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마문 사조색마전(射 色魔傳) 2 (영웅문 사조영웅전 패러디)
페이지 정보
본문
[여보시오. 잠깐만!]
양철심이 큰 소리로 부르자, 여인은 재빨리 이쪽으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날씨가 몹시 추운데 술이나 드시며 몸을 녹여 가시지 않으시려오?]
여인은 나는 듯 다가왔다. 두 사람은 그의 걸음걸이에 또 한 번 놀랐다.
여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은 꽤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는 모양이군.]
양철심은 나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라 이쪽은 호의로 청해 술을대접하려고 하는데 어째 이리도 도도한가 생각되어 거들떠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곽소천이 그래도 여인이라고 해서 공손히 청했다.
[저희 형제가 방금 불을 쬐면서 술을 마시다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여인홀로 길을
가시는 것을 외람되게도 이렇게 모셨사오니 무례하다 생각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인은 얼굴을 위로 치켜들며 흥! 하고 콧소리를 내며
[좋아요! 술을 마시자면 마시지요.]
큰 걸음으로 집안에 들어섰다.
곽소천은 여인이 만면에 적의를 품은 채 앉아 있는 것을 보자 남자둘이 수작을 부릴려고술에 무슨 미약이라도 탔나 의심하는 것 같아 여인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자기가 먼저 마셔 버리고,
[술이 쉬 식습니다. 소저께 따뜻한 술을 새로 따라 올리겠습니다.]
하고 다시 한 잔을 따라 놓자 여인은 비로소 잔을 비웠다.
곽소천은 소저가 술을 마실 때 살짝 들어난 입술에 음심이 불끈 치밀어 올랐다.
여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술주전자를 들어다가 자기 잔에따라 석 잔을 거듭 마시더니 갑자기 면사를 벗어 버렸다.나이는 30세 안팎, 백옥같은 피부에 커다란지만 끝이 살짝 올라가 차가워보이는 인상을 한쉬이 볼수 없는 미녀였다. 등에 지고 있던 가죽 배낭을 끌러
책상 위에 쏟아 놓는 쿵하는 소리와 함께 굴러 나온 것은
피와 살이 엉겨 붙은 사람의 머리가 아닌가?여인은 땅바닥에 부서져 뒹구는 사람의 머리를 가리켰다.
[이 사람 성은 왕(王)이요, 이름은 도건(道乾)이라 하는데 아주 거물급 간신이오.
작년에 황제가 금나라 황제의 생신에 특사로 파견했는데 그래 금나라 사람과
결탁해 가지고 강남(江南)을 침범하려고 했소. 내가 십여 일이나 쫓아다니다가
조금 전에 죽일 수 있었지요. 그리고는 또 집안 일과 나라의 고통에 생각이 미치자
슬퍼진 나머지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된 것이었소. ]
여인의 몸으로 그러한 일을 했다는것이 믿기지 않았지만땅바닥에 부서져 뒹구는 머리의 절단면이 너무도 매끄러웠기에곽소천과 양철심은 이여인이 대단한 고수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곽소천은 음심을 품었던것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고,
이 여인에겐 허틋짓을 해서 안된다는걸 깨닳았다.
[저의 성은 양이요, 이름은 철심이라 합니다.][양재홍 장군은 선생의 조상이 되십니까?][그렇습니다.]
그이야기에 여인은 경계심을 풀고 말했다.[저는 방금 두 분이 좋지 않은 분들이라고 오해했습니다.
원래 충신의 후손이신데 실례했습니다. 이분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저의 성은 곽이요, 이름은 소천이라 합니다.]색마귀 곽성이 자식을 두었다는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본명을 댔다.
[소저, 다시 술을 드십시다.] 할말이 없어 곽소천이 말했다.[좋습니다. 두 분을 모시고 통쾌하게 한잔하고 싶습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양,곽 두 사람은 여인의 이름을 물었다.
[제 성은 백이요, 이름은 처린이라 하는데....]
곽소천은 깜짝 놀랐다.
[그러면 백봉여협이 아니십니까?]
[네. 그것은 무림에서 지어 준 별명이죠.][여보 아우님, 이분이 바로 무공으로 당대에 유명한 여렵이오. 오늘 이렇게뵙게 되는 정말 큰 영광이오.][오늘 제가 간신 한 명을 죽였는데 관가에서 계속 추적을 당하고있는 중이었습니다.][우리 형제가 소저를 뵙게 된 것은 평생의 행운입니다. 소저께서는 누추한
집이나마 며칠 더 머물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인의 경계심이 풀리자. 혹시나 기회를 봐서 맛볼수 있을까 하며
곽소천이 좀더 머물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배봉여협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누가 나를 찾으러 오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밖에 나오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양,곽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봉여협은 몸을 숙여 사람의 머리를 주워 들고문을 열고 나서더니 돌연 한 마리의 새처럼 나무 위로 올라가 숨어 버렸다.
말발굽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더니 검은옷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 10여명이 문 앞에 말을 멈추고 소리쳤다.[발자국이 여기까지 와서 없어졌다. 집안에 들어가 뒤져봐!]
명령을 내리자 다시 두 사람이 말에서 내려 양씨 집 대문을 두드리는데 돌연 펑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위에서 물건이 날아와 문을 두드리던 사람의 머리를때렸다. 뇌골이 터져 나오며 그는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다. 몇 사람이 우르르나무를 둘러쌌고, 한 사람이 날아온 물건을 주워 보고는 기절할 듯 놀랐다.
[왕대인(王大人)의 머리다.]
그 순간 백봉여협이 숨어있는 나무위에서 하얀 그림자가 튀어나오며
비도들이 허공을 수놓았다.
비도가 번쩍하는 순간 전부 사혈에 비도가 박혀 나무를 바라보는 채로 모두 죽었다.
세 사람은 10여 구의 시체를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포(包)씨는 비를 들고 눈 위에 흘린 핏자국을 쓸다가 갑자기 피비린내를 맡고어지러워 소리를 지르면 쓰러졌다. 양철심이 급히 달려가 부축해 일으키며 왜그러느냐고 물었지만 포씨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양철심은 아내의 얼굴이 백짓장 같고 손발이 차디찬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백봉여협이 다가와서 포씨의 오른 손목을 잡고 진맥을 보더니 웃으며,
[축하합니다. 경사가 났군요!]
양철심이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냐고 묻는데 포씨의 배를 가리키며
[제가 평생 배운 것 가운데 세 가지 일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첫째는 의술이요,
둘째는 시(詩)요, 셋째가 서투른 대로 무예입니다.]
[백봉여협과 같은 절세의 무공을 가지고서도 서투른 무예라 하시면 저희들 재주는
무예라고 할 수도 없겠군요.]
곽소천이 되받자 세 사람이 함께 웃으며 시체를 묻었다.
곽소천은 백봉여협이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도 옷에 피한 방울 묻지 않고이마에도 땀 한 방울 맺히지 않은 것을 보고 겁을내 음심을 내리 누르며 참았다.
양철심은 아내가 애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곽형댁 아주머니도 아기를 잉태했으니 백봉여협께서는 번거로우시겠지만 두 아이를
위해 이름을 지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음, 그러면 곽형의 아기는 장래 곽정(郭靖)이라고 하고 양형의 아기는
양강(楊康)이라고 하되 남녀를 불문하고 이 이름을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백봉여협의 뜻은 그들로 하여금 정강의 치욕(靖康之恥)을 잊지 말고 늘
두 성인(聖人)이 포로가 되었던 일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시군요.]
곽소천이 말하자 백봉여협은 그렇다고 말하면서 손을 품안에 넣어 두 자루의단검(短劍)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 한 쌍의 단검은 길이나 모양이 완전히같은 것으로 파란 가죽의 칼집과 금으로 테를 두른 칼날받침, 칼자루는오목(烏木)으로 만든 것이었다. 백봉여협은 양철심의 비수를 들어 한 자루의 칼자루위에 <곽정(郭靖)>이라는 두 글자를 새겨 넣고, 다른 한 자루에는<양강(楊康)>이란 글자를 새겨 넣었다.양,곽 두 사람은 그가 비수를 놀리는 것이 나는 듯하여 보통 사람이 글씨를 쓰는것보다 몇 배나 빠른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백봉여협은 네 개의 글자를 새겨
놓고 웃었다.
[길손이라 뭐 가진 것이 없어 이 칼을 두고 가니 아기들에게 나누어주시오.]양,곽 두 사람은 멋도 모르고 우선 고맙게 받았다.두 사람이 단검을 뽑아 보니 한 줄기 차디찬 바람이 쌩 뻗치며 냉기가 오싹 돈다.양철심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보검이라고 생각했다. 칼날은 마치 종잇장처럼 얇고칼날 주위에선 파르스름한 빛이 번쩍번쩍하여 마치 안개가 서린 듯했다.백봉여협이 비수를 들어 단검에 대니 비수는 소리도 없이 두 동강이 나버렸다.
마치 쇠를 흙처럼 썰고 금과 옥을 자를 수 있는 신기한 보검임에 틀림없었다.
[백봉여협님의 고마운 뜻은 정말 백골 난망이올시다만 너무나 귀중한 물건인 것 같아
받을 수가 없습니다.][사양 마십시오, 이 한 쌍의 단검은 나도 우연히 얻은 것인데 장차 아이들이 자라
나라를 위해 크게 쓸 데가 있을 것입니다.]두 사람은 더 사양할 수 없어 절을 하고 단검을 받아 들었다.
[10년 뒤 만일 내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이곳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무예를
가르쳤으면 하는데 어떻겠소?]
양,곽 두 사람은 크게 기뻐 연방 허리를 굽혔다.백봉여협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꾸욱 들이키더니 문득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양,곽 두 사람이 잡으려 했지만 이미백봉여협은 내리는 눈 속으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형님, 만약 우리 둘의 아이가 둘 다 남자라면 결의 형제를 하고 또 둘 다 여자면 역시
자매 결연을 하게 하고....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고 큰 소리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