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얼굴 없는 달 - 상권 2장 (1) (게임 원작의 소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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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그날 밤도 방울 소리의 소녀의 악몽은 꾸지 않았다. 이제 영원히 꾸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그 악몽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토모미가 전해준 유리코의 이야기에 따르면 코우이치는 당주로서 자유롭게 행동하면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할 일은 없다.
좀 더 진정되면 어린 시절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코우이치는 생각했다.
아침 식사 후, 코우이치는 토모미에게 안내받아 큰 마님인 쿠라키 치요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치요는 스즈나의 증조 할머니로, 저택 북쪽의 별채에 살고 있지만 지금은 병을 앓고 있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복도(※와타리로카. 두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 끝에 따로 떨어져 있는 건물은 쿠라키 가라는 여계 일족의 최고권력자인 큰 마님의 성지라서, 저택 안에서도 격이 다른 장소였다.
그 때문에 별채만은 당주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허울 뿐인 당주라면 더더욱 그렇다.
"큰 마님의 상태는 어때?"
"사실은 지금도 몸져 누우셔서 일어나지 못하십니다만, 오늘 아침은 평소에 비해서 기분이 조금은 나으신 모양이에요."
코우이치의 질문에 토모미가 그렇게 대답했다. 평소에 치요를 보살피고 있는 것은 토모미라고 한다. 몸 상태가 완전하진 않지만, 당주가 바뀌었는데도(최종적인 결정은 아직 보류 중이지만) 큰 마님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안내받은 곳은 넓은 방이었다. 벽에 족자가 걸려있을 뿐, 방 안에는 가구 하나 없었다.
다만 방 한가운데에 모포가 한장 펼쳐져 있었다. 치요는 거기에서 상반신만을 일으킨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쪼글쪼글한 노파였다. 머리는 새하얗고, 이마고 뺨이고 입가이고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하얀 기모노 위에 보라색 하오리(※일본옷 위에 입는 짧은 겉옷) 같은 것을 걸치고 있다.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름투성이의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치요는 유리코의 할머니이다. 도대체 몇 살일까. 셀 수 없을 정도의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였다.
치요의 곁에는 한명의 남자가 있었다. 치요 정도로 늙진 않았지만, 안경을 걸치고 수염을 기른 노인이다.
그 노인과는 코우이치의 양부모의 장례식 때 만난 적이 있다. 토모미에게 듣기로는 하루카와 잇페이라는 이름으로, 토모미의 할아버지라고 한다.
백의를 입고 목에 청진기를 걸고 있다. 잇페이는 의사이며, 이 집의 주치의였다. 치요의 병도 잇페이가 진찰하고 있는 것이다.
"큰 마님, 하야마 코우이치가 왔습니다."
잇페이가 그렇게 말을 걸자, 치요는 눈을 뜨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네, 네놈..."
그러나 치요가 코우이치를 본 순간의 반응은 정상이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뜨고 경악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을 지은 것이다.
"네 놈, 그 그림자는......"
코우이치도 치요의 반응에 압도당하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끄어억!"
치요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뒤로 젖힌다.
"치, 치요님!"
잇페이도 치요가 코우이치의 얼굴을 보고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황급히 노파의 곁에 달려들었다.
"우윽... 콜록......"
치요는 정말로 괴로워보였다.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 것이다. 항상 이런 발작이 일어나는 것인가.
"아, 안 돼, 그, 그것은......"
치요는 코우이치 쪽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외쳤다. 이쯤 되자 왠지 이쪽까지 기분이 나빠져 버렸다.
"토모미, 그 남자를 밖으로!"
잇페이가 코우이치의 뒤에 있던 토모미에게 그렇게 말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치요의 발작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지적당하여 코우이치는 깜짝 놀랐다.
"죄송합니다. 나리, 밖으로!"
그런 코우이치를 토모미가 밖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코우이치는 거기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바로 별채의 복도로 나왔고, 장지문이 닫혔다.
"토모미, 큰 마님이 발작한 원인은 나였던거야?"
"아마도, 큰 마님은 나리의 어딘가에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자극?"
"상대가 나리가 아니어도 이런 일은 자주 있습니다. 큰 마님의 상태는 계속 저런 식이라..."
토모미는 치요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은 멀쩡하게 말씀을 하시거나 이쪽을 알아보는 시간도 하루 중 극히 일부 뿐이에요......"
"그렇게 심한건가......"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노인성 치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제대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편이 좋지 않을까? 너희 할아버지의 의사로서의 실력이 확실하다고 해도, 여기에서는 최신의 약이나 설비는 쓸 수 없잖아."
"큰 마님은 이 산을 떠날 수 없어요."
그것은 또 관례같은 것이 관계되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도 관례가 중요한건가.
"죄송합니다. 저, 할아버지를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난 신경 쓰지 말고 가 봐. 혼자 돌아갈테니까."
토모미는 별채의 방으로 돌아가고, 코우이치는 혼자서 구름다리 복도를 걸어 저택 쪽으로 돌아갔다. 그런 상태로는 치요에게 인사를 할 수도 없고, 코우이치는 결국 그냥 별채까지 갔다 왔을 뿐인 꼴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치요의 병을 악화시켜 버렸다.
쿠라키 가는 무녀 일족이다. 치요는 무녀로서 코우이치에게 씌어 있는 무언가를 보고 상태가 나빠진 것일까.
TV 방송에서 영매사가 나오는 것을 봐도 코우이치는 사기일 뿐이라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눈 앞에서 치요의 상태가 갑자기 변하고 거기에 자신이 관계되어 있다고 하니, 그렇게 간단히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구름다리 복도에서는 훌륭한 일본 정원을 볼 수 있었다. 식물이나 돌, 연못이 매우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배치되어 침착한 분위기의 정원을 이루어내고 있다.
"아, 저기 있는 것은..."
그 한편에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이 있었다. 그 곁에는 낮은 목책으로 둘러싸인 연못이 있어, 붉은 동백꽃이 수면에 떠 있다.
동백꽃이 피는 것은 보통 겨울에서 봄에 걸치는 기간으로, 여름인 이 시기에 피어 있는 것은 명백하게 계절과 어긋난 것이다.
"유리코씨다......"
그 동백나무 곁에 유리코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수면이나 지면에 흩어지는 붉은 동백꽃 사이에 선 유리코의 모습은 실로 환상적이었다.
그러고보면 코우이치가 치요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유리코가 함께 간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이 집의 넘버 2가 함께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한 순간 눈을 뗀 사이에 유리코의 모습은 사라졌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것은 환상이었을까.
"나리, 무슨 일이신가요?"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 코우이치는 놀라서 펄쩍 뛰어오를 뻔 했다.
"우왓!"
"너무하시네요. 유령을 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유리코는 태연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예쁜 동백꽃이지요?"
"그, 그렇군요......"
"저 동백나무는 소중한 나무에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붉은 동백 꽃이 연못의 수면에 떨어졌다.
"이 기회에 잘 봐 두세요."
"동백나무를, 말입니까?"
"동백나무라기보다는... 그렇군요. 동백나무의 모습을."
코우이치는 유리코에게 치요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을 이야기할까 했지만, 그 때는 이미 유리코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그 날은 그 뒤로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다.
딱히 자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얼굴을 보고 치요의 상태가 나빠진 것은 조금 쇼크였다.
그런 일도 있어서, 코우이치는 귀찮은 일에 말려들기 전에 여기를 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저택에서 당주 취급받는 것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잘만 되면 스즈나를 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여기에 오자마자 방울소리의 소녀의 악몽을 꾸지 않게 되고, 여성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일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코우이치가 계속 당주로서 이 저택에 머무는 경우, 그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유리코는 1개월 후에 달맞이 의식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첫날밤의 의식처럼 속 편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 사이에 스즈나에게 손을 댄다면 손도 발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버리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짓을 했다간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서 독자적인 제사를 올리는 이 폐쇄적인 사회에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어딘가에 분명 함정이 있을 법 했다. 지금이라면 아직 여기에서 빠져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 터이다.
모두 그런 제안을 한 교수가 나쁜 것이다. 남은 것은 교수에게 떠넘기고 후딱 도망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노크 소리가 들려서 방 문을 열자, 사야카가 물이 든 컵을 가지고 안에 들어왔다.
"나리, 약을 가져왔어요."
"약?"
"이 저택의 주치의의 지시에요."
잘 생각해보면 코우이치가 고열로 쓰러진 것은 그저께의 일이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코우이치를 걱정한 잇페이가 약을 가져다 준 것이겠지. 코우이치가 열에 시달릴 때도 분명 잇페이가 진찰을 해주었을 것이다.
"어떤 약이야?"
"한방약일까요."
"일까요, 라니......"
"저도 먹어본 적이 있는데 달콤한 물이라고 할까, 꿀 같은 맛이었어요."
코우이치는 사야카에게서 컵을 받아들었지만, 바로 마시진 않았다.
"안 드세요?"
"응. 지금은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아."
"일단은 제대로 드시는지 확인하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요."
"어째서?"
"왜, 있잖아요. 이러쿵 저러쿵 말하면서 약 안 먹는 사람. 의사를 싫어한다고 해야 하나, 어린애라고 해야 하나. 자기 일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말하면서, 결국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있지요?"
사야카에게 그런 말을 들어도, 그다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잘 다루는 것일지도 모른다.
"앗, 나리가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먹으면."
코우이치는 컵 안의 액체를 단숨에 털어넣었다.
"어때요?"
"달다고 할 정도로 달콤하진 않은데."
"묽게 했으니까요."
그다지 약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음료였다. 영양제같은 건가?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어, 뭐야. 자고 가지 않는거야?"
"또, 또. 벌써 당주님의 특권 행사에요?"
"아니, 사야카가 너무 미인이라서 꼬셔보는 것 뿐이야."
"정말이지, 귀여운 새색시에게 벌 받을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사야카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이쪽도 반즘 농담이긴 했지만, 서로 잘 통한 모양이다.
하지만 스즈나 때와는 달리, 사야카나 토모미가 상대일 때는 그녀들의 얼굴을 봐도 심하게 긴장하거나 동요하게 되는 일은 없어졌다.
사야카나 토모미도 충분히 귀엽다는 점에서는 스즈나와 별 차이가 없으니까, 단순히 여성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본래의 상태를 되찾아 가는 것은 좋은 경향이다. 하지만, 스즈나만은 예외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 이리 와......"
"누구?"
"저기, 네가 하고 싶은 건 뭐야?"
"몰라, 생각한 적 없어......"
"하지만, 지금이라면 알테지. 지금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연결되어 있어?"
"저기, 뭘 하고 싶어?"
"밥이 먹고 싶어."
"그리고?"
"으음... 느긋하게 자고 싶어."
"그 다음에는?"
"여자아이를 만지고, 지배해서......"
"그럼, 하고 싶은 걸 해야겠네."
"응."
"역 시 방 해 가 되 는 먼 지 들 을 치 우 지 않 으 면 하 나 가 될 수 없 어"
"응."
"그 럼 너 의 힘 으 로 원 해 봐. 이 제 부 터 연 결 이 생 길 때 마 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뜬 코우이치는 매우 기분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먹은 약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조금 몸이 뜨거웠다. 하반신에 무언가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보면 마지막으로 여자를 안은 것이 언제였더라.
아무래도 이것저것 지나치게 생각을 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것 같다. 명목상의 당주가 되었다는 정도로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름 뿐인 당주가 되는가, 아니면 정말로 실권을 잡을 수 있는가는 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코우이치가 얼마나 잘 해나가는지에 걸려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 당주라는 입장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여자에 대한 것도 그렇다. 그것은 단순히 즐기면 될 일이었다. 여자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여자라는 존재가 예전 이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이 뭐가 곤란한 문제라는 것인가.
그 악몽에 고통 받아온 나날이 코우이치의 성격을 내성적으로 바꿔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코우이치는 모처럼의 상황을 충분히 즐기자고 생각했다. 그것을 헛되이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교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결국 그 자신에게 여기에 남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당주라는 입장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가능한 한 이용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귀여운 약혼자가 알아서 굴러 들어온다는데, 남자라면 누구라도 실컷 즐기고 싶을 것이다.
스즈나만이 아니다. 이 저택에는 사야카도, 토모미도, 유리코도, 그리고 치카코도 있다. 이것은 남자로서 제법 즐거운 상황이었다.
이런 곳에서 성인군자인 척 해봤자 의미가 없다. 쿠라키 가의 관례를 이용하고 자신의 힘을 휘둘러서 욕망을 만족시킬 찬스였다.
결국 코우이치가 저택에 온 것은, 여기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지나치게 기분에 휘둘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의 관례에 억압당하지 않으려면 그 편이 나았다.
아침의 그 기분은 제법 약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코우이치는 스스로 행동을 해보기로 했다.
우선 스즈나와 만나려고 한다. 점심부터 갑자기 이러저러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이야기를 하고, 좀 더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자고 생각할 뿐이다.
코우이치가 묵고 있는 방은 저택의 남쪽에 있고, 스즈나의 방은 북쪽에 있었다. 두 방은 벽을 끼고 붙어 있지만,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 코우이치가 스즈나의 방에 가기 위해서는 복도를 빙 돌아가야만 한다.
묘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스즈나의 방 앞에 도착했을 때, 타이밍 좋게도 문이 열렸다.
"앗, 나리."
"뭐야, 사야카인가."
코우이치의 말을 듣고 사야카는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뭐야, 라니 뭐에요."
"미안, 미안. 이렇게 사과할게."
"뭐, 용서해드리지요. 아가씨라면 안 계세요."
"어디 갔는데?"
"아침 근무에요."
"헤에... 그녀석, 쿠라키 가의 도매상 일을 돕고 있는거야?"
"아뇨. 무녀로서의 역할이에요. 아침과 저녁, 산 위의 쿠라키 신사에서 의식을 하고 계세요."
이미 스즈나는 후계자로서 그런 역할을 계승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신사의 무녀인 것이다.
"나리, 아침부터 아가씨와 뭘 할 생각이신가요?"
"그야, 스즈나와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려고 했지."
"후후훗, 그렇군요. 미래의 부부니까요. 아침이든 점심이든 밤이든 관계 없겠네요."
사야카는 완전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좋네요. 저도 응원할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사야카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열쇠였다.
"네, 이거 받으세요. 이 방 열쇠에요."
"스즈나의 방?"
"드릴게요."
"이봐, 이래도 괜찮은거야?"
"괜찮아요. 스페어 키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
"필요 없으면 관 두고요."
"물론 필요하지."
"그렇죠, 그렇죠.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고요. 이걸로 언제라도 만날 수 있겠네요. 착한 일을 하니까 기분이 좋은데요."
스즈나는 굳이 말하자면 토모미와 친해보였지만, 사야카와도 사이가 나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까 사야카가 스즈나를 골탕먹이려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아무튼 코우이치는 여자아이의 개인 공간에 문답무용으로 침입할 수 있는 아이템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는 그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