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얼굴 없는 달 - 상권 1장 (3) (게임 원작의 소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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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이치는 치카코와 헤어져 자기 방으로 가던 도중, 문에 "도서실"이라고 쓰인 방을 발견했다. 독서는 좋아하는 편이라서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집에 도서실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장서의 숫자에 또 한번 놀라고 만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양의 책이 아니었다.
안쪽에 모토야마와 처음 보는 여자아이가 있는 것이 보였다. 교수는 이 저택이 자기 것이라도 되는양 돌아다니고 있는 듯 했다.
모토야마가 그 소녀에게 뭔가 추파라도 던지고 있는걸까. 코우이치는 몰래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여자아이는 숏컷에 가냘픈 체형이었고, 크림색 셔츠에 새파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소녀라고 해도,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귀여운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코우이치는 그 여자아이를 상대로는 별로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은 뭐라고 하지?"
"아즈마 이오입니다..."
"귀여운 이름이군. 아즈마라고 하면, 쿠라키 일족의 친척 쪽에 그런 성씨가 있는 걸로 아네만."
"네. 저는 이 저택에 더부살이하고 있어요." - ※주 : 1인칭에 "보쿠"를 쓰고 있습니다. 보통 남자가 쓰는 1인칭.
"흐으음... "저(보쿠)"인가. 꽤 듣기 좋구만. 자네가 자기를 "저(보쿠)"라고 말하면 점점 더 귀엽게 들린다는 게 불가사의한걸."
두 사람의 대화를 여기까지 듣고 코우이치는 진실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교수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이오가 상대라면 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으음, 스즈나쨩을 비롯해서 사야카쨩, 토모미쨩도 괜찮지만, 역시 이런 중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아이가 있다는 거야말로 이 깊은 산 속까지 온 보람이구만."
언제나 그렇지만, 모토야마의 목적은 학문적인 것만이 아닌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안경을 쓰고 있지 않은 것이 조금 유감이군, 이오군!" - ※주 : 일본의 "군"은 한국에 비해서 여자에게도 자주 쓰입니다.
"네, 네......"
"미안하지만,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 온 이 안경을 써 주지 않겠나?"
교수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이오에게 들이댔다. 이런 걸 위해서 일부러 안경을 가지고 다니는 인간이 보통 있을까 보냐.
"자, 이오군."
이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 어서, 어서."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코우이치는 두 사람 앞에 나섰다.
"교수님."
"뭐야, 하야마군인가."
"교수님은 항상 똑같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속이 안 풀리는겁니까."
"아니, 뭐. 그냥 연구를 위해서......"
"대체 어디가 연구라는 겁니까."
이런 현장을 발각당해도 주눅들지 않는다는 것이 교수의 대단한 점이다.
"너도 괜찮아? 모토야마 교수님은 일단 민속학 박사이긴 하지만, 그 이외의 부분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사회 부적격자의 길을 걷고 있는 위험인물이라서."
"그건 말이 좀 지나치지 않은가?"
"아무리 네가 남자애라고 해도, 함부로 교수님과 둘이서만 있는 건 피하는 게 좋아."
"남자애? 하야마군, 지금 그렇게 말했나?"
"말했습니다. 교수님은 그쪽 계열의 취미도 있으셨습니까?"
"뭣이, 이런 귀여운 아이가 남자라니. 세상은 미쳤어."
미친 건 교수 당신이지. 이오가 여자아이였다면 여성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게 된 코우이치가 좀 더 두근거림을 느꼈을 것이므로, 그가 소년이라는 것은 곧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저택에서야 확인할 수 없지만 상대가 만약 뉴하프였다면 난 어떤 대응을 보이게 될까. 성전환수술을 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반응에 차이가 있는걸까.
하긴, 그런 바보같은 경우야 아무래도 상관 없다. 하던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고, 코우이치는 두 사람을 남기고 도서실을 나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오는 민속학에 관심이 있는지, 낙담한 교수에게 연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교수에게 자기가 민속학에 얼마나 흥미가 많은지를 열심히 전하는 이오의 말을 들으면서 코우이치는 도서실을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쿠라키가는 여성용의 일용품을 취급하는 도매상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 뿌리는 시라뵤오시이다. 시라뵤오시란 헤이안 시대부터 무로마치 시대까지 유행한, 연회석이나 신사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생이 많지만, 쿠라키의 경우는 좀 더 무녀적인 요소가 강했다. 즉, 이타코(도호쿠 지방의 맹인 무녀)나 강신술사같은 부류이다.
이런 지식은 모두 모토야마 교수와 치카코에게 들었다. 이쪽에서 질문하지 않아도 교수는 코우이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즉, 쿠라키 가는 여계 일족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일족의 권력 구도상, 아마도 남자 당주의 위치는 표면에 드러난 것과는 달리 세 번째 정도가 된다.
아직 만나지 못했지만 이 저택에는 큰 마님이 있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쿠라키 가에서는 그녀가 가장 위였다.
그리고 두번째가 유리코인 것이다. 실제로는 큰 마님이 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유리코가 이 집을 관리하고 있다는 듯 하다.
그러니까 당주는 그 아래의 세 번째에 불과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그 스즈나라는 아이 쪽이 당주보다 지위가 높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당주라고는 해도 그는 장식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며 실질적인 힘은 전혀 없다.
그런데도 유리코는 왜 코우이치가 당주가 되는 것을 그렇게까지 집착한걸까. 그녀는 코우이치에게 뭘 시키려는걸까.
어쩌면 그것은 그가 어렸을 적 이 저택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없어져버린 것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혹은, 코우이치가 바로 최근까지 꾸고 있던 방울 소리의 소녀가 나오는 악몽과도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직 방심은 금물이지만, 요즘 그 꿈을 꾸지 않는다. 그것도 여성의 얼굴이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의문 뿐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이 쿠라키의 산에는 황금전설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도쿠가와의 매장금"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타케다의 광산이 있다고 하니 그런 전설이 남아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차피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때,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나서 대답을 하자 토모미가 방 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실례합니다. 실은, 저, 그, 나리. 스즈나 아가씨가......"
"어? 어젯밤의 그 아이가 왜......?"
코우이치가 그렇게 되묻기도 전에 방 문이 기세 좋게 열리면서 당사자인 스즈나가 들어왔다.
"토모미. 이런 남자를 상대로 뭘 일부러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거야?"
"아, 아가씨......"
"뭐야, 이 녀석. 왜 남의 방에서 느긋하게 늘어져 있는거야."
임시라고는 해도 코우이치는 현재 이 집의 당주인 만큼, 전(前)대 당주의 방이 그가 지낼 장소였다. 애초에 고열로 쓰러졌을 때부터 전대 당주의 방에 옮겨져 버렸기 때문에, 코우이치 본인이 이 방을 쓰는 것을 직접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대 당주라는 것은 사고로 죽은 스즈나의 부친이다. 죽은 아버지의 방을 어디에서 굴러먹었는지 알 수 없는 말뼈다귀나 다름 없는 코우이치가 쓴다는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오늘밤은 평범한 복장이군."
"시끄러워, 변태!"
스즈나는 하얀 옷과 밝은 와인레드 컬러의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그 옷은 그녀의 늘씬한 체형과 잘록한 허리가 강조해서, 역으로 가슴의 풍만함이 눈에 띈다.
코우이치는 스즈나의 모습을 보자 어제의 대담한 복장이 떠올라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비록 그녀가 화를 내고 있지만, 여성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 화를 내는 얼굴조차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특히 스즈나의 동그란 눈동자에는 빨려들어가고 말 것 같았다. 이런 연하의 여자아이가 상대인데도 무심코 시선을 피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변태라고? 그럼, 어젯밤의 너는 뭐야? 음란한건가?"
여자애 상대로 진심으로 울컥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와버렸다. 말이 조금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두 사람의 대화에 토모미가 옆에서 곤란한 얼굴을 한다.
"저기... 어젯밤 스즈나님의 의상은 첫날 밤의 의식을 위한 것으로......"
토모미는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렇게 설명했다. 하지만 스즈나도 코우이치도 토모미를 무시했다.
"듣자 하니 너와 나는 결혼하게 된다더군."
"누가 너 같은 거랑 결혼한대?"
"안심해. 너같은 고슴도치는 이쪽에서 거절이다."
사실은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어젯밤 스즈나를 끌어 안아버린 일에 대해서, 자기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코우이치는 잘 알지 못했다.
자신은 이미 성인이고 상대는 연하이므로, 어젯밤의 일은 확실히 사과하고 스즈나와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녀와 얼마나 친해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 여기 있을 거라면 최소한 이렇게 어린애처럼 대립하는 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스즈나가 이렇게 화만 내는 바람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식으로 되받아쳐버린 것이다.
귀여운 소녀의 얼굴을 보고 무심결에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만 것을 숨기려고 한 것도 있다. 스즈나가 상대인 경우는 유난히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제 물러설 수 없다. 이제 와서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어렵고, 그녀의 공주님같은 건방진 태도도 짜증이 난다.
"하지만 유서 깊은 집안은 일족의 자손을 남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당사자의 의사는 관계 없는 모양이니까, 어제처럼 내가 여기서 너를 넘어뜨려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 것 같은데."
"그, 그렇지 않아......"
"뭣하면, 시험해볼까?"
"할 수 있으면 해 봐. 난 너 따위 절대 인정하지 않을테니까. 내게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혀 깨물고 죽어버릴거야."
용맹한 아가씨다.
"너 말야, 됐으니까 그만 돌아가. 그리고 앞으로는 막무가내로 화만 내지는 마."
스즈나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우이치의 얼굴을 보자 어제의 일이 떠올라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태도를 취해버린 것일 것이다.
"흥, 뭐야. 얼굴 빨개져서. 어차피 또 이상한 상상이라도 한거지?"
왠지 스즈나에게 모든 것을 간파당한 것 같아서, 이런 말을 듣고 있으면 여자아이를 상대로는 아무 것도 숨기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끝까지 시끄럽군. 어서 나가."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야."
스즈나는 방을 나가더니 문짝이 부숴질 것 같은 기세로 난폭하게 문을 닫았다. 토모미도 그 뒤를 쫓는다.
최초의 첫 걸음이 엉망이었던 것도 있고, 스즈나와의 한심한 대립은 아직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