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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삼총사 #28 중년 사제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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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926 회 작성일 24-01-15 07: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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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

 

차갑다.
빗방울이 너무 차갑다.


"후우..."


달타냥은 하얀 입김을 품으며 길을 걸었다.
비에 흠뻑 젖어 생쥐꼴이 된 그녀는 정처없이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포르토스...바보...."


그녀는 아직도 욱씬거리는 가슴을 움켜잡곤 포르토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그만 생각하면 슬픈거야....)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남자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아프다니...
슬펐다가 기뻤다가, 여자의 몸이 된 뒤론 마음의 변덕이 심해진 느낌이었다.


"...."

 

-쏴아아~!

 

빗줄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몸도 춥고 마음도 차가워져 왠지 술에 왕창 취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추워...)


그런데다 차가워진 몸이 너무나 무거웠다.
비에 흠뻑 젖은 드레스가 물기를 잔뜩 머금어 더 무거운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몸을 덥힐만한  술집이나 식당을 찾아보았다.


-끼이익


그리고 나무문을 통해 아무 술집에나 들어간 달타냥은, 무턱대고 술을 한 병 시켰다.
사람들은 아직 어려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수근거렸으나 너무나 우울하고 슬퍼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곤 고개를 돌렸다.
달타냥은 병을 따고는 잔에 가득 들이부운 뒤 쭈욱 들이켰다.


"꿀꺽 꿀꺽, 크으~!"

썼다.
알콜도수가 무지하게 높은 것을 시킨 탓에 쓰기가 지옥같이 썼다.
하지만 쓰디쓴 가슴을 대변해주는 맛이라 달타냥은 만족했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같이 합석해도 되겠소?"

 

그녀가 혼자 술을 자작하고 있을 때, 사제로 보이는 중장년 남자가 다가와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달타냥은 그의 표정이 온화해보여서 시비를 걸러 온 이가 아니라서 다소 안심이 되었다.

 

 

"그대의 얼굴이 매우 슬퍼보이시는군. 내가 같이 술을 마시며 위로를 해줘도 되겠소?"

 


달타냥은 그의 말에 귀찮은 듯 대꾸했다.

 


"후우, 상관없지만 사제님이 이런 곳에 오셔도 되는건가요?"


"하하하, 사제라고 술집에 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포도주는 주 예수의 피니 사랑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포도주의 맛을 알아야 하니."


사제의 능글맞은 답변에 달타냥은 실소했다.


"푸훗~ 궤변이네요."

 

"하하, 맞소. 궤변이지. 하지만 이런 사제라도 있어서 신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면 신께서도 용서해주시지 않으시겠소?"

 

한쪽 눈을 찡끗 윙크하며 익살스럽게 사제가 말했다.
왠지 대화를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달타냥은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혹시 실연을 당했소?"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느낌으로 알았다오. 당신의 지금 모습은 결혼식 직전에 바람에 맞은 신부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오."


사제의 말에 달타냥은 피식 쓴 웃음을 지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에요. 이런 예쁜 모습을 보이려 찾아가보니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요. 그 모습이 너무 즐거워보여 샘이 났어요."


달타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는 것을 목격하고는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는지 말이다.
왠지 눈 앞의 사제가 편안해보였기에 가슴에 담아둔 말이 술술 나왔다.
라스푸틴과 같은 사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와 비슷한 편안함 때문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스푸틴을 닮은 그 남자에게 속시원하게 모든 답답한 마음을 밝힐 수 있었다.


"그렇게 질투를 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오. 그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니."


중년의 사제는 달타냥의 말을 차분히 들어준다음 괜찮다면 위로해주었다.


"적어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하는 것보단 몇 배나 바람직한 일이지 않소?"


사제는 그러면서 그 예로 현재의 왕비와 국왕의 사례를 들었다.


"현재 루이 13세 전하와 도트리슈 왕비는 금슬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침실을 따로 쓸 정도로 사이가 차갑다오. 두 분은 정략으로 맺어져서 사랑도 없이 결혼을 했으니 말이오."


그는 그러면서 얼마나 애정없는 결합이 가정과 나라를 파탄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역설했다.


"그런 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라오. 아무리 정략적으로 맺어졌다고 해도 말이오. 게다가 왕비에겐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소문도 있다오."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도 억지로 결혼을 해야 했다니...)


달타냥은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제의 말은 그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고마워요. 사제님.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그대의 마음이 편해졌다면 다행이오. 허허허, 이거 술을 한잔 마시러 왔다가 길 잃은 어린 양을 구원하게 되었으니 나의 죄도 그만큼 가벼워지겠구려."


껄껄 하며 중년의 사제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아 달타냥도 미소를 그려보였다.
매부리코에 깐깐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사제는 무척이나 쾌활하고 유머감각도 탁월했다.
덕분에 그녀는 우울한 기분이 한꺼풀 벗겨져서 상쾌한 기분이 들어왔다.


"그럼 우리 기분이 좋아진 걸 축하하며 한잔하죠."


"좋소."


둘은 술을 서로에게 따라준 뒤 쭈욱 들이켰다.
매우 독한 술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그 맛이 씁쓸달콤하니 매우 좋았다.
둘은 건배를 한 뒤 술을 주고 받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어느덧 둘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대는 현재 우리 프랑스를 위해 필요한 것이 뭐라고 보오?"


"그야 국왕 폐하를 중심으로 왕권을 바로 세워야지요."


달타냥은 사제의 물음에 머뭇거리지 않고 답하였다.

예비 총사다운 답변이었다.

 


"맞소. 우리는 국왕 폐하를 중심으로 절대왕권을 확립해 강한 프랑스를 만들어야 하지."

 

 

"강한 프랑스...!"

 

 

"그렇소, 강한 프랑스! 그것이 바로 우리 프랑스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오."


 

사제는 힘이 담긴 웅변을 토했다.

 

 

(대단해...!)



달타냥은 확신에 찬 사제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그와 다시 한번 잔을 부딪치며 "강한 프랑스를 위하여!" 라며 건배를 했다.


"달타냥!"


바로 그때,

아라미스가 술집에 들어와 소리쳤다.
그녀는 달타냥을 찾아 온 도시를 다 뒤졌는지 그녀의 옷차림은 비로 후줄근해져 있었다.


"내가 널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정말이지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남의 속도 모르고 기분좋은 듯 낮선 남자와 술을 들이키고 있는 달타냥을 흘겨본 아라미스는,

곧 눈 앞의 사람에게 급히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제 일행을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이 아이가 홧김에 뭔가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했었거든요."


그녀는 예를 표한 뒤 상대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


그러다 그녀는 상대가 누군지를 깨닫자 곧 눈을 크게 떠야 했다.


"앗, 당신은...!"


아라미스의 놀란 반응을 보자, 사제는 스윽 자신의 집개 손가락을 입에 대고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무언으로 부탁했다.


"아라미스, 이 분을 아세요?"

 

"...."


달타냥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으나 아라미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를 못했다.

 

-꿀꺽~!

 

그녀의 표정에선 심각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럼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 같구려."

 


중년 사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라미스는, 술에 살짝 취해 비틀거리는 달타냥을 부축하고는 술집을 나섰다.

 


 

"네...그럼 저희는 이만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녀는 밖으로 나가기 전, 중년의 사제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는데 약간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사제는 그런 아라미스를 외면한 채, 조용히 혼자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xxx


아라미스가 달타냥을 데리고 나간지 얼마 뒤,
뺨에 칼자국이 난 사내가 중년 사제를 향해 급히 다가왔다.

 

"추기경님. 여기 계셨군요."

 

칼자국의 사나이, 로슈포르는 중장년 사제에게 다가와 말했다.


"흐음, 로슈포르경인가.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나?"

 

"그게...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여우같은 왕비의 꼬리를 잡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그렇겠지."


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롭게 눈빛을 빛내는 그의 얼굴에선 방금 전 달타냥을 위로할 때의 부드러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저나 리슐리외 추기경님, 자리를 옮기시지요. 추기경님께서는 대내외적으로 적들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호위도 없이 무방비하게 돌아다니시면 위험합니다."


"상관없네. 가끔씩은 이렇게 편안히 서민들의 삶을 관찰하는 것이 나의 낙인 걸."


"후우~ 그런 서민들이 리슐리외 추기경님을 해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추기경님이 국왕폐하께 반하여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고 오해하고 있으니까요."


"후후,  그러기위해선 악역이지. 내가 욕을 얻어먹을수록 국왕폐하께서는 그만큼 돋보이실거야. 그러니 그 방법이 거칠고 나빠보여도 어쩔 수 없는게지...어차피 내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으니까..."


"리슐리외 추기경님..."


로슈포르는 그런 중년의 사제, 아니 리슐리외 추기경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후우...알겠습니다. 그럼 저라도 추기경님의 술친구가 되어드리지요."


로슈포르는 결국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술집에서 위험하게 계속 술을 들이키려는 상관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 혹시 여성분과 술을 들이키셨나요?"


그는 여성의 향취가 남아있는 술잔과 자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렇다네. 무척 귀여운 아이였지."


"!"


여자에겐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추기경이었는데, 그의  부드러운 미소를 본 로슈포르는 깜짝 놀랐다.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은 의문도 들었다.


"언젠가 또 인연이 된다면 꼭 보고 싶은 아이였다네."


리슐리외 추기경은 여전히 기분좋은 듯한 미소를 그려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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