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드의 모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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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토리가 산으로 간다며 불평하시는 분들이 많군요. 저도 그 점은 공감하는 바이지만, 빨리 완결을 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재미없는 글을 어서 완결을 내야지 않겠습니까? 제 근성도 거의 떨어져 가고..
2. 또한 주인공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글을 쓸때 이런 구상을 했거든요. 질서성향이 높으면 정의롭고 여자를 좋아하는 호남. 혼돈성향이 높으면 여자를 능욕하며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악역, 그리고 두 성향이 비슷하면 유유부단한 찌질이.. 따라서 지금의 주인공은 찌질이 입니다. 하지만 지금와서는 이렇게 설정한 게 무척 후회되는군요. 저도 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잘 안되요. 그래서 주인공이 나오는 부분이 자꾸 줄어드는 거일수도 있구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결에 가까워지는 이 시점에 주인공의 성격을 바꿀수도 없으니, 짜증나더라도 계속 봐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3. 선택지가 하나 남았는데 그거에 따라 엔딩이 조금 달라집니다. 일단 배드엔딩은 없구요.
4. ntr이라고 싫어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전 야설의 본분에 가장 충실한 소재가 ntr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심장이 약해서 심한 ntr은 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주 막장까지 가는 사태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5. 앞으로 서너편만 더 쓰면 완결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을 쓰며 느낀 교훈이 있는데 그건 아무 계획없이 글을 막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이런 3류야설일 지라도 최소한의 방향은 잡혀 있어야 조금이나마 글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지요.
6. 마지막으로 제 글에 나이어린 처자가 등장하는 것 때문에 기분이 불쾌하신 분도 있을 텐데요.. 뭐 어리다고 해봐야 15살이 가장 적은 나이지만, 어디까지나 야설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이런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 글의 배경이 판타지라서 현실성이 없다는 것도 한 몫 했구요. 제 취향은 hara saori같은 성숙한 처자니 불필요한 오해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아 정말 돌겠네.."
아렌티아는 의자에 길게 몸을 뉘이며 짜증스럽게 뇌까렸다.
펜드라는 맘에 안드는 자식을 위해 자신이 그런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러다 저주도 풀기 전에 비명횡사 하는게 아닐까? 물론 카스티어가 자신을 이긴다 하더라도 드래곤 끼리는 웬만하면 살생을 하지 않으니 죽기까지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 못지않은 굴욕과 고통을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아렌티아는 계속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싸우기는 해야 할 것이다. 용의 맹약을 지키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고 미쳐버리던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아내라도 불러 올까?]
현재 마계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아내. 그녀라면 카스티어 정도는 점심 밥 해치우듯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그럴 순 없지."
몇년 전 그녀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아렌티아는 아내의 조력을 받을 생각을 깨끗이 접었다. 그녀는 그때..
.
.
.
"저기 주인님. 근데 저주는 언제 풀리는 거죠?"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요염한 미녀가 사제복을 입은 흑발의 청순한 미녀에게 먼저 말을 꺼낸다. 흑발 미녀는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아 그게.. 곧 풀려. 에헤헤"
은발 미녀는 기도 안찬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혹시 그거 알아요? 저 처녀막 재생됬어요."
"??"
흑발의 미녀 아렌티아는 그녀의 말을 듣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 했다. 뭐가 재생되었다고?
"700년간 안쓰니 정말로 재생되더라고요! 하하 재미있죠?"
이 말을 하며 은발 미녀는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미소지었다. 아렌티아가 얼떨결에 마주 웃자..
"하 하하.."
은발 미녀가 서릿발처럼 차가운 어조로 그녀를 제지했다.
"웃지마."
"..."
"저주 풀어오기 전엔 내 앞에 나타날 생각 마. 죽여버릴수도 있으니까. 아 완전 짜증나 죽을거 같아. 주인님 얼굴만 봐도 욕이 절로 튀어나온다고."
수백년간 함께해온 아내의 폭언에 아렌티아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저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
"그거 알아? 주인님 볼때마다 나 질투나 죽을거 같아. 왜냐고? 니가 나보다 더 예쁘게 생겼으니까. 혹시 너 원래부터 여자였던거 아냐?"
"부 부인. 말이 좀.."
"닥쳐!"
순간 은발 미녀 주변에 엄청난 검은 투기가 휘몰아쳤다. 그녀는 화가 난 것이다. 아니 그냥 화가 난게 아니라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나 이제 마계로 가봐야돼. 지금 우리 아버지가 다른 마계의 군주랑 전쟁중이라 정신이 없거든. 더 이상 내가 농땡이 치고 있을 수가 없어."
"그 그래? 잘됬네. 그럼 나도 가면 되나?"
일찌기 아렌티아는 아내가 마계로 돌아가면 그녀와 함께 가기로 합의를 해 놓았다. 그녀의 아버지 아스모데의 허락도 받아놨고.. 하지만 아내는 아렌티아에게 비웃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하 웃기지마. 쪽팔려서 어디 당신을 데려가? 동생들이 욕할거 아냐. 언니는 결혼할 사람이 없어 여자랑 결혼했데요~ 하긴 저렇게 성질더러운 여자를 어떤 남자가 데려가겠어요? 같은 여자나 데리고 살아야죠.. 장난해? 난 그꼴 절대 못봐. 너 그냥 여기 남아라."
"뭐?"
아렌티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은 그녀가 자신과 떨어지겠다는 선언과 같지 않은가?
"나 혼자 갈꺼라구! 넌 저주 풀기전에 나 따라올 생각따위 꿈도 꾸지마. 알겠어?"
"그 그럴순 없어. 우린 부부잖아?"
"무슨소리야? 여자끼리 결혼도 할 수 있었어?"
아내의 말에 아렌티아도 참고 참았던 화를 폭발시켰다. 그녀는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난 여자가 아니야!! 너까지 대체 왜이래. 알고 있잖아? 우리가 얼마나 깊은 사이였는데.. 너까지 이러기야?"
"그래? 여자가 아니면 그럼 고자네."
"컥.."
"방망이가 있어야 남자새끼지 그것도 없는 고자새끼랑 부부로 살 마음 없거든. 이만 갈게. 다시 볼때는.. 그 짜증날 정도로 반반한 얼굴 안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내가 소녀시절 한눈에 반했던 그 거칠고 우수에 젖은, 잘생긴 마스크 달고 있으라고! 알았어?"
이 말을 끝으로, 아렌티아의 아내는 마계로 떠나버렸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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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역시 안돼."
이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아무리 지금 처지가 어렵다라도, 설령 죽을 위기에 처하더라도 그녀의 도움만큼은 청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나중에 저주를 풀고 당당히 그녀 앞에 설 날을 위해, 그 전에는 그녀와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다.
[할 수 없군. 힘껏 해 보자..]
결국 아렌티아는 카스티어와 싸울 결심을 굳혔다. 되든 안되든 해 봐야 한다.
그녀의 생각데로 아렌티아는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카스티어와 결판을 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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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안되는 고집으로 전장에 직접 나서게 된 황태자 펜드. 그는 병사들을 지휘하여 쉐밀이 점거하고 있는 전략상의 요충지를 되찾을 계획이었다.
"자 내 말 잘 알아들었지? 새벽을 틈타 기습을 하는 거다. 적 병사들은 모두 자고 있을테니 쉽게 이길 수 있다."
"...."
펜드는 정말로 전술에 있어 초짜인 듯 했다. 밤에 가면 적들이 자고 있어서 쉽게 이길 수 있다고? 그런 바보같은 말이 어디있단 말인가.
"알았으면 모두 준비 하도록. 해산"
"네.."
더 말해야 이 고집센 황태자에게 씨알도 안먹힐 것이다. 부하들은 다들 뭐 씹은 듯한 표정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나 참 그게 뭐야? 적들은 정탐병도, 보초도 없는줄 아나."
"기습 좋다 이거야. 근데 아무 사전 작업 없이 그게 통할까?"
부하들이 주어없이 씨부렁 대는데 펜드는 그것도 모른다. 자신이 짜낸 천재적인 전략에 흠씬 도취되어 승리하는 상상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나서니 일이 잘 풀리는군. 빨리 쉐밀 그 반역자를 처단하고 황제에 올라야 되는데..]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건 혼자서 자신의 병력을 전멸시킨 그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물론 루카 정도면 그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만, 만약이라는게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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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드의 전략대로 정말 그가 이끄는 병사들이 적 진을 급습했다. 그런데 그 곳은 텅텅 비어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헉 전하. 함정입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뭐? 함정이라니."
경험이 풍부한 전투부관은 야습 실패의 패턴을 잘 알고 있었다. 힘차게 적진을 기습했는데 적들이 없고 -> 잠시후 사방에서 준비하고 있던 복병이 들어오고 -> 우리 군은 개털되서 쫓겨나는.. 것이다. 이제 곧 적들이 혼란에 빠진 우리를 급습할 것이다.
하지만 펜드는 부관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몰랐다. 문득 그가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크하하하 이거 참 적들이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어 도망갔군."
"네에?"
"나의 명성이 벌써 여기까지 미친 것인가?"
"..."
어째서 이렇게까지 펜드가 망가진 것일까? 과거의 펜드는 사려깊고 겸손한 사내였다. 젊은 나이에도 맞지않게 속깊은 행동을 하는 그에게 존경심을 품은 적도 있는데, 지금의 그는 어리석고 오만한 우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역시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군.]
모를 일이다. 그의 지금의 모습에서 몇 달전의 현명한 청년 펜드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과연 그는 이대로 망가진 채 제국의 폭군이 될 것인가?
휘오오오
부관의 염려대로 적들의 복병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방이 고요하다. 펜드는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 여기저기를 탐색해 갔다.
"이거 뭐야. 아무것도 없어."
펜드가 말하는건 전리품에 대한 것이다. 보통 이토록 빠른 시간에 철수하려면 대부분의 짐을 놓고 가야 하는데 남아있는 적들의 짐이 전혀 없었다. 식량도 없고, 취사한 흔적도 없고.. 아지 적들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기는 한 걸까?
"그러게 말입니다."
옆에서 부관이 거들었다. 그도 의아함을 느끼는건 마찬가지였다. 왜 복병이 없지? 틀림없이 지금즘 그들을 기습해올 타이밍인데..
"호오 여기서 뭣들 하는 게지?"
"아.."
갑자기 어디선가 낭랑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려한 외모의 은발 청년이 느긋하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례하군. 감히 대제국의 황제가 될 이이몸을 몰라보다니. 너는 대체 누구냐?"
펜드의 말에 청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찬찬히 살펴봤다.
"네가 펜드라는 녀석이군. 이거 참 운도 좋아. 여기서 전쟁도 끝나는 건가?"
"무슨 개소리냐! 이봐 저 미친놈을 당장 여기로 끌고와라."
촤아아악
펜드의 명령에 따라 청년에게 달려들던 한무리의 병사들이 순간 볏짚 썰리듯 반으로 나눠졌다. 그리고 청년을 중심으로 대량의 피분수가 솟구친다.
"에엑?"
"흐음. 잘 하면 내일쯤 시렌느 양을 가질 수 있겠군. 일단 너를 죽이면 이 전쟁은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니 자연스레 그 귀여운 하프엘프 소녀가 황제가 되는 거지. 이거 참 기분이 좋은데. 빨리 그녀를 임신시키고 아렌티아를 찾아가야 겠다."
[미친거 아냐?]
시렌느는 펜드의 여동생이었다. 비록 지금은 그녀가 쉐밀의 말에 세뇌되어 적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쉐밀을 처단한 후 펜드는 시렌느를 별궁에 유폐시켜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것이 자신을 황태자로 만든 세피아에 대한 보은이자 여동생에 대한 자신의 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미친놈은 시렌느를 가진다느니, 심지어 임신시킨다느니 하는 피가 거꾸로 솟는 말을 잘도 지껄이고 있지 않은가!
"에에잇 뭣들 하는거냐! 당장 저 미친놈의 혓바닥을 잘라버려!"
"..."
펜드의 명령에 병사들이 우물쭈물 하며 따르지를 않는다. 이자식들이 왜 이러는 거지?
스윽
청년은 자신의 검에 묻은 피를 털어버리며 천천히 펜드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펜드는 방금 전 일어난 일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소리도 기척도 없이 병사 10명을 처리했다!?]
펜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드 마스터에 달한 그의 눈으로도 청년의 동작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정도로 빠르고 강한 참격을 날리고도 저 청년은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저 놈은.. 뭐지?
"뭣들 하는 거야? 모두 죽고 싶은 거냐?"
"우 우아아아!!"
"죽여라!"
펜드의 명령에 병사들이 마지못해 청년에게 돌격해 갔다. 그 수는 아까의 세배는 되 보였다. 하지만..
서걱 촤아악
털석
"???"
병사들이 이번에도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심지어 그들은 비명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리고 펜드는 여전히 청년의 동작을 전혀 보지도 못했다!
[괴 괴물인가?]
펜드는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엄청난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헤밀턴 백작의 핵심 전력을 단신으로 전멸시킨 그 괴물이 바로 저 청년인 것이다. 이걸.. 어찌해야하지?
"루 루카! 도와줘!!"
더 생각할 것도 없다. 펜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 루카 리발린을 꺼냈다. 동시에 펜드의 뒷켠에서 청발의 미녀가 검을 들고 카스티어에게 짓쳐들어 갔다.
챙강
"호오.."
루카는 확실히 달랐다. 좀 전 허무하게 두동강난 병사들과는 달리 그녀는 카스티어를 상대로 한치의 물러섬 도 없이 검을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펜드는..
"으 으으.."
빨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전투를 덜덜 떨며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정말 괴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루카와 청년이 거의 비슷하게 검을 겨루는 것 같지만, 실제로 청년은 장난이라도 하듯 여유있게 루카의 검을 받아넘기고 있고, 루카는 한합 한합이 전력을 대해 내지르는 일격이다. !
[상대가 안돼. 어떻게 루카가..]
틀림없이 저 청년은 전설에나 나오는 그랜드 마스터일 것이다. 펜드도 나름 검을 수련한 편이므로 그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루카는.. 진다! 이길 수 없다.
"하아 하아 하아"
벌써 루카의 호흡이 거칠어 지고 있다. 여기서 펜드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 그녀를 도와 저 청년을 공격할까? 그건 의미가 없다. 소드 마스터 중에도 가장 허접한 편인 자신이 가세해 봐야 전투의 행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역시..
[도망?]
그게 최선이다. 루카가 저 청년을 잡아두는 사이 자신은 도망친다.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틀림없이 자신은 죽게 되니..
[아니 그럴 순 없어!!]
하지만 그래서는 루카가 죽게 된다. 자신에게 충성만을 바치는 예속인형 루카를 영원히 잃게 되는 것이다. 목숨과 루카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자면 당연히 목숨이었지만 루카도 포기하기 힘든 아까운 재산인 것이다. 싸움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는 저 아까운 것을 어떻게 버려?
그리고 저 청년도 펜드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검을 겨루면서 아깝다는듯 연신 입맛을 다신다.
"이거 부숴버리기는 아까운 컬렉션이군. 예속인형중에서도 S급이야. 음.."
"치잇"
루카는 청년이 자신과 싸우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서 주인님의 말대로 저 적을 없에버려야 하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급한 마음에 그녀는 방어는 도외시 하고 오로지 공격 일변도로 나선다. 그리고 그건 그녀에게 큰 허점을 노출시켰다.
챙겅
"엣?"
그랜드 마스터 카스티어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카스티어는 루카의 검을 강하게 내려쳐 완전히 두동강내 버렸다. 그 뿐 아니라 당황한 루카의 복부를 강하게 검 손잡이로 강타해 그녀를 무릎꿇게 만들었다.
"좋아 아주 좋아. 상처없이 사로잡을 수 있었군. 후후 너는 특별히 내 콜렉션에 거두어 귀여워 해 주지."
마나가 담긴 일격에 루카는 이미 움직일 수 없는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카스티어는 그녀에게 잠시 시선을 준 뒤 비릿하게 웃으며 펜드를 향해 검을 들어올렸다.
"너도 나름 검을 수련한 것 같은데, 어디 헛된 발버둥을 쳐 보지 않겠느냐?"
"으으으으.."
펜드는 무서웠다. 저 사내는 지옥에서 강림한 사신이나 다름 없다. 황제가 되어야 할 자신에게 왜 저런 장애물이 나타는 것인가?
"빨리 검을 들어 올려. 이대로 널 죽이는건 재미가 없단 말이다."
"으으.."
청년의 재촉에 펜드는 마지못해 자신의 검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미 그는 패배한 거나 다름 없었다. 검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겁에 질린 것이다. 이대로 설마 자신은 죽는걸까?
[아냐 그럴리 없어. 이건 꿈이다. 루카보다 강한 자가 있을리가 없지 않는가? 난 죽지않아. 죽지 않는다고!!"]
"흐음 이래서는 검을 든거나 안든거나 다를 게 없군. 그냥 죽어라."
카스티어는 실망한 듯 펜드에게 검을 겨누었다. 너무 싱겁다. 가능한 좀 더 땀을 흘린 후에 시렌느 양을 얻는게 더 보람있는 것인데.. 어쩔 수 없다. 재미없는 일은 빨리 끝내는게 낫다.
".. 멈춰라."
"?"
막 펜드의 목을 자르려던 카스티어의 귓가에 새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 곳에는..
"오오."
카스티어는 자신의 눈을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 검은 사제복을 맵씨있게 차려입은 흑발의 미녀. 고결하고 아름다운 아렌티아 양이 꿈결처럼 그 곳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귀여운 나의 신부.
"아렌티아 양. 설마 이곳에 직접 오실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먼저 찾아가려 했는데.."
"아 그 펜드라는 찌질이가 죽으면 좀 곤란해져서.. 사실 나도 이렇게 일찍 그대와 대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좀더 전쟁이 진행된 후에야 내가 나서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후후 이 펜드라는 놈이 당신의 유희상대인 모양이군요.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저도 저와 관계한 여자는 나름 아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 품에 안기면 이런 형편없는 사내 따위는 잊게 될 것입니다."
카스티어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이런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솔직히 아렌티아는 처음에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
"하아?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아렌티아. 이것은 운명입니다. 당신과 저는 맺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한갗 무의미한 유희의 일환이 아닌, 진짜 반려로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전 당신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부터, 이미 제 신부가 될 사람이 당신이라는 걸 알았죠."
"..........."
카스티어.. 아렌티아는 카스티어와 일면식도 없었고 어떤 형태로든 그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사실 아렌티아는 그 스스로가 드래곤이면서도 드래곤이라는 종족 차체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렌티아는 방금 전 난생 처음으로 아카시아를 제외한 다른 드래곤에게 무언가 감정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명백한 살의였다. 자신을 지독하게 모욕한 저 미친 드래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당장 시작해도 될까?"
"아하하 이거 참 아주 솔직하시군요. 하지만 좀 장소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전장은 사랑을 나누기에 그리 어울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제 레어로 가시겠습니까?"
"미친새끼야. 싸우잔 거다!"
아렌티아는 폭발시키듯 마나를 끌어올리며 재수없는 카스티어를 매섭게 노려봤다. 그제야 카스티어는 아렌티아의 의도를 이해한듯 씨익 웃어보였다.
"아아. 그 쪽 이야기셨군요. 이거 난감하군요. 여자라서 때릴 수도 없고 참.. 할 수 없죠. 적당히 귀여워 해 드린 후 함께 레어로 가죠. 시렌느 양은 뭐 후식정도로 남겨두죠."
카스티어가 웃으며 아렌티아를 향해 검을 겨냥해 온다. 그리고 잠시 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먼저 몸을 움직인건 블랙드래곤 아렌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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