?"


담배진이 잔뜩낀 누런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말하는 이 남자의 얼굴에는 승락이나 동의를 구하는 선택의 의미따윈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확인의 대답만을 기다리며 그저 우월감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예. 제가 지금 어쩔수가 있겠습니까?"


로크란은 목구멍속에서 튀어 나오려고 요동치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 제안이야 말로, 생각하지도 못했던 구원의 손길이 저절로 굴러들어와준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하지요."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도적길드의 지저분한 쇼파 위였다. 로크란은 평소 자신이 자랑을 해도 될만큼 술이 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착각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기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술을 마셨던 것 조차 기억 못하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유곽에서 끌려 나와 경비군 사내의 목에 단도를 쑤셔넣고 하수도로 숨어들었다가 재수없이 걸인들을 만나 쫓겼던 것까지는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났지만, 그다음에 그들을 피해서 여기 도적길드의 소굴까지 도착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를 붙잡은 걸인들이 이자들에게 자신을 팔아넘긴것인지 도무지 그 부분이 기억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자아 그럼 여기에."


그런 로크란에게 이 남자가 제안한 것은 놀랍게도 그를 도와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공짜는 아니었고 대가가 요구되었는대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노예계약서"


그가 이것을 거절 한다고 해도, 이들은 그저 그를 경비군으로 끌고가서 포상을 받아내면 그만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더 안전하고 간단한 일이었을지도 몰랐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가장 잘풀린 것이 교수형일테고, 보통은 살껍질이 벗겨진체 메달려 하루종일 고통을 내뱉으며 죽어가거나, 투기장에서 관중의 야유를 받으며 개 돼지처럼 처참하게 도살당하고 말 것이다.


로크란은 살짝 이마를 찡그린체 사인을 하고선, 지저분한 누런 이빨을 활짝 드러낸체 미소짓고 있는 사내에게 노예계약서를 건내주었다. 사내는 사인한 부분을 손등으로 가볍게 두드리고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아. 그런 표정 짓지 말게나, 그저 보험에 든다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니까."


"..."


분명 노예계약서에 서명한다는 것, 곧 노예가 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 분명했지만, 지금 로크란이 처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남자의 말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뭣보다도 그는 이미 경비군을 살해한 중죄를 범해버리고 말았으니, 이 계약서로 인해 설사 진짜로 노예가 되버린다 해도 더 이상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리고 설사 이들이 결국엔 자신을 노예로 삼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미 힘과 주도권은 모두 그들에게 있었다. 어찌보면 오히려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감수해가며 그를 도와주는 것에 감사를 해도 모자랄 상황이었다.


결국 아무런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의 그에게 주어진 최후의 선택이긴 했지만, 동시에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왜일까?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의 머리속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이분께서 자네를 안내해주실 걸세."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소름이 돋아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그 알 수 없는 예감이 사람의 모습을 빌려 현신한 것처럼 그녀의 모습은 기이하게 보이고 있었다.


"우후훗. "벨라도나"라고 불러주세요."


그녀는 요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인사를 했다.


* * *


도적길드가 로크란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황도에서 탈출 시켜 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를 경비군의 수사가 수그러들 때 까지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는 것이었다.


로크란에게 황도는 용병일을 하면서 상단의 이동이 운좋게 맞아 떨어질 때에나 들릴 수 있는 곳에 불과했으나, 이들 도적길드는 이 도시에 근거를 두고 있었으니 당연히 수많은 아지트를 가지고 있을 터였고, 이들에게 그 하나 정도 숨겨주는 일은 간단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탈출하는 쪽이 로크란의 입장에서는 휠씬 좋았지만, 그건 이들뿐만 아니라 로크란 본인에게도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아마도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줄 공산이 컸다.


하지만 이 여인이 로크란을 데려간 장소는 곳은 그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곳이었다...


"황궁이라니..."


마치 삶을 달걀의 한쪽으로 치우친 노른자처럼, 완만한 타원을 그리고 있는 도시의 한 쪽으로 달라붙어 있는 황궁은, 내부 거주자만 몇 만명이 넘어 그 수만으로도 변두리의 왠만한 작은 왕국의 전체 인구보다도 더 큰 곳이었다.


어찌보면 참 기발한 도피처라고 할 수 있었다. 수배자가 황궁속에 숨어 있을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으랴? 물론 두렵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이 매혹적인, 하지만 어딘가 모를 위험함이 느껴지는 여인은 별 다른 어려움 없이 그를 황궁안으로 데려왔다.


물론 로크란은 수배따윈 받고 있지도 않았었지만...


그리고 지금 그를 안내해주고 있는 "벨라도나"라는 여인은, 평소의 로크란이었다면 벌써 집적거리고도 남을만한 미녀였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 데에다가, 이 여인은 아름답고 요염하긴 했지만 동시에 뭔가 알 수 없는 기품과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과 행동 하나 하나가 마치 그의 머리속 깊숙한 곳 어딘가에 감금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단 한번 먼 발치에서 보기만 했더라도 잊을 수 없었을 텐데, 도무지 기억나질 않았다.


"혹시 우리 어디선가 본적이 있지 않았던가요?"


로크란은 어렵게 말을 꺼내어 그녀에게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글쌔요, 저는 당신을 본적이 없는데, 당신은 나를 본적이 있다면 그건 어디서 였을까요? 후훗."


자신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미녀의 얼굴이라면 솔직히 여자를 파는 곳에서 보았던 것이기 십상이었지만, 아무리 막되먹은 남자라해도 초면의 여자에게 혹시 유곽에 있었지 않았냐, 물어볼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크란의 다물어진 입은 얼마후 다른 이유로 인해 열릴 수밖에 없었다.


"여. 여기로 왜 온겁니까?"


로크란이 당황한 기색을 애써 억누르며 조용히 귓속말로 물어보았고, 그녀는 여전히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간단히 대답했다.


"그야 볼 일이 있으니까 온거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제 1궁전 검궁(劍宮), 소드 팰리스 내궁에 위치한 높은 탑꼭대기의 "텔레포트"마법진 관제소였다. 텔레포트는 먼 거리를 한 순간에 이동할 수 있는 편리한 마법이긴 했지만, 그만큼 사용하기 힘든 마법이기도 했다.


평범한 용병 나부랭이에 불과한 로크란이 아는 바로도, 텔레포트 마법진은 그걸 직접 구동시킬 수 있을만한 고위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 제국의 고관이나 왕족등급의 고위 귀족, 혹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거상들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그들 조차도 아주 급한일이 생겼을 때나 사용할만한 것이었다.


"그 볼 일이라는 것이 설마 이건가요?"


로크란이 탑의 옥상에 그려진 복잡한 마법진으로 눈짓하며 나직하게 말하자, 벨라도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예 당연히 이거죠. 당신을 도와드린다고 했잖아요? 자아 가운대에 서세요."


로크란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체 마법진의 가운대에 가서 섰고, 곧 보라색과 검은색이 조합된 로브를 걸친 두 명의 대머리 남자가 벨라도나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벨라도나님 저희 둘만으로는 힘들것 같습니다만."


벨라도나는 화사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걱정말아요. 어차피 저쪽에서 끌어주는 반송(半送) 텔레포트인데다가 나도 서포트 해줄테니까요."


"아아. 뭐 그렇다면야..."


이 두 사람의 환관은 제국 "마학부(魔學府)"의 상급마법사들로, 무려 5서클의 경지에 올라있는 고위 마법사들이었으나 로크란이 그런걸 알리가 없었고, 그들과 벨라도나의 손짓과 영창이 시작되자 서서히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이 빛을 내뿜끼 시작했다.


순간 온몸에서 흩어지는 듯 아련한 느낌이 들었고, 시아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부웅 떠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리고 서서히 어두워지며 정상적인 시아를 되찾아가는 그의 눈동자속에 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또 하나의 놀라운 미녀가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매는 도저히 감출 수 없을 정도로 육감적이었지만,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보라빛 머리를 세갈래로 땋아 묶고 있는 갸름한 얼굴은 무척이나 청순해 보였다. 물론 그녀가 쓰고 있던 커다란 뿔태 안경은 그다지 잘어울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어떤 남자도 그런것 따윌 문제삼진 않았을 것이다.


"아... 예."


로크란은 당황한 나머지 멍청하게 대답하고선 얼어붙어 버렸다. 잠시후 그녀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기..."


"예. 예 말씀하십시오."


"조금 비켜주실레요?"


로크란이 화들짝 놀라며 한걸음 옆으로 움직이자, 그녀는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마법진에서 비켜주세요. 벨라도 데려와야 하니까 말이죠."


"아. 예!"


로크란이 마법진에서 비켜서며 이 새로운 미녀에게서 눈을 떼자, 그제서야 주변의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마치 왕의 성처럼 커다란 저택의 꼭대기에 솟아 오른 3개의 탑중에 한 곳이었다. 울창한 삼나무 숲속에 위치한 이 저택의 뒤쪽에는 거대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그야말로 그림속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저택의 앞에는 잘가꾸어진 정원과 커다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고, 샤파이어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수영장 한 가운대에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분수가 놓여져 있었다.


"으음... 그러니까 당신 이름이...?"


보라색 머리의 미녀는 무슨 글씨라도 쓰듯 한 손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그에게 말을 건내왔다.


"아... 로. 로크란. 로크란 홀이라고 합니다만..."


"후훗. 네 홀씨. 으음 로크란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휘적거리는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나온 기묘한 빛이 허공에서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고, 그것에 호응하듯 바닥에 세겨진 마법진에서도 희미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 예 무. 물론!"


"네 고마워요. 저는 "엘비"라고 해요."


이 엘비라는 미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그녀가 마법사임은 틀림 없어 보였다.


"아 네 엘비님."


로크란이 예의 바르게 그녀에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자, 그녀는 놀고 있는 한 쪽손을 우스꽝스럽게 휘휘 젓고는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엘비라고 불러주세요."


걱정하고 있던것과 너무나 다른 일만 벌어지니 기뻐해야 마땅했긴 하지만, 그것이 너무 크게 예상에서 빗나가고 있으니 왠지 순순히 기뻐하기가 힘들었다. 로크란은 그녀의 친절해보이는 미소에 힘입어 그녀에게 살짝 질문을 해봤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녀는 여전히 한손을 허공에 휘적거리며 꾀꼬리가 노래하는 것처럼 발랄한 음성으로 대답해주었다.


"으흠. 사택...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니까, 뭐 알기쉽게 "학교"라고 해두죠."


"학교... 인가요?"


"네엣."


그녀가 귀여운 콧소리를 곁들이며 대답하는 순간 마법진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그 속에서 묘하게 익숙한 얼굴의 붉은 머리 미녀가 걸어나왔다.


"안녕. 벨라~"


보라색 머리의 미녀 엘비가 한손을 살짝 흔들며 말했고, 벨라도나는 소녀처럼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어머 어머. 그거 새로한거야? 예쁘네. 어디 어디."


예쁜 옷이나 장신구라도 만지듯이 엘비의 머리카락과 뺨을 더듬어 대는 그녀의 모습은, 천상 시장판에 널린 물건들을 보고 호들갑을 떠는 시골소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저 여자 저런 모습도 할 줄 알았나?"


분명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한순간 왠지 그녀의 본모습은 저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알라우"도 안녕. 그동안 잘있었니?"


엘비는 벨라도나가 머리에 꽂고 있던 빨간꽃이 무슨 강아지라도 되는 양, 손끝으로 꽃잎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말을 걸었다. 그녀의 손길이 와닿자 한 순간 빨간꽃이 살아있는 동물처럼 파르르 떨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건 아마도 손가락끝에 꽃잎이 걸려서 그렇게 보였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 순간.


"부우우우웅!"하며 떨리는 커다랗고 괴상한 저음의 소리와 함께 대기의 떨림이 피부와 와 닿았다. 그리고 곧바로 저택의 창문들이 일제히 "짤깍짤깍"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뒤이어 "쿠웅!"하는 둔중한 굉음과 함께 호수에서 커다란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깜짝 놀란 로크란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하지만 벨라도나와 엘비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여전히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다.


"어머? 엘비언니 뭐야 방금?"


"아아아... "마키나"가 또 새로운 장난감을 만들어서 한창 실험중이야."


"후흥? 마키나가? 또 뭘?"


"새로 만든 골렘에다가, 자석을 쭈욱 늘어놓은 다음 그 반발력을 이용해서 강철포탄을 발사하는 대포같은걸 달아놨지 뭐야. 그게 말이지 꽤 대단하더라고, 자석들의 온도를 낮추어서 전자기력의 전도율을..."


"헤에... 하지만 나는 마도과학따위엔 관심 없으니까 캔슬."


"아아. 어쨌든 일주일 전에는 비실비실거리는 것같더니 이젠 꽤나 시끄러워져 버렸지 뭐야. 후후훗."


엘비는 호수위에 일렁이는 커다란 파문을 바라보고 있던 로크란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음... 그런데 뭐야 저 로크란이란 남자는?"


"우후훗 선물."


"흥 기집애, 선물 좋아하네. 먹던 도시락 버리긴 아깝고, 애라 모르겠다 그냥 가지고 가자 하고 싸들고 온거 아냐?"


"에이 설마요. 그런데 언니 "키에리아"님은요?"


"키에리아? 키에리아는 어제 자러갔어."


엘비가 대답하자마자, 벨라도나는 곁눈질로 로크란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아아... 그럼 정말 어쩔 수 없이 도시락이라도 까먹어야겠네."


"어쩔 수 없긴 뭐가 어쩔 수 없어 분명히 일부러 그런걸꺼야. 마법진값 물어내 이것아!"


엘비가 두 볼을 잔뜩 부풀리며 신경질을 냈지만, 벨라도나는 여유롭게 미소지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후흥. 그럼 엘비언니도 나랑 같이 까먹든지요."


"시끄러, 이 기집애야!"


아래를 내려다 보던 로크란은 문득 저택 뒤쪽 정원의 꽃밭을 거닐고 있는 한 무리의 소녀들을 발견했는데, 그녀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그의 등뒤에서 엘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크란씨 아이들에게 손대면 내가 혼내 줄꺼에요. 놀고 싶으면, 여기 여기 벨라한테나 놀자고 하세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미풍속에 아름다운 보라색 머리를 휘날리며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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