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영웅-(부재: 로얄 블러드) - #5 새로 찾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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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왠지 개운치 않는 눈으로 잠에서 깬 란슬롯은 전날밤의 추태를 떠올리며 쓸쓸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결국 그 후 자기 혼자 처리하긴 했지만..."
성욕은 수면욕과 식욕과 함께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였다.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해도 풀어버리고 싶은 욕구는 충족을 시켜줘야만 했다.
여자를 모른다면 모를까 이미 경험이 있는 란셀롯 같은 성인남성에게는 그러한 욕구는 쉽지 않은 유혹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란셀롯은 그 스스로 그 성욕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 행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았지만..."
성인남성이라면 여성이 없을 시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자위행위 정도는 당연히 숙지하고 있었고, 란셀롯 역시 그 행위에 충실해 전날 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리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었기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꺼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자위의 대상으로 한 것이 하필 그녀라니...."
처음엔 이전에 그가 겪어보았던 여체와 함께 그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버터처럼 부드러운 살결,
갖 구워낸 빵처럼 푹신 푹신한 육체,
젤리처럼 탱글거리는 젖가슴,
촉촉하고 말랑 말랑한 입술,
끈적이며 뜨거운 혀,
그리고 그런 혀처럼 뜨겁고 푹 젖은 여성의 음부.
그러한 것들을 상상하며 고조되는 성욕과 쾌감...
오랫만에 느껴보는 쾌감에 마약에 취한 듯 기분이 너무나 좋아졌다.
조금 아직 성치 못한 팔목의 근육이 시큰거렷지만 사정할 듯한 조마 조마한 쾌감에 그러한 고통 정도는 쉽게 잊을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메이리였지."
행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자 자신을 정성껏 닦아주던 메이리의 손길이 생각났고, 그녀의 부끄러워하던 얼굴이 연상되어져갔다.
그리고 폭발...!
하지만 너무나 기분 좋아져야만 하는 그 행위가 그만 죄악감의 나락으로 끝나고 말았다.
"하필이면 가장 마지막의 마지막에 생각되어진 것이 그녀라니..."
그랬다.
그가 그토록 개운치 못한 얼굴이 된 것은 행위의 마지막에 그녀가 연상되어졌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그녀가 내가 안겨왔을 때, 약간의 땀냄새와 꽃향기가 났었지. 아니 그건 피냄새였었나?"
무한히 계속될 것 같았던 암흑과 고통의 나날들 속에 서광을 비추듯 나타난 그녀.
"그 때의 그 향기, 내게 안겨들던 그 부드러운 육체를 마지막의 마지막에 상상하다니..."
란셀롯은 자신의 여동생이라 불리는 여인의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지자 재빨리 그것을 부정하고 말았다.
"뭐야. 도대체. 왜 하필 그 때 그녀가 생각이 난거지?"
행위는 죄악감으로 끝나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밤새 그다지 기분이 좋지를 못했다.
왠지 모르게 뒤 끝이 안 좋았다.
사정의 쾌감은 자신의 여동생을 더럽혔다는 배덕한 죄악감과 함께 그의 마음을 어지렵혀 버렸다.
"왠지 우울해지는 하루군."
똑! 똑!
그가 다시금 침대에 기어들어가는 늦잠에의 충동을 휩싸이던 그때 부드럽지만 경쾌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오."
란셀롯이 허락을 취하자 바로 방문이 열리면서 메이리가 들어왔다.
"간밤에 편히 주무셨는지요? 전하."
물론 잘 쉬지 못했지만, 란셀롯은 전날밤 메이리 역시 자신의 자위행위의 망상에 썼다는 것 때문에 약간은 미안한 마음이 일어 최대한 정중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물론이오. 메이리양. 그런 오늘은 무슨 일로? 아직 아침을 먹기에는 이른 듯 하오만."
아닌 게 아니라 아침해가 뜨기는 했지만 전날 그녀가 아침을 들고 찾아왔을 때보다는 좀 빠른 시간대였다.
"네, 실은 로렌조님께 환자는 맑은 공기를 들어마시며 가벼운 아침운동하는 것이 좋다고 하셔서요.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진찰 겸 약을 받아가라고도 하셨고요."
약이라는 말에 그 구역질나는 독을 연상해버린 란슬롯은 왠지 움직이기가 싫어져 버렸다.
"도대체 그것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거지?"
단 한번을 먹은 것만으로도 저승 너머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던 약이었데.
"그렇다해도 저런 눈빛을 가진 이를 다시 배신할 수는 없고..."
고작 하루를 보았을 뿐인데, 오랜 가족처럼 친숙하게 대해오는 메이리가 약간은 거북스럽기도 했지만 왠지 다른 한편으로는 고맙기까지 하였다.
"뭔지 모르지만 난 무지 약해져버린 것 같군."
남에게 약한 모습은 절대로 보여준 적도 없었고,
또한 이전이라면 이러한 호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역시 절대 없었을 것이다.
"같은 동료들조차도 그런 나를 경외하면서도 두려워했었는데..."
그런데 이렇듯 약한 모습만을 보일 뿐인데 자신을 이토록 따스히 보살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아니. 조금은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필요했었던 것일까..."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이지만 때로는 약한 모습도 이득이 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가 조금은 약한 모습과 다른 이들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전의 그런 비참한 결과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좀 더 그를 신뢰할 이들이 많이 생겼겠지.
"그런 것치고는 이 소녀는 좀 더 특이한 케이스인 듯 싶지만..."
란셀롯은 자신을 성심성의껏 보살펴 주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뭘 믿고 이 순진한 처녀는 자신에게 이렇듯 내게 전심전력으로 부딪쳐 올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내심 궁금하기도 한 란셀롯이지만 또한 다시금 자신을 믿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했다.
"자, 어서 가요."
결국 란셀롯은 이른 아침부터 활발한 메이드 아가씨에 이끌려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로렌조라는 약사를 만나본 란셀롯은, 그가 몰래 상상했던 대로 악덕해보이는 삐쩍마른 마귀같은 이가 아니라 옆집 아저씨처럼 후덕해보이는 뚱뚱하고 웃음많은 중년 늙은이라는데 한번 놀라야 했다.
"설마 웃으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이들이 있다던데 이 사람은 그런 부류인가?!"
속으로 몰래 절규하긴 했지만 로렌조는 보는 그대로의 마음씨 좋은 약사였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흐음~~ 현상태로는 왕자 저하께옵서는 앞으로 힘든 육체노동같은 건 평생하기 힘드실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왠지 동정심 가득한 눈으로 로렌조가 자신을 쳐다보자 화가 나야 할 법도 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것은 아마 로렌조의 눈빛 속에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군. 이런 눈빛. 이런 어투. 그리고 이런 진심어린 행동거지. 역시 내가 부족한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던 것일까?"
왠지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해지려던 란셀롯이었는데, 지난 3년 간 그가 찾았던 이상적인 모델을 로렌조에게서 발견하자 내심 놀라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미 전날에 그 스스로가 그런 진심어린 행동을 함으로써 메이리라는 하녀를 사로잡았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설혹 알고 있다하더라도 아직 그는 스스로의 의지로 로렌조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다른 사람을 깊이 생각하고, 아끼며, 사랑해야만 비로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끊어졌던 힘줄들을 수술로 다시 잘라 갖다 붙인다면 이전같은 육체를 얻는 것도 꿈은 아닐텐데요..."
로렌조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그런 것이 가능한가요?"
로렌조의 말에 메이리가 흥미를 보였다.
"음. 내 친구인 신의(神醫)라면 가능하단다."
메이리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로렌조는 자신의 동문수학인 신의라면 가능하다고 말해주었다.
"이름은 그 친구와의 약속으로 말해줄 수는 없지만 그 친구라면 전하의 근육 뿐 아니라 끊어진 힘줄까지도 이을 수 있을 것이야. 한번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는 게 좋겠지."
그렇게 답한 로렌조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워낙 신출귀몰해서 찾기 힘들 것이야. 그래도 혹시라도 인연이 된다면 내가 부탁을 한다고 하면 무턱대고 거절하지는 않을게다."
로렌조의 충고를 감사히 받아들인 란셀롯과 메이리는 그 후, 예의 그 극독같은 약을 3일치나 받은 뒤 헤어졌다.
3일치나 받은 이유는 로렌조가 약초를 구하기 위해 아침식사 후 다시 아프스 산 깊숙히 들어가 며칠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참 좋으신 분이죠?"
"음. 그렇구려"
메이리의 말에 란셀롯은 동의를 해주었다.
그 묘하게 역겨운 약만 아니라면 배울 점이 무척 많은 듯한 사람인 듯 싶었다.
"아침 식사를 한 다음, 방금처럼 날 데리고 이곳을 안내해줄 수 있겠소? 메이리양?"
내심 그녀의 부축을 받아들이며 움직이자 한결 운신하기 쉬운 것을 깨달은 란셀롯은 조금만 더 약한 모습을 보이기로 결심하였다.
몸의 부담감이 적은 탓인지 몸에서도 열이 그리 많이 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로렌조가 재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꾸준히 움직여줘야 한다고 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네, 기꺼이 안내해드릴께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메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꼭 주인의 기대에, 기쁨에 찬 강아지를 연상시켜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이런 기분 나쁘지 않군."
란셀롯은 피식 웃음을 지어보인 뒤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보호받아지고 있다는 느낌.
누군가를 의지하고 의지받고 있다는 느낌.
정말 그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부모님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로서는 메이리의 따스한 보살핌은 무척 의지가 되었다.
"조금만 더 이렇게 응석을 부려보도록 할까나..."
이전의 그였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한 줌의 재에서 다시금 부활을 하는 불사조처럼 말이다.
이미 한번 좌절을 겪은 바 있는 그는 새로운 목표를 가져야만 했다.
3년의 긴 옥살이는 그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심사심고할 수 있는 좋은 고찰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메이리의 안내라면 아직 이방인과 마찬가지인 그가 다른 이들의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다시 재기를 하려면 역시 힘이 필요하니까 말야."
비록 그의 부하였던 이들이 저항군에 합류되어 있었지만, 그는 절대 남의 밑에 있고 싶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빼앗아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저항군들의 힘을 제대로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다.
순간 란셀롯의 두 눈에 은근히 사악한 기광이 스쳐지나갔다.
"후후~."
하지만 역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란셀롯은 자신을 낑낑 거리면서도 기쁜 듯 부축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 기분은 좋군. 이것이 남에게 의지되고 있다는 기분인 걸까?"
마치 부모에게 보살펴지고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
"아마도 내가 이제부터 남들에게 베풀어하는 기분 또한 이러한 것일테지..."
아마도 그것은 이전에 다른 이들이 그에게서 바라던 것이기도 할 터였다.
그가 몰랐기에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마음 말이다.
"이번에 재기를 한다면 조금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주기로 할까나."
란셀롯은 왠지 자신이 새롭게 추구해야 할 목표를 찾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