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삼총사 #2 뺨에 칼자국이 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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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타냥은 쉬지 않고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파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파리는 멀구나..."
워낙에 오랜 여행길이었기에 새로 맞춘 망토와 윗도리는 빛이 바래 먼지가 뽀얗게 앉았으며, 모자에 달린 깃털은 거의 빠지고 없어져 차라리 떼어내는 게 나을 듯 보일 정도였다.
늙은 말도 계속되는 여행에 지친 나머지 목을 낮게 늘어뜨린 채로 어정어정 걸어갔기 때문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달타냥을 힐끔거리며 비웃었다.
"으득...!"
달타냥은 자신을 비웃어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올라 몇번이고 칼자루에 손이 갔지만, 어머니의 충고가 떠올라 주먹을 움켜쥐곤 했다.
"참자. 벌써부터 어머니의 당부를 저버릴 수는 없잖아."
그는 최대한 인내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달타냥은 파리 근처의 무앙이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달타냥과 늙은 말 모두 힘든 여행길에 지쳐있었기에 그는 마을을 구경할 생각도 못하고 길가의 한 여관 앞에 말을 세웠다. 달타냥이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무사처럼 보이는 세 명의 사나이들이 달타냥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보시오! 지금 뭘 보고 그렇게 웃고 있는거지요?"
달타냥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실 그동안 자신을 비웃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농민이었기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서도 상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사람들은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검사들이 분명했다.
같은 검사에게 그런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은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달타냥은 그 모욕을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끼리 하는 말이니 자넨 신경 끄게나."
세 사람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달타냥을 향해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는 키가 늘씬한 귀족 차림의 사나이였다. 뻄에 난 칼자국이 인상적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콧수염이 멋스럽게 다듬어져 있었으며, 화려한 자주빛 옷을 입고 있었고 보석이 박혀있는 검을 차고 있었다.
"그럼, 지금 제가 괜히 당신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겁니까?"
달타냥은 점잖은 척하며 자신을 무시하는 사나이의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그러나 칼자국의 사나이는 달타냥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밖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후후, 저 말도 젊었을 때는 꽤나 훌륭했겠군. 지금은 주인처럼 볼품없어져 아무 쓸모도 없겠지만 말이야."
세 명의 사나이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먼지와 피곤에 쩔은 모습과 달타냥을 번갈아보며 같은 취급을 하고 있었다.
"지금 말 주인을 직접 비웃을 용기도 없어 말을 비웃는겁니까?"
달타냥은 더이상 참지못하고 칼을 뺴들며 물었다.
"호오, 지금 나와 결투를 하자는거냐? 제법 용기있는 녀석이로군."
칼자국의 사나이가 놀란 눈으로 말하자, 그의 곁에 서있던 다른 사내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봐, 꼬맹이. 말투로 보아하니 가스코뉴 출신인 것 같은데 좋은 말 할떄 칼을 집어넣고 이 분께 용서를 비는 것이 신상에 좋을거다."
"그래, 이 분이 누군지 알면 크게 후회할테니 그만 두는 게 좋을 껄?"
또다른 사내 역시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에 더욱 화가 난 달타냥은 더이상 존대를 하지 않고 소리쳤다.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 감히 가스코뉴의 사나이를 모욕하다니! 어디 한번 내 검을 받아봐라!"
더이상의 모욕을 참을 수 없게 된 달타냥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앗!"
소년이 뺴어든 칼로 상대의 가슴을 겨누며 돌진해나가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사내들이 깜짝 놀랐다.
끊임없이 연마해서 그 속도가 번개 같은 찌르기였다.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내들은 달타냥의 검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놀란 탄성을 내었다.
"흥!"
하지만 칼자국의 사나이가 그런 달타냥을 바라보며 빈정거리다 이내 귀찮은 듯 몸을 피하였다.
-휘익!
다른 두 사내는 쉽게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렸던 칼자국의 사나이는 빠른 발동작으로 피해버릴 정도로 강했다.
그는 옆으로 비키면서 재빠르게 칼을 뽑아 달타냥의 눈앞에 들이대었다.
"크윽!"
달타냥은 갑작스런 반격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너무 늦어서 가슴 근처가 베어져 앞섶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럴수가! 나의 찌르기를 이토록 쉽게 피하다니!"
충격이었다.
뛰어난 군인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한 가스코뉴에서도 첫째 가는 검사인 그의 일격을 이토록 쉽게 피하다니!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정말 상대가 나쁜 것 같았다.
그는 달타냥이 상대해본 그 누구보다 강한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스코뉴의 사나이가 불리하다고 등을 보일 수는 없지!"
달타냥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휙! 휘익!
소년은 오히려 몸을 앞으로 내밀며 상대와의 거리를 줄이며, 상대를 압박했다.
위험을 각오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매우 적절한 대응이었다.
"!"
그제야 칼자국의 사나이는 긴장을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먼지로 빛이 바래긴 하지만 파란 색임이 분명한 튜닉...이전에 총사대였던 사람의 물건이군."
그는 달타냥의 옷이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총사대 복장인 걸 깨달았다.
"설마 이 녀석, 총사대가 되려고 파리로 가는 녀석인가?"
최근 수도에서 총사를 새로 뽑는다는 소문이 퍼지긴 했다. 하지만, 근위대의 위세에 눌려서 지원을 하려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재능있는 녀석이 지원을 하려 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귀찮게 되었군. 이런 녀석이 총사가 된다면 많이 귀찮아지겠어."
칼자국의 사나이는 이 기회에 싹수가 보이는 눈 앞의 소년을 없애버려야 할지 심각히 고민하였다.
"이야압!"
"이 망아지 같은 녀석! 받아랏!!"
그렇게 그가 살의를 일으키고 있던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부하 두 사람이 옆에 놓인 농기구와 삽자루 등을 집어들고는 달타냥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달타냥은 자신에게 덤벼드는 두 사람을 막기 위해 정신없이 칼을 휘둘렀다.
"..."
그러는 사이 칼자국의 사나이는 칼을 집어넣고는 한 발짝 물러나서 태연하게 싸움을 구경하였다.
"훗, 이런 싸움은 겪어보지 못 한 듯 하군. 경험이 없어."
그의 예상처럼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달타냥은 농기구와 삽자루 같은 괴상한 무기를 상대하는 것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앗?!"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던 중 그만 달타냥의 칼이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챙그랑!
"하하하, 애송아. 칼도 부러졌는데 이제 그만 항복하는 것이 어떠냐?"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으며 달타냥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가스코뉴 태생의 젊은 무사로서 죽음은 있을지언정 항복이란 말은 없었다.
"누가 질까 보냐...!"
달타냥은 부러진 칼을 들고 끝까지 대항하기로 하였다.
"!!"
독기를 뿜고 있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죄다 움찔했다.
계집애처럼 여려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강단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건 안되겠군."
보다 못한 칼자국의 사나이는 달타냥의 뒤로 돌아가 살짝 살기를 드러내었다.
뛰어난 검사라면 당연히 반응을 할 거라는 계산에서 말이다.
-움찔!
과연 달타냥은 그 미세한 살기에 반응해서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뒤에서 날아드는 살기에 반응해 돌아보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칼자국 난 사나이의 부하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흉흉한 기세로 달타냥을 공격하였다.
-퍽! 퍼억! 퍽퍽!
달타냥은 굽히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정통으로 머리를 얻어맞자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후우...정말이지 애먹이는 녀석이로군."
칼자국의 사나이는 기절한 달타냥을 보며 한숨을 내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소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였다.
이대로 이 녀석을 파리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이 녀석의 실력은 놀라워. 잠재력도 뛰어나고 솔직히 아까울 정도지. 그렇다고 후환이 두려워 내 손으로 기절한 녀석을 죽이기도 뭐하군. 차라리 모욕을 줘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는 편이 낫지."
놀림감으로 만들어 수치를 준다면 수도로 갈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여비까지도 빼앗는다면 더 좋고 말이다.
"아, 그렇군! 그렇다면 그 사내를 부르는 것이 좋겠어. 이런 더러운 일을 맡기기 위해 부른 그 사내를 말이야."
그래서 칼자국의 사나이는 결심을 하고 부하들을 시켜 이번에 새로 그의 동료가 된 사람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