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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德厚の野望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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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22 회 작성일 24-01-11 02:5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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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기가 허虛 했을 뿐이오. 정양하면 쾌차할 것이오.”


희디 흰 손목을 통해 진맥을 하던 덕후는 걱정스럽게 주시하는 여인들에게 알렸다. 우희선이 갑자기 쓰러지자 덕후는 당황하여 외쳤고, 밖에 동향을 주시하던 마누라들도 깜짝 놀라 안채로 들어섰다. 발을 동동 구르는 덕왕을 보고 소월하가 급히 눕힐 것을 권하자 정신이 든 덕후는 자기 안방 위로 우희선을 눕혔다. 전지전능의 잡기雜技 중 의술醫術을 익힌 터라 어의를 부르지 않고 직접 진찰한 것이다.


현재 우희선은 과로, 스트레스, 생리, 정신적 쇼크, 주화입마 5중고로 잠시 맥이 끊긴 것이었다. 이건 쉬는 게 약이다. 근본적으로 덕후가 우희선이 원하는 바를 들어줘야 완치 될 문제였다. 진찰하는 사이 염미홍, 소월하만 아니라 영호 세휘도 급보를 듣고 달려와 안채의 면적이 급속도로 좁아진 듯 했다. 없는 이들, 신도 형욱은 오전에 본가로부터 연락이 있다며 출타 중이었고, 부용은 산책처럼 진회하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터였다.


“언니가 왜 갑자기 쓰러진 거죠?”


우희선이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안방에서 안채로 나오자 금보옥이 따져 물었다. 덕후는 캥기는 표정으로 속으로 할 말을 정리했다.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에 내가 홧김에 후처를 들이겠다고 했고, 그러라고 했소. 자리에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쓰러진 것이오.”


덕후는 순간적으로 체온이 내려가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당연히 여인들의 모멸의 시선 때문이었다. 문득 영호 세휘가 입술을 삐죽이며 나섰다.


“그 뿐만 아닐 거예요.”


순간 덕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입가로 씃! 하는 위협음이 흘러나왔으나 세휘는 못 본 척 잠깐 침묵으로 여인들의 관심을 한 껏 끌어모았다.


“왕비 전하께서 한 달 전 제게 묘령의 처녀들을 열 명 추려달라고 했어요.”
“아문에 비번이 생겼는가 보군.”


덕후가 급히 화제를 딴 곳에 돌리려했지만 금보옥이 신속히 덕후의 손을 쥐어잡았다.


“당신은 입다물고 계세요.”
“윽! 아, 알았소. 좀 살살! 아야얏!”


손은 자신보다 마디 하나 작으면서 무시무시한 힘이다. 덕후가 쩔쩔 매는 동안 금보옥은 세휘에게 다음을 재촉했다.


“저도 덕왕 전하 말씀대로 어디 특별히 시킬 일이 있는가 싶었죠. 그래서 연유를 물었어요. 보름 동안 말 안하시다가 제가 열과 성을 당해 하문을 청하니 개미 목소리보다 작게 밝히시 더군요. 세상에나! 상공에게 후처를 들이겠다는 게 아니겠어요?”


뭣이? 하는 경악이 여인들에게 퍼져나갔다. 금보옥은 세휘가 말한 것을 바탕으로 우희선이 쓰러진 일, 당시 청력을 최대한 끌어올렸음에도 안이 밀폐된 것처럼 조용했던 것에 과정을 추측할 수 있었다.


“언니 성격상 당신에게 알렸을 것 같네요. 당신은 필시 거절했을 테고....하아, 뭐라고 했어요?”
“그, 그냥 싫다고 했지...아야야야! 아, 알았소. 사실대로 말하리다.”


다시 한번 자벌레처럼 몸을 뒤틀어도 금보옥은 동정하지 않았다. 요 3년간 우희선이랑 가장 많이 붙어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맡은 분야도 그렇지만 정사를 팽개친 덕왕을 대신하여 왕부의 일을 대부분 대행했기 때문이었다.


비빈들 중에 우희선과 금보옥은 공적 업무를 대행했다. 3년 전 일의 사태로 대상련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해금령도 상당히 완화되어 원 역사에 비하면 철폐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해상무역에도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전대 련주를 능가하는 권한과 지원을 손에 넣은 금보옥은 이전까지 방만했던 대상련의 경영관리도 쇄신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여기에는 덕후가 초안을 던져주었던 것을 실정에 맞게 도입했는데 바로 미국의 테일러 기법이었다. 근대 이후 제창된 경영론으로 과업 분리를 통해 작업의 표준화 및 전문적 분화를 촉진하고 태업 방지를 목적으로 하였다. 지나치게 과학적 접근 때문에 비인간적이란 지적을 받고 있으나, 직무를 관리의 기초로 확정한 것으로 작업의 합리화를 꾀한 것이 특징이었다.


천하 상권의 태반은 장악했다는 대상련이 비상을 위해 꿈틀 거리자 강남의 시장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해외교역과 맞물려 부피가 커지고 절차가 복잡해질 기미가 보이자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법규와 조정 기구가 필요해졌다. 전통적으로 중국 왕조는 경제에 억압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심했다. 덕후는 반발할만한 세력들의 아킬레스 건을 금보옥을 통해 쥐고, 자기 소속의 왕령이 일종의 특구가 된 점을 적극 활용하여 자본주의 시행조건의 기반을 다지게 하였다.


우선 상법 관련 법규와 시장의 분쟁을 조절할 사법기구를 신설함으로서 신용의 확대를 꾀했다. 재화의 교환과 계약의 집행을 법적으로 보호했으며 자본의 축적과 활용이 가능하도록 명시해놓았다. 또한 당장은 어렵더라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확립하고 사회의 간접자본을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게끔 명시해놓았다.


덕후 본인의 입장에서야 당장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체질 자체를 크게 바꿀 의도는 없다고 말하지만,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과 업무량을 소화해야했다. 또한 이 새 법규에는 기존의 관리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당시 엘리트층인 관료와 신사들은 고도로 행정사무에 대해 초보적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신사의 자체 관습법과 왕조의 이데올로기에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실무는 서리들에게 의지하는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행정과 법규 및 수량 대처 대해 전문적 지식과 사고력을 가진 고급 관리까지 육성해야했다. 아무래도 습득이 빠른 젊은이들이 유리했고, 왕부 소속의 관리의 평균 연령은 다른 곳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편이었다. 금보옥이 상계와 신사층 그리고 현장 쪽을 담당한다면, 우희선은 덕왕을 대신하여 상주문을 담당하고 통정사사를 통해 황제와 조정에 안건이 가납 되도록 조율하는 쪽이었다. 아무리 덕왕부가 남직례와 강남을 차지한 특구라 해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도, 딴 나라를 세울 게 아니면 절차는 제대로 밟는 쪽이 뒷말이 없고, 효력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해석 하나가 어긋나도 반려되는 일이 있는 만큼 우희선은 상주문 작성마다 적지 않는 심력을 소모해야했고, 답지가 내려오면 가납 여부에 따라 파업 모드인 덕왕을 대신하여 조례에 신료들을 소집,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금보옥과 함께 성과를 검토 해야한다. 하루에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형편이라, 언젠가 우희선과 금보옥이 하루에 1600건이나 되는 상주문을 처리했다는 홍무제의 심정을 알겠다고 푸념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덕후의 다른 여인들도 팔자가 편하지는 못했다. 사람이 먹고 일만 할 수는 없으므로, 덕후는 여기에 병행하여 유럽의 리그와 같은 스포츠 붐을 기획하였다. 염미홍과 소월하를 통해 축국 대회를 열게 한 것이다. 덕후의 입장에서는  축구의 룰을 그대로 적용하고 싶었지만 훗날 “축구의 원조는 우리다!” 이딴 소리 나는 꼴이 보기 싫어서 큰 틀은 축국를 유지하고 축구의 기법을 도입하여 긴박감 있는 경기가 되도록 손을 보는 선에 그쳤다.


축국은 수호전에서 악당 고구가 휘종 앞에 축국 솜씨를 선보임으로써 출세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만큼 대중적이었다. 명대에 떠돌이 예능무리처럼 축국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도 있었다. 소월하는 이들 중 축국 그 자체에 열정을 품고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들을 모아 전속 선수로 고용하였고, 1년 전 염빈의 이름으로 축국 대회를 열어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데 성공했다. 지금 염미홍과 소월하가 맡은 일 중에 하나가 대지주와 상단주들을 꼬드겨 지역별로 후원회를 조성하여 단체를 만들게 하는 일이었다.


근세기 서구 노동 계급이 맥주와 함께 경기를 관람함으로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부가적으로 지역의 유대감과 경기를 활성화시킨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 담당으로 염미홍과 소월하가 맡았는데 이 일을 한다고 평소의 일과, 민생구휼과 소작쟁의 조정까지 접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래 없을 만큼 대상련과 경제를 지원하는 만큼 덕후는 그만큼 돈과 물자를 천문학적으로 뜯어냈다. 한 때 금보옥이 투자할 곳을 늘리도록 과세를 삭감해달라고 조르다가, 한바탕 부부싸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결과는 덕후의 승리였다. 명 왕조는 전제국가다. 겉으로는 프렌들리를 외치며 대기업 시다바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생기는 현대 정부와는 달랐다.


부부싸움을 해가며 뜯어낸 돈을 덕후는 사회 환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염미홍과 소월하에게 맡겼다. 그렇다고 염미홍이 희희낙락하며 인심 좋은 자선가 행세를 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방만한 운영을 못하도록 예산의 출처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했다. 덕후가 삼인 체제를 구축할 때 던져준 것이 엘리자베스의 구빈법이고, 그 근간은 재활에 의한 잉여인력의 청산에 있기 때문이었다. 단독으로 생존조차 불가능한 고아와 노약자, 그리고 불구자를 제외하고, 사지가 멀쩡하면 어떻게든 일을 하도록, 거시적 관점에서 양극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양 정책이 되게끔 돈을 굴려야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문파를 꾸리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의 일각을 맡는 생소한 대임에 염미홍과 소월하 콤비는 여러 번 실수를 저질렀다. 특히 염미홍은 한탕 하려는 기질 때문에 다단계 비슷한 사기꾼 수법에 걸려 한 바탕 경을 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소월하의 발 빠른 대처로 거액을 날려먹는 것은 막았지만, 그 일로 염미홍은 몇 개월 동안은 덕후만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눈물을 쏙 뺄 정도로 갈굼 받았다.


덕후가 품은 여자는 아니지만, 후보로 인정받는 두 여자, 신도 형욱과 영호 세휘는 상대적으로 나았다. 형욱은 직제상 비상시에 왕성을 방어하는 정 3품 왕부호위지휘사사와 의장을 담당하며 친왕의 호위하는 정 5품의 왕부의위사의 위에 있어, 무관과 위사들의 훈련 상태를 감독했다. 세휘는 내명부와 사례감을 합한 여관을 관리하며 비빈들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가장 팔자가 핀 것은 부용이다. 덕후 성격상 일을 맡길 법했지만, 특수한 이력에다 물정을 배울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여 저자거리에 해결사 노릇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정확히는 마누라들과 으쌰으쌰하는 데, 달라붙는 게 귀찮아서 지나가는 투로 말 한 것을 본인이 재미 붙은 경우였다. 부용의 전속시녀 서향이, 보통 여자아이 같았으면 여러 번 죽었을 위기에 처했다고 세휘에게 호소했다 하니 스릴 넘치게 지내는 모양이다.


위에 길게 이야기했지만, 여인들이 워커홀릭만큼 혹사하는 것도 덕후의 농간이 꽤 포함되어 있었다. 바쁘게 만들어 아이 생각을 가지기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만사를 꿰뚫어보는 시늉을 하는 덕후도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으니, 덕후 시대에는 아이 낳기는 선택이지만, 이 시대에는 필수라는 점을.


“당신은 일단 좀 맞고 이야기해요!”


내막을 전해들은 금보옥은 쓰러진 언니에게 동정심이 들면서 눈앞에 뺀질거리고 있는 남편에게 울화가 치밀었다. 여전히 손을 잡은 상태로 다른 한 손은 쫙 편 채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어이쿠! 폭력 여편네가 사람 잡는다! 남편을 잡는 여편네가 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내를 홧병으로 기절시키는 남편은 잘하는 짓이고요?”


금보옥은 싸늘하게 대꾸하며 몇 번 더 때렸다. 덕후는 채찍을 맞은 것처럼 이리저리 몸을 틀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표정들이다. 완전히 말썽을 저지른 아들 혼내는 포지션이다. 독한 얼굴로 때리던 중 금보옥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급기야 목소리까지 떨렸다.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하고 잘나신 양반이 왜 그렇게 언니 입장을 몰라요? 언니는 정실이잖아요. 자식을 낳지 못하면 후처를 용인해야하는 처지에요. 그런데 뭐? 후처를 들이면 나중에 죽이라고요? 철딱서니 없는 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금보옥의 흐느낌 섞인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고 덕후는 뜨끔했다. 우희선은 다른 마누라들에 비해 후사에 대한 압박감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데, 본인 또한 완벽을 기하는 성격이라 워커홀릭 시킨다고 출산까지 접어줄 만큼 편한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했다. 고심 끝에 내놓은 고육지책을 반려라는 인간이 선의를 악의로 되갚는 짓거리를 해버리니 순간적으로 울화증+주화입마까지 도져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다. 무심코 말로 초절정 고수를 기절시키는 타이틀을 땄지만, 현재 덕후는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그러니까, 내가 전부 잘못했소.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구려.”
“저한테 하지 말고 언니가 깨어나면 빌어요.”


손바닥으로 삐죽 내민 자기 입을 찰싹찰싹 때리는 시늉을 보이자 금보옥은 덕후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덕후는 침실 쪽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휴우....왜 그렇게 안달하는지 모르겠군. 아니아니, 그렇게 노려보지들 말아. 내 잘못을 희석할 의도는 없으니까.”


덕후는 두 팔을 휘휘 저으며 서둘러 험악해지려는 분위기를 진화시켰다. 그리고 설득시키려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잖아? 자식을 봐도 여기 마누라들 성을 이어받아 독립할 것인데. 일단 물려줄 기반을 어느 정도 닦고 난 다음에 보는 것이 좋잖아.”
“상공의 제사는요?”
“응?”


금보옥은 한숨을 쉬더니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는 정색을 하며 덕후를 직시했다.


“정식으로 군왕(친왕의 장자)을 보는 것은 포기해도, 성을 잇고 제사를 지내줄 자손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들은 언니만이라도 먼저 자식을 볼 수 있도록 합의를 한 것이고요. 하지만 상공은 그조차 내켜하지 않았잖아요?”


금보옥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덕후로서는 어쩐지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박력이 있었다.


“아마, 언니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장자라 해도 결국은 우 씨의 피를 잇는 아이. 그렇다면 전혀 상관없는 쪽은 어떨까, 하고 고민 끝에 결정했겠죠.”
“음...”


덕후는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금보옥의 보충을 받고 나서야 우희선이 느꼈을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자신의 입장으로 보자면 아내에게 네토라레를 주선해주는 꼴이다.


“왕비에게 그런 소리를 들었소?”
“듣진 않았죠. 하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대동소이할 거예요.”


덕후는 한동안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깨어나면 한 번 상의해보겠소.”


지난 3년 동안 대치에서 백기를 드는 순간이었다. 덕후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염미홍이 환호성을 외치며 덕후의 품에 쏜살같이 날아 안겼다. 덕후가 균형을 넘어지자 당황한 소월하가 염미홍의 뒷덜미를 잡아 떼어놓았다. 염미홍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에헤, 에헤헤헷.”
“한 번 상의해보겠다는 것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기뻐해?”
“자기는 몰라. 우리가 얼마나 속앓이 했는지를.”


덕후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직이 뇌까렸다.


“.....역시, 생모보단 유모를 죽이는 편이 좋을까.”
“상공!”
“미안! 진담이었어! 차라리 내가 키울게!”


금보옥의 호통에 덕후는 화들짝 놀라 외쳤다. 어이없는 시선들을 대하자 덕후는 휘파람을 불며 볼을 긁적였다. 염미홍이 살짝 정정해주었다.


“....거기는 농담이라고 말해야 할 게 아닌가?”
“맞아, 뭐, 키운다는 건 진심이야.”
“홀아비도 아닌데 어떻게 키우는 걸 맡겨요?”
“응? 안 되나?”


전생에는 가사분담 내지는 남자 전업주부도 흔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여자의 소관이다.


“맡기면 아이의 장래가 걱정되는 건 둘째 치고 아랫사람들한테 모범이 되지 못 하잖아요. 우리 일거리를 조금씩 줄이고, 각자 쉬는 날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돌보면 되고. 혼자서 키우는 건 부담이 가지만 여럿이면 문제없죠.”


덕후가 10년 후에 출산 계획을 잡았다면, 마누라들은 출산 후 양육 대책까지 세운 듯 했다. 금보옥은 생글생글 웃었다. 그 모습은 탈출구를 모두 봉쇄하고 한 길만 열어놓은 듯한, 그리하여 원하는 함정에 정주행하도록 몰아넣는 자의 미소였다. 


“당신은 그저 합궁할 날짜만 잘 잡아두세요.”


낚인 자의 심정으로 어물어물거리고 있는데,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약했지만 이 자리에 고수 아닌 자들이 없어서 우희선이 깨어나는 기척이라는 것을 감지했다. 금보옥은 전음을 날렸다.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까 잘 위로해주세요.


덕후가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금보옥은 다른 여인들에게 손짓을 하여 조용히 그러나 신속히 안채를 빠져나갔다. 쓴웃음을 지으며 있던 덕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침실로 건너갔다.


우희선은 한 팔로 이마 위를 누른 채 두 눈은 뜬 채로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덕후는 헛기침을 했으나 우희선이 상체를 일으키자 급히 달려가 어깨를 잡고 도로 눕혔다.


“몸도 편찮은데 일어나지 말고 좀 더 쉬어.”


억지로 눕히고는 덕후는 침대 옆에 있는 화로에 올린 물주전자에 김이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기에 조심스럽게 따라 우희선에게 건네주었다. 우희선은 겨우 한 모금 마시고는 물렸다.


“.....밖에 이야기 다 들었어요.”
“응? 어...하하하, 못난 꼴을 보였네.”


덕후는 우희선의 차가워진 손을 잡아 주무르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나 우희선은 가만히 고개를 도리질하였다.


“상공이 내키지 않으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 내 잘못했다니까....몸이 회복되면 좋은 날을 받아서 하자.”


단단히 화나게 만든 것 같아 덜컥 겁이난 덕후는 급히 달랬다. 덧없는 표정을 그리던 우희선은 천장 한가운데를 보다가 덕후에게로 향한다.


“이건 아니에요. 진심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동의를 받아내는 형태는....옳지 못해요.”
“아니, 옳고 그름 이전에, 이쪽이 실수 한 거고 내 잘못이니 책임을 지겠다는 거라니까.”
“상공이 진심으로 원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보지.”
“역시 안 되겠어요.”


우희선은 집요했다. 파트너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터라, 남편이 얼마나 위험한 부류인지는 감 잡고 있었다. 엄청난 자제심과 분별력으로 일반인에 가깝도록 자신을 통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넘실거리는 광증은 기벽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우희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덕후가 친자식까지 철저하게 정략의 도구로 판단해버리는 것에 있었다. 단순히 혈연이라거나 나은 정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만귀비와 동복동생의 예를 통해 뼈에 사무치게 느끼고 있지 않는가.


금보옥이 덕후로부터 백기를 받아냈지만, 이런 식으로 억지로 낳게 하면 불씨를 키우는 셈이다. 애당초 자신들이 아이를 낳으면 모친의 성씨를 물려줘 각자 소유한 가업을 잇게 하고, 자신이 죽으면 제사 지낼 것 없이 화장해버리라는 유언 자체가 자식들로부터 한 발 물러난 것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희선은 덕후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자식을 키우길 바랬다. 언행 보다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감화시키고 싶었다.


이러한 정처의 속내를 모르는 덕후는 여자는 역시 알 수 없는 존재라며 속으로 안달했다. 권모술수로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자극하여 조종하는데 일가견 있는 그도 여심의 깊은 곳 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의 사고가 평행선을 마주보고 있는 데 밖에서 기별이 왔다. 대관원에는 따로 시비를 두지 않아서 아무나 안방에 드나들 듯 오가곤 했는데 나타난 임자는 형욱이었다. 형욱은 안채에 기다리고 있다가 오라는 덕후의 말에 무심코 침실로 들어오다가 우희선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흠칫하며 급히 무릎을 꿇었다.


“주모님도 함께 계셨군요.”


밖에 있다 방금 복귀한 듯 형욱은 우희선이 쓰러진 일은 모른 듯 했다. 세휘를 만났으면 전후 사정을 들었겠지만 공교롭게도 지나친 듯 했다. 아니면 일부러 못본 적 회피했거나. 후자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덕후는 변명하듯 말했다.


“안사람이 피곤해 보여서 억지로 재웠네. 무슨 일인가?”


네, 하고 짧게 대답한 형욱은 그녀답지 않게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용건을 꺼냈다.


“잠깐 본가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신도 세가 말인가?”


개봉에 터를 잡고 있는 신도가는 십패의 하나로 영향력은 하남 전체를 아우르고 산서 남부와 산동 서부에도 손을 뻗치고 있었다. 이들이 차지한 곳은 고래로 중원이라 일컬어지고 있었다.


“장기 출타가 될지 몰라 인수를 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형욱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내키지 않는 기색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형욱의 이력을 아는 덕후와 우희선은 그럴 법하다 여겼다.


“꼭 가야만하는 곡절이 있나보군.”
“가주께서 고령이시라 가독을 물려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후계 조건에 포함되는 이들을 모조리 소집하셨습니다. 저는 말단입니다만, 명단에 올라가 있으니 가야합니다.”



현가주 신도 천협은 1세대 인물이다. 세수가 팔순은 넘겨 십패 태동기부터 중원을 기반으로 신도 세가를 세웠고, 다른 십패가 2,3대 세대교체를 이룬데 반해 녹수맹주 연독고와 함께 유이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신세 져오던 것도 있고 형욱 혼자 돌려보내기는 그러니 동행할 사람이 있는 게 좋겠어요.”


덕후에게 권하는 우희선이다. 덕후도 그 숨은 속뜻을 모르진 않았다. 현가주는 밀천회, 친 조정파로 분류되고 있지만 후계자까지 그러란 법은 없었다. 십패의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우희선은 신도 세가가 안고 있는 불안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신도 세가가 잠재력만으로는 영호세가와 맞수가 될 수 있음에도 왜 3중의 하나로 머물러 있는지도.


“누굴 보내야할까. 하나 같이 몸 뺄 형편이 아닌데.”
“상공께서 외유하고 오시는 게 어떻겠어요?”
“내가?”


덕후는 자신을 가리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연극적인 태도에 우희선은 살포시 웃었다.


“3년 동안 쉬셨으니 슬슬 움직이셔야할 때이지 않나요?”


내홍이 생기면 삼패를 자기 입맛대로 갈아치운 덕후가 개입을 할 터이고, 무난히 승계가 이루어진다면, 가독을 물려주는 현장을 보고 남편이 무언가 느끼는 게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죄지은 게 있는 덕후의 귓전에는 니트질 그만하고 밥 값하라는 소리로 와 닿았지만.


“둘이서만 가기 싫다면 한 명 더 데려가도 좋아요. 저나 금 동생, 염 동생은 무리겠지만 소 완의나 세휘는 될 거예요.”


덕후는 대놓고 싫은 낯을 하였다.


“미홍은 소 완의가 없으면 한 사람 몫을 하기 힘드오. 소 완의도 마찬가지. 차질이 생길까봐 싫은데....”
“그러면 세휘가 가야겠군요.”


싫은 표정이 더 심화되었다. 둘은 견원지간이다. 내막을 모르는 우희선이 보기에 서로의 외모는 둘 다 취향인데, 기질이랄까 그게 극단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 보였다.


“상공은 이름을 알리는 것을 싫어하시잖아요. 대행해줄 사람이 필요 할 텐데요.”
“끙, 어쩔 수 없군.”


덕후는 한참 고민한 끝에 받아들였다.


덕후와 형욱, 그리고 세휘가 하던 일을 인수하고 행장을 꾸려 신도 세가가 있는 개봉으로 여정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보름 뒤였다.



 

 


중간에 잡설이 길었습니다만....3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가 소략하다보니....복잡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넘어가도 됩니다. 무협 라노베가 목표지 대체 역사를 쓰려는 건 아니니까요. 강남이 주요 배경으로 다뤄지는 것은 3부에 가서 입니다. 그때 가서 “어라? 언제 이렇게 변했지? 못 읽었는데?” 라고 하면 “여기 있습니다!” 라는 안전빵을 위해서 입니다.(어이)


자아, 이제 중원으로 나가는군요. 이번 파트의 메인은 신도 형욱과 혁련 나경이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다음 달 하순에...(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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