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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德厚の野望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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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807 회 작성일 24-01-15 13: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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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줄 아시오.”


충동으로 자살하려는 자미의 목숨을 구한 점, 운우지락의 시작은 자미가 하였다는 점이 침착되어 덕후는 목과 몸이 분리될 위기를 간신히 벗어났다. 그러나 자미와 관계를 맺은 덕분에 덕후는 감당할 리스크가 컸다. 오는 내내 붙임 있게 구축한 장우와 관계가 냉각된 것도 그렇거니와,


“한 시라도 방심할 틈이 없군요.”


막사에서 깨어난 소월하는 전후를 알고서는 기 막혀 하였다. 바람 핀 남편을 갈군다는 모드로 막사에 조용히 부른 모양새이다. 소월하는 숙취와 골치가 뒤섞인 표정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덕후를 책망하였다. 무릎이 거의 닿을 거리에서 덕후는 얌전히 정좌하여 염통이 쫄깃해지고 뒤가 갑자기 마려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서 마라가 신기하다는 듯, 혹은 즐겁다는 듯 쭈그려 앉아 눈을 반짝였다.


“에, 어디까지나 불가항력, 우발적 사고랄까....”
“불가항력? 우발적 사고?”


소월하의 눈이 매섭게 치떠졌다. 독사의 날름거리는 혀 마냥 음성은 매우 부드러웠지만.


“뭐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랄까......잘 한건 없지만 피차 조용히 묻어두는 게 낫지 않겠소.”
“전하께선 한 가지 크게 착각하신 것 있는 것 같네요.”


소월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억지로 웃으며 정정해주었다.


“지금 천첩이 열불 나는 게 그 때문이 아니랍니다. 상공께서 왕부에 계셨을 때 시녀 한 명이라도 우발적 사고로, 불가항력으로 건드린 일이 있다면 바람 피웠다고 믿어드리죠.”
“그게 뭐랄까...요상한 꿈을 꿔서...”
“어머나, 자기는 태어나면서 꿈은 한 번도 안 꾸셨다면서요.”


덕후의 목이 자라목처럼 움츠러든다. 덕후를 구해준 것은 마라였다.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으니 구원 투수보다는 호기심이 더 크게 적용했으리라.


“꿈? 뭐가 요상한데?”
“뭐랄까, 엉망진창 태평성대였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랄까....”


마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질을 내던 소월하도 의문어린 얼굴을 하였지만 바로 정색하였다. 덕후의 페이스에 말려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마라는 재차 물었다.


“태평성대면 일반적으로 좋은 거 아냐? 그리고 엉망진창은 뭐야?”
“주지육림을 꾸셨나 보네요.”
“어허, 그건 현실이잖소.”


덕후의 모처럼 타박에 소월하는 입을 살짝 벌리고 말았다. 어이없긴 하지만 덕후의 신분이나 왕부에서 하는 난행을 돌이켜보면 주지육림이나 별 차이가 없다. 향락의 대상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 표리를 철저히 구분한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할 일이 더럽게 없는 세상이랄까. 거기에 먹고 싸는 것도 생략하고 자는 것도 포기하는...”
“좋겠네요. 평소에 입에 올리시는 니트인가 뭔가의 궁극인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 나는 활기가 넘치는 게 좋소! 몸소 활기의 주체가 될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지만! 내게도 꿈 정도는 있단 말이오!”
“어머어머, 꿈이라? 정말 궁금하네요.”


소월하는 대놓고 비웃었다. 덕후는 엄숙한 얼굴로 하늘을 가리켰다. 비웃음을 지우지 않는 채 소월하가 반문한다.


“천하요?”


자고로 강호에 몸을 담고 있다면 무림재패의 주역이 되기를 누구나 꿈꾸는 법이고, 그 욕망이 꿈의 형태로 표출될 수 있는 법이다. 천하라면 납득할 수 있다. 과로사할 만큼 일을 떠넘기고 뒤짐 지고 있어서 그렇지, 덕후 휘하에 모인 이들의 최종적 목표는 십패의 정리이고, 그것은 강호의 천하통일을 의미했다. 그 진의와 구체적 향방을 아는 이들은 덕후 주변의 여인들 밖에 모르는 상태이다. 덕후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나 싶어서, 초기의 경계와는 달리 소월하는 슬며시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나 덕후는 아니라는 듯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듯 올린다.


똑똑한 소월하도 이 때는 전혀 감이 잡히는 것이 없었다.


“천하가 있다면 천상도 있는 법.”
“.....적송자처럼 되는 걸 원하셨군요. 우화등선 하실 분을 여태 몰라 뵈어서 죄송해요. 풋.”
“원시천존 같은 소리가 아니오...아니 뭐, 그렇다 칩시다. 어쩌면 그냥 영원히 꿈인 채 내버려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니.”


덕후는 시큰둥하게 넘어가고자 했다. 소월하도 덕후가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는 소리로 이해하였다. 마라의 반응만 달랐다.


“원시천존 치러 가는 거야?”
“에이, 원시천존이 있겠니. 설려 있다 쳐도 잡아서 어따 써먹어? 다 포맷해버리고 내 마음대로 옵션별 셋팅하는 게 낫지.”


외래어를 쓰며 알 수 없는 소리로 마라의 질문에 한술 더 뜬다는 뉘앙스로 익살스럽게 대답하는 덕후. 이대로는 추궁하려는 분위기가 산으로 가겠다고 느낀 소월하는 탕! 하고 바닥을 쳤다. 덕후의 몸이 움찔하며 풀어지던 정좌 모드를 다잡는다. 염미홍도 자신이 꾸짖을 때는 이런 반응을 보여, 소월하는 기시감을 느꼈다.


“진지하게 묻겠어요. 소녀가 왜 화가 나는 지 이해하세요?”
“그...질투하니까?”


덕후가 실실 웃으며 상체를 가볍게 꼬자 소월하는 가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화사한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내려다 보는 듯 입 꼬리를 살짝 뒤틀었다.


“퍽이나.”


덕후는 화살에 맞은 것처럼 윽, 하는 신음을 토했다.


“제가 말했죠? 일을 추진하려면 사전에 숨기는 것 없이 상의를 해야 한다고. 머리가 필요해서 불렀으면 소임을 다하도록 해야지. 이런 식으로 상공 혼자 북치고 장구 칠거면 저는 왜 데려왔어요? 지금이라도 뒤처리할 만만한 이들이나 데려오시지요.”
“그래도, 이런 일에 자문을 구하기에는 좀 거북하잖소.”


덕후가 토하듯 실토하자 소월하는 미간에 핏대가 올랐다. 짐작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간접 확인을 하니 착 가라앉는 기분이다. 정녕 이 남자의 행보에는 우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소월하는 크게 실망한 척 한숨을 쉬며, 가슴 속에 스멀거리는 감정을 내색하지 않으려 하였다. 조짐을 비치면 안심시키기 위해 실수를 남발할 남자였다. 그게 더 얄밉게 만든다는 점을 알기는 하나.


“그 따위 어설픈 배려는 필요 없어요.”
“면구 하오이다....”


덕후는 참수 받는 심정으로 고개를 푹 늘어뜨렸다. 염미홍이라면 손톱으로 얼굴에 바둑판을 그으려 할 것이고, 형욱이라면 사지 한 군데를 부러뜨릴 것이다. 우희선과 금보옥의 경우에는 통조림은 천국이라고 인식할만큼 업무를 안겨 주겠지만, 다들 정략의 연장으로 용인을 해주겠지. 하지만 천생 모사 체질인 소월하는 그런 배려(?)없이 송곳처럼 덕후의 편법적 요인들을 콕콕 집어 마구 난도질하였다. 판단과 책임은 윗사람의 도량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야하는 면이 있었다. 덕후가 몸서리치던 설교를 반 시진 가까이 받고 나서 소월하는 출발하면서부터 쌓아온,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풀고는 개운한 표정이었다.


“엎어진 물은 어쩔 수 없죠. 처우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나 알려주세요.”
“좋다고 하면 신분은 빈으로?”
“하긴, 신녀에 빈의 신분을 더하면 확실히 일방一方은 감당할 수 있겠죠. 자질은 어떤가요?”
“첫 만남인데 어찌 다 알겠소?”
“사전에 다 재보고 접근한 것 아닌가요?”
“으흠! 으흠!”


덕후는 거칠게 헛기침을 하였다.


“신녀님에 대한 건 상공께서 복안이 있을테니 뜻대로 하세요. 단, 그 문제로 제 도움을 요구할 생각은 한 톨도 하지 말고요.”


소월하는 입가를 슬쩍 가리며 눈웃음을 쳤다. 애교를 부리는 듯 했지만 어조는 참 매정했다.


“하아, 정말 면목 없소. 이 죄는 지금이라도 육보시로 갚겠소.”


할복하는 심정으로 옷을 벗으려하자 소월하는 기겁했다. 땀과 술김에 찌든 몸인데 이 자리에서 방사를 하겠다고? 결벽증이 있는 그녀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난행이다. 결국 빽 소리를 지르며 덕후를 쫓아냈다.


“당장 나가욧!”


말만 아니라 애병인 채찍을 찾아 후려칠 기세라 덕후는 후다닥 뛰쳐나갔다. 둘 사이에 눈치를 보던 마라도 슬그머니 덕후를 뒤따랐다. 덕후는 언제 혼났냐는 듯 개운한 표정으로 허리를 짚으며 기지개를 편다. 극적인 변화에 마라는 투덜거렸다.


“아빠를 걱정한 내가 바보 같아.”
“걱정해주었다니 고맙구나.”
“응! 내가 걱정은 1g만큼 했으니까 만배 억배로 꼭 돌려줘야 해”
“......답례로 재미있는 거 시켜줄게.”


잠시 굳어있다가 마라의 정수리에 턱 손을 올리며 덕후는 한쪽 눈을 찡긋한다.


해프닝이 일단락 되자 덕후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곱게 단장한 소월하와 마라를 데리고 장우를 찾아갔다. 천강이 소수정예를 데리고 요산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부재 시를 대신하여 축제의 뒷정리를 위해 대수목 아래 너른 바위를 임시 행재소 삼아 동분서주하고 있던 차였다.


“떠나시려고 하오?”


덕후 일행이 오자 장우는 퉁명스럽게 대하였다. 신녀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계산으로 우호적으로 대했지, 대뜸 성관계를 맺을 줄 누가 알았는가. 더구나 유부남을.


“봐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내자에게 종일토록 혼나고 당분간 그럴 것 같으니....으윽!”


소월하가 손을 뻗어 덕후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사전에 약속된 행동이지만, 들어간 힘은 진심이었다. 덕후는 눈물 한 방울을 쏙 빼며 마라를 내세웠다.


“아무튼, 딸과 약속 때문에 온 거요.”


마라는 눈길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수줍은 듯이 손가락 끝을 연신 매만졌다. 아이에게까지 화를 낼 수 없는 장우는 한결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새벽의 일이야 우발적으로 일어났다손 쳐도, 지금은 딸도 있고 옆에서 아내가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으니 헛된 수작을 부릴 것 같지 않았다. 아니, 헛된 수작을 부린다고 중원의 규중 처자처럼 얌전히 받아줄 우문 자미가 아니다.


“후우....예서 기다리시오. 아가씨를 데리고 오리다.”


장우는 옆에 있던 장족 사내에게 뭐라 말하고는 날랜 몸으로 나섰다. 차 두어 잔 마실 무렵 장우는 우문 자미를 데리고 왔다.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은발에 보랏빛 눈동자, 그리고 남방계 특유의 달콤한 것 같은 피부색. 대수림의 정령의 화신처럼 이색적인 아름다움에 소월하는 압도 되었다. 마라는 자신의 적안과 같은 남들에게 이질적인 자안과 함께 파격적인 복장에 호기심 어린 얼굴이 되었다. 시선을 피하는 듯한 버릇을 버리고 성큼 자미에게 다가가 올려보았다.


자미는 화약에 관심 많다는 소녀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왔으나 덕후를 보고 흠칫했다. 새벽의 방사가 떠올린 탓이리라. 그러나 대담하게 자신에게 접근하는 한족 소녀에게 주의를 옮겼다. 키가 가슴 근처까지 까지 오는 정도라 내다보았다. 외모와 출신 때문에 쉬이 접근하는 이가 없던 자미로서는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랐다. 속으로 떠올리던 상념은 마라의 적안을 보는 순간 깨끗이 날아갔다. 늘어 내린 앞 머리카락 너머로 핏빛의 결정처럼 굳은 붉은 눈이 자신을 올려본다. 풍경을 대하는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바라보는 눈동자에 자미는 무심코 손을 뻗어 앞머리를 치워 올렸다.


마라가 빙긋 웃었다.


“안녕.”


안녕, 나오지 않을 음성 대신 거울을 대한 것처럼 같이 미소 지었다. 소리 없는 대답을 감지한 듯 마라는 자미의 손을 성큼 잡았다. 평소 무뚝뚝한 자미를 아는 지라 장우는 자미의 이색적 반응에 신기한 듯 턱을 매만졌다.


이윽고 마라에세 손을 뗀 자미는 장우를 빤히 보았다. 눈치 빠른 장우는 씩 웃었다.


“아가씨께서 된다고 하시니 좀 너른 곳으로 갈까요?”


그로부터 반 시진 후.


덕후, 소월하, 장우를 보호자 겸 통역사로 자미와 마라는 공터의 정중앙에 서 있었다. 표적으로 걸린 나무판들이 30보 밖의 가지에 걸려 있다. 덕후는 팔짱끼고 있고, 소월하는 처음과 달리 흥미어린 표정으로 총기의 취급과 발포 과정을 구경했다. 자미가 시범으로 10가지 넘는 총 쏘기 동작을 천천히 시연해보고, 포연과 함께 팍, 하고 부셔지는 나무판을 보자 불쑥 말했다.


“큰 것을 포, 작은 것은 총이라고 하던데, 제가 본 총통보다 훨씬 작은 것 같네요. 저게 진짜 목적인가요?”


소월하는 고금의 병략에 관심이 많다. 자연히 무기의 취급과 변천사에도 해박한 편이었고, 화승총을 보는 순간, 당장에 혁신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고비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 모양이다.


“설마, 당장 써먹기에는 단점이 많소. 사거리와 파괴력도 총통과 비교하면 낮은 편이고 불발의 위험이 크오. 구경에 나선을 파는 것도 꽤 난이도가 높은 편이고. 한 두 정이라면 수렵용으로 쓸 만하겠지만, 대량생산하면 만정, 천정 내에 수십, 수 백 개의 불량과 파기의 위험이 따르니 화전 한 대라도 더 쏘는 게 낫겠지. 기후에도 크게 영향을 받으니 쇠뇌가 나을 수도 있고.”


덕후는 그렇게 부정적인 감상을 피력했다. 종종 오버 테크놀리지를 구현해서 써먹고 있지만 - 화장품, 최첨단 소재로 쓴 여성 속옷 등등...- 화기처럼 역사에 전면에 부각될만한 사안은 회피하고자 하는 편이다. 아예 외면하지 않고 암암리에 써먹으려는 것은 동시대 서구에는 화승총이 개발(15세기 후반) 되었을 것이고, 약 1세기 뒤에는 극동아시아 권에 조총이 널리 보급된 임진왜란(중국 측에서는 만력의 역, 일본은 분로쿠노 에키) 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대게 혁신적 무기의 대대적 보급 과정은 전사戰史에 획기적인 선을 긋는 전투가 있고 난 다음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도구를 취급하는데 있어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군대라고 다를 게 없었다. 몇 가지 요인들을 쉴드 잘 쳐주면 크게 보급되는 일은 없으리라. 영원히 막으려는 것도 아니고 한 세기 정도 연장하는 수준이니까.


“장인들을 모아서 개량시키면 되지 않나요? 불량 위험이 있으면 그만큼 더 많이 만들면 되죠.”
“꽤 좋게 보는구려?”
“부용님을 보면서 얼핏 든 생각이에요. 장전만 되면 여자 아이도 저기 걸쇠만 당기면 쏠 수 있는 구조잖아요? 무엇보다 개인 휴대가 가능하다는 게 꽤 매력적이고요.”


소월하의 머리 속에서 몇 가지 가설이 세워진 후 전장에서 시뮬레이트가 된 모양이다. 그러다 소월하는 금방 고개를 기웃했다.


“하지만 무림에는 별로 효력이 없을 거 같네요. 장전하는 데 궁술에 비해 과정이 세 배 이상 많은 편이고, 경공에 뛰어난 무인, 아니 숙련된 기병이라면 순식간에 도륙 당할 거 같네요.”
“그럴 때는 옆에 보호할 창병을 같이 붙이면 되지 않겠소?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 아주 숙련된 전사들로 말이요.”
“그렇게 조건을 붙이면 상대편도 마찬가지죠. 먼저 경기병을 미끼삼아 한 차례 발포를 유도하고, 기동력으로 창병의 대오를 유도한 다음, 창기병으로 밀집 돌격시키면 별 수가 있나요. 재 사격하려해도 그쯤이면 피아가 뒤섞여있으니 함부로 쏠 수도 없고.”


덕후는 오오, 하고 수긍하는 척 입을 다물었다. 야전이라면 지금 수준으로는 총병이 밀린다. 방책과 참호전의 요소를 활용하면 우위에 설 수 있지만 전술 토론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적당히 물러섰다. 소월하는 슬슬 재미를 붙이려다가 덕후가 관심 없는 듯이 몸을 사리자 흥이 깨졌다.


시야가 어둑해질 무렵까지 총 쏘기를 반복하자 처음에는 서툴렀던 마라의 사격도 익숙해졌다. 일반인이 익숙해지는 데 일주일에서 보름은 걸린다면, 마라는 좀 과정을 보태서 말하면 단 하루 만에 달인 수준에 이를 만큼 경이적인 속도로 습득하였다. 무공 사부인 형욱에게 훈련을 받고 있고, 마검령이라는 병기兵器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인지 전투 관련 감각은 유달리 탁월하였다. 오죽하면 우문 자미가 이대로 며칠 지나면 당장 실전에 써먹을만하다고 칭찬했을 정도일까.


스승과 제자가 궁합이 맞는지 하루 종일 과녁을 쏘아대고 해가 지자 장우가 수하를 시켜 저녁 식사를 가져오도록 했다. 뜨거운 육수와 향초로 우려낸 쌀국수와 얇게 말아 기름에 튀긴 딤섬이었다. 다섯은 즉석에서 자리를 펴고 훌훌 마시고 우적우적 씹었다. 이대로 헤어지면 평화로운 하루가 마무리 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식후 차를 마시는 데 마라가 사단을 냈다.


“신녀님은 몇 번째 엄마가 되는 거야?”
“풋!”
“쿱!”


장우가 고개를 돌리며 차를 뿜었고 덕후는 술을 머금던 중이라 화끈하게 사례 들렸다. 소월하는 침착함을 가장했으나 술을 따르다가 넘치게 하고 말았다. 청각 장애가 있고, 어두워서 독순술을 잘 못하는 자미만은 멀뚱하게 앉아있었다.


“몇 번째라니...아내가 더 있었습니까?”
“집안 사정이 좀 그래놔서....”


덕후가 쑥스럽다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장우는 시기와 감탄을 섞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상황을 알려달라는 자미에게 요구하는 수화로 설명했다. 유부남, 그것도 아내가 여럿 있다는 말에 자미는 충격을 받은 듯 가만히 있다가, 빠르게 수화를 보냈다. 장우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전했다.


“서로 즐겼을 뿐이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전해달라네요.”


그 대사에 마음이 움직인 것은 소월하였다. 덕후를 갈구는 과정에서 자미가 처녀임을 알게 된 터라 남 같지 않았다. 자신은 취중에 자미는 무언가 사연으로 덕후에게 줘버리듯이 처녀 상실하지 않았던가. 경계를 풀고 자미의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반대편으로 술잔을 권했다.


“괜찮아요. 한 잔 마시고 발정난 미친 개 한테 물렸다 치고 잊으세요. 저도 그랬는걸요.”
“발정난 미친 개...”


덕후가 너무하다는 듯 푸념하자 장우가 껄껄 웃었다. 아마 소월하도 비슷한 꼴을 겪었는가 싶었다. 남령 이북의 한족에 비해 성문화가 비교적 개방된 분위기가 취흥과 어우러져 죽네 사네 하는 비장한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았다.


소월하가 친근하게 접근하자 자미는 어리둥절했다. 보통 이 경우에는 임자 있는 상대를 탐했다고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지기 때문이다. 장우가 사연을 설명하자 자미는 조심스럽게 술잔을 받아 쭉 들이켰고, 후아, 하는 한숨을 뱉어냈다. 이번에는 자미가 조심스럽게 소월하에게 내밀었고, 소월하는 원샷 했다. 후우~ 하는 술김으로 여운을 즐긴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쿡쿡 실소를 흘리더니 깔깔 웃었다. 거기에 마라도 가세하였다.


덕후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그러기는 어려웠다. 자미의 수화를 장우가 해석해하고 덕후가 부족한 수사나 표현을 덧붙여서 두 여자에게 전달해야했다. 그리고 덕후가 장족어로 두 여자의 대사를 옮겨주면 장우는 수화로 자미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그 과정의 반복이었다. 언어의 장벽이 있었지만 여인들의 수다에는 경계가 없었다.


취흥도 겸해 이야기는 야한이야기도 거침없이 쏟아내게 되었고, 자미가 새벽에 덕후를 덮친 내막이 드러났다. 자미가 덕후에게 반했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하룻밤 상대가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었다. 남들은 축제를 즐기는 데 자신은 신녀라는 직분으로 경원시 되니까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이라나. 하기는 천강에게 패했다고 금방 자살을 하려는 구석이 있는 걸로 봐서는, 점화 플러그 마냥 키를 돌리면 시동이 걸어지는 것처럼, 스스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격정적인 성미인 것 같았다. 천강에게 맞아죽을 뻔한 이야기를 듣자 소월하는 아예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지, 하고 악담을 퍼부었다. 덕후는 진땀을 빼며 소월하에게 항의하였다.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인거 같기도 하고...적어도 상공에게 쉬이 끌려 다닐 것 같지는 않네요.”
“어허, 누가 들으면 내가 악당 같겠소.”
“악당 맞잖아요? 약점들 잡아서 우리들에게 일 팍팍 시키고는.”


이 정도 불평은 하게 내버려두세요, 소월하가 새침하게 퉁을 놓았다. 시든 오이처럼 쭈그러지는 덕후를 무시하고 수다는 계속 되었다. 천강과 전투 부분에서 넘어가자 소월하가 조언을 해주었다.


“한 번 씩 조고 장전하기를 반복하니까 그렇지, 총을 여러 개 준비하면 되지 않아? 조준만 잘하면 점화만 하면 끝이잖니.”


다연발 화전火箭발사기의 개념을 설명해주자 우무 자미는 호기심 당긴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다가 난점을 설명했다. 천강과 같은 고수를 상대하기에는 부피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자미 역시 무공을 익히고 있는 터라 은형과 경신 분야에서는 무척 뛰어난 데 다연발로 묶어버리면 원샷 원킬이라면 모를까 아무래도 제약이 따른다.


“네가 쏠 동안 곁에서 화약과 탄환을 재줄 방수를 붙여주면 되지. 일반 양민이라면 어렵겠지만, 여긴 몸이 날랜 이들이 많은 것 같으니 어렵지 않잖아.”


소월하의 지적에 자미가 아, 하고 입을 벌리며 경탄했다. 조총을 남자보다는 여자와 아이의 용도로 제한하고 자미가 무리와 동떨어진 독자적 행동을 해오다보니 사고가 미치지 못한 것이다.


“어째서인지 넌 1:1에 집착하는 거 같은데....그게 무공보다 우위라는 걸 네 오라버니에게 입증하고 싶은 거니?”


자미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수화하였다. 장우의 통역을 거쳤다.


“전사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도 한 몫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흐음.”


소월하는 하늘을 올려보는 듯 하다가 덕후로 고개를 틀었다. 무릎을 끌어안아 의기소침하여, 훌륭하게 절여가는 오이절임의 팬터마임을 진행하고 있다.


“상공, 정리 좀 해주세요.”
“악당은 왜 찾소? 잘만 하고 있는데.”
“네네, 적당히 명분 찾아 이기는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고안해줄 수 있겠는데, 사람들을 번롱翻弄시켜서 희한한 조직이랑 규칙을 안착시키는 건, 저보다 전문이잖아요?”


후후, 웃으며 고혹적으로 흘겨보는 소월하, 덕후는 흘린 듯이 보다가 맡기라는 듯 콧김을 뿜으며 가슴을 툭툭 쳐보였다.


“기대에 부응 해보이리다.”


훗, 이럴 때는 단순한 인간이네....라고 믿어주면 좋은데, 아무리 술에 취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 경보를 울리는 자신의 머리가 은근히 짜증났다. 소월하의 침전하는 내심이야 어쨌든 파티는 서로의 오해(?)를 풀고 좋은 인상을 남기며 끝났다.


다음 날, 우문 자미는 장우에게 시켜 신녀단을 소집시켰다. 신녀단의 정식은 방년의 처자들이지만 창칼을 정식으로 받을 나이가 안되는 소년들도 많이 모였다. 신녀단이라 해서 엄한 금기와 규율에 시달린 것은 우문 자미를 비롯한 극소수의 처자들 뿐이었고, 나머지들은 생업과 가업을 하면서 선발된 것이라 분위기는 수련회 마냥 자유로웠다.


모이는 동안 장우 휘하의 전사들이 짐을 잔뜩 진 노새와 외수레를 스무 대 끌고 왔고, 천을 걷자 안에는 미끈한 몸체의 철포와 원팩 등이 실려 있었다. 우문 자미가 개인적으로 사비를 들이고 신녀의 명함을 빌려 구입하거나 자체 제작시킨 철포는 무려 500정을 넘었다. 단숨에 마련한 것은 아니고 10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모은 것이다. 철포에 대한 우문 자미의 집착을 보여주는 예이리라.
 
우문 자미 휘하의 신녀 하나가 호령하자 여자와 소년들은 우르르 달려가 총포와 원팩을 챙겼다. 수다 떠는 것 같아도 장비는 신속한 것으로 미루어 취급이 익숙함을 알 수 있었다.


“삼삼오오 훈련을 했지만, 오늘 부터는 단체로 하겠다. 특별히 고문을 초빙하였으니 이해가 안가더라도 지시 사항은 반드시 따르도록.”


우문 자미의 통역을 따라한 신녀단원 하나가 소월하를 소개하였다. 한족 미녀의 등장에 수런거렸지만 호기심이 전부일 뿐 여자와 아이들뿐이라 무시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소월하는 우문 자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신녀들을 조장으로 삼아 조를 편성, 사격 딜레이를 호율적으로 좁히는 훈련을 하였다. 지형을 바꿔서 시도한다거나, 과녁을 정하고 시간을 측정, 잘한 조에게는 적당한 상을, 못한 조에게는 가볍지만 웃음거리가 될 만한 벌을 도입하여 마치 축제의 연장선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도록 하였다. 산만하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 된 것은 신녀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총기 오발이나 불발에 대한 사고가 없던 것도 한 몫했다.


사전에 세세한 안전 규정을 정하고, 총기 담당을 덕후가 맡았는데, 점검하는 척 슬쩍 불량이 될 만한 요소를 수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놀이 훈련은 천강이 돌아올 때까지로 막연하게 잡았으나, 어쩐 일인지 천강은 1주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도 슬슬 지루하고 지겹게 여길 무렵, 참다 못한 우문 자미는 직접 천강을 찾아갈 것을 결심했다.


 

 

ps - 나를몰라님 지적을 보고 황급히 수정합니다. 일본쪽 기록을 뒤져보다가 다네가시마에 철포를 복제할 때 구경에 XX을 만들기 어려웠다, 라는 구절을 본적이 있는데 나선을 강선이랑 혼동했네요. 총기 사양이 갑자기 ak47급 무기가 될 뻔했습니다.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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