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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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 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57話 센타이 - 노르딕 전쟁3 : 관망
112-1.
새로 나타난 ‘나’에 대해서는 세진 알카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소개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슬금슬금 파견부대 사이에 끼어들어온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뻔뻔하게 한솥밥을 먹고 있으면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했으니까.
비록 그 사람이 황태자와 그 부인과 무지 친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소개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손님이 아닌 불한당이나 다름없다. 언제 자신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강도용의자로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특히 타클란 제국에서 온 29황녀 예브리나 엔헤빌 케스토론이 그런 불안감을 주로 내비쳤는데……아무래도 질투심인 것 같았다.
하긴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나’와 나의 사이가 지나치게 돈독해 보일 테니까 말이지.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가슴도 작으면서!”
평범한 계층으로 자라나고 있다가 어느순간 공주님이 되신 이 백야의 나라, 러시아의 미인과 비슷한 미모(엘프에 육박하는 미모. 그리고 아줌마가 되면 급격히 몬스터급으로 변할 얼굴을 이야기한다)를 자랑하시는 타클란 제국 29황녀님께서는 그렇게 분한 듯 말씀하셨다. 그 말은 분명히 자신이 우월하다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잇는데 어째서인지 그 이야기에 대한 비언어적인 요소에 의해 자신이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뭐, 그렇게 질투하지 않으셔도 상관없는데 말이죠. 어차피 이 녀석이 저와 여차저차한 관계로 묶이게 될 리는 없습니다만. 뭐, 물론 저 녀석이 하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만요.
“언젠가는 한 몸이었고 다시 한 몸으로 돌아갈 날이 있을 것 아니겠어?”
“우웃! 가, 가슴도 작은 사람도 상관없다는 건가…….”
뭐, 이 사람들에게 나라는 녀석이 몇 명이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릴 필요는 없으니 오해는 오해대로 놔두도록 하자. 덕분에 그 말을 들은 예브리나 황녀가 나를 살짝 노려 보며 의미불명의 말을 한 것은 중요치 않다.
“그래도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 남은 나라면…….”
“뭐, 쓸데없이 무거운 것보다는 날씬한게 더 좋을지도. 늘씬한 곳은 늘씬해야지, 좋아들 한단 말야. 쓸데없이 살들이 붙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슬프다고나 할까.”
“크윽.”
참고로 저는 가슴 좋아합니다. 물론 남자이다보니 자극이 있으면 반드시 불끈하기는 하지만 말이죠.
“져, 졌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 눈앞의 ‘내’가 자랑하는 허리라거나 다리부근을 보고 무지 부러워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타클란 제국 29황녀 예브리나의 눈빛에서 감도는 패배감을 감지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몸매에 목숨을 걸어대고는 하는 아가씨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고로 적당히 살이 있는 편도 좋아한다 나는.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으니 문제이지만.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지마!”
결국 예브리나 황녀는 반쯤 울면서 악당이나 하면서 도망갈 법한 대사를 읊어주셨다. 그리고 도주에 가까운 행동을 하시다 땅바닥에 풀썩 넘어져서는 얼굴을 붉히고 다시 도주.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이 산만한 공주님인 것 같다. 원래는 안 그런 것 같지만.
“으히히힉, 우, 웃겨서 배가 당겨.”
“…….”
그건 그렇고 거기의 ‘나’ 장난스럽게 웃지 말라고. ‘사실은 부럽지?’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몸매자랑하지 말라고. 지금 네 놈이 하는 행동은 심심하다고 말할 때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건 알고나 있는 거냐? 지금 그 옆에 웃다웃다 결국에는 단순히 누운 시체가 되어 대답이 없는 아버지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을?
“정말?”
몰랐던 거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는데?
“그래.”
“저, 절망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닮아가다니. 절망했다!”
몰랐던 모양이군. 후우, 이 녀석이 이러고 있다는 건 나도 닮아가고 있다는 말이로군. 생각해보면 이것은 절망적인 상황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닮아간다니. 담배가 급격히 당기는 기분이라고 할까. 아아, 정말 말리네. 담배가 말려.
“후우…….”
“참 묘한 풍경인데. 평소에는 알지 못하던 버릇같은 것도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담배를 물었다. ‘나’, 여기에서는 세진 알카로이드라고 부르기로 한 또 다른 나는 그런 나를 손으로 턱을 받친 자세로 빤히 바라보았다. 절망하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또 실실 웃으면서 장난을 칠 생각이 가득한 것이냐.
‘당장 주어진 숙소로 가!’
불쾌하다는 듯 눈빛을 보냈지만 생글생글 웃는 것이 어째 아버지를 닮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그게 무지 기분이 나빴다.
‘게다가 황태자를 호위해야 할 녀석들이 저러고 있으니.’
어째 처음 보는 ‘여자’가 황태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별로 신경도 안쓰고 있는 미시어스의 소드마스터들이랄까. 내가 그동안 참 죄(?)를 많이 짓고 살았다는 것은 인정하겠다만 이렇게 무관심할 줄이야. 그런 그들의 분위기에 타클란 제국의 소드마스터들도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느낌이라 조금 외롭다. 이 악적(?)을 빨리 내쫓아주었으면 하는데 말이다.
.
.
뭐, 내가 ‘나’, 세진 알카로이드 여성버전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들은 나와 ‘나’를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평소 우리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화기애애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거기까지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은근히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넘어선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까지는 확실한 듯하다. 여성체로서의 나에게 대하는 정중한 태도를 보면 남의 부인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 남의 남편은 맞지만 부인은 아니므로 오해라 할 수 있겠다.
사실이야 어쨌든, 사람들은 ‘나’ 세진 알카로이드가 ‘내’ 부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해버린 것에는 그들이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정황들이 자주 포착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틀레야가 그런 ‘나’를 보아도 그러려니 하면서 신경도 안쓴다는 점이 제일 유력한 증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한 번 헛구역질이라도 해봐? 우하하핫!”
“하아, 정말이지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고.”
“으, 으윽. 그것만은…….”
그 정황이라고 한다면 주로 이런 것들이다.
제일 먼저 여성체로서의 ‘나’와 내 부인이라고 확실하게 알려진 카틀레야와 사이가 좋다는 것. 함께 웃으면서 놀러다닌다거나 하는 점들이 사이가 좋다는 증거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 다음은 분명히 ‘나’ 세진 알카로이드가 ‘나’ 진 맥세인 아슈레이와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데도 그녀가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리들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로 내 무릎이 마음에 들어 ‘나’가 ‘내’ 무릎을 베고 고양이마냥 잠들어버리는 ‘아내로서는 화가 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카틀레야가 ‘그러려니’하는 표정으로 넘어가버린 것이 이유였다.
오해라고 말하고 싶어지지만 뭐라 변명하기 힘든 상황을 보고 그리들 이야기를 하니 나로서는 그저 노코멘트로 흘려보낼 상황이라고 할까. 이러다가 관심들 끄겠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히 오해라 변명하기도 귀찮다. 아무래도 변명하기도 귀찮다는 내 생각의 뒤로 오해는 점점 그 덩치를 키워나가고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113.
신도 때려잡을 인간이 셋……이라기보다는 한 사람과 또 한 사람과 분신 하나에 그랜드마스터 한 사람, 그리고 소드마스터 약 40여명이 적진을 발칵 뒤집어놓고 다닌지 한 달 째, 노르딕들은 슬금슬금 전선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크게 몇 탕 뛰고 났더니 아무래도 인해전술에 하이테크 무기를 - 여기에서는 화승총이 하이테크였다 - 겸비하고 있던 그들이라고 해도 부담이 되는 상황인 듯했다. 무엇보다 레지스탕스 의용군들이 자신들의 점령지에서 유격전을 벌이고는 하는 상황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일단 내부단속을 해두고 적의 공격을 상대하자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 같았다.
“지루한데……후아암.”
그리고 전선이 알아서 축소되는 만큼 소드마스터 부대는 현상황에 고정된 채 대기만 하기로 되었다. 덕분에 할 일도 없이 시간을 가지게 되어 수련 삼매경에 빠질 수 있었던 소드마스터들은 각자 상대를 골라 대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알아서 서열이 정해지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네 사람, 카틀레야와 나와 ‘나’, 그리고 아버지는 제외되었다.
워낙 막강해야지. 카틀레야도 최근 3단계 각성을 해버렸으니까. 1단계 각성이 불과한 소드마스터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들에게는 카틀레야는 거대한 산처럼 보일 것이다.
“쌍둥이 고개쪽으로 가서 한 번 휘젓고 와. 거기에 성 못 쌓게 방해하란 말야. 알지?”
“귀찮아……히잉. 그냥 전멸시키고 싶어.”
“뭐, 적당히 그쪽 의용군이 하는 걸 도우면 되니까. 필요하면 저격총이라도 빌려줘? 적의 대장들만 적당히 잡아주면 놀고 있어도 상관없을 텐데 말이지.”
“우우, 그것도 귀찮아. 그냥 확 쓸어버리고 나탈리 보고 싶어.”
“……야 임마.”
원래가 기사였고 황태자비가 되면서 조금 윗사람다운 위엄을 보이게 된 카틀레야는 산처럼 보일 것이지만 이렇게 불평이나 해대고, 게을러 보이고, 하늘하늘한 몸매나 자랑하고 있는 빈약해 보이는 ‘나’는 아마 지나가던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처럼 보일 것이다. 뭐, 그 덕분에 ‘나’를 통해 나도 우습게 보이고 있다는 것은 문제랄까. 그 중에서 제일 문제는 타클란 제국 29황녀 예브리나 공주께서 유부남인 나를 사랑하신다면서 접근 해오고 있는 것이지만.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아버지와 카틀레야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거 첩으로 들여야 하나? 정실로 들여야 하나? 골치 아프네?’
‘정실로 들어와도 제 밑이군요. 상관없습니다.’
‘질러버려! 질러버려!’
애초에 들인다는 선택지밖에 없는 것인지 모두들 내가 아내로 맞아들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브리나 황녀가 미인에 평민과 같은 소박한 쾌활함을 갖춘 여자이기는 하지만 이건 좀 뭣하지 않을까 싶다. 애초에 정략결혼이라면 그녀가 불행해지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그녀를 좋아할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정략결혼이라고 하더라도 부부사이의 결혼에 애정이 있다면 행복하겠지만 애정이 생길 리 없는 관계라면 결국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아내들보다 예브리나 황녀가 내 마음에 들 만한 요소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으니까.
‘황제에게 사랑 따위는 사치다. 아들아.’
‘그러니까 상관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당신은 제 남편이시니까요.’
‘약간 통통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날씬한 몸매도 모에!’
뭐, 몇 사람의 불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상관없다는 건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절망하면서 나는 한숨을 내쉰다. 그런 나에게 알랑알랑 애교를 떠는 것 같은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놀러가자.”
“야 임마.”
정말이지 아버지와 닮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전쟁할 것 같더니 갑자기 엉뚱한 짓들이나 하고 있다고 비난할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비난해도 된다. 엉뚱한 짓이 맞으니까.
“아프다고! 아파!”
“아프면 엉뚱한 말로 내 신경을 거스르지 말라고.”
주로 그 엉뚱한 짓을 하게 된 것이 몇몇 인간들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지금 내가 센타이 왕국을 돕기 위해 움직일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저들을 당장에 원래 살고 있던 섬들로 옮겨버리고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이 노르딕들을 절멸시키는 것이고. 하지만 지금 나는 내 행적이 들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전쟁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닌 관광 온 외국인의 분위기를 잡고 있다할까. 그런 이유로 욕을 해도 상관은 없다.
덕분에 센타이 왕국과 노르딕들의 싸움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며 승패를 주고받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힘의 균형이 잡힌 상황이라는 것인데 이 힘의 균형은 미시어스와 타클란의 지원군이 도착하는 순간 무너질 것이니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히 센타이 왕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어어?하는 동안 놀러가지는 무리들의 기세에 휘말린 결과 나는 곤돌라 위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 루치아~ 산타~ 루치아~’라는 가곡을 부르고 싶은 분위기다. 지금 우리가 묵고 있는 이 곳, 테이얀은 한국으로 치면 천안 정도의 지리적인 요건을 갖춘 곳이다. 시절이 여름에 가깝기는 하나 북쪽에 있는 까닭에 온난한 기온. 내륙지역이었다면 무지 더웠겠지만 이곳은 운하가 86개나 뚫려있는 도시다. 더울 리가 없다. 물 반 땅 반인 도시인지라 한 낮에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온통 수로에 길에 다리에……베네치아랑 비슷하네.”
“북쪽에 있으니 상트페테부르크같이 보이지만.”
어쨌든 운하가 86개나 뚫려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부로 통하는 모든 길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부유해진 이 도시는 더더욱 부유해지고 싶은 마음에 신나게 운하를 뚫었고 한겨울이 되지 않는 한에는 수로로 물자를 운송할 수 있는 최고의 상업도시가 되었다. 그렇게 상업이 발전했었지만 지금은 군대가 진주하여 주둔지로 사용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 위도에서는 백야는 없을 건데?”
“분위기가 그렇다는 이야기야.”
아버지와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천천히 노를 젓는다. 아아,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 거야. 노 젓기 귀찮아. 아가씨들이 분위기 맞춰달라는데 따라주는 것도 귀찮아. 진짜 여자가 아닌 주제에 여자인 척 하는 가증스러운 것들 상대하는 것도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아아, 이 도시는 하얗고 푸른 것이 멋진데 이 곤돌라만 어째 영 시원찮아? 제대로 못해? 노를 팍팍 저으라구. 밤에 아가들에게 하듯이 말야.”
“……야 임마.”
아버지, 지금 나 귀찮거든? 그냥 돌아가버리는 수가 있다?
“아파! 여자에게는 좀 더 친절하게!”
뭐, 꿀밤을 먹이는 것으로 참아주도록 하자.
“두 사람만 제외하도록 하지.”
“우이씨!”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7인승 곤돌라에서 노를 저을 사공을 빼버린 상황이라 그 귀차니즘에도 내가 노를 젓고 있다. 그것이 귀찮다.
이렇게 내가 노를 젓고 있는 이유는 도시를 돌아보고 싶다는 카틀레야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천천히 즐겨볼 생각이었지만……하나둘씩 나름대로 핑계를 대면서 달라붙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이런 일행이 되어 있다. 그 일행의, 현재 곤돌라에 타고 있는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나, ‘나’, 아버지, 카틀레야, 예브리나 황녀 + 2명의 50대(얼굴은 20~30대) 노처녀 소드마스터들의 구성. 나 빼고는 모두 (겉보기로는)여성이라는 상황이다.
남들이 보면 극도로 부러운 상황이겠지만 그 눈에 어린 탐심에 위장이 꼬일 것 같은 기분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즉 말하자면 좋지 않다는 거.
“팍팍 저어봐.”
“그러다가 다른 사람 다치는 꼴 보고 싶냐?”
어쨌든 노를 젓는 내 허벅지 사이를 노려봐주지는 말아다오. 사람 뻘쭘하다. 아니 어딜봐도 그건 성희롱이잖냐. 왜 남자의 중요한 부위를 그렇게 보는 건데! 거기 덩달아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쪽을 보는 세 분도 얼굴을 붉히면서도 빤히 보지 말라고! 타클란 제국에는 남녀의 구별이라거나 내외하는 법 같은 건 없다는 거냐!
“다른 사람이 다친다라. 역시 그건 이 세상의 순결을 지워 없앨 악마의 최종병기였어.”
“우후후, 역시 남자는 모두 늑대일지도. 지금 이렇게 여자만 데리고 나온 것만 해도…….”
“네 놈이 아까 노 젓다가 몇 사람들이고 물에 빠뜨려 버렸잖냐!”
그건 그렇고 엉뚱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나’와 아버지는 어떻게 해치워야 할까. 그래서 이 세상의 남자들이 억울한 누명에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위하는 일이지 않을까.
나는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자신의 행위를 마음속에서 일정한 논리를 가지고 정당화한 후 도끼가 아닌 노를 들었다. 그러나 노를 들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두 사람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으며 나는 그 모습에 이성이 끊어져 구타를 할 뻔했지만.
“인사할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요? 어디에?”
라고 말하면서 눈치도 빠르게 나를 말려주신 카틀레야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받지 않았다. 다만 주위에 지나가고 있던 곤돌라의 사공들이 노를 들어 인사를 해주는 바람에 몇 번이고 인사를 받았다고나 할까.
아깝다. 나중에 사람들이 ‘여자를 때리는 녀석’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의 분기를 풀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래도 참는 것이 좋을 거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는 있지만.
“역시 인사성이 밝아. 우후후.”
“매일 아침이면 그것도 벌떡 일어나서 인사를 까딱까딱~♪”
물론 참지 않아도 좋을 때가 있는 것도 같다.
“이것들아!”
“흉악한 악당이 이 세상의 순결을 모두 깨어놓을 생각을!”
“어머나, 무서워라!”
그렇다고 남들 다보는 데서 난리를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말이다. 조금 참자.
“거, 남자의 물건은 자고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폭주하려는데 내 폭주를 불발로 만들어버리는 말이 옆에서 들려왔다. 느긋하게 배를 젓고 있는 외팔의 남자였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놀릴 것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만.”
그 남자의 말을 맞받아친다. 그러자 그 남자는 빙긋 웃었다.
“하긴 그렇기는 합니다. 남자로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팔 한쪽이 날아가고 나면 그런 희롱도 기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런 놀림을 들을 정도로 나는 무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요.”
웃는 데는 이유가 다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자신의 몸 일부가 날아간 주제에 남성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모습이라니. 너무 남자로서의 모습에 충실한 사람이잖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셨군요.”
“죽어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살지 않으면 힘들지도 모르니까요.”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시군요.”
“딱히 내세울 건 아닙니다.
하나만 남은 손으로, 그리고 멀쩡한 두 다리로 느긋하게 노를 저으며 남자는 나의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에 껄껄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팔을 잃었다면 나름대로 보상은 없습니까?”
“그런게 있을게 뭡니까. 의용병인데요.”
남자는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의용병에게는 그런 거 없습니까?”
“있겠습니까? 정규병에게도 그런 건 없는데요. 그저 이렇게 직장이나 건사할 수 있으니 다행인 겁니다. 다행히도 이런 사람이라고 해도 받아줄 정도로 일할 사람이 없거든요. 어쩌겠습니까. 여자아이들까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요.”
그의 말이 낮게 울리면서 이 나라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둘러보면 실제로 아가씨들이 제복을 입고 노를 저으면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모습이 보인다.
“물에서 사는 아이들이라 그 별명이 ‘운디네’라고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 도시의 구조를 알고 싶으시면 저 아이들에게 안내를 부탁해도 좋죠. 하지만 무조건 다 안내를 부탁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제법 자격을 갖춘 아이 이외에는 불가능하니까요. 정식 직원인 ‘프리마’를 찾아서 부탁해야 할 겁니다.”
이거 왠지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본 설정이네요. 어딘지 모르게 비만한 고양이가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손님이 잘 잡지도 않는데 어딘지 모르게 느긋하시네요.”
“뭐, 가끔 취향 특이한 분들이 찾으시니까요.”
어쨌거나 이 아저씨에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날 하루를 보낸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느긋하게 이 도시를 돌아보며 수로를 구경하는 것을 취미로 삼게 되었다. 어느날은 그림을 그리고 어느 날은 낮잠을 잔다. 그리고 어느 날은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하고 대답을 듣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13-1.
오늘은 술을 마시며 수로의 풍경을 바라본다. 소박하게 돗자리 위에 안주접시를 놓고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중이다. 가볍다고는 하지만 이미 소드마스터들 대다수가 쓰러진 상황이니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해두어야 할 듯하다. 절대적으로는 이미 과음이랄까.
배에 탄 채로 음주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은 분명하므로 이렇게 해둔다. 나중에 한꺼번에 데려가려면 골치 아프겠네.
“여기에서 놀고 계시면 어쩝니까!”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사람이 찾아왔다. 소리를 바락바락 내지르면서. 미시어스 제국에 직접 찾아와 펑펑 울면서 도와달라고 외치던 남자였다.
현재는 수상에 가까운 직위에 올라있다던가? 제법 유능한 사람인 듯했다. 그런 남자이니 자신이 할 일은 다 마치고 우리를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우리가 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찾아왔겠지.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는 쓸 만한데 개인적으로는 짜증나는 사람이다. 취한 척하고 때릴까 싶을 정도로 잔소리를 퍼붓는 모습이 더더욱 그러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정도까지 노골적으로 도와줬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잖습니까. 거기에 한 사람이 없는데 일이 일어나는 건 몇 번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하지만 빨리 일을 처리하시는 것도…….”
그래서 ‘일하기 싫어. 놀고 싶어’라는 뜻을 담은 시선으로 가만히 노려봐주면서 이야기를 한다. 알아서 하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물론 이 남자는 곤란해했지만.
“우방국의 민심이 이반해서는 곤란하니까요. 나중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 누군가가 ‘한 일이 뭡니까?’라고 물었을 때, ‘제국에 달려가서 병사들을 빌려왔습니다’라는 대답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부족하나마 칼 한 자루 빼들고 성을 굳게 지켰다는 말이 국민들에게는 더 절실히 느껴질 겁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이구요. 다른 국가에게 기대기 시작하면 그 나라의 주체적인 마음이 사라지게 된답니다. 그런 건 싫거든요.”
삐지면 곤란하므로 이렇게 보충해본다. 하지만 그건 잘 알고 있지만 사안이 사안이니만큼이라는 말과 함께 그는 좀 더 빠른 임무수행을 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길어지면 주체고 뭐고 다 사라질 겁니다.”
“최소한 애국심이라거나 애국심같은 것이 있어야 전후의 일처리도 편할 겁니다.”
“그걸 따지기 전에 이 나라가 망한다니까요.”
어째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말들이랄까. 임계철선 역할을 하고 있는 자들이 빠지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 말이다. 물론 힘들어지겠지만 망하지는 않을 거라 확신은 할 수 있다. 자고로 많이 가진 권력자일수록 도박을 꺼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뭐, 그도 그렇지만 ‘우리가 위험해질 때에는 타국에서 또 도우러 와주겠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도 곤란하고 이 나라로서도 곤란해질 것이다. 고로, 처절한 혈전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피와 땀과 노력으로 성취해야 민족적이든 국가적이든 자존감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 세계에는 어째 민족이라거나 하는 걸 따지는 건 바보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유의 특성이 보이지 않는 인종구성이지만 말이다.
“차관이긴 하겠습니다만 전쟁의 상흔을 지우는 데는 일정량의 자금을 지원할 것이니 나라는 망하지 않아요. 빌린 돈을 갚으시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릴 테니 자존심을 되찾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오히려 조심해야 할 것은 평민들의 권리 신장일 겁니다. 전쟁이 끝나고나면 노동력이 부족해질 것이고 공을 세워 새로이 귀족으로 편입될 사람들도 있을테니까요. 그럼 자연히 귀족들의 지위는 낮아질 것이고 낮아지다보면 노동력이 부족해 높은 대우를 받기 시작한 평민들과 계급 차이는 줄어들겠지요…….”
어쨌든 이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니 빨리 적들을 물리쳐 달라고 성급한 마음을 그대로 토로하는 이 남자에게 나는 유력한 미래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하나 읊어준다.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과 페스트 유행 이후의 유럽의 상황을 적절히 조합한 예상이다. 신분제의 동요, 상업의 발달, 기술의 발달, 마지막으로 시민혁명.
“……그러고 있을 적에 지금 당신들은 수도에 모여서 연회나 열고 있으면서 이야기하겠지요. ‘아아, 빨리 저 노르딕의 해적들을 몰아내어야 할텐데.’ 그러면서 당신들은 아름다운 아가씨들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그 사랑에 필요한 자금이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더 거둘 수 있을지를 가늠해볼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전장에서 교육받고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죽음에는 계급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평민들이 생각하겠죠. ‘왜 우리만 싸우고 있는 것이지?’ 결국은 평민들은 그런 당신들에게 ‘댁들이 한 것이 뭔데?’라고 말하면서 대어드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때를 위해, 바로 지금, 귀족과 평민들이 함께 피를 흘리면서 싸운다면 우리나라로부터 시작된 개혁의 열풍을 어느 정도 무마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귀족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로를 기려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존경받는 그런 나라가 된다면 앞으로 몰아닥칠 시민들의 혁명이 부드럽게 진행될 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놀다가 지쳐 잠이 든 사람들이 보였다. 그 중에서 특별히 카틀레야를 골라 품에 안고는 마저 이야기한다.
“백성과 함께 하면 안녕을 얻고 백성을 잘 이끌면 강해지며, 백성을 해치면 위험해지고 백성을 배반하면 망합니다. 당신들이 백성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잘 모릅니다만 세상의 역사는 언제나 이러했지요. 지금 그 마음이 급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이 나라의 귀족들이 스스로 나서 싸운 적은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농민들이 나서서 의용군을 편성하여 싸우고 있지요. 귀족들은……전쟁에서 노력하거나 싸움에 나서지는 않고 오히려 점령지에서는 노르딕들에게 아부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현재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만.”
부디 알아서 처신하라. 정 안되면 혼자서라도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라. 그런 투로 말을 하고서는 자리를 뜬다.
지금부터 내가 할 것은 관망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건 말이다. 전쟁에서 피를 보는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랄까. 카틀레야에게 무리를 시키기도 싫으니까. 무엇보다 제대로 할 마음이 없는 귀족 놈들이 나를 부려먹으려는 것에 심통이 난 것이라고 해두자. 적어도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도 최소한 벌벌 떨기는 하겠지.
“후우……알겠습니다. 전하의 말씀은 확실히 전해놓겠습니다. 그래도 안된다하더라도 도움을 감히 요청하겠습니다.”
“최소한 당신에게는 화를 내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건 걱정 마시죠.”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손도 대지 않으면서 모두 숙소로 전송시킨다. 그리고 나도 숙소로 가만히 이동한다.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대신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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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대항해시대에 손을 대버렸습니다. 잉글랜드 국적이며 ‘세진알카로이드’라 이름을 지었지요. 에이레네 썹인데 누구라도 좋으니 상인 전직 퀘 좀 공유해주세요. orz. 명성 500~600이 되어야 전직퀘를 받을 수 있다는 기억에 거기까지 언제 올려 하면서 절망하는 중이랄까요.
어쨌든 폭주할지도 모르는 진행을 잠시 나꾸어채보았습니다. 다음편부터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막나가는 진행, 대충대충나가는 진행으로 돌아올 것을 약속드리며……. 막장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좋은 소재는 언제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죠.