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厚の野望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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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직!
날카로운 칼이 관자놀이를 스치듯이 벽에 박혔다. 칼이 지닌 예기가 유형화 되었는지 얼굴 반쪽이 저릿해지며 귀에는 이명이 울렸다. 햇볕으로 데워진 벽에 등을 대던 덕후는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은 꼴이라 어안이 벙벙하여 상대를 쳐다보았다.
검의 임자는 형욱이다. 칼자루를 쥔 채 무표정한 얼굴로 흉흉한 기색을 드리우고 있었다.
“주군이십니까?”
주어가 없지만 덕후는 순간적으로 알아듣고 급히 도리질 쳤다.
“에이! 그런 끔찍한 소리 말아. 내가 왜 그 짓을 하나?”
“다행이군요.”
진심으로 안도한 듯 형욱은 납검을 하고 덕후를 향해 사죄의 절을 했다.
“무례를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말 한 마디로 없던 일로 돌아가기는 쉽군.”
덕후가 비아냥거리자 형욱은 처분에 맡기겠다는 듯 답이 없었다. 항명하는 태도로 비출 수 있음에도 덕후는 형욱의 심사를 헤아릴 수 있었다. 천협의 사망은 덕후로서도 뜻밖이었다. 암류가 흐르긴 했다. 그러나 두 명의 후계자가 중심이었지 천협은 비껴가 있었다. 그는 어차피 시대의 끝물을 잡은 인물이다. 그를 암살함으로서 후계 구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지만, 최절정의 벽을 바라보는 고수이니 역풍을 맞을 수 있었다.
사망이 발표된 다음 날, 현재 장내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개봉에서 유명한 의원들을 대거 초빙해서 조사한 결과로서는 심장마비라는 것이었다. 덕후는 그럴 수 있겠지, 라고 여상히 넘어갔다. 의원들 중에서 천하문 소속도 있었고 사인에 대한 전말을 전해 받았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가 암살당했다 해도 진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지 세력에 명분을 심어줄 겸, 아군에 위해가 갈만한 세력에 덮어씌워주면 그만이다.
그런 덕후와 달리 형욱은 사망 소식을 듣고 하루 종일 멍 때리더니 방금처럼 기습적으로 위협을 가한 것이다.
“왜 나라고 생각했는지 들어볼까?”
“....의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고 덕후는 얼빠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물증도 안남기고 가주를 암살할만한 능력자로, 자신을 가장 먼저 꼽은 것에 웃어야하는지 울어야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둔감하고 신변잡기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형욱에게 이런 반응을 이끌어내게 할 정도라면, 자신은 주변 여인들에게 무슨 평가를 받고 있는지....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래도 내 여자한테는 부드러운데, 라고 생각하며 헛기침을 하였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어느 세상에 호위한테 목숨을 위협받는 주군이 어디에 있는가?”
“죄를 치루겠습니다.”
“모반죄로 적용할 수 있는 사안이네.”
“알고 있습니다.”
각오한 듯 담담한 신색이다. 그만큼 절박했으리라. 꿍꿍이가 있는 덕후는 이쯤에서 용서할 법할 일을 그냥 넘기진 않았다.
“정말로? 진심으로?”
“명하신다면 자결하겠습니다.”
비수를 뽑아 그대로 심장을 찌를 듯한 기세에 덕후는 튕기듯이 일어나 팔을 잡았다.
“아아, 그러지 말고. 나 방금 정말로 죽는 줄 알았네. 그건 알지?”
“예.”
“좋네. 그럼 내게 공포를 준 벌은 수치야.”
형욱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다가 강직한 안색이다.
“무사는 죽을지 언정 수치를 겪진 않습니다.”
“어허, 그 전에 주군에게 위해를 가한 건 무사의 도리인가? 내 벌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없던 일로 해도 좋네. 그냥 없던 일로 덮어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것을 맹세하지.”
덕후는 장난스럽게 대꾸했지만 형욱에게는 난제였다. 염미홍처럼 뻔뻔한 성격이 아니고, 우희선 밑에 구른 터라 공과에 대한 시비가 분명한 성격이었다. 무위로 돌리기에는 그녀의 성미가 용납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가 맞아 덕후가 암살을 주도했다면, 가주에 대한 보은으로 상해를 가한 뒤에 눈앞에 직접 자진하자는 각오였다. 덕후에게 받은 은혜(?)가 있기에 차마 시해할 수는 없었다.
형욱은 반 시진을 고민한 뒤에 결정을 내렸다.
“....받겠습니다.”
어조는 탈력감과 체념이 가볍게 배어 있었다. 그 동안 차를 마시랴 탁자를 쓸랴 정신사납게 서성거리던 덕후는 그 말에 눈을 반짝였다. 문가에 부재不在를 알리는 패를 걸고 창문과 문을 단속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 방에 어둠이 몰려왔기 때문에 초를 켰다. 어둠을 사르는 촛불의 마력에 홀린 듯 형욱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등 뒤로 접근한 덕후가 귓가에 나직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자아, 벌을 내리겠어. 수위가 넘는 다면 칼을 뽑아도 돼.”
“네?”
“말 그대로. 내가 주는 벌이 네가 생각하기에 수위가 넘는다면, 네 의사로 뽑아도 좋아. 단, 뽑으면 날 반드시 죽여야 해.”
“그런...핫!”
형욱은 허리에 닿는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그보다 둔부에 닿는 뜨거운 살기둥이 천 사이로 닿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그것의 정체는 2,3 일에 한번 씩 입으로 핥아주던 물건이 아니던가. 형욱은 검 자루에 손을 쥔 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덕후의 손은 허리 띠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비처가 대기에 노출되자 형욱은 부르르 떨었다.
너무 신경이 쏠린 나머지 발끝에 힘을 주고 발꿈치가 들려졌다.
“앗!”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려 했지만, 하체가 붙잡힌 상태에서-이상하게 힘이 한 올도 안 들어갔다.- 몸을 빼려다보니 앞으로 기울어졌고, 벽에 검 집 째 양 손을 짚은 상태가 되었다. 길게 뻗은 다리, 부드러운 곡선보다는 소년처럼 탄탄한 감각을 만끽하면서 덕후는 앉으며 재빨리 형욱의 팬티를 무릎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코를 둥그스름한 구멍 사이에 가져갔다.
“흐아?”
항문에 뜨거운 콧김이 닿는 듯 하고, 축축한 입김이 옥문에 닿자 형욱은 신음했다. 양손에 찰떡과 같이 착착 감기는 맛을 음미하면서 혀를 내밀었다. 코 끝에 땀 내음과 함께 치즈 냄새와 같은 체취가 코의 점막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신경계를 타고 덕후의 양물에 잔뜩 힘을 주었다.
치모의 까칠한 감각을 즐기면서 덕후의 혀는 균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형욱의 등이 활처럼 휘어졌다. 혀가 음순을 헤치고 속살을 자극해가자 내부에서 맑고 뜨거운 점액이 주르륵하고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펠라치오를 할 때미다 은근히 젖어온 비부였다. 형욱은 음란한 상황을 초래한 덕후보다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반 억지를 부리고 덮치다시피 하여 주도권을 쥐는 것은 덕후였지만, 생사권은 형욱이 쥐고 있기에 일어난 모순된 판단을 해버린 것이다.
덕후는 손을 내려 형욱의 다리를 좌우로 벌렸다. 다리가 점점 아치형으로 벌어지자 덕후는 머리를 치구 안으로 쭉 밀고 몸을 놀렸다. 보지와 그 윗부분에 선홍빛 진주가 노출되어 있었다. 덕후는 씩 웃으며 손으로 둔부아래를 감싸안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양옆을 당겼다. 항문과 회흠혈 부분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자 형욱은 수치심에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 하체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완전한 치욕은 아닌 듯 질 입구가 움찔움찔 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인지는 못해도 성희性戱에 눈뜬 육체가 반응하는 것이다. 덕후는 혀를 길게 빼 사탕을 핥듯이 질구 위의 애액과 함께 위에 있는 공알을 건드렸다.
“아햐얏.....”
고양이가 갸르릉 거리는 것처럼 머리 위로 형욱의 당황한 비음이 토해졌다. 덕후는 자신의 얼굴을 형욱의 비부에 바싹 가져다 대었다. 거슬거슬한 치모와 촉촉이 젖은 꽃잎이 혀와 입가 전체에 느껴졌다. 소년 같은 형욱에게 물씬물씬 피어오르는 암컷의 향기에 덕후는 리미터를 풀어버렸다.
덕후의 양 손은 손자국을 남길 정도로 엉덩이를 좌우로 단단히 붙잡은 채 질구와 그 안에 숨은 요도구까지 남김없이 탐색해갔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빨고, 핥고 깨물고 훅, 하고 불어가니 형욱으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몸 안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감당하기 어려워 달콤하고도 새된 신음을 토하고 침 삼키는 것조차 잊어 밖으로 흘려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가슴에 숨어 있던 유두 끝이 발기했는지 브레지어를 뚫고 노출할 듯 찌릿해져왔다.
“흐아아아아앙!”
형욱의 입에서, 마음 깊숙이 우러나는 교성이 울려 펴졌다. 그 직후 사지에 힘이 빠져 처졌다. 상체는 벽, 하체는 덕후가 지지했기 때문에 철썩 하고 무너지진 않고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덕후의 하체 애액으로 질퍽해진 가랑이를 올리고 어깨에 머리를 묻으며 할딱였다.
엉덩이를 잡은 손을 풀면서 덕후의 손은 이번에는 형욱의 상체로 스멀스멀 진입했다. 등 뒤의 브레지어 호크를 풀고 유방을 만졌다. 그리고 단단해진 유두를 살짝 꼬집자 축 늘어져있던 형욱은 벼락 한 줄기를 맞은 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여인임을 충분히 강조하듯 적당한 크기였다. 숨이 넘어갈듯 젖혀진 고개가 바로서자 덕후는 녹은 듯한 얼굴의 형욱을 볼 수 있었다. 평소의 잘 벼린 검날과 같은 기세는 없었다. 덕후는 무방비한 형욱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겹쳐왔다.
“우응! 웁, 웁!”
설육이 엉키면서 코맹맹한 비음이 피부를 통해 진동되듯 울린다. 형욱은 키스를 순순히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벌린 가랑이를 좁히려 하듯, 몸을 위 아래로 들썩였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채울 그것을 찾고자 함이었다.
“넣는다.”
덕후의 속삭임에 형욱의 몸이 정지해있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형욱이 무릎으로 지지하는 동안 덕후는 잔뜩 성난 자지 뿌리를 잡고, 형욱의 음순을 조심스럽게 벌려 조준했다.
“내려와.”
형욱은 하체를 서서히 낙하시켰다. 뜨거운 육기둥이 닿자 처녀의 공포심이 살아났다. 그 기색을 읽었는지 덕후가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펠라치오처럼 생각해. 보지를 입이라고 생각하라고?”
형욱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호흡마저 죽였다. 미지의 침입을 앞두고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다. 허리를 떨어뜨리자 아랫입술이 살기둥을 삼킨다. 두꺼운 이물질의 첨단이 빡빡하게 진입하려들자 형욱은 비명을 지를 뻔했다.
치구와 연계된 사타구니의 근육이 부들부들 떨리며 육봉을 천천히, 흡인력있게 빨아들였다.
“우욱!”
덕후는 낮게 비명을 토했다. 형욱의 보지는 마치 입처럼 잘근잘근 덕후의 자지를 삼켜갔다. 이가 없었지만 질근육이 아플 정도로 조인것이다. 조금씩 진입해가다가 마침내 뿌리까지 삼키는데 성공했다.
“하아....하아...”
형욱은 묘한 성취감과 함께 몸을 오므라들었다. 마치 소변을 보는 것과 같은 자세였지만, 그 결과는 남근을 영원이 삼킬 것 같은 자세였다. 덕후가 엉덩이를 때리자 반사적으로 들쳐졌다. 허리가 율동적으로 움직이며 남근의 뿌리를 토해냈다가 다시 삼켰다.
“아아냥...아핫...”
-즈으윽! 쯥!
음탕한 소리가 고조된 서로의 체온과 맞물려 울린다. 덕후는 자지가 뽑힐 듯, 형욱은 보지가 꿰일 듯한 감각에 몸부림을 쳤다. 어느 순간 형욱은 검을 놓았고, 한 쌍의 남녀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양손을 잡았다. 손가락끼리 깍지를 끼우고 입맞춤을 하였다.
“가, 갈 것 같아요...”
“나 나도...”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보인느 형욱은 절정을 향해 달렸다. 거기에 맞춰 덕후의 자지가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귀두 끝은 쿠퍼 액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암컷의 환희성이 터졌다.
“아아아아아앙!”
그 신호에 맞춰 덕후의 자지 끝이 포문을 열고 정액을 힘차게 토했다. 마그마처럼 분출하는 정액은 자궁구를 향해 힘차게 쏟아져왔다. 그 감각에 형욱은 발가락을 오므릴 정도로 힘을 주고, 몸은 안으로 말며 떨었다. 질구 안에 팽창해있던 자지가 수그러드는 것을 느끼며 덕후는 오르가즘의 여운에 헤어나지 못하는 형욱을 부드럽게 안았다.
“하아, 하아....”
쌕쌕 신음을 토하는 형욱은 여운에 잠겼다가 핫, 하고 고개를 들었다. 먼저 찾은 것은 땅에 떨어진 검이었다.
“베려고?”
덕후의 물음에 형욱은 무표정을 잊고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없으면 불안해서...”
얼굴 가득 홍조를 띄우고 있어 오히려 사랑스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덕후는 짖궂은 마음이 들어 안은 채로 상체를 숙여 형욱의 가슴에 입을 가져갔다. 절정의 여운에 앗, 하는 탄성을 냈지만 뿌리치진 않았다. 약간 작은 듯하면서도 탄력과 감도가 무척 좋은 유두였다.
“하앙....아...”
본능적으로 허리를 꿈틀거리자 서로의 결합부가 쯔걱이는 듯 했다. 덕후는 다른 쪽 유두도 같이 침 범벅으로 만들고 아쉬운 듯 떨어졌다. 그리고 짓궂게 웃었다.
“내 벌은 합당했지?”
“....잘 모르겠습니다.”
달콤한 맞장구 따위는 모르는 형욱이다. 부끄러운 듯 상기된 표정을 애써 근엄하게 만드는 것에 덕후는 기존의 여인과 다른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벌은 벌이고, 한 건 한 거지. 돌아가면 내명부에 완의 품계를 받아.”
“그런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이름만이라도 올려 둬. 내 부인이 된다 해서 치장이나 교양을 원하는 건 아니니까. 솔직히 우리 사이에 그런 건 필요 없잖아? 세간이라는 것 때문에 대충 형식만 갖추는 거라고. 마음이 중요하지.”
품계를 내린다는 말에 거래 같아 찜찜하면서도, 서운함이 남아있던 형욱은 덕후의 끝 물음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흉수가 있다면 가려주지. 처지 하는 것은 네 마음대로 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헌데 저 때문에 직접 나서는 것은 아닌지요.”
근심하는 형욱을 두고 덕후는 가만히 그녀의 귀밑을 쓸어 넘겨주었다.
“직접? 설마. 그런 주목받을 짓을 왜 해. 안하려고 대신 세휘를 데려왔잖아. 나 대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는데.”
천협이 급서한 이후 세휘가 잘 안 보인다 싶었더니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몰랐다. 튀는 외모라 세가 내를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개봉에 있는 천하문과 대상련의 비밀 지부로 찾아갔다. 사전에 위임장을 받았기 때문에 현지의 협조는 어렵지 않았다. 양측으로부터 신도 세가 상층부의 동향에 관한 거라면 소문 단위부터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일관성있는 정보로 짜맞추는 중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에도 못 낼 작업이지만, 제국의 특무기관에 핵심 인재로 종사한 그녀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하부에서는 진상을 알지 못하도록 정보 가공 과정을 팀을 이루기 보다는 혼자 독식하려니 노가다가 돼 버린 것이다.
형욱은 진지하게 청했다.
“저도 할 것이 있으면 명해주십시오. 물론, 주군의 신변에 경호가 최우선입니다만.”
“그때그때 돌아가는 거 봐서. 아, 신도 세가의 사람들 중에서 네가 받은 인상에 대해서 알려주겠어? 정보는 있지만 제 3자니까.”
“워낙 어릴 적의 일이라서...”
“어린 아이의 감은 좋다잖아.”
덕후가 채근하자 형욱은 기억의 단편을 이리저리 기워가며 떠듬떠듬 전했다. 신협은 하남 무가의 출신이고 문무를 고루 갖춰 항상 주위에 사람이 끊기지 않았다. 반면 광협은 모친이 혁련 세가 전대 가주의 조카였다. 신도 가와 혁련 가의 오랜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인질 교환이었다. 그래서 독고다이 인생이었다.
천협이 작정한다면 후계자 쟁패에 애당초 얼굴을 내밀 수 없는 인물인 셈이다. 그러나 천협은 하남의 토착의 간섭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가주란 가신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강단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상속인을 분명히 하지 않고 광협을 신협 수준으로 동등하게 대우하였던 것이다.
형욱이 이야기하는 것은 덕후가 사전에 꿰고 있던 이야기였다. 어떤 것은 별 것도 아닌 시시한 소리였다. 성실한 청자를 연기하여 형욱이 최대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배려하던 덕후는 관심거리를 발견했는지 반문한다.
“안면근육 경직증이 있다고?”
“네. 어렸을 때 뭘 잘못 먹어서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의원한테 물어보니 신경독의 일종인 것 같은데 증상 발견이 너무 늦어서 손도 못썼죠.”
“친분이 있는 것 같군?”
“제가 여기 살았을 무렵에 제 방 앞의 마루와 회랑을 청소하는 게 담당이었으니까요.”
몇 년 연상이었지만 그 당시는 소년인지라 실수로 관상용 도자기를 실수로 깼던 모양이다. 화가 난 집사가 호되게 팼고, 그래도 웃는 낯을 지우지 않아 반성할 줄 모른다는 오해를 사 반죽음이 되도록 얻어 터졌다. 막 무공의 기초를 닦던 형욱은 기감을 연마하려던 중에 방해가 되자 밖으로 나왔고, 그렇게 당사자와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이다.
반 시체가 되도록 얻어맞았음에도 여전히 웃는 표정이 형욱의 관심을 끌었고, 형욱은 그를 의원에게 데려다 주었다. 의원은 상세를 치료하면서 소년이 안면근육 경직증에 걸린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고칠 필요는 없으니 비밀로 해달라는군요. 자기는 앞으로 오만가지 사람을 만날 테니 호감 가는 얼굴이어야 한다나요.”
“그래서 지금은?”
“얼마 전에 마주쳤는데 본 장의 하급 무사로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인에서 무사 자리에 올랐다면 굉장히 노력했다는 소리인데.”
“제가 좀 심법과 초식 몇 가지를 알려주었습니다.”
형욱이 주저하면서 밝혔다. 가법에 어긋난 일이지만 정규 무사 자격이 된다면 누구나 익히는 기본공이라 시기를 앞당긴다고 여긴 것이다. 그 당시 형욱은 아직 어린데다가 직계 혈족만 익히는 상승무도의 기초를 닦고 있는 터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소락 쪽에서 사태의 중요성을 알고 피차 입막음을 당부했을 정도였다.
사연을 듣고있던 덕후가 삽입된 양물에 힘을 주며 음흉하게 물었다.
“뭐야, 벌써부터 그 때 소년을 마음에 안은 거야?”
“그, 그, 그건 아닙니다. 제게는 주군 뿐 입니다!”
“아, 알았어. 이거 좀 치우고.”
당황한 형욱이 반쯤 칼을 뽑은 채 날을 덕후의 목 아래에 바싹 대고 있었다. 농담 한 마디에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 처하자 덕후는 진땀을 뺐다. 형욱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황급히 검을 내렸다. 여전히 검에는 손을 놓지 않는다.
“가규家規가 어떤지는 몰라도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는 게 좋지. 이름이 뭐지?”
“남 소락 이라고 합니다.”
형욱의 답을 들으며 덕후는 가라앉은 미소를 지었다. 잘만하면 그럭저럭 드라마 한 편은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세휘가 오후에 돌아오자 덕후는 둘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털어놓았다. 약간의 윤색을 거친 뒤에 형욱은 은밀히 남 소락을 불렀다. 가주의 연무장까지 잠입할 정도로 은신이 뛰어난 형욱이 한적한 곳에 순시를 도는 하급 무사를 불러 정체를 밝히고 거처로 부르는 것은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인기척을 묻어주는 어둠의 힘을 입어 남가흥이 찾아왔다. 허리와 다리가 날렵하고 팔이 길고 어깨가 넓어 얼굴만 아니라면 민첩한 인상을 주는 스물 중후반의 젊은이였다. 그러나 웃는 얼굴이 무사의 이미지보다는 장사하는 느낌을 주었다. 남가흥은 대청에 앉은 형욱을 보자 무릎을 꿇고 절했다.
“이리로 오게.”
형욱은 고개를 끄떡여 인사를 받고는 격선隔扇 안으로 남가흥을 이끌었다. 방에는 주안상이 있고 면사를 쓴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이쪽은 내 지기知己 일세.”
형욱은 그렇게 소개 하고 앉으라했다. 뒤의 병풍 뒤에는 덕후가 귀식호흡을 한 채 숨죽이고 있었다. 형욱과 같은 절정고수라면 동향을 파악할 수 있지만 남가흥 수준에는 눈치 채지도 못했고, 만에 하나를 위해 미리 향을 피워 후각을 둔하게 조처했다.
“공녀님이 최근 강호를 진동한다는 단혼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약관에 이르기 전에 그런 명성과 성취를 이루시다니 대단합니다.”
자기 일처럼 기쁜 듯이 칭찬하는 남소락을 형욱은 빤히 바라보았다. 비위를 맞추려했음에도 반응이 없는 형욱의 태도에 남소락이 의문과 불안을 느낄 무렵에 형욱이 운을 떼었다.
“지금 몇 살인가?”
“이립이 몇 해 안 남았지요.”
“나는 자네라면 10년도 되기 전에 대총관이나 차기 총관쯤 되는 지위에 오를 줄 알았네. 그래서 가법에 어긋남에도 초식과 심법을 따로 전수했지. 그런데 고작 경비 서는 무사라니.”
국어책처럼 딱딱한 언변이었지만 형욱의 평소의 무심한 태도와 어울려 그녀 특유의 뉘앙스로 실망감을 전한 듯 했다. 남가흥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으나 양 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교룡이 못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아직 시운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눈이 뜨이면서 눈동자가 반짝인다. 자신을 교룡에 견준 것은 이래도 뜻은 잃지 않았다는 그 나름대로 항변이었다.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묻겠네. 자네는 신도 세가의 미래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는가?”
거짓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직시해오는 눈빛에 남 소락은 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적으로 자기 인생에 전환점이 왔음을 깨달은 것이리라.
“잡음 없는 승계가 우선입니다.”
“잡음?”
“가주님은 서거하시기 전에 후계를 분명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집안을 둘로 나눌 수 있는 사태. 그러나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본가의 입장에서는 힘은 언제든 하나로 결집되어야 합니다.”
“순망치한의 법도가 있지 않겠는가?”
남소락은 형욱의 눈치를 살폈다. 밖에 있다 보니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일까? 덕후의 전음으로 남가흥의 속내를 깨우친 형욱은 면사를 쓴 세휘 쪽을 가리키며 해명했다.
“나는 정세를 보는 안목은 어두운 편이네. 허나 지기가 그걸 보안해주고 있지.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으니 나처럼 생각해도 좋아.”
“그렇다면 감히 말씀 올리겠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신협 공자는 토착 무가들을 대변하고 있고, 광협 공자는 가주님의 생전 지지와 함께 혁련 가와 연이 닿아있습니다. 개인의 은원이 아니라 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양쪽 다 압도할 위세가 아니라면 한 쪽을 조속히 탈락시키는 쪽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언가 기대하는 눈치로 형욱을 향했다. 세휘는 그가 형욱을 재 보려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양쪽을 압도할 세력과 무공을 가지고 있고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측근으로 선점하려 들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세휘에게 전해들은 형욱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주 승계에 관심없네.”
남가흥의 어깨가 살짝 내려간 느낌이다.
“다만, 부적격자를 그대로 방치할 생각은 없지.”
“없다 하심은?”
“자넨 천협 가주님의 급서에 이상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나?”
“설마, 누군가 시해를?”
남소락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웃는 얼굴로 입가가 경련하는 것을 보니 마치 웃음을 참는 것 같아 상대방에게 기괴한 인상을 전했다. 형욱은 왜 그때 집사가 마구 때렸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남소락도 자신의 얼굴의 위력(?)을 이해했는지 급히 수그렸다.
“아직 물증은 없어. 허나, 석연치 않으니 은밀하게 조사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네의 협조가 필요해.”
“말씀만 하십시오. 공녀의 은혜가 없었으면 소인은 무림인조차 될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결의를 담아 고하자 형욱은 세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이건 만에 하나 가정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만약 전대 가주님이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셨다면, 암중인이 의도하는 건 자기가 원하는 이가 가주가 되길 바라는 거예요.”
“과연 그럴까요, 내분을 바라는 경우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이럴 때 절정고수이신 가주님이 급서하신 것만으로 전력에 타격이 큽니다. 서로 싸운다면 약체화는 더 심해지겠죠. 어차피 본가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적은 영호 놈들이겠고요.”
“정말 내분이 목적이라면 공자님 전부 아니면 둘 중에 하나를 노렸겠죠.”
남소락은 세휘의 모순된 말을 잠시 음미하고 진의를 깨달았다. 암중인이 내홍을 기대하고 전임 가주를 암살했다면 신협과 광협이 피와 뼈를 깎는 파이트에 들어가야 하는데, 현재 광협의 세력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전대 가주와 측근인 류 씨만이 협조할 뿐, 가중에서 열에 여덟은 신협을 지지하고 있다. 천협이 생전에 후계를 분명히 했다면, 가령 광협에게 명분을 준 경우에는 그가 정통성을 빌미로 외부에 동맹 세력을 끌어들이게 할 수 있다. 어쨌든 내분을 심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공개할 유언장조차 없다.
기껏해야 며칠 전 측근이 “광협 공자입니까, 신협 공자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미소 지었던 타이밍 가지고 저들끼리 갑론을박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이대로 시일을 두면 여론에 힘입어 신협이 가주 직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았다. 형욱의 지기의 짐작대로 후계 후보들을 암살하는 쪽이 내분을 조장하기 쉬웠다.
“어느 쪽이 범인인지 알 수 없어요. 자연스럽게 귀천 하셨던 것 가지고, 과민반응 일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쉽게 묻고 넘어갈 사안은 아닙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암중인의 허를 찌르고자한다면, 그가 가장 원하지 않는 국면을 조장해줄 필요가 있겠지요?”
남소락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뻐금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내분을 조장하시겠다는?”
“네에, 맞아요. 꼬리가 길면 종국에는 밟힐 테니까요.”
세휘는 생글생글 웃으며 속으로는 덕후를 무던히 씹었다. 이래서야 완전히 악녀 포지션이다. 시킨 덕후도 그걸 의도했다. 안주하는 무사라면 기겁하고 자리를 뜰 것을 남 소락은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갈등하고 있다, 세휘는 여기서 승부수를 띄울 때라고 직감했다.
“공맹의 예를 따르겠다면 이 자리에서 돌아가셔도 상관없어요. 저희도 이 제안을 없던 일로 묻어둘 테니까요.”
남 소락은 갈등했다. 하지만 내분이 일어나면 기득권도 쪼개져 사정없이 흔들릴테니, 난기류를 타고 출세하는 기회 또한 주어진다. 잘만하면 먼 훗날 남 소락에게 있어 꿈에 바라마지 않는 시절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분이 잃어나면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의 목숨이 스러질 것이다. 전범으로 비난을 받을 것을 생각하자 오싹해졌다. 그러나 남 소락은 나약해지는 감상을 곧 뿌리쳤다.
-외면한다고 될 게 아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라면, 이 분들의 말씀대로 암중인이 초래한 것이라면 신도 세가는 그 자의 뜻대로 이용당하다가 버림받을 것이다. 나 같은 하급 무사들이 가장 먼저 죽어나갈 테지. 그럴 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가주님을 해한 암중인이 있다면 원흉을 찾을 수 있겠고.
남 소락이 덕후의 존재와 의도를 알았다면 심각하게 재고했겠지만, 그는 형욱이 나타나서 일생일대의 기회를 준다는 자체에 벅차 감히 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덕후 쪽에서 신도 세가는 장차 포섭할 우문 세가와 함께 외번外蕃 취급을 할 작정이라, 가급적 존속 시킬 방침이고 기왕이면 유능한 인재가 맡아주는 편이 좋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