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영웅-(부제: 로얄 블러드) - #20 T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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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이 오고나서 1개월.
본격적인 봄이 시작되었다.
저항군의 진지에도 봄에 맞추어 다들 분주해져 갔다.
"이제 슬슬 저항 활동을 다시 시작할 때가 되었어요."
로자리아 왕녀가 지도를 연병장에서 아침훈련을 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신병들을 훈련시키고 재정비를 하느라 바빴다.
무엇보다 겨울동안에는 군사들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였기에 신병훈련과 정비 이외에는 다른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예, 전하. "
왕녀의 곁을 보좌하고 있던 드골 장군이 말을 받았다.
"오라버니는요?"
"평소처럼 회의에는 참가를 하신다고 하셨지만 아직까지 작전에 참여하실 생각은 없으신것 같습니다."
로자리아 왕녀가 곧 있을 작전회의의 란셀롯의 참석여부를 묻자, 드골이 공손히 답해주었다.
"하긴. 그럴 수 밖에 없겠죠. 구출되신지 6개월이 지났지만 그 정도가지고는 완벽하게 몸을 회복하실 순 없었을테니까요."
로자리아는 드골의 말에도 놀라지 않고 대답하였다.
"그래도 좀 아쉽군요. 그 분의 지략이 보태진다면 좀 가시적인 발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요."
현재 저항군 안에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많이 산적해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의 로자리아에게는 그런 일들을 전부 혼자 떠맡기에는 힘이 부쳤다.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해도 로자리아는 이제 고작 19살.
무엇보다 그녀 혼자서 처리하기에는 일이 너무 많았다.
때문에 그녀는 한때 저항군의 최선봉이었던 란셀롯이 가세한다면 뭔가 큰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그녀의 오라비인 란셀롯은 그 혼자만의 몸을 추스리는 것도 벅차보였기에 약간 아쉬웠다.
(무엇보다 오라버니가 오신다면 좀 더 왕족파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 저항군 내부엔 로자리아 자신에게 충성을 하는 왕족파와 로드리아의 구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신료(귀족)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비교적 젊은 군사들로 이루어진 로자리아 등을 지지하는 왕족파는 급진적이었다. 그에 비해 신료파들은 언제나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향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 두 집단은 서로를 견제하거나 보완을 해주며 아직까지는 올바르게 저항군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뭔가 변화가 필요해. 현상태로 상황이 굳어진다면 저항군의 미래는 절망적이야.)
로자리아는 최근 들어 신료파의 입김이 강해지며 그녀를 향한 압박이 강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번만은 우리들끼리 작전을 실행하기로 하죠."
"네, 전하."
로자리아는 훈련에 열중하는 신병들에게 눈을 떼고는 드골과 함께 작전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후...
다시금 활동을 재기한 저항군들은 제국군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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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봄이 되니까 잠잠하던 녀석들이 다시금 들끓기 시작하는군."
보고서를 읽는 제르비아 제국의 대장군 가브리엘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그는 "멋쟁이 장군"이란 별명이 있는 제르비아 제국 최고 사령관이었다.
이제 중년의 나이의 그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출세를 한 인물이었는데,
그의 뒷배경이 막강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의 능력 또한 출중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가브리엘 경."
가브리엘를 향해 다가오며 말을 하는 이가 있었다.
"파멜경..."
그 사람은 바로 파멜 추기경이었다.
파멜 추기경을 바라보는 가브리엘의 얼굴이 혐오감으로 절로 찌푸려 졌다.
파멜 수석추기경.
제르비아 제국을 지탱하는 황교 세력을 대표하는 정체불명의 대신관.
뛰어난 언변과 정치적인 언변을 통해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키우는 야심가.
황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집어넣은 체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그를, 가브리엘을 비롯한 군부는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곳은 무슨 일이오?"
그곳은 군의 주요인물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최고 작전 회의실이었다.
그런데 외인이라 할 수 있는 파멜 추기경이 왜 그곳으로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안 그래도 군사 작전에도 자꾸 찝쩍거리는 파멜의 행동이 이전부터 거슬렸던 가브리엘은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물어보았다.
"이런, 이런~. 제가 못 올 곳이라도 왔습니까? 저는 엄연히 황제 폐하의 최고 보좌관인데요."
자신이 미움을 받고 있다는 걸 뻔히 알텐데도 파멜 추기경은 유들 유들한 태도로 가브리엘의 질문을 받아 넘겼다.
(최고 보좌관은 정치적인 식견을 피력할 때 뿐이지, 군사작전은 엄연히 우리 군부 소관이란 말이오!)
군부까지도 마의 손아귀를 뻗어오는 파멜이 못마땅한 가브리엘은 그렇게 호통을 치고 싶었으나, 직급으로 따졌을 때는 파멜의 지위가 대장군인 그보다 더 높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대장군은 황제의 바로 아래의 직급이라 그보다 더 큰 직급이 있을 순 없었다.
공작급의 지위를 가진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대장군이란 자리는 황제라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였다.
적어도 군부에 있어서 대장군은 그 이상이란 존재할 수 없는 최고의 자리였다.
하지만 최고 보좌관이란 자리를 파멜이 만든 뒤 황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파멜는 황제보다 더한 불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게 되었다.
이미 모든 정치세력들은 파멜의 손아귀에 떨어진 상태.
그는 이제 군부에까지 손을 뻗으려 하고 있었다.
"현재 반적들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시스 왕국에서 몰래 보급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멜 추기경은 음흉하게 킬킬 웃으며 말을 했다.
냉정히 자신의 식견을 피력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모든 상황을 전부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했을 때 오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음!"
그의 판단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록 파멜이 못마땅하다 하더라도 가브리엘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가브리엘 역시도 그렇게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만 군부에서도 최근에야 알아낸 사실을 파멜 추기경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가브리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
도대체 파멜 추기경의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
가브리엘은 은근한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파멜의 정보력과 능력은 그의 상상을 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멜 최고 보좌관께서는 어떤 대안이 있으신 것이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상대의 능력이 뛰어난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의 의견을 들어둘 필요는 있었다.
때문에 가브리엘은 파멜의 대안책을 물어보았다.
대규모 군사행동을 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보급이 그 무엇보다 필수적이다.
비록 로드리아의 잔당들이 소규모 게릴라전을 주특기로 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병사들을 유지하고 운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보급이 우선시되어야 하며 선결되어야 할 문제라 할 수 있었다.
현재 가브리엘이 고심하는 문제도 어떻게 이시스국으로부터 몰래 넘어가는 보급들을 끊고,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반적들을 괴멸시키냐에 있었다.
"이시스 왕국에 좀 강하게 압박 가한다면 완전히 끊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자연스레 보급을 줄어들게 만들 순 있을 것 입니다. 그럴 때 맛있는 먹이를 던져준다면 먹을 밥이 없어진 들쥐들은 결국 모습을 드러낼 수 밖에 없겠지요."
파멜의 비유 섞인 말에 가브리엘의 뇌리에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그 말은 즉 밥줄을 끊은다음, 쥐덫을 만들라는 말인가?"
"쥐덫이라...그거 이 상황에 딱 맞는 좋은 말이군요. "
파멜은 가브리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킬킬킬 웃어주었다.
"그렇습니다. 가브리엘경. 로드리아의 잔당들을 싹쓸이할 거대한 쥐덫을 만드는 겁니다."
파멜은 가브리엘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흠...괜찮은 아이디어야. 아니 잘 하면 반적들을 싹쓸이할 좋은 기회이지.)
비록 파멜은 싫었지만 그의 그 대안은 나쁘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인 뒤, 파멜과 함께 보다 세부 사항에 대해 검토하기를 바랬다.
(클클클. 역시 가브리엘 경은 생각이 트였어. 내 생각이 적중했군.)
파멜 추기경은 원래부터 그러기위해 참석한 자리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브리엘과는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은 그 후 구체적인 작전이 수립되자, 곧 최고 수뇌부들을 불러 작전을 시행하도록 명하였다.
그렇게 무서운 함정의 그림자가 저항군의 위로 드리워 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