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시아 시리즈 5부 : 혁명을 바라는 여자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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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시아 시리즈 5부 "혁명을 바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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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시아 : 26살의 세이르족 여전사. 183cm, 체중은 모르지만 꽤 나갈 듯. 45-25-42(인치)의 대단한 글래머. 암살과 전투에 능함.
세이토렌 : 26살의 사반트 후작국 귀족 여자. 기사. 185cm. 체중은 모르지만 꽤 나갈 것으로 예상됨. 44-25-42(인치)의 엘러시아 못 잖은 글래머. 엘러시아의 친구. 사반트에게 붙들려 메조키스트로 길들여져 갔었음.
베로스 : 29살의 평민 남자. 기사. 190cm, 105kg. 건장한 체격. 엘러시아의 남편.
루이페르 : 26살의 귀족 남자. 준남작. 191cm, 108kg. 탄탄한 체격, 세이토렌의 남편.
사반트 : 후작. 34살의 귀족 남자. 188cm, 135kg. 프로레슬러를 연상시키는 몸집의 소유자. 사디스트이자 폭군. 세이르족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엘러시아를 사로잡고 학대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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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이토렌은 세수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껴안고 깊은 키스를 나누다가 세이토렌을 보자 멈췄다. 세이토렌은 다가와서 엘러시아의 고개를 돌리고는 가볍게 뽀뽀를 했다. 베로스와의 간접 키스인 셈이었다. 베로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베로스씨, 엘이랑 제가 뽀뽀하는 거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요? 뭘 놀래서 벌게지고 그래요."
세이토렌은 그렇게 베로스에게 핀잔을 주고 방문으로 나섰다. 베로스의 자지가 한깟 발기되었다. 엘러시아와 베로스가 뒤따랐다. 다들 무구를 든든히 갖추고 있었다. 문단속을 하고 세 사람은 말을 타고 루이페르가 있는 별장으로 갔다.
루이페르는 용병 길드로 가서 칼로 먹고 살아 보겠다는 거친 사내들을 모았다. 루이페르가 원래 끌고 다니는 시종들과 함께 용병 값을 흥정했다. 루이페르를 평소 따르던 병사들도 모았다.
루이페르는 용병들을 모아서 이번 임무를 설명했다. 루이페르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고 컷다.
"잔인한 도적떼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관청을 태우고 아녀자를 죽이는 무리다. 정의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놈들이 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놈들이 하는 짓은 도적질이다. 우리는 마땅히 도적을 경멸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나라다. 힘을 합쳐 몬스터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군사력을 나누게 만드는 도적떼는 사악하다."
용병들이 함성을 질렀다. 살육에 대의명분을 싣는 것은 꼭 필요한 자기 합리화라고 루이페르는 생각했다.
용병단과는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하고 엘러시아 일행은 별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세이토렌이 말했다.
"인두세(人頭稅)를 내고 와야 겠어."
인두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값으로 적용되는 세금이었다. 평민들에게는 꽤 부담이 되었다. 루이페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귀족은 인두세를 내는 게 아니야. 면제되어 있잖아."
엘러시아와 베로스도 의아한 눈길로 세이토렌을 바라보았다. 인두세는 자신들 같은 평민이나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아직 귀족으로 인정받으려면 공을 더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세이토렌이 말했다.
"귀족이라도 굳이 내고자 한다면 낼 수 있어."
"세금 내서 뭐하게? 세리들이 다 중간에서 떼어 먹고 남는 걸로 꾸려가는 게 세금인데 그걸 뭐하러 내."
"낼 거야."
"내지 마. 괜한 돈 쓸 일 있어?"
"우리가 세금을 안 내면, 그만큼 평민들이 내야 해. 그만큼 평민들이 살기 힘들어질 거야. 세금이 줄면 평민들은 그만큼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에게 더 부담을 지우긴 싫어."
"아낄 수 있는 걸 왜 안 아끼려는 거야? 아껴야 돈이 모이는 법이야. 그래야 그 돈으로 돈을 더 벌 수 있고."
"난 낼 거야."
세이토렌은 섀도우를 타고 사라졌다. 루이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 때문에 멀쩡한 귀족녀가 자유사상가가 된 걸까.
별장으로 세 사람은 들어갔다. 별장 복도에서 베로스가 엘러시아의 등을 밀어 앞으로 나가게 했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엉덩이를 꽉 손에 쥐었다. 엘러시아의 툭 튀어나온 엉덩이는 말캉말캉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아잉, 왜 그래, 오빠."
엘러시아가 엄청나게 풍만한 엉덩이를 흔들었다.
"준남작님, 엘을 함께 시식해보는 게 어때요?"
"엘러시아를?"
"함께 즐겨보자구요. 엘, 네 뜻은 어때?"
루이페르와 베로스의 시선이 엘러시아의 터질듯한 육체에 꽂혔다. 남자들이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는 걸 즐기는 엘러시아였다. 두 사내의 뜨거운 눈빛이 싫지 않았다. 베로스에게 신전 창녀로 나서겠다고 자청하고, 아이가 딸려 있으니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던 엘러시아였다. 엘러시아는 섹스를 좋아했다. 엘러시아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좋아요."
루이페르의 방에 세 남녀는 들어갔다. 무척 넓고 수수한 느낌이 나는 방이었다. 침대가 크고 푹신푹신해 보여서 엘러시아는 기뻣다. 엘러시아는 단숨에 옷을 벗어버렸다. 머리 보다 살짝 크고 모양새 좋은 유방, 미끈한 배, 가느다란 허리, 뒤로 툭 튀어나온 거대한 엉덩이, 늘씬하고 미끈한 팔다리가 드러났다. 엘러시아의 우유빛 살결이 창문에서 새어 나온 햇살을 쬐면서 영롱하게 빛났다. 엘러시아는 도톰한 입술에서 혀를 살짝 내밀면서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했다. 고운 발바닥이 드러났다. 발바닥을 남에게 드러내면 세이르족 여전사 출신인 엘러시아는 마음 속 깊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고양되는 것이었다. 엘러시아는 색기가 온몸에 넘쳐 흐르는 여자였다.
베로스는 탄탄한 몸을 일으켜 엘러시아에게 덤벼들었다. 엘러시아의 유방을 붙잡고 침대에 던졌다. 엘러시아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억세게 껴안았다. 엘러시아의 육벽을 가르고 자지를 밀어넣었다. 엘러시아는 다리로 베로스의 허리를 껴안았다. 엘러시아의 단련된 하체는 보지의 온도를 뜨겁게 달구었고 내벽을 잘 조이게 했다. 거칠게 덮쳐오는 베로스가 낯설었고, 보지도 촉촉하게 젖지 않은 상태였다.
엘러시아가 말했다.
"오빠, 조금만 부드럽게~~"
"싫어. 널 오늘은 거칠게 다룰 거야."
"응. 그렇게 해 줘."
엘러시아를 안으면서 베로스는 세이토렌을 생각하고 있었다. 베로스는 세이토렌 또한 고문관들과 오크들과 병사들에게 윤간당했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전에 베로스는 세이토렌과 엘러시아가 엉켜서 하체를 맞부딪치는 광경을 보았다. 루이페르가 엘러시아를 안은 적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베로스의 마음 속에 세이토렌에 대한 음심이 강하게 피어올랐다.
세이토렌을 따먹고 싶다.
베로스는 세이토렌과 비슷한 몸매를 가진 엘러시아와 섹스함으로서, 세이토렌에 대한 육욕을 부정하고 싶었다. 잘 되지 않았다. 엘러시아에 대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베로스는 엘러시아를 안고 몸을 돌려 엘러시아가 자신의 위로 가게 했다.
엘러시아의 새하얀 엉덩이가 루이페르에게 남김없이 공개되었다. 분홍빛 떼갈 좋은 보지가 자극적이었다. 그 모습에 루이페르도 자지가 발기되는 걸 느꼈다.
사랑은 3년간 지속되는 화학 반응이다. 남녀의 사랑은 같은 수준인 시기가 짧다. 처음엔 남자의 사랑이 더 뜨겁고 나중에 갈수록 빨리 식는다. 여자의 사랑은 처음엔 완만하다가 나중에 갈수록 뜨거워진다. 엘러시아는 아직 몹시 뜨겁게 베로스를 사랑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베로스는 그렇지가 못 했다.
"준남작님, 부인은 항문 섹스를 하지 않으시죠?"
엘러시아의 똥구멍을 벌리면서 베로스가 말했다. 루이페르가 답했다.
"응, 못 하게 하더라고."
루이페르는 침을 엘러시아의 똥구멍에 흘려넣었다.
루이페르의 자지가 미끄러지듯이 엘러시아의 잘 길들여진 똥구멍에 틀어박혔다. 세이토렌의 보지에 틀어박혔을 루이페르의 자지가 엘러시아의 똥구멍을 사이에 둔 얇은 살을 통해 베로스의 자지에 느껴져왔다. 간접적으로 세이토렌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베로스는 낮게 신음했다.
엘러시아의 탄력 넘치고 살집 좋은 엉덩이는 극상의 쾌락을 두 사내에게 제공했다. 루이페르는 엘러시아의 엉덩이를 철썩 철썩 두들겼다. 엘러시아는 큼직한 유방을 베로스의 억센 가슴에 찌부러뜨리면서 쾌락에 젖은 교성을 내질렀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보지에 뜨거운 정액을 싸질렀다. 엘러시아는 정액이 보지 안에서 폭사되는 느낌을 좋아했다. 베로스는 자지를 빼내어 엘러시아가 핥게 했다. 루이페르도 비슷한 시기에 정액을 엘러시아의 똥구멍 안에 쌌다.
"핥게 해도 되겠어?"
"물론이죠."
루이페르는 베로스의 허락을 받고는 엘러시아의 얼굴 앞에 자신의 똥 묻은 자지를 들이댓다. 엘러시아의 마음 속에 음심이 불타올랐다. 누구의 자지든 엘러시아는 귀엽게 보았다. 누구의 자지든 핥고 빨아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 엘러시아는 루이페르의 자지를 거리낌없이 핥고 빨아 깨끗하게 했다. 루이페르의 귀두를 목구멍으로 조였다. 루이페르의 불알을 한 번 물고 핥아주었다. 베로스가 말했다.
"엘, 오줌 마렵다."
엘러시아는 베로스의 자지를 머금었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입안에 오줌을 쌌다. 엘러시아는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잘 마셨다. 루이페르는 엘러시아에게 오줌을 먹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이페르가 오줌을 먹이겠다고 했어도 엘러시아는 거절했을 것이다. 엘러시아는 최근 들어서는 베로스의 오줌만을 마시고 있었다. 신전 수녀 생활을 할 때도 오줌을 먹지는 않았었다.
엘러시아는 베로스를 보고 말했다.
"오빠, 내 보지 핥아 주라. 나 잔뜩 달아오르기만 하고 가지는 못 했어."
엘러시아는 보지를 벌름거려 정액을 흘러내리게 하면서 말했다.
대답 대신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허리를 붙잡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손을 뻗어 엘러시아의 음핵과 질 안의 G스팟을 자극했다. 가끔 정액 묻은 손가락을 내밀어 엘러시아의 입술과 혀로 닦게 했다. 섬세한 손길이었다. 엘러시아는 얼마못가 허리를 휘고 유방을 팽창시키면서 보짓물을 세차게 싸질렀다. 절정에 오른 뒤 나른하게 엘러시아는 베로스의 가슴에 등을 밀착시켰다.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왔다.
루이페르가 말했다.
"형, 엘이 우는데."
베로스는 깜짝 놀라 엘러시아의 얼굴을 돌려 보았다. 엘러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왔다.
"오빠, 변했어. 옛날엔 내가 안 가면 내 보지 핥고 빨아주고 그랬었잖아. 오빠 좆물도 직접 마시고 그랬었잖아. 나 슬퍼, 슬프다고."
루이페르가 베로스에게 말했다.
"형, 엘한테 잘해줘. 엘에겐 형 뿐이야."
루이페르는 그렇게 말하곤 나갔다. 베로스에게 후회가 밀려왔다. 엘러시아를 안으면서도 세이토렌을 생각했고, 엘러시아에게 충실하지 못 했다.
"엘, 미안해."
"와아아앙, 오빠."
엘러시아는 베로스를 으스러질듯 껴안고 엉엉 울었다. 엘러시아는 아니지만 자신은 권태기라고 베로스는 생각했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했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와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엘러시아는 한동안 울고는 안도했는지 숨이 편해졌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나란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엘러시아는 고개를 가만히 베로스의 어께에 얹었다. 엘러시아가 말했다.
"오빠, 수녀 시절에 나한테 자이렌 자작님이 찾아 온 적도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자이렌 자작이라면 세이토렌의 친정 아버지였다. 베로스가 물었다.
"자이렌 자작님은 본부인만 계시고 첩이라곤 없으신 분인데 널 찾아갔다고? 실망인걸."
"실망이긴. 자이렌 자작님은 내 봉사를 다 받고 나서 날 가끔 찾겠다고 하셨어. 가끔은 젊은 여자의 탱탱한 몸이 그립다시면서 믿을 수 있는 여자를 안고 싶다고 하셨어."
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건지 베로스는 알 수 없었다. 험담을 해야 하는지 뭐라 맞장구를 쳐야 할지 베로스는 난감했다. 베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첩이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본부인을 보면 사랑스럽고 귀엽다고 하시더라. 50대인 지금도 두 분은 섹스를 하신데. 다만 탄력 넘치는 젊은 여자의 몸이 그리울 때가 있데. 딸인 세이토렌의 친구이고, 오빠의 아내인 나라면 믿음직스럽고 친근감이 간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지금도 가끔 와서 내 봉사를 받고 싶어 하시는 거야. 물론 화대는 두둑히 주실 거야. 괜찮지?"
"으, 으응."
"오빠,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살 수 있겠지?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오빠는 비참했던 날 사랑해줬잖아. 날 사랑해주는 오빠가 너무 좋다. 신전에서 숱한 사내들을 받으면서도, 날 사랑해주는 남자는 오빠 뿐이란 걸 언제나 잊지 않았어."
베로스는 엘러시아를 안으면서 세이토렌을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세이토렌이 밉살스러웠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엘러시아, 신전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들 상대하느라 고생 많았어. 이젠 앞으로 좋은 날들만 있을 거야."
"오빠아~~"
별장 앞에서 루이페르는 빵을 사서 씹어 먹었다. 연어회와 함께 먹는 맛이 담백했다. 배부를 정도로 먹은 건 아니었다. 그저 간식이었다. 점심은 세이토렌과 함께 먹을 작정이었다. 루이페르는 다른 기사들처럼 대식가였다. 키 크고 건장한 근육질 육체의 신진대사가 왕성했던 것이다.
세이토렌이 섀도우를 타고 다가왔다. 세이토렌은 백마에서 내려 루이페르에게 걸어갔다.
"루이페르, 우리 데이트할래?"
"좋지. 베로스 형, 엘러시아 내려 와!"
루이페르의 우렁찬 외침 소리에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갑옷과 무기를 챙겨 입고 서둘러 내려왔다. 경호원으로 쓰기에 두 사람은 괜찮았다. 네 사람은 말을 타고 자이렌성의 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한낮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활기찬 거리였다. 이들 네 명 모두 키도 크고 잘 생겼기에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곧 길을 비키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했다. 세이토렌의 갑옷에 이 성의 주인인 자이렌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루이페르의 갑옷 또한 고급스럽고 로렌토르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디로 갈까?"
루이페르가 물었다. 세이토렌이 답했다.
"살롱에 가자. 내가 쏠게."
살롱은 귀족들과 부자들에 속한 마님들이 주로 가는 찻집이었다. 당연하게도 귀족이 운영하고 있었다. 큼직한 저택이 보였다. 회원증이 없이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세이토렌은 문지기에게 회원증을 제시했다. 문지기는 허겁지겁 예를 갖추었다. 원래는 회원증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세이토렌 일행이라 모두 통과되었다. 세이토렌은 이 성 성주의 딸이므로 살롱 주인이 아부를 떨어야 할 판이었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샹들리에가 달린 커다란 로비가 나타났다. 대리석 계단을 올라 살롱이라 불리는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온갖 미술품이 기품있는 배치로 전시되어 있었고 햇살이 방 전체에 포근히 쏘아져들어왔다. 베로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토록 화려한 방은 일찌기 본 일이 없었다. 엘러시아는 놀라지 않았다. 사반트성의 화려한 방들에 비한다면 초라한 곳이었다. 독특한 점은 방 한켠에 책장이 있어서 수많은 책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이토렌은 몇몇 지체 높은 귀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루이페르는 이미 그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세이토렌은 고르곤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시켰다. 고르곤의 막 죽은 시체로 만드는 스테이크로 일주일동안 삶은 다음 구워야만 부드러워지고 맛이 나는 물건이었다. 희귀하고 맛이 독특해서 몹시 비싼 요리였다. 입안에 퍼지는 향도 맛도 좋았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마치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사반트 후작국 식사법에 서서히 퍼지기 나이프, 포크, 숟가락, 젓가락을 쓰는 방법을 세이토렌과 루이페르가 베로스와 엘러시아에게 친절히 알려주었다. 스테이크와 함께 차를 들면서 세이토렌이 말했다.
"인두세를 내고 왔어. 다들 내면 좋을텐데, 뭐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은행에서 돈을 꺼내서 구빈소에 기부하고 오느라고 좀 늦었어. 마음 같아서는 직접 구빈소를 운영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반트에게 주목을 받잖아. 남은 돈으로 모두에게 쏘는 거야."
루이페르가 말했다.
"구빈소? 거지들한테 공짜로 빵 주는 데 말이지? 노력도 안 하는 애들한테 왜 공짜 빵을 떠먹이는 건지 난 알 수가 없어."
"왜 공짜 빵을 먹이는 건지 모르겠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지, 안 그래?"
"다 먹고 나서 구빈소로 가자."
뜻밖의 말에 루이페르는 놀랐다. 세이토렌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따뜻한 사람이니까 구빈소를 직접 보면 마음이 바뀔 거야. 날 믿고 한 번 가보자. 난 날 아내로 선택한 당신을 믿어."
식사를 마친 뒤 세이토렌은 금화로 값을 치렀다. 세이토렌은 요리사에게 요리가 무척 맛있었다고 칭찬해주었다.
네 사람은 말을 살롱 마굿간에 맡겼다. 세이토렌이 말했다.
"아마 사반트는 우릴 감시하고 있을 거야. 가끔 사치를 부릴 필요도 있지. 사치에 아까운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이 반역을 꿈꿀 리는 없으니까."
네 사람은 걸어서 가장 가까운 구빈소로 갔다. 허름한 거리에 구빈소는 설치되어 있었다. 수많은 거지들이 줄을 서서 효모로 부풀리지 않은 빵을 배급받고 있었다. 헐벗은 사람들이었다. 여자와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깔깔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나이 든 수녀들과 자원봉사자 신도들이 빵을 나눠 주고 있었다. 엘러시아가 베로스에게 작게 말했다.
"오빠, 내가 보지 팔아서 번 돈으로도 꽤 거지들한테 빵이 나갔겠다."
"그렇겠네. 수고했어, 엘."
"고마워."
엘러시아가 귀밑까지 붉게 얼굴을 물들이면서 대답했다.
루이페르가 세이토렌에게 말했다.
"거지들이 이렇게 많다니. 공짜 빵을 주니까 일을 안 해서 거지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쉿, 들리겠어. 이렇게 공짜 빵을 주니까 그래도 절도나 강도 짓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거야. 저기 꼬마 아이들을 봐. 공짜 빵이라도 주니까 몸을 팔지 않고도 도둑질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는 거야. 하루에 겨우 한 끼고 가까스로 배고픔을 해결할 정도이긴 하지만 그토록 소중한 빵이야."
"아이들은 고아원에 집어 넣어야지."
"고아원이 싫어서 나온 애들이야. 매일 같이 때리고 굶기고 몸을 뺏기도 하는 곳이 고아원이야. 또한 고아원이 꽉 찬 상태이기도 하지."
세이토렌이 사람들의 줄에 합류했다. 덩치 큰 네 기사가 줄에 합류하자 사람들이 간격을 만들었다. 세이토렌은 빵 하나를 받아왔다. 조금 뜯어서 다른 세 사람에게 먹였다. 엘러시아와 베로스는 먹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루이페르는 바로 뱉어냈다.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거야?"
"확실히 당신은 입이 고급이구나."
세이토렌이 빵을 뜯어서 먹었다. 시큼했고 썼고 짭조름한데다 씁쓸했다. 오래되어 상한 보리와 밀을 섞어 만든 빵이었다. 애벌레가 빵에서 나오자 루이페르가 기겁하면서 빵을 쳐서 땅에 떨구려고 손을 뻗었다. 세이토렌이 그걸 피하곤 말했다.
"원래 애벌레를 구워서 넣어서 만드는 빵이야. 가난한 사람들은 애벌레를 지금도 굽거나 생으로 먹고 있어."
세이토렌은 구워진 애벌레를 거리낌없이 씹어 먹었다. 세이토렌이 말을 이었다.
"더 심한 걸 말해줄까? 어떤 사람들은 진흙을 구워서 먹기도 해."
루이페르가 대꾸했다.
"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댓가를 받는 거야. 이들을 봐. 농촌에서 쫓겨나서 도시로 도망쳐 온 이들이 주축이야. 얼마나 게을렀으면 농촌에서 쫓겨나고, 도시로 와서도 일자리 하나 못 잡고 빌빌대고들 있는 걸까. 일자리를 나누어주는 관청이 있는 판국에!"
루이페르의 시각은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초했다. 사반트 후작국의 물산은 다른 지역들처럼 풍부했고, 몬스터들의 거듭되는 침공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일손은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임금이 다른 나라 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편이었기에 사람들은 대체로 잘 먹고 지내는 편이었다. 비교적 낮은 구릉들, 강들, 고원에 의지하여 사반트는 풍요로운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쉿. 다 들리게 말하면 어떡해, 루이. 그 관청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루이페르의 편견에 가득찬 말을 듣고 배식 받고 있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빳지만 감히 성내어 덤비지 못 했다. 루이페르의 허리춤엔 칼이 꽂혀 있었다. 엘러시아, 베로스, 세이토렌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중장갑을 입고 있는 상태들이었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세이토렌이 루이페르의 손을 잡아 끌었다. 몇 블럭을 지나 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 하나 없었다. 세이토렌이 말했다.
"주인장, 이 식당을 잠시 빌리겠어요. 잠깐 문을 닫고 나가 계세요."
세이토렌이 금화 한 닢을 건내자 식당 주인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따랐다. 식당 문이 닫혔다. 한 탁자에 네 사람은 둘러 앉았다. 세이토렌이 루이페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들은 능력이 없고 일자리도 없어. 그러니 돈을 벌 수 없고 따라서 능력을 키울 수도 없는 거야."
"그건 핑계일 뿐이야. 여기 베로스 형을 봐. 천애고아였지만, 벌목공과 대장장이를 거쳐 기사가 되었어. 노력하면 뚫리는 세상이야."
베로스가 칭찬을 받곤 기분이 좋아져 함박웃음을 지었다. 베로스는 보기 좋은 미소를 가진 남자였다. 베로스가 말했다.
"그래요, 부인. 벌목공으로 돈을 모으고, 대장장이의 조수로 들어가 대장장이로 독립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땀 흘려 일하고, 선배들과 동료들의 기분을 먼저 파악하여 맞추려고 애쓰고, 손님이 원하는 바를 먼저 깨달으면서 걸어 온 길이었어요. 제게 부모님이 물려 준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과연 그럴까요, 베로스씨? 건강한 몸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굳센 마음, 적절한 사교성과 처세술은 부모님이 물려 준 것에 들어가지 않나요?"
"그 또한 제가 노력했기에...."
"노력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은 부모님께서 물려 주신 거지요. 충실하고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 하면 사람은 삐뚤어져요."
"인정해요."
베로스는 그렇게 말하곤 세이토렌을 흘겨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두운 식당 안이라 베로스가 그러는 걸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루이페르는 팔장을 꼈다. 명문가의 자제인 루이페르로서는 세이토렌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다. 루이페르가 말했다.
"공짜 빵을 주는 것에 난 반대야. 거기에 생 돈을 쓰는 것도 반대고."
세이토렌이 답했다.
"두 가지 논제네. 난 내 돈으로 기부한 거야. 우리 부부의 재산은 각자 따로 되어 있잖아. 자이렌성의 상가들에서 나온 돈으로 기부했어. 거긴 내 땅이고 내 건물들이야. 당신의 영지에서 나온 이득으로 기부한 게 아니야. 그런데도 난 당신 영지를 지키기 위해 쉼없이 몬스터들, 도적들과 싸워 왔어. 내가 부인으로서 기사로서 의무를 지켰으니까 내 돈 내가 쓸 정도 자유는 줬으면 좋겠어."
"좋아. 렌, 당신에게 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왜 내가 공짜로 빵 주는 걸 반대하는 줄 알아? 그걸 줌으로서 그들은 굶어 죽지 않게 되고 게을러지는 거야. 그러면 사회의 활력이 떨어져."
"게을러지는 게 무서워서, 사람을 굶어 죽게 하자는 거야? 굶는 건 정말 비참해. 난 사반트 그 개새끼한테 사흘 동안 굶는 고문을 당했어. 난 놈이 날 굶겨 죽이려는 건 줄로 알았어. 육체의 고통 앞에 품위는 없었어."
"사반트가 우리 모두의 원수이긴 하지만, 지금 이 논제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어."
"난 굶어 죽지 않을 권리를 그들에게 주려는 거야. 약간의 기회를 주자는 거지. 난 가능하다면 저들이 평생동안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물론 그건 내 힘만으로는 안 되고 국가에서 세금으로 해야 겠지. 한 아기가 사려 깊게 막대한 부를 투자해서 키워진다면 설령 노예의 자식일지라도 귀족의 자식처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거야. 우리 귀족의 아이만이 사랑받고 제대로 키워질 이유가 있을까? 그게 단지 귀족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루이페르가 슬쩍 세이토렌을 비꼬았다.
"당신은 엄청난 재력가야. 왜 그 돈을 모두 기부하지 않지?"
"그 돈을 기부하면 난 약해지겠지. 말년에 쓸쓸해지고 싶지는 않아. 사실 내 인맥의 상당 부분은 돈과 권력이 없으면 사라질테니 그걸 포기할 수는 없어. 어째서 사람들은 선의를 지닌 사람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치는 본질적으로 밥그릇 싸움인데 나한테 부가 있어야 힘이 있어서 내 정치적 견해를 관철시키는데 유리하겠지. 좀 더 값진 때가 올 때 난 내 부를 투자할 거야."
"기부는 나쁘다고 생각해. 뭐 내가 굳이 신전들에서 구빈 활동을 하는 걸 막지는 않겠지만... 기부 보다는 일자리를 늘리는 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엔 기부는 필수야. 교육 없이는 일자리도 없어. 교육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열약하고 돈도 겨우 먹고 살 만큼 줘서 부자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적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보여야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을 할텐데 말이지.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 난 내가 대귀족인 게 부끄러워. 잘난 것도 없으면서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해."
"우리 같은 부자 귀족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부는 자기 절제의 결과야. 자기 관리를 잘 해야 부를 만들 수 있고 지킬 수 있지."
세이토렌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모든 부는 빼앗은 거야. 자연으로부터 강탈하고 착취하고, 침략하고 정복하고, 남의 것을 사기치고 강도질하고, 농노의 산물의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하고, 노예를 팔고, 고리대금을 자행하고, 임금을 경쟁자와 비교해 낮게 만들고, 경쟁자와 담합해서 물가를 올리고... 온갖 방식으로 빼앗아서 얻은 걸 물려 받은 것 뿐이야. 자기 것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려는 욕심이 부를 차지하고 있게 만든 거야.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교육 받지 못 하고 병에 걸려도 치료 받을 수 없고 인맥도 제한적인데다 미신에 사로잡히기 쉬워. 내 아버님은 우리의 부는 남으로부터 빌린 것이고 가난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
갑자기 세이토렌은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말을 이었다.
"사반트가 날 핍박하고 학대하고 내 아기를 낙태시켰을 때 난 알았어. 내 아기는 그 어떤 기회도 가질 수 없었어. 그 아기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기회를 못 얻고 있는 거야. 일할 기회도 배울 기회도 좋은 마음을 얻을 기회도 모든 기회를 잃으면 빈민으로 전락해 버리는 거야. 우리는 더욱 부자가 되고 있지만 그들에겐 기회가 없어. 난 사반트를 증오해. 놈을 후작으로 만들고 지탱시키는 이 체제가 너무나 싫어! 사람이 가장 소중한 세상을 보고 싶어. 그런데,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구빈소에 기부 몇 푼 하는 거 뿐이야..."
사반트에게 낙태당한 아기를 생각하자 세이토렌의 가슴이 저며왔다. 세이토렌은 탁자 위에 엎드려 어께를 들섞이면서 흐느꼈다. 루이페르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세이토렌의 손을 붙잡았다.
베로스는 가난 때문에 설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다. 가난 때문에 설움을 받아 본 적 없었을 세이토렌이 저러는 것에, 세이토렌의 모성애가 느껴졌고 더욱 그녀가 섹시하게 비췄다.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세이토렌이 한층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세이토렌은 잠시 울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
"물론 내 기부는 강자의 시혜일 뿐이니 한계가 있지. 가난한 사람들이 나서서 체제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야 제대로 해결이 될텐데..."
"그건 불가능해, 렌. 이곳은 소드마스터 1명이 5000명의 병사를 척살할 수 있는 세상이야. 감히 대항할 수 없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 미안해.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내 뱃 속에서 사반트에게 죽은 내 아기가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느꼈어. 그래서 수많은 책들을 읽고 정리한 생각을 말해 본 거야. 걱정마, 루이페르. 내 삶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치기엔 난 너무 겁이 많아."
루이페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의 말을 잘 정리해서 반란의 도구로 쓰면 좋을텐데... 난 반드시 사반트를 때려 죽일 거야."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야지."
세이토렌이 뇌까렸다. 엘러시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팔다리를 먼저 자르고 며칠 돼지우리에서 생활하게 한 다음에 죽였으면 좋겠어요."
루이페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거 좋지. 그런데 엘, 미인계는 사반트에게 통하지 않을 거 같던데 진짜 그래?"
엘러시아가 고운 입술을 움직여 대꾸했다.
"미인계라니요? 그게 뭐에요?"
엘러시아는 무식했다.
"아름다운 여자를 이용해서 적을 죽인다던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도해서 폐인으로 만든다던가 하는 전략이야."
세이토렌이 대신 대답했다. 세이토렌이 말을 이었다.
"미인계가 통했으면 옛날에 사반트는 망했을 거야. 엘러시아를 괴롭혔을 때 엘의 육체에 빠졌다면 사반트는 망했겠지. 돈과 시간을 미녀에게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사반트는 약해질 수 밖에 없어. 사반트는 귀족답게 절제된 생활을 하고 파렴치한 일에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지. 사반트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하면 약해지니까 그럴 뿐이야. 사반트는 환관과 고문관을 이용해서 미녀를 자신에게 복종시키는데 시간 낭비를 안 하도록 하고 있어. 돈도 결코 많이 쓰게는 하지 않아. 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사반트는 여자 소원을 잘 들어준다거나 여자 기분을 맞춘다거나 하지 않아. 여자에게 자기 맘대로 할 뿐이야. 그런 습성이 성노예에겐 더욱 격하게 드러나는 것 뿐이야. 내 친구 가운데서도 사반트의 후궁이 있어. 후궁에게도 사반트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나쁜 남자일 뿐이래. 아, 친구라. 사반트의 성노예에서 벗어난 이래 내 귀족 친구들은 상당수가 날 떠났어. 남은 몇 안 되는 친구에 루이페르 당신도 끼어 있는 거야."
루이페르의 얼굴에 일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이미 여러 차례 세이토렌의 감정이 난리 피우는 걸 보았었다. 사반트에게 붙들리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행동양식이었다.
"렌, 너무 자책하지 마."
세이토렌의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눈물과 함께 말간 콧물이 흘러내렸다.
"루이페르, 정말 고마워 고마워. 이런 날 떠나지 않아 줘서. 난 더러운 년이야."
루이페르가 세이토렌에게 손수건을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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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시아 : 26살의 세이르족 여전사. 183cm, 체중은 모르지만 꽤 나갈 듯. 45-25-42(인치)의 대단한 글래머. 암살과 전투에 능함.
세이토렌 : 26살의 사반트 후작국 귀족 여자. 기사. 185cm. 체중은 모르지만 꽤 나갈 것으로 예상됨. 44-25-42(인치)의 엘러시아 못 잖은 글래머. 엘러시아의 친구. 사반트에게 붙들려 메조키스트로 길들여져 갔었음.
베로스 : 29살의 평민 남자. 기사. 190cm, 105kg. 건장한 체격. 엘러시아의 남편.
루이페르 : 26살의 귀족 남자. 준남작. 191cm, 108kg. 탄탄한 체격, 세이토렌의 남편.
사반트 : 후작. 34살의 귀족 남자. 188cm, 135kg. 프로레슬러를 연상시키는 몸집의 소유자. 사디스트이자 폭군. 세이르족을 침공하는 과정에서 엘러시아를 사로잡고 학대했음.
******
2.
세이토렌은 세수를 하고 방에서 나왔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껴안고 깊은 키스를 나누다가 세이토렌을 보자 멈췄다. 세이토렌은 다가와서 엘러시아의 고개를 돌리고는 가볍게 뽀뽀를 했다. 베로스와의 간접 키스인 셈이었다. 베로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베로스씨, 엘이랑 제가 뽀뽀하는 거 처음 보는 거 아니잖아요? 뭘 놀래서 벌게지고 그래요."
세이토렌은 그렇게 베로스에게 핀잔을 주고 방문으로 나섰다. 베로스의 자지가 한깟 발기되었다. 엘러시아와 베로스가 뒤따랐다. 다들 무구를 든든히 갖추고 있었다. 문단속을 하고 세 사람은 말을 타고 루이페르가 있는 별장으로 갔다.
루이페르는 용병 길드로 가서 칼로 먹고 살아 보겠다는 거친 사내들을 모았다. 루이페르가 원래 끌고 다니는 시종들과 함께 용병 값을 흥정했다. 루이페르를 평소 따르던 병사들도 모았다.
루이페르는 용병들을 모아서 이번 임무를 설명했다. 루이페르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고 컷다.
"잔인한 도적떼를 잡으러 가는 것이다. 관청을 태우고 아녀자를 죽이는 무리다. 정의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놈들이 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놈들이 하는 짓은 도적질이다. 우리는 마땅히 도적을 경멸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몬스터들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나라다. 힘을 합쳐 몬스터를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군사력을 나누게 만드는 도적떼는 사악하다."
용병들이 함성을 질렀다. 살육에 대의명분을 싣는 것은 꼭 필요한 자기 합리화라고 루이페르는 생각했다.
용병단과는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하고 엘러시아 일행은 별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세이토렌이 말했다.
"인두세(人頭稅)를 내고 와야 겠어."
인두세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값으로 적용되는 세금이었다. 평민들에게는 꽤 부담이 되었다. 루이페르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귀족은 인두세를 내는 게 아니야. 면제되어 있잖아."
엘러시아와 베로스도 의아한 눈길로 세이토렌을 바라보았다. 인두세는 자신들 같은 평민이나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아직 귀족으로 인정받으려면 공을 더 세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세이토렌이 말했다.
"귀족이라도 굳이 내고자 한다면 낼 수 있어."
"세금 내서 뭐하게? 세리들이 다 중간에서 떼어 먹고 남는 걸로 꾸려가는 게 세금인데 그걸 뭐하러 내."
"낼 거야."
"내지 마. 괜한 돈 쓸 일 있어?"
"우리가 세금을 안 내면, 그만큼 평민들이 내야 해. 그만큼 평민들이 살기 힘들어질 거야. 세금이 줄면 평민들은 그만큼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에게 더 부담을 지우긴 싫어."
"아낄 수 있는 걸 왜 안 아끼려는 거야? 아껴야 돈이 모이는 법이야. 그래야 그 돈으로 돈을 더 벌 수 있고."
"난 낼 거야."
세이토렌은 섀도우를 타고 사라졌다. 루이페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 때문에 멀쩡한 귀족녀가 자유사상가가 된 걸까.
별장으로 세 사람은 들어갔다. 별장 복도에서 베로스가 엘러시아의 등을 밀어 앞으로 나가게 했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엉덩이를 꽉 손에 쥐었다. 엘러시아의 툭 튀어나온 엉덩이는 말캉말캉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아잉, 왜 그래, 오빠."
엘러시아가 엄청나게 풍만한 엉덩이를 흔들었다.
"준남작님, 엘을 함께 시식해보는 게 어때요?"
"엘러시아를?"
"함께 즐겨보자구요. 엘, 네 뜻은 어때?"
루이페르와 베로스의 시선이 엘러시아의 터질듯한 육체에 꽂혔다. 남자들이 자신을 매력적으로 보는 걸 즐기는 엘러시아였다. 두 사내의 뜨거운 눈빛이 싫지 않았다. 베로스에게 신전 창녀로 나서겠다고 자청하고, 아이가 딸려 있으니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던 엘러시아였다. 엘러시아는 섹스를 좋아했다. 엘러시아는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좋아요."
루이페르의 방에 세 남녀는 들어갔다. 무척 넓고 수수한 느낌이 나는 방이었다. 침대가 크고 푹신푹신해 보여서 엘러시아는 기뻣다. 엘러시아는 단숨에 옷을 벗어버렸다. 머리 보다 살짝 크고 모양새 좋은 유방, 미끈한 배, 가느다란 허리, 뒤로 툭 튀어나온 거대한 엉덩이, 늘씬하고 미끈한 팔다리가 드러났다. 엘러시아의 우유빛 살결이 창문에서 새어 나온 햇살을 쬐면서 영롱하게 빛났다. 엘러시아는 도톰한 입술에서 혀를 살짝 내밀면서 허공에 대고 발차기를 했다. 고운 발바닥이 드러났다. 발바닥을 남에게 드러내면 세이르족 여전사 출신인 엘러시아는 마음 속 깊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고양되는 것이었다. 엘러시아는 색기가 온몸에 넘쳐 흐르는 여자였다.
베로스는 탄탄한 몸을 일으켜 엘러시아에게 덤벼들었다. 엘러시아의 유방을 붙잡고 침대에 던졌다. 엘러시아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억세게 껴안았다. 엘러시아의 육벽을 가르고 자지를 밀어넣었다. 엘러시아는 다리로 베로스의 허리를 껴안았다. 엘러시아의 단련된 하체는 보지의 온도를 뜨겁게 달구었고 내벽을 잘 조이게 했다. 거칠게 덮쳐오는 베로스가 낯설었고, 보지도 촉촉하게 젖지 않은 상태였다.
엘러시아가 말했다.
"오빠, 조금만 부드럽게~~"
"싫어. 널 오늘은 거칠게 다룰 거야."
"응. 그렇게 해 줘."
엘러시아를 안으면서 베로스는 세이토렌을 생각하고 있었다. 베로스는 세이토렌 또한 고문관들과 오크들과 병사들에게 윤간당했다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오전에 베로스는 세이토렌과 엘러시아가 엉켜서 하체를 맞부딪치는 광경을 보았다. 루이페르가 엘러시아를 안은 적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베로스의 마음 속에 세이토렌에 대한 음심이 강하게 피어올랐다.
세이토렌을 따먹고 싶다.
베로스는 세이토렌과 비슷한 몸매를 가진 엘러시아와 섹스함으로서, 세이토렌에 대한 육욕을 부정하고 싶었다. 잘 되지 않았다. 엘러시아에 대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베로스는 엘러시아를 안고 몸을 돌려 엘러시아가 자신의 위로 가게 했다.
엘러시아의 새하얀 엉덩이가 루이페르에게 남김없이 공개되었다. 분홍빛 떼갈 좋은 보지가 자극적이었다. 그 모습에 루이페르도 자지가 발기되는 걸 느꼈다.
사랑은 3년간 지속되는 화학 반응이다. 남녀의 사랑은 같은 수준인 시기가 짧다. 처음엔 남자의 사랑이 더 뜨겁고 나중에 갈수록 빨리 식는다. 여자의 사랑은 처음엔 완만하다가 나중에 갈수록 뜨거워진다. 엘러시아는 아직 몹시 뜨겁게 베로스를 사랑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베로스는 그렇지가 못 했다.
"준남작님, 부인은 항문 섹스를 하지 않으시죠?"
엘러시아의 똥구멍을 벌리면서 베로스가 말했다. 루이페르가 답했다.
"응, 못 하게 하더라고."
루이페르는 침을 엘러시아의 똥구멍에 흘려넣었다.
루이페르의 자지가 미끄러지듯이 엘러시아의 잘 길들여진 똥구멍에 틀어박혔다. 세이토렌의 보지에 틀어박혔을 루이페르의 자지가 엘러시아의 똥구멍을 사이에 둔 얇은 살을 통해 베로스의 자지에 느껴져왔다. 간접적으로 세이토렌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베로스는 낮게 신음했다.
엘러시아의 탄력 넘치고 살집 좋은 엉덩이는 극상의 쾌락을 두 사내에게 제공했다. 루이페르는 엘러시아의 엉덩이를 철썩 철썩 두들겼다. 엘러시아는 큼직한 유방을 베로스의 억센 가슴에 찌부러뜨리면서 쾌락에 젖은 교성을 내질렀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보지에 뜨거운 정액을 싸질렀다. 엘러시아는 정액이 보지 안에서 폭사되는 느낌을 좋아했다. 베로스는 자지를 빼내어 엘러시아가 핥게 했다. 루이페르도 비슷한 시기에 정액을 엘러시아의 똥구멍 안에 쌌다.
"핥게 해도 되겠어?"
"물론이죠."
루이페르는 베로스의 허락을 받고는 엘러시아의 얼굴 앞에 자신의 똥 묻은 자지를 들이댓다. 엘러시아의 마음 속에 음심이 불타올랐다. 누구의 자지든 엘러시아는 귀엽게 보았다. 누구의 자지든 핥고 빨아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 엘러시아는 루이페르의 자지를 거리낌없이 핥고 빨아 깨끗하게 했다. 루이페르의 귀두를 목구멍으로 조였다. 루이페르의 불알을 한 번 물고 핥아주었다. 베로스가 말했다.
"엘, 오줌 마렵다."
엘러시아는 베로스의 자지를 머금었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입안에 오줌을 쌌다. 엘러시아는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잘 마셨다. 루이페르는 엘러시아에게 오줌을 먹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루이페르가 오줌을 먹이겠다고 했어도 엘러시아는 거절했을 것이다. 엘러시아는 최근 들어서는 베로스의 오줌만을 마시고 있었다. 신전 수녀 생활을 할 때도 오줌을 먹지는 않았었다.
엘러시아는 베로스를 보고 말했다.
"오빠, 내 보지 핥아 주라. 나 잔뜩 달아오르기만 하고 가지는 못 했어."
엘러시아는 보지를 벌름거려 정액을 흘러내리게 하면서 말했다.
대답 대신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허리를 붙잡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손을 뻗어 엘러시아의 음핵과 질 안의 G스팟을 자극했다. 가끔 정액 묻은 손가락을 내밀어 엘러시아의 입술과 혀로 닦게 했다. 섬세한 손길이었다. 엘러시아는 얼마못가 허리를 휘고 유방을 팽창시키면서 보짓물을 세차게 싸질렀다. 절정에 오른 뒤 나른하게 엘러시아는 베로스의 가슴에 등을 밀착시켰다.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왔다.
루이페르가 말했다.
"형, 엘이 우는데."
베로스는 깜짝 놀라 엘러시아의 얼굴을 돌려 보았다. 엘러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물이 샘솟듯 흘러나왔다.
"오빠, 변했어. 옛날엔 내가 안 가면 내 보지 핥고 빨아주고 그랬었잖아. 오빠 좆물도 직접 마시고 그랬었잖아. 나 슬퍼, 슬프다고."
루이페르가 베로스에게 말했다.
"형, 엘한테 잘해줘. 엘에겐 형 뿐이야."
루이페르는 그렇게 말하곤 나갔다. 베로스에게 후회가 밀려왔다. 엘러시아를 안으면서도 세이토렌을 생각했고, 엘러시아에게 충실하지 못 했다.
"엘, 미안해."
"와아아앙, 오빠."
엘러시아는 베로스를 으스러질듯 껴안고 엉엉 울었다. 엘러시아는 아니지만 자신은 권태기라고 베로스는 생각했다. 해결 방법을 찾아야했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와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엘러시아는 한동안 울고는 안도했는지 숨이 편해졌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나란히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엘러시아는 고개를 가만히 베로스의 어께에 얹었다. 엘러시아가 말했다.
"오빠, 수녀 시절에 나한테 자이렌 자작님이 찾아 온 적도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자이렌 자작이라면 세이토렌의 친정 아버지였다. 베로스가 물었다.
"자이렌 자작님은 본부인만 계시고 첩이라곤 없으신 분인데 널 찾아갔다고? 실망인걸."
"실망이긴. 자이렌 자작님은 내 봉사를 다 받고 나서 날 가끔 찾겠다고 하셨어. 가끔은 젊은 여자의 탱탱한 몸이 그립다시면서 믿을 수 있는 여자를 안고 싶다고 하셨어."
왜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건지 베로스는 알 수 없었다. 험담을 해야 하는지 뭐라 맞장구를 쳐야 할지 베로스는 난감했다. 베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첩이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지금도 본부인을 보면 사랑스럽고 귀엽다고 하시더라. 50대인 지금도 두 분은 섹스를 하신데. 다만 탄력 넘치는 젊은 여자의 몸이 그리울 때가 있데. 딸인 세이토렌의 친구이고, 오빠의 아내인 나라면 믿음직스럽고 친근감이 간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지금도 가끔 와서 내 봉사를 받고 싶어 하시는 거야. 물론 화대는 두둑히 주실 거야. 괜찮지?"
"으, 으응."
"오빠,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살 수 있겠지?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해. 오빠는 비참했던 날 사랑해줬잖아. 날 사랑해주는 오빠가 너무 좋다. 신전에서 숱한 사내들을 받으면서도, 날 사랑해주는 남자는 오빠 뿐이란 걸 언제나 잊지 않았어."
베로스는 엘러시아를 안으면서 세이토렌을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세이토렌이 밉살스러웠다. 베로스는 엘러시아의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엘러시아, 신전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들 상대하느라 고생 많았어. 이젠 앞으로 좋은 날들만 있을 거야."
"오빠아~~"
별장 앞에서 루이페르는 빵을 사서 씹어 먹었다. 연어회와 함께 먹는 맛이 담백했다. 배부를 정도로 먹은 건 아니었다. 그저 간식이었다. 점심은 세이토렌과 함께 먹을 작정이었다. 루이페르는 다른 기사들처럼 대식가였다. 키 크고 건장한 근육질 육체의 신진대사가 왕성했던 것이다.
세이토렌이 섀도우를 타고 다가왔다. 세이토렌은 백마에서 내려 루이페르에게 걸어갔다.
"루이페르, 우리 데이트할래?"
"좋지. 베로스 형, 엘러시아 내려 와!"
루이페르의 우렁찬 외침 소리에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갑옷과 무기를 챙겨 입고 서둘러 내려왔다. 경호원으로 쓰기에 두 사람은 괜찮았다. 네 사람은 말을 타고 자이렌성의 거리를 천천히 거닐었다. 한낮이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활기찬 거리였다. 이들 네 명 모두 키도 크고 잘 생겼기에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곧 길을 비키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했다. 세이토렌의 갑옷에 이 성의 주인인 자이렌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루이페르의 갑옷 또한 고급스럽고 로렌토르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디로 갈까?"
루이페르가 물었다. 세이토렌이 답했다.
"살롱에 가자. 내가 쏠게."
살롱은 귀족들과 부자들에 속한 마님들이 주로 가는 찻집이었다. 당연하게도 귀족이 운영하고 있었다. 큼직한 저택이 보였다. 회원증이 없이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세이토렌은 문지기에게 회원증을 제시했다. 문지기는 허겁지겁 예를 갖추었다. 원래는 회원증을 가진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세이토렌 일행이라 모두 통과되었다. 세이토렌은 이 성 성주의 딸이므로 살롱 주인이 아부를 떨어야 할 판이었다.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샹들리에가 달린 커다란 로비가 나타났다. 대리석 계단을 올라 살롱이라 불리는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온갖 미술품이 기품있는 배치로 전시되어 있었고 햇살이 방 전체에 포근히 쏘아져들어왔다. 베로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토록 화려한 방은 일찌기 본 일이 없었다. 엘러시아는 놀라지 않았다. 사반트성의 화려한 방들에 비한다면 초라한 곳이었다. 독특한 점은 방 한켠에 책장이 있어서 수많은 책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이토렌은 몇몇 지체 높은 귀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루이페르는 이미 그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세이토렌은 고르곤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시켰다. 고르곤의 막 죽은 시체로 만드는 스테이크로 일주일동안 삶은 다음 구워야만 부드러워지고 맛이 나는 물건이었다. 희귀하고 맛이 독특해서 몹시 비싼 요리였다. 입안에 퍼지는 향도 맛도 좋았다. 베로스와 엘러시아는 마치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사반트 후작국 식사법에 서서히 퍼지기 나이프, 포크, 숟가락, 젓가락을 쓰는 방법을 세이토렌과 루이페르가 베로스와 엘러시아에게 친절히 알려주었다. 스테이크와 함께 차를 들면서 세이토렌이 말했다.
"인두세를 내고 왔어. 다들 내면 좋을텐데, 뭐 강요할 수는 없으니까. 은행에서 돈을 꺼내서 구빈소에 기부하고 오느라고 좀 늦었어. 마음 같아서는 직접 구빈소를 운영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사반트에게 주목을 받잖아. 남은 돈으로 모두에게 쏘는 거야."
루이페르가 말했다.
"구빈소? 거지들한테 공짜로 빵 주는 데 말이지? 노력도 안 하는 애들한테 왜 공짜 빵을 떠먹이는 건지 난 알 수가 없어."
"왜 공짜 빵을 먹이는 건지 모르겠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지, 안 그래?"
"다 먹고 나서 구빈소로 가자."
뜻밖의 말에 루이페르는 놀랐다. 세이토렌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따뜻한 사람이니까 구빈소를 직접 보면 마음이 바뀔 거야. 날 믿고 한 번 가보자. 난 날 아내로 선택한 당신을 믿어."
식사를 마친 뒤 세이토렌은 금화로 값을 치렀다. 세이토렌은 요리사에게 요리가 무척 맛있었다고 칭찬해주었다.
네 사람은 말을 살롱 마굿간에 맡겼다. 세이토렌이 말했다.
"아마 사반트는 우릴 감시하고 있을 거야. 가끔 사치를 부릴 필요도 있지. 사치에 아까운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이 반역을 꿈꿀 리는 없으니까."
네 사람은 걸어서 가장 가까운 구빈소로 갔다. 허름한 거리에 구빈소는 설치되어 있었다. 수많은 거지들이 줄을 서서 효모로 부풀리지 않은 빵을 배급받고 있었다. 헐벗은 사람들이었다. 여자와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깔깔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나이 든 수녀들과 자원봉사자 신도들이 빵을 나눠 주고 있었다. 엘러시아가 베로스에게 작게 말했다.
"오빠, 내가 보지 팔아서 번 돈으로도 꽤 거지들한테 빵이 나갔겠다."
"그렇겠네. 수고했어, 엘."
"고마워."
엘러시아가 귀밑까지 붉게 얼굴을 물들이면서 대답했다.
루이페르가 세이토렌에게 말했다.
"거지들이 이렇게 많다니. 공짜 빵을 주니까 일을 안 해서 거지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쉿, 들리겠어. 이렇게 공짜 빵을 주니까 그래도 절도나 강도 짓 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거야. 저기 꼬마 아이들을 봐. 공짜 빵이라도 주니까 몸을 팔지 않고도 도둑질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가 있는 거야. 하루에 겨우 한 끼고 가까스로 배고픔을 해결할 정도이긴 하지만 그토록 소중한 빵이야."
"아이들은 고아원에 집어 넣어야지."
"고아원이 싫어서 나온 애들이야. 매일 같이 때리고 굶기고 몸을 뺏기도 하는 곳이 고아원이야. 또한 고아원이 꽉 찬 상태이기도 하지."
세이토렌이 사람들의 줄에 합류했다. 덩치 큰 네 기사가 줄에 합류하자 사람들이 간격을 만들었다. 세이토렌은 빵 하나를 받아왔다. 조금 뜯어서 다른 세 사람에게 먹였다. 엘러시아와 베로스는 먹을만하다고 생각했지만, 루이페르는 바로 뱉어냈다.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거야?"
"확실히 당신은 입이 고급이구나."
세이토렌이 빵을 뜯어서 먹었다. 시큼했고 썼고 짭조름한데다 씁쓸했다. 오래되어 상한 보리와 밀을 섞어 만든 빵이었다. 애벌레가 빵에서 나오자 루이페르가 기겁하면서 빵을 쳐서 땅에 떨구려고 손을 뻗었다. 세이토렌이 그걸 피하곤 말했다.
"원래 애벌레를 구워서 넣어서 만드는 빵이야. 가난한 사람들은 애벌레를 지금도 굽거나 생으로 먹고 있어."
세이토렌은 구워진 애벌레를 거리낌없이 씹어 먹었다. 세이토렌이 말을 이었다.
"더 심한 걸 말해줄까? 어떤 사람들은 진흙을 구워서 먹기도 해."
루이페르가 대꾸했다.
"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댓가를 받는 거야. 이들을 봐. 농촌에서 쫓겨나서 도시로 도망쳐 온 이들이 주축이야. 얼마나 게을렀으면 농촌에서 쫓겨나고, 도시로 와서도 일자리 하나 못 잡고 빌빌대고들 있는 걸까. 일자리를 나누어주는 관청이 있는 판국에!"
루이페르의 시각은 어느 정도는 사실에 기초했다. 사반트 후작국의 물산은 다른 지역들처럼 풍부했고, 몬스터들의 거듭되는 침공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일손은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임금이 다른 나라 보다 평균적으로 높은 편이었기에 사람들은 대체로 잘 먹고 지내는 편이었다. 비교적 낮은 구릉들, 강들, 고원에 의지하여 사반트는 풍요로운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쉿. 다 들리게 말하면 어떡해, 루이. 그 관청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루이페르의 편견에 가득찬 말을 듣고 배식 받고 있는 사람들은 기분이 나빳지만 감히 성내어 덤비지 못 했다. 루이페르의 허리춤엔 칼이 꽂혀 있었다. 엘러시아, 베로스, 세이토렌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중장갑을 입고 있는 상태들이었다.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세이토렌이 루이페르의 손을 잡아 끌었다. 몇 블럭을 지나 한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 하나 없었다. 세이토렌이 말했다.
"주인장, 이 식당을 잠시 빌리겠어요. 잠깐 문을 닫고 나가 계세요."
세이토렌이 금화 한 닢을 건내자 식당 주인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따랐다. 식당 문이 닫혔다. 한 탁자에 네 사람은 둘러 앉았다. 세이토렌이 루이페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들은 능력이 없고 일자리도 없어. 그러니 돈을 벌 수 없고 따라서 능력을 키울 수도 없는 거야."
"그건 핑계일 뿐이야. 여기 베로스 형을 봐. 천애고아였지만, 벌목공과 대장장이를 거쳐 기사가 되었어. 노력하면 뚫리는 세상이야."
베로스가 칭찬을 받곤 기분이 좋아져 함박웃음을 지었다. 베로스는 보기 좋은 미소를 가진 남자였다. 베로스가 말했다.
"그래요, 부인. 벌목공으로 돈을 모으고, 대장장이의 조수로 들어가 대장장이로 독립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땀 흘려 일하고, 선배들과 동료들의 기분을 먼저 파악하여 맞추려고 애쓰고, 손님이 원하는 바를 먼저 깨달으면서 걸어 온 길이었어요. 제게 부모님이 물려 준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과연 그럴까요, 베로스씨? 건강한 몸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굳센 마음, 적절한 사교성과 처세술은 부모님이 물려 준 것에 들어가지 않나요?"
"그 또한 제가 노력했기에...."
"노력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은 부모님께서 물려 주신 거지요. 충실하고 올바른 사랑을 받지 못 하면 사람은 삐뚤어져요."
"인정해요."
베로스는 그렇게 말하곤 세이토렌을 흘겨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두운 식당 안이라 베로스가 그러는 걸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루이페르는 팔장을 꼈다. 명문가의 자제인 루이페르로서는 세이토렌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다. 루이페르가 말했다.
"공짜 빵을 주는 것에 난 반대야. 거기에 생 돈을 쓰는 것도 반대고."
세이토렌이 답했다.
"두 가지 논제네. 난 내 돈으로 기부한 거야. 우리 부부의 재산은 각자 따로 되어 있잖아. 자이렌성의 상가들에서 나온 돈으로 기부했어. 거긴 내 땅이고 내 건물들이야. 당신의 영지에서 나온 이득으로 기부한 게 아니야. 그런데도 난 당신 영지를 지키기 위해 쉼없이 몬스터들, 도적들과 싸워 왔어. 내가 부인으로서 기사로서 의무를 지켰으니까 내 돈 내가 쓸 정도 자유는 줬으면 좋겠어."
"좋아. 렌, 당신에게 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왜 내가 공짜로 빵 주는 걸 반대하는 줄 알아? 그걸 줌으로서 그들은 굶어 죽지 않게 되고 게을러지는 거야. 그러면 사회의 활력이 떨어져."
"게을러지는 게 무서워서, 사람을 굶어 죽게 하자는 거야? 굶는 건 정말 비참해. 난 사반트 그 개새끼한테 사흘 동안 굶는 고문을 당했어. 난 놈이 날 굶겨 죽이려는 건 줄로 알았어. 육체의 고통 앞에 품위는 없었어."
"사반트가 우리 모두의 원수이긴 하지만, 지금 이 논제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어."
"난 굶어 죽지 않을 권리를 그들에게 주려는 거야. 약간의 기회를 주자는 거지. 난 가능하다면 저들이 평생동안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 물론 그건 내 힘만으로는 안 되고 국가에서 세금으로 해야 겠지. 한 아기가 사려 깊게 막대한 부를 투자해서 키워진다면 설령 노예의 자식일지라도 귀족의 자식처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거야. 우리 귀족의 아이만이 사랑받고 제대로 키워질 이유가 있을까? 그게 단지 귀족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말이야."
루이페르가 슬쩍 세이토렌을 비꼬았다.
"당신은 엄청난 재력가야. 왜 그 돈을 모두 기부하지 않지?"
"그 돈을 기부하면 난 약해지겠지. 말년에 쓸쓸해지고 싶지는 않아. 사실 내 인맥의 상당 부분은 돈과 권력이 없으면 사라질테니 그걸 포기할 수는 없어. 어째서 사람들은 선의를 지닌 사람은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치는 본질적으로 밥그릇 싸움인데 나한테 부가 있어야 힘이 있어서 내 정치적 견해를 관철시키는데 유리하겠지. 좀 더 값진 때가 올 때 난 내 부를 투자할 거야."
"기부는 나쁘다고 생각해. 뭐 내가 굳이 신전들에서 구빈 활동을 하는 걸 막지는 않겠지만... 기부 보다는 일자리를 늘리는 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데엔 기부는 필수야. 교육 없이는 일자리도 없어. 교육이 없어도 들어갈 수 있는 일자리는 열약하고 돈도 겨우 먹고 살 만큼 줘서 부자가 될 가능성이 너무나 적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보여야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을 할텐데 말이지.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 난 내가 대귀족인 게 부끄러워. 잘난 것도 없으면서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해."
"우리 같은 부자 귀족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부는 자기 절제의 결과야. 자기 관리를 잘 해야 부를 만들 수 있고 지킬 수 있지."
세이토렌이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모든 부는 빼앗은 거야. 자연으로부터 강탈하고 착취하고, 침략하고 정복하고, 남의 것을 사기치고 강도질하고, 농노의 산물의 가격을 마음대로 책정하고, 노예를 팔고, 고리대금을 자행하고, 임금을 경쟁자와 비교해 낮게 만들고, 경쟁자와 담합해서 물가를 올리고... 온갖 방식으로 빼앗아서 얻은 걸 물려 받은 것 뿐이야. 자기 것을 끝까지 붙들고 있으려는 욕심이 부를 차지하고 있게 만든 거야.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교육 받지 못 하고 병에 걸려도 치료 받을 수 없고 인맥도 제한적인데다 미신에 사로잡히기 쉬워. 내 아버님은 우리의 부는 남으로부터 빌린 것이고 가난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
갑자기 세이토렌은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말을 이었다.
"사반트가 날 핍박하고 학대하고 내 아기를 낙태시켰을 때 난 알았어. 내 아기는 그 어떤 기회도 가질 수 없었어. 그 아기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기회를 못 얻고 있는 거야. 일할 기회도 배울 기회도 좋은 마음을 얻을 기회도 모든 기회를 잃으면 빈민으로 전락해 버리는 거야. 우리는 더욱 부자가 되고 있지만 그들에겐 기회가 없어. 난 사반트를 증오해. 놈을 후작으로 만들고 지탱시키는 이 체제가 너무나 싫어! 사람이 가장 소중한 세상을 보고 싶어. 그런데,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구빈소에 기부 몇 푼 하는 거 뿐이야..."
사반트에게 낙태당한 아기를 생각하자 세이토렌의 가슴이 저며왔다. 세이토렌은 탁자 위에 엎드려 어께를 들섞이면서 흐느꼈다. 루이페르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세이토렌의 손을 붙잡았다.
베로스는 가난 때문에 설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다. 가난 때문에 설움을 받아 본 적 없었을 세이토렌이 저러는 것에, 세이토렌의 모성애가 느껴졌고 더욱 그녀가 섹시하게 비췄다. 가난한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세이토렌이 한층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세이토렌은 잠시 울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
"물론 내 기부는 강자의 시혜일 뿐이니 한계가 있지. 가난한 사람들이 나서서 체제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야 제대로 해결이 될텐데..."
"그건 불가능해, 렌. 이곳은 소드마스터 1명이 5000명의 병사를 척살할 수 있는 세상이야. 감히 대항할 수 없어."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 미안해. 아무런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내 뱃 속에서 사반트에게 죽은 내 아기가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느꼈어. 그래서 수많은 책들을 읽고 정리한 생각을 말해 본 거야. 걱정마, 루이페르. 내 삶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바치기엔 난 너무 겁이 많아."
루이페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너의 말을 잘 정리해서 반란의 도구로 쓰면 좋을텐데... 난 반드시 사반트를 때려 죽일 거야."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야지."
세이토렌이 뇌까렸다. 엘러시아도 한마디 거들었다.
"팔다리를 먼저 자르고 며칠 돼지우리에서 생활하게 한 다음에 죽였으면 좋겠어요."
루이페르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거 좋지. 그런데 엘, 미인계는 사반트에게 통하지 않을 거 같던데 진짜 그래?"
엘러시아가 고운 입술을 움직여 대꾸했다.
"미인계라니요? 그게 뭐에요?"
엘러시아는 무식했다.
"아름다운 여자를 이용해서 적을 죽인다던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도해서 폐인으로 만든다던가 하는 전략이야."
세이토렌이 대신 대답했다. 세이토렌이 말을 이었다.
"미인계가 통했으면 옛날에 사반트는 망했을 거야. 엘러시아를 괴롭혔을 때 엘의 육체에 빠졌다면 사반트는 망했겠지. 돈과 시간을 미녀에게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사반트는 약해질 수 밖에 없어. 사반트는 귀족답게 절제된 생활을 하고 파렴치한 일에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지. 사반트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하면 약해지니까 그럴 뿐이야. 사반트는 환관과 고문관을 이용해서 미녀를 자신에게 복종시키는데 시간 낭비를 안 하도록 하고 있어. 돈도 결코 많이 쓰게는 하지 않아. 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사반트는 여자 소원을 잘 들어준다거나 여자 기분을 맞춘다거나 하지 않아. 여자에게 자기 맘대로 할 뿐이야. 그런 습성이 성노예에겐 더욱 격하게 드러나는 것 뿐이야. 내 친구 가운데서도 사반트의 후궁이 있어. 후궁에게도 사반트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나쁜 남자일 뿐이래. 아, 친구라. 사반트의 성노예에서 벗어난 이래 내 귀족 친구들은 상당수가 날 떠났어. 남은 몇 안 되는 친구에 루이페르 당신도 끼어 있는 거야."
루이페르의 얼굴에 일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이미 여러 차례 세이토렌의 감정이 난리 피우는 걸 보았었다. 사반트에게 붙들리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행동양식이었다.
"렌, 너무 자책하지 마."
세이토렌의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눈물과 함께 말간 콧물이 흘러내렸다.
"루이페르, 정말 고마워 고마워. 이런 날 떠나지 않아 줘서. 난 더러운 년이야."
루이페르가 세이토렌에게 손수건을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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